내가 퍼스널 컬러 이론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

암탉



    이 사진, 익숙하지 않은가? ‘퍼스널 컬러를 검색하다 보면 한 번쯤은 꼭 마주치게 되는 사진이다. 일명 퍼스널 컬러 자가진단법이라고 돌아다니는 위 사진에 손등을 댔을 때 왼쪽이 더 화사해 보이면 쿨톤, 오른쪽이 더 화사해 보이면 웜톤이라고 한다. 지난 7월호에서 말했듯 필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화장에 관심이 참 많았다. 이 사진을 처음 본 것도 초등학생 때였다. 당시에는 퍼스널 컬러 이론이 화장품 업계와 완전히 결합하기 전이라서 이미지 개선의 개념이 더 강했고 (실제로 수업이나 강연에서 이미지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퍼스널 컬러 이론을 접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보다 상당히 마이너한 편이었다. 접할 수 있는 정보도 매우 적었고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유일무이했다. 이렇게 마이너했던 퍼스널 컬러 이론이 화장품 업계와 만나면서 퍼스널 컬러 이론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2012년 무렵 모 화장품 브랜드의 톤 마케팅이 그 시작이었다. 해당 브랜드는 간단한 웜톤, 쿨톤 자가진단법을 만들어 배포하면서 (우리 브랜드의 화장품을 이용해) 톤에 맞는 화장을 하라고 마케팅했다. 사실 위 사진도 그렇고, 해당 브랜드에서 배포한 자가진단법도 그렇고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왈가왈부 말이 많다. 혹자는 발암 짤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인 지금까지 이 자가진단법들이 통용되는 걸 보면 사람들은 확실히 퍼스널 컬러에 매혹된 듯하다. 딱히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만 사용하면 더 예뻐 보인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최초로 톤 마케팅을 시도했던 모 화장품 브랜드의 대성공 이후로 각종 화장품, 의류 브랜드에서 퍼스널 컬러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 해봐야 웜톤, 쿨톤 정도에 그쳤던 분류법이 라이트, , 뮤트 등등 더욱 자세히 나뉘어 대중화됐다. 여러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자신의 톤을 추측하거나 톤에 맞는 화장품을 추천해달라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그에 발맞춰 새로운 톤맞 제품이 시장에 출시된다. 처음엔 나도 퍼스널 컬러 이론을 순수하게 즐기고 있었다. 나에게 맞는 색의 화장품을 바르면 정말 혈색이 돌고 피부가 좋아 보였다. ‘톤맞제품을 찾아 톤에 맞춰 화장하는 게 재밌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뷰티업계 동향을 보면서, 최근 퍼스널 컬러 관련 여론을 보면서 엄청난 피로감을 느꼈다. 다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린 같은 흰 피부를 가진 나는 쿨톤?

    어떤 이론이든지 대중화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 또한 함께 대중화되기 마련이다. 퍼스널 컬러도 마찬가지다. 퍼스널 컬러 이론의 대중화로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가장 고통받는 부분이 바로 피부 색(밝기)과 퍼스널 컬러의 관계에 관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모 화장품 브랜드의 톤 자가진단표가 악몽의 시작이었다.

 

(출처: 이니스프리)

 

    해당 브랜드의 홍보 과정에서 희고 분홍빛이 도는 피부는 쿨톤, 까무잡잡하고 노란빛이 도는 피부는 웜톤이라는 낭설이 시작됐다. 후발 브랜드들도 별다른 연구 없이 선발 브랜드의 마케팅을 모방하기만 하다 보니 흰 피부=쿨톤이라는 낭설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버렸다. 문제는 한국이 흰 피부를 극도로 사랑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쿨톤병이라는 단어를 보면 알 수 있다. 퍼스널 컬러 이론이 대중화되고 흰 피부=쿨톤 공식이 퍼지면서 기다렸다는 듯 만들어진 신조어다. ‘쿨톤병은 쿨톤이 아닌데 쿨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에 걸렸다고 표현하는 단어다. 보통 여기서 쿨톤은 흰 피부를 뜻한다. 한 마디로 넌 쿨톤(=흰 피부)이 아닌데 왜 쿨톤(=흰 피부)인 척하냐는 거다. 인터넷에 쿨톤병을 검색해보면 본인의 피부가 하얗다고 말하거나, 본인의 피부보다 밝은 파운데이션으로 화장하는 사람들을 쿨톤병이라며 조롱하는 글들이 쏟아진다. 퍼스널 컬러 이론이 오도되면서 한국의 흰 피부 선망을 제대로 건드렸음을 보여준다. 사회가 강요한 미적 기준을 채우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에 걸렸다고 조롱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쿨톤(=흰 피부)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비추면서 무의식중에 쿨톤(=흰 피부)이 더 우월한 것이고 웜톤(=까무잡잡한 피부)은 열등한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 결국엔 진짜 쿨톤(=화장하지 않아도 원래 흰 피부)’을 치켜세우며 미의 기준을 세분화하고 공고히 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더욱 유해하다.

 

    쿨톤=흰 피부 공식이 유해한 또 다른 이유는 퍼스널 컬러 이론에 구체적인 특정인의 이미지를 끌어오는 데 큰 공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실용적인 면만 강조되어서 그렇지 퍼스널 컬러 이론은 일종의 색채학이다. ,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것도 단순히 색들을 이해하기 쉽게 분리할 목적으로 붙인 이름일 뿐이다. 하지만 쿨톤=흰 피부라는 낭설이 퍼지고 퍼스널 컬러 이론이 뷰티업계와 결합해 대중화되면서 톤에 특정 연예인들의 이미지가 부여됐다. “얘도 피부가 하야니까 쿨톤이야하면서 피부가 흰 온갖 연예인들을 다 소환해낸 것이다. 업계도 이를 놓치지 않는다. 우리는 연예인이 광고하는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해당 연예인의 이미지를 소유하고 소비한다. 요새는 퍼스널 컬러가 그 상품의 자리를 꿰찼다. 퍼스널 컬러에 특정 인물(연예인)의 이미지를 적용하여, 톤의 탈을 쓴 해당 인물의 이미지를 소비한다. 여름 쿨톤 아이린의 흰 피부와 청순한 이미지를 내 것으로 하고자 하는 이들은 아이린이 광고하는 상품에 돈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여성의 신체(흰 피부)를 토막 내고 대상화하고 미적 기준으로 내세워 결국 지출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기존 뷰티 산업의 전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왜 또 여자만

    누군가는 퍼스널 컬러를 알아감으로써 더 다양한 색들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퍼스널 컬러 진단으로 유명한 모 업체에서도 퍼스널 컬러를 통해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라고 설명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대로 퍼스널 컬러 이론이 이롭게 쓰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실상을 보면 퍼스널 컬러라는 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 같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자신의 피부색에 대해 한탄하며 난 이런 피부색을 가졌으니 이 톤이고 이 색깔 밖에 못 쓴다고, 톤에 맞지 않은 색을 바른 날은 너무 못생겼다고 속칭 톤신병자적 면모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연예인이 어울리지 않는 화장을 하고 나오면 이 연예인은 무슨 톤인데 무슨 색을 써서 톤그로다.”, “톤그로를 끌어서 얼굴이 어때 보인다.”고 말하는 댓글들이 자주 보이지 않나? 퍼스널 컬러 이론은 정말 새로운 얼평의 잣대로 자리 잡았다. 화장 자체가 코르셋 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이젠 퍼스널 컬러까지 고려해서 화장하라니. 게다가, ‘톤신병자적으로 퍼스널 컬러에 집착하고 톤맞색만 사용해 예뻐 보이도록 꾸미는 건 결국 또 여성뿐이다. 모든 뷰티 아이템이 그렇다. 왜 항상 여성만 꾸미고, 여성만 강요받는가? 내가 환멸을 느끼는 지점은 여기다.

 

자기만족일까 코르셋일까

암탉

    ‘코덕이자 페미니스트로서 요즈음 고민하고 있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나는 조금 이르게 코덕에 입문한 편이다. 내가 초등학교~중학교에 다닐 무렵 뷰티 블로그붐이 불기 시작했다. 우연히 포털 사이트 메인에 뜬 뷰티 블로그 글을 보고 다양한 색의 화장품에 매혹됐다. 이후 적은 용돈을 모아 야금야금 화장품을 사 모으고, 메이크업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활동하며 즐거운 코덕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 (모든 페미니스트가 그렇듯) 그러던 어느 날, 불편한 부분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으로 도배된 광고 문구를 볼 때나 그런 화장은 남자들이 안 좋아해~” 따위의 말을 들을 때 설명할 수 없는 불쾌함을 느꼈다. 그 무렵 페미니즘을 접하게 됐다. 여성의 행동을 모두 남성을 위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 혹은 그래야 한다는 강요가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되자 정말 신기하게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페미니즘이 코덕 정체성에의 돌파구로 작용한 셈이다.

 

    믿었던 페미니즘이 발등 찍은 건 최근의 일이다. 아니, 사실 양심적으로 말하자면 코덕이자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한 그 순간부터 항상 맘 한 구석에서 나를 쿡쿡 찌르던 불편한 생각들이 있다. 내가 활동하는 메이크업 커뮤니티는 페미니즘적 성향을 띄고 있다. 여성만 가입할 수 있는 커뮤니티라 상대적으로 페미니즘 이야기를 나누기 자유로운 분위기다. 현실에서 겪은 성차별적 상황을 털어놓고 서로 위로하며, 서명 운동 링크를 공유하기도 하고, ‘남성을 위한 메이크업에 분노한다. 내가 정말 즐거워서,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화장한다는데 누가 참견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종종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자기표현을 위한 메이크업이라기엔 우리는 너무 똑같은 화장을 하고 있지 않나? , 얼굴을 자주 들여다봐야 하는 메이크업의 특성상 이목구비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정말 세세하다. 눈이나 얼굴 길이 등을 자로 재서 공유하기도 한다. 당연히 외모에 대한 강박적 집착 및 우울함을 호소하는 글도 많이 올라온다. 뷰티 유튜브를 볼 때도 그렇다. 화장으로 다크서클이나 여드름 자국을 가리지 않으면 예의가 없는 것이고, 화장 후 얼굴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며, 어느 정도 화장을 완성하면 빼먹지 않고 이제야 사람 같다고 한다. (여성의 민낯은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난 것인가?) 이제 여성들 사이에서 화장은 자기만족을 위한 행동이라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실제로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 심리적, 물리적으로 제약이 생긴다면 그걸 정말 자기만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엠티 가서 일부러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자는 친구들을 볼 때, 화장을 망친 날은 미묘하게 다운되는 나를 발견할 때 나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과 코덕으로서의 정체성이 충돌하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왜 민낯 공포증에 걸렸을까

    화장을 하지 않고 학교에 왔을 때 예의 없다며 주변에서 핀잔을 주는 친구들, 그 옆에서 모자를 꾹 눌러쓰고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죄스러워하는 민낯의 친구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민낯에 대한 거부감이 공포증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이건 포비아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한 것 같다. 사실 민낯으로 학교, 토익 학원에 간다고 해서 어떤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민낯 공포증을 앓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볼에 여드름이 나서? 안색이 창백해보여서? 이런 이유로는 설명할 수 없다. 문제는 훨씬 크고,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온 것 같다. 우리가 왜 우리의 민낯을 부끄럽다고 여기게 됐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출처: 미미박스)

 

    작년 119, 한 뷰티 소셜커머스 사이트에 올라온 유두 미백 크림 광고가 저급한 내용으로 논란이 되었다. ‘늑대들이 좋아하는 핑크빛 유두, 이렇게 될 수 있다면’, ‘진한 색상 유두 NO’ 따위의 문구를 내걸고 (전혀 궁금하지 않은) 여성 유두에 대한 남성 9명의 의견을 함께 게시한 것이다. 위 광고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해당 사이트는 결국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였다. 사실 이 광고를 처음 접했을 때 화나긴 했지만,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남성의 시선을 부각해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수치스럽게 여기도록 하는 방식은 화장품 업계의 유구한 광고 전략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손톱에 난 세로 결을 없애준다는 손톱 영양제 광고를 본 적이 있다. 3가지 종류로 구성된 해당 제품을 통해 꾸준히 손톱을 관리하면 손톱에 난 세로 결이 없어지고 여성여성한손이 된단다. 광고가 끝난 후 형용할 수 없는 회의감에 사로 잡혔다. 이제 손톱 결에도 신경 써야 하나? 광고를 보기 전까지 난 내 손톱에 세로로 결이 있는지도 몰랐다. 뷰티 업계가 우리의 몸을 토막 내어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와 닿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S라인, T, 헤어 라인, 수분부족형 지성 따위의 단어들은 사실 뷰티 업계에서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이런 단어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멀리서 몸을 보았을 때 몸매의 외곽선이 S모양인지, 얼굴의 중심의 T존이 입체적인지, 헤어 라인이 동그랗고 머리숱이 빽빽한지를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뷰티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고 기존 제품으로 승부하기엔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니, 원래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신체 부위까지 끌고 와 (자사의 제품을 이용해) 자사가 제시하는 정답에 자신을 끼워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시감을 느끼고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미디어의 도움을 받아 이는 곧 미의 기준으로 굳어진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여성들에게 자신의 신체를 부끄럽게 여기도록 종용하여 미의 기준을 전파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뷰티 업계는 항상 새로운 미의 기준을 제시한다. 그들이 지적하기 전까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혹은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별별 신체 부분에 아름다움의 가이드라인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여기에 미디어가 나서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것은 미의 기준으로 확정지어진다. 뷰티 업계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맞는 실제 사람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미디어는 가이드라인 안에 속한 이들에게 무결점, 여신 같은 온갖 찬사를 퍼붓는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평가의 시선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평가자의 위치에 서있는 남성의 시선을 빌려온다.) 혹은 가이드라인에 맞지 않는 사람을 데려와 인위적으로 가이드라인에 맞추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노력, 자기관리 따위의 미사어구로 아름답게 치장한다. (여성들이 말하는 자기관리의 범위가 외모 쪽으로 치중되어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사람들은 이쪽에 더 열렬한 반응을 보인다. 관념상으로만 존재했던 가이드라인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 즉시 자신과 비교하기 시작한다. 연예인 누구누구도 저렇게 노력하는데 나는 뭘까? 사실은 연예인 누구누구니까저렇게 하는 것인데 말이다. 화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뷰티 산업 및 미디어는 (화장 방법은 둘째 치고) 화장하지 않은 상태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라고 강요한다. ‘화장은 예절따위의 말을 동원하거나 화장 하지 않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노출시킨다. ‘민낯 공포증은 여기서 출발한다.

 


(출처: 알바노조, 한국일보)

 

    사회는 이를 착실히 받아들였다. 작년 3, 한 영화관 프랜차이즈에서 여성 직원에게만 더 엄격한 외모 꾸미기 규정(화장, 머리 모양, 의상 등)을 적용해왔던 것이 밝혀졌다. 실제로 해당 규정을 지키지 않을 시 꼬질이딱지(자신의 담당 구역을 청소하지 않거나 유니폼을 더럽게 관리하는 등 위생 관련 규정을 위반했을 때 부여되는 패널티)가 붙고, 벌점이 누적되어 임금 삭감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여성에게만 엄격한 외모 꾸미기 규정을 적용하는 곳은 위의 기업뿐만이 아니다. 작년, 한 글로벌 컨설팅 기업에서 하이힐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성 접수원을 해고했다가 항의 끝에 규정을 완화한 바 있다. 올해 초에는 한 증권사의 여성 직원 복장 규정이 도마 위에 올랐다. 여성 직원들은 사용해야 할 아이섀도우 숫자, 스타킹 색상까지 규정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남성 직원에 대해서는 노타이 정장, 콤비(혼합 정장) 금지 정도만 언급되어 있었다고 한다. 화장이 (인위적인 방법으로) 정말 예절’, 즉 규범이 된 것이다. 이쯤 되면 민낯 공포증을 하나의 방어 기제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

 




(출처: APA/FRANZ NEUMAYR, 한국일보)

 

    메르켈 총리와 스티브 잡스의 사진을 보자. 두 사람 모두 항상 비슷한 복장을 고수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반응은 전혀 다르다. 스티브 잡스의 경우, 옷 고르는 시간마저 아끼는 성실한 CEO의 대표적 사례로 항상 언급될뿐더러 패션 아이콘에 등극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의 경우 패션 테러리스트딱지에, 옷이 한 벌 뿐이냐는 비아냥을 받는 등 부정적 반응 일색이다.

 


A: 남자애들은 왜 화장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보이는 걸까?

B: 왜냐면 사회가 남자애들한테는 화장 안 하면 못 생겼다고 하지 않았거든.

(출처: Feminist Apparel)

 

    취업 포털 커리어에서 여성 직장인 422명을 대상으로 화장하는 이유에 대해 조사한 결과, 62.8%체면(품위) 유지를 이유로 꼽았다고 한다. 62.8%의 여성은 화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화장하지 않아서 예의없다는 잔소리를 들은 남성 직장인을 본 적 있는가? 화장을 못해서 모자를 눌러쓰고 등교하는 남학생을 본 적 있는가? 꾸미지 않을 수 있는 것도 권력이다. 남성들은 꾸미지 않아도 괜찮다. 꾸미지 않아도 생긴 그대로 인정받는다. 이게 권력이 아니면 무엇인가? 여성들에게도 직장에서, 학교에서 이런 권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민낯 공포증의 종말을 원한다.


그래서 뭐, 화장하지 말라고?

    난 정말 화장품을 좋아하고 화장하는 과정이 즐겁다. ‘코덕질은 하나의 취미 생활로써 내 삶의 작은 활력소가 되어준다. 하지만 나의 이런 취향이 형성되기까지 사회적 압박의 영향이 전무했느냐고 묻는다면 확답할 수 없다. 내가 즐기는 화장에 억압적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에게 화장이 정말 선택일 수 있을까? 화장을 통한 자기만족에 외모 경쟁력을 갖췄다는 안도감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화장을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 제도적 차별, 자유도의 부재에 대한 고민 없이 자발적 행동이라고 뭉뚱그려버리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 당장의 여성혐오적 발언(‘화장은 남자보라고 하는 거잖아~’)은 받아칠 수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또 다른 억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억압은 타인, 99%의 확률로 여성에게 적용될 것이다.

 

    화장하지 않는 사람만 자신감 넘치는 진정한 페미니스트고 화장하는 사람은 자신감 없는 반여성주의자라고 매도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는 여성에게 실체 없는 미의 기준을 실현하라 강요하는 여성혐오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화장은 가장 손쉬운 방어법이다. 완전한 자율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여성 개인을 탓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문제는 한쪽 성에게만 화장을 의무화했다는 것, 미디어와 뷰티 산업이 이에 발맞춰 여성을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정말 화장을 좋아해서 즐기는 것과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 위축되고 불이익 받는 것, 나아가 맨 얼굴을 택할 권리가 없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브라, 하이힐 등 여느 뷰티 아이템들이 그러했듯이 자유도의 문제다. 그래서, 코덕 동지로서 같이 고민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누가 화장 코르셋을 조이고 있고, 어떤 화장이 코르셋인지를 따질 것이 아니라 화장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나 억압적 성격을 인정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어떻게 전복해야 할지를 같이 고민해봐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정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기표현으로서의 화장을 위해서 말이다.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필자소개

여태껏 내 손으로 덕질한 것 중에 페미니즘만큼 재밌는 게 있었나? 페미니즘에 강하게 치인 새내기 페미입니다.

브라 태우는 여자들

 암탉


만화 재윤의 삶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굉장히 보수적인 기독교계 여자 고등학교였다. 여름이면 겉보기에 비치지 않는 얌전한브라에 브라를 가려줄 하얀색 민무늬 반팔 티셔츠를 입고 그 위로 또 하복 블라우스를 입어야 했다. 만에 하나 위의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선생님은 젖가슴 내놓고 다니지 말라며 쩌렁쩌렁하게 고함을 지르곤 하셨는데, 너희들이 단정하게다녔으면 하는 마음에 일부러 수치심을 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내 몸엔 가슴이 달렸다. 이는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내 몸에 가슴이 달렸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사회는 여성의 가슴을 금기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나는 가슴을 가려줄 브라를 해야만 했다. 내가 브라를 착용한다는 사실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브라를 했다는 사실이 티 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색깔이 도드라지는 브라를 하면 안 되고 브라를 가려줄 옷을 겹쳐 입어야 한다. 그마저도 브라 끈이 보일 수 있으니 끈 민소매는 금물이다. 브라를 가려줄 옷입고 등교하는 것도 금물이다. 그 위에 학교에서 규정한 하복 블라우스를 입고 단추도 풀면 안 된다. 조오신하지 않으니까. 도대체 뭐 어쩌라는 걸까? 고등학생 암탉이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브라의 시초는 나름 페미니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 여성들은 몸통을 꽉 조이는 코르셋을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성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코르셋에 비유하듯, 코르셋은 여성 신체에 엄청난 위해를 가하고 있었다. 몸통을 비정상적으로 변형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소화에 지장을 줌은 물론이고 호흡 곤란을 유발해 질식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코르셋의 위험성에 대해 많은 의사들이 경고했지만, 이는 보통 촌스러운-패션 센스와 거리가 먼조언으로 받아들여졌고, (오늘날의 브라처럼) 여성에게 필수적인 속옷으로 여겨져 미착용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고 한다. ‘패션의 이름으로 여성의 허리-, 건강을 졸라매던 코르셋이 브라에게 밀리기 시작한 것은 1913년이었다. 당시 미국 사교계를 휘어잡던 유명인사 메리 펠프스 제이콥스는 저녁 파티에 입고 갈 드레스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정말 맘에 드는 드레스인데, 상체가 비쳐 코르셋을 착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드레스를 포기하기 싫었던 메리는 손수건과 끈 몇 가닥을 이어 현대의 브라에 가까운 손수건 브라를 만들어냈다.

 

      

() 현대식 브라의 창시자 메리 펠프스 제이콥스, () 메리가 만든 즉석 손수건 브라

 

당시에도 여성의 신체를 감추기 위해 속옷을 착용해야 하지만, 그 속옷이 드러나면 안 된다는 모순은 그대로였다. 따라서 여성들은 불편한 코르셋을 착용하고, 코르셋을 감춰줄 수 있는 두꺼운 옷만을 착용해야 했다. 메리의 손수건 브라를 본 여성들은 열광했다. 가슴을 가려주면서도 무척 얇아 의복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기 때문이다. ‘패션이라는 매력적인 명목으로 여성들에게 다가간 브라는 삽시간에 코르셋의 자리를 빼앗았다. 여성들은 숨통을 졸라매는 코르셋의 악몽에서 벗어났지만, 상대적으로 덜 가혹해 보이는 브라의 지옥에 빠지게 됐다.

 


미스 아메리카 대회 폐지 시위 현장 (출처: 구글)


    ‘페미니스트하면 화난 여성들이 브라를 태우는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고정 관념의 시초는 1968년 행해진 미스 아메리카 반대 시위이다. 급진 페미니즘이 부흥하면서 브라, 하이힐 등 여성을 향한 물리적 구속을 거부하는 이들이 늘어나던 시기였다. 여성의 몸을 성 상품화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남성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미스 아메리카 대회에 분노한 페미니스트들이 미스 아메리카 대회장 앞에 모였다. 그들은 준비해온 구호를 외치며 미스 아메리카 대회를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Freedom Trash Can’에 브라, 하이힐 등을 내다 버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짜로 브라를 태우지는 않았다. 경찰의 진압으로 시위가 생각보다 빨리 해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 브라 태우기 퍼포먼스(미수)’가 페미니즘 운동을 대표하는 하나의 아이콘처럼 자리 잡은 걸까? 이건 공포감에 가깝다. 브라를 태우는 것 곧, 노브라 상태가 얼마나 무서우면 하나같이 공통된 진술을 읊는 걸까? “그 미친 여자들이 브라를 태우면서 (안 태웠다니까) 난동을 부렸어···.”라고 말이다.

 


    2015년 여름, 인스타그램 측에서 여성의 유두가 부적절하다는 규정을 내세워 여성의 가슴 사진만 대거 검열·삭제한 일이 있었다. 인스타그램 유저들은 이에 유쾌하게(?) 대응했다. #this is a male nipple 운동이 그것이다.

 

인스타그램, 세상을 안전하게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세상은 무시무시한 여성의 젖꼭지로부터 자유로워졌어요!

 

여성의 가슴에 남성의 젖꼭지만 합성한 사진

 

인스타그램 유저들은 #this is a male nipple 태그를 걸고 젖꼭지만 잘라 놓은 사진에 이것은 남성의 젖꼭지입니다.’라고 적어 놓거나, 브라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의 몸에 남성의 젖꼭지사진만 합성하는 등 인스타그램의 여성혐오적 규정을 비꼬는 사진들을 업로드했다. 놀랍게도 이러한 사진들은 모두 인스타그램의 검열을 피할 수 있었다. 여성의 가슴과 남성의 가슴 차이 몰까...? 남성의 젖꼭지라는 사족이 달리면 사진의 유해함이 증발하기라도 하는 걸까?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이건 공포감에 가깝다고.

 


    인스타그램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노브라 포비아들의 바람이 무색하게 요 몇 년 사이 한국에도 노브라 담화가 대두되고 있다. 언급하기도 식상하지만, 노브라 담화의 확산에 힘을 보탠 주역이 설리의 인스타그램 사진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작년 4, 설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노브라 차림의 사진을 업로드했다. 설리의 브라 착용 여부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댓글들이 (무려 9000여개 가량!) 이어졌다. 긍정적인 점은 이 일을 통해 노브라담화가 수면 위로 끌어올려 졌다는 것이다. ‘미친 꼴페미의 상징이었던 노브라 담화가 설리라는 유명 연예인 이슈의 탈을 쓰고 활발하게 소비되기 시작했다.

 

좀 더 편안한 형태의 브라, 브라렛. 정말 편할까? (출처: 구글)

 

노브라에 대한 관심이 좀 더 편한 브라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브라렛이 급부상한 것이다. 지난 회차에서도 말했지만 브라 선택의 완전한자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설리의 인스타그램에 달린 댓글들처럼 쏟아지는 시선과 오지랖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브라의 부담감은 줄여주면서도 훨씬 편안한 브라렛은 훌륭한 대안이다. 많은 브랜드에서 브라렛을 내놓고 있고 내 주변에도 브라렛 전도사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브라렛의 유행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찝찝한 것도 사실이다. 포털 사이트에 브라렛을 검색해보자. 편안한 착용감을 내세워 마케팅하고 있지만,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디자인의 브라렛이 대다수이다. 실제로 쇼핑몰을 둘러보면 까슬까슬한 레이스 탓에 피부가 간지럽다거나, ‘레이스가 힘이 없어서 오히려 더 불편하다는 댓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편안함을 위해 선택한 브라렛 마저 불편하더라도 남들이 보기에 예쁜디자인을 취하게 된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과거 브라가 패션의 이름으로 여성들에게 다가갔다면, 이젠 편안함이라는 좀 더 교묘해진 방법으로 여성들에게 다가가는 건 아닐까? 더는 엮이고 싶지 않은 덜 가혹해 보이는구속의 연속은 아닐까? 난 좀 더 근본적인 대안을 원한다.

 


    이쯤에서 2014년 개봉한 ‘Free the Nipple’(한국 개봉명 가슴 노출을 허하라)이라는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 여성의 신체에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검열법에 항의하고자 노브라 시위를 진행한 활동가들의 이야기이다. 영화 중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전쟁과 여성의 가슴 중 무엇이 더 음란한가?”

 

미디어는 폭력, 살인, 전쟁 등의 비윤리적 행위는 아무 거리낌 없이 내보내면서, 여성의 신체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 그들, 곧 남성의 기준에 맞는 여성의 신체는 환영받고 선별적으로 노출되며 나아가 신격화된다. 하지만 여성이 주체적으로 내보이는 신체는 검열의 대상이 된다. 사회가 여성의 가슴을 신체가 아닌 성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감추라고 강요당한다. 폭력과 가슴 중 무엇이 더 음란한가? 음란한 것은 여성의 가슴을 음란하다고 낙인찍은 시선 아닌가? 성적 대상인 가슴이 아니라 우리 몸인 가슴을 되찾기 위해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필자소개

여태껏 내 손으로 덕질한 것 중에 페미니즘만큼 재밌는 게 있었나? 페미니즘에 강하게 치인 새내기 페미입니다.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 외롭지 않은 덕질 ; 페미바순허브와의 인터뷰

By.광개토女



via.구글


 슬프게도, 페미니스트는 외롭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모두 웃을 때 홀로 웃지 못하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비유에 홀로 의문을 갖는다. 주변 사람들은 둔해지라고 말한다. 어떻게 둔해질 수 있단 말인가? 페미니즘을 안 이상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페미니스트인 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여성혐오가 숨 쉬듯 벌어지는 한국사회에서(지구에서?) 페미니스트는 다수일 때보다 소수일 때가 더 많고, 자주 혼자됨을 경험한다. 국립국어원은 외롭다라는 형용사를 홀로 되거나 의지할 곳 없이 쓸쓸하다고 설명했다. 국립국어원이 페미니스트에 대해 내린 정의인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보다 외롭다의 정의가 더 정확하게 페미니스트를 설명하는 것 같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에게 연대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거창한 목적과 행동의식을 가지고 모이지 않더라도, 홀로 싸우고 있는 게 아니란 걸 확인하면 개인은 더 강해진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거야라는 슬로건은 이런 페미니스트의 상황을 잘 말한다. 페미니스트는 모여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165월 등장한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을 시작으로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내 아이돌의 여성혐오 여부가 뜨거운 감자였다. 팬덤 내 젠더 감수성 상승은 콘텐츠의 변화로 이어졌다. 마마무의 소속사는 논란됐던 뮤비 데칼코마니를 유튜브 계정에서 내렸고, 빅스 라비는 자신의 솔로 앨범 타이틀 곡 뮤비 ‘BOMB’에 대해 사과했다



마마무의 소속사 RBW는 타이틀곡 '데칼코마니' 뮤비 속 데이트폭력 장면을 삭제하고 재업로드했다.

via.마마무

페미니스트들을 공격하던 팬들이 자기 아이돌의 책장에 맨박스가 꽂혀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빠지다가도, 팬덤 전반이 페미니즘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는 건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현 시점에서 아이돌 팬은 문화예술 소비자들 중 가장 활발히 페미니즘을 논의하고 있다. 지금도 페미니스트 팬들은 아이돌에게 페미니즘 서적을 서포트 하기 위해 모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공론화 과정에서 벌어진 페미니스트 팬을 향한 사이버불링과 오프라인 린치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알계와의 분투 속에서 홀연히 등장한 한 트위터 계정은 홀로 외롭게 싸우던 페미니스트 팬들에게 안정을 주었다. 저기에 가면 우리가 된다는 희망, ‘-한 페미-바순들의 안식처를 자칭하는 페미바순허브의 등장이었다.



페미바순허브 로고

via.페미바순허브


 ‘페미바순허브는 페미니스트 팬들이 정치 세력화할 온라인 기반을 제공함은 물론, 페미니스트 팬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었던 페미바순파티와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에서 가진 전국페미바순대집회까지 오프라인에서의 활동도 이어 나가고 있다. ‘페미바순허브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궁금하다. 과연 페미바순허브에서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수 있을까?

 



Q.‘페미바순허브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페미바순허브는 페미니스트 팬들을 연결하고 의견을 나누는 허브다. 페미니스트 팬들이 좋아하는 그룹/개인(아이돌, 배우, 모델 등)DM(direct message)으로 보내면 해당 그룹/개인 리스트에 등록한다. 리스트를 통해 페미니스트 팬들은 서로 친목을 도모할 수 있고, 좋아하는 장르의 여성혐오적 발언이나 그러한 콘텐츠를 지적·연대할 수 있다. ‘바순이 원하면 언제든지 새로운 리스트를 작성하며, 리스트에 등록하지 않아도 누구나 열람해 페미니스트인 팬들과 친해질 수 있다.

그밖에 새로운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이 생기거나 페미니스트 팬에 대한 사이버불링 등의 사건이 생기면 쉽게 연대할 수 있도록 리트윗을 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페바헙 파티’,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에서 주최한 페밋-테이블참가 등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허브가 실체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여러 활동을 기획, 진행 중에 있다.

 


Q.‘페미바순허브계정은 언제, 어떻게, 어떤 이유로 만들게 되었는가?

20164월부터 남자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여성혐오적 콘텐츠(가사, 공식 트위터 멘션)에 대한 피드백을 요구하는 운동을 했다. 167월 경,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로부터 여성혐오 콘텐츠를 지양하겠다는 내용의 공지를 공식적으로 받았다. 문제되는 트위터 멘션은 삭제하지 않은 점, 여전히 문제가 되었던 노래가사를 수정하지 않고 부른다는 점, 피드백을 동아일보에서 기사화한 이후 팬클럽에만 올렸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긍정적인 피드백이었다.



via.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란화 계정


1610, 방탄소년단의 컴백 트랙리스트가 공개되었고 ‘21세기소녀라는 제목의 노래를 확인했다. 제목을 보고 여성혐오적이라고 생각했다. 소녀를 대상화하고 있는 제목이라고 느꼈다. 이에 대해 개인 트위터 계정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아직 가사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너무 섣부른 것 아니냐, 왜 소녀가 여혐이냐, 팬 맞냐, 탈덕해라등등 욕설 섞인 다수의 멘션이었다. 그들과 일일이 싸우던 와중 나와 뜻을 같이하는 아이돌 팬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리트윗과 디엠으로 응원을 해주고 의견을 내는 등 같이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과 맞팔을 하고 트친소(트위터 친구 소개)를 대대적으로 했다. 서로 연결해주는 일만 세 시간 정도 하다 보니 아예 아이돌 팬 페미니스트 트친소 계정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은 아이돌 팬 트친소가 목적인 계정이었지만 배우, 모델 등 다양한 장르로 확장했고, 운영진을 추가 모집한 현재는 활동 영역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Q.‘페미바순허브계정을 운영하면서 겪은 사건들 중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최근에 페미바순허브의 이름에 들어가는 '바순'에 대한 논의가 의미 있었다. 페미'바순'허브 라는 이름으로 계정을 운영하면서 빠순이가 팬덤 외부에서는 멸칭으로 쓰이지 않느냐, 모든 젠더를 포괄하지 못하는 말이 아니냐라는 의견들이 나왔고 이에 대해 팔로워들(혹은 이 논의를 우연히 접한 사람들)과 페바헙을 태그하여 의견을 보내는 형식으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페미바순허브'에서 '바순'이란 용어를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여러 의견(위)과

'페미바순허브' 운영진의 입장(아래).

via.페미바순허브


운영진들은 팬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빠순'이라 호명하고 긍정적으로 전유함으로써 단어가 가진 비하를 전복할 수 있고, 여성형 단어인 '빠순'이 성별 상관없는 단어로 확장되는 데에도 의의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 의견에 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빠돌이'''가 바로 여성형 단어에서 젠더 상관없는 단어로 확장된 전례라며 충분히 '빠순' 또한 확장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논의에 참여하지 않은 분들도 페바헙이 던진 논의 주제를 통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논의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페미바순허브가 가진 공론장으로서의 가능성을 보기도 했다. 페미바순허브가 단순히 페미니스트인 팬들을 묶는 역할 뿐 아니라 공론을 열어줄 수도 있고 이들의 목소리를 퍼지게 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역할 가능성을 보았다.

 


Q.‘페미바순허브계정을 운영하면서 많은 애로사항을 겪었을 듯하다. 운영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자금 문제가 크다. 무슨 행사를 하던 돈이 든다. 온라인에서 리트윗 이벤트를 하려고 해도 돈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 자금을 운영진이 부담하는 건 모순인 것 같다. 수익성이 있으면서 의미 있는 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콘텐츠는 무엇인지, 또 돈이 들지 않으면서 진행할 수 있는 이벤트는 무엇인지 계속해서 논의하고 있다.

또 개인들을 모아 놓은 허브이니만큼 페미니스트끼리도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은데 이걸 페미바순허브에서 어떤 식으로 조율하고 담론을 이끌어낼지, 또 트위터가 그런 일에 맞는 매체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페미바순파티 PPT 이미지

via.페미바순허브



Q.‘페미바순파티라는 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해 개최한 것으로 알고 있다. ‘페미바순파티를 개최한 이유는 무엇인가?

공론화 계정들이 하나 둘씩 목소리를 잃어 가고, 지속되는 사이버불링으로 인해 페미니스트 팬들이 위축되어 갈 때 파티를 하자고 생각했다. 단순히 온라인으로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우리가 연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서로 외롭게 싸워오던 분들이 많아서 다 같이 더 친해지고 그동안의 괴로움을 풀 기회를 만들기 위해 행사를 기획했다. 무엇보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았다.

 


Q.행사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행사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어땠는가?

페미니스트 빠순들만이 할 수 있는 게임이나 이벤트를 생각했다. 도착하는 순서대로 준비된 아이돌 이름표를 랜덤으로 뽑아 닉네임을 정했고, 조를 짜서 각 조마다 한명씩 나와 그 사람의 본진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맞추기 놀이를 했다. 그 다음은 한명씩 아이돌 춤을 추어서 해당 노래를 맞추기를 했다. ‘아이돌 혐오발언 어워즈는 행사의 백미였다



페미바순파티에서 개최한 '아이돌 혐오발언 어워즈' 각각 노래, 방송, 팬사랑 부문 후보에 올랐던 그룹과 혐오발언들.

이외에도 다양한 그룹들과 다양한(?) 혐오발언들이 후보에 올랐다. 

via.페미바순허브

방송, 노래, 팬 사랑 부문으로 나누어서 각 분야 혐오왕을 뽑았다. 참고로 1회 수상자는 인피니트이다. 생각보다 다들 긍정적인 평가를 주셨다.


 

Q.행사를 진행하면서 느낀 어려움이 있다면?

참가자를 신청 받는 과정에서 사이버불링 위협이 있었다. 파티 신청을 처음 받을 때 참가 희망자의 계정을 폼으로 신청 받고, 희망자에 한해 프로텍트 계정으로 초대해 다시 신청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 했음에도 불구하고 참가 희망 의사를 밝히신 분의 Ask(익명질문)계정에 오프에서 보자는 내용의 사이버불링 협박이 있었다


via.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사이버불링' 항목


당시 린지님 등 사이버불링에 대한 불안이 극에 달해 있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행사를 중단할지 고민이 많았다.[각주:1] 실제로도 파티 시작 전까지 참가자가 페미니스트인지확인하는 방식에 대해서 골머리를 앓았다. 한번 중단할 뻔한 뒤로 급하게 준비한 파티였기 때문에 예산 책정 부분이나 계획 부분이나 구멍이 좀 있었다. 다음 파티 때에는 조금 더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으면 한다.

 


Q.‘페미바순허브계정 운영진이 바라는 페미니스트-바순이 문화는?

아이돌 산업 내 여성혐오 이슈가 대두된 지는 꽤 시간이 지났고, 페바헙 팔로워가 2000명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도 늘었다. 다만 아직도 많은 바순들이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여성혐오에는 귀를 막아버리거나 이런 저런 핑계를 붙여가며 합리화 하는 등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면 싫어하는 아이돌이 여성혐오를 드러내면 눈에 불을 켜고 비판을 하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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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빠순판'의 내부자로 있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 이런 '선택적 페미니즘'을 하는 바순들을 볼 때이다. 나는 이 현상이 바순들이 본인과 가수를 동일시하고,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여성혐오로 비판받으면 마치 자기가 욕을 먹은 것처럼 가슴아파하고 상처받는다. 이 때문에 팬덤 내 사이버불링이 일어나기도 한다.

많이 걸어왔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이돌 팬들도 트위터라는 매체 속에서 여성혐오 이슈를 접하고 페미니즘을 배워가고 있다. 하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돌은 비판하지 못하는 선택적 페미니즘을 한다면 페미빠순들의 목소리는 억압받을 수밖에 없다. 팬들이 본인과 가수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좀 더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판단하여 페미빠순들의 목소리를 크게 해줬으면 좋겠다.

페미바순허브 트위터 계정의 헤더 이미지

via.페미바순허브



Q.‘페미바순허브계정의 앞으로의 운영 계획은?

그동안 페바헙은 조용히 페미빠순들을 연결해주고 연대하기만 하는 계정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초반과 다르게 굉장히 많은 페미빠순들이 페바헙을 팔로하고 페미빠순 리스트에 등록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필요성을 느낀다. '전국디바협회'가 다양한 온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여성 페미니스트 게이머를 가시화한 것처럼 많은 페미빠순들이 모여 있는 허브에서도 페미니스트 팬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페스티벌인 페밋이 주관한 토크테이블 페밋-테이블에 참여한 것도 이런 생각의 일환이었다. 페밋-테이블 참여를 기점으로 기사를 기고하거나 페미바순파티2, 아이돌 팬 페미 스터디 등 여러 온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해 페미빠순을 가시화하고 고여 있는 물을 순환시키고 싶다.



※페미바순허브에서 제공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페미바순허브에 있습니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NCT와 아이유입니다.  

 

  1. 샤이니 팬덤 내에서 혐오에 대해 지적한 팬(린지님)들을 사이버불링한 사건. ※참고 : 5.팬덤이 허락한 페미니즘 ;진정한 페미니스트를 찾아서 http://weolganyeogi.tistory.com/44 [본문으로]

남자들은 왜 장문복을 좋아할까?

By.광개토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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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스 101시즌2가 시작됐다. 인기리에 마무리된 지난 시즌의 아성을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되는 와중, 프로그램을 둘러싼 남성 시청자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바로 출연자 장문복에 대한 열광이다.

장문복은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슈퍼스타k2에서 예선 탈락한 수많은 화제인물 중 한 명인 것. 그는 특이한 발성과 스킬로 랩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면서 힙통령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이후 머리를 길게 기른 그는 프로듀스 101시즌2의 연습생 중 한 명으로 돌아왔다.

이상하게도 그를 둘러싼 남초 커뮤니티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형이 밀어 줄 테니 열심히 하라는 댓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장문복에게 감동했다라고 말하는데, 여기에 화답하듯 엠넷 제작진은 장문복이 방송 이후 악플에 힘들어했단 요지의 내용을 내보내기도 했다





장문복의 <프로듀스 101> 1분 PR영상 아래에 달린 댓글 작성자 분석

다른 참가자들의 PR영상에는 여성 작성자가 80에서 90퍼센트의 비율을 차지하는 것과 비교된다.

via.네이버tv <프로듀스 101> 



애초에 힙통령을 메이킹한 사람들이 엠넷 제작진임을 생각해보면 이런 포장은 괴상하기만 한데, 이런 제작진을 생각해보면 현재 장문복을 응원한다는 남자들이 장문복의 힙통령 영상을 비웃음거리로 삼는 데 가장 앞장섰을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영 현실성 없지는 않은 듯하다. 그랬던 그들이 지금은 왜 장문복을 응원하게 되었을까?

 

 


프로듀스 101이란 프로그램의 흥행을 설명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극도의 경쟁 사회인 한국, 외모 자본주의 등 신자유주의를 중심으로 여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을 읽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독법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의 참가자들을 심사위원의 심사 결과를 포함해 평가하는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프로듀스 101은 이미 한 번 소속사 오디션을 통해 걸러진 101명의 연습생들이 참여하고 시청자들의 호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다. 이런 상상력이 가능하게 한 원동력 중 하나로 룸살롱 문화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via.<프로듀스 101> 시즌1 1화



프로듀스 101시즌1의 오프닝에서 제작진은 여성으로 보이는 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일렬로 서 있는 그림을 제시한다. 그림 속 사람들은 서로 각양각색의 머리 모양, 의상을 입고 있다. 제작진은 이 중 11명만 남기고 가위로 자른다. 101명의 출연진과 11명의 데뷔확정 멤버를 설명하기 위한 이 그림은, 줄지어 선 여성들 중 마음에 드는 여성을 고르는 룸살롱의 초이스 문화를 떠오르게 한다. 당시 엠넷 국장이자 담당 PD였던 한동철 PD남자들을 위한 건전한 야동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는 발언을 참고한다면 제작진의 상상력에 룸살롱 문화가 개입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프로듀스 101시즌1은 현재 방송에서 보기 드문 경쟁하는 어린 여성을 읽을 수 있는 텍스트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시청자로 하여금 101명의 젊고(혹은 어리고) 예쁜 소녀들 중 내 입맛에 맞는 11명을 매일 골라 투표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기도 했다. 극도의 대상화 경험, 내가 선택해줘야 상대가 보상(데뷔)을 얻는 권력을 가지는 경험은 여성혐오 사회에서 남성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누리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프로듀스 101시즌1은 이런 즐거움을 판매했다는 혐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via.구글



프로듀스 101의 남성판, 즉 시즌2의 출범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런 즐거움을 여성 고객에게 판매하겠다는 제작진의 포고처럼 느껴진다. 다시 말해 남성이 즐겨온 룸살롱문화의 미러링 버전이 시작된다고 느낄 수 있다. 기존 남성 아이돌과 여성 팬덤으로 대표되던 아이돌 팬덤 문화에 대한 사회의 노골적인 폄하와 비웃음은 감히 여성 팬이 남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다는 괘씸함에서 온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프듀 시즌2는 아주 노골적으로 나온다. 101명의 남성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마음껏 11명을 골라보라는 포맷은 누군가에게는 인간의 지독한 물화에 반감을 주지만, 누군가에게는 성별 반전이 되었다는 사실, 여성이 남성을 대상화한다는 사실 자체에 반감을 준다. 남성 아이돌 팬덤에서 여성 팬이 남성 다수를 선택하고 그들이 데뷔할 수 있도록 권력을 부여해온 일은 종종 있었지만 남성들이 그것을 투명하게 관람해올 기회는 처음인 것이다.

 


via.구글



장문복은 아이돌로서의 재능이 있을까? 장문복의 기획사 오앤오는 타이미, 아웃사이더 등 랩퍼를 컨설팅하던 매니지먼트사다. 오앤오 엔터테인먼트의 첫 아이돌 기획이 장문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지금까지 방송에서 보여준 태도는 아이돌 지망생이라기보다 랩퍼에 가깝다. 다른 연습생들이 PR영상에서 국민 프로듀서들을 향해 애교 혹은 남성적(..) 매력 어필, 뽑아달라는 애원에 가까운 처절한 몸짓을 보여주는 것에 비해 그는 인터넷에서 조롱거리가 되었던 어린 시절의 슬픔과 앞으로의 성공을 다짐하는 내용의 랩을 선보였다. 쇼미더머니가 아님에도 그는 랩을 잘 한다라거나 멋있다며 응원 받는다. 시즌1의 김소혜가 본래 연기자 데뷔를 준비했던 탓에 아이돌로서는 전혀 준비되지 않았음을 들며 다른 참가자의 소중한 기회를 빼앗는다고 비판받았던 일과 비교된다.



장문복에 대한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의 반응

via.구글



장문복의 아이돌로서의 무재능은 축복이고 캐릭터다. 남자들은 그가 여성을 즐겁게 해줄 수 없을 것 같기에 응원하고, 계속해서 그가 불쌍하다며 소환한다. 장문복이 인터넷에서 조롱받았던 과거를 보상받기 위해서 아이돌로 성공해야한다는 주장은 그에 대한 모욕이다. 과거의 고통을 여성 팬이 보상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 장문복에게 보상해야한다면 충분한 설명 없이 그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던 슈퍼스타k2의 제작진이고, 그에게 악성 댓글을 남겼던 사람들이다. 남자들은 정말로 장문복을 좋아하는가? 그저 성공한 찌질이 신화에 자신을 대입하기 위해서, 혹은 여성이 남성을 대상화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 장문복을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점은 장문복을 둘러싼 크고 작은 소모전을 제작진이 시청률을 위해 기꺼이 이용하고 있다는 혐의다.


 

 

via.<프로듀스 101> 시즌2 1화



앞서도 짚었지만 프로듀스 101시즌 1남성을 위한 건전한 야동을 목표로 만든 콘텐츠다. 시즌2는 어떨까? 메인MC이자 국민 프로듀서 대표를 맡은 보아는 대단한 경력을 가진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다. 노련한 눈썰미까지 겸비한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참가자 한 명 한 명을 검토한다. 그런 보아를 향한 참가자들의 시선은 장문복의 그렇게 예쁜 얼굴로 독설을 하신다는 말로 요약된다. 연습생들에게는 절대적인 갑이자 까마득한 실력자인 대표 프로듀서마저도 여성이라는 기호 앞에서 대상화된다. 연습생들을 가르치는 트레이너도 여성일 경우 헤어스타일에 따라 아기 같다는 말로 평가당하고, 엄하게 혼을 내도 예쁘다, 사귀고 싶다는 말을 제자인 연습생들에게 듣는다. 제작진이 프로그램 잠정 시청자의 성별을 무엇으로 상정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프로듀스 101시즌2를 통해 데뷔할 남자 아이돌 그룹의 주 타겟층이 여성인지 아리송하다.



via.구글



프로듀스 101시즌2가 우리에게 남길 의의는 아직 분명치 않지만 참가자 박성우가 군필이라는 사실에 열광하거나, 상품으로 군 면제를 걸면 잘 될 것이라 훈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을 누리는 콘텐츠가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 역시 확실해 보인다. 과연 프로듀스 101시즌2여성을 위한 건전한 야동이 될 수 있을까?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NCT와 아이유입니다.  

본문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고백할 것이 하나 있다. 필자는 게임 문외한, 일명 겜알못이다. 오버워치를 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왜 하필 게임 컨텐츠를 맡았냐 하면 궁금한 게 있었기 때문이다. 오버워치가 왜 페미니즘의 아이콘처럼 자리 잡았는지 말이다.

 

 

2016년 한 해가 페미니즘 이슈로 뜨거웠듯, 오버워치를 중심으로 게임계에도 많은 페미니즘 이슈들이 대두되었다. 시간순으로 정리해보자. 일단 20165, 오버워치가 출시됐다. 이례적인 수준의 다양성을 가진 캐릭터들, 특히 한국 출신 프로게이머라는 설정의 D.Va가 큰 주목을 받았다.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618, 인벤 주관 넥서스 컵 8강전 오버워치 팀 아티즌과 디지니스의 경기가 있었다. 경기가 끝난 후 팀 디지니스 측은 팀 아티즌의 게구리선수에게 핵 사용 의혹을 제기했다. 게구리 선수가 여성임을 의식한 명백히 여성혐오적인 의혹 제기였다.[각주:1] 게구리 선수는 개인 플레이 화면을 공개하여 핵 의혹을 벗었지만, 상황을 지켜보던 여성 게이머들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던 여성 게이머들의 분노가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집단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11, 미래의 D.Va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조직된 페미니스트 게이머 모임 전국디바협회’(이하 전디협)가 그 시초였다고 본다. 전디협은 223, 오버워치의 메인 디렉터 제프 카플란의 찬사를 받기도 한다.

 

사실 오버워치도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많은 비판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캐릭터 설정의 경우, 타 게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뛰어난 것이지 절대적으로 훌륭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남성 캐릭터의 경우 왜소증 캐릭터도 있고(토르비욘), 뒤뚱대며 걸어야 할 정도로 과체중인 캐릭터도 있고(로드호그), 심지어 고릴라인 캐릭터(윈스턴)도 있다. 반면 여성 캐릭터들은 어떠한가? 아나는 프로필상 60세지만 주름을 제외하면 20대의 얼굴에 가깝다. 메이는 여성에게 비만이라는 특징을 부여한 전무후무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매우 훌륭하지만, 비현실적으로 잘록한 허리에 갸름한 얼굴형을 갖고 있다. 쫄쫄이의 저주에 걸린 트레이서, D.Va, 위도우 메이커는 말할 것도 없다. (모든 게임이 그렇겠지만) ‘일부 남성유저들의 성차별적 태도도 심각하다. ‘송희롱을 아는가? D.Va (송하나) 캐릭터를 일부러 늦게 죽여 리스폰을 꼬는 게임 방식을 말한다. 성희롱이라는 단어에 송하나의 성씨인 송을 붙여 송희롱이라고 부른다. ‘일부 남성유저들은 D.Va의 쓰러진 모습을 두고 강간을 암시하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유머로 소비하고 있다. 오버워치 내 성차별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이런 분위기에 저항하기 위해 유저들이 끊임없이 제재를 요구해왔지만, 제작진의 우유부단한 태도 탓에 별 소득은 없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지지 않나? 왜 오버워치가 여러 페미니즘 담론들 사이에서 한 자리 차지하는 묵직한 존재감을 갖게 됐을까? 왜 오버워치를 중심으로 여성 게이머들의 가시화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걸까? 왜 오버워치를 중심으로 여성 게이머들의 분노가 집단화되었을까? 페미니스트들은 왜 오버워치를 할까?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 게임할까? 대학생 여자들은 어떻게 게임하고 있을까? 그래서 모셨다. 여자 대학생 페미니스트 게이머들과 얘기해보자. 게임, 여성, 그리고 오버워치에 대해.


제7차 여대회담:

안녕 친구들? 옵치하는 여대생이 왔어!

회담 진행: 암탉

 

1.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감나무 : 전디협 회장 감나무다. 어른들이 넌 뭐 하고 있니하시면 취준생이라고 둘러대며 여러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중이다. 주변 친구들이 다 게임을 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게임을) 시작하게 됐다. 마비노기 처음 나왔을 때쯤, 게임계의 얼리어답터 같은 친구가 권해 마비노기를 시작으로 새 게임이 나오면 친구들과 하나하나 장르를 갈아타면서 계속 해왔다. 작년부터 스팀 게임에 입문했고 요즘은 시간이 없어서 폰 게임으로 욕구를 채우고 있다.

 

겜송이 : 숙명여대 교육학부에 다니고 있는 겜송이다. 유치원생 때부터 꾸준히 게임을 좋아해 왔다.

 

리리 : 단국대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어릴 땐 오프라인 게임을 했고 바람의 나라로 시작해 꾸준히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있다.

 

2. 게임 내에서 여성임을 밝히는 편인가?

 

감나무 : 절대 밝히지 않는다. 밝히지 않는다기보다 일부러 여자라고 먼저 말하지 않는 편이다. 게임을 하다가 여성으로 추정되면 그래서 어쩔 건데?’ 식으로 나가긴 하는데, 자진해서 여성임을 밝히지는 않는다. 일부러 닉네임도 남성스럽거나 무성적인 것으로 바꾸는 마당에 여성이라고 먼저 밝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겜송이 : 나는 말만 해도 다 여자인 걸 알더라. 그래서 욕을 먹으면 고소하기 쉽게 하려고 아예 실명과 학교를 닉네임에 밝히고 시작한다.

 

리리 : (여자라서 당하는 성희롱과 폭력적 언행이) 너무 괴로워서 아예 남자처럼 하고 다닌 적도 있다. 사이퍼즈를 할 때는 나를 남자로 아는 사람도 있었다. 오버워치에서는 보이스톡을 켜면 바로 아니까 혼자 게임할 때는 보이스톡을 잘 켜지 않는다. 이 회담을 위해 3일 정도 오버워치 하면서 보이스톡을 켜봤는데 게임에서 나갈 때 맥락 없이 메갈년소리를 들었다.

 


게임 내에서 여성임이 밝혀지면 듣게 되는 말들. 여성 게이머들에겐 이미 일상이 된 듯하다.

제발 게임 좀 하게 내버려 둬!

 

3. 대학 내에서 게임하는 여자임을 밝히는 편인가? 동기나 선후배의 반응은 어떠했나?

 

감나무: 주변에 친한 남자가 없어서 남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 친구들 같은 경우 감나무는 게임 좋아하잖아’, ‘너 게임하고 있었어?’, ‘게임 재미있게 해하고 넘어갔다.

 

겜송이: 게임 동아리 소속이라 주위에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게임한다고 하면 다들 무슨 게임하냐?’ 이런 반응이다. 동기나 선후배한테 말한 적은 없는데, 교수님께 동아리 지도 교수를 부탁드렸을 때, ‘무슨 여대생이 게임을 하냐는 반응을 보이셨다.

 

암탉: 어떤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계신지?

 

겜송이: E 스포츠 동아리로 롤, 하스스톤, 오버워치 세 게임을 중점으로 두고 여성 대회 혹은 기타 교류전을 진행하고 싶어서 만든 동아리이다.

 

암탉: 동아리 창설 계기가 궁금하다.

 

겜송이: 20153월쯤, 에브리타임이라는 학교 커뮤니티에서 우리 학교 게임하는 여자들끼리 뭉치면 좋겠다는 말이 나와서 구심점을 만들고자 창설하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동아리 운영이 쉽지는 않다. 대회에 나가자고 하면 남자들한테 질 텐데, 웃음거리가 되는 거 아닌가?’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더라.

 

리리: 나는 게임하는 여자임을 말하고 다녔는데, 신기하다는 듯이 보는 시선은 있었다. 여자애들은 관심이 없으니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남자애들은 랭크를 물어보곤 했다. 왜 물어보는지 알 것 같았다.

 

암탉: 여자 동기들은 게임에 관심이 없나? 접근도가 낮은 것인가?

 

리리: 동아리 내에는 게임하는 여자애들이 조금 있었는데, 파이널 판타지, MMO, AOS 장르를 주로 하고 FPS 장르는 잘 하지 않았다. 그래서 FPS 게임 한다고 하면 신기하게 보는 시선이 있었다.

 

3-1. 함께 게임을 한 적이 있는지?

 

감나무: 여중, 여고를 나왔는데 같이 지내던 친구들이 다 게임을 좋아해서 그 친구들과 지금까지 같이 게임하고 있다. 동기를 끌어들이려고 했었는데 나 그런 거 잘 못 한다고 지레 겁먹는 경우가 많아 설득하기 어려웠다.

 

겜송이: 게임 동아리에서 함께 게임을 하는데, 롤을 할 때 클랜으로 동아리, 학교명을 닉네임 옆에 달고 한다. 닉네임 옆에 숙명여대라고 뜨니까, ‘거기 보지팟이냐?’, ‘남자애들이 다 올려줬지?’, ’미팅할래?’, ‘나랑 소개팅할래?’, ‘전화번호 알려줄래?’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래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클랜을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리리: 주위 여자애들이 게임을 잘 안 해서 남자애들이랑 어쩔 수 없이 게임을 같이 했었다. 여자라고 시비 걸리면 당시에는 같이 욕을 해준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여성 유저를 보면 내가 들었던 성희롱 발언, 비하 발언을 똑같이 하더라.

 

3-2. 동기 및 선후배들과 게임 세계에서 벌어지는 여성주의 이슈에 대해 이야기해 본 경험이 있는가?

 

감나무: 마비노기를 할 때, 남자 유저가 껄떡대곤 했는데 그때는 페미니즘에 결부시켜서 생각하지 못했다. ‘저 사람 이상한 사람이다. 왜 그러지?’ 하면서 넘겨왔다.

 

암탉: 그런 경험들이 파편적으로 벌어지던 것인가?

 

감나무: 그렇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일을 겪는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냥 이상한 사람한테 걸렸다고 생각했다.

 

겜송이: 불편하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게임 동아리 내에서는 이런 얘기를 잘 하지 않지만, 오버워치 여성 클랜에서는 대화의 98%가 게임 속 성차별적 발언, 성희롱 발언에 관해 토로하는 것이다. (넥슨) 보이콧 사건에 관해서도 얘기했었다. 클랜 가입 동기를 보면, 대부분 남자들한테 지쳐서 들어왔다고 한다. 남자들이랑 게임하면 여왕벌이라는 소리를 듣고, 혼자 게임하면 남자들한테 성희롱, 비하발언을 들으니까 다들 지쳐있다. 클랜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암탉: 그런 피해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긴 하는데, 그걸 여성주의로 연결시키지는 않는 분위기인가? ‘페미니즘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 분위기인가?

 

겜송이: 페미니스트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다. 그분들이 성차별적 발언을 들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이야기해주신다. 알려주신 대로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막상 욕을 먹으면 울 것 같고 떨려서 대처를 잘 못 하겠더라.

 

리리: 학교 애들이랑 만든 단톡방에서 게임 얘기가 많이 나온다. 항상 여성주의 이슈는 일명 메갈 사건이라고 퉁쳐진다. 김자연 성우님 메갈리아 티셔츠 사건 같은 경우, 여자들이 먼저 나서서 메갈은 정신병자 집단이라고 말하더라. 남자애들은 여자애들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눈치 볼 것 없이 신나게 욕하고, ‘남혐 여혐 다 나쁘다고 한 마디씩 거들었다. 중립충, 여혐충들이 잘 버무려져 있는 상황이다. 끼어 들어볼까 생각도 해봤었는데, 지금은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 대학별 게임 대항전에 참여해 본 경험이 있는가?

 

겜송이 : 에카(ECCA)[각주:2]라는 대학교 게임 동아리 연합회에서 대항전을 연다. 그때 여성팀으로 많이 참여했다.

 

암탉 : 여대 대항전은 어땠나?

 

겜송이: 숙명여대, 이화여대, 성신여대, 서울여대 4팀으로 진행했다. ‘왜 이분들이 대학 대항전에 안 나왔지?’ 싶을 정도로 모두 게임을 잘했다. (나는) 오버워치 대항전에서 우승했다. 여대 대항전이 아닌 전체 대학별 게임 대항전은 주로 남자들이 활약한다. 여성 게임 대항전은 작은 이벤트 수준으로 취급한다. (대항전이) 아프리카TV에 중계됐었는데 채팅창엔 게임 실력이 아닌 얼굴 평가만 계속됐고 사회자는 이것만 보고 싶네요. 꽃처럼 아름다운 여성분들이 나와서~ 칙칙한 남자들은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너무 기분 나빴다.

 

암탉 : 혼성팀은 없나?

 

겜송이: 혼성팀은 (본 적) 없다. 점수가 객관적으로 높은데도 남자가 대신해줄 수도 있으니까 검증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배제된 경우도 있다. (그래서 혼성팀이 없는 것 같다.)

 

리리 : 게임 대항전은 참여해본 적 없지만, 액션 토너먼트[각주:3] 방청을 가본 적 있다. 거기서 여자 방청객이 카메라에 잡히면 외모 평가를 당한다.

 

감나무 : 대학은 아니고 오프라인 PC방 오버워치 대회에 참가했었다. 인상 깊었던 게 당시 우리 팀만 팀원 중 여자가 두 명 있었고 나머지는 다 남자였다. 팀장이 대전 상대를 제비뽑기로 뽑고, 부전승을 뽑은 팀은 자기가 상대할 팀을 직접 정할 수 있었는데 단번에 우리 팀을 골랐다. 왜 우리를 골랐는지 보이지 않는가? 오버워치 정식 오픈 전이라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여자가 있는 팀을 고른 건 속이 뻔한 선택이었다. 같은 팀이었던 남자가 내가 그럴 줄 알았다고 소리쳤다. (방송) 카메라도 우리 팀 남자들도 부담스럽다고 할 정도로 계속 나와 친구만 찍었다.

 

5. 많은 FPS 게임 중 오버워치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감나무 : 앞서 말했던 오프라인 오버워치 대회에서 팀장을 맡았던 친구가 오버워치를 개발 단계부터 기다려왔다. 일이 년 전부터 개발 영상을 보여주며 영업했었다. 그러다 그 친구가 메르시를 보여줬다. 나는 새를 좋아해서 날개만 붙어있으면 환장을 한다. 메르시가 날개 펼치고 날아다니는 걸 보니 너무 멋있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겜송이 : 원래 AOS 게임을 좋아해서 롤을 3년 했다. 오픈베타 쯤 남자친구가 ‘AOS인데 FPS인 게임이 거의 없는데 오버워치는 특이하다며 한 번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더라.

 

리리 : 처음에는 디바라는 한국인 캐릭터가 있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다. 디바 원챔으로 오래 했다.

 

암탉 : 오버워치를 계속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감나무 : 친구에게 영업당하고 나서 내가 영업을 하게 됐다. (예전부터) 같이 게임하는 중고등학교 친구들도 다 오버워치를 시작했다. 게임을 할 생각이 없더라도 연락이 오면 하게 된다.

 

겜송이 : 나는 무슨 게임을 하든 즐겁게 하기보다는 빡세게 해서 무언가를 남기자는 주의다. 롤을 할 때도 여성 대회를 나가려고 했는데 (팀원을) 못 구했다. 오버워치는 팀원을 구해서 꾸렸다. 그것 때문에 하는 것 같다. 이기고 싶다.

 

암탉 : 롤 대회에 나가고 싶었는데 사람을 못 구했나?

 

겜송이 : 대회에 나가려면 어느 정도의 실력이 되어야 하는데 롤은 안 되는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오버워치는 롤보다 잘하는 여성분들이 많다.

 

암탉 : 왜 그럴까?

 

겜송이 : 롤은 챔프가 너무 많아서 하다가 질려 하는 사람이 많다. 오버워치의 경우 롤보다 플레이 시간도 짧고 덜 질린다. FPS 게임 중에서 에임이 쉽기도 하다.

 

암탉 : 여자들은 챔프가 많거나, 플레이 시간이 길거나, 에임이 어려운 게임은 잘 못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겜송이 : 남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FPS 게임을 한다. 여자들은 보통 MMORPG 게임을 많이 한다. 어릴 때부터 FPS 게임을 해왔던 사람들은 남자보다 훨씬 잘한다. 플레이 시간이나 선호하는 게임 성향 차이인 것 같다.

 

감나무 : ‘여자는 이런 게임 못 해라는 사회적 편견이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 친구가 오버워치를 영업했을 때 (지금 내 실력은 보통인데도 불구하고) ‘FPS? 나 그런 거 못 해'라고 했었다. 막연하게 그건 남자애들이 많이 하는 거고 나(여자)는 왠지 못 할 것 같다라는 편견이 있다. 그것 때문에 남자들이 FPS 게임을 시작하는 것보다 (여자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더 높다. 롤은 앞서 말한 대로 (어려워서) 진입장벽이 높은데, 남자들은 못해도 남자라는 이유로 욕먹지는 않는다. 여자는 여자라는 이유로 욕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욕을 들으면서까지 게임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단 마음이 있는 거다.

 

리리 : 여자는 왜 게임을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생각해본 적 있다. 남자들은 친구 관계를 맺으려면 게임을 해야 한다. 좋든 싫든 어릴 때부터 게임을 시작하니 익숙한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반면 여자들은 사교활동에 (게임이) 필요하지 않다.

 

암탉 : 오버워치 캐릭터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계속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게임과 어떤 차이를 갖는다고 생각하는가?

 

오버워치의 영웅들. 다양성 측면에서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리리 : 사이퍼즈에는 늙은 여자가 없다. 프로필은 늙었으나 얼굴은 10대다. 오버워치에는 늙은 여자 캐릭터 아나가 있다. 아쉬운 건 늙은 할아버지 캐릭터 토르비욘은 배도 나오고 키도 작은 것에 비해 (아나는) 객관적으로 예쁘다는 점이다.

 

감나무 : 오버워치는 잘했다 싶은데 좀 아쉽고 아쉬운데 좀 잘 했다 싶은 느낌이라면, 다른 게임은 그냥 아쉽다. ‘잘했다가 없다. (메이는) 나름 뚱뚱하다고 만들었는데 진짜 뚱뚱하지는 않다. 동양인은 살이 찌면 얼굴부터 찌는데 메이는 얼굴이 너무 갸름하다. ‘우리 뚱뚱한 동양인 여성 캐릭터 만들었어라고 생색낼 수 있는 캐릭터다.

 

리리 : 그 뚱뚱함도 성적 대상화를 노린 뚱뚱함이다. 이번 신년 스킨에서도 허리가 과도하게 강조됐더라. 보고 놀랐다. 일반 스킨을 착용했을 때보다 허리도 가늘고 엉덩이도 크다. 모델링이 잘못된 거 아니냐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

 

암탉 : 보통 오버워치 캐릭터는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서든어택2’의 캐릭터와 비교된다.

 


서든어택2의 캐릭터 원화. 남성 캐릭터들은 온몸을 감싸는 전투복을 착용하고 있지만

여성 캐릭터들은 방탄복도 없이 맨살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다.

 

겜송이 : 서든어택은 아이돌과 콜라보해 모델링 하는 경우가 많은데 탱크탑, 숏팬츠, 비키니 등 전투에 부적합한 옷을 입힌다. ‘이 천 쪼가리로 어떻게 총을 막지?’ 싶을 정도다. 나는 오버워치에 감동했던 게, 지금까지 다양한 게임을 해봤는데 모든 여성 캐릭터들의 가슴이 엄청 부각되어 있다. (여자면) 아무튼 날씬하고 가슴이 크다. 스킨 자체도 야하고 선정적이다. 남자 캐릭터는 안 그렇다. 남자 캐릭터는 못생기거나 키가 작거나 다양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 여자 캐릭터들은 다 예쁘고 몸매가 좋다. 오버워치는 부담스럽지 않다.

 

리리 : 남성유저들을 신경 쓴 온라인 게임을 하다 보면 (여성 성적 대상화에) 무감각해진다. 나는 처음 오버워치를 할 때 메이를 보고 얘는 왜 이렇게 크지?’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했던 나 스스로에게 놀랄 만큼 무감각해진 거다. 오버워치는 여성 캐릭터에게 전신 수트를 입히기는 해도 대놓고 노출을 하지는 않는다. 전신 수트 집착은 그만했으면 좋겠지만.

 

6. 블리자드의 메인 게임 디렉터 제프 카플란이 IGN D.I.C.E 행사에서 전디협을 언급한 사실이 화제였다. 제프 카플란의 언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버워치의 메인 디렉터인 제프 카플란은 IGN D.I.C.E 행사에서 플레이어들이 오버워치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고 장려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던 중 "정말 특별한 일을 목격했다(we saw something very special happen)"며 전국디바협회를 언급하였다.[각주:4]

(영상 3645초경부터)

 

감나무: 당시에는 물론 좋았는데, ‘성차별 신고 항목을 만들어 달라’, ‘제재를 강화해달라는 유저들의 계속된 요구에 대한 피드백은 전혀 없는 와중에 (전디협을) 이렇게 언급했다는 건그냥 자기에게 이득이 되니까 날름 주워 먹은 거 아닌가? 싶더라. 본인이 보기에 옳은 가치라고 생각해서 전디협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게이머들의 건의 사항을 처리하지 않는 건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리리: 처음엔 번역으로 접했는데, 나중에 원문을 읽어보고 매우 돌려 말한다고 생각했다. 전디협 언급을 안 할 수도 있지만 만약에 꼭 해야 한다면 자신에게 가장 피해가 안 오는 방식으로, 피해는 없지만 체면은 차릴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이다. ‘우린 정치적인 게임은 아니지만, 좋은 말, 좋은 말, 좋은 말그래도 그게 최소한 그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안 하는 것보단 낫다.

 

감나무: 그래도 언급된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언급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상황 아니었나. 이미지 메이킹의 일환으로 얘기한 거라고 생각한다. 전디협말고 다른 단체가 있었다면 다른 단체를 언급했겠지만, 전디협 밖에 없었으니까 언급한 것 같다.

 

암탉: 전디협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전디협이 나왔을 때, 겜송이씨와 리리씨는 어떻게 생각하셨나?

 

리리: 처음에 되게 놀랐다. 하야 시위로 처음 접하고 나서 팔로우를 하고 지켜보는데, 갈수록 비난 여론이 거세지더라. 깃발 아래 서 있으면 공격받을 수도 있는데 너무 걱정되기도 하고조심하길 바랐다. 너무 마음이 안 좋았다.

 

감나무: 조심하라는 얘기들도 참 많았는데, (인터넷상의 비난을) 실제로 행동에 옮길 만한 사람은 생각보다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작년 12월쯤에 미트쉐어 컨퍼런스 페미니즘 섹션에서 동국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오프너 제작진을 만났다. 신분이 노출돼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는데, 혹시 공격당할까봐 두렵진 않으시냐고 물었다. 그런데 실제로 공격당한 적도 없고, 인터넷에서만 말하지 자기 앞에서 직접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이야기하셨다. 거기서 많이 용기를 얻었다. 실제로 계속 활동해보니까 없더라. 정말 졸렬하다고 생각했다. 전디협 시즌1을 마치고 페미니즘 카페에서 쫑파티를 했었는데, 장소를 밝히고 진행하면 위험하지 않겠냐고 우려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실제로는 페미니즘 카페가 너무 무서웠는지 어쨌는지, 우려하던 일은 딱히 일어나지 않았다.

 

겜송이: 나도 박근혜 하야 시위 때 처음 전디협 깃발을 봤다. 전디협이 페미니즘 성향을 띠는지는 몰랐고 제프 카플란이 언급했을 때 (페미니즘 성향의 단체임을) 알게 됐다. 한 번 전디협 인식이 안 좋다고 느낀 게, 오버워치 페이스북 그룹에 전디협 대회 나가실 팀원 구합니다.’라고 글을 올렸는데 메갈이냐면서 비난 댓글이 쏟아졌다. 전디협이 했던 일 중에서 잘못된 행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런 인식에 갇히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나무: 사실 하는 활동은 여타 페미니스트 단체들과 똑같은데 자기 마음에 안 드니까 디바를 이용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냥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여자를 메갈이라고 부른다. ‘메갈과 상관없다. 왜냐면 실제로 상관이 없고, 메갈과는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거기엔 이러이러한 이유가 있다.’라고 설명을 해도, 제프 카플란이 전디협을 긍정적으로 언급해도 똑같다. ‘제프 카플란이 잘 모르고 있네’, ‘Do you know feminazi?’, ‘페미나치라는 걸 빨리 메일을 보내서 알려줘야 한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 한다.’, ‘제프가 뭘 모르고 있다.’고 한다. 제프 카플란의 언급 덕분에 많이 알려졌지만,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는 정도의 차이뿐이다.

 

7. 최근 페미니즘 이슈가 큰 물결을 타면서 여성 게이머 커뮤니티가 늘어나고 있다.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있는가? 소속되어 있지 않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소속되어 있다면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감나무 : 나는 전디협을 커뮤니티로 생각하고 활동하고 있다. 전디협을 만들게 된 데에는 페미니즘 영향이 크다. 기존 여성 게이머 커뮤니티 중 페미니즘 가치를 가져가는 곳이 없었다고 알고 있다. 성차별주의자인 여성과 게임하는 것과 성차별주의자 남성과 게임하는 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별보다 성차별적 발언을 하는 게 문제다. 그래서 전디협은 여성 게이머 커뮤니티라기보다 페미니스트 게이머 커뮤니티다. 페미니스트 게이머 모임의 장점은 편하다는 거다. 비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있다면 페미니즘적인 이슈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을 것 같다. 페미니스트 게이머 모임에서는 상대가 한 (성차별적) 말이 왜 잘못됐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여성주의 이슈뿐 아니라 장애인 비하 발언 등 다양한 소수자 차별 발언을 하지 말자고 합의된 사람들과 같이 게임을 하고 있기에 편하다. 단점은 없다. (웃음) 너무 좋다.

 

겜송이 : 나는 여성 클랜에 소속되어 있다. 여성 클랜이 좋은 건 남자들과 게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여성 클랜에 들면 클린하게 게임할 수 있다. 반면 남자들에게 욕먹기 싫어서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게 단점인 것 같다. 여성 클랜이 몇 개 있었는데 많이 사라졌다. 클랜 내에서 메갈리아나 워마드 단어를 쓰지 말라’, ‘남자 욕을 하지 말라는 식의 의견과 왜 그런 것까지 검열해야 하냐는 의견이 충돌해 없어지고 다시 만들어지길 반복한다. 우리 클랜장도 검열을 해야 하나 고민하더라. 우리끼리는 검열하지 말자고 결론이 났지만, 주변에선 아직도 검열 문제로 많이 힘들어한다.

 

리리 : 오버워치 시스템 내에는 클랜이 없다. 페이스북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 커뮤니티에 가입할 수는 있겠지만 가입하지 않았다. (여자라도) 페미니스트가 아니면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쉬운 일도 아니다. 페미니즘을 표방하지 않는 여성 게이머 커뮤니티는 검열이 심하고 메갈리아, 워마드나 여성혐오 관련 언급이 아예 금지되어 있다. 그런 분위기가 싫어서 소속하지 않았다.

 

8. 다른 여성 대학생 게이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감나무: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친구 중 한 명이 오버워치를 하다가 성희롱 때문에 그만둬버렸다. 과거에는 성희롱, 비난당하면 그냥 참고하던가 아이디를 바꿔서 남자처럼 가장해버리던가 접던가 하는 부정적인 대응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전디협을 비롯한 여러 페미니즘 단체들의 활동도 확대되고 있고, 연대해서 목소리 낼 수 있고, 여성끼리 즐겁게 게임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고 있다. 물론 도망칠 수 있고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그래도 그런 선택 말고 다른 선택지들도 생기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겜송이: 앞서 언급했던 오버워치 페이스북 그룹에 한 여성분이 어제 팀을 보러 들어갔는데 어떤 남자가 내가 있어서 힘이 난다는 말을 했다. 이거 성차별적 발언 아니냐는 글을 올리셨다. 댓글에 남자들이 프로 불편러네’, ‘일상생활 가능하냐?’, ‘메갈이냐?’는 말을 하더라. 화가 나서 성차별 발언 맞는데 왜 사람을 프로불편러로 만드냐고 했더니, 어떤 여성 유저분이 내 페북을 털어서 과거 발언들을 박제하셨다. (일명 메갈스러운글을 올리면) 여자들조차 비난하며 몰아가지 않나. 남자들은 당연하고. 당당해지기 어렵다는 건 안다. 나도 욕 들으면 눈물이 나려고 하고 주눅 드는 편이다. 그래도 같이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여자들이 위축되고 주눅 드는 게 싫다. 실력 면에서도 다들 게임 충분히 잘 하고 남자들보다 훨씬 잘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자기 실력에 대해 검열하는 분들이 많다. 남자들은 안 그런다. 남자들은 못해도 남 탓을 하고, 힐러는 절대 안 한다. 모두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리리: 자신이 겪은 일이 개인적인 일인지, 아니면 모두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일인지 스스로 충분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자기가 겪는 일에 대해서 한 단어로 일축할 수 있는지도. 그건 전혀 개인적인 일이 아니니까. 그게 중요한 것 같다. 여혐이라는 단어를 몰랐으니까 힘들었던 것 같다. 어떤 일을 당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설명을 해야 하니까 힘들고, 개인적인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여혐을 겪었다이렇게 말하면 문제가 좀 더 확실히 보인다. 공부하셨으면 좋겠다. 물론 자유지만.

 

감나무: 페미니즘을 해라. 답은 그것뿐이다.

 

9. 후기

 

리리: 이렇게 말로 내 생각을 정리해보는 건 처음이어서 의미가 깊었다. 계속 덮어두고 있다가 하나씩 이야기하니까 힘들기도 하다. 그래도 힘들어도 얘기를 해야 더 나아지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도 인터뷰 자리가 아니더라도 친구들끼리 이런 말을 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나무: 여대회담이라고 해서 요즘 대학생들이나 대학생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참여하였는데, 겜송이님의 (대학 게임 동아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여성들만 모여 있는 곳은 좀 다른지 아니면 아직도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지 궁금했었는데, 아직은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걸 배우고 간다.

 

겜송이: 학내 커뮤니티만 봐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에 부정적인 사람들이 많다. 글을 올리면 또 시작한다’, ‘너네 남혐 좀 그만해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식 자체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나도 잘 모르니까 배워야겠다.

  1. 참고: 페미위키-오버워치 여성게이머 핵몰이 사건 (https://femiwiki.com/w/%EC%98%A4%EB%B2%84%EC%9B%8C%EC%B9%98_%EC%97%AC%EC%84%B1%EA%B2%8C%EC%9D%B4%EB%A8%B8_%ED%95%B5%EB%AA%B0%EC%9D%B4_%EC%82%AC%EA%B1%B4) [본문으로]
  2. 대학 E 스포츠 동아리 연합회 (http://e-cca.kr/) [본문으로]
  3. 넥슨이 배급 중인 온라인 게임인 던전 앤 파이터와 사이퍼즈의 e스포츠 대회. 두 게임의 제작사인 네오플이 메인 스폰서로 참여한다. [본문으로]
  4. 참고: 페미위키-전국디바협회 항목 (https://femiwiki.com/w/%EC%A0%84%EA%B5%AD%EB%94%94%EB%B0%94%ED%98%91%ED%9A%8C) [본문으로]

(출처 : 구글)


3. 치열한 입시를 치르고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캠퍼스를 밟는 때이다. 새내기 A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첫 강의를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이게 무슨 일인가. 강의계획서를 꼼꼼히 읽고 고른 대학 강의의 교수는 강단에 서서 여학생들이 칠칠맞은 남학생들의 뒷바라지를 잘 해주라고 발언한다. 손을 들고 교수의 발언을 제지하는 학생들은 아무도 없다.

피곤한 마음에 과방에서 조금 쉬려고 했더니 소파는 이미 만원이다. 의자에 앉아 엎드리려는데 여자 선배가 조용히 불러내 속삭인다. ‘과방에서 쉬는 건 위험하니 여학생 휴게실에 가봐라는 조언이다. 무엇이 위험한지 새내기 A는 어안이 벙벙하다.

신나는 개강 총회. 새내기 A는 총회를 진행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과 학생회장도, 과대도 전부 남자인데 부학생회장과 부과대는 여자다. 바쁘게 움직이는 학생회 구성원의 성비를 보고도 동기들은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대표는 남자가, 부대표는 여자가맡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분위기에 새내기 A는 더더욱 이상한 기분이 든다.

뒤풀이 술자리에서 A는 선배들이 가르쳐주는 각종 애교스런 벌칙과 게임을 한다. 여자들에게는 귀엽거나 섹시한 버전의 FM을 가르치고, 남자 선배들은 작년 MT에서 했던 여장 사진을 보여준다. 게이샷레즈샷을 신명나게 외치는 뒤풀이 자리에서 A는 점점 불편한 자신이 유난스러운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뒤풀이 장소를 뛰쳐나온 A. A를 위한 장소는 어디에 있을까?

 

불편한 A를 위한 자리를 월간 여기에서 마련했다. 기대를 안고 입학한 나의 학교, 나의 학과에서 벌어지는 여성혐오 발언에 벌써부터 지친 새내기 페미니스트들을 한 자리에 모셨다. 입시부터 입학식, 학생회와 교수를 아우르는 17학번 새내기 여대생 페미니스트들의 시원한 우리 학교 뒷담을 들어보자.



 

(출처 : 구글)

6차 여대회담 :

갓 입학한 새내기 여대생 페미니스트가경악!

- 새내기 페미가 말하는 우리 학교는 여혐러

회담 진행 : 광개토

 

 

Q.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dare: 17학번 21살 성공회대 영어학과 학생이다. 지금은 과대표 활동을 하고 있다. 학교 친구들에게 자기소개하면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는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상태이다.

가명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dare로 했다. dare는 사전적으로 감히 ~하다, ~할 엄두나 용기 내다라는 뜻이다.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뒤에 예전의 나였더라면 눈치 보느라 못 했을 것들이나 말들을 전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 예전이면 ‘how dare?’ 했을 일들을 나는 지금 그냥 한다.

-john: 한세대학교 17학번 미디어광고학과 학생이다.

-청온: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17학번 신입생이다.

 


Q.언제, 어떤 계기로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했는가?


-광개토: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언제 어떤 계기로 페미니스트로 정체화 했는지 궁금하다.

 

-청온: 중학교 1학년 때 키도 작고 통통하고 안경을 쓴 소심한 아이였다. 남자아이들이 너는 여자인데 왜 꾸미지도 않냐고 외모를 가지고 많이 놀렸다. 여자는 왜 예뻐야 하는지, 왜 내가 외모로 놀림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맘고생을 하는 과정에서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라는 책을 읽고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책을 읽고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겠다고 확실히 깨달은 것 같다.

 

-dare: 나는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갈 때 정체화했다. 전에는 소위 말하는 여자 마초였다. 종종 나는 그런 애들이랑 다르다고 말하곤 했다.

부모님 두 분 다 흡연을 하시는데 아빠는 밖에서 담배 피운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만, 엄마는 친구들 사이에서가 아니면 담배를 피우지 못했다. 엄마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여자가 밖에서 담배 피우면 안 좋게 본다.”고 하셨다. 그 대답이 너무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마침 메갈리아가 화제였다. 페미니스트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메갈리아의 지향점이나 그들이 선택한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날 소위 말하는 셀프 코르셋을 다 풀어 던지게 되었다. 내가 스스로를 압박하던 게 사회적인 이유도 있었구나, 나부터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john: 이 중에서 제일 늦게 정체화한 편이다. 원래 여성학이나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여성가족부에 대한 안 좋은 편견들도 있고 나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방탄소년단의 팬인데, 3 후반 즈음 트위터에서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을 접하게 됐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후 재수를 시작하면서 기독교 기숙학원에 들어가게 됐는데 여성혐오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지식이 조금 있는 상태여서 (여성혐오 분위기에) 저항하기 위해 새끼 페미라고 불릴만한 짓을 많이 했다. 애매하게 싸우다 망해서 나 페미니스트해도 되나?’ 고민하기도 했다.

수능이 다가오면서 입시 때문에 심적으로 힘들 때 내가 행복해지려면 페미니스트가 돼야겠다고 생각하고 정체화하기 시작했다. 사실 페미니스트가 된 지 1년도 안 된 셈이다.

 


Q.대학 입시 준비를 하면서 겪었던 성차별이 있는가? 


-광개토: 회담자들 모두 본격적인 입시 전에 페미니스트로 정체화를 했다. 입시 과정에서 겪은 성차별이 있나?

 

-dare: 너무너무 많았다. 재수를 하면서 수학을 포기했었다. 수학을 포기하니까 여대를 준비해야 했는데, 여대를 준비하겠다고 아빠에게 말하자 제일 먼저 돌아온 말이 '여대 가면 안 돼.'였다. ‘여대 가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진다’, ‘여자는 기가 세기 때문에 가서 치인다’, ‘여자들이랑 같이 있으면 너도 그렇게 된다’. 뭐가 그렇게 된다는 것인가?

그래서 아빠가 정한 마지노선이 이화여대, 숙명여대였다. 이화여대, 숙명여대까지는 허락을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나는 입학할 성적도 안 되는데 왜 (대학이 아닌 아빠가) 허락해주지? (웃음)

성적이 되는 서울여대를 가겠다고 하니 제일 먼저 '육사'가 돌아왔다. '육군사관학교와 놀고먹기 때문에 서울여대 이미지가 안 좋다.', '육사 사귀겠네? 군인이 얼마나 더럽게 노는데.', '너도 그렇게 변할 것이다.' (광개토: 다 미래형이다. 왜 앞날을 점치는가?) 집안에 유리구슬이 있는가 보다. 나도 모르는. (웃음)

나는 이해가 안 됐다. '여대를 나오면 시야가 좁아진다.' 이거는 어쩌라고? 싶었고, '서울여대'라는 여대가 다른 공학 대학에 의해 평가받고 있지 않나. 서울여대가 얼마나 아웃풋을 냈다, 이것도 아니고. 그 옆에 육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고 있었다여대에 대한 이상한 편견이 너무 많고, 나한테 너도 직접적으로 변할 거라고 말하니까 대답할 가치가 없었다. 근거가 있는 말도 아니고, 남성의 시각에서 본 기준이다. 어이가 없던 입시준비 기간이었다.




여대에 대한 편견은 당분간 계속될 듯 하다.

여자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말하는 여대 편견은 

<월간 여기>의 제1차 여대회담 : '너 여대 티나'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 http://weolganyeogi.tistory.com/21

(출처 : 구글)


 

-청온: 이건 친구의 이야기다. 음대를 지망하는 학생이었는데 개인지도 선생님이 있었다. 그분도 여자였는데, '음악으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으니 잘 나가는 남자를 한 명 잡아서, 결혼을 하는 게 낫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친구가) 그래야겠다. 관리를 잘해야겠다고 나에게 말하더라.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사회적으로 아직도 남자에게 여자가 종속되어있다는 인식이 많다.

 

-dare: 내 친구는 문·이과 전체 1등이었다. 지금 서울대 경제학부를 다니는데, ·이과를 고민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이과 가지 마라'였다. 그 친구는 이과로 가고 싶어 했다. 그 친구의 부모님은 이과에 진학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의 공간지각능력이나 수학적 능력이 더 떨어지기 때문에 지금은 1등을 해도 2, 3학년 때 남자애들이 어떻게 치고 올라올지 모른다, 이과에 가면 남자애들에게 치여서 서울대 진학을 못 할 것이다'라며 말렸다. 남학생들과 성적이 월등히 차이가 났는데도!

나중에 그 친구가 서울대를 쓸지, 다른 데를 쓸지 고민했다. 주변에서는 교대를 쓰라고 권했다. 교사 될 마음이 없는데 왜 교대를 추천하냐 물어보니, '결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서는 교대를 가서 너의 시간을 가정에 할애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단다. 어른들의 눈에는 이 친구의 미래에 결혼을 하고 육아를 담당한단 전제가 깔려있던 것이다.

'결혼도 육아도 안 할 건데요.'라고 말하자 '그게 네 말처럼 되느냐?', '그렇게 말하는 애들이 꼭 시집 빨리 간다.'는 말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 친구는 결국 자기 뜻대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갔지만,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청온: 어른들이 왜 미래를 말하는가?

-john: 내 미래에는 아이돌 밖에 없는데. (모두 웃음)

 



치열한 입시를 견디기도 바쁜데 여자들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여성혐오도 함께 견뎌야만 한다.

(출처 : 구글)




-john : 입시 당시 여대를 희망했는데 여대를 희망한다고 말하면, 왜 여대를 희망하냐고 물어보더라. 공학이랑 똑같은 이유로 여대를 희망할 수도 있는데.

나는 서울여대 국어국문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국어국문과와 문예창작학과가 함께 있는 대학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서울여대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하면 '남자에게 상처를 받았냐', '남자를 싫어하냐'는 질문으로 무조건 이어졌다. 여고 출신인데, '여고·여대를 가면 좀 그렇지 않냐'는 얘기도 들었다.

기숙학원에서는 예배를 드렸다. 한번은 목사님이 성경을 인용하면서, ‘여자랑 남자가 사귀면 남자는 원래 스킨십을 끝까지 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남자가 끝까지 가고 싶어 해도 여자는 허락하면 안 된다. 그러면 순결을 지킬 수 없다라고 말했다. 졸음을 참아가며 새벽 5시 반에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참을 수 없어서 조용한 예배 시간에 문을 소리 나게 박차고 나갔다. 서러워서 눈물이 펑펑 나고, 재수하기도 싫었는데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가 싶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다. 기숙학원 사람들에게 말하면 내가 목사님을 욕했다고 반드시 말이 돌 게 뻔했다. 그때 다른 여자선생님이 나와서 위로랍시고 '성차별이 그렇게 심한 목사님은 아니지 않느냐. 성경을 기반으로 한 말이다.'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이게 제일 힘들었던 사건이었다.


 

Q.대학에 입학하기 전, 대학 혹은 대학 생활에 대해 가졌던 감정은 어땠나? (기대감, 불안함 등) 그런 감정이 든 이유는 무엇인가?

 

(출처 : 구글)


-광개토: 힘든 입시 과정을 겪었는데, 불안감보다는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는지 궁금하다.

 

-john: 기대감이 더 컸다. 불안감까지 생각하기엔 너무 슬펐다.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dare: 솔직히 원하는 대학교에 온 게 아니라 기대도 불안도 없었다. 앞으로 내가 어떤 바보 같은 애들을 만나 어떤 멍청한 소리를 들을지 예상됐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입시 준비하면서도 살 좀 빼라, 넌 갈수록 살이 찌냐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어차피 여기 있던 애들이 같이 대학갈 것 아닌가? 여기서 뽑힌 애들이 흩어져서 각 대학에 가겠구나, 그러면 난 이런 멍청한 애들을 무시하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단 생각밖에 없었다. 무뎌진 것 같다. 무뎌지면 안 되는데 말이다.

 

-광개토: john은 기대감만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john: (폐쇄적인) 기숙학원에서 지냈으니까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컸다. 대학에 가면 최소한 4년은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경우 연애보다는 대학 공부, 소모임에 대한 기대감이 정말 컸다.

 

-청온: 3 시절을 힘들게 보냈다. 아예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다. 부모님이 명문대 출신의 굉장히 보수적인 분들이셔서 어릴 때부터 자신들을 따라 명문대를 나와야 한다고 강요하셨다. 오히려 그런 압박감 때문에 대학에 가기 싫었고 공부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여성학과 프랑스 문화에 관심이 생겼다. 대학교에 가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공부했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불행했던 이유, 대학에 가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한다는 압박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학에서 자유롭게 지내고 싶어서 대학에 왔다. 지금은 동아리도 하고 행복하다. 엄마도 엄마가 보기에도 지금 넌 정말 행복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변하신 것 같다.

 


Q.대학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느낀 성차별은 무엇인가?


(출처 : 구글)


-광개토: 대체로 기대감이 컸던 듯하다. 그렇다면 이런 기대감을 깨뜨렸을 첫 번째로 느낀 성차별은 무엇인가?

 

-dare: '언니 남자친구 있어?'. 여자친구가 있을 수도 있는데! 여자에게는 남자친구 있어? 남자에게는 여자친구 있어?라고 당연하게 묻는다.

여자 둘이 손잡고 갈 수 있는데, '뭐냐? 너네 사귀냐?'라고 묻는다. (여기에 깔린 생각은) ‘당연히 너네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지이다. 그냥 놀리기 위해서 물어보는 그게 너무 기분 나쁜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대고 '. 우리 사귀어.' 라고 말하면 웃더라. 당연히 (퀴어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거 되게 거만한 게 아닌가. 자기가 뭔데 나를 퀴어가 아니라고 단정 짓는가. 퀴어 조롱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굉장히 조롱하는 말이었는데, 여자 선배가 남자에게 ', 술 한 잔 마셔라.'라고 하자 다른 남자 선배가 '이거 남자가 여자에게 하면 나중에 신고하고 성희롱이니 뭐니 하면서 범죄자로 몰아갈 수 있는 일'이라면서 '남자가 술을 잘 마실 거라는 거 이런 게 성차별이지, 이런 게 역차별'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여자 선배는 대꾸를 안 하고 다른 선배가 시끄럽다고 해서 일단 그 상황이 종료됐다.

OT 때 성교육시간이 있었다. 선배가 후배에게 말하면 안 되는 행동에 대한 교육 시간이었는데, '그런 것은 역차별일 수 있다.',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 남자더라. 왜냐하면 여자들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어서 무섭지만, (남자들은) 본인에게 일어날 일이 아니기 때문에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거다. 무슨 말만 하면 역차별이라더라.

 

-청온: 입학 후 숙대에 대한 페이스북 페이지를 돌아다니다가 '연대 응원가'를 보고 충격 받았다. ‘이대나 숙대 같은 여대생들은 명문대의 여친이라는 내용의 가사였다. 지금은 21세기인데. 내가 가려는 이 대학교, 여대생이라는 지위가 이 정도였나? 싶더라.

-john: '하지 말아야지'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니 놀랍다. 생각해야하는 거 아닌가.

-dare: 인간이라면 말이다.

-청온: 엄마가 보시던 90년대 후반의 여성 잡지에 비슷한 가사가 있었는데, 그걸 아직도 부르다니 믿을 수 없다.




 


연세대학교 공식 페이스북 지난 210일에 올린 연대 응원가동영상 캡쳐.

문제가 된 응원곡 ‘Woo’

고대 못생겼어 / 일단 못생겼어 (중략) 이대한테 차이고 숙대한테 차이고 / 여기저기 차이고

라는 가사로 해당 학교에 다니는 여자 학생을 지우고 

여자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화했다는 점에서 여성혐오 지적을 받았다.

(2차 출처 : http://www.huffingtonpost.kr/2017/02/13/story_n_14716144.html)

 

 

Q.대학에 입학한 뒤 다양한 행사들을 겪었을 것이다.(OT, 입학식, 새내기캠프 등) 어떤 행사들을 겪었고, 그 행사들은 페미니스트인 나에게 어떻게 다가왔는가?

 

-john: OT에서 성교육을 했는데 00년대 초중반에 유행했던 뇌 구조 그림을 띄워 놓고, 남자는 여자랑 뇌 구조가 달라서 여자는 사랑해야 성욕이 생기지만 남자는 사랑을 하지 않아도 성욕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지?’ 싶었다. 그만 졸고 말았다. 조는 게 제일 고통스럽지 않은 방법이었다.




(출처 : 구글)



-john: 기독교 기반 학교라서 억지로 남녀를 엮는 일은 없었다. 술을 마실 때도 (술을) 마시지 않고 싶으면 부담 없이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여서 좋았는데, 섹시 댄스·애교 같은 술 게임 벌칙이 불편했다. 차라리 여자, 남자 모두 웃기게 혹은 모두 진지하게 하면 모르겠는데 남자 선배들이 할 때는 장난처럼 코믹하게 하고, 여자 선배들이 할 때는 진지하게 반응하니까 참기 어려웠다.

학교 분위기가 보수적이라서 축제 때 주점도 없고 다른 학교처럼 대놓고 여자를 대상화하고 희롱하는 건 드문 것 같다. (학교가) 젠더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런 게 아니라 기독교 기반이라 성적인 얘기 자체가 금지된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딱히 기분 좋지는 않다. 성적으로 자율적인 것 자체를 반대해서 퀴어, 여성학 동아리를 만들려고 하면 학교 자체에서 막을 것이다.

 

-dare: 우리 학교도 그런 분위기가 있다. 술 마시기 싫으면 마시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여자들에게만 과하게 많이 한다. 자기들은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여성들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애들이 꼭 양성평등한다.

 



연세대학교 제28대 총여학생회 'around'에서 제작한 성폭력사건 대응 매뉴얼

구체적인 고민이 엿보인다.

(출처 : https://www.facebook.com/ys.female.council/ )

 

 

-광개토: OT나 첫 MT에서 FM, AM, CM 등을 많이 시키지 않나? 이런 문화나 다른 성차별을 겪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청온: 여대라서 그런지 FM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시범을 보이고 선물을 줄 테니 도전해보라고 권유하는 식이었다.

 

-dare: 그런 것은 없었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처음 본 포스터가 RaIN(성공회대 퀴어 모임)의 회원을 모집한다는 포스터였고, 행사가 끝나고 숙소에 돌아오니 방마다 <페미들의 성교육> 책자가 뿌려져 있었다.

 

 


불꽃페미액션에서 진행한 페미들의 성교육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feministaction )

 

 

-dare: 과에서 주최한 새내기 배움터에서 처음에 선배가 후배에게 하면 안 될 행동을 상황극으로 배웠다. 5개 조로 나뉘어서 상황극을 보고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었다. 우리 조는 남자 선배가 여자 후배에게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어 1년 정도 되었다고 답하자 기분 나쁘게 웃는 내용의 상황극을 보았다. 굉장히 퀴어포빅하고 성희롱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에 후기를 말하는데 어떤 조에서 소위 말하는 젠더 이퀄리즘, 양성평등을 주장했다. 우리 과는 앞으로 양성평등을 지향하고 위계적 분위기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성별에 따른 인식차가 크다는 것을 느꼈다. 여성 조는 상황극 속 퀴어포빅한 점을 지적하고 다양한 문제들을 짚어냈지만, 남성 조는 퀴어포빅은커녕 말 그대로 양성평등을 주장했다.

 

 


페미위키의 '젠더 이퀄리즘 날조 사건' 항목

(출처 : https://femiwiki.com/w/%EC%A0%A0%EB%8D%94_%EC%9D%B4%ED%80%84%EB%A6%AC%EC%A6%98_%EB%82%A0%EC%A1%B0_%EC%82%AC%EA%B1%B4 )

 

 

Q.처음으로 수업을 고르고 대학 강의를 들어봤을 텐데, 직접 느낀 대학 강의의 젠더 감수성은 어느 정도인가? (강의 선택의 다양성, 강의계획서, 교수의 발언 등)

 

-청온: 수업시간에 여대의 단점을 물어보시더라. 한 학생이 (단점이) 없다고 말하니 계속 있다는 식으로 유도하는데 그 학생이 끝까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본인도 큰 단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님은) 남자가 없는 것이 단점이라는 식으로 답변을 유도했다. 남자는 여대 밖에서도 만날 수 있는 존재이며 단점을 결정짓는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dare: 젠더학이 3개가 열려 있었다. '젠더로 보는 문학', '젠더로 세상 보기', '여성·평화·생명'이었다. 강의 계획서를 보니 '젠더로 세상 보기'는 왜 지금까지 여성정치가나 여성 사관이 없었는지, 왜 사회적으로 그들을 압박했는지를 첫 수업부터 다루더라. '여성·평화·생명'은 지금까지 남자들에 의해 죽어 나간 여성들을 첫 수업에서 다루고 있었다.

나는 '젠더로 보는 문학'을 선택했는데, 교수님이 페미니스트가 아닌 거 같다. 그 교수님이 OT양성평등을 반대한다를 가지고 오셔서 기대감에 찼다. 그런데 수업 중에 하시는 말씀이, '나중에 싸움이 날수도 있는 주젠데 메갈리아에 대한 찬반을 논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메갈리아의 지향점과 그들의 방식에 찬반을 논하겠다고 말하더라. 이미 존재하는 그룹에 어떻게 찬성과 반대를 하고, 그들의 지향점에는 어떻게 반대를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교수님은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싶었던 것이라고 믿고 싶다.

 

 

실체가 없어도 너무너무 무서운 메갈리아.

이쯤 되면 죽은 메갈공명이 산 사마여혐러를 잡는다.

(출처 : 구글)

 

 

-dare: '말과 글'이라는 영어학과 필수 수업은 젠더로 보는 문학과 같은 교수님이 진행하신다. 이 교수님이 질문지를 나눠주셨다. 질문지를 기반으로 자기소개를 하라는 의도였다. 그런데 그 질문지 중에 '나는 이성 친구가 있다.'라는 워딩이 있었다. 젠더학을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이성 친구라는 워딩을 사용해도 되나? 애인의 대체어로 이성 친구를 쓴 것 같은데 너무 당황스러웠다. 처음에는 '남자 사람 친구', '여자 사람 친구' 이런 걸 말하는 거겠지 라고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친구들은 이미 '애인'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이성인 친구를 뜻하는) 의도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애인이라고 받아들이면 이미 실패한 게 아닌가. 나는 당연히 페미니스트겠지 싶어서 기대하고 들었는데 이성 친구를 논하고 있고 메갈에 찬반을 논하고 있고.

'Fun English'라는 수업도 있는데, 영어 교수님께서 여자 친구에게 말하는 게 'Do you have a boy friend?'이고, 남자 친구에게는 '- girl friend?'라고 물어봤다. 'ppt를 준비하는 건 여자들이 더 뛰어나서 여자 학생들에게 더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지금까지 보니까 남자들이 뛰어난 거 같다. 그런 면에서 남자 여자가 동등하게 경쟁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신다는 거다. 남자의 이성, 여자의 ppt 능력을 말하니 실망했고 답답했다. 지적하고 싶은데 지적도 못하고.

영어 발음 연습이라는 수업도 있는데 그 수업에서도 '보통 여자 친구들이 이런 건 더 많이 패스하죠. 여자에게 기대가 더 크다'라고 하시더라. '여자를 더 잘한다'라고 말하고 싶으셨던 거 같은데, 그것도 편견이지 않은가. 여자와 남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언제 젠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출처 : 구글)




-john: 우리 학교는 기독교 학교고 강의 다양성도 없다. 모든 강의와 강의 계획서를 봤는데 젠더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건 하나도 없다. 학교는 신학과가 엄청 크고, 실무 중심의 학과가 많다. 강의선택의 다양성은 전혀 없고 필수로 기독교 과목을 들어야 하는데, 완전 교회다.

아직 한 주밖에 안 됐고 OT 끝나고 오긴 했는데, 수업 만족도가 너무 낮다. 아직 입문이니까 기초적인 내용을 가르쳐준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공부가 아니라 실망했다. 일상적인 발화가 이분법적이고 헤테로 중심적인 것밖에 없다. 남자에게 주어진 잘생기고 멋진 특성, 여성에게 주어진 예쁘고 그런 특성을 강조한다. 과제를 해올 때도 '남자는 멋지게, 여자는 예쁘게 해오세요'라고 얘기한다. 시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다 비슷비슷한 시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남자애들이 윤동주 시인을 가져오면 '역시 남자라서' 그렇다고 하고, 여자가 꽃 이런 거 가져오면 '역시 여자라서 감성이.'이러더라. 이런 걸 하나하나 지적하기도 힘들어서 답답함만 매일매일 쌓여가고 대외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Q.대학 내에는 다양한 학생 모임들이 있다.(학생회, 소모임, 동아리, 자치 단체 등) 학생모임의 첫 인상은 어땠는가?

 

-광개토: 학생회, 소모임, 동아리, 자치 단체 등 다양한 학생 모임이 있을 텐데 혹시 가입한 모임이 있는가?

 

-청온: 두 모임에 가입했다. 하나는 S.F.A(숙명여대 여성학 중앙 동아리)인데 페미니즘에 대해 함께 의견을 공유하고 공부하는 동아리이다. 만족하고 있다. 다들 똑똑하셔서 나도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반성했다.

다른 하나는 신촌 연합 사회학회이다. 두 가지 세션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번 학기에는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한다. 오늘 면접을 보고 왔는데 거기는 여남 다 섞여 있고 지역도 다양해서 기대 중이다.

 

-dare: 내 첫인상은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해 처먹을 거 남자애들이 다 해 처먹는다는 것이었다. 정해진 규칙은 아니지만 모든 학생회, 동아리에서 회장 같은 중요한 자리는 남자가 차지하고 여자는 (부회장 같은) 보조 역할을 맡는다. 사실 이번에 과대를 하게 된 것도 (부과대로 지원했는데) 과대 지원자가 안 나와서 맡게 된 거다.

나중에 과대는 대부분 남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있는 곳만이라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대를 하면 후에 아 그때 여자 과대가 있었으니 여자가 (과대를) 해도 돼라는 말을 할 것이다. 선례를 남기고 분위기를 환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 구글)



-dare: 친구는 동아대 의대에 다니는데 그 학교는 무조건 장은 남자, 총무는 여자가 맡는다. 대범한 일은 남자가 잘할 수 있고 총무같이 꼼꼼한 일은 여자가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동아리도 장은 전부 남자가 맡아서 (여자 구성원들이 열심히 공연만하고) 마지막에 인사하며 박수 받는 건 전부 남자였다. 여자는 동아리의 부속품인가?

38일 여성의 날에 학교에 대자보가 붙었는데 누가 봐도 찢은 것 같은 자국이 있었다. 그 위에 다시 테이프를 붙였는데 나중에 또 뜯어졌다. 그걸 누가 에브리타임에 찍어서 올렸다. 학생들 중 몇몇은 바람이 너무 세서 찢어졌다고 우기기도 하고 대자보지 get it’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대자보가 맘에 안 들면 옆에 따로 대자보를 붙이지 왜 찢냐는 글이 올라오니까 누가 뗐다는 증거도 없는데 왜 보들보들?’이라는 댓글도 달렸다.

 

-광개토: 성공회대에서 38일 여성의 날에 행사를 했다고 들었는데 설명해줄 수 있나?

 

-dare: 전국 디바 협회, 펭귄 서포터즈등 여러 단체에서 모여 부스를 설치하고 (행사 취지를) 설명해주는 행사였다. 여자 학생들은 행사에 관심을 보이고 설명을 듣고 가곤 했는데 남학생들은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한 남학생이 페미니스트들은 인터넷에서 조용히 만나면 되지 굳이 밖에서 저러더라, 난 아무 생각 없었는데 저러니까 괜히 더 거부감 든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퀴어 페스티벌에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 (john: 너희도 집에서 여혐하면 되지 밖에서 왜 그러니?) (모두 웃음)

 

 

블리자드 사의 게임 오버워치의 한국인 여성 캐릭터 D.Va가 게임 내 미래의 한국에서 군인이자 게이머로 활동할 수 있도록 현재의 한국에서 성평등 운동을 하겠다는 취지로 움직이는 페미니스트 게이머 모임

(사이트 : https://national-dva-association.tumblr.com/post/156308195090/introduction-to-the-national-dva )

 

 


오버워치의 메인 디렉터 재프리 캐플런이 2017 DICE SUMIT에서 '전디협'을 직접 언급한 사건은

그동안 게임계에서 여성혐오에 목소리를 높혔던 페미니스트들 뿐 아니라 

한국에서 활동하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힘이 되었다.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재프리 캐플런이 '잘못' 알고 있다며 한탄하고 있지만.

(출처 : https://youtu.be/0zy_PObi5Jk )

 

 


펭귄프로젝트평등한 대학을 위한 3.30 펭귄들의 반란행사 포스터

펭귄프로젝트는 대학에서 겪을 수 있는 불편한 문화와 성폭력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과 대사의 제시를 통한 문제제기는 물론 이러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주체별, 상황별, 유형별 등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는 캠페인을 주도한다.

(페이스북 : https://m.facebook.com/pengminist/ )

 

 

 

-john: 한세대는 한숨뿐이다. 동아리 자체가 별로 없고 해외 선교 동아리 같은 기독교 관련 동아리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댄스 동아리, 흑인 음악 동아리 정도가 있는데 웃긴 게 랩은 다 남자가 하고 보컬은 여자가 하더라.

동아리에 대한 첫인상이 정말 안 좋았다. ‘방돌이라고 OT에서 동아리가 방마다 돌면서 동아리를 소개하고 세숫대야에 음료 및 술들을 마구잡이로 부어 정체 모를 음료를 만든 뒤 세숫대야에 가득 찬 술을 동아리 부원들끼리 돌아가며 마시는 문화가 있다. ‘방돌이를 직접 목격하고 내가 기안대에 왔나?’ 생각했다. 첫인상도 좋지 않았고 맘에 드는 동아리도 없었기 때문에 동아리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

다른 이야기지만 기숙사에 사는데 (룸메이트가) 다 선배다. 동아리를 만들 수는 없냐고 물었더니 동아리를 만든다고···? 몰라 그런 애는 지금까지 한 명도 못 봤어라고 하더라.

 

-광개토: 한세대 하면 반동성애 모임이 유명하다.

 

 

한세대 반동성애모임 트위터 계정

본 계정은 폭파되었으며 두 번째로 생성한 계정 역시 사람들의 신고로 삭제됐다.

(출처 : 구글)

 

 

-john: (합격하고) 트위터에 한세대를 검색했는데 그 모임이 상단에 떠서 충격 받았다. 사람들이 신고해서 계정이 없어졌는데 다시 만들었다. 이 계정 신고 좀 해달라고 홍보하고 다닌다. 직접 활동하는 건 못 봤지만 아마 본인들이 (반동성애 모임 활동 사실을) 밝힐 것 같다. 기본적으로 기독교에서 동성애를 배척하기 때문에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분위기이다. 페미니즘을 떠나 성적으로 자유로운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분위기이다. ‘호섹호스하지도 못한다. (섹스를 섹스라고 말하지도 못한다) 난 결혼 안 할 것이고 혼전순결 신경 안 쓴다고 하면 아웃사이더가 될지도 모른다.



Q.앞으로 4, 혹은 그보다 더 길어질 대학생활 중 대학생 페미니스트로서 꼭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가?

 

-청온: 나는 시위도 많이 참여하고 싶고, 외국인 학생들과도 페미니즘을 논하고 싶다. 우리 학교는 주변에 다른 학교가 없기 때문에 나만의 지도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있는 것도 행복하지만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더 나아가야 더 기억에 남을 것 같고, 공부도 더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한다.

 

-dare: 나는 개인적으로 여성학 소모임을 만들어서 동아리로 만든 후에 이 학교를 나가는 게 목표이다. 친구들은 대학에서 페미니스트임을 밝히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무시했다. 자기소개를 할 때 제일 처음 한 말이 '스물한 살 dare이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여성학에 관심이 많습니다.'였다. 그렇게 말하니까 나중에 몇몇 친구들이 나한테 찾아오더라. '언니 페미니스트야? 나도야. 나중에 그 책 읽고 재미있으면 나도 알려주면 안 돼?'라고 하더라. 다른 수업에서도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했는데 그 수업의 다른 친구도 페미니스트라고, 나도 아직 모른다고, 나중에 같이 연대했으면 좋겠다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페미니스트라고 말했을 뿐인데 주위에 연대할 사람이 자꾸 생겨나는 거다.

가끔 학교에서 페미니스트로서는 되게 외롭다고 느꼈는데 말한 뒤에 연대할 친구들이 생겨나니까, 지금 당장 논의하지 않아도 언젠가 논의할 친구가 생긴 게 되게 좋았다. 그런 기회를 다른 친구들에게도 열어주고 싶다. 페미니스트로 다녀도 외롭지 않고 연대할 사람이 있다는 걸 확고하게 애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소모임을 만들려고 두 명 정도를 포섭했다.




(출처 : 구글)

 


-john: 나도 소모임을 만들고 싶다. (여성주의 소모임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생각했는데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게 무섭다. 작년부터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면, 연대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게 아니라 "너는 원래 예민하니까."라고 했다. 그다음부터는 내가 맞는 말을 해도 너는 맞는 말을 하지만 예민한 사람이다.’, ‘너는 이런 쪽으로 많이 알고 있는 애니까 그렇게 생각하지만, 다수는 그렇지 않다.’라는 반응이 온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선입견이 날 공격한다. ‘너는 옳지만, 다수가 아니다. 너는 소수다.’ 이런 식으로. 과 단톡방을 봐도 페미니스트의 도 찾아볼 수 없고 또다른 선입견이 날 공격할까봐 (공개적으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지 못했다. 나는 (페미니즘 관련) 배지를 달고 다니니까 그걸 아는 사람들은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걸 알아보지 않을까?

지금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애들이 4명 정도 있는데, 할 수 있다면 그 친구들과 소모임을 하고 싶다. 그리고 외부 모임을 하고 싶다.

 


Q.후기

 

-dare: 영어학과니까 영어로 남기겠다. <Be bold for change> 이번 여성의 날에 구호처럼 쓰인 말이라고 한다. 변화에 대담해지라는 뜻이다. 우린 변화에 대담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비투비 여혐 공론화 파이팅! 비투비 사과해라. (john: 한남을 사랑한 페미니스트다)

 

-청온: 나도 팬질로 마무리를 하자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도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john: 이런 지성체에 속해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기쁘다. 대학 와서 이런 일을 하고 싶었다. 페미니스트들이 살아있는 걸 보면 너무 기쁘다. 3D로 여러분을 보는 게 행복하다. 계셔주셔서, 연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방탄소년단 여혐 그만 해라.


<개강특집>[인터뷰]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페미니스트, 신지윤을 만나다.

-페이스북 대나무숲들여다보기.

by.광개토

 


 

대검찰청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4년 검거 기준 폭력 범죄 중 가해자 남성의 비율은 50퍼센트를 넘는다.[각주:1] 우리가 뉴스를 통해 접하는 폭력범죄 가해자들 역시 대부분 남성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아니, 어쩌면 지구상에 태어나 숨 쉬는 인간 종이라면) 폭행범을 그리라고 할 때 남성체를 그릴 것이다. 폭행범하면 남성을 떠올리도록 정형화되어있다니! 대한민국은 이토록 심각한 남성혐오 사회인 것이다.

8월의 어느 날. 한 대학교의 페이스북 대나무숲 페이지에서도 남성 혐오는 일어나고 있었다. ‘술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배를 폭행한 선배가 있다는데 정말인가요?’라는 글이 올라왔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폭행범의 성별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한국처럼 남혐이 심한 나라에서, 폭행범은 물어볼 필요도 없이 남성이기 때문이다.

이때, 한 비-남성혐오-페미니스트가 의연하게 일어난다. 그 이름은 신지윤. 그는 페미니스트답게 편견에서 벗어나 남성이 폭행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폭행범의 성별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나 지독한 남혐주의자들은 신지윤 씨의 이러한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남성 가해자인 게 분명한데) 성별을 묻는 진의가 의심 된다고 댓글을 달며 모욕할 뿐이었다.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당신은 폭행범이 남선배라고 생각했나, 여선배라고 생각했나? 신지윤 씨의 행동은 누군가 분란을 조장하지만 않았다면 굉장히 성평등한시선이었다. 대체 누가 성별 분란을 조장하고, 불평등을 만들어 내는가?


9월에 나올 <월간 여기> 3호 회의 중, 필진들은 이 질문에 답을 제시하지는 못하더라도 단서가 될 만 한 사건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다. 모두의 적극적인 동의 아래에 케이트 맥키넌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신지윤 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우리에게, 당신이 본 페이스북 대나무숲 속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물론, 그에 대한 대답은 이 뒤로 이어진다.

 


 

1.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여성억압공기가 심각한 대한민국 사회의 한 여성으로서 여성 권리를 적극적으로 외치고 있는 페미니스트 신지윤이다.

 


2.현재 경희대 대나무숲을 비롯한 경희대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부탁한다.

 

817일 수요일 페이스북 경희대 대나무숲에 익명 제보가 올라왔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이유로 후배를 폭행한 선배가 있는 게 맞냐는 익명제보에 충격적이네요. 폭행범 성별이 어떻게 되나요?’라고 묻는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남학우들 3-4명 정도가 역시 페미니스트라 성별이 궁금한가 보네요.’, ‘왜 성별을 물어보나 했더니 타임라인 들어가 보니 끄덕, 납득’, ‘페미니스트라서 그런 질문 하는구만?’ 등의 답글을 달았다. 가해자의 성별이 남성일 것이라는 가치개입 없이 성별을 물었을 뿐인데 왜 남학우들이 이런 반응를 보이냐고 반박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질문에 의도가 있을 거라는 몰아붙임과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조롱과 욕설이었다.



 


경희대 대나무숲 페이지 관리자는 해당 덧글 작성 후 신지윤 씨를 차단했다.

 



대나무숲 관리자는 내 댓글에 답글이 200개 정도 달릴 때 까지 기다리다가 내 댓글만 삭제하고 나를 차단했다. 분란을 조장한다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나에게 진짜 페미니스트운운하던 남학우들 역시 차단을 해야 옳다. 차단된 사람은 나뿐이었다.

남은 것은 나에 대한 조롱뿐이었다. 나의 목소리를 흔적도 없이 지운 것은 물론, 뒤늦게 본 학우들이 당시 상황을 모르도록 맥락을 아예 잘라버린 것이다. 대나무숲 관리자는 학우들이 이 상황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만한 기회 자체를 없앴다.

 


3.페이스북 페이지인 대나무숲 여성혐오를 정면으로 맞았다.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4가 삭제와 재생성을 반복했던 일과, 최근 대두된 각 대학 커뮤니티의 여성혐오가 교차한 지점이 각 대학 대나무숲 페이지다.

각 대학, 특히 경희대 대나무숲에서의 여성혐오는 어떤 양상인가? 에브리타임과 그 외 경희대 대학 커뮤니티 내에서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던가?

 

초반 나는 오빠가 허용하는 온건조신한 텍스트, 페미니즘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텍스트를 경희대 대나무숲에 여러 번 제보했다. 이 글은 내가 페이스북 개인 계정에서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며 썼던 글 중 하나이기도 하고, 꽤 많은 좋아요를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내 글은 단 한 건도 대나무숲에 업로드 되지 않았다.


 



신지윤 씨는 위 글을 경희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제보했지만 페미니즘 글이라는 이유로 필터링 당했다.


 


여성혐오적인 글은 잘 실어주면서 내 글은 필터링 했다. 적어도 페이스북의 대나무숲 관리자는 여성의 계몽을 두려워하는 분위기라는 걸 확신했다.

내 제보가 필터링당한 이후, 페이스북 페이지에 성별을 묻는 댓글을 달았다. 그랬더니 필터링당한 내 글을 보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남자 선배들이 폭행범의 성별을 물었다는 것만으로 모두 떠났다. 남자 선배들 뿐 아니라 여자 선배,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에브리타임에서는 나를 매장시키겠다거나, 일베에 올려 신상을 털어보겠다는 둥의 이야기가 오갔다. 일베가 사회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성별 분란 조장을 일으킨 나를 처단하기 위해서는 일베의 손을 빌리길 원한다. 성별 분란이 (일베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에브리타임 경희대 게시판에 올라온 글. 이후 지속적인 모욕이 계속됐다.

(이미지=©신지윤)

 



그러다 서울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내 이야기가 올라왔다. 내가 매장당한 일련의 사건을 봤는데 내가 분란조장자가 맞다는 내용이었다. 알던 친구들, 선배들도 모두 쫓아가서 동조하고 그러니까 왜 성별을 물어봐?’라는 댓글을 달았다.

 

Q.페이스북 대학 대나무숲 페이지 관리자들이 학우들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검열, 차단하고 있다는 말이 심각하게 들린다.

 

페이스북 대나무숲 페이지 관리자들은 관리자들만 모이는 전국적인 규모의 단톡방이 존재한다. 트위터에서 나의 일을 공론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톡방의 존재를 알려온 분이 계셨다. 이분이 보내주신 자료를 보자마자 왜 내 제보가 필터링 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 관리자들끼리 모여 페미니즘에 대한 제보는 올리지 말자는 이야기를 나눈다. 페미니즘은 누군가에게 규제, 검열당하는 중이다. 여기에 서울의 모 여대 대나무숲 관리자 역시 동조하고 있었다.

 




페이스북 대학 별 대나무숲 페이지 관리자 단톡방에서 페미니즘에 관련된 제보를 거르자는 의견이 논의되고 있다.

(이미지=©신지윤)



 

여성혐오적인 제보글은 필터링 없이 올린다. 거기에 페미니스트들이 항의하면 좌표 찍고 쿵쾅대면서 온다’, ‘그 분들이 오셨다고 조롱한다. 사실상 대나무숲 관리자들은 보다 조직적으로 단톡방을 꾸려서 우리 대숲이 난리 났으니 지원을 와 달라고 여론을 조작한다. 일반 학우인 양 와서 여론을 조작 중인 대숲 관리자들도 있다.

 


4.사건에 대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얼마 전까지도 친했던 사람들이 괴롭히겠다는 목적으로 가계정을 만들어서 페이스북으로 모욕적인 말을 보낸다. 동기들, 선배들이 공개 모욕에도 가담하고 있다. 모르는 번호로 협박전화를 받기도 했다. 집주소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쫓아와 해코지를 할까봐 현재는 집에서 지내지 못하고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내가 당한 피해를 캡쳐해서 올리면 얼마 전까지 친했던 사람들이 ‘(자기 신상은 중요하면서) 같은 학우들의 신상 터는 것에는 아무 생각 없는 경희대 페미니스트님~’이라고 조롱한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과, 나의 반격을 같은 취급 하는 것이다.

 


5.사건에 관련해서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가 있나? 국제캠 총여학생회라던지.

 

없다. 오히려 서울캠 총여학생회 회장의 연락은 받았다. 교내의 여성주의 단위가 도움을 준 적 역시 없다. 성평등 센터가 있고, 후마니타스 정신을 강조하는 만큼 진보적인 줄 알았지만 대나무숲 페이지에 댓글을 단 이후 교직원이나 교수들 중 누구도 도움을 주고자 연락해온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 교육부에 민원을 넣자 그제야 긴급회의가 소집됐다고 한다. 91일 즈음 성평등 센터 상담가에게 전화가 왔다. 어떤 대처를 원하냐기에, 페이스북 가계정을 파서 성희롱, 강간 위협을 한 학우들에게 강력한 조치를 취하길 부탁했다. 회의를 해보고 연락해주겠다고 하지만 늦은 대처다.

내가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온라인 페미니스트 개개인들이다. 민우회나 한국 여성의전화에 도움을 요청해보라고 권하거나, 개인 블로그에 글을 써 사건을 알려주신다. 트위터 RT를 통해 공론화를 도와주고, #신지윤님을_응원합니다 해시태그 운동도 진행해주셨다. 종종 힘을 내라며 기프티콘을 선물해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모두 감사드린다.

 


6.곁에서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어떻게 공포를 견디고 있나?

 

응원해주시는 분들의 따뜻함을 보고 힘을 얻기도 하지만, 사람보다는 신념에서 힘을 얻고 있다. 나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모든 것을 내놓고 행동하는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예전엔 가족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지윤이 사진이 익명 사이트에 올라왔는데 괜찮아?’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일베에 내 얼굴이 올라와도 무섭지 않다. 나의 준거는 젠더 이퀄리즘, 원동력은 성평등에 대한 간절한 염원에서 온다.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한다.

 


7.꽤나 적극적으로 활동 중인 페미니스트 중 하나이다. 한국의 젊은 페미니스트 활동가 중에서는 이름과 얼굴이 이렇게까지 알려진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하다.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태생부터가 페미니스트였다. 몰랐을 뿐이지. 초등학생 시절 같은 학생인데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의 가슴을 보고 아스팔트 껌딱지등 성적인 모욕을 하는 모습을 보고 너희 고추는 어떠냐고 반박했었다. 그때부터 분노했다.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억압성 발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런 현장을 목격할 때마다 투쟁해왔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이후 내가 페미니스트임을 깨달았다. 621일 즈음 sns에 페밍아웃을 했다. 그러면서도 메갈과는 거리를 뒀다. 그때는 메갈년이라는 낙인이 매우 무서웠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메갈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치환해 억압하려 드는 것이 두려웠다. 내 사진과 신상 정보 등을 가져가 악의적으로 공격할 것 같았다. 스스로 메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주변에 남자 인맥이 없어지는 걸 본인이 원하는 건가? 저 사람들 자폭하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혐오용어가 또 다른 혐오를 양산하는 것 같아 메갈의 워딩도 싫었다. 나는 메갈이 아닌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다.





1930년 1월 12일 조선일보 만평 '여성선전시대가 오면(2) (조선일보)'이 보여주는 여성혐오.

한국에서 페미니스트인 여성은 시대에 따라 

모던걸, 꼴페미, 김치녀 그리고 이제는 메갈로 뭉뚱그려 낙인찍힌다.




당당하고 떳떳했지만 왜인지 인간관계의 단절이 시작됐다. 그러다 페이스북 친구였던 여자 선배가 보이지 않았다. 나를 차단한 것이었다. 그 사람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여성혐오가 짙었다. 제대로 개념녀인 사람이었다. 선배에게 닿기를 바라며, 개념녀와 페이스북 페이지 유머저장소의 여성혐오에 대한 글을 써서 개인 계정에 올렸다. 그랬더니 85일 내가 쓴 글이 유머저장소에 박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내 글을 보고 뭐만 하면 여혐이라며 비아냥댔다. 글을 확인한 여자 선배는 학교 망신을 다 시킨다며 내 신상을 뿌리고, 페밍아웃 이후 마음껏 메갈짓을 하고 다닌다고 욕했다.

충격적이었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했을 뿐, 메갈을 한 적도 없는데 메갈이 됐다. 나는 무결한 줄 알았지만 메갈짓을 한다고 공개모욕을 당했다.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무슨 행동을 하든 세상은 나를 메갈년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를 메갈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메갈을 안 하는 개념 있는 페미니스트라는 코르셋을 이렇게 벗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진중권의 내가 메갈이다라는 내용의 논설이나 해시태그 운동 ‘#나는_메갈이다가 무척 통쾌했다. 이제는 나 스스로를 멧돼지윤이라고 부른다.

 






8.신지윤의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은 젠더에 초점을 맞춘 인류애라는 걸 알게 됐다. (공부할수록) 젠더를 넘어서 인종, 지역, 성별 등 태생적인 요소로 차별을 받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상식 외치기 운동 같다. 결국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표는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하면 행복해진다. 여성체에 대한 불결하고 야릇한 시선 자체가 문제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노브라로 다닐 수 있게 되면서 더 편안해진다. 사치를 부리지 않는 개념녀라고 인정해주는 이가 누구인지 깨닫고 나면 사치하는 데에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살고 싶은 대로 살게 된다. 남성들이 인정해주는 마이 웨이(my way)가 아닌, 배드비치(bad bitch) 소리를 듣는 마이웨이가 진짜 마이웨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나의 길을 찾아가는 행복한 길. 페미니즘은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사실, 페미니즘을 시작하면 괴롭다. 스스로를 책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내게 벌어진 일을 외신에 공론화 하자는 의견에 자연스레 백인 페미니스트인 엠마 왓슨을 찾았다. 그러자 누군가 왜 흑인 페미니스트는 찾지 않느냐?’라는 반론을 제기했다. 머리가 띵 했다. 레이시스트인 나를 발견한 것이다. 페미니즘을 하면 할수록 벗어야 할 코르셋이 많다고 느낀다. 자신이 얼마나 성차별적이었는지 매일 자아검열하고 반성하고 체크하며, 스스로를 책하면서도 미워하지는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가장 말하고 싶은 건 페미니스트는 주체적으로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가는 멋진 사람이란 점이다. 페미니즘은 궁극적인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다.

 

 

 

*신지윤 씨에게 일어난 사건은 한국과 일본 여성들의 국제적 연대를 돕는 모임, Stronger Together (http://strongertogether20160817.tistory.com/9)에서 보다 정확하게 확인이 가능하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세일러문 크리스탈과 오마이걸입니다.

  1. 검찰청 홈페이지, 2016.09.08., http://www.spo.go.kr/spo/info/stats/stats02.jsp. [본문으로]


역사를 잊은 여돌에게 미래란 없다

by.광개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필자가 이 말을 처음 들은 것은,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여덟 살짜리 초등학생들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게 할 때였다. 이 말은 이후로 역사 시간이나, 역사적인 날이나, 발화자가 역사적이라고 믿고 싶은 날이나, 기타 등등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줄기차게 소환됐다. 배울 점을 찾아볼 수 없는 말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하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어려운 점이 많다정도의, 소소한 인생의 덕담 정도로 치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민족의 책무를 추궁하는 방망이가 특정인에게 과격해짐을 목격한다.



티파니의 2차 손글씨 사과문

(사진 출처 : OSEN http://osen.mt.co.kr/article/G1110485060 )



역사를 잊은 민족에 대한 푸닥거리가 대대적으로 이뤄지는 815일 광복절이 올해도 돌아왔다. 올해의 희생양은 소녀시대 티파니였다. 그는 일본 공연을 마치고 자신의 SNS에 사진을 한 장 올린다. 이 사진은 특정 앱의 보정을 거친 사진으로, 앱은 GPS에 따라 사진을 업로드한 위치에 어울리는 스티커를 자동으로 부착한다. 티파니의 사진에는 일본 전범기를 떠올리게 하는 스티커가 붙었다. 사람들의 반응에 문제를 깨달은 티파니는 사진을 3분 내에 삭제하지만 대중은 용서하지 않았다. 티파니는 그 뒤로 수기로 쓴 사과문을 두 번 작성해야 했으며, 끝내 출연하던 프로그램인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하차했다.

최근 KBS 프로그램에서는 장동민도 하차한 바 있다. 장동민은 팟캐스트 방송에서 개보년등의 심각한 여성혐오 발언을 하고도 방송에 계속 나왔지만,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한부모 가정 자녀를 희화한 꽁트 이후 두 번이나 논란을 일으킨 연예인을 공영 방송에 출연시킬 순 없다KBS 측의 입장과 함께 당시 출연하던 KBS <나를 돌아봐>에서 하차했다. 이후로도 그의 하차에 부당하다는 의견이 유상무 등 동료 연예인과 네티즌들에 의해 꾸준히 제시되었고, 몇몇 프로그램에서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여자 아이돌들에게 어느 수준인지 명확하지도 않은 역사적 지식을 갖추길 강요하고

그러지 못한 이들에게 미래가 없다고 협박 중이다.



티파니와 장동민의 공통점은 그들이 연예인으로써 물의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그러나 장동민이 직업인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며 공적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방송에서 벌인 실수(‘실수라고 말할 수 있다면)와 티파니가 개인적인 계정에 전범기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벌인 실수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엄밀히 말해 사진에 붙은 스티커는 전범기를 떠오르게 하는 이미지였을 뿐, 전범기도 아니었다. 더불어 장동민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한부모 가정을 모욕했지만, 티파니가 모욕한 것이 무엇인지는 애매하다. 티파니와 장동민은 모두 KBS 프로그램에서 하차했지만 티파니가 장동민과 같거나 비슷한 무게의 물의를 빚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역사의식의 부재가 문제가 되어 사과하는 여자 아이돌의 모습은 익숙하다. 바로 몇 달 전에도 AOA의 지민과 설현이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뭇매를 맞았다. 결국 두 사람의 눈물이 기사화되고 나서야 비난여론은 사그라들었다. 13년도 가장 뜨거운 걸그룹 중 하나였던 시크릿의 전효성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의 발언이 일베 유저일 것이란 의혹을 일으킨 후, 급격히 주가가 추락하기도 했다. 이 역시, 일베 유저임을 계속해서 의심받고 있는 랩퍼 블랙넛이 방송과 음원 순위에서 승승장구하는 일과 비교된다. 한국 사회는 여자 아이돌들에게 어느 수준인지 명확하지도 않은 역사적 지식을 갖추길 강요하고, 그러지 못한 이들에게 미래가 없다고 협박 중이다.

 


보호를 외치는 소수자들에게 엄격한 도덕적윤리적 잣대를 대는 것은 강자가 가진 권리 중 하나이다.

 


메갈리아가 생긴 이후 여러 노선으로 갈라진 한국 페미니즘 운동들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고분고분하게 말하라거나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비난한다. 특히 메갈리아가 사용하는 워딩이 여성혐오에 기반한 미러링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성혐오적 언어를 양산한다며 비윤리적이라고 말한다.

이는 별로 특별하지 않은 광경이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시위를 하거나,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거리로 나설 때에도 왜 보다 점잖고 품위 있는 태도로 나오지 않냐고 묻는 이들이 있었다. 보호를 외치는 소수자들에게 엄격한 도덕적윤리적 잣대를 대는 것은 강자가 가진 권리 중 하나이다. 티파니와 장동민이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무게가 다른 문제를 일으켰음에도 같은 처분을 받은 것은 티파니가 여자 아이돌이란 점과 무관하지 않다. 국가기관장이 워크샵에서 천황폐하 만세 삼창을 부르는, 치명적인 역사의식 부재를 노출하는 일은 징계도 아닌 경고에 머물렀다. 그러나 여자 아이돌의 경우 그를 비난하는 일이 일종의 스포츠가 된다.


 


쇼케이스 중 고개 숙인 지민

(사진 출처 : 스포츠 조선)



사람들은 고개 숙인 여자 아이돌의 모습을 좋아한다.


 

티파니의 게시글이 문제가 됐을 때, 어떤 사람들은 티파니의 SNS에 올라온 명품백 사진을 가리키며 명품백이나 자랑하는 골빈 여자로 만들었다. 티파니에게 모욕당한 가상의 누군가를 만들어 낸 의도가 분명한 비난이었다. 그들은 결국 티파니의 자필 사과문을 성의가 없다는이유로 두 번이나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사람들은 고개 숙인 여자 아이돌의 모습을 좋아한다. 어리고 예쁘지만 내 것이 아닌, 나보다 돈을 많이 버는 여자가 내 앞에서 고개 숙이고 울며 사과하길 바란다. 자신의 여성혐오를 역사의식이라는 명분에 기대 표출하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초라한 남근을 추켜세우는 데 다수가 동조하고, 공영방송사가 협력했단 사실은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여자 아이돌과 미소지니스트, 모두의 어두운 미래에 광복은 언제 올까.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세일러문 크리스탈과 오마이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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