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차게 실패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 <할머니의 수요일> 上

by. 연필


들어가며

:아무리 요즘 초등학생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해도

 

20177월과 8월 우리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더운 여름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우리 학교 페미니즘 학회 사람들과 함께 두 달간의 여름방학을 각종 세미나로 불태웠다. 그 중에는 내가 제안한 <아동문학에 드러난 여성혐오 분석과 비판> 세미나 역시 포함되어 있었는데, 세미나를 진행하면 할수록 회원들은 우리의 활동이 그저 우리들만의 공부로 끝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부딪혔다. 아무리 요즘 초등학생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해도, 이런 걸 보게 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초등교과서에 수록된 아동문학 작품들을 골고루 읽고 비판하자는 기존의 계획을 수정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유명한 작가들 중 한 명을 선정하여 그 작가의 책들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작가에게 비판의 메일을 보내는 것을 세미나의 목표로 설정하였다. 우리는 나는 이제부터 남자다’(2002), ‘할머니의 수요일’(2004, 2017개정) 등을 쓴 이규희 작가의 작품을 비판하기로 하였고, 글을 완성한 뒤 이규희 작가의 작품을 출판한 출판사에 문의하여 우리의 글을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며, 출판사는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다.

 

그러나 우리가 보낸 메일에 수신확인이 떴음에도 불구하고, 이규희 작가에게 우리의 글이 닿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글이 언젠가 그분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에 우리의 글을 월간여기에 투고하는 바이며, 그 시작을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소설 <할머니의 수요일> 비평과 함께하고자 한다. <할머니의 수요일>은 총 16장의 목차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앞으로 이 책의 6, 7, 8, 9, 12, 13, 16장을 자세히 뜯어보도록 하겠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아이캔스피크>를 본 당신이라면, 그 동안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를 바라보던 시각이 어땠는지 떠올리며 몸서리 칠 것이다. 당신 주위의 몇몇 아동들을 떠올리고 있다면, 이 글과 끝까지 함께하며 입을 다물 수 없을 것이다.



책 소개


▲<할머니의 수요일> 표지.

출처: 네이버 책


 <할머니의 수요일>은 2004년에 출간된 이규희 작가의 소설이다초등학교 5학년, 6학년 과정에 교과연계 된 작품이기도 하며 2017년에 개정판이 나왔다작가를 대변하는 다영이라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방학 숙제를 위해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실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인 김순덕씨의 경험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다양한 허구의 인물들 또한 등장한다. <할머니의 수요일>에 등장하시는 김순덕씨의 증언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1, (1993, 한울)의 김덕진(가명)씨의 증언과 일치한다.


 

 

**이 글은 <아동문학에서 드러나는 여성혐오 분석과 비판> 세미나에 참여한 김지우 회원의 발제문을 바탕으로 쓰였으며, 필자를 로 지칭한다는 것을 알립니다.

 

 

 

할머니의 수요일 6<짓밟힌 꽃잎>

무엇을 위한 강간장면인가.

 

김순덕씨는 조선 ㅇㅇ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일본에서 다시 배를 타고 상하이에 내리게 된다. 상하이에 내린 피해여성들은 군인들의 트럭에 실려 가즈오 부부의 벽돌집에 도착하여 일본식 이름을 받고 각자 방을 배정받는다. 피해여성들은 방을 배정받은 바로 다음날부터 성폭행을 당하기 시작한다. 다음은 김순덕씨가 일본군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아래 인용에서 는 김순덕씨다.


**성폭행 트리거 워닝**강간 장면이 비교적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도대체 이 낯선 곳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며 군인이 들어왔다.

, 누구세요?”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도사렸다. 하지만 군인은 뭐가 그리 좋은지 누런 이를 내보이며 히쭉히쭉 웃었다.

히얏, 예쁜 조센징이 왔구나! 우리를 기쁘게 해 주려고 왔어! 자아, 이리 오너라.”

군인은 잔뜩 몸을 도사리고 있는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 왜 이러는 거예요?”

나는 잔뜩 겁에 질린 채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군인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어서 이리 오라니까! 시간이 없어, 어서!”
군인은 우악스럽게 나를 잡아끌어다가 나무 침대에 휙 쓰러뜨렸다. 그때야 나는 알았다. 그 군인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를.

으악! 안 돼요, 안 돼!”

나는 몸을 도사린 채 비명을 질렀다. 그럴 수는 없었다. 나의 고귀한 순결을 이렇게 왜놈에게 빼앗길 순 없었다. 연지곤지 찍고 족두리 쓰고 꽃단장한 새색시가 되어 시집가고 싶었다. 그래서 횃댓보를 친 아름다운 신방에서, 연꽃 봉오리 같은 쪽진 머리를 풀고, 원앙금침에 누워 나의 첫날밤을 고스란히 새신랑에게 바치고 싶었다. 그런데 이 낯선 중국 땅에서 짐승 같은 일본 군인에게 빼앗기다니!

안 돼애! 저리 비켜!”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군인은 먹이를 본 맹수처럼 무섭게 나에게 달려들었다. 겁이 난 나는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군인의 팔뚝을 힘껏 깨물었다.

으아악!”

군인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어찌나 세게 물었는지 군인의 팔뚝에는 금방 빨갛게 잇자국이 났다. 그러자 군인은 고양이에서 호랑이로 변하고 말았다.

이런, 못된 년!”

군인은 길길이 날뛰며 내 양쪽 뺨을 철썩철썩 때렸다. 눈앞에서 불이 번쩍번쩍 났다. 그래도 내가 계속 발버둥을 치자 군인은 이제 군홧발로 나를 걷어찼다.

아아, 이러지 말아요. 제발 이러지 말아요!”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이렇게 허물어질 수는 없었다. 나의 순결을 이렇게 무참하게 빼앗길 순 없었다.

바보! 이 조센징 바보 천치야! 지금 날 피한다고 네가 무사할 것 같으냐? 넌 이제 나 같은 군인들을 하루에도 수십 명씩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얌전히 구는 게 좋아!”

군인은 찌든 무명 수건으로 내 입을 꼭곡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다급하게 내 옷을 잡아챘다. 내가 더욱더 발버둥을 치자 군인은 총대로 내 머리를 후려쳤다.

나는 가물가물 정신을 잃으면서도 군인의 손이 거머리처럼 스멀스멀 내 몸으로 기어 올라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악!”

나는 갑자기 몸 아래쪽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큰 충격을 받고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만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순덕아, 이리 오렴, 어서!”

꿈속에서 민우 오빠가 들국화 꽃다발을 들고 나를 불렀다. 하지만 나는 웬일인지 자꾸만 뒷걸음질 쳤다.

순덕아, 조심해. 거긴 낭떠러지야!”

민우 오빠가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뒷걸음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절벽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으악!”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방 저 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싫어, 싫어! 집에 갈래! , 집에 갈래!”

옆방에서 이쁜이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간호사가 되고 싶다던 이쁜이, 이제 겨우 열세 살밖에 안 된 이쁜이도 나처럼 어떤 군인에게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아!”

나는 머리를 벽에 찧으며 울고 또 울었다.

그날, 나는 그렇게 나의 꽃다운 처녀를 잃었다.

바로 뒷장에 젊은 김순덕씨가 쭈그려 앉아 울고 있는 삽화. (70-71p)

 

-피해자 전시는 이제 그만

<할머니의 수요일> 9페이지를 차지하는 <짓밟힌 꽃잎>에서 일본군 '위안부' 여성에 대한 일본군의 강간장면은 중간 삽화 포함 5페이지의 분량을 차지한다. 이 장면의 강간묘사는 피해자의 시점에서 서술되어 있다. 이러한 묘사를 읽을 때 독자는 가해자가 무슨 일을 했는지보다는 피해자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또한 성범죄 장면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가해자가 강제로 성기를 침입시켰다는 표현을 나는 갑자기 몸 아래쪽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큰 충격을 받고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라는 식으로심지어 이 장면도 피해자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뭉뚱그려 묘사하였다. 그러나 이런 묘사 방식은 일본군들의 만행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도 없고, 가해자가 저지른 폭력을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성폭력 피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강간 스너프 필름을 찍는 것과 같다.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1(1993,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신대연구회)에서 김덕진이라는 가명을 쓰신 피해여성분의 증언이 할머니의 수요일의 김순덕씨의 경험과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증언집에서는 성폭력 장면에 대한 묘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작가가 굳이 할머니의 수요일에서 김순덕씨가 강간당하는 장면을 상상하여 묘사한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 이는 명백하게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며, 할머니의 수요일개정판에서도 이것이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유감이다.

 

-저항했냐고 묻지 마라

작가는 성폭력 장면을 묘사할 때, 성폭력 피해자가 이해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매우 노력하고 있다. 첫째로 피해자가 얼마나 격렬하게 저항하였는지 강조했고, 둘째로 피해자가 성관계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으며, 마지막으로 피해자가 얼마나 큰 폭력성적인 폭력, 물리적 폭력에 노출되었는지를 강조했다. 이쁜이를 언급하며 피해자가 얼마나 어린 나이인지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는 저항하지 않아도/못해도, 성경험이 있어도, 피해를 입은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판단되어도, 나이가 적어도/많아도 피해자다. 가해자의 대부분이 남성을 비롯한 사회적/물리적 강자이고,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물리적 약자라는 것이 성범죄의 특징이다.[각주:1]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가해자에게 저항했다가 폭행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것을 원치 않아 저항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들의 증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각주:2] 작가의 묘사는 실제 성폭력 피해자의 족쇄가 되는 진짜 피해자이미지를 재생산한다.

 

-‘순결이 웬 말이냐

이뿐만이 아니다.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고, 순결을 바친다.’, ‘빼앗긴다.’ 등의 표현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페미니즘 웹진에서는 너무 낡은 이야기일지 몰라도) 순결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소위 처녀막이라고 불리는 질막이 존재하는 것이 순결인가? 태어날 때부터 질막이 없는 사람은 순결하지 않은가? 성관계 경험이 없는 것이 순결인가? 그렇다면 성적인 행위라고 여겨지는 모든 행위를 했지만 성기결합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순결은 지켜진것인가? 클리토리스 자위만 해본 적이 있는 여성은 순결을 잃지 않은 것이고, 손가락을 질에 삽입하여 자위한 여성은 순결을 잃은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손가락에 의해 순결을 잃을 수 있는가? 순결이란 가부장제가 여성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분들은 인권을 침해당한 것이지 그 개념조차 모호한 순결을 잃은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이 책이 출판된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독자들에게 순결은 그렇게 큰 가치를 가지지도 않는다. ‘순결을 잃었다는 표현의 반복은 순결을 여성의 최우선가치로 여기는 사회에 살았던 피해 여성들에게 지속적으로 피해사실을 상기시키는 명백한 2차 가해다. 또한 이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순결이데올로기라는 허상을 너무나도 중요하여 잃어버리면 큰일 나는 것이라며 독자들을, 특히 어린 여성들을 겁주려는 시도로 보이기도 한다.

 

To be continued...

아무리 2004년도에 출간된 책이라고 해도 그렇지, 2017년에 개정판이 나왔는데 너무하다 싶은가? 놀라지 마시라, 오늘 살펴본 부분은 6장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겐 아직 5개의 장이 남아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았습니다...) 남은 연재를 마치기 전까지 여러분의 분노가 여러분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 소개 :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내가 배운 모든 새로운 것들은 나를 낡은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나는 내가 낡은 사람이 될 날을 위해 배운다.


코너 소개 : 숙명여자대학교 중앙여성학 동아리 SFA 회원들이 2017년 여름방학을 불태우며 진행한 <아동문학에 드러난 여성혐오 분석과 비판> 세미나의 내용을 바탕으로 연재하는 코너입니다. 날씨가 많이 선선해진 9월이지만, 이 코너가 여러분께 또 한 번의 뜨거운 여름을 선사할지도...?


  1. 국가통계포털, 수록기간 1993~2015, 「범죄자 성별(1993~)」에 따르면 성범죄자 27,199명 중 26,651명, 즉 98%가 남성이었다. [본문으로]
  2.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한국정신대연구회, 1997,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2』, 한울, 22. 진경팽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군인들이 폭행을 하지만, 보통은 여자들이 맞지 않으려고 미리 주의를 하면서 한 번 더 하자는 식의 군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라고 한다. [본문으로]
5편. 학교는 여성학을 의무교육하라!
by. 한의 민족


어느덧 대학은 새로운 학기를 맞이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안고 강의시간표를 조회한다. 여전히 여성학은 보이지 않고 나는 좌절한다. 페미니즘이 공론의 중심이 되면서 많은 수의 학생들이 여성학 수업을 교양 필수로 배워야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학은 교양 필수가 되기는커녕, 강의 수가 터무니없이 적어 선택의 자유가 없거나, 아예 여성학이라는 글자 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여성'이 들어간 강의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담당 교수의 지난 여혐 발언이나 행실이 캥겨 수강과 포기의 갈림길에서 갈등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까지 한국의 대학에서 여성학 강의를 풍부하게 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듯하다. 1990년대에는 약 69개 대학 내에 여성학이 개설되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대학내 여성학 관련 강의, 프로그램과 석사과정들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급격히 축소되거나 폐지되었다는 사실은 여대생으로서 뼈아프다. 지성의 최전선인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외면한 것은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하는 교육 기관'이라는 기능을 져버리고 단순한 학원으로 전락하겠다는 선언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성차별으로 인한 병폐가 극에 달한 사회는 다시금 페미니즘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은 시대의 요구인 페미니즘에 기민한 반응을 보여야 할 것이다. 또 대학은 한국에 만연한 성차별 정서를 환기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방법을 논함과 동시에 다가오는 글로벌사회를 대비하여 세계시민윤리이자 민주시민의 기본 소양인 여성학을 필수 교양으로 지정해 수학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90년대의 실패를 딛고 여성학을 대학에 유치시키기 위한 새로운 발상이 필요한 시기이다. 대학은, 학교는 페미니즘을 의무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도대체 여성학이 뭔데 그래? 바느질하고 다림질하는 거 배우는 거 아냐?
 
a) 여성학은 남성중심적인 학문 세계에서 규정된 여성의 역할을 거부하고, 비판하고, 여성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학문이야.
b) 여성학은 새로운 성별질서를 구성하기 위한 학문이자 실천이야.
c) 바느질과 다림질과 같은 '여성이 하지 않으면 비난받는 일들'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켜주는 학문이야.

 (*여성학이 무엇인가라는 방대한 질문에 대해 필자 혼자만의 견해로 그 대답을 적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여성학 개론서의 도움을 받았다. 여성학의 정의, 특징, 다루는 영역과 연구 영역, 학문적 목표에 관한 설명은 한국여성연구소에서 나온 『새 여성학 강의(2005)』의 1장 「여성학이란 무엇인가」 꼭지에서 많은 부분을 발췌하고 정리했음을 밝힌다. 아울러 이 글을 넘어 여성학에 대한 전체적인 개괄을 알고 싶다면 본 책을 일독할 것을 권하며 글을 시작한다.)
 


여성학은 남성중심적이고 성차별적인 기존의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이다.

당신은 일반 시민에게 참정권이 보장된 때를 아는가? 18세기~19세기 프랑스와 미국의 인권선언을 통해 일부 계층의 특권이었던 참정권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평등하게 부여되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 당신은 '여성'이 최초로 참정권을 얻게 된 때가 언제인 줄 아는가? 

2015년 개봉하여 2016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던 영화 <서프러제트>는 20세기 초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을 다루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여공 '모드 와츠'를 비롯한 여성들은 열악한 노동 조건이 야기한 짧은 수명, 성적 착취,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으며 남성 가장에게 귀속되는 삶과 가난의 대물림과 같은 차별과 억압이 있었음에도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었기 때문에, 남성 정치인들에게 대변되고 규정될 뿐이었다. 그 결과 여성의 문제는 항상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여성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여성참정권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영화에서도 그려지고 있듯, 여성참정권 운동을 한다는 것은 경찰에게 체포당하고, 남편에게 쫓겨나고, 주위에서 '과격한 여자'라는 시선을 받는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었다. 서프러제트의 배경이 되는 영국에서는 왕이 참가하는 경마대회에 한 여성이 “여성들에게 투표권을!”이라고 적힌 플랜카드를 두르고 몸을 던진 후에야 비로소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그것이 불과 1918년. 지금으로부터 겨우 100년 전이다.

만민의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은 프랑스 대혁명이 성공한 이후에도 여전히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동시에 "만민"에 여성은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낀다. 당시 남성들은 여성의 참정권을 외치는 여성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여성은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고 균형 감각이 없어서 정치적인 일을 잘 판단하지 못한다.’, ‘여성이 투표할 경우 사회 근간이 흔들린다. 아버지, 남자 형제, 남편 놔두고 왜 자기들이 나서는가.’, ‘일단 여성이 투표권을 가지면 이를 멈추는 건 가능하지 않다. 여성은 국회의원, 정부 관료, 판사가 될 권리를 또 요구할 것이다.’ 이 주장들로 비롯하여 알 수 있는 사실은 남성은 여성을 동등한 시민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성학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여성학은 기존의 차별적 편견에 도전하고 비판하는 의식에서 출발한다. 즉 여성학은 남성 중심적인 학문세계에서 규정된 여성의 역할을 거부하며, 여성의 삶을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인 것이다. 따라서 여성학은 여성연구 또는 여성에 관한 강좌를 통칭하며, 일차적으로 사회 속에서 여성의 역할, 경험, 지위를 새롭게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학은 다학제적 학문임과 동시에 실천적인 학문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여성학은 처음부터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려는 구체적인 사회적, 정치적 쟁점을 둘러싼 여성들의 운동을 기초로 출발하였다. 1960~1970년대 서구사회 여성운동의 활성화에 기반을 두고 여성해방운동을 목표로 하는 실천학문으로서 출발한 것이다. 따라서 여성학은 여성운동의 전개와 함께, 기존 학계에서의 지식이 가정하던 객관성을 의문시하고 그것이 전제하던 가정들을 해체하며, 여성의 역사와 체험을 무시하는 전통 학문을 비판하고 도전하면서 성장하였다.

여성학이 다루는 영역은 아주 다양하다. 여남의 인격 형성과 사회화의 문제, 가족의 문제, 성과 몸에 관련된 문제, 취업과 경제생활, 여성과 복지에 관련된 모든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여성학의 특성은 이 모든 다양한 주제를 포괄하는 점이 아니라 이 영역들을 여성의 시각과 입장에서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다양한 사회문제와 여성 혹은 남성의 관련 방식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성별 관계와 차이에 주목하기도 한다.

여성학의 연구 영역은, 현대사회에서 성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는 인식 위에서 여성들이 현재 당하는 사회적 모순과 여성 자신의 갈등(여성문제의 영역)에 초점을 두며, 미래에 대해서는 여성해방과 그 방법을 전망하고(여성해방론의 영역), 과거에 대해서는 여성에 대한 정당한 위치 부여와 평가(여성사나 여성예술가, 여성사상가의 재평가 영역)을 포함하는 논의를 모두 담고 있다.

여성학의 학문적 목표는 기존 지식에 담긴 남성 중심성을 바꾸고, 여성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여성적 관점에서 인간의 경험을 분석하는 것, 나아가 여성이 ‘여자’가 아닌 한 명의 시민으로서 존립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내 학점 낭비해 가면서 여성학 배우기 싫은데, 굳이 필수화를 해야 해? 교육의 자유를 보장해야지.

a) 실질적인 성평등을 이룩하기 위하여 여성학 수업은 필수적이다.
b) 일단 츄라이츄라이~!
c) 다른 교양필수 과목은 너무너무 듣고 싶어서 들었니?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시몬 드 보부아르

여성운동은 투쟁을 통해 여성의 참정권을 쟁취했고, 교육권을 확보했으며, 호주제를 폐지하는 등 여성과 남성간 제도적 차별을 철폐해갔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여자"이다. 여성은 남성과 같은 일을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성에 비해 60%에 불과한 돈을 받는다. 집안 대소사를 결정할 때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남성들이고 여성들은 그 옆에서 조신하게 과일을 깎고 있는 풍경이 익숙하다. 같은 성적을 냈을 때 남성 동기는 '가장'이 되어야 하므로 승진에 우선권을 받는다. 여성 태아만을 선별적으로 낙태하는 데 일조했던 국가가 이젠 그들에게 출산절벽시대이니 아이를 낳으라 독촉한다. 심지어 '몰카'는 남성이 여성이 화장실에 가는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조차 포르노로 소비한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처럼 사회는 여전히 남성중심적이다. 실제로 역사는, 사회는, 문화는, 그리고 국가는-사실상 모든 것들이- 남성을 중심으로 구축되고 그들의 시선으로 구성된다. 남성은 여성을 같은 사람으로, 동료로 보지 않는다. 남성의 시선 속에서 여성은 단순한 대상, 부차적인 존재로써 존재할 뿐이다. 문화적으로 성별 불평등이 잔류한 상태에서 ‘인간’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기계적 평등에 불과하며 실효성이 없다. 결국 제도적 평등을 넘어 우리 사회에 안개처럼 산재한 여성혐오를 걷어내야 할 필요성이 재기되는 것이다. '여성은 연약하고 섬세한 존재'나 '여성은 모성본능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자녀 양육을 맡기에 가장 적합한 존재'라거나 '여성은 감성적이고 남성은 이성적'이라는 미신은 결국 여성을 부차적 존재, 아류, 이등시민에 묶어두는 역할을 한다. 남성들이 구성해 둔 미소지니 속에서 여성은 영원히 이등시민으로써 존재한다.

우리는 다시, 이것을 타파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페미니즘이라는 도구가 있다. 페미니즘은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과 혐오를 인지하게 해주고 나아가 차별을 철폐하고 진정한 평등을 이룩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여성학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시야와 사고방식을 제공한다.
 
이처럼 여성학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민주시민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교양 과목이 된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여성학 교양 수업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인가. 여성학의 필수교양화를 촉구하기에 앞서 우리는 대학 내 여성학의 위치에 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성학은 다학제적 학문이라는 특징에 따라 주로 협동과정이라는 형식으로 대학에 도입되었는데, 그 결과 실질적으로 전임교수나 ‘공식적 학과’ 구조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체계적인 교과과정 조정이 어려웠으며, 학과의 물리적 지원이 거의 부재하기 때문에 운영과 관련된 재정확보의 어려움, 학생정원 자체의 불투명함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여성학과의 행정적 부실은 1995년 5.31개혁 정책 이후 대학정책이 시장친화적 효율성을 우선하는 ‘아카데믹 캐피탈리즘(academic capitalism)’과 맞물리며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1990년대 까지만 해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여성학 프로그램과 학과는 축소되고 현재 별도 학과로 운영되는 여성학과는 없다. 이처럼 대학 내 여성학과 자체가 부재한 상황에서 당장 여성학이 교양 필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인 전망은 담보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여성학 교양”이 단순히 이론전달 수업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한다. 여성들이 실제로 겪는  차별과 억압에 대한 감수성은 여성학을 단순한 학문으로 대해서는 배울 수 없다는 큰 맹점을 갖는다. 또한 성적 평가가 병행하는 교과목의 형태로 진행되어서 학생이 강당 내에서 교수가 갖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여성학은 또다시 학점 경쟁의 콜로세움이 될 것이다. 여타의 교양과목과 마찬가지로 여성학이 대형강의로 진행될 경우, 개인의 경험을 발화하고 교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여성학의 실천적 특성을 간과한 채, 권위주의적이고 일방향적인 이론 수업으로 경직될 것이다.

여성학 교양 필수화 담론은 대학 내 여성학 정착 실패와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여성학은 반드시 배워야 할 과목이지만 여성학을 대학에 유치시키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지 않은 채 단순히 교양필수화 시킨다면 여성학은 2000년대의 고배를 다시 한 번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실패의 기억은 역설적으로 여성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다시 떠오르는 페미니즘 붐에 발맞추어 대학의 현실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여성학 교양 강의를 장기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시기이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의 이권만을 챙기는 이익집단이므로 교사자격이 없다. 남혐교사, 동성애 옹호 교사를 퇴출하라!

a) 남혐은 없어! 같은 시민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우자는 게 왜 남혐이니? 
b)니가 아무리 난리쳐봐도 네 옆에 동성애자는 사라지지 않아. 같은 시민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편이 빠르겠다!
c)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면 성차별주의자라는 말인데, 성차별주의자는 더더욱 교사 자격이 없다!  


우리에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7월 말 인터넷 매체 닷페이스에 "학교에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한 이유 세가지!"라는 인터뷰 동영상이 게시되었다. '여성에 대한 혐오의 언어가 무차별적으로 사용되고 성차별과 성폭력이 끊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차별적인 언행을 돌아보고 인권이 존중되는 성평등한 학교를 만들자는 제안'이 페미니즘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혐오세력은 인터뷰를 한 해당 교사를 '"남혐"교사'나 '동성애 옹호 교사'라는 타이틀을 붙이며 한 달 가까이 괴롭히고 있었다. 이에 초등성평등연구회 교사들은 지난 8월 26일 밤 11시 정각부터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왜 학내에서 성평등 교육이 필요한지를 적은 글과 함께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해시태그가 붙은 손글씨 인증 사진을 올리는 ‘8·26 공동행동’으로 맞섰다.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이를 실천한 교사를 마치 학교와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문제적인 인물로 규정하고 혐오세력이 집중포화를 쏟은 이 일련의 사건은 현 시점 한국의 페미니즘 지형도를 보여줘 착잡한 심정을 달랠 수 없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페미니즘에 대해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잘못되고 편파적인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학습하고 재생산하는 혐오세력에 의해 오염되었다. 교육현장의 성평등 교육에 대한 무지도 심각한 상태이다. 그러나 교사가 왜 페미니즘을 교실로 가져왔는지,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비방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해당 교사가 페미니즘을 교실로 가져온 가장 큰 원동력은 "미안함"이라고 밝혔다. 학교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성차별적이다. 신체적인 활동의 장인 운동장을 전유하는 남자아이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여자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남자아이들이 활발하니까 그것이 당연한 풍경이라는 것은 성차별적인 편견이다. 이 뿐인가? 학생들은 "여자를 도구화시키고 트로피로 여기는" 글을 교과서에서 보고 듣고 읽으며 성차별적 편견을 내면화시킨다. 가해 학생의 괴롭힘을 참다 못해 울음을 터트리는 피해 학생에게 '걔가 널 좋아해서 그러나보다'라는 말을 하기도한다. 일본의 성인 비디오에서 나오는 여성의 신음을 밈화 시킨 '앙 기모띠'가 아무렇지도 않게 초등학교 교실에서 사용된다. 이 모든 것들은 남자 아동에게 성적 권력을 부여함과 동시에 여자 아동에게는 이의를 제기할 기회조차 박탈시킨다. 

페미니즘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왜?"라고 물어본다. 왜 운동장은 항상 남자아이들이 사용하고 있지? 왜 여자아이들은 조신해야 하지? 왜 전래동화에서 항상 여성은 남성의 어머니이거나 아내로만 나오지? 왜? 왜? 왜? 이 질문들은 한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인지하게 할 것이다. 또한 그것을 비판할 능력을 키울 것이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앙 기모띠~'라는 유행어를 더이상 재미삼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에 대한 비판이 오고 갈 것이다. 더이상 괴롭히는 남자아이에 대하여 '걔가 널 좋아해서 그러나보다'라는 말을 통해 가해 사실을 옹호하고 여자아이에게 참으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 받을 것이며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서 대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혹자가 걱정하는 것처럼 페미니스트 교사가 존재한다는 것이 여자아이에게만 유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페미니스트 교사의 존재는 교육현장 내부에 산재해 있는 성차별과 불평등을 지적하고 함께 수정해 성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은 억압과 차별에 대한 날카로운 감수성이자 그것을 철폐하고 성평등을 지향하는 정의에 대한 요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인권의 문제이자 민주시민사회의 기본 소양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페미니즘 교육과 그것을 알려줄 수 있는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하다. 적어도 교육자의 입에서 나온 성차별적인 발언때문에 상처입는 사람들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성평등 교육은 성평등 사회의 시작이며 성평등 교육은 페미니스트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된다. 학교가 가정 다음으로 사회화 훈련장이라면, 그들을 지도하는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아니어서는 안 된다. 

(출처: 페미니스트 교사 공동행동 트위터 계정 @teachersforfemi )


페미니스트 교사에 대한 혐오세력의 비방과 그에 맞선 지지성명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9월 7일 페미니스트 교사들에 대한 공격을 중단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으며, 페미니스트 교사 공동행동은 9월 26일 저녁 8시에 #학교에_페미니즘을 공동행동을 기획해 다시 한 번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페미니스트 교사행동은 학교에 페미니즘을 가져오기 위한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교실에 성평등이 도래할 때까지 이 술렁임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인 자신을 미워하게 만드는 것이 여혐 사회이며 호모소셜이 유지되는 방식이다. 남성사회가 여성혐오를 사용하는 방식을 알게 되면, 마치 내가 서있는 지반이 꺼지는 듯한 불안과 좌절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몸담아 온 사회가 나를 같은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느끼는 배신감을 감당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눈을 감고 사실을 외면하고 자신을 기만한 채 살아가는 편이 편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여성들이 그랬듯이 언젠가 눈을 뜨게 될 것이다.
불평등과 혐오를 마주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 이후에 우리는 맞서 싸울 수 있다. 그것 또한 지난하고 고독한 싸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성학은 그 길을 앞서 밟아간 선구자들의 존재를 알려주고 헤쳐 나갈 방법들을 제시한다. 여성은 여성 자매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고, 투쟁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투쟁할 것이다. 어떤 권력도 스스로 그것을 내려놓지 않지만, 여성들은 투쟁을 통해 다른 여성들의 권리를 쟁취해 왔다. 페미니즘이 걸어온 길이 그러했듯이, 이 길의 앞에는 승리가 약속되어 있다. 우리 모두 페미니즘을 하자!



출처: 
(사) 한국여성연구소. (2005). 『새 여성학 강의』, 동녘.
이나영. (2011). 한국 ‘여성학’의 위치성: 미완의 제도화와 기회구조의 변화. 한국여성학, 27(4), 37-81.

 

 





(사진 출처: 나이키)



 요가를 좋아하는 나는 이번에 NI** 요가복 신상을 보고 눈이 뒤집어져 버렸다. 가볍고 빨리 마르는 재질, 예쁜 디자인은 나 같은 충실한 구매자의 욕구를 끌어오기 딱이었다. 거기에다 다양한 인종과 체구의 모델들을 내세우는 광고와 강한 여성들을 내세우며 성차별에 반대하는 광고들을 통해 페미니즘의 가치를 표방하는 나이키는 페미니스트인 나에게 딱이었다. 


이렇게 나는 NI**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어느 날 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것도 꽤 오래 전 기사인데, NI**가 제3세계 여성과 아동의 저임금 노동을 통해 자신들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인권유린과 노동착취를 통해 제품이 생산되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내가 여태껏 소비했던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든 내러티브는 기만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물건을 살 때, 그 물건이 정말 필요해서 살 때도 있지만 대부분 우리는 그 상품에 둘려싸여진 내러티브에 매혹되어 구매한다.  예를 들어, 커피를 마실 때, 우리는 커피라는 상품 자체가 필요해서 사기도 하지만 커피를 둘러싼 여러 내러티브들을 함께 소비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커피한잔’, ‘친구와의 모임에서 빠질 수 없는 커피’, ‘카페에서 커피한잔 시켜놓고 공부하기’ 등의 내러티브 말이다. 


이렇듯 내가 NI**를 소비하는 데에는 운동복이 필요했던 것 이상의 무언가가 나를 소비하게끔 이끌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I run like a girl’이라고 쓰여있는 옷을 입어줘야 좀 더 전문적인 운동인처럼 보이는 동시에 충실한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페미니즘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이러한 기업들의 상품을 사면서 사실은 페미니스트적인 삶을 ‘소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어두운 제조과정을 보지 않게 하고 기업들은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조금 더 페미니스트적인 방식으로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선진국 여성들 혹은 자본을 가진 여성들에게 소비를 통한 자유와 해방감을 주기 위해 제 3세계 여성들의 값싼 노동력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로 인한 자유로운 자본과 노동, 기술의 이동은 기업들로 하여금 값싼 제 3세계의 노동, 그 중에서도 더 값싼 여성과 아이들의 노동력을 통해 비용절감을 가능케 한다. 정작 이런 기업들의 제품을 만들고 있는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은 소비주의를 누리는 소수의 여성들의 세계에 끼어들 자리가 없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가 시장에서 모든 것을 잠식해버린 결과 페미니스트 정체성은 일종의 소비주의적 정체성이 된다. 이는 실로 꽤 돈이 많이 되는 정체성이다. 이렇게 페미니즘이 기업의 이윤을 내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것을 ‘마켓 페미니즘’이라고 부르는데, 마켓페미니즘의 문제점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마켓페미니즘을 내세워 홍보하고 판매하고 있는 기업들이 제 3세계 여성의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3세계 여성들의 존재를 지워버린다는 점에 있다. 즉, 여성해방을 외치는 페미니즘의 문법으로 또 다른 여성들을 억압하는 것이다.



기업과 소비자가 힘을 모아 좀 더 평등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는 아름다운 환상에 취해있던 나는 이제 각성하고 더 이상 이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사실 이런 현실을 이미 포착한 많은 서구의 인권단체들은 제 3세계 여성과 아이들의 노동착취에 항의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들의 제품들을 사지 말자는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매운동을 한다고 현실은 더 나아지지 않는다. 서구의 의류 불매운동을 통해 일자리를 잃어버린 3세계 여자아이들은 24시간 집안일을 하거나 아니면 창녀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혹은 굶어 죽었을 수도 있다. 이렇듯 서구의 온정주의적인 선의의 제스처가 잔인한 아이러니로 드러나고 있다. 



<사진출처: fhttp://fashion2-013.blogspot.kr/2012/12/hippie-fashion.html>


그렇다면 제 3세계 여성들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다국적 대기업의 이윤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전통의상이나 전통예술품을 제작을 한다면, 이는 대안적 행동이 될 수 있는가?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가야트리 스피박은 그녀의 책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에서 제 3세계 여성들이 수제로 자국의 전통의상이나 전통 예술품을 만드는 행위들이 그녀들에게 예술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을 부여해주고 있지만 그들이 만드는 작품을 누가 입고 누가 소비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제 3세계의 ‘에스닉’ 복장을 서구 여성들이 걸치며 정치적인 올바름과 취향을 소비하는 것이 되어 1세계 부르주아 여성들의 나르시시즘을 만족시킨다며 스피박은 비판한다.  


체제와 체제에 대한 부정의 완벽한 일치

자본주의 체제가 진보하면서 새로운 민족을 식민화하고, 새로운 인종집단을 자본주의 노동시장으로 수입하고, 노동의 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자본주의를 새로운 유권자들에게까지 확장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서, 자본주의 체제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보편주의적 합리성을 손상시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제는 다양성과 차이까지도 포용하면서 자본주의는 자신의 외연과 내연을 넓혀가며 모든 것을 시장으로 귀결시키도록 한다. 다시 말하자면, 현대사회에서 다양성과 차이라는 것들은 어느 수준에서는 자본주의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페미니즘을 하고 있었나?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로써 여성들이 일한다는 사실 자체에 기뻐하기보다는 여성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어떤 이해관계 속에서 일하는가를 질문해야 함을 깨달았다. 가부장제뿐만 아니라 계급적 이해관계 또한 여성들의 삶을 직조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이 여성들의 삶에 억압의 굴레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구체적인 페미니즘 운동에 염두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애와 평등, 자유라는 아름다운 이미지 뒤에 숨어있는 정치적 책략들에 대해 페미니스트로서 지속적으로 의문을 품어야만 한다. 심지어 그것이 페미니즘의 외연을 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에 대한 대안을 찾기를 위해서는 섣불리 ‘페미니즘을 어떻게 실천할까?’라는 자기만족적인 질문보다는 잠깐만 뒤를 돌아보고 내가 지금 어떤 페미니즘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추구하는 페미니즘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어떤 교차로에 서 있는지를 계속해서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출처>


임옥희, 『타자로서의 서구』, 현암사, 2012

테리 이글턴, 김준환 역,『포스트모더니즘의 환상』, 실천 문학사, 2000

김혜련, 『아름다운 가짜, 대중문화와 센티멘털리즘』, 책세상, 2005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www.anotherworld.kr

마켓페미니즘에 관한 기사: https://newrepublic.com/article/132991/feminism-sal


<사진출처> 

나이키

구글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www.anotherworld.kr

http://fashion2-013.blogspot.kr/2012/12/hippie-fashion.html








필자 소개: 슬이 슬이 마슬이


깨달음에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 



내가 퍼스널 컬러 이론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

암탉



    이 사진, 익숙하지 않은가? ‘퍼스널 컬러를 검색하다 보면 한 번쯤은 꼭 마주치게 되는 사진이다. 일명 퍼스널 컬러 자가진단법이라고 돌아다니는 위 사진에 손등을 댔을 때 왼쪽이 더 화사해 보이면 쿨톤, 오른쪽이 더 화사해 보이면 웜톤이라고 한다. 지난 7월호에서 말했듯 필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화장에 관심이 참 많았다. 이 사진을 처음 본 것도 초등학생 때였다. 당시에는 퍼스널 컬러 이론이 화장품 업계와 완전히 결합하기 전이라서 이미지 개선의 개념이 더 강했고 (실제로 수업이나 강연에서 이미지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퍼스널 컬러 이론을 접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보다 상당히 마이너한 편이었다. 접할 수 있는 정보도 매우 적었고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유일무이했다. 이렇게 마이너했던 퍼스널 컬러 이론이 화장품 업계와 만나면서 퍼스널 컬러 이론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2012년 무렵 모 화장품 브랜드의 톤 마케팅이 그 시작이었다. 해당 브랜드는 간단한 웜톤, 쿨톤 자가진단법을 만들어 배포하면서 (우리 브랜드의 화장품을 이용해) 톤에 맞는 화장을 하라고 마케팅했다. 사실 위 사진도 그렇고, 해당 브랜드에서 배포한 자가진단법도 그렇고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왈가왈부 말이 많다. 혹자는 발암 짤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인 지금까지 이 자가진단법들이 통용되는 걸 보면 사람들은 확실히 퍼스널 컬러에 매혹된 듯하다. 딱히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만 사용하면 더 예뻐 보인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최초로 톤 마케팅을 시도했던 모 화장품 브랜드의 대성공 이후로 각종 화장품, 의류 브랜드에서 퍼스널 컬러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 해봐야 웜톤, 쿨톤 정도에 그쳤던 분류법이 라이트, , 뮤트 등등 더욱 자세히 나뉘어 대중화됐다. 여러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자신의 톤을 추측하거나 톤에 맞는 화장품을 추천해달라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그에 발맞춰 새로운 톤맞 제품이 시장에 출시된다. 처음엔 나도 퍼스널 컬러 이론을 순수하게 즐기고 있었다. 나에게 맞는 색의 화장품을 바르면 정말 혈색이 돌고 피부가 좋아 보였다. ‘톤맞제품을 찾아 톤에 맞춰 화장하는 게 재밌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뷰티업계 동향을 보면서, 최근 퍼스널 컬러 관련 여론을 보면서 엄청난 피로감을 느꼈다. 다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린 같은 흰 피부를 가진 나는 쿨톤?

    어떤 이론이든지 대중화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 또한 함께 대중화되기 마련이다. 퍼스널 컬러도 마찬가지다. 퍼스널 컬러 이론의 대중화로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가장 고통받는 부분이 바로 피부 색(밝기)과 퍼스널 컬러의 관계에 관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모 화장품 브랜드의 톤 자가진단표가 악몽의 시작이었다.

 

(출처: 이니스프리)

 

    해당 브랜드의 홍보 과정에서 희고 분홍빛이 도는 피부는 쿨톤, 까무잡잡하고 노란빛이 도는 피부는 웜톤이라는 낭설이 시작됐다. 후발 브랜드들도 별다른 연구 없이 선발 브랜드의 마케팅을 모방하기만 하다 보니 흰 피부=쿨톤이라는 낭설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버렸다. 문제는 한국이 흰 피부를 극도로 사랑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쿨톤병이라는 단어를 보면 알 수 있다. 퍼스널 컬러 이론이 대중화되고 흰 피부=쿨톤 공식이 퍼지면서 기다렸다는 듯 만들어진 신조어다. ‘쿨톤병은 쿨톤이 아닌데 쿨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에 걸렸다고 표현하는 단어다. 보통 여기서 쿨톤은 흰 피부를 뜻한다. 한 마디로 넌 쿨톤(=흰 피부)이 아닌데 왜 쿨톤(=흰 피부)인 척하냐는 거다. 인터넷에 쿨톤병을 검색해보면 본인의 피부가 하얗다고 말하거나, 본인의 피부보다 밝은 파운데이션으로 화장하는 사람들을 쿨톤병이라며 조롱하는 글들이 쏟아진다. 퍼스널 컬러 이론이 오도되면서 한국의 흰 피부 선망을 제대로 건드렸음을 보여준다. 사회가 강요한 미적 기준을 채우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에 걸렸다고 조롱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쿨톤(=흰 피부)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비추면서 무의식중에 쿨톤(=흰 피부)이 더 우월한 것이고 웜톤(=까무잡잡한 피부)은 열등한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 결국엔 진짜 쿨톤(=화장하지 않아도 원래 흰 피부)’을 치켜세우며 미의 기준을 세분화하고 공고히 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더욱 유해하다.

 

    쿨톤=흰 피부 공식이 유해한 또 다른 이유는 퍼스널 컬러 이론에 구체적인 특정인의 이미지를 끌어오는 데 큰 공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실용적인 면만 강조되어서 그렇지 퍼스널 컬러 이론은 일종의 색채학이다. ,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것도 단순히 색들을 이해하기 쉽게 분리할 목적으로 붙인 이름일 뿐이다. 하지만 쿨톤=흰 피부라는 낭설이 퍼지고 퍼스널 컬러 이론이 뷰티업계와 결합해 대중화되면서 톤에 특정 연예인들의 이미지가 부여됐다. “얘도 피부가 하야니까 쿨톤이야하면서 피부가 흰 온갖 연예인들을 다 소환해낸 것이다. 업계도 이를 놓치지 않는다. 우리는 연예인이 광고하는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해당 연예인의 이미지를 소유하고 소비한다. 요새는 퍼스널 컬러가 그 상품의 자리를 꿰찼다. 퍼스널 컬러에 특정 인물(연예인)의 이미지를 적용하여, 톤의 탈을 쓴 해당 인물의 이미지를 소비한다. 여름 쿨톤 아이린의 흰 피부와 청순한 이미지를 내 것으로 하고자 하는 이들은 아이린이 광고하는 상품에 돈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여성의 신체(흰 피부)를 토막 내고 대상화하고 미적 기준으로 내세워 결국 지출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기존 뷰티 산업의 전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왜 또 여자만

    누군가는 퍼스널 컬러를 알아감으로써 더 다양한 색들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퍼스널 컬러 진단으로 유명한 모 업체에서도 퍼스널 컬러를 통해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라고 설명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대로 퍼스널 컬러 이론이 이롭게 쓰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실상을 보면 퍼스널 컬러라는 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 같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자신의 피부색에 대해 한탄하며 난 이런 피부색을 가졌으니 이 톤이고 이 색깔 밖에 못 쓴다고, 톤에 맞지 않은 색을 바른 날은 너무 못생겼다고 속칭 톤신병자적 면모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연예인이 어울리지 않는 화장을 하고 나오면 이 연예인은 무슨 톤인데 무슨 색을 써서 톤그로다.”, “톤그로를 끌어서 얼굴이 어때 보인다.”고 말하는 댓글들이 자주 보이지 않나? 퍼스널 컬러 이론은 정말 새로운 얼평의 잣대로 자리 잡았다. 화장 자체가 코르셋 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이젠 퍼스널 컬러까지 고려해서 화장하라니. 게다가, ‘톤신병자적으로 퍼스널 컬러에 집착하고 톤맞색만 사용해 예뻐 보이도록 꾸미는 건 결국 또 여성뿐이다. 모든 뷰티 아이템이 그렇다. 왜 항상 여성만 꾸미고, 여성만 강요받는가? 내가 환멸을 느끼는 지점은 여기다.

 

여대생들의 월경, 안녕한가요?

암탉

 

(출처: Gregory Reid)

 

    “이 생리대 써본 적 있어?” 얼마 전, ‘포궁 친구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한 친구가 뉴스 링크를 공유했다. 여성환경연대 조사 결과 국내 시판 중인 생리대 10개 제품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10개 제품 모두 유해 물질이 검출되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유해 물질을 배출한 모 생리대 사용자들의 피해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우연히 단톡방에 있는 친구 4명 모두 그 제품을 사용한 경험이 있었다. 나도 써보았다. 해당 생리대는 지금 내 서랍 속에도 자리 잡고 있는 익숙한 제품이고, 반쯤은 이미 써버린 상태였다. 기사를 본 순간, 불현듯 지난 생리 기간들이 떠올랐다. 많은 피해자들이 호소하듯, 내 친구들도 말하듯, 나도 월경혈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둘째 날부터 눈에 띄게 양이 적어지더니, 적어도 5일은 가야 할 월경이 3일째 저녁에 끝나버린 것이다. 대학에 입학한 후로 불규칙해진 생리 주기 탓인 줄 알았다. 심지어 (나에게 월경이란 언제나 불쾌하고 피곤한 것이었기에) 빨리 끝나서 좋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기사를 보고, 그저 둔하게 반응했던 내가 어찌나 바보 같던지. 왜 진작 의심해보지 못했을까? 포궁 친구들과도 이야기하지 못했을까? 생리대 포장지 속 방긋 웃고 있는 모델처럼 즐겁게 월경할 수 있는 날이 올까?


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단무지: 숙명여대 3학년 재학 중인 단무지입니다.

 

데이지: 이화여대 재학 중인 데이지입니다.

 

부기: 을지대학교 4학년 재학 중인 23살 부기입니다.

 

연꽃: 안양대학교 3학년, 22살 연꽃이라고 합니다.

 

2. 본인의 초경 경험에 대해서

 

암탉: 초경 이전에 성교육 수업, 혹은 책 등으로 월경에 대해 배워본 적 있나?

 

연꽃: 초등학교 보건 시간에 배웠던 것 같다. 초경을 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정도를 배웠다.

 

부기: 초등학교 3학년 즈음에 초경을 했다. 월경을 일찍 시작한 편이라 그 전에 배운 적은 없고 다 엄마로부터 배웠다. 나중에 조금 더 크고 성교육 시간에 (월경에 대해) 배웠는데, 그때 아 그거(월경)구나하고 알았다.

 

데이지: 초등학교 때 유행했던 살아남기 시리즈 중에 성교육 만화가 있었던 게 기억난다. , 유명한 작가님이 소설식으로 월경이나 연애에 대해 짧게 묘사한 책을 본 적 있는데, 거기서 여자 몸에서 피가 난다는 구절을 봤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초경해보니 매칭이 되더라. 학교에서 정식적으로 배운 기억은 없다.

 

단무지: 나도 초등학교 때 월경에 대해 배운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초경을 하면 키가 자라지 않는다.’고 주워들었다.

 

암탉: (정규 수업이 아니라) 인터넷, , 주변인을 통해 알음알음 월경을 배워서 실제로 월경을 겪어보니 당황스러웠던 점이 있었을 것 같다.

 

데이지: 연애 만화에서 피가 나온다고 묘사한 문장을 보았다. 그런데 실제로 (월경을) 해보니까 빨간색도 아니고, 선홍색도 아니고, 갈색 피가 나오더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처음에 이게 뭐지?’, ‘피인가?’, ‘내가 뭔가 잘못됐나?’ 생각했다.

부기: 나도 비슷하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침대에 피가 묻었는데 피가 갈색이어서 초콜릿이 묻은 줄 알았다. 음식을 흘린 줄 알고 엄마 몰래 숨겼다. 엄마가 이틀 후에 월경이 시작된 걸 아시고 이게 월경이라고 알려주셔서 그제서야 내가 초경을 했다는 걸 알게 됐다. 왜 책에서 본 거랑 다를까 궁금했다.

 

연꽃: 생리대를 몇 시간마다 갈아야 하는지 몰랐다. (월경을 시작하고) 첫 한 해 동안은 샐까봐 불안해서 30, 1시간마다 갈기도 했다. , 어릴 때는 월경이 불규칙하지 않나. 2일 째까지는 피가 나왔는데, 3일째는 하루 종일 안 나오다가 4일째는 갑자기 많이 나오고.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었는데 괜히 꺼려지더라. 어쨌든 (월경이) 성적인 부분 중에 하나니까 그때는 엄마랑 터놓고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단무지: 초경을 시작했을 때 엄마가 옆에 계셔서 바로 대처할 수 있었다. 다만, 초등학교 5학년 때 월경을 시작했는데 (주변 친구들은 아직 초경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월경을 시작했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아래에서 피를 쏟는다는 게 기괴하고 민망하게 느껴져서 힘들었다.

 

암탉: 당황스럽고, 생경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본인을 포함해서 주변인, 엄마나 친구들은 어떻게 반응했나?

 

데이지: 나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월경이 시작됐다. 그때는 발육차가 두드러지는 시기라서 월경할 것 같은 애들은 티가 났다. 그래서 (월경)하는 애들끼리 , 나 생리대 좀 빌려줘.” 하면 아 얘도 하는구나.’하고 뭔가 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과는 (월경과 관련된) 이야기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연꽃: 나도 엄마 말고 아빠랑은 생리를 주제로 한 번도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같이 살면 당연히 내가 월경하는 걸 알텐데 그냥 모르는 척하는 건지.

 

부기: 나는 친구들보다는 가족들로부터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내가 처음 초경을 했을 때 엄마가 아빠한테 말씀하셔서 아빠가 목걸이를 사다 주셨다. 밑으로 여동생이 2명 있는데 모두 초경할 때마다 목걸이를 선물해주셨다. 그래서 처음 월경혈을 발견했을 때 당황했던 것 말고는 그렇게 나쁜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 (월경을 일찍 시작해서) 친구들과는 월경에 대한 대화를 전혀 나누지 않았다. 중학교에 진학해서 친구들과 월경 이야기를 나누면서 충격받았다. ‘가족 외의 다른 사람들하고도 이야기할 수 있는 거였구나.’ 하고.

 

단무지: 엄마는 성인이 되었다고 축하한다고 좋게 말씀해주셨는데 나는 매달 아래에서 피를 쏟아내는 것도 싫고 생리통도 싫고 정말 우울했다. (월경이) 빨리 시작한 것도, 키가 자라지 않는 것도 싫었다. 초등학교 때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일이 있는데, 어떤 친구가 생리대를 빌려달라고 크게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애들이 조용히 교실을 나가는 거다.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표현한 거겠지.

 

3. 소설가 김훈이 단편소설 언니의 폐경속 허무맹랑한 묘사로 크게 질타받았다.

 

- , 어떡하지. 갑자기 왜 이러지...

- 왜 그래, 언니?

- 뜨거워. 몸 속에서 밀려나와.

나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다. 나도 생리날이 임박해 있었으므로 핸드백 안에 패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룸 라이트를 켜고 패드를 꺼내 포장지를 뜯었다. 내 옆자리에서 언니는 바지 지퍼를 내리고 엉덩이를 들어올렸다. 나는 언니의 엉덩이 밑으로 바지를 걷어내주었다. 언니의 팬티는 젖어 있었고, 물고기 냄새가 났다. 갑자기 많은 양이 밀려나온 모양이었다. 팬티 옆으로 피가 비어져나와 언니의 허벅지에 묻어 있었다. 나는 손톱깎이에 달린 작은 칼을 펴서 팬티의 가랑이 이음새를 잘라냈다. 팬티의 양쪽 옆구리마저 잘라내자 언니가 두 다리를 들지 않아도 팬티를 벗겨낼 수 있었다. 팬티가 조였는지 언니의 아랫배에 고무줄 자국이 나 있었다. 나는 패드로 언니의 허벅지 안쪽을 닦아냈다. 닦을 때 언니가 다리를 벌려주었다. 나는 벗겨낸 팬티와 쓰고난 패드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차 뒷자리로 던졌다.

(소설 언니의 폐경발췌)

 

암탉: 이건 김훈 작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곳곳에서 월경에 대한 낭설들이 폭주하고 있다. 들어본 것 중 가장 웃긴, 황당한 낭설이 있다면?

 

부기: (생리가) 오줌인 줄 아는 사람들이 참 많다. , 이번에 생리대 유해 물질 문제가 크게 터지면서 생리컵이 주목받지 않았나? 한 기사 댓글에 생리컵에 커피 담아서 줄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하더라. 정말 컵인 줄 알았나보다. 알지도 못하면서 훈수 두는 게 너무 화가 났다.

 

생리컵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정말 인 줄 알았나보다.

(출처: 오마이뉴스)

 

데이지: ‘너 생리 아직도 해? 일주일 째? 가서 빨리 싸고 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내 전 여자친구는 발레를 해서 생리 참았다가 한 번에 싼다는 글도 본 적 있다.

 

단무지: 중학생 때 친구가 남초 커뮤니티인 아이러브싸커에 글을 올려봤는데, ‘(생리) 힘주고 참으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보고 너무 충격받았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한 남성이 여성인 척하려고 자기는 생리 3분에 한 번씩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봤다.

 

데이지: 모르는 남성들은 몸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생리대 사이즈를 크게 쓴다고 생각한다.

 

부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한 번도 ~ 안 해본 사람들 이미지' 중에 여자가 화장실에서 치마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고 볼일을 보는 만화를 본 적 있다. 집에서 노브라로 티셔츠를 입으면 입지, 브라만 입고 있지는 않은데 브라만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그린다든가. 모르니까 그렇게 그리는 거다. 생리는 더더욱 알려주지 않고 대놓고 말하지 않는 주제다보니 더 (모르는 게) 심한 것 같다.

 

데이지: 우리도 (월경해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일주일 하고 하루 쉬었다가 할 수도 있고, 컨디션에 따라 하루 정도 건너뛸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책에도 상세하게 나와 있지도 않으니까. 마찬가지로 남자들도 겪어보지 않았고 알아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으니까 모르는 것 같다. 같은 맥락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도 오로에 대해 잘 모르지 않나? 오로는 임신하고 애를 낳은 다음에 6개월~3년 동안 자궁 잔여물이 밖으로 나오는 거다. 나도 얼마 전에 킴 카다시안의 인터뷰를 보고 알았다. 오로 때문에 매일 생리대를 차고 있어야 하고 우울증이 왔다고 한다. 아무도 이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서 임신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된 거다. 그것처럼 남자들도 추측해서 비난하고 비방하고 소설 쓰는 건 잘못됐지만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기: 모를 수는 있지만 모르면서 비방하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남자애들 자위하는 건 미디어나 책에 자세하게 나오니까 우리도 알지 않나. 반면, 여자애들의 자위 방법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모르는 것 자체가 몰라도 되는 데서 오는 권력이다. 우리도 잘 알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고 직접 경험해서 알게 되는 건데 왜 저들의 무지까지 이해해줘야 하는지? 모르면 적어도 입이라도 닫고 있어야지. 그게 맘에 안 든다.

 

데이지: (생리 고충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은 같은 생물학적 성별을 가진 사람으로 한정되는 것 같다. 겪은 사람만이 아니까. 최근에도 생리대 유해물질 사태가 터졌을 때 남자친구한테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떻게 하냐?”고 화난 투로 이야기했는데, “. 그렇구나.”하고 끝내버리더라. 남자 입장에서는 자기가 겪을 일이 아니니까 화도 내지 않는 것 같다. 분명히 잘못된 일이지만 자기 일이 아니니까.

 

부기: 나도 남자친구가 있었을 때 비슷한 이유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잘 체하는 편인데, 체해서 신경이 곤두서있을 때 생리통까지 겹치면 너무 힘들지 않나. 내가 배 아프다고,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이때는 날 건들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것이다.” 하면 이해는 하는데 하지 말라니까 안 하는 수준. 딱 여기까지만. 그 이상은 귀찮아하고 관심 없는 태도를 보이더라.

 

암탉: 이런 무지는 월경에 대해 쉬쉬하는 문화로부터 출발하는듯하다. 월경을 감춰본, 감추도록 강요당한 경험이 있나?

 

연꽃: 다이소에서 팬티라이너를 산 적이 있었는데, 내가 해달라는 말도 안 했는데 자연스럽게 신문지에 그릇 싸듯이 신문지로 포장을 해주시더라. 그게 신문지로까지 쌀 일인가? 당황스러웠다.

 

부기: 편의점에서도 원래는 반투명 봉투에 물건을 담아주는데 생리대를 사면 자연스럽게 굳이 아래쪽에서 까만 봉투를 꺼내 담아준다. 그리고 뿌듯한 눈길로 쳐다본다. 생리대 광고에서도 흰옷을 입고 나와서 나 이렇게 상쾌하다하는 거. 나는 항상 기분 나쁘고 찝찝한데. 나만 이렇게 예민한 건가? 다른 사람들은 감정 기복 관리 잘하고 나만 그런 건가? 생각했다. 생리할 때마다 뽀송뽀송하다~ 기분 좋다~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데이지: 초등학교 때 까만 생머리, 하얀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여성이 벽에 하얀색으로 페인트를 칠하고 어디 어디 대학교 무슨 학과 이름 세자가 나오며 끝나는 광고를 봤었다. 그때는 무슨 광고인지도 몰랐다. 생리를 시작한 후에야 그게 그거구나,’ 하고 매칭이 되더라. 생리대 광고에 왜 여대생을 쓰는지, 왜 이름이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화가 난다.

 

생리대가 나오기 전까지는 무슨 광고인지조차 알 수 없는 모 생리대 브랜드의 광고

(출처: 화이트)

 

단무지: 우리 집 같은 경우는 쓰레기통을 두 개 둔다. 생리대를 (방 밖에 있는) 일반 쓰레기통에 버리면 엄마가 제발 아빠 계시는데, 방에 있는 (생리대 전용) 쓰레기통에 버려라고 하신다. 단순히 아빠가 생리대 쓰레기를 보는 걸 안 좋아하지 않겠냐는 이유만으로.

 

데이지: 자취할 때 삼촌 차를 타고 가족들 다 같이 장을 보러 갔다. 장을 보고 박스에 담을 때 부피가 크면 포장 상자를 버리고 내용물만 싸가지 않나. 그때도 부피를 줄이려고 생리대를 뜯어서 내용물만 가져가려고 하는데, 삼촌이 너는 조카가 삼촌한테 생리대까지 만지게 하냐?”고 하더라. 기분이 나빴다. 생리대를 보고, 언급하는 걸 안 좋아하시는 것 같다. 특히 남자 어른들은.

 

연꽃: 한 번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생리대를 갈고 나오다 월경혈이 묻었는데 그걸 미처 닦지 못하고 나온 적 있었다. 그걸 보고 엄마가 아빠도 같이 쓰는 욕실인데 왜 깔끔하게 처리 못 했냐.”고 엄청 혼내셨다. 뒤처리를 깔끔하게 안 했다고 혼내면 되는데 굳이 아빠 이야기를 붙이면서. 아빠도 변기를 깔끔하게 쓰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아빠한테 크게 뭐라고 하지 않고 조심하라고만 했으면서, 나한테는 그거 한 번 그랬다고 그렇게 혼을 내시더라. 실수할 수도 있는 건데 숨겨야 하는 일처럼.

 

4. 대학과 월경하면 생리 공결제 이야기가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생리 공결제는 학생이 생리통으로 결석할 시 공적인 결석, 즉 출석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도입되었지만, 필수 적용 대상인 중고등학교와 달리 대학교는 권고 대상으로 남아 현재 상당수 대학교에선 인정하지 않는다.

 

암탉: 생리 공결제에 대해 알고 있었나? 재학 중인 학교에서 생리 공결제를 인정하나?

 

부기: 생리 공결제를 학교에서 쓸 수 있다는 걸 지금 처음 알았다. 우리 학교는 입원하는 정도가 아니면 질병 결석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다른 질병들도 안 해주는 걸 보면 (생리 공결제도 아마) 시행하지 않는 것 같다. 질문지를 보고 생리 공결제에 대해 처음 알았다.

 

연꽃: 여중, 여고를 나와서 생리 공결제에 대해 알고는 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이 원활히 사용해서 (생리 공결제가) 있다는 걸 알았는데 대학교는 입원이나 수술을 하지 않으면 인정을 해주지 않고 그냥 결석으로 처리된다.

 

단무지: 숙대의 경우 아마도 안 해주는 걸로 알고 있다. 숙대는 인정을 해주는가...?

 

암탉: 애초에 도입을 안 했다.

 

단무지: 고등학교 때 반에 생리통이 정말 심한 애가 있었는데 빠지지는 않았다. 욕하면서 공부했다. 고등학교 다닐 땐 몰랐는데 대학 와서 뉴스 기사를 보고 생리 공결제에 대해 알게 됐다.

 

데이지: 여중 여고 여대를 다니고 있는데, 생리 공결제라는 것을 여기서 처음 알았다. 이게 우리 학교만 그런 걸 수도 있고, 모든 여대가 해당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만약에 도입을 하더라도 별로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여대가 경쟁이 빡세잖나. 우리 학교는 1교시가 8시에 시작하는 학교인데도 출석률이 100%였다. 멀리 사는 애들은 다섯 시에 일어난다. 결석 한 번으로 큰 차이가 나니까. 음성 녹음 파일도 사고팔지 않나. 그 정도로 빡센데 (생리 공결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사용하지 않을 것 같고, 대학생들이 거의 그렇듯 아프면 자체 결석을 하면 했지 (공결제를 활용하진 않을 것이다) 예전엔 병원을 다녀왔다는 처방전 정도만 제출하면 (병결) 인정이 됐는데 작년의 정유라 사건 이후로 병원장이 쓴 소견서가 아닌 이상 병결 인정이 안 된다. 응급실 간 게 아닌 이상 아예 인정을 안 한다. 그래서 더 힘들 것 같다.

 

암탉: 이 중에 살아남은 학교가 없다.

 

부기: 회사에서도 육아휴직을 쓰면 욕먹고 눈치 보이는 게 있지 않나. (그런 것과 비슷하다) 쓰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냥 이런 게 있다고 전해지는 전설처럼 듣기만 할 뿐. (웃음)

 

연꽃: () 과가 공대라서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생리 공결제가) 있다고 해도 쓰면 남학생들이 욕을 한다. 쟤네는 저걸 이용한다고. 이건 다른 얘긴데, 성적을 매길 때 우리 과가 여자가 없다 보니까, 교수님들이 여학우들을 배려해준다고 남자들이 생각한다. 여자애들 점수를 더 잘 준다는 거다. 시험을 잘 본 건데! 그런 걸 보면, 생리 공결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쟤는 저걸 한 달에 한 번씩 이용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것 같다.

 

데이지: 이런 얘길 들으니까 아파도 더러워서 약 먹고 울면서라도 버틸 것 같다. 그냥 내가 아픈 게 낫지, 뒷말 나오는 게 더 싫고 힘들 것 같다. 이건 개인적 의견인데, 만약 내가 입사해서 생리휴가를 쓸 수 있다고 해도 나는 안 쓸 것 같다.

 

부기: 나는 생리통이 원래 심했었는데 약을 안 먹었다. 엄마가 내성 생긴다고 싫어하셔서 나한테도 먹지 말라고 얘기하신다. “탐폰 쓰지 마라.”, “약 먹지 마라.” 그런데 나도 아프니까 공부를 해봤다. 겨우 이만큼 먹는다고 내성 생기지도 않더라. 옛날에는 일주일 내내 너무 힘들어도 안 먹었다. 그때는 생리휴가 있으면 꼭 써야지, 이렇게 힘든데 하루라도 안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약을 먹으니까 확실히 안 아프더라. 그래서 당장 안 아프니까, 쪼아대면 기분 나쁘니 그냥 생리휴가를 안 쓰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약 먹으면 참을 수 있는데 저렇게 찌질하게 우리한테 뭐라고 하니까.

 

5. 2013년 한양대에서 한 총학생회장 후보가 생리대 자판기 설치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다. 해당 후보는 공약을 지키려 했지만 끝내 자판기 설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학생들이 역차별이라 주장하며 심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암탉: 학교에서 갑자기 월경이 시작됐을 때 학교 내에 월경 용품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있나?

 

부기: 학교 안에 건물마다 편의점이 있는데, 다들 거기서 구매한다. 과방이 없기 때문에 생리대를 비치해 놓을 곳도 없다. 여학생 휴게실에 생리대를 비치하자고 건의는 올라간 상태이다. 만약 나중에 비치된다면 거기에서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연꽃: 학교가 언덕 꼭대기에 있다. 한 번 올라오면 내려가고 싶지 않은 그런 언덕인데, 과에서 쓰는 건물은 한정되어 있고 생리대 자판기는 딱 한 대, 그것도 저 멀리 다른 건물, 여학생 휴게실이 있는 2층 화장실에만 있다. 가다가 다 새겠다. 보건실에서도 안 준다고 들었다. 편의점은 없고 매점만 있는데, 매점도 딱 2개 건물에만 있어서 접근성이 떨어진다.

 

데이지: 각 단대 건물에 생협이 있는데, 라이너까지 구비되어 있고, 생리대를 100, 200원 정도 가격에 낱개로 판다. 편의점에서 사면 묶음으로 사야 해서 남기도 하고 너무 비싸다. 큰 화장실에는 자판기도 있다. 의식하지 않고 이용해와서 다른 학교도 이런 줄 알았다.

 

연꽃: 내가 입학할 땐 여학생 휴게실이 있었는데, “왜 여학생 휴게실만 있냐. 역차별이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어서 남학생 휴게실이 생겼다. 남는 과방이나 동아리방 중 하나를 남학생 휴게실로 만들어 줬다. 공간이 작으니까 침대 하나에 이불을 여러 개 비치해 놨는데, “왜 여학생들은 침대 쓰고 우리는 이불 쓰냐?”고 역차별이라고 하더라. 생리대 자판기도 역차별이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사실상 설치 불가능하다. “그럼 여학우 휴게실에 비치해두면 되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여학생 휴게실이 멀리 있어서 이용하기 어렵다. 그리고 여자가 많은 과라면 과방에 (생리대를) 비치할 수 있겠지만, 남초과는 과방도 거의 다 남자들이 써서 과방에 비치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암탉: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리에 대한 공학과 여대의 분위기 차이가 꽤 극단적일 것 같다.

 

부기: 아예 이야기를 못 한다.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여자들끼리도 쉬쉬하는 느낌이다. 화장실 안에서는 여자애들끼리 월경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화장실 문밖으로 나가는 순간 (월경에 대해) 모두 입을 다문다. 신입생 때부터 남학생 단톡방 사건이 연속으로 터져서 혹시 나도 그 대상이 될까봐 내 몸이나 생리 현상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된다.

 

연꽃: 맞다. 강의실 안에서는 배가 아프다 정도로 이야기하고, 갑자기 월경이 시작됐을 때도 혹시 생리대 있냐고 소곤소곤 묻는다. 옷도 샐까봐 신경 써서 입게 된다. 강의 끝나고 옷에 묻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그냥 어두운색 치마를 입는다거나, 오버해서 생리대를 찬다거나. 하나 찰 거 소형 하나 더 해서 찬다거나. 새는 것보단 이게 낫지 싶은 마음에.

 

데이지: 우리 학교는 에타에도 나 생리해서 짜증 난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길을 가다가도 나 오늘부터 생리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오늘 뭐 먹었어.”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6. 최근, 모 생리대 브랜드를 시작으로 생리대 유해 물질 논란에 불이 붙었다. 여성환경연대 및 식약청에 따르면 조사 대상 10개 제품 모두 발암물질과 총휘발성유기화합물 등 유해 물질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암탉: 이번 논란을 겪으면서 친구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연꽃: 친구가 이미 생리컵을 쓰고 있어서 (나에게) 갈아타라고 권유했다.

 

부기: 모 생리대 브랜드 문제가 처음 터졌을 때, (탐폰을 쓰고 있었는데) 생리컵으로 바로 갈아탔다. 친구들끼리 써보고 후기 알려달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다른 선택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생리대를 쓰게 되더라. , (생리컵이) 초반 진입장벽이 높다 보니 처음 쓰는 사람들은 겁낼 수밖에 없다.

 

데이지: 그렇다고 면 생리대를 쓰기도 곤란하다. 사회 생활하면서 (면 생리대를) 빨고, 삶고, 널어서 말릴 시간 내기가 쉬운 일인가? 생리대 기사에 그럼 여자들 면 생리대 쓰면 되지!”라는 댓글을 봤다. 자기네들이 직접 빨아줄 것도 아니면서 쉽게 말하니까 웃긴다.

 

단무지: 그냥 마저 써야겠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고, 남교수님은 요새 생리대 문제로 말이 많은데, 이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자기 문제가 아니니까 쉽게 말한다.

 

데이지: 학교 언니와 생리대에 대해서 얘기해봤는데, “아 맞다 이거 안 좋지.”하면서도 바쁘니까 넘어가게 되더라. 비슷한 이유로 이번 사태 이후에도 계속 유해물질 생리대를 쓰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연꽃: 우리 어머니도 그럼 뭐 어떡해.”라는 생각으로 그냥 쓰신다.

 

암탉: 생리대 유해물질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살충제 계란 파동도 일어나지 않았나? 둘 다 생필품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된 사건이었는데, 반응은 무척 달랐다.

 

데이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남자들은 별로 신경을 안 쓸 것이다. 딸이 쓰는 생리대가 유해물질 덩어리라고 생리대 회사에 적극적으로 항의하는 아빠가 존재할까?

 

암탉: 기사가 뜨고 나서 대안 제품(해외 생리대, 생리컵, 생리팬티 등) 품절 대란이 났다고 한다. 회담자들은 어떤 대안을 택했나?

 

연꽃: 한 친구는 아기 기저귀 소형사이즈를 쓰겠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생리컵을 썼는데, 잘 안 맞아서 (다음 월경 때는) 생리대를 쓸 거라고 했다. 그래도 생리할 때 보지 털이 뽑힐 것 같고, 내장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고통이 (생리컵을 썼더니) 사라져서 좋았다고 했다.

 

데이지: 학교 앞에서 나트라케어를 판매하긴 하는데 너무 비싸다. 자취하면 생리대값이 꽤 나가서 부담된다. 월경만으로도 짜증 나는데, 생리대도 비싼 돈 주고 사야 돼서 짜증 난다.

 

암탉: 후속 대처에 참여하셨는지 궁금하다.

 

데이지: 항의할 줄 몰라서, 대응할 줄 몰라서 할 수 없었다. 회원가입에 뭐에, 너무 절차가 복잡해서 안 쓰고 말지!’ 혹은 쓰고 죽지!’하는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가 단체 행동을 하면 적극적으로 지지하겠지만 혼자 할 힘은 안 난다.

 

단무지: 나 혼자 하기엔 용기가 부족한 것 같다. 누군가 총대를 매줬으면 좋겠다.

 

부기: 환불해주겠다는 곳도 처음 문제 된 브랜드밖에 없었다.

 

7. 내가 원하는 나의 완경

 

암탉: 우리 모두 언젠가는 완경하게 될 텐데, 내가 원하는 나의 완경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기회가 없는 것 같다. 미디어에서 말하는 편협한 개념의 완경이 아닌 내가 생각하는 완경, 주변에 완경을 맞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연꽃: 사실 완경이라는 단어를 여기서 처음 봤다. 확실히 (미디어에서) ‘완경이라는 소재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드라마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윤유선 배우가 맡은 역할이 완경을 맞았는데, 마치 인생이 끝난 것처럼 묘사하더라. ‘폐경이라는 말도 그렇고, 월경이 끝나면 여자로서 뭔가 끝난 것처럼 표현하는구나 생각했다. 솔직히 나의 완경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동생한테 물어봤다. 동생은 강경하게 비혼을 주장하는 아이인데, 결혼도 안 하고 출산도 하지 않을 거라 완경을 하면 해방감을 느낄 것 같다고 말하더라.

 

부기: 예전에는 ‘(완경이) 언젠간 오긴 오는구나, 이때쯤이면 멈추겠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미디어에서 (완경이 오면) 여자의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더 이상 여자가 아닌 것처럼 말하니까 나도 모르게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더라. 그런데, 몇 년 전 한창 단어 바꾸기 운동이 유행하지 않았나. ‘자궁포궁으로 바꾼다든지, ‘폐경완경으로 바꾼다든지. 그걸 처음 듣고 곧 완경을 하실 엄마한테 말씀드렸더니 굉장히 좋아하시더라. 본인도 폐경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너무 싫었는데 완경이라고 하니까 정말 뭔가를 완성 시킨 것 같고, 기나긴 레이스를 완주해낸 느낌이라고 하셨다. 되게 뭉클했다. 그때부터 나도 완경이라는 단어를 꼭 쓰게 되었고, 나도 미래에 완경이 오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 같다. 나에게 월경을 가르쳐주신 엄마가 그렇게 얘기했으니까.

 

데이지: 주변에 완경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호르몬 치료를 받으라고 말하고 싶다. 완경이 오면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탈모나 우울증 같은 증세가 나타나는데, 그건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고쳐야 하는 증상이다. 병원을 방문해서 치료를 받고 더 나은 삶을 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월경하는 게 그 기간에는 싫지만, 오히려 반갑기도 하다. 임신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몸이 건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단무지: 나는 완경을 하면 월경이 끝나니까 좋을 것 같다. 내일 완경을 한다고 하면 "아싸"할 것 같다.

 

8. 후기

 

부기: 친구들과도 대놓고 이야기하기 민망할 수 있는 주제인데, 터놓고 이야기하고 다른 분들 생각을 들어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연꽃: 알게 된 것도 많고)

 

데이지: 이런 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도 언제 어디서든 참여할 수 있게 포럼 형식으로 자리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단무지: 공학에서는 여성혐오라거나 월경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데에 놀랐고, 탐폰이라거나 생리컵이라거나, 대체 월경 용품에 대해 알게 돼서 좋았다. 이런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연꽃: 여대가 부러워졌다. (부기: 맞다) 사실 (학교 내 여혐에 대해) 무덤덤해졌는데, 우리 학교가 이렇다고 말하면서 새삼 충격받았다.

 

데이지: 여대를 다니는 사람으로서 자각을 못 하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으면서 좀 미안했다. 사회에 나가면 이런 (여대 환경과 같은) 분위기가 아닐 텐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부기: 미안해야 할 건 우리가 아닌데.

 

 

 

 

 

 

 

 

 

 

 

 

 

 

 

 

 

 

 

 

 

책 읽어주는 나나

제4호: 「프리마돈나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아주 잘 알려진 프랑스 소설가입니다. 그녀의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인데요. 필명 사강은 그녀가 무척 좋아하는 작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출처 : 구글)

 

"나는 베이스볼을 하는 건강한, 그리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청년이 좋아요."

 

사강의 취향은 그녀의 소설에서도 드러나는 듯합니다. 그녀는 중년에서 노년의 여성과 열정이 넘치는 젊은 청년과의 로맨스를 종종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사강의 여성들은 어린 남자들의 열렬한 구애를 받기도 하며, 그들에게 옷과 보석들을 제공해주기도 하고 생활비를 부담해주기도 합니다. 이미 잘 알려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단편 사내놈」, 그리고 「프리마돈나」가 이런 플롯을 갖고 있습니다. 그 중 우리는 「프리마돈나」를 살펴보도록 해요.

 

 

 

<프리마돈나>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당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이유는 당신이 싫어서가 결코 아니에요. 그렇지만 전 당신보다 그이를 더 사랑하고 있어요.”

 

그녀는 프리마돈나, 그러나 늙은 프리마돈나. 그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라카치오를 따라다닌 지는 벌써 6개월이 넘었습니다. '어떤 남자가 늙은 여자의 들러리 노릇을 하기 위해 살고 싶을까!'그는 그녀에게서 최대한으로 뽕을 뽑아낸 뒤 재빠르게 도망쳐버릴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금전상의 궁색함이 그의 화를 억눌렀습니다. 질투일까요? 도대체 그이란 누구란 말인가요?

 

그녀는 항상 그랬습니다. 무대에만 오르면 그녀의 나이나 주름살, 몸무게, 심지어 그마저도, 아니 세 명의 남편이나 서른 명의 애인까지도 모조리 망각해버렸지요. 라카치오는 질투에 빠진 이 남자보다 두 배나 몸무게가 더 나갔고, 나이는 몇 배나 더 많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니 그는 화가 났어요. ‘나는 금발에 아주 멋진 남자란 말이야. 한물간 저 여자는 더 비싼 대가를 치러야해!’

 

이 곡은 내 평생에 꼭 세 번 불렀어요. 그런데 그 때마다 세 번 다 그를 다시 만났어요. 오늘 저녁에도 역시 그가 오면 좋겠어요.”

 

너무나도 풍만하여 음란하기까지 한 그녀의 육체덩어리, 그 육체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저 저속한 관객들을 현혹시켰습니다. 그가 보기엔 아주 형편없었죠. 이제 30분만 있으면 공연은 곧 끝날 예정이니 그에게는 다행이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견딜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무대 쪽으로 신경이 쏠렸습니다. ‘세 번이나 만난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란 말이야?’ 그는 라카치오에게 선택 당했습니다. 그를 선택한 것이 바로 그녀란 말이에요.

 

막이 올랐습니다. 모든 연주자들은 반짝이는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노예이며 시종처럼 보였어요. 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녀를 갈망하고 있었어요. 그러자 그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휘청거렸습니다. ‘그녀가 나이가 많고 뚱뚱하다는 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사람들이 그녀를 원하는 것처럼 나를 원하는 사람은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할까?’ 도대체 그이라는 미지의 인물은 누구란 말인가요! ‘그이는 그를 단숨에 기생충으로 전락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 이야기 속에 나오는 싱거운 말썽꾼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지요. 그는 화를 내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세 번이나 만났다는 그 사람이 누구지?”

 

그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상냥하고 부드럽게 웃었어요.

 

그건 바로 베르디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장 높은 음, 고음 C조예요.”

 

라카치오가 그에게 선물해준 그의 옷이 그의 살갗을 뜨겁게 불태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삼십 초 동안 계속해서 음을 내야 된다는 게 중요해요.”

 

그러고 그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게 갔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어요.

 

그것뿐이 아니에요. 그건 돈으로 살 수도 없는 것이거든요.”

 

(출처 : 구글)

 

 

 

<사강스러움>

 

'저속해!', '형편없어!' 재능있는 프리마돈나 라카치오를 따라 순방길에 오른 그는 잘나가는 그녀에게 불만이 아주 많습니다. 어리고 잘생겼으며 남자답기까지 한 자신이 나이 많고 뚱뚱한 여자를 따라다니며 기생한다는 것이 영 속이 뒤틀렸나 봅니다. 물질적 풍요와 경제적 궁핍을 이유로 그녀의 들러리가 되어 따라다닐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재능과 인기, 당찬 모습을 보고는 깨닫게 됩니다. 더욱이 그녀가 만나길 좋아하는 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자 질투에까지 휩싸이고요. 라카치오는 그런 모습에도 부드럽게 웃으며 ‘C음은 너처럼 돈을 받진 않지라고 태연히 말합니다. 그는 이름조차 없습니다. , 중요하지 않았나봅니다. 30명의 정부 중 하나겠지요. 어찌됐든 어리고 잘생겼으며, 많은 돈과 선물을 들인 젊은 남자들은 C음보다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강은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종종 썼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중년의 여성 폴르와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어리고 철없는 견습 변호사 시몽과의 정사를 그렸지요. 또 단편집 길모퉁이의 카페사내놈에서는 노년의 여성들이 어린 남자들에게 옷과 보석, 생활비를 모두 부담해주며 연애를 하고요. 그러다가 귀찮아지면 다른 부인에게 보내버리는거죠. 그러나 한 청년은 자신을 다른 부인에게 넘기려는 주인(?)에게 괴로운 사랑 고백을 합니다. 그 고백에 그녀는 슬퍼하지만 결국은 신경질 나는 일이야라고 생각하며 잠을 청할 뿐입니다.

 

우리는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의 로맨스는 질리도록 봐 왔습니다. 사강은 그런 뻔한 스토리에서 남자와 여자의 입장을 전도시켰지요. 그녀의 취향에 걸맞는, 건강하고 아무 생각이 없는 남자로는 아무래도 어린 편이 좋았나봅니다. 그러나 이런 등장인물 설정이 몇 번 반복되자 너무나 사강스럽다거나, 사강의 매너리즘에 빠진 감이 있다는 평이 있었어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대한 한 서평을 살펴볼까요.

 

"사강의 만네리즘에 빠진 감도 없지 않으나 호의를 가지고 보면 개성적인 분위기를 견지"(프랑수아즈 사강, 방곤·김정수 옮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마음의 푸른 상처, 성도문화사, p.6.)

 

하지만 우리는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 로맨스에서는 어떠한 매너리즘을 찾지는 않아요. 그만큼 나이 많은 여성의 입장에서 자신보다 어린 남자와 연애하는 이야기가 새롭고 이색적인 것처럼 느껴졌던 것일까요?

 

한편 아쉽게도 사강의 여인들은 나이 어린 청년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이성적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녀들은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나이를 깨닫고 떠나보내거든요. 라카치오의 경우를 볼까요? 우리가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를 보고 라카치오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맙소사, 저이가 서른 살이라니! 날씬하고 또 거기에 미남이고 보니 그 어느 이란공주의 사랑도 받을 수 있을거야. 이 쭈글쭈글하고 분장을 하고 땀으로 온통 엉망이 된 얼굴로 어떻게 감히 그에게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을 수가 있단 말이지?"

 

마찬가지로 같은 단편집의 「사내놈」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의 여성들도 이렇게 느끼지요. 이런 점에서 사강의 매너리즘이란 다름 아닌 아름답고 능력있지만 여성의 나이라는 굴레에서는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사강의 한마디>

 

"위스키와 도박, 페라리가 집안일보다 낫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을지는 몰라도, 버스를 타고 우느니 재규어를 타고 울겠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참고문헌>

 

프랑수아즈 사강, 이환·이평우 옮김, 슬픔이여 안녕 / 어떤 미소, 성도문화사.

프랑수아즈 사강, 방곤·김정수 옮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마음의 푸른 상처, 성도문화사.

프랑수아즈 사강, 장재형 옮김, 길모퉁이의 카페, 성도문화사.

프랑수아즈 사강, 길해옥 옮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여백.

위키페디아 프랑스, https://fr.wikipedia.org/wiki/Fran%C3%A7oise_Sagan.

 

 

 


 

나나

“사내아이를 낳아야 했어, 그래야 그럭저럭 살아 나가기 쉽고, 이 파리에서 수많은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야.” 내가 태어난 날 우리 엄마가 나를 보고 되뇌었어요.

 

4편. '남성 가장' 신화 

by.한의 민족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가부장인 남성이 여성과 어린 남성을 지배하는 구조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가부장제는 우리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경험하는 억압이자,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 지속된 억압이며, 역사, 사회, 문화, 종교를 막론한 모든 곳에 산재되어 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너무 오래 되어서 자연스럽게 우리 주위에 둘러있고, 스스로의 억압 구조를 은폐하고 있어 구성원들이 인지하기조차 어렵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부장제는 그 권위에 대한 정당성을 자본에 두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남성집단은 자본으로부터 여성을 배제하고 독점 운용하기 위해 남성 가장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자본의 직접적인 지배에서 벗어난 가정으로 그 영역이 한정되어 있어 그 영역을 벗어나기 어렵다. 여성이 취직을 한 이후에도 사회는 여성의 자리는 가정임을 꾸준히 상기시키며, 가정으로 돌아가도록 끊임없이 압박한다. 취업여성이 마주하는 유리천장과 저임금은 여성을 가정으로 내쫓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이자 자본의 남성 편향의 결과물이다.

물론 가정 내 권력을 획득하는데 작동하는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가부장의 권력과 자본의 관계에 집중하여 다뤄볼 예정이다. 취업여성이 경험하는 성차별적인 발언들을 따라가며, 사회가 어떻게 여성을 자본으로부터 배제시키고 가부장제에 순응하도록 종용하는지 살펴보자.

 

 

 


 

여자가 차별받는다는 거 다 옛날 이야기지. 이번에 우리 회사 신입사원도 여자가 반인데?

a) 회사 임원 중 여성의 비율은 어떻게 되는데? 그들도 신입사원처럼 반이 여성이야?

b) 여성은 취업을 한 이후에도 안심할 수 없어. 여성은 가장이 될 남성을 위해 승진에서 영원히 밀리는데 이게 차별이 아니고 뭐야?

c) 취업한 여성은 남성과 달리 유리천장을 경험해. 이 유리천장은 결국 여성을 직장에서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하지.

 

 


많던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대한민국의 30대 그룹의 여성 임원 승진인사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2.4%에 불과하다전무급 이상 여성 승진자는 3명이 전부였고이마저도 오너일가를 빼면 단 1명뿐이다기자협회보가 언론사 19곳을 조사한 결과, 11월 현재 여기자 비율은 25% 2년 전에 비해 2배 늘었다그러나 보직간부를 맡고 있는 여기자는 총 4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언론사 1곳 당 평균 2.3명 수준으로여성 보직간부가 없는 언론사도 5곳에 달했다. 19곳 중 12개 언론사에서는 여성 논설위원이 한 명도 없었다전체 316개 공공기관의 여성 임원 비율은 11% 정도(기획재정부 공공기관 인력현황 및 여성비율’)이 가운데 133개 공공기관은 여성 임원이 단 1명도 없다신규 채용에 여성 지원자 비율은 절반에 육박(2011 45.4%)하지만여성 관리자 비율은 15.94%로 민간기업(20.01%)에 못 미친다행정자치부의 여성 관리자 비율은 17 3월까지도 10% 언저리에서 지지부진하고 있었다특히 국장급 이상 고위직은 단 4명으로 행자부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했다.

 

살펴본 자료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여성 직원 채용 비율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위 임원직에 여성이 진출하는 비율이 지나치게 적은 현상이야말로 한국의 유리천장이 공고하다는 것을 시사한다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이전보다 용인됨에 따라 사회에서 여성의 활약은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고시와 교직 임용 등은 시험을 통해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차별에서 벗어난 영역이라는 인식은 2010년 여성 합격자 비율 행정고시 47.7%, 사법고시 41.52%, 외무고시 60%라는 수치로 이어졌다여기서 여성의 합격 비율보다 더 놀라운 것은그 많던 여자들이 고위직으로 갈수록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 기사에서 중견기자 중 여성의 비율이 적은 현상의 원인을 고찰한 바에 의하면기자는 업무량이 많고 야근이 잦으며 예측 불가능한 업무 특성 때문에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힘들다는 점특히 여기자들은 결혼출산육아 때문에 직장 이탈이 잦아 결국 중견기자 이상으로 생존하는 비율이 여전히 낮다는 현실은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것이 가정이라는 점을 시사한다남성이 고위직으로 진출하고 높은 연봉을 받도록 하는 가정이 여성을 고위직으로 진출하지 못 하도록 막는 것은 아이러니하다남자는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며여성은 집안일을 돌봐야 한다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정상가족 규범은 여성의 활동 범위를 가정 내부로 한정시키며공적 영역에서 여성에 비해 남성에게 우선순위를 주는 것을 정당화시킨다여성의 승진에 있어서도 가장인 남성에게 우선순위가 빼앗기는 일은 허다하다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60%정도에 불과한 것에도 가장이라는 이유를 가져다 붙이며 정당화시킨다이 사회는 가부장의 권력을 보장해주기위해 안달이다자본을 남성에게 몰아줌으로써 가정 내에서 남성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그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직장 여성이 맞닥뜨리는 유리천장은 남성 가장 이데올로기와 남성편향적인 자본 구조의 성공적인 결과물이자 수단이다.

 

 



 

남편자기야나도 돈 벌어오잖아자기 일하면서 애기 돌보기 힘드니까 일 쉬면서 애기 보고 그러자.^^

a) 지금 그 말은 아기를 나 혼자 돌보라는 것처럼 들리네. 아이 양육은 부모가 함께 하는 거야.

b) 나도 내 직장을 갖고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아이를 키우기 위해 나한테만 일을 그만두라는 것은 나의 희생을 강요하는 무례한 요구야.

c) 나도 돈 벌어오는데? 그럼 자기가 일 관두고 애 돌보면 되겠다.^^

 

 


가부장은 맞벌이를 원하지 않는다.

 

한 기혼여성의 고민상담글이 sns에 소개되었다그 부부는 맞벌이를 하고 있었는데남편이 그녀에게 일을 그만두고 둘째를 낳아 기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아내의 임금이 남편보다 더 많은 상황에서 과연 그녀가 일을 그만두면 가족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이 그녀의 고민이었다이왕 한 명이 일을 그만둬야 한다면 임금이 더 적은 남편 쪽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그런데 남편은 아내에게 일을 그만두라는 주문을 했다.

 

해당 글의 덧글에는 일을 그만두지 말라는 사람들의 충고가 잇달았다아내에게 직장을 그만두라는 남편의 배려속엔 가정의 주도권을 독점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것이다만약 남편의 말대로 일을 그만둔다면집안에서의 발언권을 완전히 빼앗기고 남편에게 예속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이 논리에 따르면 가정 내의 주도권(권력)에 직장과 수입이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가정이라는 공동체 내의 권력은 개인의 자본력에 따라 주어진다가정의 수입을 담당하는 사람이 가정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암묵적인 시스템은 특히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과 맞닿아있다.

 

남성은 가부장제 사회 질서 속에서 (비록 그가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에 놓여있든 상관없이가정 안에서 지배자로 군림할 권한을 승인받았다이것은 너무나도 유구해서 자연화된 권력이자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성으로 태어난 이들에게 주어지는 생득권이며가정이라는 왕국의 지배자가 될 수 있도록 사회가 승인한 권력이다가부장의 권력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자본을 통해 정당화된다따라서 남성은 가정 내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을 독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맞벌이 부부의 경우가부장의 권위를 지탱해주는 소득이라는 수단을 부부가 나눠 갖게 된다는 것은 곧 가정 내의 권력이 분산됨을 의미한다그러나 권력의 배타적인 특성상 그것은 나뉠 수 없다남성은 그의 손윗남성들이 그래왔듯이 가정 내의 권력을 독점하길 원한다따라서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수단인 수입을 배우자로부터 박탈시키고 독점하려 한다그들은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의 무게를 아내와 함께 분담하길 원치 않는다그 무게가 곧 권력의 원천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남성들은 맞벌이를 할 경우 권력이 양분되며심지어 배우자의 소득에 따라 상대에게 더 큰 권력이 부여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지한다맞벌이를 통한 수익의 증대와 그로인한 삶의 질 향상보다 가부장의 권위에 집착하는 이에게서 합리적인 이성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가장은 실체가 없다가부장은 가정 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력을 갖는다그러나 그가 가정 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그 권력은 사라진다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남성이 그의 가정으로 돌아가면 지배자로 만들어주는 권력은 그들이 결코 소시민적 삶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사회의 계층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갖는 불만을 중화시키고 현실에 안주하도록 만든다또한 가장의 권력은 여성이 팔루스에 대한 환상(fantasy)을 욕망하게 만듦과 동시에이것이 허상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것을 추구하도록 하거나 현실에 순응하고 포기하게 함으로써 남성의 권력을 유지한다여남 각자가 가장이라는 허상을 좇아 현실에 순응함으로써 사회는 유지된다.

 

 

 



그런데 일과 가정 모두 잘 캐어하는 알파걸도 있잖아?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a) 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가정의 책임을 당연하게 부담시키는 거야? 여자는 일만 잘 하면 안 돼?

b) 일과 가정 모두 잘 캐어하는 남자들도 있을 텐데 왜 남자에겐 그런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거야?

c) 그래, 하지만 일부의 특별한 사람들의 사례가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져선 안 돼. 그건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 차별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재 문제로 축소시킬 수 있어.

 




남성과 달리 여성은 일과 가정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만일 여성이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간 이중부담의 함정에 빠질 것이다여성에게 집안일의 책임을 지우는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여성은 일과 가정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거나일과 가정 모두 완벽하게 해내는 알파걸이 되어야 한다그들이 일과 가정 모두를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 할 경우 비난받으며주로 직장을 포기하고 가정에 집중하기를 강요받는다.

 

여성의 정치 진출과 고소득 전문직 증가여성 사회 진출의 점진적인 증가 등 고무적인 현상 이면엔 이 특별한 여성들이 여성 발전을 상징하는 하나의 토큰(token)’으로 사용되지는 않는지 따져야 한다이들은 극히 일부 소수 여성일 뿐이며 대다수 일반 여성들이 여전히 피라미드 사회 구조의 맨 밑바닥에 머물러있다는 것이다여성의 사회 진출과 관련된 이 희망적 수치에 반비례하는 대다수 여성의 암울한 현실은 주목받지 못한다알파걸 콤플렉스가 사회·구조적 문제인 유리천장을 개인의 노오력’ 문제로 전환시킬 우려 또한 존재한다알파걸 역시 남성 경쟁자와 비교했을 때지위나 직급보다 성별이 우선적인 평가요소가 된다는 사실은 유리천장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심상정 대표의 슈퍼우먼 방지법 발의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발로했다그는 맞벌이 시대는 왔지만 맞돌봄 시대는 따라오지 않았다대한민국 국민은 가족 없는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고 여성들은 슈퍼우먼이 될 것을 강요받고 있다고 입법배경을 밝혔다슈퍼우먼 방지법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Δ배우자의 출산에 대한 남편의 출산 휴가를 현행 유급 3일에서 유급 30일로 늘리며 Δ육아휴직 기간을 현행 12개월에서 16개월로 늘리고 Δ육아휴직 급여액을 월 통상임금 100분의 60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인상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있다여성에게만 부과되었던 육아/가정의 책임을 분산하여 남성에게 공동으로 부과하는 것은 유리천장을 깨뜨리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가정의 수입을 담당하는 사람이 가정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암묵적인 시스템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과 맞닿아있다문제는 그것이 주로 남성에게 할당되는 자리라는 것과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상품의 생산과 자본의 유통만이 중요해지고 자본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는 생산 과정이 무시된다는 것이다페미니스트들은 상품가치뿐만 아니라 노동력 생산을 담당하는 가정의 역할을 주목했다그동안 가사 노동이 지나치게 평가 절하되어 온 사실을 고발하고 이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했다가정은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자원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자본의 핵심이자 기반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 노동은 그동안 자본의 지배에서 벗어난 전근대적이고 전자본적인 부차적인 문제로 다루어져왔고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여성에게 떠넘겨졌다그동안 저평가되어온 가사노동의 중요성과 필요를 인정하고그 책임을 한 집단에게 전부 부과하는 것을 그만둘 때가 되었다국가는 여성의 희생 위에 건설되었다이제 그들을 가정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자기만족일까 코르셋일까

암탉

    ‘코덕이자 페미니스트로서 요즈음 고민하고 있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나는 조금 이르게 코덕에 입문한 편이다. 내가 초등학교~중학교에 다닐 무렵 뷰티 블로그붐이 불기 시작했다. 우연히 포털 사이트 메인에 뜬 뷰티 블로그 글을 보고 다양한 색의 화장품에 매혹됐다. 이후 적은 용돈을 모아 야금야금 화장품을 사 모으고, 메이크업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활동하며 즐거운 코덕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 (모든 페미니스트가 그렇듯) 그러던 어느 날, 불편한 부분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으로 도배된 광고 문구를 볼 때나 그런 화장은 남자들이 안 좋아해~” 따위의 말을 들을 때 설명할 수 없는 불쾌함을 느꼈다. 그 무렵 페미니즘을 접하게 됐다. 여성의 행동을 모두 남성을 위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 혹은 그래야 한다는 강요가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되자 정말 신기하게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페미니즘이 코덕 정체성에의 돌파구로 작용한 셈이다.

 

    믿었던 페미니즘이 발등 찍은 건 최근의 일이다. 아니, 사실 양심적으로 말하자면 코덕이자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한 그 순간부터 항상 맘 한 구석에서 나를 쿡쿡 찌르던 불편한 생각들이 있다. 내가 활동하는 메이크업 커뮤니티는 페미니즘적 성향을 띄고 있다. 여성만 가입할 수 있는 커뮤니티라 상대적으로 페미니즘 이야기를 나누기 자유로운 분위기다. 현실에서 겪은 성차별적 상황을 털어놓고 서로 위로하며, 서명 운동 링크를 공유하기도 하고, ‘남성을 위한 메이크업에 분노한다. 내가 정말 즐거워서,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화장한다는데 누가 참견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종종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자기표현을 위한 메이크업이라기엔 우리는 너무 똑같은 화장을 하고 있지 않나? , 얼굴을 자주 들여다봐야 하는 메이크업의 특성상 이목구비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정말 세세하다. 눈이나 얼굴 길이 등을 자로 재서 공유하기도 한다. 당연히 외모에 대한 강박적 집착 및 우울함을 호소하는 글도 많이 올라온다. 뷰티 유튜브를 볼 때도 그렇다. 화장으로 다크서클이나 여드름 자국을 가리지 않으면 예의가 없는 것이고, 화장 후 얼굴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며, 어느 정도 화장을 완성하면 빼먹지 않고 이제야 사람 같다고 한다. (여성의 민낯은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난 것인가?) 이제 여성들 사이에서 화장은 자기만족을 위한 행동이라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실제로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 심리적, 물리적으로 제약이 생긴다면 그걸 정말 자기만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엠티 가서 일부러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자는 친구들을 볼 때, 화장을 망친 날은 미묘하게 다운되는 나를 발견할 때 나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과 코덕으로서의 정체성이 충돌하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왜 민낯 공포증에 걸렸을까

    화장을 하지 않고 학교에 왔을 때 예의 없다며 주변에서 핀잔을 주는 친구들, 그 옆에서 모자를 꾹 눌러쓰고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죄스러워하는 민낯의 친구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민낯에 대한 거부감이 공포증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이건 포비아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한 것 같다. 사실 민낯으로 학교, 토익 학원에 간다고 해서 어떤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민낯 공포증을 앓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볼에 여드름이 나서? 안색이 창백해보여서? 이런 이유로는 설명할 수 없다. 문제는 훨씬 크고,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온 것 같다. 우리가 왜 우리의 민낯을 부끄럽다고 여기게 됐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출처: 미미박스)

 

    작년 119, 한 뷰티 소셜커머스 사이트에 올라온 유두 미백 크림 광고가 저급한 내용으로 논란이 되었다. ‘늑대들이 좋아하는 핑크빛 유두, 이렇게 될 수 있다면’, ‘진한 색상 유두 NO’ 따위의 문구를 내걸고 (전혀 궁금하지 않은) 여성 유두에 대한 남성 9명의 의견을 함께 게시한 것이다. 위 광고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해당 사이트는 결국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였다. 사실 이 광고를 처음 접했을 때 화나긴 했지만,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남성의 시선을 부각해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수치스럽게 여기도록 하는 방식은 화장품 업계의 유구한 광고 전략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손톱에 난 세로 결을 없애준다는 손톱 영양제 광고를 본 적이 있다. 3가지 종류로 구성된 해당 제품을 통해 꾸준히 손톱을 관리하면 손톱에 난 세로 결이 없어지고 여성여성한손이 된단다. 광고가 끝난 후 형용할 수 없는 회의감에 사로 잡혔다. 이제 손톱 결에도 신경 써야 하나? 광고를 보기 전까지 난 내 손톱에 세로로 결이 있는지도 몰랐다. 뷰티 업계가 우리의 몸을 토막 내어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와 닿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S라인, T, 헤어 라인, 수분부족형 지성 따위의 단어들은 사실 뷰티 업계에서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이런 단어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멀리서 몸을 보았을 때 몸매의 외곽선이 S모양인지, 얼굴의 중심의 T존이 입체적인지, 헤어 라인이 동그랗고 머리숱이 빽빽한지를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뷰티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고 기존 제품으로 승부하기엔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니, 원래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신체 부위까지 끌고 와 (자사의 제품을 이용해) 자사가 제시하는 정답에 자신을 끼워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시감을 느끼고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미디어의 도움을 받아 이는 곧 미의 기준으로 굳어진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여성들에게 자신의 신체를 부끄럽게 여기도록 종용하여 미의 기준을 전파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뷰티 업계는 항상 새로운 미의 기준을 제시한다. 그들이 지적하기 전까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혹은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별별 신체 부분에 아름다움의 가이드라인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여기에 미디어가 나서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것은 미의 기준으로 확정지어진다. 뷰티 업계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맞는 실제 사람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미디어는 가이드라인 안에 속한 이들에게 무결점, 여신 같은 온갖 찬사를 퍼붓는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평가의 시선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평가자의 위치에 서있는 남성의 시선을 빌려온다.) 혹은 가이드라인에 맞지 않는 사람을 데려와 인위적으로 가이드라인에 맞추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노력, 자기관리 따위의 미사어구로 아름답게 치장한다. (여성들이 말하는 자기관리의 범위가 외모 쪽으로 치중되어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사람들은 이쪽에 더 열렬한 반응을 보인다. 관념상으로만 존재했던 가이드라인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 즉시 자신과 비교하기 시작한다. 연예인 누구누구도 저렇게 노력하는데 나는 뭘까? 사실은 연예인 누구누구니까저렇게 하는 것인데 말이다. 화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뷰티 산업 및 미디어는 (화장 방법은 둘째 치고) 화장하지 않은 상태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라고 강요한다. ‘화장은 예절따위의 말을 동원하거나 화장 하지 않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노출시킨다. ‘민낯 공포증은 여기서 출발한다.

 


(출처: 알바노조, 한국일보)

 

    사회는 이를 착실히 받아들였다. 작년 3, 한 영화관 프랜차이즈에서 여성 직원에게만 더 엄격한 외모 꾸미기 규정(화장, 머리 모양, 의상 등)을 적용해왔던 것이 밝혀졌다. 실제로 해당 규정을 지키지 않을 시 꼬질이딱지(자신의 담당 구역을 청소하지 않거나 유니폼을 더럽게 관리하는 등 위생 관련 규정을 위반했을 때 부여되는 패널티)가 붙고, 벌점이 누적되어 임금 삭감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여성에게만 엄격한 외모 꾸미기 규정을 적용하는 곳은 위의 기업뿐만이 아니다. 작년, 한 글로벌 컨설팅 기업에서 하이힐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성 접수원을 해고했다가 항의 끝에 규정을 완화한 바 있다. 올해 초에는 한 증권사의 여성 직원 복장 규정이 도마 위에 올랐다. 여성 직원들은 사용해야 할 아이섀도우 숫자, 스타킹 색상까지 규정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남성 직원에 대해서는 노타이 정장, 콤비(혼합 정장) 금지 정도만 언급되어 있었다고 한다. 화장이 (인위적인 방법으로) 정말 예절’, 즉 규범이 된 것이다. 이쯤 되면 민낯 공포증을 하나의 방어 기제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

 




(출처: APA/FRANZ NEUMAYR, 한국일보)

 

    메르켈 총리와 스티브 잡스의 사진을 보자. 두 사람 모두 항상 비슷한 복장을 고수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반응은 전혀 다르다. 스티브 잡스의 경우, 옷 고르는 시간마저 아끼는 성실한 CEO의 대표적 사례로 항상 언급될뿐더러 패션 아이콘에 등극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의 경우 패션 테러리스트딱지에, 옷이 한 벌 뿐이냐는 비아냥을 받는 등 부정적 반응 일색이다.

 


A: 남자애들은 왜 화장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보이는 걸까?

B: 왜냐면 사회가 남자애들한테는 화장 안 하면 못 생겼다고 하지 않았거든.

(출처: Feminist Apparel)

 

    취업 포털 커리어에서 여성 직장인 422명을 대상으로 화장하는 이유에 대해 조사한 결과, 62.8%체면(품위) 유지를 이유로 꼽았다고 한다. 62.8%의 여성은 화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화장하지 않아서 예의없다는 잔소리를 들은 남성 직장인을 본 적 있는가? 화장을 못해서 모자를 눌러쓰고 등교하는 남학생을 본 적 있는가? 꾸미지 않을 수 있는 것도 권력이다. 남성들은 꾸미지 않아도 괜찮다. 꾸미지 않아도 생긴 그대로 인정받는다. 이게 권력이 아니면 무엇인가? 여성들에게도 직장에서, 학교에서 이런 권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민낯 공포증의 종말을 원한다.


그래서 뭐, 화장하지 말라고?

    난 정말 화장품을 좋아하고 화장하는 과정이 즐겁다. ‘코덕질은 하나의 취미 생활로써 내 삶의 작은 활력소가 되어준다. 하지만 나의 이런 취향이 형성되기까지 사회적 압박의 영향이 전무했느냐고 묻는다면 확답할 수 없다. 내가 즐기는 화장에 억압적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에게 화장이 정말 선택일 수 있을까? 화장을 통한 자기만족에 외모 경쟁력을 갖췄다는 안도감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화장을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 제도적 차별, 자유도의 부재에 대한 고민 없이 자발적 행동이라고 뭉뚱그려버리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 당장의 여성혐오적 발언(‘화장은 남자보라고 하는 거잖아~’)은 받아칠 수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또 다른 억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억압은 타인, 99%의 확률로 여성에게 적용될 것이다.

 

    화장하지 않는 사람만 자신감 넘치는 진정한 페미니스트고 화장하는 사람은 자신감 없는 반여성주의자라고 매도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는 여성에게 실체 없는 미의 기준을 실현하라 강요하는 여성혐오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화장은 가장 손쉬운 방어법이다. 완전한 자율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여성 개인을 탓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문제는 한쪽 성에게만 화장을 의무화했다는 것, 미디어와 뷰티 산업이 이에 발맞춰 여성을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정말 화장을 좋아해서 즐기는 것과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 위축되고 불이익 받는 것, 나아가 맨 얼굴을 택할 권리가 없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브라, 하이힐 등 여느 뷰티 아이템들이 그러했듯이 자유도의 문제다. 그래서, 코덕 동지로서 같이 고민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누가 화장 코르셋을 조이고 있고, 어떤 화장이 코르셋인지를 따질 것이 아니라 화장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나 억압적 성격을 인정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어떻게 전복해야 할지를 같이 고민해봐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정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기표현으로서의 화장을 위해서 말이다.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필자소개

여태껏 내 손으로 덕질한 것 중에 페미니즘만큼 재밌는 게 있었나? 페미니즘에 강하게 치인 새내기 페미입니다.

여름은 노출의 계절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를 위한 노출일까요? 우리는 언제까지 성희롱이나 몰카, 품평을 위해 노출하는 것으로 여겨질까요? 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거울 앞에서 한참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래시가드를 만든 사람은 감방에 처넣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하석진과 노브라로 미친년이 된 설리가 공존합니다. 말하자면 오빠가 허락해준선에서만 노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출처 : 구글)

 

이번 회 여대회담에서는 여성의 패션에 대한 자유를 다루어보았습니다. 여자와 패션 그리고 여대와 패션에 대해 이야기 해 볼 건데요. 그럼 제9차 여대회담, 지금부터 시작해볼까요.

 

 

9차 여대회담: 패션에의 자유

회담진행: 나나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지완: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지완이다. 오늘로 페미니스트가 된지 딱 2년이 됐다.

 

 

Q. 오늘 외출하기 전, 거울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나요?

 

-지완: ‘오늘도 고생 시작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꾸미려면 한두 시간은 걸리니까 거울만 봐도 피곤하다. 오늘 입은 옷은 내가 봐도 참 예쁘고 또 가슴이 파이지 않아 신경도 안 쓰이고 편하다.

 

-나나: 꾸미지 않고 편안한 차림으로 외출할 때에는 어떤지?

 

-지완: 민낯으로 편한 옷을 입고 나오면 움츠러드는 편이다.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내가 너무 후줄근해서 쳐다보는 건가?’, ‘서울 다니는데 너무 안 꾸몄나?’ 이런 생각을 한다.

 

-나나: 가슴이 파이지 않은 옷을 입어서 편하다고 하셨는데, 옷을 고를 때에 시선폭행 때문에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편인지?

 

-지완: 피곤한 날에는 일부러 노출 없는 옷을 고른다. 남자들이 쳐다보면 신경이 곤두서서 더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깊게 파인 브이넥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나갔는데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운전하면서까지 쳐다보더라. 한번은 학교 앞 역에서 한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우후~’라는 소리를 냈다. 내가 ?’라며 소리를 쳤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며 자리를 떴다. 파인 옷을 입으면 저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기분 나빴다.

 

 

Q. 일상생활 속, 특히 어떤 점에서 여성의 패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완: 브래지어와 속바지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내 친구들은 브라 끈이 보이면 부끄러워하며 당장 가리라고 한다. 친구들 때문에 나도 강박이 생겨 한여름에도 브래지어 위에 민소매를 항상 같이 입었다. 지금은 노브라로 다닌 지 두세 달 정도 됐다. 편하다. 친구들은 부끄러워하더라. 나는 아무 생각도 없는데. 그래도 니플 패치는 꼭 붙인다. 하지 않고 명동에 갔다가 심하게 시선폭행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여자는 섹시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가뜩이나 가슴, 브라까지 안 하고 있으니 얼마나 작아 보이는 줄 아냐?’라고 하시며 여자로서의 매력이 반감된다고 하더라. 더워서 안 하는 것일 뿐인데 무슨 섹시얘기까지 나오는지. 가슴이 작으면 노브라로 다니는 게 이상한건가?

 

(출처 : 구글)

 

-나나: 집에서 노브라로 있을 때에는 어떠한지?

 

-지완: 집에선 무조건 브라를 하지 않는다. 내가 아빠나 오빠를 잘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시원해보이게 입고 있으면 조금 눈치를 보게 된다. 말은 안 해도 시선이 있다는 걸 아니까. 친구들은 나에게 집에 남자 형제가 있는데 어떻게 브라를 안 하느냐, 젖꼭지가 다 보이는데 쪽팔리지도 않느냐고 한다.

브래지어뿐만 아니라 속바지에 대한 스트레스도 심하다. 예전에 학교 모 커뮤니티에서 올라온 글이 생각난다. ‘한 여성이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는데 속바지가 다 보였다. 가방으로 가리지 않고 계단을 올라가는 건 예의 없는 짓이다.’ 댓글로도 꼭 가리고 올라가야 한다는 글만 올라오더라. 팬티 보이지 말라고 속바지를 입었는데, 속바지를 또 가려야 한다. 브라랑 똑같지않나. 가슴 가리려고 브라를 했는데 브라까지 가려야 하니까. 온 몸을 꽁꽁 싸매고 다녀야하나? 엄마는 내가 속바지를 입는지 확인한다. 난 속바지 입는 게 너무 싫다. 지금이 32도인데 내가 또 안에 속바지를 입으라고? 그래도 엄마가 왜 걱정하시는지는 잘 알고 있다. 지하철만 타도 몰카를 찍으니 걱정하시는 거다. 어쩔 땐 나도 몰카가 걱정이 되어 속바지를 입는다. 여자라서 몰카의 표적이 될 상황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게 스트레스다.

 

 

Q. 시선폭행으로 특히 불쾌했던 경험이 있나요?

 

-지완: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지하철을 탄 적이 있다. 어떤 할아버지가 나를 계속 쳐다보더라. 그래서 나도 계속 쳐다봤다. 그런데 내가 교통카드를 찍고 개찰구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욕을 하고 도망갔다. 내가 남자였다면, 하다못해 내 옆에 남자친구로 보이는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이런 일은 처음 겪어봐서 충격적이었다. 노출이 있는 옷을 입으면 남자들이 추근대거나 시비를 걸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또 오프숄더를 입었다가 시선폭행을 굉장히 심하게 겪은 일도 있다. 어떤 남자가 내 옆에 앉았는데,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심하게 쳐다보더라. 너무 불쾌해서 자리를 옮겼다. 내릴 때가 되어 버스 손잡이를 잡고 기다리고 있는데, 남자가 나를 계속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몰래 보고 있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피하지 않나. 그래서 내가 일부러 쳐다봤는데도 계속 보고 있더라. 소름끼쳤다. 내리니까 창문으로 빤히 보고 있더라. 무서워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지만 엄마는 뭐 입고 있었는데?’라고 물었다. 오프숄더를 입고 있었다고 하니까 별 반응이 없었다. 서러워서 울었다.

 

(출처 : news1)

 

 

Q. 남성과 비교해봤을 때 패션 자유도가 더 낮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완: 그렇다. 인터넷 쇼핑을 좋아하는데, 모든 쇼핑몰마다 남친이 반했어’, ‘남친이 또 반했어’, ‘남심 흔드는 샤랄라 원피스막 이러고 있더라. (웃음) 정말 모든 쇼핑몰이 다 이런 문구야.

 

-나나: 옷을 구매할 때 그런 문구를 신경쓰는지?

 

-지완: 나는 남자들이 좋아한다는 걸 신경 쓰진 않지만, 그런 문구들을 보면 많은 쇼핑몰 취향이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걸로 맞춰지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안 예쁘다고 생각한 옷들인데, ‘남자친구가 좋아해’, ‘남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해라는 문구로 세뇌를 시키니까 진짜 예뻐 보이나?’라는 생각도 들면서 한 번 더 보게 되더라. 남자들을 반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옷을 입지 않고, 그런 마음에서 최대한 벗어나려 하지만, 완전히 벗어나는 건 힘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원하는 스타일대로 꾸미는 것에 대해서도 자유도가 낮다고 생각한다. 숏컷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 싶은데 여자한테 잘 안 어울린다는 말을 많이 해서 못 자르겠더라. 타투도 하고 싶은데 어머니께서 심하게 반대하신다. 엄마가 허용하는 유일한 문신은 눈썹 문신이다. 항상 여자 몸에는 함부로 새기면 안 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화장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그렇게 입술을 빨갛게 하고 다니면 남자들이 별로 안 좋아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난 빨갛게 칠하는 걸 좋아하는데. 악세사리 또한 이와 비슷하다. 큰 귀걸이를 좋아하는데 이런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튀는 건 별로라며 남자들이 다가가기 편한 수수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

 

(출처 : 구글)

 

 

Q. 패션에 대한 여대 편견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짤이 있지 않나. 여대 다니는 사람이 풀메이크업에 예쁘게 꾸미고 왔을 때에는 역시 여대에 다니는 사람들은 빡세게 꾸미네라고 말하고, 추레하게 다닐 때에는 여자들만 있는 학교 다니는 거 티 내냐?’라는 내용의 짤.

나도 이전에는 여대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명품백만 들고 다니며 사치스러울 것이라는 편견. ‘이대 애들은 어떻고 숙대 애들은 어떻고...’ 루머일 뿐인데 사람들은 그걸 믿더라. 그로인해 여대생에 대한 혐오도 더 생기는 것 같다. 사촌오빠는 내게 여대 애들이 좀 사치스럽지 않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나는 그런 애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애도 있으며, 그건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른 것이라고 답한다. 그러면 사촌오빠는 내 말을 안 듣는다. 원하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니까 갑자기 휴대폰을 하더라. 내가 만약 여대 다니는 사람들은 다 김치년이고 남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백을 사주며, 그 백을 들고 클럽에도 다닌다라고 말한다면 , 그래?’하면서 귀 기울였을 걸? (웃음) 자기가 생각할 때 자극적이고 여대혐오에 적합한 이야기를 해주면 귀 기울이고 아니면 아무 말도 안 한다.

 

(출처 : 구글)

 

-나나: 그렇다면 여대와 패션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지완: 자유로움. 공학에 다니는 학생들보다 패션에 대해 더 자유로울 것 같다. 내가 공학에 다녔다면 시선폭행에 대한 걱정과 스트레스로 힘들었을 것 같다. 여대에 다니면 파인 옷을 입어도 편하게 등교할 수 있다. 브라나 속바지를 입지 않는 것도 용기를 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시선폭행은 일반화가 아닌 팩트다. 보통 일반화라고 말하는 사람은 남자, 즉 그런 시선을 당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여자들은 적어도 한 번씩은 겪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선폭행을 하는 사람들은 노출에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몇 초 보는 건 괜찮겠지라는 생각 같은데, 그런 사람들이 거리에 몇 명씩 있다고 생각해보라. 노이로제 걸린다. 우연히 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시선폭행은 눈이 마주치는 빈도나 시선이 머무는 시간이 다르다. 그런 걸 살면서 여자들이 자주 겪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여대에서는 이런 일을 안겪는다.

또 남자들이 많으면 몰카 걱정을 해야 한다. 이런 말도 일반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남자가 많으면 몰카 설치 비율이 높다. 뿐만 아니라 공학 학교 커뮤니티에는 여자 학우들을 품평하는 글도 올라오더라. ‘오늘 지나다니던 어느 학과 여자 너무 예뻤다라고 공개적으로 쓴 글을 봤는데 아무도 제지하지 않더라. 이런게 아니더라도 빤히 쳐다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시선폭행 때문에 지금보다는 얌전하게 입어야 했을 것 같다.

 

-나나: ‘노출에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완: 그러니까 그들에게 여자는 성적 객체다. 여자를 성적으로 대상화해서 조금만 노출이 있어도 시선폭행을 하는 것이다. 오프숄더가 그렇게 노출이 심한 옷도 아닌데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보니까 어깨만 보여도 시선폭행을 하지 않았나. 지하철 몰카 중에는 노출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반팔 원피스를 입고 있는 사람도 있더라. 그 여성을 몰카로 찍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다리만 살짝 보여도 디지털 성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news1)

 

 

6. 모든 방해물이 제거된다면 가장 하고 싶은 패션 아이템이 특히 있으신가요?

 

-지완: 브라탑, 브라렛에 청바지만 입고 돌아다니고 싶다. 외국에선 브라탑, 브라렛을 단독으로 입고 다니는데 한국은 쳐다보는 시선이 있어서 꼭 티셔츠와 함께 입지 않나. 그리고 팔 전부를 덮는 용 문신을 하고 싶다. 이효리가 공중목욕탕에 갔더니 여자가 몸에 그림을 그렸냐고 지적했다고 하더라. 이런 시선들이 사라진다면 여기저기에 타투를 하고 싶다. 또 투블럭컷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치마를 입었을 때 가방으로 가리고 계단 올라가는 것 좀 안 하고 싶다, 몰카에 대한 걱정 없이.

 

(출처 : 코스모폴리탄)

 

 

7. 후기

 

-지완: 정말 재밌는 시간이었다. 페미니즘에 관심 없는 사람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답답한 반응이 돌아오지 않나? 보여지기 위해 그렇게 입은 거 아니냐는 둥 맨날 도돌이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속 터놓고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여자끼리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면 좋을 것 같다.

 


5월은 대학 축제의 달이다. 학업에 치이고 학점에 치이는 대학생들에게 대학 축제는 잠깐이나마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대학생이 대학 축제의 주체인가? 특히 여대생들은 대학 축제에서조차 마음껏 즐기지 못한다

무대에 선 사회자는 여혐 발언을 하며 분위기를 띄운다. 주위 사람들이 동조하며 웃는 것조차 나는 불편해진다. 무대에 초빙된 가수는 이전에 나온 여가수와 달리 자기는 옷 벗어서 돈 버는 사람이 아니라고 농담한다. 밤이 되면 과나 동아리에서 운영하는 주점이 열린다. 주점의 홍보 프린트에는 섹슈얼한 포즈를 한 여성의 이미지가 나를 유혹한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에 핫팬츠 차림을 한 여학생들이 교문에서부터 남학생 몇 명을 붙잡아 부스로 데려오고 있었다. 남학생들이 테이블에 앉자 주점의 스탭인 듯 같은 옷차림을 한 여학생이 자연스럽게 같은 테이블에 착석한다. 여학생들의 호객행위는 계속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과거 대학 축제의 주 고객층은 본교 선배나 교수, 혹은 재학생의 가족이었다. 2011년 숙대 축제에서는 청소·경비 노동자분들과 함께하는 사랑의 밥 짓기행사를 열기도 했다. 극도로 성애화된 대학의 축제 문화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당연한 풍경이 되었다. 그럴수록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우리는 작금의 대학 축제 문화를 어떻게 향유해야 할 것인가. 모든 대학생이 주인이 되어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상상하기 위해 페미니스트 여대생들과 함께 이야기해보자. 여대생에게 있어 대학 축제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꼈을까?



(출처: 한국대학신문)

 


제8차 여대회담:

누구를 위하여 대학 축제는 열리나.

회담 진행: 한의 민족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챔피: 숙명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고 사회적 약자 인권에 관심 많은 페미니스트이다. 작년에 처음 겪은 축제에서 여성혐오 탓에 불편함을 느꼈다


-시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 재학 중인 페미니스트 여대생이다. 저번에 친구가 여대회담에 참석을 했다. 그 때 <월간여기>를 알게 되었고 친구의 소개로 참석하게 되었다.

 


Q. 본인 학교의 축제문화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부탁한다.

 

-챔피: 낮 부스, 밤 부스, 학생 공연, 연예인 공연 4가지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 낮에는 서울대처럼 음식을 팔거나 동아리 자체 부스를 운영하고 밤에는 주점과 연예인 공연을 진행한다.

 


 (출처: 동아닷컴DB.)

 


-시호: 낮에는 부스를 운영하고, 주점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 푸드 트럭, 동아리 공연 등을 하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축제 문화에 여성혐오가 너무 두드러진다거나 하는 건 많이 못 느꼈다. 노래하거나 춤추는 참가자를 받아서 대회도 하고, 림보 게임을 기획해서 상품을 주고, 밤에는 노래 틀어놓고 같이 노는 식으로 운영된다.

 

-한의 민족: 대학 축제하면 보통 주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자체적으로 안 하는 분위기인가?

 

-시호: 축제 운영 위원회에서 간단한 안주와 주류를 파는 등, 일종의 주점 역할을 하는 장터가 여럿 열리긴 한다. 그런데 과별로 주점을 운영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축제와 별개로 과, 반 별로 장터를 운영한다. 장터에서는 학기 중에 하루 날을 잡아서 주로 새내기들이 요리나 주류를 판매한다. 또한 학교 인근의 주점을 하루 빌려 운영하는 일일호프에서도 주류를 판매한다.

 



(출처:구글)



 

Q.낮 부스에서는 대체로 무엇을 하나? 낮 부스 운영 분위기는 어떠한가? 밤 부스와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가?

 

-챔피: 전시회, 판매(음식,창작물 등), 동아리 홍보, 기타 등등 을 한다. 낮부스는 본교생 중심으로 운영되고, 밤부스는 외부인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 같다. 낮부스에는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로 구성돼있고, 밤부스는 주점 중심이다. 낮부스는 밤부스보다 외부인이 비교적 적다는 이유로 본교생(재학생)이 축제를 더 안전한 환경에서 즐길 수 있는 거 같다.

 

-시호: 낮 부스는 트램폴린을 설치한다거나 같이 게임 위주로 진행이 되는 것 같다. 림보 게임이라던가. 몸을 쓰는 게임처럼 말이다. 보컬이나 춤 공연을 하기도 한다. 밤 부스는 돌아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어쿠스틱, 일렉 노래 공연이 주인 것 같다. 신청하는 과에 텐트를 나눠주는데, 텐트 안에서 동기들끼리, 선후배들끼리 노래를 들으면서 놀고 한다.

 


(출처:구글)


 

-한의 민족: 장터에 대해 좀더 설명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시호: 인문대 공터나 학생회관 앞 등 학교에 (장터 장소로) 주로 쓰이는 곳이 있다. 미리 대여해서 야외에 판을 놓고 팔고 주변에 돗자리를 깔아서 앉아서 먹거나 술을 들고 가기도 한다.

 

-한의 민족: 서울대의 축제 문화는 상대적으로 논란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시호: 다른 대학 축제를 많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다른 대학 축제랑은 구성이 다르다. 아무래도 접근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내부 구성원끼리 모여 노는 분위기가 있다.

 


Q.대학 축제라고 하면 주점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대학 축제 내 주점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서울대의 경우 장터'일일호프'를 포함하여 이야기하기로 한다.)

 대학 축제 주점에서 겪었던 구체적인 성차별 사례를 이야기해달라.

 

-챔피: 숙명여대는 청파제를 매 해 여는데, 몇 년 전 어떤 남성이 축제 현장에 들어와 여성의 다리만 찍어서 남초 사이트에 유포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학생회에서 복장 규정과 선정적인 컨텐츠를 이용한 홍보를 금지하는 청파제 규정안을 냈다. (다른) 여대의 축제를 가본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해보자면, 여대가 금남의 구역으로 여겨지다 보니까 몇몇 남성들이 불순한 의도나 호기심으로 침입하는 경우가 있다. 아버지뻘 남성들이 여성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걸 자주 목격했다.



여성은 마치 상품처럼 재단되고 눈요깃거리가 되고 부위별로 평가받는다. 

(출처:구글)


 

-시호: 장터가 한 학기 중 중요한 행사라서 홍보를 많이 한다. 반 별로 컨셉을 잡아서 포스터를 만들어 뿌리는데, 주로 패러디를 많이 한다. 그런데 여초과라고 여겨지는 과의 홍보물에 남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정말 여자밖에 없는 과라고 홍보를 하더라. 여초 혹은 남초 집단에서 자조적으로 혹은 타의로 불쌍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을 포인트로 잡은 것이다. 그걸 포인트로 고르는 게 이해가 안 됐다. 더 어려운 점은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다들 센스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 버린다. 문제제기의 여지도 생기지 않는다.

그런 부분도 있다. 단과대 별로 성격이 다르지만, (사회과학대는) 학기 초 새내기 환영회를 할 때 차별이나 인권 같은 부분에 대해서 한 번 짚고 넘어간다. 그걸 준비하는 분위기도 진지하고 책자도 제공되는데, 사실 실효성이 높은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분위기를 바꾼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가 오가면 사람들이 눈치를 보게 된다. 자기가 100% 알지는 않더라도 당당하지 못하다는 걸 인식하게 한다. 그런데 (눈치보는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것 같다. 3월에 새내기가 가장 주목받지 않나? 활동도 활발하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보면 결국 술 마시고 놀다보면 다 (신경 안 쓰고) 노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다. 진지한 문제의식이 제기가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너무 재미없지 않냐고.

 

-한의 민족: 교육이 존재함에도 그런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인가?

 

-시호: 기본 베이스(작년 자료)를 가지고 고치는 식으로 진행되다 보니까, 해당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하고 바꾸기 보다는 작년에 했던 대로 적당히 하자는 분위기가 있다. 주체적인 의논이 활발하게 이뤄지진 않는다.

 

-한의 민족: 책자엔 어떤 내용이 실리나?

 

-시호: 성차별적 측면이나 권력 관계적 측면 등 크게 5갈래 정도로 나눠서 문제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적는다. 새터 때 그걸 바탕으로 연극 같은 활동을 한다. 자료집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테마에 대해 글을 쓰기도 하고. 그 외에도 실질적인 정보가 실리는데 보통은 그 쪽으로 관심이 쏠린다.


일일호프는 보통 학교 주변 술집을 하루 빌려서 판매하고 수익을 주인과 분배해서 갖는 식으로 운영한다. , 반별로 시기에 따라 할로윈, 교복 컨셉을 정해서 하기도 한다. 작년에 일일호프에 참여했었는데 교복 컨셉이어서 각자 고등학교 때 교복을 입고 진행했었다. 간단한 게임, 뽑기를 하기도 하고 합석도 한다.


 

(출처: 구글)



-한의 민족: 합석 과정은 어떻게 진행 되는지?

 

-시호: 핸드폰 플래시 위에 소주병을 올려놓고 그린라이트라고 불러서 합석을 시키기도 한다. (손님으로부터) 합석시켜달라는 말을 들으면 다른 테이블에 가서 물어보긴 한다. 개인끼리 합석한다고 하면 개입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술자리다보니 여자 테이블이 있으면 말 걸고 주정을 부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해당 케이스에서는 주점이 끝난 후 상황을 알아서 따로 제재를 하긴 힘들었다.

 

-한의 민족: 당시 상황은 안타깝다. 일반적으로 일일호프에서 성차별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 스탭 차원에서 대처 매뉴얼이 있는가?

 

-시호: 우선 내가 스탭으로서 겪은 케이스는 위의 사례밖에 없어서 실제 유사한 상황에서 어떠한 대처들이 오가는지 정확한 예시를 들긴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일일호프 운영에 있어서 직접적 운영 방식 외에 특별한 상황에 대한 대처 매뉴얼들은 마련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상황에 따른 스탭들의 임기응변이 전부일 것 같다. 만약 내가 당시 상황을 미리 알았거나 그 현장을 목격했더라면 즉시 취객을 진정시키고 테이블로 돌려보낸 다음 피해자분들에게 괜찮은지, 그 이상의 피해는 없었는지, 혹시 불편해 한다면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드리는 등의 조치를 취했을 것 같다.

 

-한의 민족: 일일호프의 컨셉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으면 좋겠다. 일일호프에서 교복 컨셉을 했다고 말했는데, 컨셉을 결정하는 논의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시호: 직접적인 장소 섭외, 메뉴 선정 등 일을 하기 위해 자원한 친구들로 구성된 일일호프 준비 위원회가 대부분 정한 다음 공지하고 이후 의견을 받는 식으로 진행되어서 위원회가 아니었던 나는 컨셉 선정 과정에 있어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아는 바가 없다. 공지를 받은 이후에도 특별한 이견 없이 진행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복 컨셉을 선정하는데 특별한 이유나 의도가 있기 보다는 많이들 하는 드레스 코드 중 하나고, 의상 준비에 특별한 추가 비용, 시간이 들지 않기 때문에 선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라 짐작한다. 하지만 비용적 측면이든, 단순한 추억이든, 재미가 이유이든 교복 컨셉에 대한 논의는 피할 수 없을 것 같긴 하다. 개인적으로는 생각이 아직 뒤죽박죽인 부분이 있는데, 교복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청소년들을 성적대상화 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어떤 옷을 어떻게 입든 간에 누구도 대상화 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계속 든다. 현 상황에서 불가피한 부분이 어느 정도 있음을 부정할 순 없겠지만.

 


교복이 학생들만의 전유물이던 시대는 지났다. 

교복 컨셉은 아이돌 시장에서도 잘 팔리며, 대학 축제에서도 인기있는 컨셉이 되었다. 

그러나 교복 컨셉은 미성년자를 성적 대상화시킨다는 혐의를 벗어나지 못 한다.

(출처:구글)

 



Q. 학교 주점 문화에 대한 본인의 느낌이나 의견을 말해달라. 또한 학교 주점 문화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챔피: 대학 축제에 주점이 존재해야할 이유를 모르겠다. 대학 축제는 술을 마셔야 된다는 인식이 있어서 너도나도 주점을 운영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외부인들을 유인하려고, 특히 여대는 외부에서 남자들이 많이 오니까 경쟁이 과열된 상태에서 여자들이 예쁘게 차려입고 호객행위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실제로도 그렇고. 그런 현실이 씁쓸하다.

 

-시호: 사실 (대학 내에서) 주점은 다양한 목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그냥 축제라서 운영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행사나 캠페인을 진행하기에 앞서서 함께 열리는 경우도 있고, 학생 외 청소해주시는 분들을 위해 함께 열리는 경우도 있고. 나는 그러한 목적이나, 주점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이지는 않다. 다만 그 과정에서 여성을 상품화한다던가 수단으로 이용하는게 조금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문화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주점 부스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여성이 어떤 의상을 입느냐는 문제가 아니지만, 보는 사람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소비해버리는가, 이게 문제다. 페이스북에서 본 것 같은데, 대학가에서 작업주의 의미를 가진 00주를 메뉴판에 둔 것을 문제제기를 하니까, ‘왜 그 한가지 의미로만 해석하느냐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물론 메뉴판을 작성하는 사람들이, 대놓고 강간문화를 유도하고 권장하려는 의미에서 하지는 않았겠지만 (강간을 암시하는 소재를) 유머 코드로 소비한다는 것부터가 그런 문화의 지속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상황이었더라면 좀 더 비판적이었을텐데, 주점이나 축제라고 하면, 사람들이 좀더 경계를 낮추는 것 같다. 조금 더 넘어도 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장난이나 유머로 소비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축제라는 의미 안에서 조금 허용해주는 분위기가 없지 않은 것 같다.

 


Q. 최근 대학교 축제 현장은 성을 상품화한 호객행위가 과하다는 의견이 여럿 있다. 이에 따라 00대학교 총학과 학생들의 합의하에 자체적으로 (과나 동아리에서 운영하는 주점에서 단체로 맞추어 입는)유니폼에 대한 의상 규정안을 낸 적이 있다. 이런 규정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챔피: 매우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규제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규제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당시 00대 총학에서 안전하고 건전한 00인의 축제를 보여주세요라는 취지하에 규정안을 발표한 것인데, 이 취지를 문제 삼고 싶다. ‘안전하고 건전한 00인의 축제를 보여주세요라는 슬로건이 여성에게 죄를 전가하는 것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았다. ‘안전하고 건전한 00인의 축제를 보여주세요가 아니라 축제에서 00인을 성추행, 성폭행하지 말라고 바꾸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 더 다양한 담론이 나올 수 있었는데, (규정안의 등장으로 인해) 오로지 복장 규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게 된 것이 아쉬웠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그 상황을 해석했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교복 규정은 찬성한다. 청소년의 의상인 교복을 입고 술을 판매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축제 의상에 관한 자성을 촉구하는 권고안이 몇 차례 나왔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00대학교 총학생회는 결국 의상 규정안을 만들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당시 총학생회에서는 본 의상 규제안을 통해 오히려 여대생의 주체성을 되찾고

나아가 대학 축제 내에 만연한 성차별적이고 성상품화 문화에 제동이 걸리기를 기대했다.

당시 00대 축제에는 선정성대신 참신한 아이디어가 자리했다.

(출처:여성신문)

 


-한의 민족챔피씨가 학생회 회의에서 많은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시호 챔피씨의 말처럼 몰카를 찍어서 올린 사건을 계기로 규정안이 생겼다면, (몰카 범죄 예방을 위해 여성이 노출을 자제하는) 목적은 반대한다. 노출을 줄이는 방향의 옷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피해자 여성들에게 네가 짧은 옷을 입었으니 원인을 일부 제공한거야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것 같다. 의상 규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주체적으로 만들어진 규정안이라고 하더라도, 왜 옷을 입는 학생들이 먼저 조심을 해야 하는건지. 옷을 조심해서 입는다는 표현도 이상하다. 본인의 섹슈얼리티를 어떠한 방식으로 표출을 할 것인가는 자유의 영역이지만, 타인의 섹슈얼리티를 소비하는 것은 권리나 자유가 아니다. 그런 구분이 필요할 것 같다.

 

-한의 민족: 해당 규제안은 개인의 의상이 아닌 동아리나 과에서 운영하는 부스의 유니폼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선후배 관계에 존재하는 낙차를 줄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시호: (선후배 관계에서) 후배라는 위치는 상대적으로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기 어려운 입장이니까 (의상 규제안이) 일종의 바리케이드처럼 작용하는 것은 이해를 하는데, 장기적으로 유의미한 효과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더 이상 여성의 성 상품화가 짧은 옷을 입었다고 해서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복 같은 것도 예전에는 그런 섹슈얼한 시각이 없었는데, 점점 성적 취향 비슷하게 소비를 한다거나 대상화한다. 의상 규정안이 일단 당장에 최소한을 보장하기 위한 대처는 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원치 않는 성상품화나 대상화를 막는 데에 장기적인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옷을 입지 않더라도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른 방식으로 이미지를 씌워버리면 결국 다시 반복될 것 같다.

 


바다에 어울리는 몸이란?

(출처:구글)

  



Q. 왜 대학 축제에서 주점이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시호: 꼭 축제뿐만 아니라 대학 문화 전반에 술이 빠지지 않는 느낌이다. 회의를 하더라도 뒷풀이-술로 연결되니까. 그러다보니 축제도 당연히 술 없이는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이 이대나 서울대 축제가 재미없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런 것 (주점 문화가 없는 것) 때문인 것 같다.

 

-한의 민족: 주점, 일일호프 문화가 대학 행사 중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 궁금하다.

 

-시호: 거를 수 있는 행사가 아니다. 다들 참여하려고 한다. 재미를 목적으로 하는 게 큰 것 같다. 반 차원에서 하는 행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의 민족: 행사가 많지 않으니까 각각의 행사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챔피: 그저 관행으로, 지속적으로 이래왔다는 이유만으로 대학 축제에서 주점이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주점 말고 다른 무엇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대학 내 주점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면 여성혐오적 주점 문화도 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대학 축제를 넘어 여성혐오적인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 축제 내의 여성혐오적인 문화는 대학을 넘어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출처:구글)



Q. 대학 축제 내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자정하기 위해 대학 축제 문화는 어떻게 바뀌는 게 좋을까?

 

-챔피: 주점 외의, 다른 방식의 축제를 고민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점이나 연예인 공연 보는 것을 꼭 대학 내에서 해야 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다. 대학교는 학습의 장이므로, 축제 때 학술적인 성격의 행사를 진행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2011년 숙대 축제에서는 청소·경비 노동자 분들과 함께 '사랑의 밥짓기' 행사를 열었다.

(출처:구글)

 

 

-시호: 혐오적 언행을 용인해주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축제가 그 연장선이 되는 것이다. 여성혐오적인 사회 분위기를 차단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런 성찰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면 한결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의 민족: 여성혐오적인 사회 분위기에 대한 차단과 집단적 성찰은 대학 축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본다. 서울대학교에 그런 단체가 있다고 들었다. ‘축제하는 사람들에 대해 설명해 달라.



 

축제하는 사람들이란 봄축제와 가을축제그 외 작은 페스티벌들을 기획하는 서울대학교의 학생 자치 단체이다

축제하는 사람들은 축제 기획뿐만 아니라 '대학문화의 자율성비상업성비차별성'을 유지하고

축제 내의 다양한 혐오표현과 상황을 자정하기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출처: 구글)

 

-시호: ‘축제하는 사람들이란 봄축제와 가을축제, 그 외 작은 페스티벌들을 기획하는 단체다. 매 학기 다음 학기의 축제를 기획할 사람들을 새로 모집하는 방식으로 구성원이 모이는 걸로 알고 있고, 축제의 큰 테마를 정하는 것부터 운영할 행사나 이벤트들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축제의 모든 부분을 총괄하는 단체이다. 축제에 관해서만큼은 가장 가까이에서,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단체가 아닐까 싶다. 축제의 큰 가닥을 엮어가는 단체인 만큼 이들이 나서서 자정작용을 한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금 부족하다면, 다른 학생들과 산하에 있는 소수자 인권 위원회같은 단체에서도 계속해서 경계하고 지적할 수 있는, 또한 그런 지적이 (재미보다) 우선시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Q. 후기


-챔피: 대학 축제 내 여성혐오그리고 복장 규정논란, 오로지 복장 규정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더 다양한 담론이 오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학 축제 문화-여성혐오는 대학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전반적인 문제라고 본다.


-시호: 사실 학교명을 밝히고 나오는 거니까 축제에 대해 내가 본 것들만 말하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됐는데 잘 이끌어 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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