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대학 축제의 달이다. 학업에 치이고 학점에 치이는 대학생들에게 대학 축제는 잠깐이나마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대학생이 대학 축제의 주체인가? 특히 여대생들은 대학 축제에서조차 마음껏 즐기지 못한다

무대에 선 사회자는 여혐 발언을 하며 분위기를 띄운다. 주위 사람들이 동조하며 웃는 것조차 나는 불편해진다. 무대에 초빙된 가수는 이전에 나온 여가수와 달리 자기는 옷 벗어서 돈 버는 사람이 아니라고 농담한다. 밤이 되면 과나 동아리에서 운영하는 주점이 열린다. 주점의 홍보 프린트에는 섹슈얼한 포즈를 한 여성의 이미지가 나를 유혹한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에 핫팬츠 차림을 한 여학생들이 교문에서부터 남학생 몇 명을 붙잡아 부스로 데려오고 있었다. 남학생들이 테이블에 앉자 주점의 스탭인 듯 같은 옷차림을 한 여학생이 자연스럽게 같은 테이블에 착석한다. 여학생들의 호객행위는 계속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과거 대학 축제의 주 고객층은 본교 선배나 교수, 혹은 재학생의 가족이었다. 2011년 숙대 축제에서는 청소·경비 노동자분들과 함께하는 사랑의 밥 짓기행사를 열기도 했다. 극도로 성애화된 대학의 축제 문화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당연한 풍경이 되었다. 그럴수록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우리는 작금의 대학 축제 문화를 어떻게 향유해야 할 것인가. 모든 대학생이 주인이 되어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상상하기 위해 페미니스트 여대생들과 함께 이야기해보자. 여대생에게 있어 대학 축제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꼈을까?



(출처: 한국대학신문)

 


제8차 여대회담:

누구를 위하여 대학 축제는 열리나.

회담 진행: 한의 민족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챔피: 숙명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고 사회적 약자 인권에 관심 많은 페미니스트이다. 작년에 처음 겪은 축제에서 여성혐오 탓에 불편함을 느꼈다


-시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 재학 중인 페미니스트 여대생이다. 저번에 친구가 여대회담에 참석을 했다. 그 때 <월간여기>를 알게 되었고 친구의 소개로 참석하게 되었다.

 


Q. 본인 학교의 축제문화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부탁한다.

 

-챔피: 낮 부스, 밤 부스, 학생 공연, 연예인 공연 4가지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 낮에는 서울대처럼 음식을 팔거나 동아리 자체 부스를 운영하고 밤에는 주점과 연예인 공연을 진행한다.

 


 (출처: 동아닷컴DB.)

 


-시호: 낮에는 부스를 운영하고, 주점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 푸드 트럭, 동아리 공연 등을 하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축제 문화에 여성혐오가 너무 두드러진다거나 하는 건 많이 못 느꼈다. 노래하거나 춤추는 참가자를 받아서 대회도 하고, 림보 게임을 기획해서 상품을 주고, 밤에는 노래 틀어놓고 같이 노는 식으로 운영된다.

 

-한의 민족: 대학 축제하면 보통 주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자체적으로 안 하는 분위기인가?

 

-시호: 축제 운영 위원회에서 간단한 안주와 주류를 파는 등, 일종의 주점 역할을 하는 장터가 여럿 열리긴 한다. 그런데 과별로 주점을 운영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축제와 별개로 과, 반 별로 장터를 운영한다. 장터에서는 학기 중에 하루 날을 잡아서 주로 새내기들이 요리나 주류를 판매한다. 또한 학교 인근의 주점을 하루 빌려 운영하는 일일호프에서도 주류를 판매한다.

 



(출처:구글)



 

Q.낮 부스에서는 대체로 무엇을 하나? 낮 부스 운영 분위기는 어떠한가? 밤 부스와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가?

 

-챔피: 전시회, 판매(음식,창작물 등), 동아리 홍보, 기타 등등 을 한다. 낮부스는 본교생 중심으로 운영되고, 밤부스는 외부인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 같다. 낮부스에는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로 구성돼있고, 밤부스는 주점 중심이다. 낮부스는 밤부스보다 외부인이 비교적 적다는 이유로 본교생(재학생)이 축제를 더 안전한 환경에서 즐길 수 있는 거 같다.

 

-시호: 낮 부스는 트램폴린을 설치한다거나 같이 게임 위주로 진행이 되는 것 같다. 림보 게임이라던가. 몸을 쓰는 게임처럼 말이다. 보컬이나 춤 공연을 하기도 한다. 밤 부스는 돌아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어쿠스틱, 일렉 노래 공연이 주인 것 같다. 신청하는 과에 텐트를 나눠주는데, 텐트 안에서 동기들끼리, 선후배들끼리 노래를 들으면서 놀고 한다.

 


(출처:구글)


 

-한의 민족: 장터에 대해 좀더 설명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시호: 인문대 공터나 학생회관 앞 등 학교에 (장터 장소로) 주로 쓰이는 곳이 있다. 미리 대여해서 야외에 판을 놓고 팔고 주변에 돗자리를 깔아서 앉아서 먹거나 술을 들고 가기도 한다.

 

-한의 민족: 서울대의 축제 문화는 상대적으로 논란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시호: 다른 대학 축제를 많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다른 대학 축제랑은 구성이 다르다. 아무래도 접근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내부 구성원끼리 모여 노는 분위기가 있다.

 


Q.대학 축제라고 하면 주점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대학 축제 내 주점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서울대의 경우 장터'일일호프'를 포함하여 이야기하기로 한다.)

 대학 축제 주점에서 겪었던 구체적인 성차별 사례를 이야기해달라.

 

-챔피: 숙명여대는 청파제를 매 해 여는데, 몇 년 전 어떤 남성이 축제 현장에 들어와 여성의 다리만 찍어서 남초 사이트에 유포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학생회에서 복장 규정과 선정적인 컨텐츠를 이용한 홍보를 금지하는 청파제 규정안을 냈다. (다른) 여대의 축제를 가본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해보자면, 여대가 금남의 구역으로 여겨지다 보니까 몇몇 남성들이 불순한 의도나 호기심으로 침입하는 경우가 있다. 아버지뻘 남성들이 여성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걸 자주 목격했다.



여성은 마치 상품처럼 재단되고 눈요깃거리가 되고 부위별로 평가받는다. 

(출처:구글)


 

-시호: 장터가 한 학기 중 중요한 행사라서 홍보를 많이 한다. 반 별로 컨셉을 잡아서 포스터를 만들어 뿌리는데, 주로 패러디를 많이 한다. 그런데 여초과라고 여겨지는 과의 홍보물에 남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정말 여자밖에 없는 과라고 홍보를 하더라. 여초 혹은 남초 집단에서 자조적으로 혹은 타의로 불쌍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을 포인트로 잡은 것이다. 그걸 포인트로 고르는 게 이해가 안 됐다. 더 어려운 점은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다들 센스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 버린다. 문제제기의 여지도 생기지 않는다.

그런 부분도 있다. 단과대 별로 성격이 다르지만, (사회과학대는) 학기 초 새내기 환영회를 할 때 차별이나 인권 같은 부분에 대해서 한 번 짚고 넘어간다. 그걸 준비하는 분위기도 진지하고 책자도 제공되는데, 사실 실효성이 높은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분위기를 바꾼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가 오가면 사람들이 눈치를 보게 된다. 자기가 100% 알지는 않더라도 당당하지 못하다는 걸 인식하게 한다. 그런데 (눈치보는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것 같다. 3월에 새내기가 가장 주목받지 않나? 활동도 활발하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보면 결국 술 마시고 놀다보면 다 (신경 안 쓰고) 노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다. 진지한 문제의식이 제기가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너무 재미없지 않냐고.

 

-한의 민족: 교육이 존재함에도 그런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인가?

 

-시호: 기본 베이스(작년 자료)를 가지고 고치는 식으로 진행되다 보니까, 해당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하고 바꾸기 보다는 작년에 했던 대로 적당히 하자는 분위기가 있다. 주체적인 의논이 활발하게 이뤄지진 않는다.

 

-한의 민족: 책자엔 어떤 내용이 실리나?

 

-시호: 성차별적 측면이나 권력 관계적 측면 등 크게 5갈래 정도로 나눠서 문제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적는다. 새터 때 그걸 바탕으로 연극 같은 활동을 한다. 자료집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테마에 대해 글을 쓰기도 하고. 그 외에도 실질적인 정보가 실리는데 보통은 그 쪽으로 관심이 쏠린다.


일일호프는 보통 학교 주변 술집을 하루 빌려서 판매하고 수익을 주인과 분배해서 갖는 식으로 운영한다. , 반별로 시기에 따라 할로윈, 교복 컨셉을 정해서 하기도 한다. 작년에 일일호프에 참여했었는데 교복 컨셉이어서 각자 고등학교 때 교복을 입고 진행했었다. 간단한 게임, 뽑기를 하기도 하고 합석도 한다.


 

(출처: 구글)



-한의 민족: 합석 과정은 어떻게 진행 되는지?

 

-시호: 핸드폰 플래시 위에 소주병을 올려놓고 그린라이트라고 불러서 합석을 시키기도 한다. (손님으로부터) 합석시켜달라는 말을 들으면 다른 테이블에 가서 물어보긴 한다. 개인끼리 합석한다고 하면 개입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술자리다보니 여자 테이블이 있으면 말 걸고 주정을 부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해당 케이스에서는 주점이 끝난 후 상황을 알아서 따로 제재를 하긴 힘들었다.

 

-한의 민족: 당시 상황은 안타깝다. 일반적으로 일일호프에서 성차별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 스탭 차원에서 대처 매뉴얼이 있는가?

 

-시호: 우선 내가 스탭으로서 겪은 케이스는 위의 사례밖에 없어서 실제 유사한 상황에서 어떠한 대처들이 오가는지 정확한 예시를 들긴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일일호프 운영에 있어서 직접적 운영 방식 외에 특별한 상황에 대한 대처 매뉴얼들은 마련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상황에 따른 스탭들의 임기응변이 전부일 것 같다. 만약 내가 당시 상황을 미리 알았거나 그 현장을 목격했더라면 즉시 취객을 진정시키고 테이블로 돌려보낸 다음 피해자분들에게 괜찮은지, 그 이상의 피해는 없었는지, 혹시 불편해 한다면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드리는 등의 조치를 취했을 것 같다.

 

-한의 민족: 일일호프의 컨셉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으면 좋겠다. 일일호프에서 교복 컨셉을 했다고 말했는데, 컨셉을 결정하는 논의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시호: 직접적인 장소 섭외, 메뉴 선정 등 일을 하기 위해 자원한 친구들로 구성된 일일호프 준비 위원회가 대부분 정한 다음 공지하고 이후 의견을 받는 식으로 진행되어서 위원회가 아니었던 나는 컨셉 선정 과정에 있어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아는 바가 없다. 공지를 받은 이후에도 특별한 이견 없이 진행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복 컨셉을 선정하는데 특별한 이유나 의도가 있기 보다는 많이들 하는 드레스 코드 중 하나고, 의상 준비에 특별한 추가 비용, 시간이 들지 않기 때문에 선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라 짐작한다. 하지만 비용적 측면이든, 단순한 추억이든, 재미가 이유이든 교복 컨셉에 대한 논의는 피할 수 없을 것 같긴 하다. 개인적으로는 생각이 아직 뒤죽박죽인 부분이 있는데, 교복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청소년들을 성적대상화 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어떤 옷을 어떻게 입든 간에 누구도 대상화 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계속 든다. 현 상황에서 불가피한 부분이 어느 정도 있음을 부정할 순 없겠지만.

 


교복이 학생들만의 전유물이던 시대는 지났다. 

교복 컨셉은 아이돌 시장에서도 잘 팔리며, 대학 축제에서도 인기있는 컨셉이 되었다. 

그러나 교복 컨셉은 미성년자를 성적 대상화시킨다는 혐의를 벗어나지 못 한다.

(출처:구글)

 



Q. 학교 주점 문화에 대한 본인의 느낌이나 의견을 말해달라. 또한 학교 주점 문화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챔피: 대학 축제에 주점이 존재해야할 이유를 모르겠다. 대학 축제는 술을 마셔야 된다는 인식이 있어서 너도나도 주점을 운영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외부인들을 유인하려고, 특히 여대는 외부에서 남자들이 많이 오니까 경쟁이 과열된 상태에서 여자들이 예쁘게 차려입고 호객행위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실제로도 그렇고. 그런 현실이 씁쓸하다.

 

-시호: 사실 (대학 내에서) 주점은 다양한 목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그냥 축제라서 운영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행사나 캠페인을 진행하기에 앞서서 함께 열리는 경우도 있고, 학생 외 청소해주시는 분들을 위해 함께 열리는 경우도 있고. 나는 그러한 목적이나, 주점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이지는 않다. 다만 그 과정에서 여성을 상품화한다던가 수단으로 이용하는게 조금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문화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주점 부스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여성이 어떤 의상을 입느냐는 문제가 아니지만, 보는 사람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소비해버리는가, 이게 문제다. 페이스북에서 본 것 같은데, 대학가에서 작업주의 의미를 가진 00주를 메뉴판에 둔 것을 문제제기를 하니까, ‘왜 그 한가지 의미로만 해석하느냐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물론 메뉴판을 작성하는 사람들이, 대놓고 강간문화를 유도하고 권장하려는 의미에서 하지는 않았겠지만 (강간을 암시하는 소재를) 유머 코드로 소비한다는 것부터가 그런 문화의 지속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상황이었더라면 좀 더 비판적이었을텐데, 주점이나 축제라고 하면, 사람들이 좀더 경계를 낮추는 것 같다. 조금 더 넘어도 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장난이나 유머로 소비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축제라는 의미 안에서 조금 허용해주는 분위기가 없지 않은 것 같다.

 


Q. 최근 대학교 축제 현장은 성을 상품화한 호객행위가 과하다는 의견이 여럿 있다. 이에 따라 00대학교 총학과 학생들의 합의하에 자체적으로 (과나 동아리에서 운영하는 주점에서 단체로 맞추어 입는)유니폼에 대한 의상 규정안을 낸 적이 있다. 이런 규정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챔피: 매우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규제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규제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당시 00대 총학에서 안전하고 건전한 00인의 축제를 보여주세요라는 취지하에 규정안을 발표한 것인데, 이 취지를 문제 삼고 싶다. ‘안전하고 건전한 00인의 축제를 보여주세요라는 슬로건이 여성에게 죄를 전가하는 것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았다. ‘안전하고 건전한 00인의 축제를 보여주세요가 아니라 축제에서 00인을 성추행, 성폭행하지 말라고 바꾸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 더 다양한 담론이 나올 수 있었는데, (규정안의 등장으로 인해) 오로지 복장 규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게 된 것이 아쉬웠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그 상황을 해석했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교복 규정은 찬성한다. 청소년의 의상인 교복을 입고 술을 판매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축제 의상에 관한 자성을 촉구하는 권고안이 몇 차례 나왔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00대학교 총학생회는 결국 의상 규정안을 만들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당시 총학생회에서는 본 의상 규제안을 통해 오히려 여대생의 주체성을 되찾고

나아가 대학 축제 내에 만연한 성차별적이고 성상품화 문화에 제동이 걸리기를 기대했다.

당시 00대 축제에는 선정성대신 참신한 아이디어가 자리했다.

(출처:여성신문)

 


-한의 민족챔피씨가 학생회 회의에서 많은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시호 챔피씨의 말처럼 몰카를 찍어서 올린 사건을 계기로 규정안이 생겼다면, (몰카 범죄 예방을 위해 여성이 노출을 자제하는) 목적은 반대한다. 노출을 줄이는 방향의 옷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피해자 여성들에게 네가 짧은 옷을 입었으니 원인을 일부 제공한거야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것 같다. 의상 규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주체적으로 만들어진 규정안이라고 하더라도, 왜 옷을 입는 학생들이 먼저 조심을 해야 하는건지. 옷을 조심해서 입는다는 표현도 이상하다. 본인의 섹슈얼리티를 어떠한 방식으로 표출을 할 것인가는 자유의 영역이지만, 타인의 섹슈얼리티를 소비하는 것은 권리나 자유가 아니다. 그런 구분이 필요할 것 같다.

 

-한의 민족: 해당 규제안은 개인의 의상이 아닌 동아리나 과에서 운영하는 부스의 유니폼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선후배 관계에 존재하는 낙차를 줄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시호: (선후배 관계에서) 후배라는 위치는 상대적으로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기 어려운 입장이니까 (의상 규제안이) 일종의 바리케이드처럼 작용하는 것은 이해를 하는데, 장기적으로 유의미한 효과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더 이상 여성의 성 상품화가 짧은 옷을 입었다고 해서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복 같은 것도 예전에는 그런 섹슈얼한 시각이 없었는데, 점점 성적 취향 비슷하게 소비를 한다거나 대상화한다. 의상 규정안이 일단 당장에 최소한을 보장하기 위한 대처는 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원치 않는 성상품화나 대상화를 막는 데에 장기적인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옷을 입지 않더라도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른 방식으로 이미지를 씌워버리면 결국 다시 반복될 것 같다.

 


바다에 어울리는 몸이란?

(출처:구글)

  



Q. 왜 대학 축제에서 주점이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시호: 꼭 축제뿐만 아니라 대학 문화 전반에 술이 빠지지 않는 느낌이다. 회의를 하더라도 뒷풀이-술로 연결되니까. 그러다보니 축제도 당연히 술 없이는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이 이대나 서울대 축제가 재미없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런 것 (주점 문화가 없는 것) 때문인 것 같다.

 

-한의 민족: 주점, 일일호프 문화가 대학 행사 중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 궁금하다.

 

-시호: 거를 수 있는 행사가 아니다. 다들 참여하려고 한다. 재미를 목적으로 하는 게 큰 것 같다. 반 차원에서 하는 행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의 민족: 행사가 많지 않으니까 각각의 행사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챔피: 그저 관행으로, 지속적으로 이래왔다는 이유만으로 대학 축제에서 주점이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주점 말고 다른 무엇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대학 내 주점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면 여성혐오적 주점 문화도 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대학 축제를 넘어 여성혐오적인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 축제 내의 여성혐오적인 문화는 대학을 넘어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출처:구글)



Q. 대학 축제 내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자정하기 위해 대학 축제 문화는 어떻게 바뀌는 게 좋을까?

 

-챔피: 주점 외의, 다른 방식의 축제를 고민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점이나 연예인 공연 보는 것을 꼭 대학 내에서 해야 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다. 대학교는 학습의 장이므로, 축제 때 학술적인 성격의 행사를 진행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2011년 숙대 축제에서는 청소·경비 노동자 분들과 함께 '사랑의 밥짓기' 행사를 열었다.

(출처:구글)

 

 

-시호: 혐오적 언행을 용인해주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축제가 그 연장선이 되는 것이다. 여성혐오적인 사회 분위기를 차단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런 성찰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면 한결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의 민족: 여성혐오적인 사회 분위기에 대한 차단과 집단적 성찰은 대학 축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본다. 서울대학교에 그런 단체가 있다고 들었다. ‘축제하는 사람들에 대해 설명해 달라.



 

축제하는 사람들이란 봄축제와 가을축제그 외 작은 페스티벌들을 기획하는 서울대학교의 학생 자치 단체이다

축제하는 사람들은 축제 기획뿐만 아니라 '대학문화의 자율성비상업성비차별성'을 유지하고

축제 내의 다양한 혐오표현과 상황을 자정하기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출처: 구글)

 

-시호: ‘축제하는 사람들이란 봄축제와 가을축제, 그 외 작은 페스티벌들을 기획하는 단체다. 매 학기 다음 학기의 축제를 기획할 사람들을 새로 모집하는 방식으로 구성원이 모이는 걸로 알고 있고, 축제의 큰 테마를 정하는 것부터 운영할 행사나 이벤트들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축제의 모든 부분을 총괄하는 단체이다. 축제에 관해서만큼은 가장 가까이에서,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단체가 아닐까 싶다. 축제의 큰 가닥을 엮어가는 단체인 만큼 이들이 나서서 자정작용을 한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금 부족하다면, 다른 학생들과 산하에 있는 소수자 인권 위원회같은 단체에서도 계속해서 경계하고 지적할 수 있는, 또한 그런 지적이 (재미보다) 우선시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Q. 후기


-챔피: 대학 축제 내 여성혐오그리고 복장 규정논란, 오로지 복장 규정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더 다양한 담론이 오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학 축제 문화-여성혐오는 대학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전반적인 문제라고 본다.


-시호: 사실 학교명을 밝히고 나오는 거니까 축제에 대해 내가 본 것들만 말하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됐는데 잘 이끌어 주셔서 감사하다.

 

책 읽어주는 나나
제3호: 레몽 장의 단편 「치마」

 

(출처 : 알라딘)

레몽 장(1925-2012)은 단편집 『벨라. B의 환상』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이자 교수입니다. 우리는 3호에 걸쳐 이 단편집을 살펴 볼 계획이었는데요. 오늘은 그 마지막 작품, 「치마」입니다.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던 즈음, 레몽 장은 엉뚱한 착상을 한다거나 신선한 자극을 안겨주는 작가로 평이 나있었습니다. 옮긴이의 말을 잠시 살펴볼까요? ‘우리 주변에서는 논리성을 저버린 일들이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 다만 우리들이 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뿐이다.’ 맞아요. 이 이야기들은 ‘논리성’을 저버렸어요. 그렇다고 그 ‘논리성’이라는 것이 논리적이라고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엉뚱하고 신선하다고도 하는데요, 글쎄요, 무엇이 엉뚱한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무슨 말인지 궁금하시지요? 지금 바로 살펴봅시다.

 

 

 

<치마>

 

뤼시엥은 모처럼 휴일이니 아내 조슬린에게 사창가를 따라 산책하기를 제안합니다. 조슬린은 내키지 않지만, 남편에게 순응하는 착한 아내이니, 무엇이든 바라는 대로 따라줍니다. 남자가 밖에서 큰 일 하는데, 이런 기분전환 거리야 늘 필요하지 않겠어요. 뤼시엥은 그 곳을 거닐면서 여러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들에게 얼빠진 시선을 보내지만, 조슬린은 그녀들을 쳐다보기가 심히 민망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이 거리를 거니는 여자를 멸시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문득, 남편이 멈춰 서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합이 맞았는지, 조슬린에게 '기다려'라는 말만 남기고 둘이 한 건물 윗층으로 올라가는데요. 조슬린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 그렇구나. 남편이 나를 아랫층에 세워두고 섹스를 하러 간 게 맞구나.' 조슬린은 숨이 막혔습니다. 뤼시엥은 종종 아무 짓이나 해대기도 하는데요. 그녀가 보기에 그것은 일종의 “광기”였습니다. 아내를 두고 이런 일을 벌이다니요. 그가 광기에 사로잡힌 “개자식”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이야! 조슬린은 후회합니다. 남편과 이런 곳에 같이 오기로 하다니, 이런 일을 당해도 싸지! 그녀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거리를 배회합니다. '나 같이 멍청한 여자가 또 있을까? 무슨 생각으로 남편과 여길 온 걸까?'

 

순간 어떤 남자가 조슬린의 팔목을 낚아챕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이끌고 가는데요. 조슬린은 지금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도 이해하지 못했고, 알았다 하더라도 반항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뤼시엥의 광기가 조슬린을 이토록 무력하게 만들어버린 걸까요? 결국 둘은 한 호텔로 들어갑니다. 그녀는 침대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람?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온 남자는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다른 여자들과 달라.’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조슬린은 당황스럽기만 하지만, 잠깐만요, 이 남자 구릿빛 피부에 떡 벌어진 어깨, 얼굴도 꽤나 멋집니다. 심지어 목소리마저 노래하는 듯 감미롭기만 한데요. 아... 그렇담 될 대로 되라지.

 

 

(출처 : 구글)

 

남자는 꽤 다정하고 부드럽게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옷을 천천히 벗겼습니다. 결국 조슬린의 치마는 호텔 바닥에 툭 던져져 “생면부지의 물건처럼 방바닥에 나뒹”굽니다. 그는 느리고 침착했지만, “두 눈에서는 놀랄 만한 불길”이 타올랐고, 몸집은 커다랬지만 얼굴은 어린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정신없이 애무를 하니 도무지 저항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온몸을 부풀리고 전율시키고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그의 입술이 부드러운 그녀의 목살을 덥석 물었다가, 겨드랑이의 치모를 헤쳐 놓았고, 유두를 힘껏 빨았다가는, 아랫배로 내려와서 그녀 성기의 촉촉한 꽃 위에 내려앉으며 천천히, 오래도록, 깊숙이 꽃잎들을 펼쳐 나갔다. 그녀는 정신이 없었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말없이 경련하며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조슬린은 이런 오르가즘이 가능할 줄은 꿈에도 몰랐답니다. 그것도 3번이나! 섹스가 정녕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요?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 멋진 남자가 뭘 좀 먹고 싶은지 묻네요. 다정하기도 해라. 평소 같았으면 차는 입에도 대지 않지만, 그녀는 어쩐 일인지 차를 마시겠다고 대답합니다. 조슬린은 기분이 매우 유쾌하고 좋았습니다. 행복한 바캉스를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지경이더래요. 더군다나 오늘 조슬린의 몸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말이지,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랍니다. “세상은 뒤집혀버렸다네!”

 

몇 분이 지나고 호텔의 여자 종업원이 차를 들고 올라옵니다. 그러자 이 남자, 발가벗은 몸으로 그 여자에게 문을 열어주는데요. 그런데 둘이 뭐라고 속닥대더니, 갑자기 종업원이 문을 잠급니다. 그리고 옷을 다 벗어재끼고는... 조슬린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쓰리썸. 조슬린의 온 몸 구석구석이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행복하고 편안했습니다.

 

조슬린은 치마를 주워 입고 그 곳을 떠납니다. 아, 이전의 그녀는 누구였을까요. 집으로 향하던 도중, 카페 안에 앉아있는 뤼시엥을 발견합니다. '그냥 가던 길이나 계속 갈까?' 그러나 그녀는 그의 옆에 가 앉습니다. 뤼시엥은 얼굴을 두 팔에 묻고는 미친듯이 괴로워합니다.

 

(출처 : 구글)

 

'내가 미친놈이었어. 뭐에 홀렸었나봐. 있잖아, 나 10분 후에 바로 내려왔어. 알겠지? 날 용서해줘. 내가 너무 추잡해서 견딜 수가 없어!'

 

가만히 미동도 않는 조슬린이 미심쩍었는지 뤼시엥이 묻습니다.

 

'당신 뭐 했어?'

 

'그냥 돌아다녔어.'

 

'어디를?'

 

뤼시엥은 조슬린이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줬으면 하고 바랐을겁니다. 하지만 그녀가 그의 광기에 전혀 화가 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니, 남자란 종종 못된 짓도 하기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현명하고 질투 많은 여자들이 닦달해주어야 하는것 아닌가요?

 

'아냐. 조슬린, 우리 이건 다 잊자. 앞으로 일요일은 집에서 보내자. 티비나 보자!'

 

조슬린은 계속 침묵을 지킵니다.

 

'당신 뭐 좀 마실래?'

 

'......'

 

'차 시킬까?'

 

초조했던지 뤼시엥은 아무 말이나 던집니다. 뤼시엥은 조슬린이 차를 절대 안 마신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이미 한 잔 마셨어.'

 

이상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오늘 있었던 일에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한없이 상쾌해 보이기만 하는데요. “짐짓 다정스런 몸짓으로 그녀의 무릎에 손을 얹은 뤼시엥은 그녀의 치마를 만지작거렸”습니다.

 

 


<세상은 뒤집혀버렸다네>

 

지금까지 우리는 3호에 걸쳐서 『벨라 B.의 환상』을 살펴보았습니다. 거미에게 자신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벨라, 지구상 유일하게 성별이 전복된 지점인 P. K. 35, 그리고 남편이 데려간 사창가에서 비로소 온 몸의 쾌락이 깨어난 조슬린. 엉뚱하고 논리적이지 않으며, 사악하기도, 기괴하기도 한 이야기입니다. 왜일까요? 거미가 벨라의 질 속으로 들어가거나, 남자가 여자에게 차와 돈은 물론 입고 있던 옷가지마저 빼앗기고, 뤼시엥은 아내 조슬린과 사창가에 가니까요? 이게 바로 지배적인 평이지만, 한 번 뒤집어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건 어떨까요? 당사자인 벨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타자인 정신분석의의 목소리만 받아들여, 벨라의 경험을 일종의 환상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비논리적이고 엉뚱하다는 것. 거미가 벨라의 몸을 지배하려고 한다는 것이 그들에겐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같았나봅니다. 기묘한 지점 P. K. 35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까요. 남자인 자신이 심지어 여자에게 피해를 당하고 심지어 옷마저 빼앗겼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워 자리를 박차고 도망간 폴. 그녀들은 총까지 들고 그에게 쏴댔지만, 어쨌거나 총알도 안 나오는 남근이 더 강하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지요. 엉뚱하게도 말이에요. 마지막으로 순종적이고 정숙하고, 또 불쌍하게도 오르가즘 한 번 느껴보지 못한 조슬린이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의 외도 덕에 쾌락에 눈을 뜬 이야기. 조슬린은 순순히 사창가까지 배웅해줬고, 화를 내지도 않았어요. 남자들은 원래 그렇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지요.

 

뤼시엥은 친절히 아내를 쾌락으로 안내해 줄 남자에게 배웅해준 겁니다. 그 남자는 또 다른 여자까지 끌어들여 말도 안 되는 행복감, 편안함까지 조슬린에게 선물한거죠. 대개 남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성욕이 한순간에 조슬린의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성의 포텐이 터진거죠.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두 남자의 도움을 받게 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요? 그녀의 몸이 활짝 깨어났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단편집이 엉뚱하고 비논리적이고 기괴하다는 것은 이 짧은 단편들이 현실에선 있음직하지 않은 상상적인, 환상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지요. 한편 레몽 장은 환상은 진실을 폭로하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그는 자신을 페미니스트 작가로 정체화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실로 환상과 에로티시즘을 다뤘던 것이에요. 하지만 그것도 뭐 대수인가요? 그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거미가 벨라를 좀먹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35km지점에선 젠더 고정관념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보았고, 마지막으로는 조슬린의 성적 쾌락과 욕망이 깨어나는 것을 목격했으니까요. 거미를 보지 못하고 사는 것 보다는, 치마를 벗어 던지고 뜨거운 구릿빛 차를 마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전 페미니스트 작가는 아니지만 페미니스트를 지지합니다. 7, 80년대 페미니스트 운동에도 공감을 느꼈어요. (...) 만약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면 여성들은 좋아하겠지만, 여성을 책 속에 그려낼 땐 수동적이면서 대상화된 모습을 발견하지요. 그런걸 그녀들이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 그녀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녀들은 시선 받고 싶어하고 찬양받고 싶어하고, 적당히 비위도 맞춰주길 바라는 동시에 그들의 도덕적, 사회적 가치 등으로 존중받길 바라죠. 바로 이 갈등이 제가 특히 관심 갖는 것입니다. 저는 관찰자이지만 그렇다고 마초적인 면이 있는 건 아니에요. 전 그녀들을 존중합니다.”

"레몽 장과의 인터뷰" 중 (Francofonia, no.28, p.12)

 

 

 

<참고문헌>

 

레몽 장, 이인철 옮김, 『오페라 택시』, 세계사, 1998.
Premier supplément à la Bibliographie critique de la nouvelle de langue française (1940-1990), René Godenne, Droz, 1992.
"Entretien avec Raymond Jean", Francofonia, no.28, pp.3-18.

위키페디아 프랑스, https://fr.wikipedia.org/wiki/Raymond_Jean.

 

 

 


 

나나

“사내아이를 낳아야 했어, 그래야 그럭저럭 살아 나가기 쉽고, 이 파리에서 수많은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야.” 내가 태어난 날 우리 엄마가 나를 보고 되뇌었어요.

3편. 누군가 여성에게 양육의 책임을 묻는다면 고개를 들어 허수애비를 보게 하라. 

by.한의 민족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생각했다이번 원고의 주제는 가정에 대해서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안정적인 가정을 뒷받침하고 있는 '가장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알아볼 예정이다밖에 나가 일을 하고 돈을 벌어오는 가장인 아버지자상하고 헌신적인 어머니그 슬하의 자식들의 모습은 근대 들어와서 선호하는 가족상이었다그리고 사회적으로 선호되는 가족의 모습은 곧 전형적인 가정의 모습이 되었다그러나 현대의 한국에서는 '전형적인가정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 속에서 오르지 않는 것은 내 월급뿐인 현대 사회에서 남성 혼자 한 가정을 부양하기란 역부족이기 때문이다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이제 '전형적인가족 모델은 실재하는 가정을 유지하는데 힘이 부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아버지-남성-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가장이라는 위치를 놓지 않으려는 남성들의 발버둥이 있기 때문일 것이며가장이라는 위치를 점유함에 따라 남성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남성은 그를 제외한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기 때문에일을 해야 하는 정당성을 얻고 경제력을 얻는다남성이 사회적 특권층을 유지하고 그 특권을 누리기 위해 스스로에게 부담지운 짐 그 두 번째는 바로 가부장제-가장의 역할이다. 가장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가 경합한 사회에서 여성은 어느 위치에 놓여 있는가? 그들은 가부장제 속에서 현모 되기와 자본주의 속에서 노동자 되기를 만족시켜야 한다. 그 두 가지 위치는 서로 대립되기 때문에, 여성은 언제나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길 요구받는 동시에 둘 중 하나-주로 현모-를 선택하길 강요받는다. 사회는 상황에 따라 여성이 현모양처가 되거나 노동자가 되거나, 혹은 둘 다 되기를 바란다. 여성은 이중의 억압 상황에 놓인다.

 

 




착한 엄마들한테 ‘맘충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일부 몰상식한 아줌마들한테 하는 거잖아나도 어머니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알고 존경해.

a) ‘맘충이라는 단어는 개인의 행위에의 정당한 비판을 넘어 만만한 유자녀 여성을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야.

b) ‘맘충이라는 단어는 존재만으로 유자녀 여성이 스스로 검열하게 하고 그들을 사회로부터 배제시켜.

c) ‘맘충이라는 단어를 쓰지 마.

 


위대한 어머니 ~MOTHER NATURE~를 숭배하라!

 

'맘충'은 인터넷에서 활동을 하는 주부 회원이 자기 자식의 이름이나 사는 지역의 뒤에 엄마를 뜻하는 호칭 맘(mom)을 붙여 본인을 지칭하던 것에 벌레를 뜻하는 충()이 붙어 만들어진 인터넷 신조어이다맘충이라는 단어는 2015년 중반쯤 인터넷 방송에서 지나치게 간섭을 하는 주부 회원들에 대한 반발로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비하의 뜻으로 만들어졌으며현재는 다양한 sns를 비롯하여 일상의 대화에서도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모든 어머니가 아니라 일부 몰상식한 아줌마를 욕하는 것이다.” ‘맘충’ 사용을 지적하면 항상 나오는 말이다그러나 ‘개념있는 엄마 ‘맘충과의 거리는 ‘개념녀 ‘김치녀만큼이나 가깝다. ‘개념녀 ‘김치녀로 변하는 것처럼, ‘개념있는 엄마는 언제든지 ‘맘충이 될 수 있다. ‘맘충이라는 단어는 유자녀 여성을 구분한다그리고 맘충이 되지 않기를 요구하며그렇게 된다면 사회적인 심판이 가해진다. ‘개념녀’-‘김치녀의 구도가 그러했듯개념있는 어머니에 대한 숭배는 그렇지 못한 여성-‘맘충’-을 비난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맘충이라는 단어는 여성을특히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성을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오늘도 ‘맘충이라는 유령을 네티즌들은 인터넷 상에 구현해 물어뜯는다.


소위 진상을 부리는 중년 남성을 지칭하는 표현 중 ‘맘충만큼 널리 쓰이는 것이 있는가맘충은 사회적 약자인 유자녀 여성을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이다언어는 철저히 소수자를 억압하고 배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맘충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여성은 벌레로 치환되고 박멸해야 할 대상이 된다. ‘맘충에 따라 나오는 표현인 '정의 구현'은 사회적으로 ‘맘충’ 서사가 어떻게 이용되는지 보여준다그들은 사이다 서사의 소재가 된다. ‘맘충의 혐의를 지닌 여성들을 정의 구현을 위해 감시하고적발하여처벌하는 것이 마땅히 옳은 일이 된다사람들은 본인 스스로를 성찰하기보다공적 장소에 나온 유자녀 여성을 감시하며 도덕적 우월감을 느낀다. ‘맘충이라는 단어의 존재는 짜증나는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일상적인 경험들을 범주화한다모든 유자녀 여성은 ‘맘충이라는 단어 앞에서 모두가 ‘잠재적 맘충이 되어 감시당한다그들은 스스로를 검열하고, 위축되고아이들이 조금만 소리를 내도 혼내고결국엔 가정으로 도망치듯 쫓겨난다.

 

 




애들은 시끄럽지, 엄마들은 진상이지. 노키즈존찬성해.

a) 모든 유자녀여성과 아이들이 진상이라는 건 게으르고 차별적인 생각이야.

b) 아이들은 사회화 교육을 통해 사회구성원이 되는 방법을 배워. 그건 사회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노키즈존은 정반대로 그들을 배제하고 있잖아.

c) 너는 애였을 때 안 시끄러웠는 줄 알아? 그것도 못 참니? 너 진짜 배려심 없다.




아이들은 어느 공장에 들어가서 뚝딱 성인이 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늘 방문한 가게를 떠올려보자그리고 그 가게 안에 유아용 시설이 있었는지 떠올려보자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한국엔 유아 보육을 위한 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기저귀를 갈 수 있는 보육 시설이 갖춰져 있는 곳이 있던가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세워 둘 공간은 넉넉한가유아용 식사 메뉴가 존재하는가한국은 비장애인 성인 -남성모델만이 시민으로 상정된다사회는 그 모델을 기준으로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외의 모델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수고로움과 비용이 든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수고로움을 피하려한다. 소수자는, 약자는 무시하고 없는 셈 치면 편하다. 그들은 힘이 없기 때문에 나에게 대들지 못 한다. 돌아오는 피해는 미미하다. 이것이 절대다수의 생각이 되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적극적으로 일어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편의를 위하는 척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그 사회에서 소수자를 배제시킨다. 유아를 위한 시설과 서비스가 부족한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그들을 거부하는 노키즈존은 한국의 소수자 혐오가 얼마나 당당하게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부끄러운 현상이다.

 

아이들은 어느 공장에 들어가서 뚝딱 성인이 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직 미성숙하고 경험이 부족한 아동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사회 구성원이 되는 법을 배운다아동의 사회화 과정은 수없이 많은 경험의 반복을 통해 이루어진다이는 양육자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아이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배려와, 그들을 위한 시설·제도적 지원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배려와 협조가 필요하다사회 구성원들은 아이가 충분히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인내하고 기다려줘야 한다그러나 육아와 사회화 교육의 책임은 모두 어머니에게 전가된다아이의 사회화 과정을 위해 사회로 나온 유자녀 여성은 ‘맘충이라는 단어로 매도된다. 이들은 언어적 폭력을 넘어서 노키즈존이라는 실재의 차별을 받는다. ‘모든 유아와 함께한 여성들’=‘진상이라는 게으른 생각이 노키즈존의 기저에 깔려있다. 사실 진정한 문제는 유아와 함께한 여성들이 아닌 미성숙한 유아를 배려하지 못하는 사회구성원들의 이기심이다. ‘맘충이라는 걸쇠와 노키즈존이라는 자물쇠가 유자녀 여성을 ‘여성이 있어야 할 곳에 격리시킨다그렇게 완성된 상태의 인간으로만 구성된 사회가 만들어진다그 사회에 아이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차별이 당연해진 사회에서는 키즈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이 배제될 것이다. 다양성이 없는 사회는 누군가 차별받고 억압당하는 사회이다. 누군가의 불편을 무시해도 아무런 위험이 없는 사회는 과연 정의로운 사회인가?

 

 

 

*꿀팁! 대한민국의 육아휴직제도에 대해 알아보자!

 


남성이 육아휴직을 분담해야 여성의 경력단절과 고용 차별이 해소된다. 육아로 인한 경력 공백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현 구조에서는 기업들이 여성고용을 비용이라고 여기고 회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은 고사하고 여성도 육아휴직제도를 이용하는 데 불편함을 겪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 주소이다. 기존의 코너와는 달리 본 코너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여남 모두가 육아휴직제도를 정정당당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어떤 제도가 마련되어 있으며, 만일 육아휴직제도를 이용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육아휴직제도란?>

근로자는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하여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육아휴직 기간은 모부 각각 최대 1을 사용할 수 있으며, 이 기간은 근속기간에 포함된다. 육아휴직을 마친 후에는 휴직 전과 같은 업무 또는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할 수 있다. 육아휴직은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근로자의 권리이다.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할 경우, 근로자가 해당 사업에서 계속 근로한 기간이 1년 미만이거나같은 영유아에 대하여 부부가 육아휴직기간이 겹치지만 않는다면 사업주는 이를 허용해야 한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겹쳐도 된다.) 

 


<육아휴직제도를 시행하지 않을 경우>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되며,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육아휴직 기간에는 그 근로자를 해고하지 못한다

-이를 위반하여 근로자로부터 육아휴직 신청을 받았음에도 육아휴직을 허용하지 않은 사업주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거나,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님에도 육아휴직 기간동안 해당 근로자를 해고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37조제2항제3

-육아휴직을 마친 후 복귀한 근로자에게 휴직 전과 같은 업무 또는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시키지 않은 경우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37조제4항제4)

 

서울시는 20162월부터 임신, 출산, 육아 등으로 직장 내 어려움을 겪는 직장맘들의 고충을 노무사들이 전문적으로 상담해주는 직장맘 고충상담 전용콜을 운영하고 있다.

 


<육아휴직급여>

일반적으로 육아휴직을 했을 때, 통상임금의 40%(50~100만원 범위)를 받을 수 있다같은 자녀에 대하여 부모가 순차적으로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경우, 두 번째 사용한 사람의  육아휴직 3개월 급여를 통상임금의 100%(상한 150만원)로 상향하여 지급하는 육아휴직 급여 특례(통칭 '아빠의 달')은 남성도 육아휴직 제도를 이용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소득 감소 등 경제적인 어려움 역시 육아휴직제도를 섣불리 신청하지 못 하게 막는다. 27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종서·김문길·임지영 연구원이 발표한 ‘·가정양립 지원 정책 평가와 정책과제보고서에 따르면 OECD 통계 기준 2015년 우리나라 육아휴직 급여의 소득대체율은 29.0%. 여성들이 육아휴직을 쓰는 동안 평균적으로 평소 받던 임금의 30% 정도만 고용보험에서 보전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소득대체율은 2015년 육아휴직 제도를 시행한 23OECD 회원국 중 19위이다. 전문가들은 육아휴직 사용을 늘리려면 육아휴직 급여부터 현실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행 휴직 수당 상한선을 높이고 소득대체율도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혹자는 1차적 가정부양자가 되어야 하는 부담을 지닌 남성에게 고용이나 승진의 기회를 우선적으로 주는 '남성 생계부양자 가족모델' (*) 이 현 사회에서 합당하다고 말한다그러나 이는 기존의 남성 권력이 여성을 사적 영역에 가둬두기 위해 만든 가부장제의 함정을 무시하고 여성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과 다름없다여남의 완전평등고용과 육아공동책임은 가부장제가 남성에게 지우던 막중한 부담-한 가정을 부양해야 할 유일한 가장-을 덜어줄 것이다고용 시장에 존재하는 성차별이 사라지고 여남 완전평등고용의 시대가 온다면 남성은 그 고되고 막중한 '1차적 가정부양자'가 되는 책임을 본인의 파트너와혹은 가족 구성원과 함께 나눌 수 있다남성은 드디어 과거의 남성이 스스로 지워 놓은 굴레에서 해방될 것이다.

브라 태우는 여자들

 암탉


만화 재윤의 삶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굉장히 보수적인 기독교계 여자 고등학교였다. 여름이면 겉보기에 비치지 않는 얌전한브라에 브라를 가려줄 하얀색 민무늬 반팔 티셔츠를 입고 그 위로 또 하복 블라우스를 입어야 했다. 만에 하나 위의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선생님은 젖가슴 내놓고 다니지 말라며 쩌렁쩌렁하게 고함을 지르곤 하셨는데, 너희들이 단정하게다녔으면 하는 마음에 일부러 수치심을 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내 몸엔 가슴이 달렸다. 이는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내 몸에 가슴이 달렸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사회는 여성의 가슴을 금기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나는 가슴을 가려줄 브라를 해야만 했다. 내가 브라를 착용한다는 사실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브라를 했다는 사실이 티 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색깔이 도드라지는 브라를 하면 안 되고 브라를 가려줄 옷을 겹쳐 입어야 한다. 그마저도 브라 끈이 보일 수 있으니 끈 민소매는 금물이다. 브라를 가려줄 옷입고 등교하는 것도 금물이다. 그 위에 학교에서 규정한 하복 블라우스를 입고 단추도 풀면 안 된다. 조오신하지 않으니까. 도대체 뭐 어쩌라는 걸까? 고등학생 암탉이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브라의 시초는 나름 페미니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 여성들은 몸통을 꽉 조이는 코르셋을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성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코르셋에 비유하듯, 코르셋은 여성 신체에 엄청난 위해를 가하고 있었다. 몸통을 비정상적으로 변형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소화에 지장을 줌은 물론이고 호흡 곤란을 유발해 질식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코르셋의 위험성에 대해 많은 의사들이 경고했지만, 이는 보통 촌스러운-패션 센스와 거리가 먼조언으로 받아들여졌고, (오늘날의 브라처럼) 여성에게 필수적인 속옷으로 여겨져 미착용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고 한다. ‘패션의 이름으로 여성의 허리-, 건강을 졸라매던 코르셋이 브라에게 밀리기 시작한 것은 1913년이었다. 당시 미국 사교계를 휘어잡던 유명인사 메리 펠프스 제이콥스는 저녁 파티에 입고 갈 드레스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정말 맘에 드는 드레스인데, 상체가 비쳐 코르셋을 착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드레스를 포기하기 싫었던 메리는 손수건과 끈 몇 가닥을 이어 현대의 브라에 가까운 손수건 브라를 만들어냈다.

 

      

() 현대식 브라의 창시자 메리 펠프스 제이콥스, () 메리가 만든 즉석 손수건 브라

 

당시에도 여성의 신체를 감추기 위해 속옷을 착용해야 하지만, 그 속옷이 드러나면 안 된다는 모순은 그대로였다. 따라서 여성들은 불편한 코르셋을 착용하고, 코르셋을 감춰줄 수 있는 두꺼운 옷만을 착용해야 했다. 메리의 손수건 브라를 본 여성들은 열광했다. 가슴을 가려주면서도 무척 얇아 의복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기 때문이다. ‘패션이라는 매력적인 명목으로 여성들에게 다가간 브라는 삽시간에 코르셋의 자리를 빼앗았다. 여성들은 숨통을 졸라매는 코르셋의 악몽에서 벗어났지만, 상대적으로 덜 가혹해 보이는 브라의 지옥에 빠지게 됐다.

 


미스 아메리카 대회 폐지 시위 현장 (출처: 구글)


    ‘페미니스트하면 화난 여성들이 브라를 태우는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고정 관념의 시초는 1968년 행해진 미스 아메리카 반대 시위이다. 급진 페미니즘이 부흥하면서 브라, 하이힐 등 여성을 향한 물리적 구속을 거부하는 이들이 늘어나던 시기였다. 여성의 몸을 성 상품화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남성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미스 아메리카 대회에 분노한 페미니스트들이 미스 아메리카 대회장 앞에 모였다. 그들은 준비해온 구호를 외치며 미스 아메리카 대회를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Freedom Trash Can’에 브라, 하이힐 등을 내다 버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짜로 브라를 태우지는 않았다. 경찰의 진압으로 시위가 생각보다 빨리 해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 브라 태우기 퍼포먼스(미수)’가 페미니즘 운동을 대표하는 하나의 아이콘처럼 자리 잡은 걸까? 이건 공포감에 가깝다. 브라를 태우는 것 곧, 노브라 상태가 얼마나 무서우면 하나같이 공통된 진술을 읊는 걸까? “그 미친 여자들이 브라를 태우면서 (안 태웠다니까) 난동을 부렸어···.”라고 말이다.

 


    2015년 여름, 인스타그램 측에서 여성의 유두가 부적절하다는 규정을 내세워 여성의 가슴 사진만 대거 검열·삭제한 일이 있었다. 인스타그램 유저들은 이에 유쾌하게(?) 대응했다. #this is a male nipple 운동이 그것이다.

 

인스타그램, 세상을 안전하게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세상은 무시무시한 여성의 젖꼭지로부터 자유로워졌어요!

 

여성의 가슴에 남성의 젖꼭지만 합성한 사진

 

인스타그램 유저들은 #this is a male nipple 태그를 걸고 젖꼭지만 잘라 놓은 사진에 이것은 남성의 젖꼭지입니다.’라고 적어 놓거나, 브라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의 몸에 남성의 젖꼭지사진만 합성하는 등 인스타그램의 여성혐오적 규정을 비꼬는 사진들을 업로드했다. 놀랍게도 이러한 사진들은 모두 인스타그램의 검열을 피할 수 있었다. 여성의 가슴과 남성의 가슴 차이 몰까...? 남성의 젖꼭지라는 사족이 달리면 사진의 유해함이 증발하기라도 하는 걸까?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이건 공포감에 가깝다고.

 


    인스타그램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노브라 포비아들의 바람이 무색하게 요 몇 년 사이 한국에도 노브라 담화가 대두되고 있다. 언급하기도 식상하지만, 노브라 담화의 확산에 힘을 보탠 주역이 설리의 인스타그램 사진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작년 4, 설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노브라 차림의 사진을 업로드했다. 설리의 브라 착용 여부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댓글들이 (무려 9000여개 가량!) 이어졌다. 긍정적인 점은 이 일을 통해 노브라담화가 수면 위로 끌어올려 졌다는 것이다. ‘미친 꼴페미의 상징이었던 노브라 담화가 설리라는 유명 연예인 이슈의 탈을 쓰고 활발하게 소비되기 시작했다.

 

좀 더 편안한 형태의 브라, 브라렛. 정말 편할까? (출처: 구글)

 

노브라에 대한 관심이 좀 더 편한 브라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브라렛이 급부상한 것이다. 지난 회차에서도 말했지만 브라 선택의 완전한자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설리의 인스타그램에 달린 댓글들처럼 쏟아지는 시선과 오지랖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브라의 부담감은 줄여주면서도 훨씬 편안한 브라렛은 훌륭한 대안이다. 많은 브랜드에서 브라렛을 내놓고 있고 내 주변에도 브라렛 전도사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브라렛의 유행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찝찝한 것도 사실이다. 포털 사이트에 브라렛을 검색해보자. 편안한 착용감을 내세워 마케팅하고 있지만,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디자인의 브라렛이 대다수이다. 실제로 쇼핑몰을 둘러보면 까슬까슬한 레이스 탓에 피부가 간지럽다거나, ‘레이스가 힘이 없어서 오히려 더 불편하다는 댓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편안함을 위해 선택한 브라렛 마저 불편하더라도 남들이 보기에 예쁜디자인을 취하게 된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과거 브라가 패션의 이름으로 여성들에게 다가갔다면, 이젠 편안함이라는 좀 더 교묘해진 방법으로 여성들에게 다가가는 건 아닐까? 더는 엮이고 싶지 않은 덜 가혹해 보이는구속의 연속은 아닐까? 난 좀 더 근본적인 대안을 원한다.

 


    이쯤에서 2014년 개봉한 ‘Free the Nipple’(한국 개봉명 가슴 노출을 허하라)이라는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 여성의 신체에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검열법에 항의하고자 노브라 시위를 진행한 활동가들의 이야기이다. 영화 중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전쟁과 여성의 가슴 중 무엇이 더 음란한가?”

 

미디어는 폭력, 살인, 전쟁 등의 비윤리적 행위는 아무 거리낌 없이 내보내면서, 여성의 신체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 그들, 곧 남성의 기준에 맞는 여성의 신체는 환영받고 선별적으로 노출되며 나아가 신격화된다. 하지만 여성이 주체적으로 내보이는 신체는 검열의 대상이 된다. 사회가 여성의 가슴을 신체가 아닌 성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감추라고 강요당한다. 폭력과 가슴 중 무엇이 더 음란한가? 음란한 것은 여성의 가슴을 음란하다고 낙인찍은 시선 아닌가? 성적 대상인 가슴이 아니라 우리 몸인 가슴을 되찾기 위해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필자소개

여태껏 내 손으로 덕질한 것 중에 페미니즘만큼 재밌는 게 있었나? 페미니즘에 강하게 치인 새내기 페미입니다.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 외롭지 않은 덕질 ; 페미바순허브와의 인터뷰

By.광개토女



via.구글


 슬프게도, 페미니스트는 외롭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모두 웃을 때 홀로 웃지 못하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비유에 홀로 의문을 갖는다. 주변 사람들은 둔해지라고 말한다. 어떻게 둔해질 수 있단 말인가? 페미니즘을 안 이상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페미니스트인 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여성혐오가 숨 쉬듯 벌어지는 한국사회에서(지구에서?) 페미니스트는 다수일 때보다 소수일 때가 더 많고, 자주 혼자됨을 경험한다. 국립국어원은 외롭다라는 형용사를 홀로 되거나 의지할 곳 없이 쓸쓸하다고 설명했다. 국립국어원이 페미니스트에 대해 내린 정의인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보다 외롭다의 정의가 더 정확하게 페미니스트를 설명하는 것 같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에게 연대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거창한 목적과 행동의식을 가지고 모이지 않더라도, 홀로 싸우고 있는 게 아니란 걸 확인하면 개인은 더 강해진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거야라는 슬로건은 이런 페미니스트의 상황을 잘 말한다. 페미니스트는 모여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165월 등장한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을 시작으로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내 아이돌의 여성혐오 여부가 뜨거운 감자였다. 팬덤 내 젠더 감수성 상승은 콘텐츠의 변화로 이어졌다. 마마무의 소속사는 논란됐던 뮤비 데칼코마니를 유튜브 계정에서 내렸고, 빅스 라비는 자신의 솔로 앨범 타이틀 곡 뮤비 ‘BOMB’에 대해 사과했다



마마무의 소속사 RBW는 타이틀곡 '데칼코마니' 뮤비 속 데이트폭력 장면을 삭제하고 재업로드했다.

via.마마무

페미니스트들을 공격하던 팬들이 자기 아이돌의 책장에 맨박스가 꽂혀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빠지다가도, 팬덤 전반이 페미니즘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는 건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현 시점에서 아이돌 팬은 문화예술 소비자들 중 가장 활발히 페미니즘을 논의하고 있다. 지금도 페미니스트 팬들은 아이돌에게 페미니즘 서적을 서포트 하기 위해 모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공론화 과정에서 벌어진 페미니스트 팬을 향한 사이버불링과 오프라인 린치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알계와의 분투 속에서 홀연히 등장한 한 트위터 계정은 홀로 외롭게 싸우던 페미니스트 팬들에게 안정을 주었다. 저기에 가면 우리가 된다는 희망, ‘-한 페미-바순들의 안식처를 자칭하는 페미바순허브의 등장이었다.



페미바순허브 로고

via.페미바순허브


 ‘페미바순허브는 페미니스트 팬들이 정치 세력화할 온라인 기반을 제공함은 물론, 페미니스트 팬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었던 페미바순파티와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에서 가진 전국페미바순대집회까지 오프라인에서의 활동도 이어 나가고 있다. ‘페미바순허브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궁금하다. 과연 페미바순허브에서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수 있을까?

 



Q.‘페미바순허브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페미바순허브는 페미니스트 팬들을 연결하고 의견을 나누는 허브다. 페미니스트 팬들이 좋아하는 그룹/개인(아이돌, 배우, 모델 등)DM(direct message)으로 보내면 해당 그룹/개인 리스트에 등록한다. 리스트를 통해 페미니스트 팬들은 서로 친목을 도모할 수 있고, 좋아하는 장르의 여성혐오적 발언이나 그러한 콘텐츠를 지적·연대할 수 있다. ‘바순이 원하면 언제든지 새로운 리스트를 작성하며, 리스트에 등록하지 않아도 누구나 열람해 페미니스트인 팬들과 친해질 수 있다.

그밖에 새로운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이 생기거나 페미니스트 팬에 대한 사이버불링 등의 사건이 생기면 쉽게 연대할 수 있도록 리트윗을 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페바헙 파티’,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에서 주최한 페밋-테이블참가 등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허브가 실체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여러 활동을 기획, 진행 중에 있다.

 


Q.‘페미바순허브계정은 언제, 어떻게, 어떤 이유로 만들게 되었는가?

20164월부터 남자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여성혐오적 콘텐츠(가사, 공식 트위터 멘션)에 대한 피드백을 요구하는 운동을 했다. 167월 경,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로부터 여성혐오 콘텐츠를 지양하겠다는 내용의 공지를 공식적으로 받았다. 문제되는 트위터 멘션은 삭제하지 않은 점, 여전히 문제가 되었던 노래가사를 수정하지 않고 부른다는 점, 피드백을 동아일보에서 기사화한 이후 팬클럽에만 올렸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긍정적인 피드백이었다.



via.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란화 계정


1610, 방탄소년단의 컴백 트랙리스트가 공개되었고 ‘21세기소녀라는 제목의 노래를 확인했다. 제목을 보고 여성혐오적이라고 생각했다. 소녀를 대상화하고 있는 제목이라고 느꼈다. 이에 대해 개인 트위터 계정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아직 가사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너무 섣부른 것 아니냐, 왜 소녀가 여혐이냐, 팬 맞냐, 탈덕해라등등 욕설 섞인 다수의 멘션이었다. 그들과 일일이 싸우던 와중 나와 뜻을 같이하는 아이돌 팬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리트윗과 디엠으로 응원을 해주고 의견을 내는 등 같이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과 맞팔을 하고 트친소(트위터 친구 소개)를 대대적으로 했다. 서로 연결해주는 일만 세 시간 정도 하다 보니 아예 아이돌 팬 페미니스트 트친소 계정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은 아이돌 팬 트친소가 목적인 계정이었지만 배우, 모델 등 다양한 장르로 확장했고, 운영진을 추가 모집한 현재는 활동 영역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Q.‘페미바순허브계정을 운영하면서 겪은 사건들 중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최근에 페미바순허브의 이름에 들어가는 '바순'에 대한 논의가 의미 있었다. 페미'바순'허브 라는 이름으로 계정을 운영하면서 빠순이가 팬덤 외부에서는 멸칭으로 쓰이지 않느냐, 모든 젠더를 포괄하지 못하는 말이 아니냐라는 의견들이 나왔고 이에 대해 팔로워들(혹은 이 논의를 우연히 접한 사람들)과 페바헙을 태그하여 의견을 보내는 형식으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페미바순허브'에서 '바순'이란 용어를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여러 의견(위)과

'페미바순허브' 운영진의 입장(아래).

via.페미바순허브


운영진들은 팬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빠순'이라 호명하고 긍정적으로 전유함으로써 단어가 가진 비하를 전복할 수 있고, 여성형 단어인 '빠순'이 성별 상관없는 단어로 확장되는 데에도 의의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 의견에 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빠돌이'''가 바로 여성형 단어에서 젠더 상관없는 단어로 확장된 전례라며 충분히 '빠순' 또한 확장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논의에 참여하지 않은 분들도 페바헙이 던진 논의 주제를 통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논의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페미바순허브가 가진 공론장으로서의 가능성을 보기도 했다. 페미바순허브가 단순히 페미니스트인 팬들을 묶는 역할 뿐 아니라 공론을 열어줄 수도 있고 이들의 목소리를 퍼지게 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역할 가능성을 보았다.

 


Q.‘페미바순허브계정을 운영하면서 많은 애로사항을 겪었을 듯하다. 운영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자금 문제가 크다. 무슨 행사를 하던 돈이 든다. 온라인에서 리트윗 이벤트를 하려고 해도 돈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 자금을 운영진이 부담하는 건 모순인 것 같다. 수익성이 있으면서 의미 있는 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콘텐츠는 무엇인지, 또 돈이 들지 않으면서 진행할 수 있는 이벤트는 무엇인지 계속해서 논의하고 있다.

또 개인들을 모아 놓은 허브이니만큼 페미니스트끼리도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은데 이걸 페미바순허브에서 어떤 식으로 조율하고 담론을 이끌어낼지, 또 트위터가 그런 일에 맞는 매체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페미바순파티 PPT 이미지

via.페미바순허브



Q.‘페미바순파티라는 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해 개최한 것으로 알고 있다. ‘페미바순파티를 개최한 이유는 무엇인가?

공론화 계정들이 하나 둘씩 목소리를 잃어 가고, 지속되는 사이버불링으로 인해 페미니스트 팬들이 위축되어 갈 때 파티를 하자고 생각했다. 단순히 온라인으로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우리가 연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서로 외롭게 싸워오던 분들이 많아서 다 같이 더 친해지고 그동안의 괴로움을 풀 기회를 만들기 위해 행사를 기획했다. 무엇보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았다.

 


Q.행사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행사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어땠는가?

페미니스트 빠순들만이 할 수 있는 게임이나 이벤트를 생각했다. 도착하는 순서대로 준비된 아이돌 이름표를 랜덤으로 뽑아 닉네임을 정했고, 조를 짜서 각 조마다 한명씩 나와 그 사람의 본진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맞추기 놀이를 했다. 그 다음은 한명씩 아이돌 춤을 추어서 해당 노래를 맞추기를 했다. ‘아이돌 혐오발언 어워즈는 행사의 백미였다



페미바순파티에서 개최한 '아이돌 혐오발언 어워즈' 각각 노래, 방송, 팬사랑 부문 후보에 올랐던 그룹과 혐오발언들.

이외에도 다양한 그룹들과 다양한(?) 혐오발언들이 후보에 올랐다. 

via.페미바순허브

방송, 노래, 팬 사랑 부문으로 나누어서 각 분야 혐오왕을 뽑았다. 참고로 1회 수상자는 인피니트이다. 생각보다 다들 긍정적인 평가를 주셨다.


 

Q.행사를 진행하면서 느낀 어려움이 있다면?

참가자를 신청 받는 과정에서 사이버불링 위협이 있었다. 파티 신청을 처음 받을 때 참가 희망자의 계정을 폼으로 신청 받고, 희망자에 한해 프로텍트 계정으로 초대해 다시 신청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 했음에도 불구하고 참가 희망 의사를 밝히신 분의 Ask(익명질문)계정에 오프에서 보자는 내용의 사이버불링 협박이 있었다


via.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사이버불링' 항목


당시 린지님 등 사이버불링에 대한 불안이 극에 달해 있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행사를 중단할지 고민이 많았다.[각주:1] 실제로도 파티 시작 전까지 참가자가 페미니스트인지확인하는 방식에 대해서 골머리를 앓았다. 한번 중단할 뻔한 뒤로 급하게 준비한 파티였기 때문에 예산 책정 부분이나 계획 부분이나 구멍이 좀 있었다. 다음 파티 때에는 조금 더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으면 한다.

 


Q.‘페미바순허브계정 운영진이 바라는 페미니스트-바순이 문화는?

아이돌 산업 내 여성혐오 이슈가 대두된 지는 꽤 시간이 지났고, 페바헙 팔로워가 2000명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도 늘었다. 다만 아직도 많은 바순들이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여성혐오에는 귀를 막아버리거나 이런 저런 핑계를 붙여가며 합리화 하는 등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면 싫어하는 아이돌이 여성혐오를 드러내면 눈에 불을 켜고 비판을 하기 바쁘다.



via.구글



'페미빠순판'의 내부자로 있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 이런 '선택적 페미니즘'을 하는 바순들을 볼 때이다. 나는 이 현상이 바순들이 본인과 가수를 동일시하고,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여성혐오로 비판받으면 마치 자기가 욕을 먹은 것처럼 가슴아파하고 상처받는다. 이 때문에 팬덤 내 사이버불링이 일어나기도 한다.

많이 걸어왔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이돌 팬들도 트위터라는 매체 속에서 여성혐오 이슈를 접하고 페미니즘을 배워가고 있다. 하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돌은 비판하지 못하는 선택적 페미니즘을 한다면 페미빠순들의 목소리는 억압받을 수밖에 없다. 팬들이 본인과 가수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좀 더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판단하여 페미빠순들의 목소리를 크게 해줬으면 좋겠다.

페미바순허브 트위터 계정의 헤더 이미지

via.페미바순허브



Q.‘페미바순허브계정의 앞으로의 운영 계획은?

그동안 페바헙은 조용히 페미빠순들을 연결해주고 연대하기만 하는 계정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초반과 다르게 굉장히 많은 페미빠순들이 페바헙을 팔로하고 페미빠순 리스트에 등록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필요성을 느낀다. '전국디바협회'가 다양한 온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여성 페미니스트 게이머를 가시화한 것처럼 많은 페미빠순들이 모여 있는 허브에서도 페미니스트 팬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페스티벌인 페밋이 주관한 토크테이블 페밋-테이블에 참여한 것도 이런 생각의 일환이었다. 페밋-테이블 참여를 기점으로 기사를 기고하거나 페미바순파티2, 아이돌 팬 페미 스터디 등 여러 온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해 페미빠순을 가시화하고 고여 있는 물을 순환시키고 싶다.



※페미바순허브에서 제공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페미바순허브에 있습니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NCT와 아이유입니다.  

 

  1. 샤이니 팬덤 내에서 혐오에 대해 지적한 팬(린지님)들을 사이버불링한 사건. ※참고 : 5.팬덤이 허락한 페미니즘 ;진정한 페미니스트를 찾아서 http://weolganyeogi.tistory.com/4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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