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법학도의 세상읽기>

 

호 주 제

 

 

. 들어가며

 

호주제는 폐지되었지만, 폐지되지 않았다. 법조문에서 자취를 감춘 호주제는 여전히 우리의 의식 한 켠에 남아있다. 한국일보의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80%가 경조휴가 규정에서 조부모와 외조부모간 차별을 두었다고 한다. 친가 쪽 어르신 장례를 치를 때에는 경조휴가와 부의금을 탈 수 있으나, 외가 쪽 어르신이 돌아가셨을 때에는 따로 주어지는 휴가나 부의금이 없어 개인 연차를 사용해야한다는 것이다.

 

재혼 가정의 자녀를 표기하는 문제에서도 호주제의 잔재는 여실히 드러난다. 201681일부터 주민등록등본 상 재혼 가정의 자녀는 동거인에서 배우자의 자녀로 표기된다. 우리나라 대다수의 세대주가 남성인 것을 고려했을 때, 이는 새아버지를 단순히 같이 거주하는 사람에서 어머니의 남편으로 부를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호부호형은 가능하다. 그러나 재혼을 하지 않은 가정의 자녀들은 그냥 자녀라고 표기하는데 비해, 재혼가정은 배우자의라는 쓸모없는 수식어가 더해져 누가 봐도 재혼가정의 자녀임을 한 눈에 식별할 수 있다. 이처럼 남성, 부성 중심의 사고방식은 전통과 관습이라는 미명 아래 아직도 남아있다.

 

 

. 호주제 판례

 

헌법재판소의 호주제 위헌 판시는 개인의 인격을 형성하는 첫 사회화 지점인 가정을 평등에 기초한 보금자리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이 판례가 만들어지기까지 호주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은 첨예했다. 본문에서는 양측의 대립되는 주장을 소개해보겠다.

 

먼저 호주제란, “호주를 정점으로 가()라는 관념적 집합체를 구성하고, 이러한 를 직계비속남자를 통하여 승계시키는 제도”, 달리 말하면 남계혈통을 중심으로 가족집단을 구성하고 이를 대대로 영속시키는데 필요한 여러 법적 장치이다. 심지어 호주 지위의 승계적 취득에서는 철저히 남성우월적 서열을 매김으로써 남녀를 차별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와 누나들을 제치고 아들이, 또한 할머니, 어머니를 제치고 유아인 손자가 호주의 지위를 차지하기도 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없을 경우 일시적으로 가를 계승시키기 위하여 보충적으로 호주 지위가 주어지는 잔여범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호주제 존립을 찬성하는 입장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었다.

 

1. 호주제 찬성

 

1) 호주제는 고대 이래 조선 중기까지 이어져온 우리 고유의 합리적 부계혈통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아 부계혈통주의의 존립을 위한 극히 기본적인 요소만을 담고 있는 것으로서, 우리 고유의 대가족제를 상징적으로 표상한다.

 

2) 가족이나 친족집단의 존속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통의 정립을 통한 최소한의 기준과 질서의 부여가 요청된다. 반드시 부계혈통주의에 의해서만 가통이 정립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포함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전통적으로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하여 가통계승을 해왔다. 여기에는 가족에 있어서 모자관계는 생래적으로 증명되지만, 그렇지 않은 부자관계의 유대를 강화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부계혈통주의는 가족 및 친족집단 나아가 인류사회에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인류가 문명사회로 나아가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3) 여자는 혼인하면 남편의 가에 입적하게 되어 친가의 가통을 영구적으로 이어갈 수 없게 되므로, 남자우선의 원칙을 적용하면 여자를 호주로 하게 될 경우 혼인시 여자의 거가로 인한 호주의 변동으로 초래되는 호적사무의 번거로움과 인적, 물적 낭비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미 호주 등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법령의 개정에서 오는 혼란과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4) 호주제를 통하여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한 가의 구성 및 가통의 계승을 핵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계승, 발전시킴으로써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중시하고 있는 가족 및 친족공동체의 존속과 통합에 기여한다. 이렇듯 전통에 대한 존중의식을 고양함으로써 날로 팽배해져 가는 물질주의 및 개인주의의 폐단을 막아내고 완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또한 부모를 모시고 봉양하는 전통을 고무하고 조장하여 날로 심각해져 가는 노인문제의 해결에도 일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2. 호주제 반대

 

1) 호주제는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로서, 호주승계 순위, 혼인 시 신분관계 형성, 자녀의 신분관계 형성에 있어서 정당한 이유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이다. 또한 여성을 남성에 비하여 이차적, 종속적, 열위적 존재로 인식되게 함으로써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상징적, 심리적으로 불리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1-1) 호주제는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그 구성원 상호간의 평등한 법률관계 형성을 막고 남성에게 호주가 되는 우선적인 지위를 인정함으로써 합리적 근거 없이 아내의 지위를 남편보다 하위에, 어머니의 지위를 아버지보다 하위에 각 위치하게 하는 정당성 없는 남녀차별을 초래한다. (헌법 111, 361항 위반)

1-2) 부계중심주의 원칙을 채택하여 자녀가 속할 가를 원칙적으로 아버지의 가로 정하여 남녀의 성에 따른 차별을 두고 있다.

1-3) 처의 입적제도는 처의 부에 대한 수동적, 종속적 지위를 강제한다. 이는 여자의 열등적 지위와 결합하여 여성으로 하여금 어려서는 아버지의 가에, 혼인하여서는 남편의 가에, 늙어서는 아들의 가에 귀속토록 하고 있다. 이는 여성을 존엄한 독립적 인격체로서 존중하라는 헌법 제36조 제1항에서 예정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2) 부모가 이혼한 경우, 인수입적의 경우, 미혼모의 경우 등에 여성이나 자가 겪게 되는 실제적인 차별 곤란이 있다. 그래서 많은 가족들이 호주제로 인해 현실적 가족생활과 가족의 복리에 맞는 법률적 가족관계를 형성하지 못하여 여러모로 불편과 고통을 얻고 있다.

 

3) 숭조사상, 경로효친, 가족화합과 같은 전통사상이나 미풍양속은 문화와 윤리의 측면에서 얼마든지 계승, 발전시킬 수 있으므로 이를 근거로 호주제의 명백한 남녀차별성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 반박 )

 

4) 호주제는 당사자의 의사나 복리와 무관하게 남계혈통 중심의 가의 유지와 계승이라는 관념에 뿌리박은 특정한 가족관계의 형태를 일방적으로 규정, 강요함으로써 개인을 가족 내에서 존엄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가의 유지와 계승을 위한 도구적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 오늘날 가족관계는 한 사람의 가장과 그에 복속하는 가속으로 분리되는 권위주의적인 관계가 아니라, 가족원 모두가 인격을 가진 개인으로서 성별을 떠나 평등하게 존중되는 민주적인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호주제는 혼인 및 가족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에 관한 개인과 가족의 자율적 결정권을 존중하라는 헌법 제36조 제1항에 부합하지 않는다.

 

5) 일단 아버지의 가에 속하게 된 자녀가 부모의 이혼 등으로 아버지와의 가족공동생활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에도 자녀에 대하여 어머니의 가로의 전적의 여지를 두지 아니하고 있는데 이는 모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한다.

 

6) 가족제도에 관한 전통, 전통문화란 적어도 그것이 가족제도에 관한 헌법이념인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반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 반박 )

 

7) 자를 부가에 입적하는 것은 자녀가 부모의 양계혈통을 잇는 존재라는 자연스럽고 과학적인 순리에 반하며, 부에 비하여 모의 지위를 열위에 둠으로써 부당히 차별하는 것이다.

 

 

. 마무리

 

언어결정론에 따르면, 언어는 인간의 사고와 생활양식을 결정한다고 한다. 우리는 아버지의 일가를 친가(親家), 어머니의 일가를 외가(外家)라 말한다. 아버지 쪽은 친한 집’, 어머니 쪽은 바깥 집’, 즉 여성은 결혼을 하면 남의 집 사람이라는 사고방식이 일가친척을 지칭하는 단어에서부터 드러난다. 친가와 외가라는 단어를 어릴 때부터 사용하면서, 외가는 바깥 집이니 친가보다 하순위에 두도록 학습하는 것은 아닐까?

 

서론에서 보았듯 우리는 친조부모와 외조부모의 장례에 차이를 두며, 명절 날 외가 쪽 친척을 먼저 방문하는 것을 소위 생각이 트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처럼 친한 집보다 바깥 집을 똑같은 우위선상에 두거나,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의아함을 자아내고는 한다. 끊어내도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 호주제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알게 모르게 이미 자리를 잡은 고정관념을 떨치려면, 단어 규정 자체부터 변화해야 한다. 아예 친가 외가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친척이라고 통칭하는 것은 어떨까? 정 구분하고 싶다면 아버지쪽 친척이나 어머니쪽 친척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사람으로서, 동등한 인격권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의 결합이 혼인이며, 가정의 출발선이다. 행복한 가정의 형성은 가족 구성원이 동등한 인격체로서 화합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여, 페미행 급행열차를 타라!

 

최존

 

  ‘전명남(전직명예남성)’시절, 우습게도 스스로를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곤 했다. 순전히 페미니즘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탓이다. 그 시절 나에게 페미니즘은 올바른 페미니즘올바르지 못한 페미니즘으로 나뉘었는데, 내 인식 속에서 한국형 페미니즘은 후자의 범주에 들었다. ‘올바른 페미니즘올바르지 못한 페미니즘’, ‘한국형 페미니즘이라지금 생각하면 코웃음이 절로 나오지만 그 때는 그랬다. 어린 내게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거나 궁금증을 해결해 줄 사람은 없었다. 선생들은 여자들은 권리를 외치기 전에 의무부터 수행해야 한다.’라거나 서양의 페미니즘은 여자도 더치페이를 하고 군대에 보내달라고 아우성인 평등사상인데 한국에 와서 변질되었다.’는 류의 헛소리들만 해댔다. 가장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은 여성혐오가 만연한 상태인데다 마치 사실인 마냥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악질적인 루머가 곳곳에 퍼져 있었다. 핑계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졌을지는 누구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레 내게 페미니스트, 그 중에서도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불리할 때만 자신의 약함을 얘기하는 비겁한 사람들이었다.

 

  그랬다. 나는 꽤나 골 때리는 전명남이었다.

 

  “, 양성평등하려면 여자도 군대 가고 데이트 비용은 반반 딱 나눠서 내야 하는 거 아냐? 너희 왜 남자한테 의존하려고 해. 떳떳하게 살아!” 이렇게 말하고 다녔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평등이라는 글자에만 집착하여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여자와 남자는 같은 사람임을 말하면서 왜 굳이 여자를 사회적 약자에 포함시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자신이 약자 그룹에 속하지 않기를 바랐다. 때문에 도와주겠다는 남자의 말을 까칠하게 거절한 채,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힘에 부치는 짐도 내가 들었다. 썸타고 있던 남자애에게 무개념녀로 인식되기 싫어서, 헤어지고 나서 그 무리에게 , 그 김치녀?”라고 회자되기 싫어서 항상 자기검열을 했다. 내 숨통을 옥죄는 코르셋의 줄을 내가 당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게 잘못된 줄 몰랐다.

  가부장제의 부조리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 모를 수 있겠나.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정에서 태어나, 주재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가장 보수적이라고 칭해지는 중동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거주했을 당시, 아버지는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항상 옷차림이 같았지만 어머니는 외출할 때마다 전신을 가리는 아바야를 착용해야했다. 아버지는 한국에서와 같이 운전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면허가 있음에도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어머니는 점차 무력해져갔고, 한국에 와서도 한동안 무력감과 우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우리보다 여권이 지극히 낮은 국가이고, 그 때의 체험은 특수한 환경에서 벌어진 예외의 것이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한국사회 역시 뿌리는 다르지 않았다. 가장이라는 말의 힘인지는 몰라도 아버지를 대하는 건 항상 어머니를 대할 때보다 어려웠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버지의 노고만큼이나 가정을 운영하는 어머니의 노고 역시 대단한데도, 아버지의 권위는 제일이었으며 아버지의 말은 어머니의 말보다 항상 앞섰다.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정확히 표현할 수 없었을 뿐더러 보통 다들 그렇게 사니 으레 그런 줄로만 알았다. 남성은 군대도 가고, 데이트할 때나 결혼할 때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고들 하고, 보통 요즘과 같이 맞벌이 부부가 많지 않았을 때의 인식이다결혼 후에는 가정의 생계를 전담하여 책임지니까 부당하더라도 그들이 의무를 더 많이 지는 만큼 권리도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군역의 의무를 지고, 똑같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부장제의 병폐를 알면서도 그 화살을 사회가 아닌, 나를 포함한 여성에게 돌렸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부르는 것은 항상 어딘가 불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보던 중 우연히 메르스갤러리 저장소페이지의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호기심이 생겨 페이지의 게시물들을 쭉 정독했다. 유레카는 이럴 때 외치는 말일까? 그동안 불편했던 감정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되는데, 굳이 나 스스로를 개념녀프레임에 맞추느라 버거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여자인 내가 아니라 여자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드는 사회를 손가락질해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런 해방감은 흔치 않았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작년부터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면서 요새는 메갈리아미러링에 대해 여혐VS남혐따위의 겉핥기식이 아닌, 비교적 심도 있는 기사들도 늘고 있다. ‘미러링이 의도된 전략이든 그동안의 미소지니에 참아왔던 여성들이 우발적으로 터뜨린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든 이제는 중요치 않다. 우아한 언어로 조리 있게 페미니즘을 말하던 여성들에게 콧방귀 뀌던 남성들이 너의 자지는 작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페미니즘이 이렇게 이슈 차트를 역주행하고 있지 않은가.

  메갈리아를 기점으로 페미니즘에 입문하게 된 많은 사람들에게 아마 나와 같은 짜릿한 순간이 적어도 한 번씩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미러링의 의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갓스시녀들이 ‘#남녀가뒤바뀐일본사회(#男女逆転した日本社会)’ 해시태그에 열광하며 그동안 여성으로서 겪었던 부당함과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 건, 미러링이 악질적인 김치녀, ‘페미나치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이제 막 페미니즘을 배우고 있는 중이고, 태어났을 때부터 노출되어왔던 탓에 나 역시 미소지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페미니즘을 지향하고부터 더욱 행복해졌다는 것이다. 더 이상 나 자신을 옥죄고 틀에 맞추기 위해 힘들이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는데, 요새 가장 따끈따끈한 내 인간관계인 연애에서도 볼 수 있다. 내게 있어서 연애의 기본적인 의미는 사랑하는 연인과 편하고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자랑 좀 하자면, 운 좋게도 애인 역시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사람인지라 페미니즘의 정서를 함께 공유한다. 내 인생에 있어 요즘과 같이 자존감이 높고 동시에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던가!

  혹자는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것 내지는 여성우월주의 아니냐고 한다. 확실히 페미니즘의 시작은 억압받는 여성들을 위한 것이었다. 페미니즘 이름 아래 수많은 목소리들이 있지만, 이러한 부조리의 근본적인 원인이 가부장제인 것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바이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하에 이뤄지는 모든 성차별과 고통에 반대한다. 당신이 여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페미니즘에 적대적일 이유가 없다.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페미니즘 하지 않겠는가.

 

 

이 글은 홍달님의 사연을 바탕으로 구성됐습니다. 이야기를 공유해주신 홍달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페미니즘으로 사유하고 싶다면, 젠더란 무엇인가

페미타쿠


  페미니즘으로 내 경험과 느낌을 어떻게 논리 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을 사회현상으로 도출해낼 수 있을까? 페미니즘 분석은 어려운 논문을 쓰는 학자들만 가능한 걸까? 그렇지 않다. 바로 젠더란 무엇인가는 독자에게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하여 깊은 사유를 연습하게 하며, 가능하게 만든다. 이 또한 내가 추천하는 입문서에 포함된다. 어려워 보이는 제목을 가진 책이 입문서라니,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제목은 고리타분하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은 반전매력을 지니고 있는 책, 젠더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저자 로빈 라일은 이 책을 비교과서적 교과서라고 칭하고 있다. ‘쉽지만’, ‘각 잡고썼다는 이야기다. 페미니즘을 어떻게 가르쳐야효과적일지 고심한 끝에 탄생한 책이다. 페미니즘 계보를 역사적 맥락에서, 접근법에 따라서, 주제별로 다양하게 소개한다. 비교적 쉬운 말로 쓰여 있으며, 개념이나 이론을 설명할 때 적절한 사례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해하고 공감하기에 어렵지 않다. 독자에게 친근하게 대화하듯 내용을 이끌어 가며, 생각할 만한 지점을 던진다. 하지만 마냥 열린 문제점으로 두지 않고, 저자 본인의 생각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젠더란 무엇인가' 양장본 표지, ©알라딘)


젠더란 무엇일까?

  책 제목대로 젠더란 무엇인지 궁금할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젠더는 주로 (sex)’이라는 생물학적인 개념과 구분해서 사회문화적인 개념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젠더를 바라보는 한 방식일 뿐이다. 학자들마다 무엇을 젠더라고 하는지, 그리고 각각이 정의한 젠더를 어떠한 프리즘으로 볼 것인지, 그 방식은 여러 가지다.

젠더에 관한 이론화가 가능하기는 한가? 아니면 젠더에 관한 다양한 경험들은 공존이 어려워 통합이 불가능할까? 예를 들어, 여성들에게 무조건 중요한 이슈들 중 전 세계 여성들이 동의할 수 없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여성운동에 관한 논의는 의미가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항상 더 구체적인 상황(인도의 하층 카스트 계급 내 힌두교도 여성들의 여성운동과 대척점에 있는 중산계급 백인 미국 여성들의 여성운동 등)을 다루어야 할까? 시간과 장소를 통틀어 젠더 경험과 유사한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젠더를 다루는 교재를 저술하려는 노력이 의미가 있을까? () 매우 중요하고도 무척 어려운 질문이라 답하기가 겁난다. 그렇다고 책을 내팽개치고 쉬운 문제로 넘어가지는 말자. 감사하게도 젠더 학자들은 계속 이 문제를 생각했고, 여러 답을 개발해왔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차이를 만들어내는 다른 중요한 범주들과 함께 젠더를 생각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다음 논의에 나오겠지만, 좀 더 정교하고 포괄적인 젠더 분석에 관한 연구는 계속 진화할 것이다.(112)


  이러한 문제에 답하기라도 하듯 저자는 젠더에 대한 고민을 그대로 이야기한다. 정말로, ‘젠더란 무엇일까? 공부를 막 시작한 우리는 학자들이 먼저 연구해놓은 선행연구를 먼저 살펴볼 것이다. 그것이 젠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발췌한 학자들의 흥미로운 구절을 읽을 수 있다. 각주가 달려있고, 대부분 원문은 번역되어있으니 단행본을 찾아보는 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답을 내리기 위하여 학자들의 연구를 읽고, 그 중 한 사람의 의견을 지지 해야 하는가? (물론 그렇게 해도 된다.)

 

몸에 대한 여성과 남성의 생각을 직접 인터뷰하거나 조사해보자. 몸 이미지 이슈나 몸을 바꾸기 위한 행동, 정신-몸 이분법에 대한 남녀의 생각에 초점을 맞춰도 좋다. 이러한 질문의 대답에서 남녀가 유사한가, 아니면 남녀에 따라 다른가? 여기에 나이, 인종, 사회 계급, 국적과 같은 다른 정체성도 고려될 수 있는가?(222)


  책에서는 저명한 페미니즘 이론을 총망라되어 있는 것은 물론 젠더를 보다 깊이 사유할 수 있는 연습문제도 수록되어 있다. 특히 연습문제는 단원 별로 주어져있는데 이 책을 읽는 이의 사례를 녹여 넣어볼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있다. 연습문제가 곧 이 책의 핵심이다. 페미니즘은 사유와 실천의 도구이며, 이를 이용하면 나만의 이야기를 사회적인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 많은 경험들을 언어화하고 구조화하는 연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위에 제시된 것과 같은 연습문제가 곧 출발점이다. 결국 젠더의 해석은 읽는 독자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을 가지고 어떻게 젠더에 접근해볼 수 있을까? 최근 읽었던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과 548일 남장 체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여성성남성성에 대해 생각할 지점이 많았기에.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과 '548일 남장 체험' 표지, ©알라딘)


  크리스티안 자이델의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독일의 기자인 중산층 남성이 보온용으로 여성용 스타킹을 신는 것을 계기로 해서 여장을 하고 약 1년간 살았던 이야기가 담겨있다. 노라 빈센트의 548일 남장 체험도 미국의 기자인 레즈비언 여성이 남장을 하고 548일간 체험한 수기를 기록한 내용이 실려있다. 이 두 책은 여성성남성성을 다뤘다는 점에서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공유하고 있는 지점이 같다. 남성이기에, 여성이기에, 젠더 스테레오타입 때문에 내비치지 못 했던 여성적 감정들이나 행하지 못 했던 과격한 남성적 행동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동성간의 교류방식 또한 여성과 남성이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다르다. 이 두 책의 저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어떻게 사회문화적으로 다른 맥락을 공유하고 있는지 본인의 가까운 경험을 통해 자세히 기술해놓았다.


여성성남성성의 경계는 존재할까?


젠더와 다른 지위들이 여성의 몸에 모두 새겨져 있듯이, 남자들의 몸에도 새겨져 있다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젠더와 몸에 관한 논의에서 생기는 의문점은, 젠더가 남성들의 몸에 새겨지는 방식과 여성들의 몸에 새겨지는 방식 사이에 중요한 차이점이 있느냐는 것이다.’(169)


  『젠더란 무엇인가를 참고하면 여성성과 남성성은 다분히 사회에서 구성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책의 저자는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모험을 하면서까지 젠더와 자신의 삶을 탐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 그러나 이들의 인식엔 한계가 있다. 여성성과 남성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 하고, 그저 남녀간의 타고난 차이만을 응시하고 있다. 이분적 구분을 쉽사리 깨지 못 하는 것이다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의 저자 크리스티안 자이델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이분화하여 나누는 세상의 편견을 깰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결국 그러지 못 한다. 여성과 그들이 타고난 여성성을 섬세하고 위대한 것이라 동경하며, 자기 안의 여성성을 찾아가는 모험에 집중한다. 여장을 했을 때 여성다운움직임을 찾아내려 애쓰고, 급기야 여성다운 걸음을 가르치는 수업까지 수강하러 교습소에 찾아간다.

  크리스티안은 왜 여성 걸음을 가르치는 교습소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을까? 완벽한 여성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여성다운 걸음이 필요하다. 보폭이 좁고 조심스럽지만 부드럽고, 골반이 흔들리는 걸음 정도로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장을 한 남성만 여성다운 걸음이 필요할까? 아니다. 여성들이 여성다운 걸음을 걷기에 타고났기에 그렇게 걷는 것이 아니다. 지정성별 여성들도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맞춰 여성답게 걷고, 여성다운 걸음을 학습한다.


남성과 여성이 움직이는 방법의 미묘한 차이는 젠더 속성을 만드는 부분이며, 따라서 그것을 보고 누가 남성이며 여성인지 알아맞힐 수 있게 된다. 이는 남성에서 여성이 된 많은 트랜스젠더가 여성처럼 움직이는 것을 배우려고 댄스 강사에게 수업을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219)


  위에서 말하는 젠더 속성은 성별을 구분하는 데 탁월한 기능을 한다. 복장만 바뀌어도 우리는 상대의 성별을 쉽사리 인지하지 못 한다. 젠더 속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학습되는 것이다. 크리스티안은 여장을 하고서 길거리를 걷다가 여성으로 패싱되어 남성에게 성적, 육체적 폭행을 당한 뒤에도, 그것이 여성의 현실이며 또 다른 소수자인 트랜스젠더의 현실이라는 것을 쉽게 자각하지 못 한다. 그의 여장 목적은 무려 남녀관계의 갈등을 없애기 위한 것으로, 이전에 억제되었던 자신의 여성성을 회복시키고 자신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자아탐색에집중한다. 본인이 죽어도 남성이라는 안도감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여장을 하면서 남자들에게 여자들이 가르쳐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 여성들이 소심한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 해서 남녀관계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548일 남장 체험의 저자 노라는 남성간의 우정이 거칠지만 허물없고 따뜻한 것에 비해서, 여성과의 우정은 빈약하고 서로의 허물을 감싸주는 것도 없이 잔인하다고 말한다. 네드(노라의 남성 이름)는 노동자 계급의 집단에 들어가는데, 그 곳의 분위기는 꽤 남성답고 거칠다. 여성과 성소수자를 비롯한 약자를 비하하는 심한 농담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짓, 그리고 성매매를 통과의례처럼 공유하고 있는 집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엇을 못 하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모습을 인간적으로 느낀다. 네드는 사람들의 거친 농담이나 폭력의 수위를 별 생각을 하지 않고 말하는 것이고 쿨하고 멋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들의 매력에 빠진다. 그들은 하루하루 육체노동을 하면서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에, 그러한 유희거리를 참으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면서.


왜 남성은 여성보다 담배를 피울 가능성이 평균적으로 더 클까? () 이는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남성성에 따라 다르지만, 죽음 및 기타 건강 관련의 행위 정보를 보면 주로 남성성 때문에 남성이 여성보다 대해 더 많은 모험을 시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흡연과 상해 입기 쉬운 것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둘 다 모험을 하는 행위다. 남자들은 무분별한 방식으로 남성성을 과시하려다가 다치기 쉽다. 미식축구, 럭비, 권투처럼 몸끼리 접촉하는 스포츠에 깊이 관여하기도 하고, 남성들이 주로 일하는 직업의 종류 때문에 특히 노동자 계층 남성들이 많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186~187)


  남성의 호모소셜은 과격하고 거칠다. 이러한 방식들은 남성을 질병에 쉽게 노출시키며 수명을 단축시킬 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한다. 호모소셜은 그저 남성을 희생시키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자신들의 집단에 승인된 남성만을 들이고, 다른 사람들을 배제시키기 위해 유지된다. 남성들이 호모소셜 집단 내부에서 구성원들의 승인을 받기 위해 몸부림을 치며 겪는 과정은 반강제적으로 실시된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도태되지만, 이에 따르면 진정한 남성이라는 칭호를 획득하며 남성의 기득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네드가 잠시 경험했던 남성들의 세계 또한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소수자 혐오가 꼭 필요했을 것이다.


마치며

  이 책의 개념을 가지고 내 나름의 분석을 해보았다. 젠더는 이렇게 다양하게 읽힐 수 있다. 젠더란 무엇인가의 젠더는 여러분의 손 안에 달려있다. 이 책을 가지고 연습을 시작해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매우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참고도서-

노라 빈센트, 공경희 옮김,  548일 남장 체험』, 위즈덤하우스, 2007

로빈 라일, 조애리 외 옮김, 젠더란 무엇인가』, 한울, 2015

크리스티안 자이델,  배명자 옮김,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지식너머, 2015



 

 

 

페미니스트=메갈리아=남성혐오(?)

 

“‘메갈이 위협적이라고?”

넥슨은 게임 클로저스에서 김자연 성우의 목소리를 삭제했다. 그녀가 자신의 트위터에 메갈리아4’‘Girls Do Not Need A Prince(소녀들은 왕자가 필요 없다)’티셔츠를 입고 인증샷을 찍어서 올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메갈리아4 티셔츠, ©메갈리아4 텀블벅 페이지)

 

김자연 성우가 입고 나온 티셔츠를 제작한 메갈리아4’는 사라진 메갈리아와는 다르지만, 그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텀블벅 페이지다. SNS 페이스북 코리아는 여성 혐오적인 발언이 가득한 김치녀 페이지는 삭제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여성 혐오 실태에 맞서 성차별을 가시화시키려는 시도를 했던 메갈리아는 계속해서 삭제했다. 페이스북 코리아의 이중적인 태도에 메갈리아3’페이지의 운영진들은 고소를 준비하기로 결심한다. 이들은 소송 금액을 모으기 위해 메갈리아4’를 만들어 티셔츠를 판매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메갈 티셔츠. 세상을 바꾸는 한 장의 페미니즘. 김자연 성우가 입었던 바로 그 티셔츠 말이다.

 

#넥슨_보이콧 #김자연성우를_지지합니다

 

넥슨의 조치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며 김자연 성우를 지지했다. ‘여성 혐오 진영에서는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메갈’, ‘메퇘지라고 부르며 낙인찍었다. 또한 그녀를 지지한다고 표명했던 웹툰 작가들의 작품을 나열해 보지 말아야 할 웹툰 리스트라는 이름의 게시글이 제작되었고, 그것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

여성혐오자들이 작가들의 작품을 보이콧하는 것을 넘어, 웹툰 플랫폼 회사들도 이 움직임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유료 성인만화 플랫폼 탑코믹스는 김자연 성우를 지지한 스토리 작가 달곰을 부당하게 해고하기도 하고, 레진은 작가들에게 본인의 SNS에서 소신 발언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거나 이후 잘못될 경우 책임을 물게 할 것이라는 등 얌전한(?) 협박까지 불사했다. 게임, 웹툰계가 나서서 메갈리아’, ‘독자를 무시하는 건방진 작가를 골라내어 살생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넥슨게임 불매" 넥슨 판교사옥에서 항의 시위, ©부산일보)

 

여성혐오는 우리 사회에 숨쉬듯 존재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특별히 게임, 웹툰 계의 여성혐오적 분위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현재 대학에 다니고 있는 20대 여대생들은 인터넷과 친숙하며, 게임과 웹툰을 충분히 소비해왔다. 이들의 게임 이용률과 웹툰 소비율은 유의미하게 높다. 이들의 목소리는 콘텐츠 업계에 제대로 미치고 있을까? 메갈리아라는 커뮤니티와 SNS를 넘어 정치계의 분위기, 한국 분위기는 어떠할까? 여대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2차 여대회담 : ‘메갈 낙인여성 혐오의 방식

회담 진행 : 페미타쿠

 

 

Q.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를 포함하여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김나경 : 덕성여대 법학과에 다니고 있다.

바나나몬 : 청강문화산업대학에서 만화창작을 배우고 있다.

만두 : 동덕여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에 다니고 있다.


 

Q.넥슨의 성우 교체는 정당한 일이었나?


김나경 : 성우란 자신의 목소리를 이용해서 일하는 사람이다. 단지 이 사람이 (회사에) 안 맞아서 계약을 끝내고, 계약금을 주긴 했다면 문제가 없긴 할 것 같다. 그러나 해지의 사유가 개인의 가치관이나 정치적 성향 때문이라면 분명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 성우의 사상이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남자들이 게임을 이용하지 않을까예상만하고 자른 것이기 때문이다.

 

페미타쿠 : 게임 이용률을 보면 남자나 여자나 비슷한데 왜 넥슨은 남자고객을 무서워할까?

: 넥슨이라는 회사의 특징인 것 같다. 원래 유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회사가 아니다. 유저의 캐시가 3~4만원 털려도, 복구를 잘 안 해 준다. 아이디가 해킹을 당해도 복구하려면 한 달이나 걸린다. 청소년을 성폭행한 성우 때문에 한 차례 문제가 됐던 적도 있다. 그 성우를 해고하는 데는 2~3개월이 걸렸다. 이 때 성우협회에서는 성폭행 피해자에게 성우가 너 때문에 밥벌이 잃었다고도 했다. 그런 일에 느리게 대처할 정도로 넥슨은 원래 빠릿하게 유저의 리액션에 대응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넥슨이, (나는) 주문한 메갈리아4 티셔츠를 받기도 전에 (김자연 성우의 목소리를) 신속하게 잘랐다. 기업 내에서, 상부에서 페미니즘을 혐오한다. 게임을 이용하는 여성 유저가 40프로 정도가 되는 걸 분명 모르지 않을 텐데. 누가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상관없이 넥슨은 남성유저들만이 구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빠릿하게 대응한 듯하다.


 

(김자연 성우가 녹음을 맡았던 캐릭터 티나’, ©클로저스 공식 트위터)


 

Q.예스컷 노쉴드에 대한 생각은?

 

김나경 : 너무 당연히 정당하지 못한 건데, 이런 식으로 논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정말 힘들다.

: 콘텐츠를 만드는 직종에 종사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콘텐츠가 점점 유료화 되어가는 것에 대해 동의를 한다. 그런데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불만이 많다. ‘왜 이렇게 비싸냐는 거다. 사실 되게 싼 건데. 애초에 콘텐츠 자체를 유료로 이용하는 것 자체에 동의를 못하는 실태다. 디즈니 사장이 한국에 와서, “한국은 최고의 컨텐츠를 최저의 가격에 판다고 한마디 하고 갔을 정도다.

자본주의에서는 예스컷, 노쉴드하려면 돈으로 보여줘야 한다. ‘네가 그렇게 얘기했어? 나 그럼 네 거 안 사이렇게. 그런데 (한국의 웹툰 소비자들은 돈으로 콘텐츠를 구매한 적이 없으면서) ‘너는 사상이 이상하니까 작가를 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소비자의 권리를 너무 크게 보는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은 컨텐츠 생산하는 프리랜서가 MBC, KBS, NAVER 등 배급사에 붙질 않으면 작품 생산을 할 수가 없다. 기업을 벗어나서 창작하기란 어렵고, 작품이 불법으로 돌아다니게 되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기업에 붙어 계약금을 받으며 일할 수밖에 없다.

바나나몬 : ‘예스컷, 노쉴드는 작가랑 독자 사이의 갑을 관계를 나타낸다. 사실상 공짜로 컨텐츠를 소비하면서 독자들이 네 작품은 내가 보기에 괜찮아야 해라며 작가의 사상을 검열하는 거 자체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가분이 페미니스트로 유명하신데, 메갈리아4의 티셔츠 구입 여부가 알려지자마자 독자들이 보이콧하고 별점 테러하고 그러더라.

 

페미타쿠 : 청강대는 이번 사건 이후 메갈대라고도 불리는 거 같던데?

바나나몬 : 학교 측은 신경 안 쓰고, 심지어 노이즈마케팅이라고 좋다고 생각한다. ‘결국에 우리에게 남는 이미지는 페미니즘 대학이니까 좋은 거 아닌가’, ‘몇 억 들여도 되지 않는 홍보를 해주고 있다’, 이렇게. 그런데 남자애들은 우리학교 (메갈학교 되어서 불만스럽다) 쒸익쒸익이런다. (모두 웃음) 한번은 학교로 김자연 성우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며 전화가 왔다.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끊었다고 한다.(모두 웃음) 익명으로 학교로 민원을 넣는 상황이 웃기다. 청강대 졸업한 작가들 중에 김자연 성우를 지지한 사람이 많았고, 여러 교수님들이 미러링 지지 발언을 올렸다. 페미니즘도 지지한다.

김나경 : 만화를 되게 좋아하는 편이다. 작가들의 개인 사상이나 가치관을 볼 수 있어서다.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추다 보면 만화 자체의 매력이 사라지지 않을까.

 


(▲'예스컷' 로고)



Q.JTBC의 보도와 정의당 문예위, 진중권 칼럼, 해외 매체의 반응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의 여성 혐오 실태를 진단할 수 있을까?


페미타쿠 : 김자연 성우 사건은 페미니스트들도 얘기를 했지만,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하고 정의당 문예위에서도 글을 내고, 진중권 패자부활전하고, 해외매체들도 웃기다고 반응했다. 이런 반응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나경 : JTBC보도는 극혐이었다. 손석희가 약자의 편에 선다고 했으면서, 약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젠더 기득권층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도 없는 상태인데 그런 식으로 뉴스에서 말을 했다는 게 너무 화난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봉사를 많이 하고, 세월호에 대해 의견을 표명한다고 하더라도, 위선적으로 느껴졌다.

: 손석희를 페미니스트라 생각했고, 엄청나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니까 되게 기대를 많이 하고 강연을 들었는데 실망했다. 요번 JTBC 보도에서 중립충같은 짓을 했다.

페미타쿠 : 나는 JTBC 보도가 아니라 기사를 봤는데 덧글이 다 왜 메갈 옹호하냐?’ 더라.

: 그러니까 그 정도도 메갈 옹호라고 보는 게 (어이없다). JTBC는 지면기사와 방송기사 노선이 다르다. 지면기사는 보수인데 방송기사는 굉장히 진보적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진보 안에 여성인권운동은 없는 게 느껴진다.

 

페미타쿠 : 진중권 칼럼은 신기하지 않았나? 작가의 창작권을 위협받는 것에 대해 쓴 거 같은데,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 이 글도 웃겼지만, 이 글을 쓴 사람이 진중권이라는 게 더 웃겼다. 진중권이 그걸 실제로 타이핑하는 장면을 상상하니까. (웃음) 사람들이 말하길 그가 간헐적으로 정상이 된다니 너무 웃기다.

만두 : 칼럼이 길어서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나도 메갈리안이다라는 문구는 딱 기억에 남았다. 기업이 노동권을 침해하는 것에 대해 분노한 거다. 이에 동의를 한다.

바나나몬 : ‘초라한 남근으로 만들어진 남근다발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었지만 댓글 반응은 완전 반대더라. 진중권 이전에 어떤 논란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 ‘여자는 기어오르지 마라그런 발언 때문에 논란이 됐었다.

김나경 : 저는 진중권씨가 낄껴라고 생각했다. (모두 웃음) 낄 데 끼고 빠질 때 빠져라. 커뮤니티를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가 하는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얘기를 보고 사태를 판단한다. 그 안에서 하는 말들이 팩트인 줄 알고. 근데 진중권은 유명하기도 하고, 오유에서 인기가 많기 때문에, ‘진중권이 메갈이라니! 메갈이 아예 정신 나간 집단은 아닌가? 한 번 찾아볼까?’ 이런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페미타쿠 : 파급력이 있다는 건가. 진중권은 진보진영이라는 오유에서 추앙을 받는 사람이니까.

: 오유의 토템 같은 존재 진중권.(웃음)

 


(해외 사이트 코타쿠기사, ©KOTAKU(www.kotaku.com))

 

 

페미타쿠 : 해외매체의 반응은 어땠나?

: 생각보다 많은 매체에서 다뤘다. 영국, 네덜란드에서도 다뤄졌고. 네덜란드가 미디어업계에서는 되게 좀 영향력이 큰 국가 중 하나다.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쇼 프로그램도 창의적으로 만드는 편이라서. 반응은 다 하나같이 말도 안 된다는 식이다. 페미니스트 티셔츠 입었고, 해고됐고,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그 나라에서는 말이 안 되는 거다. 이 사람들이 이걸 팩트로 전달하자니 말이 안 되고, 그러니까 비꼬기를 하는 것 같다. 거기선 이 사건이 동아시아의 작은 국가에서 나타난 해프닝이다.

페미타쿠 : 어머, 어머, 쟤네 이런 일이 있었대. 대박이다, 미쳤나봐. (모두 웃음)

: 한국 남자들이 해외 기사에 거기다 ‘you don’t know the truth’라고, 메갈리안들 다 사탄이라고 댓글 달더라.(모두 웃음) 해외매체 반응이 의미가 있는 건 우리나라 게임업체가 해외매체의 눈치를 많이 본다는 점에서다. <오버워치>에서 다 옷 입고 나오니까 다른 게임에서도 캐릭터 다 옷 입고 나오고. 안보는 척 하는데 뒤에서는 다 찾아본다.

 


Q.여성 캐릭터를 묘사한 방식 때문에 논란이 된 넥슨의 <서든어택2>가 얼마 전 서비스를 종료했다. 게임 업계의 분위기와, 제작되는 컨텐츠의 성격은 어떠한가?


페미타쿠 : 넥슨의 조치가 페미니스트들의 반발을 사면서 수익률에 영향을 미쳤을까?

: <서든어택2>가 서비스 종료를 했다. 그게 망한 이유는 여성혐오 때문만은 아니다. 수많은 리뷰들과 전문가 평론을 보면, 넥슨이 <서든어택2> 운영도 느슨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투자금 300억을 메우려고 아이템을 엄청 팔았다. 넥슨도 선정성 문제가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것을 자존심상 표현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도 돈만 있으면 (많은 게임의) 패치를 싹 바꿔버리고 있고, 정말 다급하다는 게 여러 방면에서 많이 보인다.

김나경 : 아무리 여성 유저가 40%라고 한들 넥슨은 남성유저를 주 고객으로 보고 있다. <서든어택2>의 여성 캐릭터의 목소리나 그림을 보면 남성의 눈높이에 맞춰 게임을 팔아보려는 집념이 보인다.

바나나몬 : ‘남성유저들이 반발을 하니까 그 목소리를 들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헤비 유저들이 주로 남성이고, 김자연 성우의 사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먼저 냈던 것도 그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아예 여자캐릭터를 삭제해 버린거고, 김자연 성우의 목소리도 삭제해버리고, 계속 문제가 되니까 <서든어택2> 자체를 없애버리는 사태가 벌어 졌던 게 아닌가.

김나경 : 약간 우리 정치 같다.(웃음)

: 고심 끝에 해체하기로.(웃음) 서비스를 종료해서 놀랐다. 웬만하면 서비스 종료는 안 한다. 넥슨의 일랜시아이런 게임이 15년 정도 된 게임인데 아예 운영자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그렇게 운영자가 없어도 서비스 종료를 안 하는데, 300억의 돈을 들였고 투입된 인력도 많았을 게임을, 서비스 종료했다는 게 놀라웠다.

바나나몬 : 당연히 게임을 좀 보수하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었다. 게임업계에 종사하시는 분 말씀이, 캐릭터를 다 손보고, 시스템을 손보는 것보다는 아예 게임을 삭제해 버리는 게 이득이라고 하더라. 삭제해버리면서 논란도 같이 없애니까 게임 업체에서는 (오히려) 이득이라고 한다.

페미타쿠 : 그렇다면 <서든어택2> 서비스 종료의 이유가 여성유저들의 반발이 빗발쳐서가 아니라 남자 고객들의 눈치를 봐서, 서비스가 엉망이라서, 게임을 유지보수하는 것보다 삭제하고 다른 걸 만드는 게 수지타산에 맞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김나경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 페미니즘이 영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점은 넥슨 게임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에서도 헐벗고 있던 게임 캐릭터들이 옷을 입었다는 점이다.

: (모두 웃음) <테라>도 그렇고.

김나경 : 점점 여성 캐릭터의 화장도 연해지고, 옷도 주워 입고. 이게 어떤 문제인지 알리는 기회가 된 것 같다.

페미타쿠 : 서비스 종료 네이버 기사를 보니까 누가 저딴 걸 하냐, 저렇게 발가벗으면 남자들이 좋아할 줄 아냐, 남자들을 뭘로 보는 거냐, <오버워치>는 다 입고 나오는데도 PC방가면 애들이 <오버워치>만 한다.’라는 댓글을 남자들이 썼더라.

: 친구들 중에서도 남자애들이 서든한다고 하면 그거 포르노 아니냐는 등 자기 검열을 하는 것 같다. 거기에 페미니즘이 작용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넥슨이 (페미니즘에) 도움이 됐던 게 상상초월로 이상한 것을 내놓아서. (모두 웃음) 300억 써서 우리에게 도움을 준 것은 아닐까.

김나경 : 학원에서 1년 넘게 영어를 가르쳤다.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무슨 게임하냐고 물어보니까 <서든어택>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 <서든어택2>가 출시되기 전에 너는 어떻게 생각해? 좀 야하더라.’라고 얘기했더니 그래서 흥분되니까 한다고 그러더라. 서비스 종료할 때 즈음 어떻게 생각하냐 다시 물어봤더니 부모님들 눈치도 보이고 친구들끼리 하기에도 조금 그렇다고 하더라. 또 여자애들이 서든한다고 하면 변태라고 한다고.



(오버워치 아나캐릭터, ©블리자드 공식 트위터)


 

페미타쿠 : 게임이 노골적이어서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못하겠다는 건데, 이걸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볼 수 있을까?

만두 :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갔다 온지 2주밖에 안 됐다. 미국 남자들이 얘기하는 걸 보면 여자들 눈치를 조금 많이 본다.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하면 여자들이 나를 쓰레기같이 보지 않을까?’ 이러면서 눈치를 많이 보는 거다. 자기 검열을 하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이게 페미니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눈치를 보게 만드는 건 중요하다.

 

페미타쿠 : 게임 업계의 분위기나 제작되는 컨텐츠 성격은 어떤지? 왜 게임을 이용하는지? 최근의 사태로 분위기가 바뀌었는지 아니면 그대로인지?

바나나몬 : 게임 캐릭터 일러스트 원화를 만드는 분이 이야기해주기를, 게임 제작과정에서 캐릭터 일러스트를 만드는데 회사 상무가 여자 캐릭터를 만들 때에는 무조건 벗기라고 했단다. 남자캐릭터는 상관이 없는데 여자캐릭터는 레벨이 올라갈수록 더 벗기라고. 이게 심지어 최근 일이다. 윗선에서는 변하지 않는 공식인 것 같다. 예를 들면 아이돌한테 토끼 귀를 씌우라는 둥, 취향이 변하질 않는다. 제작과정에 투자자들의 취향이 그대로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 기업에서 팔아준다. 아무리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어도 업계에서 받아들여주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린다고 하더라. 그래서 아직은 게임업계가 많이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 내가 했던 게임은 <테일즈위버>라는 게임인데, 서비스를 한지 10년이 넘었다. 룬의 아이들이라는 소설을 베이스로 만든 게임이라서 캐릭터가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스토리도 원작을 그대로 반영하는 편이었다, 원래는. 그런데 작년 초반에 갑자기 뜬금없이 가슴이 보이는 캐릭터가 나왔다. <테일즈위버>가 오래된 게임이라서 그래픽이 평면적이고 캐릭터도 작은 편인데, 이 캐릭터는 3D도 아니고 2D도 아니고 애매모호한 그래픽에, 캐릭터가 뛰면 가슴이 출렁거리는 게 보였다. 유저들은 왜 원작에 있지도 않은 캐릭터를 가져와 굳이 저렇게 야하게 만들어 등장시켰냐며 반발했다.

또한 게임은 캐릭터가 서로 밸런스가 맞아야 하는데, 새로 나온 캐릭터가 팔려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밸런스를 무너뜨릴 정도로 능력치가 높았다. 노가다하며 수련 하고 사냥해서 열심히 자기 캐릭터들을 키워왔던 기존 유저들이 진이 빠져서 많이 그만 뒀다. 금전적 손실을 입고 나니, 가슴 출렁거리는 이펙트를 삭제하고 캐릭터 능력치를 내렸다. 당시에는 페미니즘을 잘 몰라서 단순히 넥슨이 헛짓했네이랬는데, 이번 넥슨 사건의 복선이었던 것 같다.

바나나몬 : 최근에 놀러와 마이룸이라는, 집을 꾸미는 아기자기한 게임을 한다. 실제로 여성 유저들이 많이 한다. 거기에서는 딱히 여성 혐오적인 컨텐츠를 찾지는 못 했다. 유저 간 여성혐오를 말해보자면, 마이크를 끼고 하는 게임 같은 경우에는 여성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부터 대우들이 달라지더라. 갑자기 친한 척 한다거나 게임 못 한다고 무시하거나.

: 여자들이 그런 게임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여자들은 이런 저런 게임들을 다 하는데 남자들이 아기자기한 게임을 안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애들 게임은 정형화되어있고.

페미타쿠 : <서든어택>, <피파>, 이런 거?

: (끄덕) 나는 3D 게임도 좋아하는데, 플레이할 때 여성유저들에 대한 편견이 되게 심하다는 걸 매번 확인한다. 웬만하면 여자라는 거 안 밝히고, 게임 톡도 참여 안 한다. 여자라는 걸 밝히면 대부분은 어머 저분은 여성이니까 엄호해뭐 이렇게 우호적으로 변한다. (모두 웃음) 또 일대일로 대화 오고, 여러모로 불편하다.


페미타쿠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 게임에 매력을 느끼는지?

: 스토리나 즐길 수 있는 컨텐츠에 매력을 느껴서 했다. 여성 혐오적인 것을 알면서도 감안하면서, 선택지가 없으니까. 그래서 <오버워치>가 등장한 게 너무 반갑다. 즐겁고 질 높은 대안이 생긴 것이다. <오버워치>가 세계로 뻗어나갔음 좋겠다.



(메갈리아 로고, ©메갈리아 홈페이지)

 


Q.사람들은 일베에 대적할만한 커뮤니티로 메갈이 등장했다면서, ‘여혐 하는 일베’, ‘남혐 하는 메갈, ‘여혐 대 남혐 구도를 주장한다. 메갈리아는 남성혐오를 하는가?

 

김나경 : 엄마가 오늘의 유머이용자인데 정말 많이 싸우게 된다. 나보고 메갈년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변, 특히 학교에 명예남성이 진짜 많다. (그래서 주로 오프라인에서는 주변사람들과 얘기를 할 기회가 많지 않고) 나는 온라인에서 여혐 이슈로 키보트배틀(이하 키배’)’를 많이 벌이는 편인데, 그 때마다 내 논리는 백인이 흑인을 혐오할 수는 있지만, 흑인이 백인을 혐오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혐이라는 말은 아예 성립되지 않는다.’이다.

페미타쿠 : 어떤 뜻에서 남혐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김나경 : ‘남성혐오혐오싫어한다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여성혐오혐오싫어한다의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물리적으로 여성을 배제하는 현상을 뜻한다. 여성이 남성을 싫어할 수는 있겠지만, 젠더 메커니즘의 약자이자 피기득권층인 여성이 기득권층인 남성을 똑같이 배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회적으로도 높은 직급에 여성이 적을뿐더러, 여성이 남성의 성별을 문제시하여 퇴직시키거나 해고할 수 없는 구조인데 어떻게 혐오가 가능하겠나. ‘여성혐오의 대등한 말로서 남성혐오란 말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페미타쿠: ‘여성혐오라는 단어에 대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 본 적이 있는가?

바나나몬 : 학교에서 같이 만화를 배우는 남자애와 이런 얘기(여성혐오)를 해 볼 기회가 생겼는데, ‘내가 오히려 약자야. 왜냐면 우리 학교는 여초이고 그 중에서도 여자가 많은 과에 속하기 때문에 나는 소수야. 그래서 나는 너희들의 눈치를 봐야 해. 자칫하면 너희들이 나를 몰아서 공격할 거잖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난 여자 좋아해란 말은 꼭 붙이더라. (웃음) ‘나 여혐 안 해. 나 여자 존중해. 근데 내가 무슨 말하면 너희들이 화내고 나한테 여혐한다고 할까봐 무서워서 말을 못하겠어.’라는데, 진짜 빻았다고 생각했다.(웃음) 여성혐오의 맥락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만두 : (그 동안 여자 연예인에 대한 외모 품평에 대한 미러링으로) 남자 연예인의 외모를 깎아 내리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남자들한테 여자들이 느꼈던 걸 똑같이 느끼게 해주는 점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메갈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친구들이 , 거기 이상한 데잖아.’라고 손사래를 친다. 여자인 친구들도 그렇게 부정적으로 얘기를 하니까 어디 가서 섣불리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페미타쿠 : 여성혐오에 관해서 주변에 말해본 적이 있는지?

만두 : 사실 주변에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거의 없다.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해본 적도 없고. 주변 남자애들이 가사노동 분담이라든가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과 같은 이슈에서 공감하고 생각해주는 애들이라 여성혐오와 관련해서 논쟁을 많이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나도 좀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메갈리아의 주장에 대해서 반대하지는 않았는데, 메갈리아가 남혐을 한다고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방금 이야기를 하면서 남성혐오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Q.메갈리아에서 선택한 미러링 전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두 : 미러링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는 건데 그렇게까지 하는 게 괜찮은 걸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누군가가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여자들이 그 동안 느껴왔던 감정을 남자들도 느껴볼 수 있게 하는 전략은 없는 걸까 싶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미러링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 남성을 낮추는 것에 대한 의의는 이런 면에서도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이 낮춰진 자신의 인권을 신장하려고 노력할 때, ‘그래, 너희도 당해보니까 그렇잖아. 너희도 인권신장 운동하게 되지? 그럼 우리 다 같이 노력하자.’ 이렇게 (연대하여 공동의 목표로 나아가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나 싶다. 미러링의 의미는 우리가 여혐 당한 것처럼 너희도 한 번 느껴봐. 이게 바로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 너를 바라보는 거다. 느껴봐라. 역지사지해보고, 너도 부당함을 느꼈으니 우리 함께 잘살아보세.’인데, 애들이 일단 까이니까 그게 열 받아서 쒸익쒸익 한다. (모두 웃음)

김나경: 같이 해야 하는데, 남성들은 너네도 이거 kibun 나쁘다면서 왜 해? 너네 kibun 나쁘잖아. 왜 해?’라고만 하니까 답답하다.



 



Q.메갈리아에 대한 주변 여대생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페미타쿠 : 미러링은 남성들에게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영향력이 있다. 주변에 친밀하게 지내는 여성들과 메갈리아에 관해 얘기를 해본 적이 있는지?

바나나몬 : 올해 초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처럼 메갈리아가 남혐을 하는 곳이라 생각해서 부정적이었다. 그러다가 여성주의를 많이 공부한 현업 작가님과 얘기를 해봤는데, 그 분 말씀이 메갈리아의 가장 큰 의의는 무엇보다도 여자들의 생각을 일깨워주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되돌아보니 나도 메갈리아를 통해 깨달은 점이 많았고, 주변 여자애들한테도 너희도 이런 거 알아야 해.’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많은 여자들한테 더 많이 생각하게 해 줄 수 있는 계기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페미타쿠 : 생각이 바뀌게 된 특정한 전환점이 있었나? 아니면 그 분 말씀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나?

바나나몬 : 그 분 말씀이 계기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 분의 작품도 남성들이 아니라 여성들에게 하는 얘기라고 말씀하셨다. ‘여자들이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만화를 기획한 것이다.’라고. 그 말씀을 듣고 긍정적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김나경 : 학교에는 명예남성이 많아서 주로 학원에서 가르치는 애들과 이런 얘기들을 하는데, 확실히 남학생과 여학생의 반응이 다르다. 남자애들은 대번에 ‘(선생님) 김치녀예요?’라고 말하길래 아예 얘기를 안 했다. 그래서 주로 여자애들과 얘기를 한다.

처음 메갈리아 얘기를 꺼내게 된 건 퀴어 페스티벌이 계기였다. 특정 성(여성)이 억압을 받아 페미니즘이라 이름 지어진 거지, 페미니즘이 목표하는 건 모든 성이 평등한 것을 말한다는 설명해주면서 메갈리아까지 얘기가 넘어갔다.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메갈리아 사이트에 접속해서 게시물을 봤다는 얘기를 할 정도로 긍정적으로 인식이 변했다. 물론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니까 그랬을 지도 모르지만.

페이스북에서 페미니즘 관련 글들을 공유하면 너 왜 페미니스트 짓 해?’라고 하던 명예남성친구들이 요새는 너 아직도 페미니즘 하면 나한테 설명 좀 해 줘. 내가 요새 이런 일을 겪었는데 이것도 여성혐오가 원인인 건지 너한테서 얘기를 듣고 싶어.’라고 연락이 오곤 한다.

페미타쿠 : 어떤 이야기였나?

김나경 : 내 친구가 아이돌 같이 화려하게 생겨서 눈에 띄는 편이다. 그 친구가 노래방 카운터에서 돈만 받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취객이 와서 나는 네가 좋다. 네가 우리 방으로 와라.’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

처음에 이 친구랑 크게 싸웠던 계기가 박유천 성폭행 사건이었다. 당시 토일렛(toilet) ’, ‘룸키유천이런 식으로 별명을 지어 조롱하곤 했는데, 그 친구는 왜 사람 이름 앞에 토일렛을 붙이냐면서 엄청 싫어했다. 내가 화장실에서 성폭행했으니까 토일렛을 붙이지.’라고 대꾸하면서 싸움이 났다. 나는 성노동 종사자들도 인권이 있다고 주장을 했고 (그 친구는 반대 의견이었다.). 친구가 자신이 성매매 종사자로 오해를 받은 게 여성혐오 때문이냐고 묻길래 설명해주다가 네가 만약에 성매매 종사자였으면 기분이 어땠겠냐. 너는 성을 판매하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식으로 취급을 받았다. 그럼 그 사람들은 평소에 어떤 대우를 받겠냐.’고 얘기를 했다.

: 최근에 절친한 언니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 언니를 못 본 사이에 내가 페이스북에서 페미나치짓을 엄청 했는데, (모두 웃음) 최근 <진짜 사나이><냉장고를 부탁해>를 리뷰하면서 신랄하게 비판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진짜 사나이>에 대한 비판 글을 쓰게 된 계기가 걸크러쉬 타입인 서인영이 순한 양이 되는 게 이번 특집의 키포인트다.’라는 <진짜 사나이> PD의 말이었다. 나는 이에 대해 비판을 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줬다. 신나서 더욱 활발하게 활동을 했는데, 언니가 그런 걸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 언니의 어머니는 딸의 외모를 엄청 비하하는 여혐러이다. 언니가 무슨 옷을 입으면 저 살 좀 봐라. 네가 그런 거 해서 되겠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일상이다. 언니는 그걸 평생 겪으면서 살아왔고, 아무리 싫다고 얘기를 해도 엄마가 듣지를 않으니 그런 점은 대충 감안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던 언니가 미국을 잠시 다녀왔는데, 소위 살이 흘러넘치는 데도불구하고 비키니를 입는 사람들과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않는 곳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살아보니까 그 동안 자신의 생활이 너무나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 더 이상 엄마한테 당해서는 안 되겠다고. 메갈리아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더니, 자기는 무섭다고 했다. 메갈리아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미러링이 어떤 힘이 있는지 너를 통해서 들으니 다 알겠고, 자기가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것도 알겠고, 엄마한테 가서 한 소리 해야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 모든 걸 부딪히는 게 자기는 너무 무섭다고. 그러면서 나한테 너 같이 용기 있는 애들이 앞서 나가주면,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거기에 편승하고 싶다.’고 했다. 그 동안 많은 여자 지인들한테 메갈리아에 대한 얘기를 해봤는데, 그렇게 솔직한 얘기는 처음 들어봤다. 동의하면서도 선뜻 동의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정말 많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나경 : 강남역 사건 당시 꼬박 6일 동안 시위에 나갈 정도로 분노했었다. 그 때 엄마랑 가장 크게 싸웠다. 그러고 나서 거의 한 달간 연락을 안 했는데, 엄마께서 먼저 연락하셨다. (그동안은 강남역 사건은 여혐사건이 아니라고 하시던) 엄마가 처음으로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이거 여혐 사건 맞는 거 같아. 엄마가 잘못 생각했어.’라고 하셨다. ‘여성혐오라는 것은 앞으로 너의 진로를 막을 수도 있고, 네가 가장 영향을 받고, 또 아파하는 부분인데, 지금까지도 아빠의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살고 있는데, 나는 네 말에 귀 기울여 듣지 못했다. 가장 많이 느꼈던 게 내가 여성혐오자라는 사실이다. 앞으론 이런 거에 대해서 너랑 가장 많이 얘기를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모두 박수)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라로고, ©페미니즘 위키)

 


Q.진짜 페미니즘과 가짜 페미니즘을 나눌 수 있는가? 여성 혐오자들은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되라고, ‘진정한 페미니즘을 하라고 말한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정한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여혐의 홍수 속에서 남혐하는 메갈로 대표되는 한국 페미니스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김나경 : 용감해져야 한다. 미러링과 같은 방법론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를 밝힐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메갈이라고 하든 안 하든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힘든 일이다. 나는 아빠한테 굉장히 많은 폭력을 당하고 살았고, 불과 몇 달 전에는 나한테 자꾸 뚱뚱하다고 해서 그만하라고 했다가 길거리에서 신발로 폭행을 당했다. 경찰서에 갔는데 경찰이 피해자인 내가 아니라 가해자인 아빠 편을 들었다. 대학 다니는 지식인인 네가 아빠를 고소하냐, 너는 패륜아다, 넌 대학을 다닐 필요도 없고 대학에 전화해서 못 다니게 만들어야 한다고 경찰이 말했다. 나도 지지 않고 용감하게 사람이 맞고 경찰서에 왔는데 고작 한다는 소리가 그런 거냐. 그게 자랑스럽냐, 당신은 그게 정의롭다고 생각 하냐.’고 얘기했더니 거기 있던 경찰관들이 나이 많은 남자한테 얘기하는 거 봐라. 자기 아버지뻘한테 얘기하는 거 봐라.’라고 하면서 나를 둘러싸고 미친년 취급을 했다. 솔직히 이런 반응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난 (내 생각을) 얘기했다. 용감해지는 게 가장 크고, 중요한 순서라고 생각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얘기해주는 거.

 

페미타쿠 : 근데 용감하게 행동할 경우에 위험에 처할 확률이 높지 않은가. 이런 거에 대한 두려움은? (어떻게 해결하나?)

김나경 : 모든 사람한테 너 이렇게 했어야지. 나는 네 가치관이랑 달라.’ 이렇게 하자는 게 아니다. 물론 나 역시도 많이 두려워했고, 두렵다.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를 때리는 사람 앞에서 그렇게 얘기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근데 방법은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대화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반응할 수도 있고. 일단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 생각을 말하는 거다. 말이 아니더라도 행동으로써. 표정이나 몸짓만으로도 할 수 있으니까. 이것도 굉장히 용기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무섭다. 페미니스트는 회사 다니기도 무섭고, 어디 가는 것도 무섭다. 그런데 사실, 페미니스트가 아니어도 무서운 건 마찬가지다. 통계에 따르면 여자는 3일에 한 번씩 죽어나가니까.

바나나몬 : 학교에서 여성혐오를 주제로 한 번 수업이 이뤄진 적이 있다. 중년 남자 교수님께서 처음에는 메갈리아? 미러링? 근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좀 더 부드럽고 좋게 할 수도 있지 않아?’라고 말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난 뒤 교수님과 얘기를 했었는데, 다음 수업 때 교수님이 일주일 동안 생각을 해봤는데, 미러링을 하지 않았으면 나라도 생각이 안 바뀌었을 것 같아.’라고 하셨다. 그 후로는 혹시 내가 실례되는 말을 했니?’라거나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너희에게 안 좋은 인식을 심어주니?’라고 계속 묻더라. 그러면서 사실 이렇게 하는 거 불편한데 내가 불편하지 않으면 너희가 불편할 거 아니냐.’고 말씀하셨다. SNS에서 페미니즘 관련 글에 많이 관심을 보였는데, 살생부에 내 계정이 올라갔다. ‘, 나 좀 행동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엄마한테 얘기했는데 엄마가 엄청 걱정하셨다. 신상 털리고, 그 사람들이 내 사진을 이상하게 왜곡해서 유포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면서 엄마가 너무 걱정이 많지? 미안해.’라고 말했다. 생각을 드러낸다는 이유로 위협받을 수 있다는 걸 두려워해야 한다는 게 너무 슬펐다. ‘엄마 말대로 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잠들고 나서 일어나보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김나경 : 키배(키보드배틀)뜨다가 일베충 고소해서 일본 여행도 다녀온 적 있다. (모두 놀람)

: 고소 노하우 좀 알려 달라.

김나경 : 나는 일명 과격파이다. 가릴 거 없이 상대 기를 팍 죽여서 한 마디도 못하게 만드는 편이다. 하도 YTN기사마다 덧글을 달고 다니니까 누군가는 나의 덧글을 캡쳐 해놨을 거 같다는 생각에 일베에 들어갔다. 있더라. (웃음) 고맙게도 아이피가 나타나기 때문에 구글링을 해서 나를 욕한 사람들을 명예훼손과 사이버 고소죄로 고소했다.

만두 : 페미니즘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실행은 못했다. 오늘 얘기 들으니까 정말 신기하고 존경스럽다. 용기를 내서 얘기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데. 부모님이나 언니가 가끔씩 여혐 발언을 할 때, 혹은 친척분들이 듣기 불편한 말씀을 하실 때 왜 저러시지라고 생각은 들지만, 논리적으로 따지지를 못하니까 그냥 듣고 넘기게만 되던데. 주변에 워낙 원만하게 살자주의의 친구들만 있고, 그 친구들은 뭐 어때. 그냥 이렇게 끼어서 살다가 나중에 유명해지거나 돈 많이 벌면 그 때 가서 의견 피력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주의다. 나 자신도 원만하고 무난하게 사는 편이라 그럴 때마다 그냥 넘기고는 한다. 인터넷에서 페미니즘 관련된 주제는 아니지만 키배 비슷하게 설전을 벌인 적이 있는데 일주일 동안 엄청 스트레스 받아서 물도 잘 못 마실 정도였다. 정말 다들 대단하다.

 

페미타쿠 : 주변이 그렇게 다 여혐 이슈에 무심하면 본인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 텐데, 무엇인가?

만두 :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혹은 그런 경우를 목격할 때가 있다.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 문제라든지, 혹은 친척집에서 이모는 일하는데 이모부는 앉아있기만 한다든지. , 언니가 유학 생활 얘기를 해줄 때마다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 꿈같고 부럽기도 했다. 나도 이번에 미국에서 교환학생 갔다 와서 느낀 건데, 미국에 있을 때는 살찌는 것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 오자마자 사람들이 너 왜 이렇게 살 많이 쪘냐고 뭐라고 하더라. 가끔 이런 걸 얘기해보면 사람들이 나한테 너 페미니스트야?’라고 묻는다. 그러면 항상 회피하기만 했다. 페미니즘이 뭔지도 잘 모르고, 뭔가를 더 해야만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얘기할 사람도 없고 아무도 공감하지 않으니 나만 되게 이상한 사람 같고.

 

페미타쿠 : 페미니스트라고 낙인 찍히는 게 싫어서 회피한 건지, 아니면 페미니즘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그랬던 건지?

만두: 둘 다 인 것 같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걸 잘 못해서 논쟁을 피하는 성향이 있다. 페미니스트라고 얘기했을 때에는 페미니즘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는데 논리적으로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특히 한국에서는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주변에서 좋지 않게 바라보기도 하니까.

: 약간 입덕기인 것 같다. 트위터를 시작해보는 게 어떤가. (웃음)

김나경 : 나도 페미니즘에 입문하면서 그런 과정을 겪었다. 논리적이지 않으면 아무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SNS를 시작했는데, 사람들과 얘기하고 들어보면서 내 나름의 논리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페미니즘에 뛰어든 이후로 학교 성적도 올라갔다. 보통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얘기할 때 통계치를 많이 쓰는데, 통계를 보면 논리가 나오고 거기에 내 경험도 덧붙여서 쓰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처음에는 반대쪽도 비논리적으로 나를 폄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똑같이 비논리적으로 대응하면 된다.

: 그러고 나면 내가 일베와 동급이 된 거 같아서 현타가 올 수 있다. 나 진짜 못났다고 자괴감에 빠질 수 있다. 내가 그랬다. 강남역 사건 떄, 이게 왜 여혐이냐고 묻는 사람한테 똑같이 대응하다 보니 나도 빻은 소리를 하고 있더라. 그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페미니즘 책을 읽게 되었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얘기를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솔직히 책 한 권 읽었다고 엄청난 페미니스트가 되는 건 아니지만, 자신감도 많이 얻고 논리왕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키배에 참여하게 되면서 주워듣는 것도 많고.

페미타쿠 : 스스로가 공감할 수 있는 쉬운 것부터 시작하면 좋은 것 같다.

만두 : 근데 현실적으로 많은 여성분들이 너무 바쁘기 때문에 참여를 못하는 것 같다. 취업도 해야 하고 여러 가지 준비할 것들이 많지 않은가. 나 같은 경우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뭐 하나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하는데, 현실에 놓여 있는 과제는 너무 많고, 그러다 보니 다른 데에는 시간을 할애할 수가 없다. 부담되니까 아예 뒷전으로 밀어버리게 되더라.

: 나도 취준생이다. 페미니즘을 시작하면 제일 먼저 바뀌는 게 사유하는 과정이다. 때문에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짜증이 나고,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다 보이게 된다. 속칭 페미병이라는 건데. (웃음) 근데 이게 나한테는 도움이 되었다. 나는 PD 지망생이고 PD는 사람을 관찰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 전까지는 사람을 관찰하는 데 시간을 크게 할애하지 않았다. 그런데 페미니즘을 하다 보니까 사람을 관찰하게 되었고, 정말 모든 게 잘 보이더라. 카페에 어떤 아저씨가 들어와서 알바생한테 어떤 멘트들을 던지는지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물론 그게 초반에는 잠도 잘 못 자고 신경 쓰여서 피곤하긴 하다. 근데 한번 지랄을 해보면 괜찮아진다. 강남역 사건이 계기였다. 그전에도 관심은 많았지만 드러내기가 두려웠다. 주변에 남자 지인들도 많아서 더 이상 인맥을 유지하기도 어려울 거고, 내가 페미니스트인 걸 드러내는 순간 모든 여혐러들이 다 나를 손가락질 할 거고. 근데 강남역 사건 이후로 내가 언제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까? 나도 언젠가는 폭력에 노출된 여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페이스북 상에서 빻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다 친하게 지냈던 남자 지인들이었다. ‘사이좋게 지내요. 남자 여자 싸우지 마세요.’ 이런 글을 올리는 걸 봤을 때, 내가 왜 이런 인맥을 유지해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서 내 페이스북에나는 페미니스트이고, 앞으로 내 타임라인에 이러이러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안 봤으면 좋겠다. 만약 그럴 경우에 페친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그 때부터 드러내기 시작해서 (페미니즘 활동한 건) 얼마 안 됐다.





페미타쿠 :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 요새 취업 준비를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스터디원들이 모두 여자고, 한 명만 여대에 재학 중인 여대생, 나머지는 공학출신이다. 여대생인 사람은 페미니즘에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한 상태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약간 명예남성인 사람들이다. 언론 공부를 하다 보니 콘텐츠 얘기를 많이 하는데, 우리가 접하는 콘텐츠에 여혐이 진짜 많지 않은가. 더 이상 그 부분을 짚지 않고선 토론을 진행할 수 없었다. 그랬더니 한 사람이 불편하다고, 어차피 우리는 그 업계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인데 자꾸 이렇게 딴죽을 걸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고 하더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기서 지지 않고 너는 어떻게 여자면서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냐.’고 지적하는 거다. 비슷한 예로, 저번 학기에 100명 정도가 수강하는 미디어 학부 수업을 들었을 때다. 대중문화에 대해 논하는 수업이었고 진행하시는 교수님도 페미니스트이신 분이셨는데, 강남역 사건이 터졌을 무렵이었다. 교수님께서는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분명 교수님 자신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 자신이 의견을 내면 그 사람들이 불편해 할 것이다, 강단에 서는 사람으로서 매우 고민된다고 하시더라. 그 때 교수님께서 망설이시는 걸 막았더니, 교수님께서 나보고 한 번 얘기해보라고 하셨다. 그 때 당시 페미니즘 책 한 권을 다 읽은 상태였는데, 그걸 가지고 다 깠다. 마지막으로 했던 얘기가, ‘여기 100명 정도가 앉아있고 대부분이 미디어 전공자인데 이런 감수성 없이 언론인이 된다는 건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다.’였다. 그런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나머지는 취업을 하고 나서 그 안에서 지랄을 하는 게 내 임무겠지. ‘생활 속의 지랄이 정말 엄청난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만 지랄해봤으면 좋겠다고 주변인들한테 호소하고 다닌다. 근데 그게 진짜 어려운가 보다.

김나경 : 내 가족인데, 가족마저 나한테 등을 돌리면 어떡해.

: 페미니스트라고 하고 나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그럼 너희 아빠도 한남충이야?’이다. 그럼 나는 , 한남충이야. 최고의 한남충이야. , 너는 아닐 거 같아? 너도 한남충이야. 벌레 충이 기분 나쁘면 충실한 충 해줄게. 남성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해줄게.’ 이런 식으로 맞받아친다. 이처럼 우리를 공격하려고 질문이 들어올 때 지지 않고 더 나아가야 한다. 나경 씨가 악플러들을 고소하는 것처럼.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런 걸 페미니스트라고 불러야 되는 것 같다. 한 번 해보면 페미니스트, 별 거 아니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김나경 : 생각만 가지고 있는 것도 페미니즘이니까.

: 일단 덤비는 거다. 나 자신을 검열하지 않고 내가 맞다 생각하는 걸 화두로 던져보는 게 중요하다. 상대가 논리적으로 답을 하면 나도 그에 맞데 다시 화두를 던지고 이런 식으로 논의가 활발해지는 모든 과정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김나경 : 가장 공감했던 책은 미움 받을 용기였다. 저 사람이 나한테 뭐라고 해도, 그거 뭐 어쩌라고, 이런 사고가 가능하게 된다.

: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이 없다. (모두 공감) 그리고 사람들이 페미니즘 한다고 하면 싫어할 것 같지? 안 싫어한다, 멋있다고 하지. (웃음) ‘너 용기 있다.’ 이렇게 얘기해주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구리다고 하는 사람들과는 관계를 끊는 게 정신건강에 좋고. 멋있다고 해주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면 되는 거다.

: (페미니즘 책) 한 권만 읽어도 99명 후려 팰 수 있다. (웃음)

김나경 : 페미니즘은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최종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성차별도 없고, 게이(성소수자)를 봐도, ‘, 게이(성소수자)!’ 이러지도 않고. (모두 웃음) 여자한테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보지 않고 애인 있냐고 물어보는 사회가 인간 최고의 발전이고 목표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페미니스트로서의 단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단계를 정해야 하는 것 같다. 어쨌거나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들이 훨씬 많으니까 난 그 사람들 보다 먼저 페미니스트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차피 쟤네들도 여기(페미니스트 단계) 와야 하는데.

: 도태를 생각하면 될 거 같다. 너네는 번식 탈락할 것이고. (모두 웃음)

 


대담 후기

: 정말 재미있었다. 사실 우리 학교 내에는 페미니스트가 많다고 믿고 있고, 이게 애교심이 급상승한 원인이기도 하다. ‘나 이 학교 와서 인생 폈다. 숙대짱이다.’이런 생각을 4학년 때 제일 많이 하기도 했고. 근데 숙대 이외의 친구들을 만나서 이렇게 얘기해보니 거기에도 있구나, 전쟁에 비유하자면 저쪽 동네에도 독립군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만두처럼 페미니즘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하니까 기분이 좋았다. 평생 이런 사람들하고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만두 : 살면서 무언가에 대해 이렇게 깊게 얘기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평소에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훨씬 좋아하는데, 많은 생각들을 들을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고, 용기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챱이 말한 생활 속의 지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엄마나 언니가 얘기하는 거에 대해서 적당히 넘어가고 회피했는데, 이제는 뭔가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 사는 여성분들 중에 나 같은 사람이 되게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도 이런 내용에 대해 더 많이 노출되어 보고 토론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이런 얘기가 더 많이 나오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바나나몬 : 열띤 토론을 벌인지라 에어컨이 정말 필요했다. 감명을 많이 받았다. 연대하면서 공동체의식을 느끼고 자극 받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요새 작업하느라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는데, 오늘 자리 나오기 전에 이것저것 찾아보고, 와서 얘기하면서 역시 나는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라고 생각했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목소리를 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김나경 : 주변에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정말 좋았다. 유명한 페미니즘 만병통치약 짤방도 생각났다. 이런 기회가 와서 정말 좋았다.

여자 아이돌, 야동이거나 상품이거나.

by.광개토

 

 


한국의 미디어 제작자들은 여자 아이돌을 사람으로 대하는 방법을 아직 모르는 듯하다.


 

Mnet <프로듀스 101>을 제작한 한동철 피디는 지난 7월 잡지 <하이컷>에서 남자들에게 건전한 야을 만들어주기 위해 해당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고 인터뷰했다. 그 말을 반증이라도 하는 듯, <프로듀스 101>의 참가자들은 교복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고 온갖 대상화의 시선에 재단당해야 했다. 한동철 피디는 논란이 가중되자 의도가 잘못 전해졌다고 해명했다. 한동철 피디는 어찌 보면 피디다운 명철함을 지닌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자 아이돌은 야동이거나 상품이다.

최창수 피디가 이끌고 있는 JTBC <아는 형님>723일 러블리즈 편에서 걸그룹 러블리즈의 멤버 케이와 프로그램 패널 강호동이 각각 데이트에 늦은 여자 친구와 남자 친구 역을 맡아 연기하는 모습을 내보낸다. 상황극에서 강호동은 죽고 싶어?’라는 협박과 함께 폭력을 휘두를 것 같은 위협적인 행동을 취한다. 이에 케이는 강호동의 손을 잡으며 애교를 선보인다. 마치 데이트 폭력 현장을 재현한 듯한 모습임에도 이 장면은 방송 후 케이의 애교에 집중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한편 SBS는 남성 패널들의 운명을 시청자가 직접 결정한다는 여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꽃놀이패>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다. 프로그램은 남성 패널 간 시청자 인기투표를 진행해 상위 랭크인 패널을 꽃길이라고 부르는 호화 여행길에, 하위 랭크인 패널을 흙길이라고 부르는 힘든 여행길에 서게 한다. 꽃길인 편안한 여행 코스 중에는 걸그룹 트와이스와 노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었다. 인기가 많은 남성은 미모의 어린 여성들과 시간을 보낼 기회를 갖는다.

여자 아이돌은 데이트 폭력을 행사하려는 남자에게 화를 풀어주려 목숨을 건 애교를 부리거나, 인기 많은 남성의 승리의 트로피가 된다. 이 두 가지 소비 방식에서 벗어난 여자 아이돌은 찾기 어렵다. 한국 여성 아이돌의 시초인 S.E.S.가 데뷔한 지 약 20년이 지났고, 카라의 전 멤버 강지영이 SBS <라디오 스타>에서 애교 강요에 눈물을 쏟은 지 3년이다. 한국의 미디어 제작자들은 여자 아이돌을 사람으로 대하는 방법을 아직 모르는 듯하다.

 

 


( 나혜석_저것이 무엇인고_신여자 제2호_목판화_1920 )

1920년대, 사회에 나온 첫 여성인 신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람이 아닌

잠재적 연애대상이었다.


 

 

나이 어리고 예쁜 여자에 대한 혐오적 시선을 대중 미디어가 확대,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남성뿐이던 회사에 나타난 여자직원의 역할을 알 수 없어 커피 심부름을 시키고, 아직도 여름이면 여성들의 옷차림에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르겠다며 히잡을 씌웠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성들은 그간 자신의 세계에 있던 두 종류의 여성-어머니로 대표되는 가족여성 혹은 창녀로 대표되는 성적 대상화된 여성-외의 여성을 낯설어 한다. 여성을 사람으로 대한 적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눈앞에 나타난 인간인 여성을 자기들이 아는 여성인 여자 친구 혹은 창녀로 읽으려 든다.

이런 사회적 풍조는 고스란히 대중 미디어에 투영된다. 특히 성 상품화와 대상화에 대한 담론이 끊기다시피 한 한국 여자 아이돌은 더욱 쉽게 노출된다. 무대에서는 섹시 디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왈가닥의 대명사였던 이효리가 결혼 후 참한 주부로 그려지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나이 어리고 예쁜 여자에 대한 혐오적 시선을 대중 미디어가 확대,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걸스피릿>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14년 데뷔한 걸그룹 마마무는 음오아예발표 후 걸크러쉬의 대명사로 불리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한 눈에 반했는데 알고 보니 여자였더라라는 내용의 가사와 뮤비는 여성 팬층을 확고히 했다. ‘걸그룹이라도 여성팬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면 남성팬은 자연스레 따라온다SM 엔터테인먼트 관계자의 말처럼, 성별을 막론하고 아이돌 그룹 기획자들은 여성 팬층을 붙잡는 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적어도 아이돌 시장에서 여성은 중요한 고객인 것이다.

팬 대부분이 여성인 아이돌을 기용하면서도 아이돌의 역할에 대한 고민 없이 콘텐츠를 만드는 행위는 제작자로서의 책임감이 결여된 기만적 행동이다. 팬들은 그저 방송의 꽃, 방송의 활력소, 방송의 장식 역할에 그치는 내 아이돌의 모습에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팬들의 화력(시청율, 인터넷 내 입소문 등)을 기대하며 아이돌 게스트를 섭외하면서, 아이돌과 팬들에 대한 배려는 없다.

기울어진 성 역할을 여실히 드러내는 프로그램은 콘텐츠의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은 물론, 재미도 없다. <12>에서 무대 의상인 양말까지 신은 채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남성 패널을 위한 노래와 춤, 애교를 부리는 트와이스의 모습은 군부대 앞에서 공연하는 걸그룹 이상의 감흥을 주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아는 형님> 속 강호동의 모습은 데이트 폭력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할 뿐 웃음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자라면 어떤 웃음이 현재 한국 사회에 필요한 지 아는 기민함이 필요할 것이다. 과연 현 한국에서 폭력과 성적 대상화가 무해한 웃음이 될 수 있을까?

이런 분위기에 맞춰, JTBC는 최근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해본 적 없는 걸그룹 멤버들이 1위를 놓고 노래 실력을 경쟁하는 방송 <걸스피릿>을 내놓았다. 아이돌 시장의 포화로 노래할 무대가 줄어든 여자 아이돌들을 위해, <걸스피릿>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남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겨졌던 경쟁에 어린 여자들이 뛰어든다는 점에서 <걸스피릿>은 최근 나온 예능 방송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경쟁에 참여하는 12명의 아이돌 역시 서로에 대한 경쟁의식을 숨기지 않는다. 야동도 상품도 아닌 목소리를 내는 여자 아이돌’, ‘질투가 아닌, 경쟁하는 여자 아이돌의 등장을 기쁘게 응원한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 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세일러문 크리스탈과 오마이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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