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퍼스널 컬러 이론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

암탉



    이 사진, 익숙하지 않은가? ‘퍼스널 컬러를 검색하다 보면 한 번쯤은 꼭 마주치게 되는 사진이다. 일명 퍼스널 컬러 자가진단법이라고 돌아다니는 위 사진에 손등을 댔을 때 왼쪽이 더 화사해 보이면 쿨톤, 오른쪽이 더 화사해 보이면 웜톤이라고 한다. 지난 7월호에서 말했듯 필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화장에 관심이 참 많았다. 이 사진을 처음 본 것도 초등학생 때였다. 당시에는 퍼스널 컬러 이론이 화장품 업계와 완전히 결합하기 전이라서 이미지 개선의 개념이 더 강했고 (실제로 수업이나 강연에서 이미지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퍼스널 컬러 이론을 접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보다 상당히 마이너한 편이었다. 접할 수 있는 정보도 매우 적었고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유일무이했다. 이렇게 마이너했던 퍼스널 컬러 이론이 화장품 업계와 만나면서 퍼스널 컬러 이론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2012년 무렵 모 화장품 브랜드의 톤 마케팅이 그 시작이었다. 해당 브랜드는 간단한 웜톤, 쿨톤 자가진단법을 만들어 배포하면서 (우리 브랜드의 화장품을 이용해) 톤에 맞는 화장을 하라고 마케팅했다. 사실 위 사진도 그렇고, 해당 브랜드에서 배포한 자가진단법도 그렇고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왈가왈부 말이 많다. 혹자는 발암 짤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인 지금까지 이 자가진단법들이 통용되는 걸 보면 사람들은 확실히 퍼스널 컬러에 매혹된 듯하다. 딱히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만 사용하면 더 예뻐 보인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최초로 톤 마케팅을 시도했던 모 화장품 브랜드의 대성공 이후로 각종 화장품, 의류 브랜드에서 퍼스널 컬러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 해봐야 웜톤, 쿨톤 정도에 그쳤던 분류법이 라이트, , 뮤트 등등 더욱 자세히 나뉘어 대중화됐다. 여러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자신의 톤을 추측하거나 톤에 맞는 화장품을 추천해달라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그에 발맞춰 새로운 톤맞 제품이 시장에 출시된다. 처음엔 나도 퍼스널 컬러 이론을 순수하게 즐기고 있었다. 나에게 맞는 색의 화장품을 바르면 정말 혈색이 돌고 피부가 좋아 보였다. ‘톤맞제품을 찾아 톤에 맞춰 화장하는 게 재밌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뷰티업계 동향을 보면서, 최근 퍼스널 컬러 관련 여론을 보면서 엄청난 피로감을 느꼈다. 다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린 같은 흰 피부를 가진 나는 쿨톤?

    어떤 이론이든지 대중화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 또한 함께 대중화되기 마련이다. 퍼스널 컬러도 마찬가지다. 퍼스널 컬러 이론의 대중화로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가장 고통받는 부분이 바로 피부 색(밝기)과 퍼스널 컬러의 관계에 관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모 화장품 브랜드의 톤 자가진단표가 악몽의 시작이었다.

 

(출처: 이니스프리)

 

    해당 브랜드의 홍보 과정에서 희고 분홍빛이 도는 피부는 쿨톤, 까무잡잡하고 노란빛이 도는 피부는 웜톤이라는 낭설이 시작됐다. 후발 브랜드들도 별다른 연구 없이 선발 브랜드의 마케팅을 모방하기만 하다 보니 흰 피부=쿨톤이라는 낭설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버렸다. 문제는 한국이 흰 피부를 극도로 사랑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쿨톤병이라는 단어를 보면 알 수 있다. 퍼스널 컬러 이론이 대중화되고 흰 피부=쿨톤 공식이 퍼지면서 기다렸다는 듯 만들어진 신조어다. ‘쿨톤병은 쿨톤이 아닌데 쿨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에 걸렸다고 표현하는 단어다. 보통 여기서 쿨톤은 흰 피부를 뜻한다. 한 마디로 넌 쿨톤(=흰 피부)이 아닌데 왜 쿨톤(=흰 피부)인 척하냐는 거다. 인터넷에 쿨톤병을 검색해보면 본인의 피부가 하얗다고 말하거나, 본인의 피부보다 밝은 파운데이션으로 화장하는 사람들을 쿨톤병이라며 조롱하는 글들이 쏟아진다. 퍼스널 컬러 이론이 오도되면서 한국의 흰 피부 선망을 제대로 건드렸음을 보여준다. 사회가 강요한 미적 기준을 채우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에 걸렸다고 조롱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쿨톤(=흰 피부)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비추면서 무의식중에 쿨톤(=흰 피부)이 더 우월한 것이고 웜톤(=까무잡잡한 피부)은 열등한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 결국엔 진짜 쿨톤(=화장하지 않아도 원래 흰 피부)’을 치켜세우며 미의 기준을 세분화하고 공고히 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더욱 유해하다.

 

    쿨톤=흰 피부 공식이 유해한 또 다른 이유는 퍼스널 컬러 이론에 구체적인 특정인의 이미지를 끌어오는 데 큰 공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실용적인 면만 강조되어서 그렇지 퍼스널 컬러 이론은 일종의 색채학이다. ,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것도 단순히 색들을 이해하기 쉽게 분리할 목적으로 붙인 이름일 뿐이다. 하지만 쿨톤=흰 피부라는 낭설이 퍼지고 퍼스널 컬러 이론이 뷰티업계와 결합해 대중화되면서 톤에 특정 연예인들의 이미지가 부여됐다. “얘도 피부가 하야니까 쿨톤이야하면서 피부가 흰 온갖 연예인들을 다 소환해낸 것이다. 업계도 이를 놓치지 않는다. 우리는 연예인이 광고하는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해당 연예인의 이미지를 소유하고 소비한다. 요새는 퍼스널 컬러가 그 상품의 자리를 꿰찼다. 퍼스널 컬러에 특정 인물(연예인)의 이미지를 적용하여, 톤의 탈을 쓴 해당 인물의 이미지를 소비한다. 여름 쿨톤 아이린의 흰 피부와 청순한 이미지를 내 것으로 하고자 하는 이들은 아이린이 광고하는 상품에 돈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여성의 신체(흰 피부)를 토막 내고 대상화하고 미적 기준으로 내세워 결국 지출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기존 뷰티 산업의 전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왜 또 여자만

    누군가는 퍼스널 컬러를 알아감으로써 더 다양한 색들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퍼스널 컬러 진단으로 유명한 모 업체에서도 퍼스널 컬러를 통해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라고 설명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대로 퍼스널 컬러 이론이 이롭게 쓰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실상을 보면 퍼스널 컬러라는 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 같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자신의 피부색에 대해 한탄하며 난 이런 피부색을 가졌으니 이 톤이고 이 색깔 밖에 못 쓴다고, 톤에 맞지 않은 색을 바른 날은 너무 못생겼다고 속칭 톤신병자적 면모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연예인이 어울리지 않는 화장을 하고 나오면 이 연예인은 무슨 톤인데 무슨 색을 써서 톤그로다.”, “톤그로를 끌어서 얼굴이 어때 보인다.”고 말하는 댓글들이 자주 보이지 않나? 퍼스널 컬러 이론은 정말 새로운 얼평의 잣대로 자리 잡았다. 화장 자체가 코르셋 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이젠 퍼스널 컬러까지 고려해서 화장하라니. 게다가, ‘톤신병자적으로 퍼스널 컬러에 집착하고 톤맞색만 사용해 예뻐 보이도록 꾸미는 건 결국 또 여성뿐이다. 모든 뷰티 아이템이 그렇다. 왜 항상 여성만 꾸미고, 여성만 강요받는가? 내가 환멸을 느끼는 지점은 여기다.

 

+ 최근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