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퀴어 페미쇼(LUCKY QUEER FEMI SHOW)

 

최존

 

 

  나는 퀴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시스젠더[각주:1] 레즈비언 알로섹슈얼(Cisgender Lesbian Allosexual)[각주:2]이고, 굳이 성적 지향성을 숨기지 않는 공개적인 레즈비언(Openly Lesbian)’이다. 그리고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여성이자 성소수자라는 점에서 나는 꽤나 두드러진 소수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내가 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여러 가지 제약과 차별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퀴어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 나를 용감한 사람이라 여길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내가 페미니스트였던 것도 아니고, 두려움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처음 커밍아웃했을 때였다. 가장 친한 친구라 여겼던 옆 반 남자아이에게 내가 여성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그 애는 표정이 싹 굳은 채, ‘남자와 안 자봐서 그렇다며 나를 교정강간하려 했다. 그 이후, 그 애는 나를 철저히 무시했으며, 지나갈 때 침을 뱉기도 했다. 그렇게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

  운 좋게도,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은 나의 성적 지향성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엄마께 커밍아웃하기로 마음먹은 날이었다. “엄마, 만약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너무 힘들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 얘기를 꺼냈다. 엄마는 내가 임신한 줄 아시고 괜찮아. 네가 낳고 싶으면 낳아도 되지만, 감당할 수 없으면 병원가자.”라고 하셨다. 내가 엄마, 그게 아니라 나 여자를 좋아해.”라고 했을 때, 엄마는 왜 그런 걸로 울면서 진지하게 얘기하냐? 난 너 애 가진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라며 무색할 정도로 나의 커밍아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셨다. 엄마의 반응은 세상 모두가 내가 레즈비언인 걸 알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만큼 큰 용기를 주었다.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였다.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교양 수업에서 교수님이 제시하신 주제는 한국에서는 왜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지 않을까?’였다. 한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동성애자는 에이즈를 유발시키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께서 그건 학술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논거라고 지적하시자, 그는 동성애는 사회적 혐오를 조장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맙소사! 너무나도 확신에 찬 그의 대답, 부끄럼 한 점 없는 당당한 그의 태도에 나는 경악했다.

  “이 반에 분명 성소수자가 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세요? 부끄럽지 않으세요?”라고 내가 묻자, 그는 주춤하더니 , 그럼 본인이?”라고 되묻고서는 자리에 앉았다.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도 그였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조용히 살고자 했건만, 교내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호모포비아적이라면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후 나는 교내에 성소수자 인권동아리를 창설했고, 활발히 활동했다.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비교적 별 탈 없이 확립한 것에 비해, 페미니즘에 입문한 것은 조금 늦은 편이었다. 페미니즘에 대해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수적으로도 소수이기 때문에 더욱 뚜렷한 퀴어로서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담론은 매우 긴밀하고 중요하게 느껴졌지만, 여성은 인구의 절반인데다 여성이기에 받는 억압은 내가 억압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어려울 정도로 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퀴어로서의 삶과 여성으로서의 삶은 분리되어 있었다. 그랬던 내가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교 2학년 때 수강한 문학과 여성이라는 수업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억압을 다루는 문학작품을 공부하면서 젠더 위계구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여성이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받는 억압과 성 역할에 갇혀 스스로를 억압하는 내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 전까지 나는 철저히 젠더 코르셋으로 스스로를 조이고 있었다. 각각의 성에 걸맞은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화장을 하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고, 여자가 다리를 벌리고 앉거나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건 여성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타고난 성별과 성적 지향성 때문에 차별받아선 안 된다고 주장해왔던 내가, 특정 성별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에 적합한 행동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 이후부터 나는 퀴어 담론과 페미니즘 담론은 떼려야 뗄 수 없다고 생각해왔고, 스스로를 퀴어-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해왔다.

 

  여성이슈를 바라보는 데 있어 시스젠더 헤테로[각주:3]-알로섹슈얼(Cisgender Hetero-Allosexual) 페미니스트와 퀴어 페미니스트 간 차이가 존재하는지 묻는다면, 본질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퀴어로서 받는 차별과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은 다르지만,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여성 카테고리 안에서도 퀴어 여성, 장애인 여성으로서 또 다른 차별을 받는 이들이 존재하고, 기존의 페미니즘 담론에서 소외될 수 있는 이러한 영역까지 논의의 대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퀴어-페미니즘의 의의가 있다고 본다.

  몇몇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게이 커뮤니티에 여성혐오적 분위기가 만연한 건 분명하다. 그러나 여성혐오가 게이 커뮤니티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게이를 똥꼬충과 같은 단어로 비하한다든가, 아웃팅을 시도한다든가, 혹은 레즈비언을 무조건 성역화하는 등의 태도로 대응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애당초 게이 커뮤니티의 여성혐오는 그들이 게이여서가 아니라, ‘한국남자이기 때문이고,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는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너무나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갈 길이 매우 멀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 갑자기 일어난 변화가 아니다. 퀴어의 존재를 아예 인지하지 못하거나/않거나, 내 주변에는 없는 별난사람들 이야기로 치부해버리곤 했던 사람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목소리를 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가장 작은 단위인 커밍아웃을 통해 기존의 인식을 깨부수는 데 동참하고자 한다.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종로에서 게이라는 이유만으로 집단폭행을 당한 사건만 봐도, 퀴어로 산다는 건 생각보다 정말 많은 위협에 노출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신변에 위험을 느낀 적은 없지만, 나 역시 간담이 서늘했던 적은 있다.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가 없던 시절, 성소수자 인권 동아리를 만들고 회원을 모집하는 데 어쩔 수 없이 포스트잇에 내 전화번호를 써서 붙이고 다녔던 적이 있다. 그 때 익명의 문자가 한 통 날아왔는데, “, 진짜 더러워.”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전화번호를 어디에 뿌리고 다니더라도 위협을 느끼지 않는 것이 정상인데, 그저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모욕당하는 현실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렇지만 내가 존재한다는 걸 숨길 수는 없었다. 그러면 더더욱 내가 설 자리가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확실히 나는 운이 좋은 경우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 가족과 공통된 관심사를 가졌기 때문에, 혹시라도 내가 빻은말을 하는 경우에는 지적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모두가 나와 같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만 한 번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얘기해보길 추천한다. 일상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다양하다. 무엇보다 뜻을 함께할 수 있는 공동체와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더 많은 페미니즘 웹진, 퀴어 웹진이 발행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하고 싶은 건 많다.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도 되고 싶고, 등단도 하고 싶고, 페미니즘 담론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시도 쓰고 싶다. 무엇보다도 젠더 인식에 있어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일조하고자 한다. 때문에 나는 퀴어-페미니스트로서 계속 사람들에게 를 말할 것이다.

 

   

이 글은 사월님의 사연을 바탕으로 구성됐습니다. 이야기를 공유해주신 사월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 성별 정체성과 지정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2. 유성애자. 성욕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적행위에 대한 끌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성욕 유무와 상관없이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무성애자(Asexual)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출처: 에이로그 ALOG 네이버 블로그> [본문으로]
  3. 이성애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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