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나나
제3호: 레몽 장의 단편 「치마」

 

(출처 : 알라딘)

레몽 장(1925-2012)은 단편집 『벨라. B의 환상』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이자 교수입니다. 우리는 3호에 걸쳐 이 단편집을 살펴 볼 계획이었는데요. 오늘은 그 마지막 작품, 「치마」입니다.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던 즈음, 레몽 장은 엉뚱한 착상을 한다거나 신선한 자극을 안겨주는 작가로 평이 나있었습니다. 옮긴이의 말을 잠시 살펴볼까요? ‘우리 주변에서는 논리성을 저버린 일들이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 다만 우리들이 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뿐이다.’ 맞아요. 이 이야기들은 ‘논리성’을 저버렸어요. 그렇다고 그 ‘논리성’이라는 것이 논리적이라고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엉뚱하고 신선하다고도 하는데요, 글쎄요, 무엇이 엉뚱한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무슨 말인지 궁금하시지요? 지금 바로 살펴봅시다.

 

 

 

<치마>

 

뤼시엥은 모처럼 휴일이니 아내 조슬린에게 사창가를 따라 산책하기를 제안합니다. 조슬린은 내키지 않지만, 남편에게 순응하는 착한 아내이니, 무엇이든 바라는 대로 따라줍니다. 남자가 밖에서 큰 일 하는데, 이런 기분전환 거리야 늘 필요하지 않겠어요. 뤼시엥은 그 곳을 거닐면서 여러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들에게 얼빠진 시선을 보내지만, 조슬린은 그녀들을 쳐다보기가 심히 민망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이 거리를 거니는 여자를 멸시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문득, 남편이 멈춰 서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합이 맞았는지, 조슬린에게 '기다려'라는 말만 남기고 둘이 한 건물 윗층으로 올라가는데요. 조슬린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 그렇구나. 남편이 나를 아랫층에 세워두고 섹스를 하러 간 게 맞구나.' 조슬린은 숨이 막혔습니다. 뤼시엥은 종종 아무 짓이나 해대기도 하는데요. 그녀가 보기에 그것은 일종의 “광기”였습니다. 아내를 두고 이런 일을 벌이다니요. 그가 광기에 사로잡힌 “개자식”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이야! 조슬린은 후회합니다. 남편과 이런 곳에 같이 오기로 하다니, 이런 일을 당해도 싸지! 그녀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거리를 배회합니다. '나 같이 멍청한 여자가 또 있을까? 무슨 생각으로 남편과 여길 온 걸까?'

 

순간 어떤 남자가 조슬린의 팔목을 낚아챕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이끌고 가는데요. 조슬린은 지금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도 이해하지 못했고, 알았다 하더라도 반항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뤼시엥의 광기가 조슬린을 이토록 무력하게 만들어버린 걸까요? 결국 둘은 한 호텔로 들어갑니다. 그녀는 침대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람?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온 남자는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다른 여자들과 달라.’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조슬린은 당황스럽기만 하지만, 잠깐만요, 이 남자 구릿빛 피부에 떡 벌어진 어깨, 얼굴도 꽤나 멋집니다. 심지어 목소리마저 노래하는 듯 감미롭기만 한데요. 아... 그렇담 될 대로 되라지.

 

 

(출처 : 구글)

 

남자는 꽤 다정하고 부드럽게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옷을 천천히 벗겼습니다. 결국 조슬린의 치마는 호텔 바닥에 툭 던져져 “생면부지의 물건처럼 방바닥에 나뒹”굽니다. 그는 느리고 침착했지만, “두 눈에서는 놀랄 만한 불길”이 타올랐고, 몸집은 커다랬지만 얼굴은 어린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정신없이 애무를 하니 도무지 저항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온몸을 부풀리고 전율시키고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그의 입술이 부드러운 그녀의 목살을 덥석 물었다가, 겨드랑이의 치모를 헤쳐 놓았고, 유두를 힘껏 빨았다가는, 아랫배로 내려와서 그녀 성기의 촉촉한 꽃 위에 내려앉으며 천천히, 오래도록, 깊숙이 꽃잎들을 펼쳐 나갔다. 그녀는 정신이 없었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말없이 경련하며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조슬린은 이런 오르가즘이 가능할 줄은 꿈에도 몰랐답니다. 그것도 3번이나! 섹스가 정녕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요?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 멋진 남자가 뭘 좀 먹고 싶은지 묻네요. 다정하기도 해라. 평소 같았으면 차는 입에도 대지 않지만, 그녀는 어쩐 일인지 차를 마시겠다고 대답합니다. 조슬린은 기분이 매우 유쾌하고 좋았습니다. 행복한 바캉스를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지경이더래요. 더군다나 오늘 조슬린의 몸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말이지,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랍니다. “세상은 뒤집혀버렸다네!”

 

몇 분이 지나고 호텔의 여자 종업원이 차를 들고 올라옵니다. 그러자 이 남자, 발가벗은 몸으로 그 여자에게 문을 열어주는데요. 그런데 둘이 뭐라고 속닥대더니, 갑자기 종업원이 문을 잠급니다. 그리고 옷을 다 벗어재끼고는... 조슬린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쓰리썸. 조슬린의 온 몸 구석구석이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행복하고 편안했습니다.

 

조슬린은 치마를 주워 입고 그 곳을 떠납니다. 아, 이전의 그녀는 누구였을까요. 집으로 향하던 도중, 카페 안에 앉아있는 뤼시엥을 발견합니다. '그냥 가던 길이나 계속 갈까?' 그러나 그녀는 그의 옆에 가 앉습니다. 뤼시엥은 얼굴을 두 팔에 묻고는 미친듯이 괴로워합니다.

 

(출처 : 구글)

 

'내가 미친놈이었어. 뭐에 홀렸었나봐. 있잖아, 나 10분 후에 바로 내려왔어. 알겠지? 날 용서해줘. 내가 너무 추잡해서 견딜 수가 없어!'

 

가만히 미동도 않는 조슬린이 미심쩍었는지 뤼시엥이 묻습니다.

 

'당신 뭐 했어?'

 

'그냥 돌아다녔어.'

 

'어디를?'

 

뤼시엥은 조슬린이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줬으면 하고 바랐을겁니다. 하지만 그녀가 그의 광기에 전혀 화가 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니, 남자란 종종 못된 짓도 하기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현명하고 질투 많은 여자들이 닦달해주어야 하는것 아닌가요?

 

'아냐. 조슬린, 우리 이건 다 잊자. 앞으로 일요일은 집에서 보내자. 티비나 보자!'

 

조슬린은 계속 침묵을 지킵니다.

 

'당신 뭐 좀 마실래?'

 

'......'

 

'차 시킬까?'

 

초조했던지 뤼시엥은 아무 말이나 던집니다. 뤼시엥은 조슬린이 차를 절대 안 마신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이미 한 잔 마셨어.'

 

이상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오늘 있었던 일에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한없이 상쾌해 보이기만 하는데요. “짐짓 다정스런 몸짓으로 그녀의 무릎에 손을 얹은 뤼시엥은 그녀의 치마를 만지작거렸”습니다.

 

 


<세상은 뒤집혀버렸다네>

 

지금까지 우리는 3호에 걸쳐서 『벨라 B.의 환상』을 살펴보았습니다. 거미에게 자신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벨라, 지구상 유일하게 성별이 전복된 지점인 P. K. 35, 그리고 남편이 데려간 사창가에서 비로소 온 몸의 쾌락이 깨어난 조슬린. 엉뚱하고 논리적이지 않으며, 사악하기도, 기괴하기도 한 이야기입니다. 왜일까요? 거미가 벨라의 질 속으로 들어가거나, 남자가 여자에게 차와 돈은 물론 입고 있던 옷가지마저 빼앗기고, 뤼시엥은 아내 조슬린과 사창가에 가니까요? 이게 바로 지배적인 평이지만, 한 번 뒤집어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건 어떨까요? 당사자인 벨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타자인 정신분석의의 목소리만 받아들여, 벨라의 경험을 일종의 환상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비논리적이고 엉뚱하다는 것. 거미가 벨라의 몸을 지배하려고 한다는 것이 그들에겐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같았나봅니다. 기묘한 지점 P. K. 35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까요. 남자인 자신이 심지어 여자에게 피해를 당하고 심지어 옷마저 빼앗겼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워 자리를 박차고 도망간 폴. 그녀들은 총까지 들고 그에게 쏴댔지만, 어쨌거나 총알도 안 나오는 남근이 더 강하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지요. 엉뚱하게도 말이에요. 마지막으로 순종적이고 정숙하고, 또 불쌍하게도 오르가즘 한 번 느껴보지 못한 조슬린이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의 외도 덕에 쾌락에 눈을 뜬 이야기. 조슬린은 순순히 사창가까지 배웅해줬고, 화를 내지도 않았어요. 남자들은 원래 그렇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지요.

 

뤼시엥은 친절히 아내를 쾌락으로 안내해 줄 남자에게 배웅해준 겁니다. 그 남자는 또 다른 여자까지 끌어들여 말도 안 되는 행복감, 편안함까지 조슬린에게 선물한거죠. 대개 남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성욕이 한순간에 조슬린의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성의 포텐이 터진거죠.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두 남자의 도움을 받게 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요? 그녀의 몸이 활짝 깨어났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단편집이 엉뚱하고 비논리적이고 기괴하다는 것은 이 짧은 단편들이 현실에선 있음직하지 않은 상상적인, 환상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지요. 한편 레몽 장은 환상은 진실을 폭로하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그는 자신을 페미니스트 작가로 정체화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실로 환상과 에로티시즘을 다뤘던 것이에요. 하지만 그것도 뭐 대수인가요? 그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거미가 벨라를 좀먹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35km지점에선 젠더 고정관념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보았고, 마지막으로는 조슬린의 성적 쾌락과 욕망이 깨어나는 것을 목격했으니까요. 거미를 보지 못하고 사는 것 보다는, 치마를 벗어 던지고 뜨거운 구릿빛 차를 마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전 페미니스트 작가는 아니지만 페미니스트를 지지합니다. 7, 80년대 페미니스트 운동에도 공감을 느꼈어요. (...) 만약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면 여성들은 좋아하겠지만, 여성을 책 속에 그려낼 땐 수동적이면서 대상화된 모습을 발견하지요. 그런걸 그녀들이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 그녀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녀들은 시선 받고 싶어하고 찬양받고 싶어하고, 적당히 비위도 맞춰주길 바라는 동시에 그들의 도덕적, 사회적 가치 등으로 존중받길 바라죠. 바로 이 갈등이 제가 특히 관심 갖는 것입니다. 저는 관찰자이지만 그렇다고 마초적인 면이 있는 건 아니에요. 전 그녀들을 존중합니다.”

"레몽 장과의 인터뷰" 중 (Francofonia, no.28, p.12)

 

 

 

<참고문헌>

 

레몽 장, 이인철 옮김, 『오페라 택시』, 세계사, 1998.
Premier supplément à la Bibliographie critique de la nouvelle de langue française (1940-1990), René Godenne, Droz, 1992.
"Entretien avec Raymond Jean", Francofonia, no.28, pp.3-18.

위키페디아 프랑스, https://fr.wikipedia.org/wiki/Raymond_Jean.

 

 

 


 

나나

“사내아이를 낳아야 했어, 그래야 그럭저럭 살아 나가기 쉽고, 이 파리에서 수많은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야.” 내가 태어난 날 우리 엄마가 나를 보고 되뇌었어요.

+ 최근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