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 특집> 언냐들, 이거 나만 불편해?

 

 

  "대학가가 '여혐'의 불바다가 되었다."

  지난 3,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편집위원회가 여성혐오 발언을 제보 받아 대자보를 작성했다. 해당 자보에는 ○○, 너 여자애처럼 애교도 좀 부리고 다소곳하게 좀 해봐.”, “여자는 똑똑하면 남자한테 인기가 없어. (중략) 조금 멍청하고 백치미가 있어야 남자한테 사랑받지.” 등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들었던 교수들의 성차별성희롱 발언들이 쓰여 있었다.

 

 

 (고려대 여성주의 교지 석순대자보 ©데일리안)  

 

 

  그런가 하면 국민대, 고려대, 경희대, 서울대, 서강대, 연세대 등 서울의 유수한 대학들에서 연쇄적으로 불거진 대학교 단톡방(단체 카카오톡방) 성폭력 사건은 여학생들을 상대로 원색적인 성희롱 발언을 일삼는 남학생들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최근 온라인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경희대 대나무숲 사건의 경우, 피해자 신지윤씨는 가혹행위를 가한 선배의 성별을 물어봤다는 이유로 신상정보가 유출되고 각종 협박과 욕설에 시달리는 등 전교생으로부터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 확실히, 대학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개강시즌을 맞아, <월간여기>대학 내 여성문제를 주제로 제3차 여대회담을 진행하였다. 특히 남녀공학은 구성원 성비 특성상, 간접적인 성폭력이 발생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때문에 이번 회담은 남녀공학 출신, 그 중에서도 학내 여성 기구 운영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토론진을 구성하였다. 각 대학 내 여성혐오 분위기 실태와 학내 여성문제 해결을 위한 기구, 여학생을 대표하는 기구의 운영상황, 그리고 대학 내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취할 스탠스에 대해 저마다 할 말이 많은 대담자들이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답답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마무리를 맺었던 페르가즘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한다.

 

  거기, 페미니즘을 힐난하기 위해 오늘도 어슬렁거리는 당신! 긴장하시라. 그들이 몰려오고 있으니까. (쿵쾅쿵쾅)

 

 

제3차 여대회담 : 여대생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 대학 내 여성문제

회담 진행: 최존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카멜리아 : 차기 검찰총장을 꿈꾸며, 성균관대학교에서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다.

이연 : 서울교대를 졸업했고, 현재는 교직에 몸담고 있다.

옥지은 :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장이다.

GODDESS : 숙명여자대학교 LCB외식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다.

 

 

Q. 요새 대학 교/강사들의 성차별성희롱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교수나 강사의 성차별 발언을 직접 들어본 적 있는가?

 

카멜리아: 지난 학기 수강한 경제학 수업에서였다.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수업은 안하고 맨날 재테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노후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그러면서 항상 하는 말이 아빠는 돈을 버니까 괜찮고, 엄마는 돈을 벌지 않으니까 엄마의 노후준비는 꼼꼼한 딸들이 꼭 챙겨줘야 된다. 딸들이 꼼꼼하니까 그래야 된다.”였다. ‘여자들은 꼼꼼하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꼼꼼하지 않으면 여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본인의 부인을 언급했는데, ‘이대 출신에 박사 학위까지 받은 여자인데 운전도 못하고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렇지만 대단한 복부인, 재테크의 여왕이라면서 너희들도 재테크에 능숙한 지혜로운 여성이 되어라.”라고 했다. 대학 다니면서 들었던 가장 가시적이고 성차별적인 발언이었다.

GODDESS: 새내기 때였다. 대학교 수업은 어떨지 정말 궁금하고 설렜다. 기대감을 잔뜩 안고 수업을 들었는데, 교수님이 남성들은 이성적이고 여성들은 비논리적인 부분이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순간, ‘여기 여대 아닌가?’ 하고 의문이 들었다. 아무래도 여대면 이런 부분에 민감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옥지은: 작년에 학교에서 논란이 일었던 사건이 있었다. 학교 신문인 <대학주보>에 한 학생이 제보를 해서 알려지게 되었는데, 심리학 수업에서 교수님이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여자들은 집에서 애를 보지 않고 금테 안경 끼고 밖에 나가서 일하는 여자들이며, 그 순간부터 그 (여자의) 애들 인생은 망한 거다.”라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카멜리아: 최악이다.

옥지은: 그 외에도 엄마 없이 자란 애들은 어딜 가도 티가 난다’, ‘남성은 여성이 밖에 나가지 않게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아빠도 아이를 돌볼 수 있지만 엄마만큼은 못한다. 모성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서 일하는 것은 남성이 할 일이지, 여성의 영역이 아니다와 같은 이야기들을 자주 했다고 한다. 결국 이 교수님은 해임이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총여학생회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시간에 비슷한 발언들을 들은 적이 있는지 혹은 성희롱/성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간단하게 조사를 했다. 교수님이 예쁜 학생들만 좋아한다’, ‘외국인 교수님이 (여학생들한테) 사적으로 연락한다’, ‘여자는 군대를 가지 않아서 평생 겁만 가지고 살기 때문에 시집가서 구박받는 거다’, 특정 여학생한테 너 밤일 나가니?’라고 하는 등 다양한 대답들을 들을 수 있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2학년 때였는지 3학년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전공수업에서 교수님이 남편과 사별한 여성을 비하하는 과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기억난다.

최존: 총여학생회에서 조사하기 전까지는 교/강사들의 성차별적인 발언들이 공론화되지 않았나?

옥지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퍼졌을 수 있지만, 한 번도 공론화된 적은 없었다. 이렇게 (성차별 발언이) 수면 위로 올라온 건 작년 심리학 수업 사건이 처음이었다. 그 교수님은 문제의 발언뿐만 아니라 굉장히 권위적이고 수업 진행에 있어서 학생들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많이 보였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학생들의 불만이 쌓인 상태였고, 한 용기 있는 남학생이 제보를 해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최존: 제보자가 남학생이라고 말했다. 다른 부분에서도 문제가 있었지만 성차별 발언의 경우는 직접적인 피해자가 여학생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학생들은 왜 제보하지 못했을까? 경희대는 총여학생회가 있으니까 총여학생회에 알려서 가시화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옥지은: 나도 궁금하다. (웃음) 확실히 수강생들 사이에서 (당 사건이) 논란이었다고는 하더라. 그 교수님이 굉장히 오랫동안 당 수업을 진행해오셨고, 불만이 누적되다가 결국 터졌던 걸로 보인다. 총여학생회에 얘기를 안 해주신 건 나도 아쉽다고 생각한다.

최존: 교대는 여학생의 비율이 높다고 들었다. GODDESS의 경우처럼 여대임에도 성차별적 발언을 하는 교/강사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나 교대생이나 교사는 교사는 일등 신붓감’, ‘여자는 교사가 최고야등의 성차별 발언 대상으로 자주 오른다. 그러한 발언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가?

이연: (재학 당시) 강의 중에는 딱히 성차별 발언을 들은 기억은 없다. 내가 잘 까먹는 편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진행자가) 아까 말했듯이 교대생이라고 밝히면, ‘시집 잘 가겠다’, ‘신붓감 1위네와 같은 말을 자주 들었는데, 정말 싫었다. 나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교대에 들어간 건데 마치 결혼하기 위해 교대에 들어간 것처럼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러한 말들이 성차별적인 부분이 있다고는 생각해왔지만, 교사라는 직업이 안정적이고, 다른 직업에 비해 여가시간도 많은데다 임신과 출산 때문에 경력이 단절될 우려도 없으니까 들을 때마다 짜증나긴 하지만 (위의 발언들이) 사회적 맥락에서 동떨어진, 막연한 성차별 발언인 것 같지는 않다.

카멜리아: 그렇지만 그러한 말들의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그 말을 듣는 교대 다니는 여학생들이 당연히 결혼을 하고 애를 낳을 거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이 선택할 문제인데, 당연히 결혼하고, 당연히 임신하고 출산할 거라고 정해놓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성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이연: (앞서 말했다시피) 내가 다녔던 학교의 교수님들로부터 딱히 성차별 발언을 들은 적은 없다. 그렇지만 다른 학교의 경우를 들은 적이 있다. 서울의 한 유명 대학의 굉장히 저명한 교수가 남학생들만 모아놓고 자신이 해외 출장 나가서 사귀었던 여자 친구들 사진을 보여주면서 돈 많이 벌면 (나처럼) 여자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하더라. , 내게 이 얘기를 해준 학생 말에 따르면, 그의 동기들 사이에서 여자를 (물건처럼) 평가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능력은 있지만 상식이나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감성 면에서는 결여된 남자들이 그런 (성차별적인) 생각을 많이 갖는 것 같다.

카멜리아: 상식이나 감성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사회가 성차별적 분위기에 노출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왜 유명한 짤들 있지 않나. ‘재밌는 교훈이라면서 ‘10분만 더 공부하면 여자친구/마누라 얼굴이 바뀐다와 같은. 이런 식으로 성공한 남성에게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 보상처럼 따라올 것이다라고 사회가 주입하고 있다. 의대면 최고의 학벌 중 하나가 아닌가. 그 사람들이 상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상식이 그렇게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존: 우리 사회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개체가 아닌, 남자들의 성공을 위한 보상으로 여긴다는 것인가?

카멜리아: 그렇다. ‘성공하면 예쁜 여자, 매력적인 여자랑 잘 수 있어류의 생각들. (여성을) 무슨 게임 퀘스트에 대한 보상물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소위 성공한남성들의 변태 행위에 대한 얘기를 적지 않게 듣는 편인데, 아마 그들은 내가 이렇게 높은 위치까지 올랐으니 여자들을 아무리 함부로 대하고 미친X같이 굴어도 사회는 용인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다.

GODDESS: 맞다. 범죄를 일으킨 게 분명해도 봐주지 않나? 의대생이 몰카찍으면 의사의 꿈이 좌절돼선 안 되니까 봐주자면서.

카멜리아: 판례를 조사하는 게 과제여서 보던 중 정말 어이없는 경우를 봤다. 강간미수 사건이었는데, 가해자가 모 대학 법대생이었다. 판결문에 나와 있는 내용 중 눈에 띄는 것을 그대로 얘기해보자면, ‘법대생이므로 그 남자가 법을 오인했을 리 없다. , 법을 잘 배워나갈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일(강간미수)을 벌일 일이 없다.’가 있었다. 결국 가해자가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는지 무죄판결을 받았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끝난 사건들이 꽤 있다.

GODDESS: (카멜리아가) 여성이 액세서리로 인식되는 게 어렸을 때부터 사회로부터 그러한 생각을 주입받고 있다고 하시지 않았나. 정말 공감하는 게, 요즘 대중가요 가사들을 보면 내가 성공해서 버스에 여자들 가득 태워서 돌아오겠다’, ‘내가 너무 멋져서 여자들이 다리를 벌린다이런 식이다. 저런 가사 싫다고 하면 예민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힙합이 원래 이런 건데, 너무 예민하신 것 아닌가요?”

카멜리아: 너 메갈하니? (웃음)

GODDESS: 이런 게 정말 사소해 보이지만, 사람들 인식을 형성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행사한다. 앞으로 이런 콘텐츠들을 많이 지적하고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서울대, 연세대 단톡방 성희롱 발언 내용 ©동아닷컴, 한국일보)

 

 

Q. 성차별 발언은 강단에서뿐만 아니라 같은 학우끼리도 행해지고 있다. 최근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일련의 대학 단톡방 성폭력 사건이나 에브리타임, 각종 대학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여성혐오 분위기가 만연한 것이 그 예다. 대학 인터넷 커뮤니티나 동기 단톡방에서 성차별 발언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GODDESS: 숙대 커뮤니티에서 있던 일이다. ‘남자친구가 ROTC 후보생인데, 여대 ROTC 후보생들은 힘든 일도 잘 안하려 하고, 남자들보다 성취 기준도 낮은데 여대라고 점수를 잘 받는다. 그래서 어이가 없다.’라는 글을 누가 작성했다. 반박댓글을 달았는데, ‘근데 여대가 ROTC 1위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라는 작성자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게 이상한 일인가? 그 외에도 회사에서 성희롱이 종종 일어나고 있지만, 하나하나 따지려 들지 말고 어느 정도 참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글도 봤다. 그런 거 하나하나 다 문제 삼으니까 여자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활동을 못하고, ‘이러니까 여자들은 안 돼라는 말이나 듣는 거 아니냐면서, 사회에 어느 정도 맞춰줘야 되는 거 아니냐는 거다. 정말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카멜리아: GODDESS가 말한 것과 비슷한 사례를 본 적이 있다. 한 여학우가 학교 대나무숲에 여잔데 ROTC가 하고 싶다. 군필인 남자친구에게도 말했는데, 그가 군대는 여자들이 갈 곳이 못 된다고 힘들 거라면서 하지 말라더라. 근데 정말 ROTC가 되고 싶다. 남성분들, 여자친구가 군인이면 싫나요?’라는 내용의 질문을 올린 적이 있었다. 대나무숲 페이지 관리자가 달은 댓글이 아주 가관이었는데, ‘여자 ROTC 후보생들 많이 아는데, 걔네들은 어떠한 사명감으로 ROTC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스펙 한 줄 더 추가하고, 여자 ROTC 타이틀 하나 따서 그 뽕에 취하려는 애들이다.’라고 댓글을 남겼다. 그러면서 만약 사명감이 있었다면 사관학교를 갔어야죠. 왜 성대에 왔나요?’라고 추가로 또 복장 터지는 소리를 하더라. 교내 ROTC, 특히 ROTC 여학우분들의 항의가 빗발쳤는데, 어떠한 사과문도 없이, 그냥 논란이 되어서 댓글을 지웠다며 문제 댓글만 쏙 지우더라. 그 뿐만이 아니다. 대나무숲 제보 중에는 여성혐오적인 것도 많은데, 그러한 내용에 대한 필터링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누군가 그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 그 사람들을 차단하고 글을 삭제해버리기 일쑤다. ‘남녀 분란글은 무조건 필터링을 하겠다는 원칙을 7월부터 세워놓고선 페미니즘 내용의 제보는 다 거르고 여성혐오적인 제보는 올린다. 감수성이 빻아서그런 건지, 아니면 일부러 싸워보자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문제제기 하러 달려가서 뭐라고 하면 바로 (해당 내용을) 삭제하긴 하지만, 그에 대해서 아무런 사과나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GODDESS: 살면서 정말 많은 여성혐오 글을 봤는데, 그럴 때는 절대 남녀 분란 조장글이라고 욕을 먹지 않았다. ‘요즘 여자들이 정말 문제입니다. 요즘 여자들은 어쩌고저쩌고라고 해도 절대 욕먹지 않고, 오히려 맞아요. 솔직히 다 맞는 말들이런 식의 동조하는 댓글들이 달리더라. 여자들조차 맞아. 요즘 여자들 개념 없는 게 사실이지.’ 이러고.

카멜리아: ‘나도 여자지만~.’ (웃음)

GODDESS: 그러다가 한번쯤 남자들에 대해 지적하는 글이 나오면 남녀 분란 조장글이라는 둥, 메갈이 쓴 게 틀림없다는 둥, 당장 내려야 한다는 둥.

카멜리아: 동아리 회식자리에서도 문제가 있다. 0으로 시작하는 학번의 선배들이 1학년 여자애들을 앉혀놓고 술을 엄청나게 먹인다. 회식하는 날이면 그 여자애들 휴대폰이 터질 때까지 술 같이 마셔달라고 전화를 하고, 자신들에게 술 따르라고 시킨다더라. 거의 접대부 취급을 받는 것 같다는 친구도 있었다. 여학생을 술자리의 꽃으로 취급한다고 들었다.

옥지은: 어떤 동아리 같은 경우는 요즘 계속 단톡방 사건이 터지니까 남자애들이 , 이 단톡방 보여주면 안 된다면서 단톡방을 안 보여준다고 한다. 내게 이 얘기를 해준 친구는 아마 그 단톡방에도 그런 (성폭력적인)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더라.

최존: 대학교 단톡방 내 성폭력 발언 사건들이 최근 뜨거운 이슈이지 않았나. 남학생들이 , 더 이상 이러면 안 되겠다. 이거 범죄구나.’라고 반성하며 자정하는 것인지, ‘우리끼리 이야기한 것뿐인데, 들키지만 않으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건지 궁금해진다.

GODDESS: 그들은 아예 (성폭언이)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네들끼리 음담패설하는 거고, 여자들도 남자들 없을 때 야한 얘기하지 않느냐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 이걸 범죄라고 하지? 다른 남자들도 다 하는 건데?’, ‘걔네가 재수 없게 들킨 거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나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분위기 상) 그렇게 말해야하는 것 같으니까 잘못된 거지만, 남자들 사이에선 어쩔 수 없다. 같이 동조하지 않으면 씹선비라고 욕먹게 되고. 그냥 멋있어 보이려고 허세 부리는 거다. (성폭언은) 모든 애들이 하는 거라서 이걸 막거나 고칠 수 없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겨야 된다.’라고 얘기하더라. 이걸 정말 진지하게 문제라고 생각하고 해선 안 되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여자들 중에서도 이게 왜? 다른 사람들도 다 하지 않아?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카멜리아: 굉장히 충격 받은 적이 있다. 얼마 전 서강대 사건이 터졌을 때였다. 평소에 젠더 감수성이 있다고 생각한 남자 과동기와 얘기를 했는데, 내가 걔네 완전 쓰레기들이야. 우리 과 남자 단톡도 그러고 남을 거 같아. 우리 과 남톡도 털어서 박제해갖고 창피한 줄 알게 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가 이게 뭐가 문제야. 걔네들이 범죄의 목적을 갖고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재미로 얘기하는 건데라고 하더라. 특정 여성을 저격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굉장히 성차별적이고 여자를 성적 객체화하는 발언 자체가 문제인데.

GODDESS: 국민대 사건이 터졌을 때도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서 카톡방 성폭언도 그렇고, 더 나아가서 몰래카메라도 당사자만 모르면 범죄가 아니라고, 성희롱의 영어 정의를 가져와서 얘기하더라.

 

 

(이미지 출처 = ©Berry College)

 

Q. 학교에서 여성학 수업 혹은 젠더 관련 수업이 개설되어 있는가?

 

GODDESS: (여성학 수업이) 개설은 되어 있는데, 굉장히 부족하다. 매 학기마다 열리는 것도 아니고, 정말 안타깝다. 여성학과 관련된 수업도 적은 편이고. 이화여대 다니는 친구 얘기를 들어보면 여성학 수업이 굉장히 많더라. ‘여성과 ~’, ‘여성의 ~’ 이런 식으로. 필수로 들어야 되는 수업도 있고.

카멜리아: 내 친구도 이대를 다니는데, 교양 과목 마지막 단원은 꼭 여성학 얘기가 나온다고 하더라. 친구가 하는 말이 이대에서 교양 들으면 기---여성학이라고. 그런데 그렇게 가르쳐도 못 알아먹는 사람들도 참 많은 것 같다. 여성학 수업만 해서 신물 난다고. 여성학 수업은 해도 해도 모자라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교양은 기---페미니즘이라 힘들고 재미없다’, ‘맨날 똑같은 말만 한다는 식의 반응들도 더러 있다고 하더라.

최존: (페미니즘이) 여성과 굉장히 밀접한 학문인데도 재미없고 불필요하게 느끼는 것은 본인이 페미니즘 이슈와 무관하다고 생각해서일까?

카멜리아: 그렇기도 하지만, 페미니즘을 말하는 사람은 늘 예민하게 취급받고, 어떤 자리에서는 불청객처럼 여겨지지 않는가. 그런 것의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여성도 여성혐오를 하듯이, 페미니즘에 대해 반감을 갖는 이유는 구조적 문제를 파악하지 못해서이거나, 남성우월적인 사상에 너무 젖어있기 때문에, 혹은 문제라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어쩌라고?’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 자체가 젠더 감수성이 매우 낮으니까.

GODDESS: 성차별 사건에 대해 얘기하면 그건 너무 극단적인 거 아냐?’, ‘현실에 없는 얘기 아니야?’라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성차별을 당해도 당하는 줄 모른다. 그게 성차별인지를 모르니까. , 요즘에는 페미니즘을 말하는 여자들을 남자한테 사랑 못 받는 못생기고 뚱뚱하고 현실에 불만이 많은 메퇘지라고 프레이밍하지 않는가. 우리나라에서 외모지상주의가 매우 팽배한 것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을 말하는 사람을 저렇게 몰아버리면, 그런 이미지를 갖기 싫으니까 피하는 것도 있을 거다. 아까 말한 이대 친구가 여성학 수업을 듣다 보니 관심이 생겨서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었는데, 남들이 보면 자신을 뭐라고 생각할지 몰라서 그 책을 숨겼다고 하더라.

최존: 성균관대나 경희대, 서울교대는 여성과 관련한 수업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연: 없다.

카멜리아: 필수로 듣는 교양 중에는 없는 것 같다. 전공 수업 중에는 두 가지 정도 있는 것 같다. 여성학 연계전공이 있긴 하지만, 한 학기에 한 두 개정도밖에 열리지 않는다고 들었다. 문제라고 생각한다. 젠더의식과 관련한 수업을 필수 교양으로 지정해야 대학생들이라도 문제의식을 가질 텐데, 안타깝다.

옥지은: 10학번이라 요새는 어떤지 잘은 모르지만,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작년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여성학 수업이 그나마 한 학기에 한 개 정도 선택교양으로 열린다. 그거 말고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사회학과에 여성학 관련 수업이 있다고 해서 들으러 갔다가 오티를 듣고선 젠더 의식이 전혀 없다고 판단하여 수강 신청을 취소했던 기억이 있다.

GODDESS: 여성학 수업들이 있다고 해도 그걸 가르치시는 분들이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숙대도 그런 강사가 있다고 들었다.

최존: /강사들이 젠더 감수성이 없다는 것인가.

카멜리아: 여성이나 젠더 관련 수업들이 인기가 없기 때문에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다른 비인기 과목들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인기가 없으면 듣는 애들도 별로 없고, 담당하는 교수님도 없고. 강사만 맨날 바뀌는데, 그러다보니 수업의 질이 좋아지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더 안 듣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게 아닐까.

GODDESS: 숙대는 수강 신청할 때 세 분반이 꽉 찰 정도로 여성학 수업에 대한 수요가 많은데 왜 더 많이 열어주지 않는지 궁금하다.

 

 

Q. 학교에 성폭력/성평등 상담소가 설치되어 있는가? 존재한다면 학생들의 이용 빈도는 어떠한지 궁금하다. , 위와 같은 대학 내 기구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성평등 교육을 실시하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러한 교육 프로그램이 유효성 면에서 어떤 지도 궁금하다.

 

카멜리아: 학교에 이름부터 빻은 양성평등센터가 있다. 그런 기구가 있다는 걸 2015년에서야 알았다. 한 남자 ROTC 후보생이 여학생에게 성폭력을 가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나도 (센터의 존재를) 몰랐고, (다른 학생들도) 관심이 있지 않은 이상 거의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이용 빈도도 매우 낮은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센터 구성을 보면 여성학적 교양이나 지식을 갖고 있는 상담사 분들은 1-2명밖에 없고 나머지 구성원은 양성평등센터로 발령받은 행정직원들이 대부분이다. 센터장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센터를 홍보할 생각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지도 알 수 없다. 이런 구조면 (센터가) 제대로 운영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최존: ROTC 후보생의 성폭력 사건 당시 양성평등센터의 입장은 어땠나?

카멜리아: 양성평등센터는 학생이 신고를 하면 징계위원회에 회부를 해주는 기구다. 그 사건이 공론화된 계기는 피해 학생이 문과대 소속 여학생위원회에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검토한 결과, 사건의 수위가 학교에서 징계를 내릴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양성평등센터로 가자는 결정이 났다. 그곳은 그저 학교의 행정기관일 뿐이다. 어떤 입장을 취하지는 않는다. 규정대로 징계를 내릴 뿐이다. 그런데 그 징계도 (피해자나 피해자를 도운 사람들) 마음에 차지 않았던 것 같다.

최존: 그럼 성차별이나 성폭력과 관련한 교칙이 제정되어 있다는 건가?

카멜리아: 그렇다. 양성평등 교칙이 있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에 대한 정의도 있고, 누가 징계를 내릴 수 있다든지 세칙들이 존재한다. 아무도 모르지만.

최존: 그러한 교칙들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잘 안 알려준다는 건가?

카멜리아: 그렇다. 새터(새내기배움터) , 술을 마시기 때문에 성폭력이나 성희롱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안전교육 시, 성교육도 하라고 총학생회에서 지침이 내려온다. 입학했을 때 내가 소속된 단과대에서는 술 많이 마실 수 있으니 조심해야 된다이 정도에서 (성교육이) 그쳤다. 다른 단과대에서도 다들 마찬가지라고 들었다. 유일하게 문과대에만 여성주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여성주체를 각 단과마다 뽑아서 문과대소속 여학생위원회에서 6주 동안 반()성폭력 세미나도 하고, 새터에서 여성주체가 된 사람들이 나와서 교육도 진행한다. 그런데 그 여성주체도 전학대회(전체학생대표자회의) 때마다 없애야 되는 거 아니냐고 말이 나온다.

최존: 어떤 이유로 철폐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가?

카멜리아: 하는 것도 없고 이름만 있는데 필요하냐는 식이다. ‘문과대에서 그런 문제가 얼마나 발생한다고? 필요 없잖아?’ 내가 소속된 단과대 세칙이 수정됐는데,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성범죄) 관련 세칙이 전혀 나와 있지 않았다. 다른 단과대 세칙도 마찬가지다. 90년대에 만들어져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여학생위원회에 신고가 들어와 학교 측에 (가해자에게) 징계를 내려달라고 요청할 때도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떻게 조치를 취해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난감했다.

이연: 학교에 학생들 고민을 들어주는 그냥 상담소는 있었지만, 성평등 상담소는 없었다.

옥지은: 경희대는 원래 성폭력 상담실이 있었는데 성평등 상담실로 이름을 바꿨다. 상담실은 실장님과 상담사 한 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담실은 여학생과라는 행정부서도 겸하고 있다. 매년 여성가족부가 성폭력 예방 교육 지침을 내리고 결과를 보고하게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각 대학은 징계를 받게 된다. 이전 상담실장님 같은 경우는 되게 의욕적인 분이어서 각 대학 새터를 다 돌면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진행하셨다. 근데 내용 면에서 문제가 많았다. 결국 2014년에 정경대를 시작으로 교육받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가 불거졌다.

최존: 문제 제기된 내용은 무엇인가?

옥지은: 실장님이 연세가 있는 분이었는데, 초반에는 이러한 사례는 성폭력이다, 관련 법률 조항으로는 이런 게 있다는 식으로 진행하다가, 사례를 들면서 여학생들에게 남자 선배들과 술 마시지 마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게 무슨 성폭력 예방 교육이냐는 말이 많았다. 이 분의 정년퇴임 이후 새로운 실장님이 부임하셨는데, 새터를 다 돌기가 쉽지 않아 서울캠퍼스와 국제캠퍼스 학생들 모두 모이는 입학식 때 강연을 했다. 굉장히 형식적이었다. 만 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집중을 하겠는가? 학생들 중 몇 퍼센트가 교육을 받았는지 서류로 보고를 해야 하는데, 서류상으로 실적은 나오겠지만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최존: 형식적인 보고를 위해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인가?

옥지은: 운영진분들이 의욕이 없는 건 아니다. 학교에서는 계속 예산을 줄이고 있고, 적은 예산과 인력으로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곳이 가장 심하게 예산이 축소된 기구 중 한 곳이다. 예산팀에서 상담실을 학교에서 가장 필요 없는 곳이라 생각하는 거 같다. 2012년까지만 해도 남녀학생들 모아서 MT를 가는 프로그램이라든가, 여성학 관련해서 발표대회를 열고 시상도 하는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는데 지원 예산이 축소되니 사업 규모도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온라인을 통해 교육을 진행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상담실은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용이 썩 좋은 편이 아니어서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최존: 상담소 이용 빈도는 어떠한가?

옥지은: 이용 빈도가 높지는 않은 것 같다. 주변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여학생 남학생 모두 존재 여부도 잘 모른다.

GODDESS: 주변에서 이용하는 사람을 보긴 했지만, 나는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다. 상담사들이 어떤 기준으로 뽑히는 건지도 모르고, 앞으로도 이용할 것 같지는 않다.

최존: 성평등 상담소가 설치되어 있어도 형식적인 면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대학 내 이러한 기구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Students in the Powell Reading Room at Sweet Briar College, circa 1950 ©Rebecca Thompson/Flikr)

 

   

Q. 총여학생회 및 여학생위원회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이러한 기구 이외에도 학내에 또 다른 여성 단위들이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옥지은: 총여학생회가 존재한다. 성폭력 신고가 들어올 경우 성폭력 대책위원회가 열리는데, 참가 위원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그 중 당연직은 회의에 필수로 참석해야 하는 위원인데, 그 중 한 명이 총여학생회장이다. 총여학생회가 기본적으로 하는 사업들은 대부분 오늘 했던 이야기들과 관련된 것이다.

최존: 여학생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기구로서 말이다. 그렇다면 총여학생회 말고 다른 여성 단위는 없는가?

옥지은: 원래 단과대나 학과마다 여학생회가 있었는데, 2000년대 중반에 다 사라졌다고 들었다. 동아리나 학회, 소모임 등은 존재하고 있는 상태다.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거의 없었는데, 메갈리아 이후 담론이 활성화되다보니 많이 생겼다.

GODDESS: 숙명여대에는 중앙 동아리로 여성학 동아리가 있다.

이연: 서울교대에는 젠더나 여성학과 관련된 모임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카멜리아: 성균관대는 2009년까지는 총여학생회가 존재했었다. 2012년에 총여학생회를 세울 준비를 했으나, 투표율 미달로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했다고 들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한 번 총여학생회를 세워보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선거본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엎어졌다. 단과 대학이나 각 과에서 소모임처럼 여성 단위가 있다고 들었지만, 현재 제일 크게 남아있는 기구가 문과대 소속 여학생위원회다. 여학생위원회가 학내 여성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현재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열 명도 되지 않는다. 있는 줄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더라. 여학생위원회에서는 성폭력 사건을 접수받으면 주로 세 가지의 루트로 활동을 한다. 공동체 내의 해결이라는 대자보 붙이기, 징계위원회 또는 양성평등센터 소환하기, 그리고 형사고소 준비하기. 이 세 가지 방법이 동시에 진행될 수도 있고 개별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그 외에는 방학마다 여성학 세미나를 진행하고, 일 년에 한 번씩 페미니즘 문화제를 주최한다. 페미니즘 문화제에서는 영화제나 강연회, 토크 타임, 게임 등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학내에서 여성주의모임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린다.

최존: 문화제나 세미나에 학생들이 어느 정도 참여하는가?

카멜리아: 2014년까지는 기존에 활동하던 인원들만 참여했기 때문에 조촐했다. 그러다가 2015년에 메갈리아가 나오면서 강연회가 정말 대박이 났다. 올해 행사는 지금 준비 단계인데, 총 세 가지 정도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GODDESS: 숙대도 한 때는 여성학 동아리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작년부터 회원 수가 급증하고 활발해졌다고 들었다.

 

  

Q. 공학 내 총여학생회가 많이들 사라졌고, 일부는 총학 산하기구로 편입되거나 다른 기구로 대체되는 등 그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고 들었다. 아직까지도 여학생은 각종 성범죄에 쉽게 노출되어 있고, 앞의 사례들을 봤을 때 젠더 위계에서 명백히 피기득권층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학생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기구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는가?

 

옥지은: 왜냐하면 남학생 여학생 가릴 것 없이 모두 여성이 피기득권층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멜리아: 특히 대학 안이라서 더 그런 것 같다. ‘우리가 오히려 역차별 당해. 요새 여자들 살기 편하잖아. 군대도 안 가고, 밥도 잘 얻어먹고 다니고.’라는 남자들의 말을 보면, 살기 편안한 여자들20대의 젊고 예쁜 여자들이다. 근데 그 여자들이 모여 있는 대표적인 집단이 대학이지 않은가. 그래서 가시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GODDESS: ‘여자들은 좋겠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자들이 밥 사줘, 얼굴 반반하면 취직 걱정할 필요 없이 돈 많은 남자 잡아서 시집가면 되고. 요즘은 여자들이 살기 더 좋은 세상이야.’라는 사람들이 있다. 여자의 미모와 젊음을 여자만의 권력 내지는 특권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걸 권력이라고 바라볼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걸 권력이라고 치면 그 권력을 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남자들이다. 남자들이 쥐어주지 않으면 그러한 권력조차 가질 수 없는데 어떻게 여성들이 권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가?

최존: 총여학생회가 있는 경희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데, 총여학생회 존폐위기도 있었던 걸로 안다. 총여학생회에 대한 여학생들의 일반적인 여론이나 반응이 궁금하다.

옥지은: 2015년 전, 그러니까 메갈리아 전의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2012년부터 총여학생회를 시작했고, 2013년에는 선본을 못 세워서 공백이 있었다. 2014년에 다시 총여학생회를 세우고 그 해를 마무리하며 여학생들 1000명을 대상으로 총여학생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설문조사를 했었다. 결과가 재미있었다. 많은 여학생들이 자기를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동시에 깊은 내면에서는 언제든 자신이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게 보였다. 남자가 역차별 받는 시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았다. 한편으로는 총여학생회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장 논란이 된 지점은 총여학생회는 여학생을 위한 기구인데 왜 남녀 모두에게서 회비를 받는가이었다. 그 말의 기저에는 여성들이 더 이상 차별받지 않는데 총여학생회가 도대체 왜 필요하냐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2014년도까지 여학생들도 공유하고 있었다.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2015년에 메갈리아가 등장하면서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다. 확실히 대나무숲 페이지를 보면 이전에는 남녀갈등관련 글이 올라오면 여학우들은 댓글을 거의 달지 않았다. 근데 메갈리아 이후부터는 여학우분들도 댓글을 달기 시작하더라.

GODDESS: 사실 그 전까지의 글은 남녀 갈등글이라기보단 그냥 여혐 글아닌가?

카멜리아: 된장녀라고, 김치녀라고 여자 욕하고. 없는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프레임 만들어서 여자들은 왜 그래?’ 이런 말이나 하고.

옥지은: 조리돌림이나 마녀사냥 등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때문에 내가 무슨 말을 했을 때, 어떤 식으로 댓글들이 달릴지 아니까, 과거에는 여자들이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지나갔다면 이제는 (반박)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기더라. 메갈이 생겨남으로써 숨어 있던 여성 문제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 같다. 그 동안은 우린 차별 받지 않아라는 목소리가 우세했는데, 이제는 우린 차별 받는 게 확실하다라는 목소리가 생겼다. 그전까지는 총여학생회가 왜 있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여성으로 묶이는 것 자체가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총여학생회가 정말 필요하다고 느꼈다는 분들도 더러 계신 걸 보면 총여학생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상당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최존: 대학 내 여성 단체를 운영하는 데 있어 어떠한 어려움이 겪는가?

카멜리아: 여학생위원회에 참여하게 된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일단 발언의 수위조절이 굉장히 어렵다. 왜냐면 우리가 어떤 주장을 하고 싶어도 그걸 그대로 내보일 수가 없다. 학내에서의 고립이라는 문제를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러다보니 내부적으로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그게 제일 무서운 것 같다. (여학생위원회인) 우리조차도 우리의 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

최존: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여러 곳에서 위협이 들어오기 때문인 건가.

카멜리아: 그렇지. 한마디로 여학생위원회의 이름을 걸고 누군가가 허락하는 페미니즘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언젠가 여학생위원회에서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한 글에 한 남성이 빻은 소리를 한 적이 있다. 긴급회의 후, 굉장히 온건하게 당신의 말을 이렇고 저런 이유로 빻았어요. 아시겠죠? 앞으로 이런 말을 하지 말아주세요.’라는 식으로 댓글을 달았다. 그랬더니 다른 메갈년들이랑 다르게 여러분들은 정말 친절하고 논리적으로 말씀해주시네요. 진정한 페미니스트이십니다.’ 이렇게 말하더라. (웃음)

GODDESS: 그 사람들은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 온건하게 지적해줘도 항상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개념녀시네요. 이런 여자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따위로 글을 맺는다.

카멜리아: 그 댓글에 여학생위원회 일원들 모두가 기분이 나빴다. 우리의 말은 기존의 메갈년들과 주장이 다른 것도 아니고 논조만 달랐을 뿐인데. 우리의 말을 경청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밖에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그렇지 않으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하고 신상이 털리는 걸 감수해야 된다는 게 너무나 어렵다. 얼마나 억울해.

GODDESS: 남자들을 일반화하지 않고, 남자가 군대 다녀온다는 걸 고마워하는 개념녀임을 증명하지 않으면 메갈년이 되는 거다.

옥지은: 자기 검열 부분에서 정말 많이 공감이 간다.

카멜리아: 친절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게 정말 큰 굴레인 것 같다. 학내 기구의 한계랄까.

옥지은: 정치 조직이기 때문에 이미지 관리도 신경 써야 한다. 총여학생회라는 이유만으로 스토킹당한 적도 있다. 나보다도 새내기 내지 2학년 밖에 안 된 집행부 친구들이 위협을 받는 게 너무나도 싫다.

 

 

  (이미지출처 = ©ElleAfrique)

 

 

Q. 대학 내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학내 여성들은 어떤 위치를 점해야 할까?

 

옥지은: 총여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느낀 건, 우리가 방어적으로, 그리고 수박 겉핥기식의 우회적인 활동을 할수록 여학생들은 더더욱 총여학생회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논쟁이 될 만한 주제의 핵심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훨씬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더라.

GODDESS: 숙대 여성학 동아리가 보지 좀 보지부스를 진행했던 것처럼.

카멜리아: 작년 페미니즘 문화제의 주제가 여성혐오였다. 여성혐오 주제는 가장 첨예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메갈리아도 터졌고, 어차피 우리도 곧 망할 것 같으니까 불타오르자는 심정으로 (여성혐오를 주제로 선정)했는데, 재생산도 많이 되고 자리가 모자라니까 사람들이 막 서서 강연 듣고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신입생도 많이 들어왔다고 하더라. PC(Political Correctness) 중요하고, 학내에서 고립 안 되는 거 중요하다. 그런데 하고 싶은 말 다한다고 해서 꼭 고립이 될까 싶기도 한다. 지금 내가 회담에서 하는 말들, 내 실명 밝히면서도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옥지은: PC함과 un-PC함 사이에서 줄타기를 계속 해야 한다. 주제는 첨예하되, 그걸 다루는 방식은 PC하게.

이연: (지은이) 정제해서 말하는 것과 대놓고 말하는 것 사이의 줄타기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 공감한다. 나 같은 경우도 페미니즘을 잘 모르는 상태이지만, 갈등하는 것 자체가 사람들한테 페미니즘이 공격적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하는 것 같다. 여성학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지 않은가. 행사 등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페미니즘을 더 많이 설파하다보면 줄타기를 하는 것도 갈수록 줄어들 것 같다.

GODDESS: 페미니즘이 많이 확산이 되어야 할 텐데, 고민인 건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도록 친절해져야 하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고, 해야 할 이야기를 선별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카멜리아: 근데 이제 그 나만 불편해?’라는 말조차도 못 쓰게 한다.

GODDESS: 그렇다고 해서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거기에서 거부감이 느껴진다고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최존: 페미니즘의 스펙트럼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하나의 방향으로만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GODDESS: 맞다. 사실 페미니즘은 굉장히 그 갈래가 다양하다. 그런데도 <윤리와 사상>같은 과목에서는 페미니즘이 마치 하나의 사상인 것처럼 가르친다. ‘올바른 페미니즘따위의 빻은 소리가 나오는 게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카멜리아: 페미니즘을 올바르다/올바르지 않다고 판단하는 기준도 너무나 자의적인 게, 올바르다고 하는 페미니즘, 지금까지 끊임없이 페미니스트들이 말해오던 것이 아닌가. 좋게 얘기했을 땐 듣지도 않더니. 이제는 한남충’, ‘6.9’, ‘재기해이러니까 님들이 말하는 건 올바른 페미니즘이 아닙니다.’라며 올바른 페미니즘을 찬양하는 게 너무나 웃기다. 나는 그래서 페미니즘이 재밌어져야 하는 것 같다.

GODDESS: ‘김치녀라는 단어가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퍼진 이유는 재밌기 때문이다. 남초 커뮤니티를 좀 오래 했었는데, 걔네가 (여혐)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재밌고 웃기니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희화화하는 게 얼마나 재밌나.

카멜리아: PC함과 un-PC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때, 좋은 평행대가 유머인 것 같다. ‘한남충’, ‘재기해와 같은 단어가 우리끼리는 재밌지만, 폭력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내가 메갈에 유입하게 된 건 재밌어서였다. 말이 웃기니까 붙잡고 주장을 읽어보게 되고, 그렇게 페미니즘에 입문하게 되었다. 사실, 페미니즘 다 맞는 말 아닌가. 맞는 말을 하는데 그걸 제대로 이해했을 때, 거부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제대로 알지 못하니까 불편하게 느끼고 거부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람들을) 붙잡을 수 있게, 재미있고 유머러스하게 페미니즘 운동이 진행되면 좋겠다.

옥지은: 전략을 다양하게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총여학생회는 하는 일이 정치적이기 때문에 채택할 수 있는 전략이 한정적이다. 온건한 방식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메갈리아 워마드는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머리 풀고 달려들 수 있는 곳이지 않은가. 총여학생회는 학내 여학생의 대표조직이기 때문에 어쩔 때는 핵심적으로 찌르고 나가야 될 때, 그런 (유쾌한) 전략들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슈화 될 걸 못 가져가는 경우도 많았다. 총여학생회와 같은 조직이 그런 걸 못한다면 다른 곳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집행부 인원수가 증가했다. 메갈리아 이후 페미니즘이 퍼지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면을 봤을 때, 여성혐오 문제를 이슈화 시키는 집단이 있어 계속 문제제기를 하다보면, 보는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더 많아지게 되고, 그럴수록 페미니즘 장벽이 더 허물어질 것이다. 메갈처럼 날뛰는 사람, PC하게 말하는 사람, 친절하게 말하는 사람, PC함과 un-PC함 중간에 있는 사람, 유머러스하게 얘기하는 사람 등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다양해질 거란 말이지. 전략이 다양해지려면 일단 사람들이 많아져야하지 않겠는가. 그 수단은 유머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난 일베의 장점이 유머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폭력적이고 저질스러운 내용을 포장하는 유머, 드립이라는 게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드립이라는 그들의 무기를 뺏어 와야 한다. 다양한 전략으로 한 곳을 바라본다면, 시너지효과가 생겨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대담후기

카멜리아: 정말 즐겁고 또 오고 싶다. 학교에서도 세미나를 하는데, (학내에서 하는 세미나는) 지인들끼리 모이기 때문에 스펙트럼이 넓지 않은데, 확실히 다른 학교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를 하니까 스펙트럼이 훨씬 넓고 정말 즐겁다. 다음에 또 오고 싶은 정도다.

이연: 솔직히 이렇게까지 생각 못하고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왔었다. 사실, 여성학이나 페미니즘에 대해 썩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 자리를 통해 좀 알게 된 면이 있고, 나도 많이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나는 애들을 가르치는 교사니까. 애들이 가끔 남녀차별 운운할 때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페미니즘과 젠더문제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옥지은: 교대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들이 많아서 재밌었다. 오늘 나눴던 이야기들이 사실 주변 사람들과 다 한 번씩 얘기해봤던 것들이라, ‘다들 비슷하게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고민이다. 총여학생회 입장에서만 바라보다가 여성위원회나 평범한 학우의 입장에서 바라보니까 새로운 모습이 보여서. 이런 건 나도 고민해봐야겠다고 느꼈다.

GODDESS: 다양한 학교 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다. 아무래도 여대다 보니 다른 남녀공학 대학교의 분위기는 잘 모르지 않나. 알아갈 수 있는 기회라서 좋았다.

럭키 퀴어 페미쇼(LUCKY QUEER FEMI SHOW)

 

최존

 

 

  나는 퀴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시스젠더[각주:1] 레즈비언 알로섹슈얼(Cisgender Lesbian Allosexual)[각주:2]이고, 굳이 성적 지향성을 숨기지 않는 공개적인 레즈비언(Openly Lesbian)’이다. 그리고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여성이자 성소수자라는 점에서 나는 꽤나 두드러진 소수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내가 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여러 가지 제약과 차별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퀴어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 나를 용감한 사람이라 여길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내가 페미니스트였던 것도 아니고, 두려움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처음 커밍아웃했을 때였다. 가장 친한 친구라 여겼던 옆 반 남자아이에게 내가 여성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그 애는 표정이 싹 굳은 채, ‘남자와 안 자봐서 그렇다며 나를 교정강간하려 했다. 그 이후, 그 애는 나를 철저히 무시했으며, 지나갈 때 침을 뱉기도 했다. 그렇게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

  운 좋게도,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은 나의 성적 지향성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엄마께 커밍아웃하기로 마음먹은 날이었다. “엄마, 만약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너무 힘들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 얘기를 꺼냈다. 엄마는 내가 임신한 줄 아시고 괜찮아. 네가 낳고 싶으면 낳아도 되지만, 감당할 수 없으면 병원가자.”라고 하셨다. 내가 엄마, 그게 아니라 나 여자를 좋아해.”라고 했을 때, 엄마는 왜 그런 걸로 울면서 진지하게 얘기하냐? 난 너 애 가진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라며 무색할 정도로 나의 커밍아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셨다. 엄마의 반응은 세상 모두가 내가 레즈비언인 걸 알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만큼 큰 용기를 주었다.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였다.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교양 수업에서 교수님이 제시하신 주제는 한국에서는 왜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지 않을까?’였다. 한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동성애자는 에이즈를 유발시키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께서 그건 학술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논거라고 지적하시자, 그는 동성애는 사회적 혐오를 조장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맙소사! 너무나도 확신에 찬 그의 대답, 부끄럼 한 점 없는 당당한 그의 태도에 나는 경악했다.

  “이 반에 분명 성소수자가 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세요? 부끄럽지 않으세요?”라고 내가 묻자, 그는 주춤하더니 , 그럼 본인이?”라고 되묻고서는 자리에 앉았다.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도 그였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조용히 살고자 했건만, 교내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호모포비아적이라면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후 나는 교내에 성소수자 인권동아리를 창설했고, 활발히 활동했다.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비교적 별 탈 없이 확립한 것에 비해, 페미니즘에 입문한 것은 조금 늦은 편이었다. 페미니즘에 대해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수적으로도 소수이기 때문에 더욱 뚜렷한 퀴어로서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담론은 매우 긴밀하고 중요하게 느껴졌지만, 여성은 인구의 절반인데다 여성이기에 받는 억압은 내가 억압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어려울 정도로 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퀴어로서의 삶과 여성으로서의 삶은 분리되어 있었다. 그랬던 내가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교 2학년 때 수강한 문학과 여성이라는 수업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억압을 다루는 문학작품을 공부하면서 젠더 위계구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여성이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받는 억압과 성 역할에 갇혀 스스로를 억압하는 내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 전까지 나는 철저히 젠더 코르셋으로 스스로를 조이고 있었다. 각각의 성에 걸맞은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화장을 하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고, 여자가 다리를 벌리고 앉거나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건 여성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타고난 성별과 성적 지향성 때문에 차별받아선 안 된다고 주장해왔던 내가, 특정 성별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에 적합한 행동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 이후부터 나는 퀴어 담론과 페미니즘 담론은 떼려야 뗄 수 없다고 생각해왔고, 스스로를 퀴어-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해왔다.

 

  여성이슈를 바라보는 데 있어 시스젠더 헤테로[각주:3]-알로섹슈얼(Cisgender Hetero-Allosexual) 페미니스트와 퀴어 페미니스트 간 차이가 존재하는지 묻는다면, 본질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퀴어로서 받는 차별과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은 다르지만,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여성 카테고리 안에서도 퀴어 여성, 장애인 여성으로서 또 다른 차별을 받는 이들이 존재하고, 기존의 페미니즘 담론에서 소외될 수 있는 이러한 영역까지 논의의 대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퀴어-페미니즘의 의의가 있다고 본다.

  몇몇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게이 커뮤니티에 여성혐오적 분위기가 만연한 건 분명하다. 그러나 여성혐오가 게이 커뮤니티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게이를 똥꼬충과 같은 단어로 비하한다든가, 아웃팅을 시도한다든가, 혹은 레즈비언을 무조건 성역화하는 등의 태도로 대응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애당초 게이 커뮤니티의 여성혐오는 그들이 게이여서가 아니라, ‘한국남자이기 때문이고,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는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너무나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갈 길이 매우 멀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 갑자기 일어난 변화가 아니다. 퀴어의 존재를 아예 인지하지 못하거나/않거나, 내 주변에는 없는 별난사람들 이야기로 치부해버리곤 했던 사람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목소리를 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가장 작은 단위인 커밍아웃을 통해 기존의 인식을 깨부수는 데 동참하고자 한다.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종로에서 게이라는 이유만으로 집단폭행을 당한 사건만 봐도, 퀴어로 산다는 건 생각보다 정말 많은 위협에 노출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신변에 위험을 느낀 적은 없지만, 나 역시 간담이 서늘했던 적은 있다.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가 없던 시절, 성소수자 인권 동아리를 만들고 회원을 모집하는 데 어쩔 수 없이 포스트잇에 내 전화번호를 써서 붙이고 다녔던 적이 있다. 그 때 익명의 문자가 한 통 날아왔는데, “, 진짜 더러워.”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전화번호를 어디에 뿌리고 다니더라도 위협을 느끼지 않는 것이 정상인데, 그저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모욕당하는 현실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렇지만 내가 존재한다는 걸 숨길 수는 없었다. 그러면 더더욱 내가 설 자리가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확실히 나는 운이 좋은 경우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 가족과 공통된 관심사를 가졌기 때문에, 혹시라도 내가 빻은말을 하는 경우에는 지적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모두가 나와 같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만 한 번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얘기해보길 추천한다. 일상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다양하다. 무엇보다 뜻을 함께할 수 있는 공동체와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더 많은 페미니즘 웹진, 퀴어 웹진이 발행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하고 싶은 건 많다.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도 되고 싶고, 등단도 하고 싶고, 페미니즘 담론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시도 쓰고 싶다. 무엇보다도 젠더 인식에 있어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일조하고자 한다. 때문에 나는 퀴어-페미니스트로서 계속 사람들에게 를 말할 것이다.

 

   

이 글은 사월님의 사연을 바탕으로 구성됐습니다. 이야기를 공유해주신 사월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 성별 정체성과 지정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2. 유성애자. 성욕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적행위에 대한 끌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성욕 유무와 상관없이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무성애자(Asexual)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출처: 에이로그 ALOG 네이버 블로그> [본문으로]
  3. 이성애자. [본문으로]

Ⅰ. 들어가며

 

유명 치어리더의 명예훼손죄 혐의로 기소된 야구선수 A씨가 결국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A씨는 모 치어리더의 사생활이 좋지 않다는 취지의 글을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전송했고, 이를 전송받은 A씨의 전 여자친구는 해당 대화 내용을 캡처해 자신의 SNS계정에 게재했다. 법원은 A씨와 전 여자친구에 대해 각기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A씨의 경우, 벌금 700만 원, 전 여자친구는 징역 4년과 집행유예 1년 및 160시간의 사회봉사 이수 명령)

 

모바일 메신저 상에서의 이야기 대상이 비단 치어리더와 같이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명문대 남학생들이 단체 채팅방에서 동기나 후배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희롱이나 외모품평회를 벌인 것이 그 예이다. 당사자가 나의 친구들이라면, 혹시나 내가 된다면, 우리는 치어리더 사례처럼 법적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Ⅱ. 명예훼손죄

 

   1. 명예란 무엇인가

 

흔히 명예라 하면, 공인과 같이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명예훼손죄에서 다루는 명예는, 이와 같은 국어사전적 의미와는 다르다. 여기에서 명예란, 외부적 명예 즉 사람의 품성, 덕행, 명성, 신용 등 인격적 가치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받는 객관적인 평가를 말한다. 공인이 아니더라도 사회 내에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명예가 보호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2. 명예훼손의 성립요건

 

명예훼손이란 사람의 품성, 덕행, 명성, 신용 등에 대한 객관적인 사회적 평가를 위법하게 저하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어떠한 경우에 위법하게 명예를 훼손한 행위가 되는 것인지, 이어서 명예훼손의 성립요건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본문에서는 특히 요즘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사이버 명예훼손에 대해 짚어보도록 하겠다.

 

 

▶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제1항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제2항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공연성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개별적으로 한 사람에 대하여 사실을 유포하였다 하더라도 그로부터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의 요건을 충족한다. 모바일 메신저나 개인 블로그의 비공개 대화방에서 비밀 준수의 약속을 받고, 일대일로 대화하였더라도 공연성을 인정할 여지는 있다. 치어리더 사례처럼 상대방이 대화내용을 캡처해 불특정 또는 다수가 볼 수 있도록 SNS에 올리거나, 전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수가 참여하는 모바일메신저 단체방의 경우, 대화에 참여한 주체들이 주고받은 내용을 공유하는 만큼 공연성 요건을 충족한다. (대법원 2008.02.14. 선고 2007도8155 판결 참조)

 

   2) 비방할 목적

 

사이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라는 요건 즉, 가해의 의사 내지 목적 또한 존재해야 한다. 당해 적시 사실의 내용과 성질, 당해 사실의 공표가 이루어진 상대방의 범위, 그 표현의 방법 등 그 표현 자체에 관한 제반 사정을 감안함과 동시에 그 표현에 의하여 훼손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 명예의 침해 정도 등을 비교·고려하여 결정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과는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의 방향에 있어 상반되는 관계에 있다.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은 부인된다.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에는 널리 국가·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되며,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 내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되어 있더라도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대법원 2009. 5. 28. 선고 2008도8812 판결 등 참조).

 

간단히 말해 서론에서 제시한 단체채팅방 상의 음담패설이나 성희롱, 외모품평회는 모두 사람을 비방할 목적 요건에 부합한다. 공공의 이익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대상자를 성적대상화, 그리고 외모 비하적 발언을 하여 비방했기 때문이다.

 

   3) 특정성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반드시 사람의 성명을 명시하여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성명을 명시하지 않은 허위사실의 적시행위도 그 표현의 내용을 주위사정과 종합 판단하여 그것이 어느 특정인을 지목하는 것인가를 알아차릴 수 있는 경우에는 그 특정인에 대한 명예훼손죄를 구성한다. (대법원 2014.03.27. 선고 2011도11226 판결 참조)

 

 

Ⅲ. 마무리

 

사이버 명예훼손죄는 일반 명예훼손보다 더 무거운 처벌이 따른다. 인터넷상에서의 명예훼손 행위는 시공간적 제한 없이 신속하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명예란 무엇인지, 어떤 판단기준에 의해 특정행위를 사이버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을지에 대해 보았다. 아는 만큼 권리가 생긴다. 나의, 혹은 가까운 친구들의 용모나 능력, 건강 등 외부적 가치를 인터넷 상에서 깎아내리는 자가 있다면, 증거를 수집하자. 대화 내용이나, 게시글 등을 캡처해서 사이버신고 시 첨부할 수 있도록 하자. 침해되고 있던 나의 권리, 잠자던 권리를 깨워 마땅히 누릴 수 있도록 하자.

 

 

 

 

 

 

 

 

 

 

여성주의, 각잡기 전에 먼저 한 눈에 훑어보자

페미타쿠


  단권에 페미니즘을 공부할 수 있다면? 물론 어떤 학문이든 그런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짧은 분량으로 잘 정리한 글을 분별해서 볼 수는 있다. 여러 주제에 관심이 많은데 처음부터 심도 있게 공부하기는 어려운 사람들, 모임을 만들어 공부하고 싶은데 커리큘럼을 짜기 위해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사람들, 지금부터 쓸 소개글은 이런 이들을 위한 것이다. 어떻게 공부를 시작할 지 잘 정리가 안 되는 독자들은 지금부터 나올 책들에 주목해보기 바란다.

 


(▲'젠더와 사회' 표지, ©알라딘)


2010년대 여성주의 프리즘, <젠더와 사회>

  <젠더와 사회>는 여성주의 쟁점을 단 한 권으로 훑어볼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단권에 한국사회에서 배울 수 있는 페미니즘의 쟁점과 정보는 거의 다 수록되어 있다. 젠더의 의미나 연구방법을 다루는 이론적 주제부터,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인 현상을 다루는 주제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한 챕터 마지막에 더 읽어보면 좋은 책들을 소개하고 있으므로, 한 주제를 깊이 읽고 싶을 때 요긴하다. 페미니즘 역사를 정리한 연대표(54-57)와 같이 다른 책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도표나 그림도 이해를 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전에 소개했던 <새 여성학 강의>도 여러 가지 쟁점을 다루고 있었지만, 그와 구분해 이 책이 갖는 장점은 특히 최근에 출판되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2010년대에 나온 이슈들에 집중하면서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게 하자는 의의를 갖고 있으며, 모든 성별이 성차별 운동에 힘써야 함을 시사한다. 특히 독자들이 겪는 최근의 여성혐오 실태와 이 책의 이슈들을 비교하고 적용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성의 정치 성의 권리' 표지, ©알라딘)


여성주의 자세히 들여다보기, <성의 정치 성의 권리>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젠더와 사회>처럼 굵직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주제가 세분화되어 생소할 수 있지만, 그만큼 각 전문가들의 견해를 깊이 읽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도 비교적 최근에 논란이 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여성의 정치 진출, 트랜스 젠더, 성노동자, 동성애-성매매-에이즈, 동성 서사를 욕망하는 여자들에 대해 논한다. 이 책은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하이브리드 인문학 총서중 하나인데, 그 중에는 <남성성과 젠더>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남성성을 주제로 여러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함께 읽어볼 만 하다. (<성의 정치 성의 권리>는 절판되었지만 도서관에서 쉽게 빌려볼 수 있다.)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표지, ©알라딘)


더 깊이 여성 혐오를 다룬다,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여성 혐오를 더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이 책 또한 <성의 정치 성의 권리>처럼 주제가 세분화 되어 있다. 여성 혐오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일베부터, 역차별, 젠더 무의식, 언어 재현, 퀴어/성소수자 혐오에 대해 다룬다. 작년에 여성 혐오개념이 한국 온라인에 부상하면서 그 흐름을 타고 출간된 책이기에 온라인으로 여성 혐오 이슈를 다수 접한 독자라면 공감할 만한 내용이 쓰여있다. 정희진의 김치녀와 벌거벗은 임금님들 : 온라인 공간의 여성 혐오는 온라인 공간에서 재현되는 많은 양상의 여성 혐오를 짚는다. 정희진은 앞서 소개한 <페미니즘의 도전>의 저자이며 여성학자로서 활발히 저술활동을 하고 있으니 그가 쓴 글들을 모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여성주의는 사회의 모든 것을 해석할 수 있기에 매력적이다. 새로운 화제를 발견해도 또 다른 화제가 눈에 짚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주의를 이해하려는 독자들은 각각의 화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행동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느라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위의 책들을 읽다 보면 여성주의적으로 조금 더 윤리적인 방향이 무엇인지, 차별과 혐오를 해결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자신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본인만의 의견이 생기면 공부하는 재미가 생기고, 그 재미가 본인의 무기가 된다.

  나를 포함한 여성주의를 공부하는 페미니스트들을 열렬히 응원한다.



-참고도서-

이남희 외, 『젠더와 사회』, 동녘, 2014

권김현영 외, 성의 정치 성의 권리』, 자음과모음, 2012

윤보라 외,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현실문화, 2015

<개강특집>[인터뷰]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페미니스트, 신지윤을 만나다.

-페이스북 대나무숲들여다보기.

by.광개토

 


 

대검찰청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4년 검거 기준 폭력 범죄 중 가해자 남성의 비율은 50퍼센트를 넘는다.[각주:1] 우리가 뉴스를 통해 접하는 폭력범죄 가해자들 역시 대부분 남성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아니, 어쩌면 지구상에 태어나 숨 쉬는 인간 종이라면) 폭행범을 그리라고 할 때 남성체를 그릴 것이다. 폭행범하면 남성을 떠올리도록 정형화되어있다니! 대한민국은 이토록 심각한 남성혐오 사회인 것이다.

8월의 어느 날. 한 대학교의 페이스북 대나무숲 페이지에서도 남성 혐오는 일어나고 있었다. ‘술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배를 폭행한 선배가 있다는데 정말인가요?’라는 글이 올라왔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폭행범의 성별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한국처럼 남혐이 심한 나라에서, 폭행범은 물어볼 필요도 없이 남성이기 때문이다.

이때, 한 비-남성혐오-페미니스트가 의연하게 일어난다. 그 이름은 신지윤. 그는 페미니스트답게 편견에서 벗어나 남성이 폭행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폭행범의 성별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나 지독한 남혐주의자들은 신지윤 씨의 이러한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남성 가해자인 게 분명한데) 성별을 묻는 진의가 의심 된다고 댓글을 달며 모욕할 뿐이었다.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당신은 폭행범이 남선배라고 생각했나, 여선배라고 생각했나? 신지윤 씨의 행동은 누군가 분란을 조장하지만 않았다면 굉장히 성평등한시선이었다. 대체 누가 성별 분란을 조장하고, 불평등을 만들어 내는가?


9월에 나올 <월간 여기> 3호 회의 중, 필진들은 이 질문에 답을 제시하지는 못하더라도 단서가 될 만 한 사건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다. 모두의 적극적인 동의 아래에 케이트 맥키넌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신지윤 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우리에게, 당신이 본 페이스북 대나무숲 속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물론, 그에 대한 대답은 이 뒤로 이어진다.

 


 

1.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여성억압공기가 심각한 대한민국 사회의 한 여성으로서 여성 권리를 적극적으로 외치고 있는 페미니스트 신지윤이다.

 


2.현재 경희대 대나무숲을 비롯한 경희대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부탁한다.

 

817일 수요일 페이스북 경희대 대나무숲에 익명 제보가 올라왔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이유로 후배를 폭행한 선배가 있는 게 맞냐는 익명제보에 충격적이네요. 폭행범 성별이 어떻게 되나요?’라고 묻는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남학우들 3-4명 정도가 역시 페미니스트라 성별이 궁금한가 보네요.’, ‘왜 성별을 물어보나 했더니 타임라인 들어가 보니 끄덕, 납득’, ‘페미니스트라서 그런 질문 하는구만?’ 등의 답글을 달았다. 가해자의 성별이 남성일 것이라는 가치개입 없이 성별을 물었을 뿐인데 왜 남학우들이 이런 반응를 보이냐고 반박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질문에 의도가 있을 거라는 몰아붙임과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조롱과 욕설이었다.



 


경희대 대나무숲 페이지 관리자는 해당 덧글 작성 후 신지윤 씨를 차단했다.

 



대나무숲 관리자는 내 댓글에 답글이 200개 정도 달릴 때 까지 기다리다가 내 댓글만 삭제하고 나를 차단했다. 분란을 조장한다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나에게 진짜 페미니스트운운하던 남학우들 역시 차단을 해야 옳다. 차단된 사람은 나뿐이었다.

남은 것은 나에 대한 조롱뿐이었다. 나의 목소리를 흔적도 없이 지운 것은 물론, 뒤늦게 본 학우들이 당시 상황을 모르도록 맥락을 아예 잘라버린 것이다. 대나무숲 관리자는 학우들이 이 상황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만한 기회 자체를 없앴다.

 


3.페이스북 페이지인 대나무숲 여성혐오를 정면으로 맞았다.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4가 삭제와 재생성을 반복했던 일과, 최근 대두된 각 대학 커뮤니티의 여성혐오가 교차한 지점이 각 대학 대나무숲 페이지다.

각 대학, 특히 경희대 대나무숲에서의 여성혐오는 어떤 양상인가? 에브리타임과 그 외 경희대 대학 커뮤니티 내에서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던가?

 

초반 나는 오빠가 허용하는 온건조신한 텍스트, 페미니즘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텍스트를 경희대 대나무숲에 여러 번 제보했다. 이 글은 내가 페이스북 개인 계정에서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며 썼던 글 중 하나이기도 하고, 꽤 많은 좋아요를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내 글은 단 한 건도 대나무숲에 업로드 되지 않았다.


 



신지윤 씨는 위 글을 경희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제보했지만 페미니즘 글이라는 이유로 필터링 당했다.


 


여성혐오적인 글은 잘 실어주면서 내 글은 필터링 했다. 적어도 페이스북의 대나무숲 관리자는 여성의 계몽을 두려워하는 분위기라는 걸 확신했다.

내 제보가 필터링당한 이후, 페이스북 페이지에 성별을 묻는 댓글을 달았다. 그랬더니 필터링당한 내 글을 보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남자 선배들이 폭행범의 성별을 물었다는 것만으로 모두 떠났다. 남자 선배들 뿐 아니라 여자 선배,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에브리타임에서는 나를 매장시키겠다거나, 일베에 올려 신상을 털어보겠다는 둥의 이야기가 오갔다. 일베가 사회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성별 분란 조장을 일으킨 나를 처단하기 위해서는 일베의 손을 빌리길 원한다. 성별 분란이 (일베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에브리타임 경희대 게시판에 올라온 글. 이후 지속적인 모욕이 계속됐다.

(이미지=©신지윤)

 



그러다 서울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내 이야기가 올라왔다. 내가 매장당한 일련의 사건을 봤는데 내가 분란조장자가 맞다는 내용이었다. 알던 친구들, 선배들도 모두 쫓아가서 동조하고 그러니까 왜 성별을 물어봐?’라는 댓글을 달았다.

 

Q.페이스북 대학 대나무숲 페이지 관리자들이 학우들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검열, 차단하고 있다는 말이 심각하게 들린다.

 

페이스북 대나무숲 페이지 관리자들은 관리자들만 모이는 전국적인 규모의 단톡방이 존재한다. 트위터에서 나의 일을 공론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톡방의 존재를 알려온 분이 계셨다. 이분이 보내주신 자료를 보자마자 왜 내 제보가 필터링 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 관리자들끼리 모여 페미니즘에 대한 제보는 올리지 말자는 이야기를 나눈다. 페미니즘은 누군가에게 규제, 검열당하는 중이다. 여기에 서울의 모 여대 대나무숲 관리자 역시 동조하고 있었다.

 




페이스북 대학 별 대나무숲 페이지 관리자 단톡방에서 페미니즘에 관련된 제보를 거르자는 의견이 논의되고 있다.

(이미지=©신지윤)



 

여성혐오적인 제보글은 필터링 없이 올린다. 거기에 페미니스트들이 항의하면 좌표 찍고 쿵쾅대면서 온다’, ‘그 분들이 오셨다고 조롱한다. 사실상 대나무숲 관리자들은 보다 조직적으로 단톡방을 꾸려서 우리 대숲이 난리 났으니 지원을 와 달라고 여론을 조작한다. 일반 학우인 양 와서 여론을 조작 중인 대숲 관리자들도 있다.

 


4.사건에 대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얼마 전까지도 친했던 사람들이 괴롭히겠다는 목적으로 가계정을 만들어서 페이스북으로 모욕적인 말을 보낸다. 동기들, 선배들이 공개 모욕에도 가담하고 있다. 모르는 번호로 협박전화를 받기도 했다. 집주소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쫓아와 해코지를 할까봐 현재는 집에서 지내지 못하고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내가 당한 피해를 캡쳐해서 올리면 얼마 전까지 친했던 사람들이 ‘(자기 신상은 중요하면서) 같은 학우들의 신상 터는 것에는 아무 생각 없는 경희대 페미니스트님~’이라고 조롱한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과, 나의 반격을 같은 취급 하는 것이다.

 


5.사건에 관련해서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가 있나? 국제캠 총여학생회라던지.

 

없다. 오히려 서울캠 총여학생회 회장의 연락은 받았다. 교내의 여성주의 단위가 도움을 준 적 역시 없다. 성평등 센터가 있고, 후마니타스 정신을 강조하는 만큼 진보적인 줄 알았지만 대나무숲 페이지에 댓글을 단 이후 교직원이나 교수들 중 누구도 도움을 주고자 연락해온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 교육부에 민원을 넣자 그제야 긴급회의가 소집됐다고 한다. 91일 즈음 성평등 센터 상담가에게 전화가 왔다. 어떤 대처를 원하냐기에, 페이스북 가계정을 파서 성희롱, 강간 위협을 한 학우들에게 강력한 조치를 취하길 부탁했다. 회의를 해보고 연락해주겠다고 하지만 늦은 대처다.

내가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온라인 페미니스트 개개인들이다. 민우회나 한국 여성의전화에 도움을 요청해보라고 권하거나, 개인 블로그에 글을 써 사건을 알려주신다. 트위터 RT를 통해 공론화를 도와주고, #신지윤님을_응원합니다 해시태그 운동도 진행해주셨다. 종종 힘을 내라며 기프티콘을 선물해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모두 감사드린다.

 


6.곁에서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어떻게 공포를 견디고 있나?

 

응원해주시는 분들의 따뜻함을 보고 힘을 얻기도 하지만, 사람보다는 신념에서 힘을 얻고 있다. 나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모든 것을 내놓고 행동하는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예전엔 가족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지윤이 사진이 익명 사이트에 올라왔는데 괜찮아?’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일베에 내 얼굴이 올라와도 무섭지 않다. 나의 준거는 젠더 이퀄리즘, 원동력은 성평등에 대한 간절한 염원에서 온다.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한다.

 


7.꽤나 적극적으로 활동 중인 페미니스트 중 하나이다. 한국의 젊은 페미니스트 활동가 중에서는 이름과 얼굴이 이렇게까지 알려진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하다.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태생부터가 페미니스트였다. 몰랐을 뿐이지. 초등학생 시절 같은 학생인데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의 가슴을 보고 아스팔트 껌딱지등 성적인 모욕을 하는 모습을 보고 너희 고추는 어떠냐고 반박했었다. 그때부터 분노했다.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억압성 발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런 현장을 목격할 때마다 투쟁해왔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이후 내가 페미니스트임을 깨달았다. 621일 즈음 sns에 페밍아웃을 했다. 그러면서도 메갈과는 거리를 뒀다. 그때는 메갈년이라는 낙인이 매우 무서웠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메갈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치환해 억압하려 드는 것이 두려웠다. 내 사진과 신상 정보 등을 가져가 악의적으로 공격할 것 같았다. 스스로 메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주변에 남자 인맥이 없어지는 걸 본인이 원하는 건가? 저 사람들 자폭하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혐오용어가 또 다른 혐오를 양산하는 것 같아 메갈의 워딩도 싫었다. 나는 메갈이 아닌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다.





1930년 1월 12일 조선일보 만평 '여성선전시대가 오면(2) (조선일보)'이 보여주는 여성혐오.

한국에서 페미니스트인 여성은 시대에 따라 

모던걸, 꼴페미, 김치녀 그리고 이제는 메갈로 뭉뚱그려 낙인찍힌다.




당당하고 떳떳했지만 왜인지 인간관계의 단절이 시작됐다. 그러다 페이스북 친구였던 여자 선배가 보이지 않았다. 나를 차단한 것이었다. 그 사람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여성혐오가 짙었다. 제대로 개념녀인 사람이었다. 선배에게 닿기를 바라며, 개념녀와 페이스북 페이지 유머저장소의 여성혐오에 대한 글을 써서 개인 계정에 올렸다. 그랬더니 85일 내가 쓴 글이 유머저장소에 박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내 글을 보고 뭐만 하면 여혐이라며 비아냥댔다. 글을 확인한 여자 선배는 학교 망신을 다 시킨다며 내 신상을 뿌리고, 페밍아웃 이후 마음껏 메갈짓을 하고 다닌다고 욕했다.

충격적이었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했을 뿐, 메갈을 한 적도 없는데 메갈이 됐다. 나는 무결한 줄 알았지만 메갈짓을 한다고 공개모욕을 당했다.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무슨 행동을 하든 세상은 나를 메갈년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를 메갈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메갈을 안 하는 개념 있는 페미니스트라는 코르셋을 이렇게 벗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진중권의 내가 메갈이다라는 내용의 논설이나 해시태그 운동 ‘#나는_메갈이다가 무척 통쾌했다. 이제는 나 스스로를 멧돼지윤이라고 부른다.

 






8.신지윤의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은 젠더에 초점을 맞춘 인류애라는 걸 알게 됐다. (공부할수록) 젠더를 넘어서 인종, 지역, 성별 등 태생적인 요소로 차별을 받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상식 외치기 운동 같다. 결국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표는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하면 행복해진다. 여성체에 대한 불결하고 야릇한 시선 자체가 문제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노브라로 다닐 수 있게 되면서 더 편안해진다. 사치를 부리지 않는 개념녀라고 인정해주는 이가 누구인지 깨닫고 나면 사치하는 데에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살고 싶은 대로 살게 된다. 남성들이 인정해주는 마이 웨이(my way)가 아닌, 배드비치(bad bitch) 소리를 듣는 마이웨이가 진짜 마이웨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나의 길을 찾아가는 행복한 길. 페미니즘은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사실, 페미니즘을 시작하면 괴롭다. 스스로를 책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내게 벌어진 일을 외신에 공론화 하자는 의견에 자연스레 백인 페미니스트인 엠마 왓슨을 찾았다. 그러자 누군가 왜 흑인 페미니스트는 찾지 않느냐?’라는 반론을 제기했다. 머리가 띵 했다. 레이시스트인 나를 발견한 것이다. 페미니즘을 하면 할수록 벗어야 할 코르셋이 많다고 느낀다. 자신이 얼마나 성차별적이었는지 매일 자아검열하고 반성하고 체크하며, 스스로를 책하면서도 미워하지는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가장 말하고 싶은 건 페미니스트는 주체적으로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가는 멋진 사람이란 점이다. 페미니즘은 궁극적인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다.

 

 

 

*신지윤 씨에게 일어난 사건은 한국과 일본 여성들의 국제적 연대를 돕는 모임, Stronger Together (http://strongertogether20160817.tistory.com/9)에서 보다 정확하게 확인이 가능하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세일러문 크리스탈과 오마이걸입니다.

  1. 검찰청 홈페이지, 2016.09.08., http://www.spo.go.kr/spo/info/stats/stats02.jsp. [본문으로]


역사를 잊은 여돌에게 미래란 없다

by.광개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필자가 이 말을 처음 들은 것은,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여덟 살짜리 초등학생들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게 할 때였다. 이 말은 이후로 역사 시간이나, 역사적인 날이나, 발화자가 역사적이라고 믿고 싶은 날이나, 기타 등등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줄기차게 소환됐다. 배울 점을 찾아볼 수 없는 말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하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어려운 점이 많다정도의, 소소한 인생의 덕담 정도로 치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민족의 책무를 추궁하는 방망이가 특정인에게 과격해짐을 목격한다.



티파니의 2차 손글씨 사과문

(사진 출처 : OSEN http://osen.mt.co.kr/article/G1110485060 )



역사를 잊은 민족에 대한 푸닥거리가 대대적으로 이뤄지는 815일 광복절이 올해도 돌아왔다. 올해의 희생양은 소녀시대 티파니였다. 그는 일본 공연을 마치고 자신의 SNS에 사진을 한 장 올린다. 이 사진은 특정 앱의 보정을 거친 사진으로, 앱은 GPS에 따라 사진을 업로드한 위치에 어울리는 스티커를 자동으로 부착한다. 티파니의 사진에는 일본 전범기를 떠올리게 하는 스티커가 붙었다. 사람들의 반응에 문제를 깨달은 티파니는 사진을 3분 내에 삭제하지만 대중은 용서하지 않았다. 티파니는 그 뒤로 수기로 쓴 사과문을 두 번 작성해야 했으며, 끝내 출연하던 프로그램인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하차했다.

최근 KBS 프로그램에서는 장동민도 하차한 바 있다. 장동민은 팟캐스트 방송에서 개보년등의 심각한 여성혐오 발언을 하고도 방송에 계속 나왔지만,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한부모 가정 자녀를 희화한 꽁트 이후 두 번이나 논란을 일으킨 연예인을 공영 방송에 출연시킬 순 없다KBS 측의 입장과 함께 당시 출연하던 KBS <나를 돌아봐>에서 하차했다. 이후로도 그의 하차에 부당하다는 의견이 유상무 등 동료 연예인과 네티즌들에 의해 꾸준히 제시되었고, 몇몇 프로그램에서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여자 아이돌들에게 어느 수준인지 명확하지도 않은 역사적 지식을 갖추길 강요하고

그러지 못한 이들에게 미래가 없다고 협박 중이다.



티파니와 장동민의 공통점은 그들이 연예인으로써 물의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그러나 장동민이 직업인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며 공적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방송에서 벌인 실수(‘실수라고 말할 수 있다면)와 티파니가 개인적인 계정에 전범기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벌인 실수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엄밀히 말해 사진에 붙은 스티커는 전범기를 떠오르게 하는 이미지였을 뿐, 전범기도 아니었다. 더불어 장동민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한부모 가정을 모욕했지만, 티파니가 모욕한 것이 무엇인지는 애매하다. 티파니와 장동민은 모두 KBS 프로그램에서 하차했지만 티파니가 장동민과 같거나 비슷한 무게의 물의를 빚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역사의식의 부재가 문제가 되어 사과하는 여자 아이돌의 모습은 익숙하다. 바로 몇 달 전에도 AOA의 지민과 설현이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뭇매를 맞았다. 결국 두 사람의 눈물이 기사화되고 나서야 비난여론은 사그라들었다. 13년도 가장 뜨거운 걸그룹 중 하나였던 시크릿의 전효성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의 발언이 일베 유저일 것이란 의혹을 일으킨 후, 급격히 주가가 추락하기도 했다. 이 역시, 일베 유저임을 계속해서 의심받고 있는 랩퍼 블랙넛이 방송과 음원 순위에서 승승장구하는 일과 비교된다. 한국 사회는 여자 아이돌들에게 어느 수준인지 명확하지도 않은 역사적 지식을 갖추길 강요하고, 그러지 못한 이들에게 미래가 없다고 협박 중이다.

 


보호를 외치는 소수자들에게 엄격한 도덕적윤리적 잣대를 대는 것은 강자가 가진 권리 중 하나이다.

 


메갈리아가 생긴 이후 여러 노선으로 갈라진 한국 페미니즘 운동들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고분고분하게 말하라거나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비난한다. 특히 메갈리아가 사용하는 워딩이 여성혐오에 기반한 미러링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성혐오적 언어를 양산한다며 비윤리적이라고 말한다.

이는 별로 특별하지 않은 광경이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시위를 하거나,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거리로 나설 때에도 왜 보다 점잖고 품위 있는 태도로 나오지 않냐고 묻는 이들이 있었다. 보호를 외치는 소수자들에게 엄격한 도덕적윤리적 잣대를 대는 것은 강자가 가진 권리 중 하나이다. 티파니와 장동민이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무게가 다른 문제를 일으켰음에도 같은 처분을 받은 것은 티파니가 여자 아이돌이란 점과 무관하지 않다. 국가기관장이 워크샵에서 천황폐하 만세 삼창을 부르는, 치명적인 역사의식 부재를 노출하는 일은 징계도 아닌 경고에 머물렀다. 그러나 여자 아이돌의 경우 그를 비난하는 일이 일종의 스포츠가 된다.


 


쇼케이스 중 고개 숙인 지민

(사진 출처 : 스포츠 조선)



사람들은 고개 숙인 여자 아이돌의 모습을 좋아한다.


 

티파니의 게시글이 문제가 됐을 때, 어떤 사람들은 티파니의 SNS에 올라온 명품백 사진을 가리키며 명품백이나 자랑하는 골빈 여자로 만들었다. 티파니에게 모욕당한 가상의 누군가를 만들어 낸 의도가 분명한 비난이었다. 그들은 결국 티파니의 자필 사과문을 성의가 없다는이유로 두 번이나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사람들은 고개 숙인 여자 아이돌의 모습을 좋아한다. 어리고 예쁘지만 내 것이 아닌, 나보다 돈을 많이 버는 여자가 내 앞에서 고개 숙이고 울며 사과하길 바란다. 자신의 여성혐오를 역사의식이라는 명분에 기대 표출하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초라한 남근을 추켜세우는 데 다수가 동조하고, 공영방송사가 협력했단 사실은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여자 아이돌과 미소지니스트, 모두의 어두운 미래에 광복은 언제 올까.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세일러문 크리스탈과 오마이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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