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나나

제4호: 「프리마돈나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아주 잘 알려진 프랑스 소설가입니다. 그녀의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인데요. 필명 사강은 그녀가 무척 좋아하는 작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출처 : 구글)

 

"나는 베이스볼을 하는 건강한, 그리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청년이 좋아요."

 

사강의 취향은 그녀의 소설에서도 드러나는 듯합니다. 그녀는 중년에서 노년의 여성과 열정이 넘치는 젊은 청년과의 로맨스를 종종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사강의 여성들은 어린 남자들의 열렬한 구애를 받기도 하며, 그들에게 옷과 보석들을 제공해주기도 하고 생활비를 부담해주기도 합니다. 이미 잘 알려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단편 사내놈」, 그리고 「프리마돈나」가 이런 플롯을 갖고 있습니다. 그 중 우리는 「프리마돈나」를 살펴보도록 해요.

 

 

 

<프리마돈나>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당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이유는 당신이 싫어서가 결코 아니에요. 그렇지만 전 당신보다 그이를 더 사랑하고 있어요.”

 

그녀는 프리마돈나, 그러나 늙은 프리마돈나. 그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라카치오를 따라다닌 지는 벌써 6개월이 넘었습니다. '어떤 남자가 늙은 여자의 들러리 노릇을 하기 위해 살고 싶을까!'그는 그녀에게서 최대한으로 뽕을 뽑아낸 뒤 재빠르게 도망쳐버릴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금전상의 궁색함이 그의 화를 억눌렀습니다. 질투일까요? 도대체 그이란 누구란 말인가요?

 

그녀는 항상 그랬습니다. 무대에만 오르면 그녀의 나이나 주름살, 몸무게, 심지어 그마저도, 아니 세 명의 남편이나 서른 명의 애인까지도 모조리 망각해버렸지요. 라카치오는 질투에 빠진 이 남자보다 두 배나 몸무게가 더 나갔고, 나이는 몇 배나 더 많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니 그는 화가 났어요. ‘나는 금발에 아주 멋진 남자란 말이야. 한물간 저 여자는 더 비싼 대가를 치러야해!’

 

이 곡은 내 평생에 꼭 세 번 불렀어요. 그런데 그 때마다 세 번 다 그를 다시 만났어요. 오늘 저녁에도 역시 그가 오면 좋겠어요.”

 

너무나도 풍만하여 음란하기까지 한 그녀의 육체덩어리, 그 육체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저 저속한 관객들을 현혹시켰습니다. 그가 보기엔 아주 형편없었죠. 이제 30분만 있으면 공연은 곧 끝날 예정이니 그에게는 다행이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견딜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무대 쪽으로 신경이 쏠렸습니다. ‘세 번이나 만난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란 말이야?’ 그는 라카치오에게 선택 당했습니다. 그를 선택한 것이 바로 그녀란 말이에요.

 

막이 올랐습니다. 모든 연주자들은 반짝이는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노예이며 시종처럼 보였어요. 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녀를 갈망하고 있었어요. 그러자 그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휘청거렸습니다. ‘그녀가 나이가 많고 뚱뚱하다는 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사람들이 그녀를 원하는 것처럼 나를 원하는 사람은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할까?’ 도대체 그이라는 미지의 인물은 누구란 말인가요! ‘그이는 그를 단숨에 기생충으로 전락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 이야기 속에 나오는 싱거운 말썽꾼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지요. 그는 화를 내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세 번이나 만났다는 그 사람이 누구지?”

 

그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상냥하고 부드럽게 웃었어요.

 

그건 바로 베르디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장 높은 음, 고음 C조예요.”

 

라카치오가 그에게 선물해준 그의 옷이 그의 살갗을 뜨겁게 불태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삼십 초 동안 계속해서 음을 내야 된다는 게 중요해요.”

 

그러고 그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게 갔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어요.

 

그것뿐이 아니에요. 그건 돈으로 살 수도 없는 것이거든요.”

 

(출처 : 구글)

 

 

 

<사강스러움>

 

'저속해!', '형편없어!' 재능있는 프리마돈나 라카치오를 따라 순방길에 오른 그는 잘나가는 그녀에게 불만이 아주 많습니다. 어리고 잘생겼으며 남자답기까지 한 자신이 나이 많고 뚱뚱한 여자를 따라다니며 기생한다는 것이 영 속이 뒤틀렸나 봅니다. 물질적 풍요와 경제적 궁핍을 이유로 그녀의 들러리가 되어 따라다닐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재능과 인기, 당찬 모습을 보고는 깨닫게 됩니다. 더욱이 그녀가 만나길 좋아하는 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자 질투에까지 휩싸이고요. 라카치오는 그런 모습에도 부드럽게 웃으며 ‘C음은 너처럼 돈을 받진 않지라고 태연히 말합니다. 그는 이름조차 없습니다. , 중요하지 않았나봅니다. 30명의 정부 중 하나겠지요. 어찌됐든 어리고 잘생겼으며, 많은 돈과 선물을 들인 젊은 남자들은 C음보다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강은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종종 썼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중년의 여성 폴르와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어리고 철없는 견습 변호사 시몽과의 정사를 그렸지요. 또 단편집 길모퉁이의 카페사내놈에서는 노년의 여성들이 어린 남자들에게 옷과 보석, 생활비를 모두 부담해주며 연애를 하고요. 그러다가 귀찮아지면 다른 부인에게 보내버리는거죠. 그러나 한 청년은 자신을 다른 부인에게 넘기려는 주인(?)에게 괴로운 사랑 고백을 합니다. 그 고백에 그녀는 슬퍼하지만 결국은 신경질 나는 일이야라고 생각하며 잠을 청할 뿐입니다.

 

우리는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의 로맨스는 질리도록 봐 왔습니다. 사강은 그런 뻔한 스토리에서 남자와 여자의 입장을 전도시켰지요. 그녀의 취향에 걸맞는, 건강하고 아무 생각이 없는 남자로는 아무래도 어린 편이 좋았나봅니다. 그러나 이런 등장인물 설정이 몇 번 반복되자 너무나 사강스럽다거나, 사강의 매너리즘에 빠진 감이 있다는 평이 있었어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대한 한 서평을 살펴볼까요.

 

"사강의 만네리즘에 빠진 감도 없지 않으나 호의를 가지고 보면 개성적인 분위기를 견지"(프랑수아즈 사강, 방곤·김정수 옮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마음의 푸른 상처, 성도문화사, p.6.)

 

하지만 우리는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 로맨스에서는 어떠한 매너리즘을 찾지는 않아요. 그만큼 나이 많은 여성의 입장에서 자신보다 어린 남자와 연애하는 이야기가 새롭고 이색적인 것처럼 느껴졌던 것일까요?

 

한편 아쉽게도 사강의 여인들은 나이 어린 청년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이성적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녀들은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나이를 깨닫고 떠나보내거든요. 라카치오의 경우를 볼까요? 우리가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를 보고 라카치오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맙소사, 저이가 서른 살이라니! 날씬하고 또 거기에 미남이고 보니 그 어느 이란공주의 사랑도 받을 수 있을거야. 이 쭈글쭈글하고 분장을 하고 땀으로 온통 엉망이 된 얼굴로 어떻게 감히 그에게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을 수가 있단 말이지?"

 

마찬가지로 같은 단편집의 「사내놈」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의 여성들도 이렇게 느끼지요. 이런 점에서 사강의 매너리즘이란 다름 아닌 아름답고 능력있지만 여성의 나이라는 굴레에서는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사강의 한마디>

 

"위스키와 도박, 페라리가 집안일보다 낫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을지는 몰라도, 버스를 타고 우느니 재규어를 타고 울겠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참고문헌>

 

프랑수아즈 사강, 이환·이평우 옮김, 슬픔이여 안녕 / 어떤 미소, 성도문화사.

프랑수아즈 사강, 방곤·김정수 옮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마음의 푸른 상처, 성도문화사.

프랑수아즈 사강, 장재형 옮김, 길모퉁이의 카페, 성도문화사.

프랑수아즈 사강, 길해옥 옮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여백.

위키페디아 프랑스, https://fr.wikipedia.org/wiki/Fran%C3%A7oise_Sagan.

 

 

 


 

나나

“사내아이를 낳아야 했어, 그래야 그럭저럭 살아 나가기 쉽고, 이 파리에서 수많은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야.” 내가 태어난 날 우리 엄마가 나를 보고 되뇌었어요.

 

4편. '남성 가장' 신화 

by.한의 민족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가부장인 남성이 여성과 어린 남성을 지배하는 구조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가부장제는 우리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경험하는 억압이자,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 지속된 억압이며, 역사, 사회, 문화, 종교를 막론한 모든 곳에 산재되어 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너무 오래 되어서 자연스럽게 우리 주위에 둘러있고, 스스로의 억압 구조를 은폐하고 있어 구성원들이 인지하기조차 어렵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부장제는 그 권위에 대한 정당성을 자본에 두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남성집단은 자본으로부터 여성을 배제하고 독점 운용하기 위해 남성 가장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자본의 직접적인 지배에서 벗어난 가정으로 그 영역이 한정되어 있어 그 영역을 벗어나기 어렵다. 여성이 취직을 한 이후에도 사회는 여성의 자리는 가정임을 꾸준히 상기시키며, 가정으로 돌아가도록 끊임없이 압박한다. 취업여성이 마주하는 유리천장과 저임금은 여성을 가정으로 내쫓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이자 자본의 남성 편향의 결과물이다.

물론 가정 내 권력을 획득하는데 작동하는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가부장의 권력과 자본의 관계에 집중하여 다뤄볼 예정이다. 취업여성이 경험하는 성차별적인 발언들을 따라가며, 사회가 어떻게 여성을 자본으로부터 배제시키고 가부장제에 순응하도록 종용하는지 살펴보자.

 

 

 


 

여자가 차별받는다는 거 다 옛날 이야기지. 이번에 우리 회사 신입사원도 여자가 반인데?

a) 회사 임원 중 여성의 비율은 어떻게 되는데? 그들도 신입사원처럼 반이 여성이야?

b) 여성은 취업을 한 이후에도 안심할 수 없어. 여성은 가장이 될 남성을 위해 승진에서 영원히 밀리는데 이게 차별이 아니고 뭐야?

c) 취업한 여성은 남성과 달리 유리천장을 경험해. 이 유리천장은 결국 여성을 직장에서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하지.

 

 


많던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대한민국의 30대 그룹의 여성 임원 승진인사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2.4%에 불과하다전무급 이상 여성 승진자는 3명이 전부였고이마저도 오너일가를 빼면 단 1명뿐이다기자협회보가 언론사 19곳을 조사한 결과, 11월 현재 여기자 비율은 25% 2년 전에 비해 2배 늘었다그러나 보직간부를 맡고 있는 여기자는 총 4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언론사 1곳 당 평균 2.3명 수준으로여성 보직간부가 없는 언론사도 5곳에 달했다. 19곳 중 12개 언론사에서는 여성 논설위원이 한 명도 없었다전체 316개 공공기관의 여성 임원 비율은 11% 정도(기획재정부 공공기관 인력현황 및 여성비율’)이 가운데 133개 공공기관은 여성 임원이 단 1명도 없다신규 채용에 여성 지원자 비율은 절반에 육박(2011 45.4%)하지만여성 관리자 비율은 15.94%로 민간기업(20.01%)에 못 미친다행정자치부의 여성 관리자 비율은 17 3월까지도 10% 언저리에서 지지부진하고 있었다특히 국장급 이상 고위직은 단 4명으로 행자부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했다.

 

살펴본 자료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여성 직원 채용 비율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위 임원직에 여성이 진출하는 비율이 지나치게 적은 현상이야말로 한국의 유리천장이 공고하다는 것을 시사한다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이전보다 용인됨에 따라 사회에서 여성의 활약은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고시와 교직 임용 등은 시험을 통해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차별에서 벗어난 영역이라는 인식은 2010년 여성 합격자 비율 행정고시 47.7%, 사법고시 41.52%, 외무고시 60%라는 수치로 이어졌다여기서 여성의 합격 비율보다 더 놀라운 것은그 많던 여자들이 고위직으로 갈수록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 기사에서 중견기자 중 여성의 비율이 적은 현상의 원인을 고찰한 바에 의하면기자는 업무량이 많고 야근이 잦으며 예측 불가능한 업무 특성 때문에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힘들다는 점특히 여기자들은 결혼출산육아 때문에 직장 이탈이 잦아 결국 중견기자 이상으로 생존하는 비율이 여전히 낮다는 현실은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것이 가정이라는 점을 시사한다남성이 고위직으로 진출하고 높은 연봉을 받도록 하는 가정이 여성을 고위직으로 진출하지 못 하도록 막는 것은 아이러니하다남자는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며여성은 집안일을 돌봐야 한다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정상가족 규범은 여성의 활동 범위를 가정 내부로 한정시키며공적 영역에서 여성에 비해 남성에게 우선순위를 주는 것을 정당화시킨다여성의 승진에 있어서도 가장인 남성에게 우선순위가 빼앗기는 일은 허다하다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60%정도에 불과한 것에도 가장이라는 이유를 가져다 붙이며 정당화시킨다이 사회는 가부장의 권력을 보장해주기위해 안달이다자본을 남성에게 몰아줌으로써 가정 내에서 남성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그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직장 여성이 맞닥뜨리는 유리천장은 남성 가장 이데올로기와 남성편향적인 자본 구조의 성공적인 결과물이자 수단이다.

 

 



 

남편자기야나도 돈 벌어오잖아자기 일하면서 애기 돌보기 힘드니까 일 쉬면서 애기 보고 그러자.^^

a) 지금 그 말은 아기를 나 혼자 돌보라는 것처럼 들리네. 아이 양육은 부모가 함께 하는 거야.

b) 나도 내 직장을 갖고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아이를 키우기 위해 나한테만 일을 그만두라는 것은 나의 희생을 강요하는 무례한 요구야.

c) 나도 돈 벌어오는데? 그럼 자기가 일 관두고 애 돌보면 되겠다.^^

 

 


가부장은 맞벌이를 원하지 않는다.

 

한 기혼여성의 고민상담글이 sns에 소개되었다그 부부는 맞벌이를 하고 있었는데남편이 그녀에게 일을 그만두고 둘째를 낳아 기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아내의 임금이 남편보다 더 많은 상황에서 과연 그녀가 일을 그만두면 가족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이 그녀의 고민이었다이왕 한 명이 일을 그만둬야 한다면 임금이 더 적은 남편 쪽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그런데 남편은 아내에게 일을 그만두라는 주문을 했다.

 

해당 글의 덧글에는 일을 그만두지 말라는 사람들의 충고가 잇달았다아내에게 직장을 그만두라는 남편의 배려속엔 가정의 주도권을 독점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것이다만약 남편의 말대로 일을 그만둔다면집안에서의 발언권을 완전히 빼앗기고 남편에게 예속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이 논리에 따르면 가정 내의 주도권(권력)에 직장과 수입이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가정이라는 공동체 내의 권력은 개인의 자본력에 따라 주어진다가정의 수입을 담당하는 사람이 가정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암묵적인 시스템은 특히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과 맞닿아있다.

 

남성은 가부장제 사회 질서 속에서 (비록 그가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에 놓여있든 상관없이가정 안에서 지배자로 군림할 권한을 승인받았다이것은 너무나도 유구해서 자연화된 권력이자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성으로 태어난 이들에게 주어지는 생득권이며가정이라는 왕국의 지배자가 될 수 있도록 사회가 승인한 권력이다가부장의 권력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자본을 통해 정당화된다따라서 남성은 가정 내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을 독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맞벌이 부부의 경우가부장의 권위를 지탱해주는 소득이라는 수단을 부부가 나눠 갖게 된다는 것은 곧 가정 내의 권력이 분산됨을 의미한다그러나 권력의 배타적인 특성상 그것은 나뉠 수 없다남성은 그의 손윗남성들이 그래왔듯이 가정 내의 권력을 독점하길 원한다따라서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수단인 수입을 배우자로부터 박탈시키고 독점하려 한다그들은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의 무게를 아내와 함께 분담하길 원치 않는다그 무게가 곧 권력의 원천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남성들은 맞벌이를 할 경우 권력이 양분되며심지어 배우자의 소득에 따라 상대에게 더 큰 권력이 부여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지한다맞벌이를 통한 수익의 증대와 그로인한 삶의 질 향상보다 가부장의 권위에 집착하는 이에게서 합리적인 이성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가장은 실체가 없다가부장은 가정 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력을 갖는다그러나 그가 가정 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그 권력은 사라진다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남성이 그의 가정으로 돌아가면 지배자로 만들어주는 권력은 그들이 결코 소시민적 삶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사회의 계층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갖는 불만을 중화시키고 현실에 안주하도록 만든다또한 가장의 권력은 여성이 팔루스에 대한 환상(fantasy)을 욕망하게 만듦과 동시에이것이 허상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것을 추구하도록 하거나 현실에 순응하고 포기하게 함으로써 남성의 권력을 유지한다여남 각자가 가장이라는 허상을 좇아 현실에 순응함으로써 사회는 유지된다.

 

 

 



그런데 일과 가정 모두 잘 캐어하는 알파걸도 있잖아?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a) 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가정의 책임을 당연하게 부담시키는 거야? 여자는 일만 잘 하면 안 돼?

b) 일과 가정 모두 잘 캐어하는 남자들도 있을 텐데 왜 남자에겐 그런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거야?

c) 그래, 하지만 일부의 특별한 사람들의 사례가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져선 안 돼. 그건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 차별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재 문제로 축소시킬 수 있어.

 




남성과 달리 여성은 일과 가정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만일 여성이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간 이중부담의 함정에 빠질 것이다여성에게 집안일의 책임을 지우는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여성은 일과 가정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거나일과 가정 모두 완벽하게 해내는 알파걸이 되어야 한다그들이 일과 가정 모두를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 할 경우 비난받으며주로 직장을 포기하고 가정에 집중하기를 강요받는다.

 

여성의 정치 진출과 고소득 전문직 증가여성 사회 진출의 점진적인 증가 등 고무적인 현상 이면엔 이 특별한 여성들이 여성 발전을 상징하는 하나의 토큰(token)’으로 사용되지는 않는지 따져야 한다이들은 극히 일부 소수 여성일 뿐이며 대다수 일반 여성들이 여전히 피라미드 사회 구조의 맨 밑바닥에 머물러있다는 것이다여성의 사회 진출과 관련된 이 희망적 수치에 반비례하는 대다수 여성의 암울한 현실은 주목받지 못한다알파걸 콤플렉스가 사회·구조적 문제인 유리천장을 개인의 노오력’ 문제로 전환시킬 우려 또한 존재한다알파걸 역시 남성 경쟁자와 비교했을 때지위나 직급보다 성별이 우선적인 평가요소가 된다는 사실은 유리천장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심상정 대표의 슈퍼우먼 방지법 발의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발로했다그는 맞벌이 시대는 왔지만 맞돌봄 시대는 따라오지 않았다대한민국 국민은 가족 없는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고 여성들은 슈퍼우먼이 될 것을 강요받고 있다고 입법배경을 밝혔다슈퍼우먼 방지법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Δ배우자의 출산에 대한 남편의 출산 휴가를 현행 유급 3일에서 유급 30일로 늘리며 Δ육아휴직 기간을 현행 12개월에서 16개월로 늘리고 Δ육아휴직 급여액을 월 통상임금 100분의 60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인상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있다여성에게만 부과되었던 육아/가정의 책임을 분산하여 남성에게 공동으로 부과하는 것은 유리천장을 깨뜨리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가정의 수입을 담당하는 사람이 가정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암묵적인 시스템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과 맞닿아있다문제는 그것이 주로 남성에게 할당되는 자리라는 것과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상품의 생산과 자본의 유통만이 중요해지고 자본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는 생산 과정이 무시된다는 것이다페미니스트들은 상품가치뿐만 아니라 노동력 생산을 담당하는 가정의 역할을 주목했다그동안 가사 노동이 지나치게 평가 절하되어 온 사실을 고발하고 이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했다가정은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자원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자본의 핵심이자 기반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 노동은 그동안 자본의 지배에서 벗어난 전근대적이고 전자본적인 부차적인 문제로 다루어져왔고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여성에게 떠넘겨졌다그동안 저평가되어온 가사노동의 중요성과 필요를 인정하고그 책임을 한 집단에게 전부 부과하는 것을 그만둘 때가 되었다국가는 여성의 희생 위에 건설되었다이제 그들을 가정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자기만족일까 코르셋일까

암탉

    ‘코덕이자 페미니스트로서 요즈음 고민하고 있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나는 조금 이르게 코덕에 입문한 편이다. 내가 초등학교~중학교에 다닐 무렵 뷰티 블로그붐이 불기 시작했다. 우연히 포털 사이트 메인에 뜬 뷰티 블로그 글을 보고 다양한 색의 화장품에 매혹됐다. 이후 적은 용돈을 모아 야금야금 화장품을 사 모으고, 메이크업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활동하며 즐거운 코덕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 (모든 페미니스트가 그렇듯) 그러던 어느 날, 불편한 부분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으로 도배된 광고 문구를 볼 때나 그런 화장은 남자들이 안 좋아해~” 따위의 말을 들을 때 설명할 수 없는 불쾌함을 느꼈다. 그 무렵 페미니즘을 접하게 됐다. 여성의 행동을 모두 남성을 위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 혹은 그래야 한다는 강요가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되자 정말 신기하게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페미니즘이 코덕 정체성에의 돌파구로 작용한 셈이다.

 

    믿었던 페미니즘이 발등 찍은 건 최근의 일이다. 아니, 사실 양심적으로 말하자면 코덕이자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한 그 순간부터 항상 맘 한 구석에서 나를 쿡쿡 찌르던 불편한 생각들이 있다. 내가 활동하는 메이크업 커뮤니티는 페미니즘적 성향을 띄고 있다. 여성만 가입할 수 있는 커뮤니티라 상대적으로 페미니즘 이야기를 나누기 자유로운 분위기다. 현실에서 겪은 성차별적 상황을 털어놓고 서로 위로하며, 서명 운동 링크를 공유하기도 하고, ‘남성을 위한 메이크업에 분노한다. 내가 정말 즐거워서,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화장한다는데 누가 참견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종종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자기표현을 위한 메이크업이라기엔 우리는 너무 똑같은 화장을 하고 있지 않나? , 얼굴을 자주 들여다봐야 하는 메이크업의 특성상 이목구비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정말 세세하다. 눈이나 얼굴 길이 등을 자로 재서 공유하기도 한다. 당연히 외모에 대한 강박적 집착 및 우울함을 호소하는 글도 많이 올라온다. 뷰티 유튜브를 볼 때도 그렇다. 화장으로 다크서클이나 여드름 자국을 가리지 않으면 예의가 없는 것이고, 화장 후 얼굴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며, 어느 정도 화장을 완성하면 빼먹지 않고 이제야 사람 같다고 한다. (여성의 민낯은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난 것인가?) 이제 여성들 사이에서 화장은 자기만족을 위한 행동이라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실제로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 심리적, 물리적으로 제약이 생긴다면 그걸 정말 자기만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엠티 가서 일부러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자는 친구들을 볼 때, 화장을 망친 날은 미묘하게 다운되는 나를 발견할 때 나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과 코덕으로서의 정체성이 충돌하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왜 민낯 공포증에 걸렸을까

    화장을 하지 않고 학교에 왔을 때 예의 없다며 주변에서 핀잔을 주는 친구들, 그 옆에서 모자를 꾹 눌러쓰고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죄스러워하는 민낯의 친구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민낯에 대한 거부감이 공포증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이건 포비아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한 것 같다. 사실 민낯으로 학교, 토익 학원에 간다고 해서 어떤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민낯 공포증을 앓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볼에 여드름이 나서? 안색이 창백해보여서? 이런 이유로는 설명할 수 없다. 문제는 훨씬 크고,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온 것 같다. 우리가 왜 우리의 민낯을 부끄럽다고 여기게 됐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출처: 미미박스)

 

    작년 119, 한 뷰티 소셜커머스 사이트에 올라온 유두 미백 크림 광고가 저급한 내용으로 논란이 되었다. ‘늑대들이 좋아하는 핑크빛 유두, 이렇게 될 수 있다면’, ‘진한 색상 유두 NO’ 따위의 문구를 내걸고 (전혀 궁금하지 않은) 여성 유두에 대한 남성 9명의 의견을 함께 게시한 것이다. 위 광고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해당 사이트는 결국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였다. 사실 이 광고를 처음 접했을 때 화나긴 했지만,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남성의 시선을 부각해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수치스럽게 여기도록 하는 방식은 화장품 업계의 유구한 광고 전략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손톱에 난 세로 결을 없애준다는 손톱 영양제 광고를 본 적이 있다. 3가지 종류로 구성된 해당 제품을 통해 꾸준히 손톱을 관리하면 손톱에 난 세로 결이 없어지고 여성여성한손이 된단다. 광고가 끝난 후 형용할 수 없는 회의감에 사로 잡혔다. 이제 손톱 결에도 신경 써야 하나? 광고를 보기 전까지 난 내 손톱에 세로로 결이 있는지도 몰랐다. 뷰티 업계가 우리의 몸을 토막 내어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와 닿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S라인, T, 헤어 라인, 수분부족형 지성 따위의 단어들은 사실 뷰티 업계에서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이런 단어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멀리서 몸을 보았을 때 몸매의 외곽선이 S모양인지, 얼굴의 중심의 T존이 입체적인지, 헤어 라인이 동그랗고 머리숱이 빽빽한지를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뷰티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고 기존 제품으로 승부하기엔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니, 원래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신체 부위까지 끌고 와 (자사의 제품을 이용해) 자사가 제시하는 정답에 자신을 끼워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시감을 느끼고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미디어의 도움을 받아 이는 곧 미의 기준으로 굳어진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여성들에게 자신의 신체를 부끄럽게 여기도록 종용하여 미의 기준을 전파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뷰티 업계는 항상 새로운 미의 기준을 제시한다. 그들이 지적하기 전까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혹은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별별 신체 부분에 아름다움의 가이드라인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여기에 미디어가 나서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것은 미의 기준으로 확정지어진다. 뷰티 업계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맞는 실제 사람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미디어는 가이드라인 안에 속한 이들에게 무결점, 여신 같은 온갖 찬사를 퍼붓는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평가의 시선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평가자의 위치에 서있는 남성의 시선을 빌려온다.) 혹은 가이드라인에 맞지 않는 사람을 데려와 인위적으로 가이드라인에 맞추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노력, 자기관리 따위의 미사어구로 아름답게 치장한다. (여성들이 말하는 자기관리의 범위가 외모 쪽으로 치중되어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사람들은 이쪽에 더 열렬한 반응을 보인다. 관념상으로만 존재했던 가이드라인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 즉시 자신과 비교하기 시작한다. 연예인 누구누구도 저렇게 노력하는데 나는 뭘까? 사실은 연예인 누구누구니까저렇게 하는 것인데 말이다. 화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뷰티 산업 및 미디어는 (화장 방법은 둘째 치고) 화장하지 않은 상태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라고 강요한다. ‘화장은 예절따위의 말을 동원하거나 화장 하지 않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노출시킨다. ‘민낯 공포증은 여기서 출발한다.

 


(출처: 알바노조, 한국일보)

 

    사회는 이를 착실히 받아들였다. 작년 3, 한 영화관 프랜차이즈에서 여성 직원에게만 더 엄격한 외모 꾸미기 규정(화장, 머리 모양, 의상 등)을 적용해왔던 것이 밝혀졌다. 실제로 해당 규정을 지키지 않을 시 꼬질이딱지(자신의 담당 구역을 청소하지 않거나 유니폼을 더럽게 관리하는 등 위생 관련 규정을 위반했을 때 부여되는 패널티)가 붙고, 벌점이 누적되어 임금 삭감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여성에게만 엄격한 외모 꾸미기 규정을 적용하는 곳은 위의 기업뿐만이 아니다. 작년, 한 글로벌 컨설팅 기업에서 하이힐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성 접수원을 해고했다가 항의 끝에 규정을 완화한 바 있다. 올해 초에는 한 증권사의 여성 직원 복장 규정이 도마 위에 올랐다. 여성 직원들은 사용해야 할 아이섀도우 숫자, 스타킹 색상까지 규정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남성 직원에 대해서는 노타이 정장, 콤비(혼합 정장) 금지 정도만 언급되어 있었다고 한다. 화장이 (인위적인 방법으로) 정말 예절’, 즉 규범이 된 것이다. 이쯤 되면 민낯 공포증을 하나의 방어 기제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

 




(출처: APA/FRANZ NEUMAYR, 한국일보)

 

    메르켈 총리와 스티브 잡스의 사진을 보자. 두 사람 모두 항상 비슷한 복장을 고수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반응은 전혀 다르다. 스티브 잡스의 경우, 옷 고르는 시간마저 아끼는 성실한 CEO의 대표적 사례로 항상 언급될뿐더러 패션 아이콘에 등극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의 경우 패션 테러리스트딱지에, 옷이 한 벌 뿐이냐는 비아냥을 받는 등 부정적 반응 일색이다.

 


A: 남자애들은 왜 화장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보이는 걸까?

B: 왜냐면 사회가 남자애들한테는 화장 안 하면 못 생겼다고 하지 않았거든.

(출처: Feminist Apparel)

 

    취업 포털 커리어에서 여성 직장인 422명을 대상으로 화장하는 이유에 대해 조사한 결과, 62.8%체면(품위) 유지를 이유로 꼽았다고 한다. 62.8%의 여성은 화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화장하지 않아서 예의없다는 잔소리를 들은 남성 직장인을 본 적 있는가? 화장을 못해서 모자를 눌러쓰고 등교하는 남학생을 본 적 있는가? 꾸미지 않을 수 있는 것도 권력이다. 남성들은 꾸미지 않아도 괜찮다. 꾸미지 않아도 생긴 그대로 인정받는다. 이게 권력이 아니면 무엇인가? 여성들에게도 직장에서, 학교에서 이런 권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민낯 공포증의 종말을 원한다.


그래서 뭐, 화장하지 말라고?

    난 정말 화장품을 좋아하고 화장하는 과정이 즐겁다. ‘코덕질은 하나의 취미 생활로써 내 삶의 작은 활력소가 되어준다. 하지만 나의 이런 취향이 형성되기까지 사회적 압박의 영향이 전무했느냐고 묻는다면 확답할 수 없다. 내가 즐기는 화장에 억압적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에게 화장이 정말 선택일 수 있을까? 화장을 통한 자기만족에 외모 경쟁력을 갖췄다는 안도감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화장을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 제도적 차별, 자유도의 부재에 대한 고민 없이 자발적 행동이라고 뭉뚱그려버리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 당장의 여성혐오적 발언(‘화장은 남자보라고 하는 거잖아~’)은 받아칠 수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또 다른 억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억압은 타인, 99%의 확률로 여성에게 적용될 것이다.

 

    화장하지 않는 사람만 자신감 넘치는 진정한 페미니스트고 화장하는 사람은 자신감 없는 반여성주의자라고 매도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는 여성에게 실체 없는 미의 기준을 실현하라 강요하는 여성혐오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화장은 가장 손쉬운 방어법이다. 완전한 자율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여성 개인을 탓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문제는 한쪽 성에게만 화장을 의무화했다는 것, 미디어와 뷰티 산업이 이에 발맞춰 여성을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정말 화장을 좋아해서 즐기는 것과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 위축되고 불이익 받는 것, 나아가 맨 얼굴을 택할 권리가 없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브라, 하이힐 등 여느 뷰티 아이템들이 그러했듯이 자유도의 문제다. 그래서, 코덕 동지로서 같이 고민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누가 화장 코르셋을 조이고 있고, 어떤 화장이 코르셋인지를 따질 것이 아니라 화장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나 억압적 성격을 인정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어떻게 전복해야 할지를 같이 고민해봐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정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기표현으로서의 화장을 위해서 말이다.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필자소개

여태껏 내 손으로 덕질한 것 중에 페미니즘만큼 재밌는 게 있었나? 페미니즘에 강하게 치인 새내기 페미입니다.

여름은 노출의 계절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를 위한 노출일까요? 우리는 언제까지 성희롱이나 몰카, 품평을 위해 노출하는 것으로 여겨질까요? 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거울 앞에서 한참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래시가드를 만든 사람은 감방에 처넣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하석진과 노브라로 미친년이 된 설리가 공존합니다. 말하자면 오빠가 허락해준선에서만 노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출처 : 구글)

 

이번 회 여대회담에서는 여성의 패션에 대한 자유를 다루어보았습니다. 여자와 패션 그리고 여대와 패션에 대해 이야기 해 볼 건데요. 그럼 제9차 여대회담, 지금부터 시작해볼까요.

 

 

9차 여대회담: 패션에의 자유

회담진행: 나나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지완: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지완이다. 오늘로 페미니스트가 된지 딱 2년이 됐다.

 

 

Q. 오늘 외출하기 전, 거울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나요?

 

-지완: ‘오늘도 고생 시작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꾸미려면 한두 시간은 걸리니까 거울만 봐도 피곤하다. 오늘 입은 옷은 내가 봐도 참 예쁘고 또 가슴이 파이지 않아 신경도 안 쓰이고 편하다.

 

-나나: 꾸미지 않고 편안한 차림으로 외출할 때에는 어떤지?

 

-지완: 민낯으로 편한 옷을 입고 나오면 움츠러드는 편이다.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내가 너무 후줄근해서 쳐다보는 건가?’, ‘서울 다니는데 너무 안 꾸몄나?’ 이런 생각을 한다.

 

-나나: 가슴이 파이지 않은 옷을 입어서 편하다고 하셨는데, 옷을 고를 때에 시선폭행 때문에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편인지?

 

-지완: 피곤한 날에는 일부러 노출 없는 옷을 고른다. 남자들이 쳐다보면 신경이 곤두서서 더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깊게 파인 브이넥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나갔는데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운전하면서까지 쳐다보더라. 한번은 학교 앞 역에서 한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우후~’라는 소리를 냈다. 내가 ?’라며 소리를 쳤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며 자리를 떴다. 파인 옷을 입으면 저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기분 나빴다.

 

 

Q. 일상생활 속, 특히 어떤 점에서 여성의 패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완: 브래지어와 속바지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내 친구들은 브라 끈이 보이면 부끄러워하며 당장 가리라고 한다. 친구들 때문에 나도 강박이 생겨 한여름에도 브래지어 위에 민소매를 항상 같이 입었다. 지금은 노브라로 다닌 지 두세 달 정도 됐다. 편하다. 친구들은 부끄러워하더라. 나는 아무 생각도 없는데. 그래도 니플 패치는 꼭 붙인다. 하지 않고 명동에 갔다가 심하게 시선폭행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여자는 섹시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가뜩이나 가슴, 브라까지 안 하고 있으니 얼마나 작아 보이는 줄 아냐?’라고 하시며 여자로서의 매력이 반감된다고 하더라. 더워서 안 하는 것일 뿐인데 무슨 섹시얘기까지 나오는지. 가슴이 작으면 노브라로 다니는 게 이상한건가?

 

(출처 : 구글)

 

-나나: 집에서 노브라로 있을 때에는 어떠한지?

 

-지완: 집에선 무조건 브라를 하지 않는다. 내가 아빠나 오빠를 잘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시원해보이게 입고 있으면 조금 눈치를 보게 된다. 말은 안 해도 시선이 있다는 걸 아니까. 친구들은 나에게 집에 남자 형제가 있는데 어떻게 브라를 안 하느냐, 젖꼭지가 다 보이는데 쪽팔리지도 않느냐고 한다.

브래지어뿐만 아니라 속바지에 대한 스트레스도 심하다. 예전에 학교 모 커뮤니티에서 올라온 글이 생각난다. ‘한 여성이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는데 속바지가 다 보였다. 가방으로 가리지 않고 계단을 올라가는 건 예의 없는 짓이다.’ 댓글로도 꼭 가리고 올라가야 한다는 글만 올라오더라. 팬티 보이지 말라고 속바지를 입었는데, 속바지를 또 가려야 한다. 브라랑 똑같지않나. 가슴 가리려고 브라를 했는데 브라까지 가려야 하니까. 온 몸을 꽁꽁 싸매고 다녀야하나? 엄마는 내가 속바지를 입는지 확인한다. 난 속바지 입는 게 너무 싫다. 지금이 32도인데 내가 또 안에 속바지를 입으라고? 그래도 엄마가 왜 걱정하시는지는 잘 알고 있다. 지하철만 타도 몰카를 찍으니 걱정하시는 거다. 어쩔 땐 나도 몰카가 걱정이 되어 속바지를 입는다. 여자라서 몰카의 표적이 될 상황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게 스트레스다.

 

 

Q. 시선폭행으로 특히 불쾌했던 경험이 있나요?

 

-지완: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지하철을 탄 적이 있다. 어떤 할아버지가 나를 계속 쳐다보더라. 그래서 나도 계속 쳐다봤다. 그런데 내가 교통카드를 찍고 개찰구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욕을 하고 도망갔다. 내가 남자였다면, 하다못해 내 옆에 남자친구로 보이는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이런 일은 처음 겪어봐서 충격적이었다. 노출이 있는 옷을 입으면 남자들이 추근대거나 시비를 걸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또 오프숄더를 입었다가 시선폭행을 굉장히 심하게 겪은 일도 있다. 어떤 남자가 내 옆에 앉았는데,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심하게 쳐다보더라. 너무 불쾌해서 자리를 옮겼다. 내릴 때가 되어 버스 손잡이를 잡고 기다리고 있는데, 남자가 나를 계속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몰래 보고 있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피하지 않나. 그래서 내가 일부러 쳐다봤는데도 계속 보고 있더라. 소름끼쳤다. 내리니까 창문으로 빤히 보고 있더라. 무서워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지만 엄마는 뭐 입고 있었는데?’라고 물었다. 오프숄더를 입고 있었다고 하니까 별 반응이 없었다. 서러워서 울었다.

 

(출처 : news1)

 

 

Q. 남성과 비교해봤을 때 패션 자유도가 더 낮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완: 그렇다. 인터넷 쇼핑을 좋아하는데, 모든 쇼핑몰마다 남친이 반했어’, ‘남친이 또 반했어’, ‘남심 흔드는 샤랄라 원피스막 이러고 있더라. (웃음) 정말 모든 쇼핑몰이 다 이런 문구야.

 

-나나: 옷을 구매할 때 그런 문구를 신경쓰는지?

 

-지완: 나는 남자들이 좋아한다는 걸 신경 쓰진 않지만, 그런 문구들을 보면 많은 쇼핑몰 취향이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걸로 맞춰지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안 예쁘다고 생각한 옷들인데, ‘남자친구가 좋아해’, ‘남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해라는 문구로 세뇌를 시키니까 진짜 예뻐 보이나?’라는 생각도 들면서 한 번 더 보게 되더라. 남자들을 반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옷을 입지 않고, 그런 마음에서 최대한 벗어나려 하지만, 완전히 벗어나는 건 힘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원하는 스타일대로 꾸미는 것에 대해서도 자유도가 낮다고 생각한다. 숏컷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 싶은데 여자한테 잘 안 어울린다는 말을 많이 해서 못 자르겠더라. 타투도 하고 싶은데 어머니께서 심하게 반대하신다. 엄마가 허용하는 유일한 문신은 눈썹 문신이다. 항상 여자 몸에는 함부로 새기면 안 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화장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그렇게 입술을 빨갛게 하고 다니면 남자들이 별로 안 좋아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난 빨갛게 칠하는 걸 좋아하는데. 악세사리 또한 이와 비슷하다. 큰 귀걸이를 좋아하는데 이런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튀는 건 별로라며 남자들이 다가가기 편한 수수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

 

(출처 : 구글)

 

 

Q. 패션에 대한 여대 편견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짤이 있지 않나. 여대 다니는 사람이 풀메이크업에 예쁘게 꾸미고 왔을 때에는 역시 여대에 다니는 사람들은 빡세게 꾸미네라고 말하고, 추레하게 다닐 때에는 여자들만 있는 학교 다니는 거 티 내냐?’라는 내용의 짤.

나도 이전에는 여대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명품백만 들고 다니며 사치스러울 것이라는 편견. ‘이대 애들은 어떻고 숙대 애들은 어떻고...’ 루머일 뿐인데 사람들은 그걸 믿더라. 그로인해 여대생에 대한 혐오도 더 생기는 것 같다. 사촌오빠는 내게 여대 애들이 좀 사치스럽지 않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나는 그런 애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애도 있으며, 그건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른 것이라고 답한다. 그러면 사촌오빠는 내 말을 안 듣는다. 원하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니까 갑자기 휴대폰을 하더라. 내가 만약 여대 다니는 사람들은 다 김치년이고 남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백을 사주며, 그 백을 들고 클럽에도 다닌다라고 말한다면 , 그래?’하면서 귀 기울였을 걸? (웃음) 자기가 생각할 때 자극적이고 여대혐오에 적합한 이야기를 해주면 귀 기울이고 아니면 아무 말도 안 한다.

 

(출처 : 구글)

 

-나나: 그렇다면 여대와 패션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지완: 자유로움. 공학에 다니는 학생들보다 패션에 대해 더 자유로울 것 같다. 내가 공학에 다녔다면 시선폭행에 대한 걱정과 스트레스로 힘들었을 것 같다. 여대에 다니면 파인 옷을 입어도 편하게 등교할 수 있다. 브라나 속바지를 입지 않는 것도 용기를 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시선폭행은 일반화가 아닌 팩트다. 보통 일반화라고 말하는 사람은 남자, 즉 그런 시선을 당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여자들은 적어도 한 번씩은 겪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선폭행을 하는 사람들은 노출에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몇 초 보는 건 괜찮겠지라는 생각 같은데, 그런 사람들이 거리에 몇 명씩 있다고 생각해보라. 노이로제 걸린다. 우연히 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시선폭행은 눈이 마주치는 빈도나 시선이 머무는 시간이 다르다. 그런 걸 살면서 여자들이 자주 겪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여대에서는 이런 일을 안겪는다.

또 남자들이 많으면 몰카 걱정을 해야 한다. 이런 말도 일반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남자가 많으면 몰카 설치 비율이 높다. 뿐만 아니라 공학 학교 커뮤니티에는 여자 학우들을 품평하는 글도 올라오더라. ‘오늘 지나다니던 어느 학과 여자 너무 예뻤다라고 공개적으로 쓴 글을 봤는데 아무도 제지하지 않더라. 이런게 아니더라도 빤히 쳐다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시선폭행 때문에 지금보다는 얌전하게 입어야 했을 것 같다.

 

-나나: ‘노출에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완: 그러니까 그들에게 여자는 성적 객체다. 여자를 성적으로 대상화해서 조금만 노출이 있어도 시선폭행을 하는 것이다. 오프숄더가 그렇게 노출이 심한 옷도 아닌데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보니까 어깨만 보여도 시선폭행을 하지 않았나. 지하철 몰카 중에는 노출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반팔 원피스를 입고 있는 사람도 있더라. 그 여성을 몰카로 찍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다리만 살짝 보여도 디지털 성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news1)

 

 

6. 모든 방해물이 제거된다면 가장 하고 싶은 패션 아이템이 특히 있으신가요?

 

-지완: 브라탑, 브라렛에 청바지만 입고 돌아다니고 싶다. 외국에선 브라탑, 브라렛을 단독으로 입고 다니는데 한국은 쳐다보는 시선이 있어서 꼭 티셔츠와 함께 입지 않나. 그리고 팔 전부를 덮는 용 문신을 하고 싶다. 이효리가 공중목욕탕에 갔더니 여자가 몸에 그림을 그렸냐고 지적했다고 하더라. 이런 시선들이 사라진다면 여기저기에 타투를 하고 싶다. 또 투블럭컷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치마를 입었을 때 가방으로 가리고 계단 올라가는 것 좀 안 하고 싶다, 몰카에 대한 걱정 없이.

 

(출처 : 코스모폴리탄)

 

 

7. 후기

 

-지완: 정말 재밌는 시간이었다. 페미니즘에 관심 없는 사람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답답한 반응이 돌아오지 않나? 보여지기 위해 그렇게 입은 거 아니냐는 둥 맨날 도돌이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속 터놓고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여자끼리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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