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나나

제4호: 「프리마돈나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아주 잘 알려진 프랑스 소설가입니다. 그녀의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인데요. 필명 사강은 그녀가 무척 좋아하는 작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출처 : 구글)

 

"나는 베이스볼을 하는 건강한, 그리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청년이 좋아요."

 

사강의 취향은 그녀의 소설에서도 드러나는 듯합니다. 그녀는 중년에서 노년의 여성과 열정이 넘치는 젊은 청년과의 로맨스를 종종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사강의 여성들은 어린 남자들의 열렬한 구애를 받기도 하며, 그들에게 옷과 보석들을 제공해주기도 하고 생활비를 부담해주기도 합니다. 이미 잘 알려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단편 사내놈」, 그리고 「프리마돈나」가 이런 플롯을 갖고 있습니다. 그 중 우리는 「프리마돈나」를 살펴보도록 해요.

 

 

 

<프리마돈나>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당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이유는 당신이 싫어서가 결코 아니에요. 그렇지만 전 당신보다 그이를 더 사랑하고 있어요.”

 

그녀는 프리마돈나, 그러나 늙은 프리마돈나. 그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라카치오를 따라다닌 지는 벌써 6개월이 넘었습니다. '어떤 남자가 늙은 여자의 들러리 노릇을 하기 위해 살고 싶을까!'그는 그녀에게서 최대한으로 뽕을 뽑아낸 뒤 재빠르게 도망쳐버릴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금전상의 궁색함이 그의 화를 억눌렀습니다. 질투일까요? 도대체 그이란 누구란 말인가요?

 

그녀는 항상 그랬습니다. 무대에만 오르면 그녀의 나이나 주름살, 몸무게, 심지어 그마저도, 아니 세 명의 남편이나 서른 명의 애인까지도 모조리 망각해버렸지요. 라카치오는 질투에 빠진 이 남자보다 두 배나 몸무게가 더 나갔고, 나이는 몇 배나 더 많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니 그는 화가 났어요. ‘나는 금발에 아주 멋진 남자란 말이야. 한물간 저 여자는 더 비싼 대가를 치러야해!’

 

이 곡은 내 평생에 꼭 세 번 불렀어요. 그런데 그 때마다 세 번 다 그를 다시 만났어요. 오늘 저녁에도 역시 그가 오면 좋겠어요.”

 

너무나도 풍만하여 음란하기까지 한 그녀의 육체덩어리, 그 육체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저 저속한 관객들을 현혹시켰습니다. 그가 보기엔 아주 형편없었죠. 이제 30분만 있으면 공연은 곧 끝날 예정이니 그에게는 다행이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견딜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무대 쪽으로 신경이 쏠렸습니다. ‘세 번이나 만난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란 말이야?’ 그는 라카치오에게 선택 당했습니다. 그를 선택한 것이 바로 그녀란 말이에요.

 

막이 올랐습니다. 모든 연주자들은 반짝이는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노예이며 시종처럼 보였어요. 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녀를 갈망하고 있었어요. 그러자 그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휘청거렸습니다. ‘그녀가 나이가 많고 뚱뚱하다는 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사람들이 그녀를 원하는 것처럼 나를 원하는 사람은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할까?’ 도대체 그이라는 미지의 인물은 누구란 말인가요! ‘그이는 그를 단숨에 기생충으로 전락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 이야기 속에 나오는 싱거운 말썽꾼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지요. 그는 화를 내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세 번이나 만났다는 그 사람이 누구지?”

 

그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상냥하고 부드럽게 웃었어요.

 

그건 바로 베르디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장 높은 음, 고음 C조예요.”

 

라카치오가 그에게 선물해준 그의 옷이 그의 살갗을 뜨겁게 불태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삼십 초 동안 계속해서 음을 내야 된다는 게 중요해요.”

 

그러고 그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게 갔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어요.

 

그것뿐이 아니에요. 그건 돈으로 살 수도 없는 것이거든요.”

 

(출처 : 구글)

 

 

 

<사강스러움>

 

'저속해!', '형편없어!' 재능있는 프리마돈나 라카치오를 따라 순방길에 오른 그는 잘나가는 그녀에게 불만이 아주 많습니다. 어리고 잘생겼으며 남자답기까지 한 자신이 나이 많고 뚱뚱한 여자를 따라다니며 기생한다는 것이 영 속이 뒤틀렸나 봅니다. 물질적 풍요와 경제적 궁핍을 이유로 그녀의 들러리가 되어 따라다닐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재능과 인기, 당찬 모습을 보고는 깨닫게 됩니다. 더욱이 그녀가 만나길 좋아하는 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자 질투에까지 휩싸이고요. 라카치오는 그런 모습에도 부드럽게 웃으며 ‘C음은 너처럼 돈을 받진 않지라고 태연히 말합니다. 그는 이름조차 없습니다. , 중요하지 않았나봅니다. 30명의 정부 중 하나겠지요. 어찌됐든 어리고 잘생겼으며, 많은 돈과 선물을 들인 젊은 남자들은 C음보다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강은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종종 썼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중년의 여성 폴르와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어리고 철없는 견습 변호사 시몽과의 정사를 그렸지요. 또 단편집 길모퉁이의 카페사내놈에서는 노년의 여성들이 어린 남자들에게 옷과 보석, 생활비를 모두 부담해주며 연애를 하고요. 그러다가 귀찮아지면 다른 부인에게 보내버리는거죠. 그러나 한 청년은 자신을 다른 부인에게 넘기려는 주인(?)에게 괴로운 사랑 고백을 합니다. 그 고백에 그녀는 슬퍼하지만 결국은 신경질 나는 일이야라고 생각하며 잠을 청할 뿐입니다.

 

우리는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의 로맨스는 질리도록 봐 왔습니다. 사강은 그런 뻔한 스토리에서 남자와 여자의 입장을 전도시켰지요. 그녀의 취향에 걸맞는, 건강하고 아무 생각이 없는 남자로는 아무래도 어린 편이 좋았나봅니다. 그러나 이런 등장인물 설정이 몇 번 반복되자 너무나 사강스럽다거나, 사강의 매너리즘에 빠진 감이 있다는 평이 있었어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대한 한 서평을 살펴볼까요.

 

"사강의 만네리즘에 빠진 감도 없지 않으나 호의를 가지고 보면 개성적인 분위기를 견지"(프랑수아즈 사강, 방곤·김정수 옮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마음의 푸른 상처, 성도문화사, p.6.)

 

하지만 우리는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 로맨스에서는 어떠한 매너리즘을 찾지는 않아요. 그만큼 나이 많은 여성의 입장에서 자신보다 어린 남자와 연애하는 이야기가 새롭고 이색적인 것처럼 느껴졌던 것일까요?

 

한편 아쉽게도 사강의 여인들은 나이 어린 청년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이성적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녀들은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나이를 깨닫고 떠나보내거든요. 라카치오의 경우를 볼까요? 우리가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를 보고 라카치오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맙소사, 저이가 서른 살이라니! 날씬하고 또 거기에 미남이고 보니 그 어느 이란공주의 사랑도 받을 수 있을거야. 이 쭈글쭈글하고 분장을 하고 땀으로 온통 엉망이 된 얼굴로 어떻게 감히 그에게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을 수가 있단 말이지?"

 

마찬가지로 같은 단편집의 「사내놈」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의 여성들도 이렇게 느끼지요. 이런 점에서 사강의 매너리즘이란 다름 아닌 아름답고 능력있지만 여성의 나이라는 굴레에서는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사강의 한마디>

 

"위스키와 도박, 페라리가 집안일보다 낫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을지는 몰라도, 버스를 타고 우느니 재규어를 타고 울겠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참고문헌>

 

프랑수아즈 사강, 이환·이평우 옮김, 슬픔이여 안녕 / 어떤 미소, 성도문화사.

프랑수아즈 사강, 방곤·김정수 옮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마음의 푸른 상처, 성도문화사.

프랑수아즈 사강, 장재형 옮김, 길모퉁이의 카페, 성도문화사.

프랑수아즈 사강, 길해옥 옮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여백.

위키페디아 프랑스, https://fr.wikipedia.org/wiki/Fran%C3%A7oise_Sagan.

 

 

 


 

나나

“사내아이를 낳아야 했어, 그래야 그럭저럭 살아 나가기 쉽고, 이 파리에서 수많은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야.” 내가 태어난 날 우리 엄마가 나를 보고 되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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