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나이키)



 요가를 좋아하는 나는 이번에 NI** 요가복 신상을 보고 눈이 뒤집어져 버렸다. 가볍고 빨리 마르는 재질, 예쁜 디자인은 나 같은 충실한 구매자의 욕구를 끌어오기 딱이었다. 거기에다 다양한 인종과 체구의 모델들을 내세우는 광고와 강한 여성들을 내세우며 성차별에 반대하는 광고들을 통해 페미니즘의 가치를 표방하는 나이키는 페미니스트인 나에게 딱이었다. 


이렇게 나는 NI**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어느 날 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것도 꽤 오래 전 기사인데, NI**가 제3세계 여성과 아동의 저임금 노동을 통해 자신들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인권유린과 노동착취를 통해 제품이 생산되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내가 여태껏 소비했던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든 내러티브는 기만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물건을 살 때, 그 물건이 정말 필요해서 살 때도 있지만 대부분 우리는 그 상품에 둘려싸여진 내러티브에 매혹되어 구매한다.  예를 들어, 커피를 마실 때, 우리는 커피라는 상품 자체가 필요해서 사기도 하지만 커피를 둘러싼 여러 내러티브들을 함께 소비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커피한잔’, ‘친구와의 모임에서 빠질 수 없는 커피’, ‘카페에서 커피한잔 시켜놓고 공부하기’ 등의 내러티브 말이다. 


이렇듯 내가 NI**를 소비하는 데에는 운동복이 필요했던 것 이상의 무언가가 나를 소비하게끔 이끌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I run like a girl’이라고 쓰여있는 옷을 입어줘야 좀 더 전문적인 운동인처럼 보이는 동시에 충실한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페미니즘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이러한 기업들의 상품을 사면서 사실은 페미니스트적인 삶을 ‘소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어두운 제조과정을 보지 않게 하고 기업들은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조금 더 페미니스트적인 방식으로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선진국 여성들 혹은 자본을 가진 여성들에게 소비를 통한 자유와 해방감을 주기 위해 제 3세계 여성들의 값싼 노동력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로 인한 자유로운 자본과 노동, 기술의 이동은 기업들로 하여금 값싼 제 3세계의 노동, 그 중에서도 더 값싼 여성과 아이들의 노동력을 통해 비용절감을 가능케 한다. 정작 이런 기업들의 제품을 만들고 있는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은 소비주의를 누리는 소수의 여성들의 세계에 끼어들 자리가 없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가 시장에서 모든 것을 잠식해버린 결과 페미니스트 정체성은 일종의 소비주의적 정체성이 된다. 이는 실로 꽤 돈이 많이 되는 정체성이다. 이렇게 페미니즘이 기업의 이윤을 내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것을 ‘마켓 페미니즘’이라고 부르는데, 마켓페미니즘의 문제점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마켓페미니즘을 내세워 홍보하고 판매하고 있는 기업들이 제 3세계 여성의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3세계 여성들의 존재를 지워버린다는 점에 있다. 즉, 여성해방을 외치는 페미니즘의 문법으로 또 다른 여성들을 억압하는 것이다.



기업과 소비자가 힘을 모아 좀 더 평등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는 아름다운 환상에 취해있던 나는 이제 각성하고 더 이상 이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사실 이런 현실을 이미 포착한 많은 서구의 인권단체들은 제 3세계 여성과 아이들의 노동착취에 항의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들의 제품들을 사지 말자는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매운동을 한다고 현실은 더 나아지지 않는다. 서구의 의류 불매운동을 통해 일자리를 잃어버린 3세계 여자아이들은 24시간 집안일을 하거나 아니면 창녀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혹은 굶어 죽었을 수도 있다. 이렇듯 서구의 온정주의적인 선의의 제스처가 잔인한 아이러니로 드러나고 있다. 



<사진출처: fhttp://fashion2-013.blogspot.kr/2012/12/hippie-fashion.html>


그렇다면 제 3세계 여성들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다국적 대기업의 이윤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전통의상이나 전통예술품을 제작을 한다면, 이는 대안적 행동이 될 수 있는가?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가야트리 스피박은 그녀의 책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에서 제 3세계 여성들이 수제로 자국의 전통의상이나 전통 예술품을 만드는 행위들이 그녀들에게 예술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을 부여해주고 있지만 그들이 만드는 작품을 누가 입고 누가 소비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제 3세계의 ‘에스닉’ 복장을 서구 여성들이 걸치며 정치적인 올바름과 취향을 소비하는 것이 되어 1세계 부르주아 여성들의 나르시시즘을 만족시킨다며 스피박은 비판한다.  


체제와 체제에 대한 부정의 완벽한 일치

자본주의 체제가 진보하면서 새로운 민족을 식민화하고, 새로운 인종집단을 자본주의 노동시장으로 수입하고, 노동의 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자본주의를 새로운 유권자들에게까지 확장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서, 자본주의 체제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보편주의적 합리성을 손상시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제는 다양성과 차이까지도 포용하면서 자본주의는 자신의 외연과 내연을 넓혀가며 모든 것을 시장으로 귀결시키도록 한다. 다시 말하자면, 현대사회에서 다양성과 차이라는 것들은 어느 수준에서는 자본주의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페미니즘을 하고 있었나?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로써 여성들이 일한다는 사실 자체에 기뻐하기보다는 여성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어떤 이해관계 속에서 일하는가를 질문해야 함을 깨달았다. 가부장제뿐만 아니라 계급적 이해관계 또한 여성들의 삶을 직조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이 여성들의 삶에 억압의 굴레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구체적인 페미니즘 운동에 염두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애와 평등, 자유라는 아름다운 이미지 뒤에 숨어있는 정치적 책략들에 대해 페미니스트로서 지속적으로 의문을 품어야만 한다. 심지어 그것이 페미니즘의 외연을 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에 대한 대안을 찾기를 위해서는 섣불리 ‘페미니즘을 어떻게 실천할까?’라는 자기만족적인 질문보다는 잠깐만 뒤를 돌아보고 내가 지금 어떤 페미니즘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추구하는 페미니즘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어떤 교차로에 서 있는지를 계속해서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출처>


임옥희, 『타자로서의 서구』, 현암사, 2012

테리 이글턴, 김준환 역,『포스트모더니즘의 환상』, 실천 문학사, 2000

김혜련, 『아름다운 가짜, 대중문화와 센티멘털리즘』, 책세상, 2005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www.anotherworld.kr

마켓페미니즘에 관한 기사: https://newrepublic.com/article/132991/feminism-sal


<사진출처> 

나이키

구글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www.anotherworld.kr

http://fashion2-013.blogspot.kr/2012/12/hippie-fashion.html








필자 소개: 슬이 슬이 마슬이


깨달음에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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