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은 페미니즘, 외롭지 않은 덕질 ; 페미바순허브와의 인터뷰

By.광개토女



via.구글


 슬프게도, 페미니스트는 외롭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모두 웃을 때 홀로 웃지 못하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비유에 홀로 의문을 갖는다. 주변 사람들은 둔해지라고 말한다. 어떻게 둔해질 수 있단 말인가? 페미니즘을 안 이상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페미니스트인 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여성혐오가 숨 쉬듯 벌어지는 한국사회에서(지구에서?) 페미니스트는 다수일 때보다 소수일 때가 더 많고, 자주 혼자됨을 경험한다. 국립국어원은 외롭다라는 형용사를 홀로 되거나 의지할 곳 없이 쓸쓸하다고 설명했다. 국립국어원이 페미니스트에 대해 내린 정의인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보다 외롭다의 정의가 더 정확하게 페미니스트를 설명하는 것 같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에게 연대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거창한 목적과 행동의식을 가지고 모이지 않더라도, 홀로 싸우고 있는 게 아니란 걸 확인하면 개인은 더 강해진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거야라는 슬로건은 이런 페미니스트의 상황을 잘 말한다. 페미니스트는 모여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165월 등장한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을 시작으로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내 아이돌의 여성혐오 여부가 뜨거운 감자였다. 팬덤 내 젠더 감수성 상승은 콘텐츠의 변화로 이어졌다. 마마무의 소속사는 논란됐던 뮤비 데칼코마니를 유튜브 계정에서 내렸고, 빅스 라비는 자신의 솔로 앨범 타이틀 곡 뮤비 ‘BOMB’에 대해 사과했다



마마무의 소속사 RBW는 타이틀곡 '데칼코마니' 뮤비 속 데이트폭력 장면을 삭제하고 재업로드했다.

via.마마무

페미니스트들을 공격하던 팬들이 자기 아이돌의 책장에 맨박스가 꽂혀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빠지다가도, 팬덤 전반이 페미니즘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는 건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현 시점에서 아이돌 팬은 문화예술 소비자들 중 가장 활발히 페미니즘을 논의하고 있다. 지금도 페미니스트 팬들은 아이돌에게 페미니즘 서적을 서포트 하기 위해 모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공론화 과정에서 벌어진 페미니스트 팬을 향한 사이버불링과 오프라인 린치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알계와의 분투 속에서 홀연히 등장한 한 트위터 계정은 홀로 외롭게 싸우던 페미니스트 팬들에게 안정을 주었다. 저기에 가면 우리가 된다는 희망, ‘-한 페미-바순들의 안식처를 자칭하는 페미바순허브의 등장이었다.



페미바순허브 로고

via.페미바순허브


 ‘페미바순허브는 페미니스트 팬들이 정치 세력화할 온라인 기반을 제공함은 물론, 페미니스트 팬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었던 페미바순파티와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에서 가진 전국페미바순대집회까지 오프라인에서의 활동도 이어 나가고 있다. ‘페미바순허브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궁금하다. 과연 페미바순허브에서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수 있을까?

 



Q.‘페미바순허브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페미바순허브는 페미니스트 팬들을 연결하고 의견을 나누는 허브다. 페미니스트 팬들이 좋아하는 그룹/개인(아이돌, 배우, 모델 등)DM(direct message)으로 보내면 해당 그룹/개인 리스트에 등록한다. 리스트를 통해 페미니스트 팬들은 서로 친목을 도모할 수 있고, 좋아하는 장르의 여성혐오적 발언이나 그러한 콘텐츠를 지적·연대할 수 있다. ‘바순이 원하면 언제든지 새로운 리스트를 작성하며, 리스트에 등록하지 않아도 누구나 열람해 페미니스트인 팬들과 친해질 수 있다.

그밖에 새로운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이 생기거나 페미니스트 팬에 대한 사이버불링 등의 사건이 생기면 쉽게 연대할 수 있도록 리트윗을 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페바헙 파티’,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에서 주최한 페밋-테이블참가 등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허브가 실체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여러 활동을 기획, 진행 중에 있다.

 


Q.‘페미바순허브계정은 언제, 어떻게, 어떤 이유로 만들게 되었는가?

20164월부터 남자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여성혐오적 콘텐츠(가사, 공식 트위터 멘션)에 대한 피드백을 요구하는 운동을 했다. 167월 경,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로부터 여성혐오 콘텐츠를 지양하겠다는 내용의 공지를 공식적으로 받았다. 문제되는 트위터 멘션은 삭제하지 않은 점, 여전히 문제가 되었던 노래가사를 수정하지 않고 부른다는 점, 피드백을 동아일보에서 기사화한 이후 팬클럽에만 올렸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긍정적인 피드백이었다.



via.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란화 계정


1610, 방탄소년단의 컴백 트랙리스트가 공개되었고 ‘21세기소녀라는 제목의 노래를 확인했다. 제목을 보고 여성혐오적이라고 생각했다. 소녀를 대상화하고 있는 제목이라고 느꼈다. 이에 대해 개인 트위터 계정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아직 가사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너무 섣부른 것 아니냐, 왜 소녀가 여혐이냐, 팬 맞냐, 탈덕해라등등 욕설 섞인 다수의 멘션이었다. 그들과 일일이 싸우던 와중 나와 뜻을 같이하는 아이돌 팬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리트윗과 디엠으로 응원을 해주고 의견을 내는 등 같이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과 맞팔을 하고 트친소(트위터 친구 소개)를 대대적으로 했다. 서로 연결해주는 일만 세 시간 정도 하다 보니 아예 아이돌 팬 페미니스트 트친소 계정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은 아이돌 팬 트친소가 목적인 계정이었지만 배우, 모델 등 다양한 장르로 확장했고, 운영진을 추가 모집한 현재는 활동 영역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Q.‘페미바순허브계정을 운영하면서 겪은 사건들 중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최근에 페미바순허브의 이름에 들어가는 '바순'에 대한 논의가 의미 있었다. 페미'바순'허브 라는 이름으로 계정을 운영하면서 빠순이가 팬덤 외부에서는 멸칭으로 쓰이지 않느냐, 모든 젠더를 포괄하지 못하는 말이 아니냐라는 의견들이 나왔고 이에 대해 팔로워들(혹은 이 논의를 우연히 접한 사람들)과 페바헙을 태그하여 의견을 보내는 형식으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페미바순허브'에서 '바순'이란 용어를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여러 의견(위)과

'페미바순허브' 운영진의 입장(아래).

via.페미바순허브


운영진들은 팬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빠순'이라 호명하고 긍정적으로 전유함으로써 단어가 가진 비하를 전복할 수 있고, 여성형 단어인 '빠순'이 성별 상관없는 단어로 확장되는 데에도 의의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 의견에 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빠돌이'''가 바로 여성형 단어에서 젠더 상관없는 단어로 확장된 전례라며 충분히 '빠순' 또한 확장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논의에 참여하지 않은 분들도 페바헙이 던진 논의 주제를 통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논의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페미바순허브가 가진 공론장으로서의 가능성을 보기도 했다. 페미바순허브가 단순히 페미니스트인 팬들을 묶는 역할 뿐 아니라 공론을 열어줄 수도 있고 이들의 목소리를 퍼지게 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역할 가능성을 보았다.

 


Q.‘페미바순허브계정을 운영하면서 많은 애로사항을 겪었을 듯하다. 운영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자금 문제가 크다. 무슨 행사를 하던 돈이 든다. 온라인에서 리트윗 이벤트를 하려고 해도 돈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 자금을 운영진이 부담하는 건 모순인 것 같다. 수익성이 있으면서 의미 있는 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콘텐츠는 무엇인지, 또 돈이 들지 않으면서 진행할 수 있는 이벤트는 무엇인지 계속해서 논의하고 있다.

또 개인들을 모아 놓은 허브이니만큼 페미니스트끼리도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은데 이걸 페미바순허브에서 어떤 식으로 조율하고 담론을 이끌어낼지, 또 트위터가 그런 일에 맞는 매체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페미바순파티 PPT 이미지

via.페미바순허브



Q.‘페미바순파티라는 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해 개최한 것으로 알고 있다. ‘페미바순파티를 개최한 이유는 무엇인가?

공론화 계정들이 하나 둘씩 목소리를 잃어 가고, 지속되는 사이버불링으로 인해 페미니스트 팬들이 위축되어 갈 때 파티를 하자고 생각했다. 단순히 온라인으로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우리가 연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서로 외롭게 싸워오던 분들이 많아서 다 같이 더 친해지고 그동안의 괴로움을 풀 기회를 만들기 위해 행사를 기획했다. 무엇보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았다.

 


Q.행사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행사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어땠는가?

페미니스트 빠순들만이 할 수 있는 게임이나 이벤트를 생각했다. 도착하는 순서대로 준비된 아이돌 이름표를 랜덤으로 뽑아 닉네임을 정했고, 조를 짜서 각 조마다 한명씩 나와 그 사람의 본진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맞추기 놀이를 했다. 그 다음은 한명씩 아이돌 춤을 추어서 해당 노래를 맞추기를 했다. ‘아이돌 혐오발언 어워즈는 행사의 백미였다



페미바순파티에서 개최한 '아이돌 혐오발언 어워즈' 각각 노래, 방송, 팬사랑 부문 후보에 올랐던 그룹과 혐오발언들.

이외에도 다양한 그룹들과 다양한(?) 혐오발언들이 후보에 올랐다. 

via.페미바순허브

방송, 노래, 팬 사랑 부문으로 나누어서 각 분야 혐오왕을 뽑았다. 참고로 1회 수상자는 인피니트이다. 생각보다 다들 긍정적인 평가를 주셨다.


 

Q.행사를 진행하면서 느낀 어려움이 있다면?

참가자를 신청 받는 과정에서 사이버불링 위협이 있었다. 파티 신청을 처음 받을 때 참가 희망자의 계정을 폼으로 신청 받고, 희망자에 한해 프로텍트 계정으로 초대해 다시 신청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 했음에도 불구하고 참가 희망 의사를 밝히신 분의 Ask(익명질문)계정에 오프에서 보자는 내용의 사이버불링 협박이 있었다


via.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사이버불링' 항목


당시 린지님 등 사이버불링에 대한 불안이 극에 달해 있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행사를 중단할지 고민이 많았다.[각주:1] 실제로도 파티 시작 전까지 참가자가 페미니스트인지확인하는 방식에 대해서 골머리를 앓았다. 한번 중단할 뻔한 뒤로 급하게 준비한 파티였기 때문에 예산 책정 부분이나 계획 부분이나 구멍이 좀 있었다. 다음 파티 때에는 조금 더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으면 한다.

 


Q.‘페미바순허브계정 운영진이 바라는 페미니스트-바순이 문화는?

아이돌 산업 내 여성혐오 이슈가 대두된 지는 꽤 시간이 지났고, 페바헙 팔로워가 2000명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도 늘었다. 다만 아직도 많은 바순들이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여성혐오에는 귀를 막아버리거나 이런 저런 핑계를 붙여가며 합리화 하는 등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면 싫어하는 아이돌이 여성혐오를 드러내면 눈에 불을 켜고 비판을 하기 바쁘다.



via.구글



'페미빠순판'의 내부자로 있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 이런 '선택적 페미니즘'을 하는 바순들을 볼 때이다. 나는 이 현상이 바순들이 본인과 가수를 동일시하고,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여성혐오로 비판받으면 마치 자기가 욕을 먹은 것처럼 가슴아파하고 상처받는다. 이 때문에 팬덤 내 사이버불링이 일어나기도 한다.

많이 걸어왔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이돌 팬들도 트위터라는 매체 속에서 여성혐오 이슈를 접하고 페미니즘을 배워가고 있다. 하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돌은 비판하지 못하는 선택적 페미니즘을 한다면 페미빠순들의 목소리는 억압받을 수밖에 없다. 팬들이 본인과 가수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좀 더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판단하여 페미빠순들의 목소리를 크게 해줬으면 좋겠다.

페미바순허브 트위터 계정의 헤더 이미지

via.페미바순허브



Q.‘페미바순허브계정의 앞으로의 운영 계획은?

그동안 페바헙은 조용히 페미빠순들을 연결해주고 연대하기만 하는 계정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초반과 다르게 굉장히 많은 페미빠순들이 페바헙을 팔로하고 페미빠순 리스트에 등록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필요성을 느낀다. '전국디바협회'가 다양한 온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여성 페미니스트 게이머를 가시화한 것처럼 많은 페미빠순들이 모여 있는 허브에서도 페미니스트 팬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페스티벌인 페밋이 주관한 토크테이블 페밋-테이블에 참여한 것도 이런 생각의 일환이었다. 페밋-테이블 참여를 기점으로 기사를 기고하거나 페미바순파티2, 아이돌 팬 페미 스터디 등 여러 온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해 페미빠순을 가시화하고 고여 있는 물을 순환시키고 싶다.



※페미바순허브에서 제공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페미바순허브에 있습니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NCT와 아이유입니다.  

 

  1. 샤이니 팬덤 내에서 혐오에 대해 지적한 팬(린지님)들을 사이버불링한 사건. ※참고 : 5.팬덤이 허락한 페미니즘 ;진정한 페미니스트를 찾아서 http://weolganyeogi.tistory.com/44 [본문으로]

우남빻덕에게-이 목소리가 너에게 닿기를!

By.광개토女


 


빻았다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물론 여기서 말할 빻았다가 사전적 의미의 물기가 없는 것을 짓찧어서 가루로 만들다는 아니라는 걸, 꼭 헤비 인터넷 유저가 아니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외모를 비하하는 의미의 은어로 빻았다를 사용하고 있다.

빻았다가 인터넷 대중들 사이에 확산된 건 프로듀스 101가 방영된 이후다. 일부 사이트에서 출연진이자 프로듀스 101의 센터 멤버였던 최유정의 외모를 보고 빻유정이라는 별명으로 부른 것이 확산되어 일종의 밈이 되었고, 이후 여자 아이돌들의 이름이나 그룹명 앞에 외모를 조롱하는 의미의 을 붙이는 데 서슴없어졌다. 현재도 포털 사이트에 빻았다라는 동사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여자 아이돌의 이름이나 그룹명이 따라 붙는다.

걸그룹에 대한 공개적인 외모 조롱은 최근 있었던 걸그룹 우주소녀의 남자팬들, 소위 말하는 우남빻덕의 무례한 행동에서 정점을 찍었다. 스타쉽의 13인조 걸그룹 우주소녀는 지난 14일 세 번째 미니 앨범인 From. 우주소녀를 발표하고 타이틀 곡 너에게 닿기를로 활동했다. 몽환적인 이미지와 색감의 향연인 뮤비와 발랄한 멜로디의 타이틀 곡은 대중들에게 여러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219일에 있었던 대구 팬사인회에서 멤버 은서가 눈물을 터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사인을 받던 남자 팬이 외모를 비하할 목적으로 ‘(너와 닮은) 축구선수 즐라탄을 아냐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16년 8월 부산에서 있었던 우주소녀의 팬사인회 영상.

한 남성 팬이 멤버 은서에게 '즐라탄'을 아냐고 묻고 있다.

(출처 : https://youtu.be/O_r3ANMhmoY )




 

이는 우발적으로 행해진 장난이 아니었다. 28일에 업로드 된 이 영상에는 168월 부산에서 진행된 팬사인회에서 한 남성 팬이 축구선수 즐라탄을 아냐고 묻고, 은서가 누구냐고 되묻는 끝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담겨있다. 질문을 하자마자 행사장 곳곳에서 터지는 남자 팬들의 웃음소리는 팬덤 내에서 은서가 오랫동안 외모를 비하당해 왔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우주소녀 팬덤은 놀랍게도 두 의견으로 갈라졌다. 팬들을 만나는 장소인 팬사인회에서 운 은서가 프로답지 못하다는 비판이 인 것이다. ‘일부팬들은 본인들이 누리던 여성의 외모를 조롱하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한 채 은서가 예민하다’, ‘장난을 받아줄 줄 모른다등 엇나간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급기야는 그날인가보다라는, 여성의 의견을 묵살하기 위해 곧잘 사용되는 혐오성 짙은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우주소녀의 일부팬들의 발언을 지켜보던 다른 아이돌 팬들과 우주소녀 팬들은 이들에게 우주소녀 남자 팬들 빻았다라는 의미로 우남빻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걸그룹의 외모를 비하하기 위해 사용되던 빻았다가 남자 팬들의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짧은 생각, 가꾸지 않는 외관을 비하하기 위해 역으로 사용된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16년 3월 26일 대구 동성로 게릴라 콘서트에서

'심쿵빻파워'를 해달라는 팬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최유정의 모습.

연예인이라고 해서 외모비하적인 농담을 웃으며 받아주고 수용해야할까?

(출처 : https://youtu.be/fSKflH0m350 )


 



-’은 남자 아이돌의 이름 앞에는 붙지 않는다. 남자 아이돌 팬덤 대부분을 형성하는 여성 팬들은 빻았다라는 말이 외모를 조롱하는 의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난으로라도 외모를 조롱하는 일이 바람직하지 못하단 합의가 팬덤 내에 자리 잡고 있다. 남자 아이돌을 향한 빻았다는 음성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팬덤은 누군가 남자 아이돌에게 빻았다고 발언하면 교정을 넘어서 사이버 불링에 해당하는 린치를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여자 아이돌과 은 친하다. 앞서 언급한 최유정은 오프라인 행사에서 직접적으로 팬에게 빻았다에서 파생된 심쿵빻파워를 보여달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는 당시 최유정의 팬덤이 빻유정에 대항하려 선택한 방식이 빻음을 인정하고 귀여움이라는 의미로 단어를 희석시키는 정도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유정이 이후 본인의 외모에 낮은 자신감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장난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팬들은 계속 존재한다.







나무위키 '최유정' 항목 외모 파트

여전히 '못생겼다'는 외모비하가 장난이라고 주장한다.

(출처 : https://namu.wiki/w/%EC%B5%9C%EC%9C%A0%EC%A0%95 )

 





여자 아이돌이란 직접적으로 외모를 지적하고 네가 귀여워서 그런다고 얼버무릴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마치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를 괴롭히면 너를 좋아해서그러는 것이라고 여자아이를 되려 가르치려 드는 행태와 유사하다. 이런 젠더에 따른 차별을 인지한 몇몇 팬들은 운동적 차원에서 남자 아이돌을 향해 일부러 빻았다는 단어를 쓰길 고집하기도 한다.

아이돌 그룹과 팬 사이에는 항상 엎치락뒤치락하는 미묘한 권력구도가 존재한다. 팬들은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곤 하면서, 동시에 아이돌에게 무섭게 상품일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성 비율이 높은 팬덤을 가진 걸그룹과 팬덤 사이에서는 오직 팬덤이 우위인 구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프로듀스 101출연 당시 김세정의 남자 팬이 세정의 서포트 돈을 모금 받으면서 아이패드는 사주지 말자, 버릇이 나빠진다라고 발언했던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그가 진행한 서포트 물품 가격이 입금됐을 거라 예상하는 금액에 한참 못 미치자 서포트에 참여 했던 사람들이 해명을 요구했고, 일부 물품과 비용을 서포트 진행자가 횡령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이후 사과문에 나이도 자신과 비슷한 세정에게 많은 돈이 서포트 비용으로 입금 되는 것이 배가 아팠다고 전했다








당시 DC 김세정 갤러리에 올라왔던 글들

(위) 서포트 총대 (아래) 서포트 참여자이자 김세정의 팬




당시 모든 팬들을 분노케했던 총 350만원 어치의 서포트 물품 사진

(출처 : 구글 )





남자 아이돌 팬덤이 서로 어떤 비싸고 귀한 물건을 선물하는 지 경쟁하는 것과 달리, 여자 아이돌 팬덤은 아이돌의 필요와 기쁨보다 팬인 자신이 잘난 여성을 해체하는 기쁨을 더 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판매자와 소비자의 구도보다 젠더권력이 더 강력하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남성젠더에 더불어 소비자 권력까지 얻은 남성 팬들은 걸그룹에게 팬사인회나 공개방송 등에서 네가 나에게 잘 해주지 않으면 팬을 그만 두겠다는 협박을 수시로 가하고, 언어폭력이나 다름없는 모욕적 언사를 하고도 자신을 향해 웃어주길 요구한다. 자신이 가한 폭력은 그저 장난으로 얼버무리고 피해자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책임의 화살을 돌린다.

이런 젠더 폭력적 만족감을 구하는 남성의 모습은 아내를 폭행하는 남편의 모습과 유사하다. 경제력을 끊어버리겠다는 협박으로 아내를 구속하고, 아내에게서 성적 만족감을 얻는 동시에 폭력이 주는 우월감을 얻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자 아이돌은 자신의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재능을 판매하고 있을 뿐인데, 가정폭력과 유사한 폭력에 실제로 노출되고 있다.


 


걸그룹을 좋아하는 여성 팬들과 멤버들 사이에는 독특한 유대관계가 있다. 이 유대관계는 여덕(여자 팬)이 더 늘어야 한다는 소망에서 기인한다. 걸그룹 여성 팬들은 팬질을 위해 남성 팬들에게 번호를 달라거나 함께 식사를 하자는 추근거림부터 성희롱과 폭력을 감수하기도 한다. 많은 걸그룹 여성 팬들이 남성 팬들의 폭력에 질려 탈덕하기도 한다. 각종 행사에서 신체 및 외모비하, 행동교정, 조롱을 당하는 걸그룹 멤버들을 생각해보면 멤버들과 여성 팬 사이의 유대관계는 당연함을 넘어서 필수적인 여성연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남자들은 아이돌 팬질을 할 기쁨조차 누릴 수 없다는 말이냐!’는 볼멘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우남빻덕이 도래한 지금, 남성 팬들은 본인의 덕질 원동력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기쁨에서 오는지, ‘어리고 예쁜 여성을 비하하는 즐거움에서 오는지 돌이켜 볼 때이다. 물론, ‘일부빻은 남성 팬들에 한해서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세일러문 크리스탈과 오마이걸입니다.

 


역사를 잊은 여돌에게 미래란 없다

by.광개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필자가 이 말을 처음 들은 것은,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여덟 살짜리 초등학생들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게 할 때였다. 이 말은 이후로 역사 시간이나, 역사적인 날이나, 발화자가 역사적이라고 믿고 싶은 날이나, 기타 등등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줄기차게 소환됐다. 배울 점을 찾아볼 수 없는 말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하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어려운 점이 많다정도의, 소소한 인생의 덕담 정도로 치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민족의 책무를 추궁하는 방망이가 특정인에게 과격해짐을 목격한다.



티파니의 2차 손글씨 사과문

(사진 출처 : OSEN http://osen.mt.co.kr/article/G1110485060 )



역사를 잊은 민족에 대한 푸닥거리가 대대적으로 이뤄지는 815일 광복절이 올해도 돌아왔다. 올해의 희생양은 소녀시대 티파니였다. 그는 일본 공연을 마치고 자신의 SNS에 사진을 한 장 올린다. 이 사진은 특정 앱의 보정을 거친 사진으로, 앱은 GPS에 따라 사진을 업로드한 위치에 어울리는 스티커를 자동으로 부착한다. 티파니의 사진에는 일본 전범기를 떠올리게 하는 스티커가 붙었다. 사람들의 반응에 문제를 깨달은 티파니는 사진을 3분 내에 삭제하지만 대중은 용서하지 않았다. 티파니는 그 뒤로 수기로 쓴 사과문을 두 번 작성해야 했으며, 끝내 출연하던 프로그램인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하차했다.

최근 KBS 프로그램에서는 장동민도 하차한 바 있다. 장동민은 팟캐스트 방송에서 개보년등의 심각한 여성혐오 발언을 하고도 방송에 계속 나왔지만,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한부모 가정 자녀를 희화한 꽁트 이후 두 번이나 논란을 일으킨 연예인을 공영 방송에 출연시킬 순 없다KBS 측의 입장과 함께 당시 출연하던 KBS <나를 돌아봐>에서 하차했다. 이후로도 그의 하차에 부당하다는 의견이 유상무 등 동료 연예인과 네티즌들에 의해 꾸준히 제시되었고, 몇몇 프로그램에서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한국 사회는 여자 아이돌들에게 어느 수준인지 명확하지도 않은 역사적 지식을 갖추길 강요하고

그러지 못한 이들에게 미래가 없다고 협박 중이다.



티파니와 장동민의 공통점은 그들이 연예인으로써 물의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그러나 장동민이 직업인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며 공적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방송에서 벌인 실수(‘실수라고 말할 수 있다면)와 티파니가 개인적인 계정에 전범기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벌인 실수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엄밀히 말해 사진에 붙은 스티커는 전범기를 떠오르게 하는 이미지였을 뿐, 전범기도 아니었다. 더불어 장동민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한부모 가정을 모욕했지만, 티파니가 모욕한 것이 무엇인지는 애매하다. 티파니와 장동민은 모두 KBS 프로그램에서 하차했지만 티파니가 장동민과 같거나 비슷한 무게의 물의를 빚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역사의식의 부재가 문제가 되어 사과하는 여자 아이돌의 모습은 익숙하다. 바로 몇 달 전에도 AOA의 지민과 설현이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뭇매를 맞았다. 결국 두 사람의 눈물이 기사화되고 나서야 비난여론은 사그라들었다. 13년도 가장 뜨거운 걸그룹 중 하나였던 시크릿의 전효성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의 발언이 일베 유저일 것이란 의혹을 일으킨 후, 급격히 주가가 추락하기도 했다. 이 역시, 일베 유저임을 계속해서 의심받고 있는 랩퍼 블랙넛이 방송과 음원 순위에서 승승장구하는 일과 비교된다. 한국 사회는 여자 아이돌들에게 어느 수준인지 명확하지도 않은 역사적 지식을 갖추길 강요하고, 그러지 못한 이들에게 미래가 없다고 협박 중이다.

 


보호를 외치는 소수자들에게 엄격한 도덕적윤리적 잣대를 대는 것은 강자가 가진 권리 중 하나이다.

 


메갈리아가 생긴 이후 여러 노선으로 갈라진 한국 페미니즘 운동들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고분고분하게 말하라거나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비난한다. 특히 메갈리아가 사용하는 워딩이 여성혐오에 기반한 미러링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성혐오적 언어를 양산한다며 비윤리적이라고 말한다.

이는 별로 특별하지 않은 광경이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시위를 하거나,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거리로 나설 때에도 왜 보다 점잖고 품위 있는 태도로 나오지 않냐고 묻는 이들이 있었다. 보호를 외치는 소수자들에게 엄격한 도덕적윤리적 잣대를 대는 것은 강자가 가진 권리 중 하나이다. 티파니와 장동민이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무게가 다른 문제를 일으켰음에도 같은 처분을 받은 것은 티파니가 여자 아이돌이란 점과 무관하지 않다. 국가기관장이 워크샵에서 천황폐하 만세 삼창을 부르는, 치명적인 역사의식 부재를 노출하는 일은 징계도 아닌 경고에 머물렀다. 그러나 여자 아이돌의 경우 그를 비난하는 일이 일종의 스포츠가 된다.


 


쇼케이스 중 고개 숙인 지민

(사진 출처 : 스포츠 조선)



사람들은 고개 숙인 여자 아이돌의 모습을 좋아한다.


 

티파니의 게시글이 문제가 됐을 때, 어떤 사람들은 티파니의 SNS에 올라온 명품백 사진을 가리키며 명품백이나 자랑하는 골빈 여자로 만들었다. 티파니에게 모욕당한 가상의 누군가를 만들어 낸 의도가 분명한 비난이었다. 그들은 결국 티파니의 자필 사과문을 성의가 없다는이유로 두 번이나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사람들은 고개 숙인 여자 아이돌의 모습을 좋아한다. 어리고 예쁘지만 내 것이 아닌, 나보다 돈을 많이 버는 여자가 내 앞에서 고개 숙이고 울며 사과하길 바란다. 자신의 여성혐오를 역사의식이라는 명분에 기대 표출하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초라한 남근을 추켜세우는 데 다수가 동조하고, 공영방송사가 협력했단 사실은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여자 아이돌과 미소지니스트, 모두의 어두운 미래에 광복은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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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이돌, 야동이거나 상품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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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디어 제작자들은 여자 아이돌을 사람으로 대하는 방법을 아직 모르는 듯하다.


 

Mnet <프로듀스 101>을 제작한 한동철 피디는 지난 7월 잡지 <하이컷>에서 남자들에게 건전한 야을 만들어주기 위해 해당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고 인터뷰했다. 그 말을 반증이라도 하는 듯, <프로듀스 101>의 참가자들은 교복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고 온갖 대상화의 시선에 재단당해야 했다. 한동철 피디는 논란이 가중되자 의도가 잘못 전해졌다고 해명했다. 한동철 피디는 어찌 보면 피디다운 명철함을 지닌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자 아이돌은 야동이거나 상품이다.

최창수 피디가 이끌고 있는 JTBC <아는 형님>723일 러블리즈 편에서 걸그룹 러블리즈의 멤버 케이와 프로그램 패널 강호동이 각각 데이트에 늦은 여자 친구와 남자 친구 역을 맡아 연기하는 모습을 내보낸다. 상황극에서 강호동은 죽고 싶어?’라는 협박과 함께 폭력을 휘두를 것 같은 위협적인 행동을 취한다. 이에 케이는 강호동의 손을 잡으며 애교를 선보인다. 마치 데이트 폭력 현장을 재현한 듯한 모습임에도 이 장면은 방송 후 케이의 애교에 집중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한편 SBS는 남성 패널들의 운명을 시청자가 직접 결정한다는 여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꽃놀이패>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다. 프로그램은 남성 패널 간 시청자 인기투표를 진행해 상위 랭크인 패널을 꽃길이라고 부르는 호화 여행길에, 하위 랭크인 패널을 흙길이라고 부르는 힘든 여행길에 서게 한다. 꽃길인 편안한 여행 코스 중에는 걸그룹 트와이스와 노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었다. 인기가 많은 남성은 미모의 어린 여성들과 시간을 보낼 기회를 갖는다.

여자 아이돌은 데이트 폭력을 행사하려는 남자에게 화를 풀어주려 목숨을 건 애교를 부리거나, 인기 많은 남성의 승리의 트로피가 된다. 이 두 가지 소비 방식에서 벗어난 여자 아이돌은 찾기 어렵다. 한국 여성 아이돌의 시초인 S.E.S.가 데뷔한 지 약 20년이 지났고, 카라의 전 멤버 강지영이 SBS <라디오 스타>에서 애교 강요에 눈물을 쏟은 지 3년이다. 한국의 미디어 제작자들은 여자 아이돌을 사람으로 대하는 방법을 아직 모르는 듯하다.

 

 


( 나혜석_저것이 무엇인고_신여자 제2호_목판화_1920 )

1920년대, 사회에 나온 첫 여성인 신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람이 아닌

잠재적 연애대상이었다.


 

 

나이 어리고 예쁜 여자에 대한 혐오적 시선을 대중 미디어가 확대,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남성뿐이던 회사에 나타난 여자직원의 역할을 알 수 없어 커피 심부름을 시키고, 아직도 여름이면 여성들의 옷차림에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르겠다며 히잡을 씌웠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성들은 그간 자신의 세계에 있던 두 종류의 여성-어머니로 대표되는 가족여성 혹은 창녀로 대표되는 성적 대상화된 여성-외의 여성을 낯설어 한다. 여성을 사람으로 대한 적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눈앞에 나타난 인간인 여성을 자기들이 아는 여성인 여자 친구 혹은 창녀로 읽으려 든다.

이런 사회적 풍조는 고스란히 대중 미디어에 투영된다. 특히 성 상품화와 대상화에 대한 담론이 끊기다시피 한 한국 여자 아이돌은 더욱 쉽게 노출된다. 무대에서는 섹시 디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왈가닥의 대명사였던 이효리가 결혼 후 참한 주부로 그려지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나이 어리고 예쁜 여자에 대한 혐오적 시선을 대중 미디어가 확대,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걸스피릿>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14년 데뷔한 걸그룹 마마무는 음오아예발표 후 걸크러쉬의 대명사로 불리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한 눈에 반했는데 알고 보니 여자였더라라는 내용의 가사와 뮤비는 여성 팬층을 확고히 했다. ‘걸그룹이라도 여성팬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면 남성팬은 자연스레 따라온다SM 엔터테인먼트 관계자의 말처럼, 성별을 막론하고 아이돌 그룹 기획자들은 여성 팬층을 붙잡는 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적어도 아이돌 시장에서 여성은 중요한 고객인 것이다.

팬 대부분이 여성인 아이돌을 기용하면서도 아이돌의 역할에 대한 고민 없이 콘텐츠를 만드는 행위는 제작자로서의 책임감이 결여된 기만적 행동이다. 팬들은 그저 방송의 꽃, 방송의 활력소, 방송의 장식 역할에 그치는 내 아이돌의 모습에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팬들의 화력(시청율, 인터넷 내 입소문 등)을 기대하며 아이돌 게스트를 섭외하면서, 아이돌과 팬들에 대한 배려는 없다.

기울어진 성 역할을 여실히 드러내는 프로그램은 콘텐츠의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은 물론, 재미도 없다. <12>에서 무대 의상인 양말까지 신은 채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남성 패널을 위한 노래와 춤, 애교를 부리는 트와이스의 모습은 군부대 앞에서 공연하는 걸그룹 이상의 감흥을 주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아는 형님> 속 강호동의 모습은 데이트 폭력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할 뿐 웃음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자라면 어떤 웃음이 현재 한국 사회에 필요한 지 아는 기민함이 필요할 것이다. 과연 현 한국에서 폭력과 성적 대상화가 무해한 웃음이 될 수 있을까?

이런 분위기에 맞춰, JTBC는 최근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해본 적 없는 걸그룹 멤버들이 1위를 놓고 노래 실력을 경쟁하는 방송 <걸스피릿>을 내놓았다. 아이돌 시장의 포화로 노래할 무대가 줄어든 여자 아이돌들을 위해, <걸스피릿>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남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겨졌던 경쟁에 어린 여자들이 뛰어든다는 점에서 <걸스피릿>은 최근 나온 예능 방송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경쟁에 참여하는 12명의 아이돌 역시 서로에 대한 경쟁의식을 숨기지 않는다. 야동도 상품도 아닌 목소리를 내는 여자 아이돌’, ‘질투가 아닌, 경쟁하는 여자 아이돌의 등장을 기쁘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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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빠가 여혐러일까요? (벌벌)

by.광개토

 



인터넷의 덕밍아웃 서사는 덕후임을 들킨 뒤의 이야기는 전하지 않는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고등학교 친구들 중 몇몇은 내가 더 이상 편안한 덕질 라이프를 즐기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학생이 되어서까지 소위 말하는 덕밍아웃을 감수하면서 덕질을 할 수 없을 거라는 말이었다. 오빠 사진으로 된 핸드폰 배경화면을 숨기기에 급급하고 언니 사진이 가득한 자취방에 친구를 들일 수 없어 전전긍긍하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앞으로 조심해서 덕질을 해야 겠다 마음먹었지만 n년 간 일반인 코스프레라는 걸 모르고 살았던 내가 그리 쉽게 본능을 숨길 수 있을 리 없었다. OT 자리에서 흥이 겨운 나머지 나는 아이돌 덕후임을 밝혔다.

인터넷의 덕밍아웃 서사는 덕후임을 들킨 뒤의 이야기는 전하지 않는다. 조별 과제에서 대놓고 왕따를 당할까? 나를 뺀 단체 메신저 방을 만들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체 어디서 덕질을 숨기라는 경고가 나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 덕후임을 숨기지 않는 나를 조롱하거나 비웃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덕후인 친구들이 늘었다. 대학은 콘서트를 가든 밤새 아이돌 예능을 보든 상관없는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덕질은 대학생활을 더욱 풍족하게 만들어 주었다.

많은 덕후들을 만나면서 내가 얻은 프리 덕질 라이프가 여대라서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공학에 다니는 친구들은 정말 인터넷에서 보던 덕질을 숨기는 여대생의 모습을 답습하고 있었다. 아직도 아이돌을 좋아하는 행위를 마치 10대 시절 철없는 여자애들이나 하는 모습으로 격하시키는 사회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한다. 숨길 이유가 없는 당당한 취미생활임에도 불구하고 20대 여자들은 아이돌 팬질을 하는 자신을 지운다.

이런 배경을 두고 <디지털 싱글 : 페미아이돌>을 발매해보기로 했다. 이 코너에서는 앞으로 3개월 동안 페미니스트 여대생 덕후가 보는 K-아이돌과 팬 문화를 써볼 예정이다. 디지털 싱글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작지만 꽉 채워서.

 


여성혐오라는 유령이 남자 아이돌 팬덤을 떠돌고 있다.


 

플레디스 소속의 일 년 차 보이그룹 세븐틴은 최근 그룹 리얼리티 예능인 <세븐틴의 어느 멋진 날>을 찍었다. 섬이라는 고립된 장소에서 열 세 명의 멤버들이 직접 식재료를 구하고 요리해 살아남는다는, 일종의 생존기였다. 확고한 캐릭터를 가진 멤버들이 좌충우돌 부딪히며 섬 생활을 해내는 모습은 기존에 볼 수 있던 무대 위주의 방송이 아닌 실생활의 멤버들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팬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세븐틴의 인기를 실감한 제작진은 본편을 종영한 뒤 편집본을 이어붙인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내보낸다. 이 비하인드 방송에서 제작진은 세븐틴 멤버들을 대상으로 이상형 올림픽을 진행한다. 제작진이 두 가지 타입의 여성을 제시하면 멤버들이 본인의 이상형에 가까운 여성을 선택하는 형식이었다. 제작진은 순댓국 먹는 여자vs파스타 먹는 여자라는 선택지를 제시하고 멤버들 중 다수는 순댓국 먹는 여자를 선택한다.

선택지가 께름칙하긴 하지만 자신과 식성이 비슷한 사람을 꼽을 수 있다고 양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내가 파스타를 좋아하니까라고 답한 멤버는 소수였다. ‘순댓국을 먹는 여자는 파스타도 먹을 수 있지만 파스타 먹는 여자는 순댓국을 못 먹을 것 같다라는 한 멤버의 발언은 여성을 어떤 기준으로 나누어 고정관념 속에 가둔다. 이제는 오래된 혐오 프레임인 비싼 파스타와 커피를 즐기고 명품백을 밝히는 된장녀를 떠올리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저런 선택지를 제시한 제작진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순댓국 먹는 털털한 여자 vs 파스타 먹는 우아한 여자였을까? 순댓국 먹는 우아한 여자를 상상할 수 없다면 그 얼마나 빈약한 상상력인가.

세븐틴의 순댓국은 트위터 실시간 트랜드에 오를 정도로 활발한 논쟁이 진행됐다. 그만큼 여성혐오 의혹(?)은 팬 대부분이 여성인 남자 아이돌에게 특히 치명적이다.

여성혐오 의혹은 현재 인기 고공비행 중인 방탄소년단도 피해가지 못했다. 힙합 아이돌을 표명하는 방탄소년단은 랩 가사는 물론 곡의 프로듀싱 전반에도 참여할 정도로 앨범 제작 참여도가 높다. 특히 랩퍼인 멤버들은 본인의 벌스(verse)를 대부분 직접 작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방탄소년단의 앨범 수록곡 가사가 여성혐오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음식을 눈으로 먹냐 여자애들처럼

사진 좀 찍지 마라 내 입맛 떨어져

-핸드폰 좀 꺼줄래

 

명품백을 쥐기보다는 내 손을 잡아주는

질투심과 시기보단 됨됨이를 알아주는

그런 너와 함께 우리의 미래를 그려봐

-miss right

 


위의 가사를 시작으로 멤버가 낸 믹스테입의 가사가 여성혐오로 지적받거나, 운영하고 있는 트위터 계정에 올린 멘션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의 팬들 중 일부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소속사와 방탄소년단에 피드백을 요청하고 있다. 주로 트위터 계정에서 움직이고 있는 이들은 얼마 전 아이돌로지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내 아이돌이 여성혐오를 한다는 사실도 속상한데, 더 속상한 것은 여성혐오 사실이 팬덤 간 세력 싸움에 이용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아이돌 전성시대. 크고 작은 기획사에서 아이돌들을 데뷔시키고 있다. 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 아이돌을 예뻐하기도 모자란 시간, 다른 그룹 팬들이 내 아이돌을 물어뜯을 구실을 넘겨주기 싫어서라도 여성혐오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동시에 타 그룹의 멤버가 여성혐오적이라고 말하고 싶어서 눈에 불을 켜고 마이너스 덕질을 하는 팬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같은 그룹의 팬들 사이에서도 여성혐오는 민감한 사안이다. 내 아이돌의 행동이 여성혐오적이라는 점을 비판하면 정말 이 그룹의 팬이 맞냐?’는 사상검증이 시작된다. 무조건적으로 내 아이돌이 옳다고 말해야만 하는 폐쇄적인 분위기는 남자 아이돌 팬덤 특유의 아이돌에 대한 높은 충성도와 더불어 위에서 짚었던 것처럼 세력 싸움이나 안티 팬들과의 기싸움과 무관하지 않다. 몇몇 팬들은 여성혐오 지적이 비난인지 비판인지 분간할 힘을 상실했다.

내 아이돌은 절대 여성혐오하지 않지만 네 아이돌은 여성혐오 덩어리임을 입증하고픈 팬들. 여성혐오라는 유령이 남자 아이돌 팬덤을 떠돌고 있다.

 


모두가 여성혐오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이쯤에서 짚어봐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과연 여성혐오하는 아이돌은 2016년에 뿅 하고 나타난 걸까? 여성혐오(Misogyny)는 고대 그리스어에 그 뿌리를 둔 단어로 가부장제가 시행된 이후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자신의 지정성별이 여성이냐 남성이냐와 무관하게, 어떤 남자에게 여자 친구가 있고 그가 이성애 포르노를 좋아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여성혐오는 모두가 수행한다.

한국 가요계도 마찬가지다. 남자 아이돌이라고 해서 여성혐오에 면죄부를 갖고 있지는 않다. 나와 내 친구, 선후배들과 마찬가지로 내 아이돌 역시 여성혐오를 할 수 있다. 그것은 특이하고 이상한 일이라기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모두가 여성혐오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중요한 사실은 어떤 그룹이 여성혐오를 한다는 사실보다, 아이돌 콘텐츠 속에서 여성혐오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를 헤드라인에 올리는 기자가 비판받듯, JTBC 예능 프로그램 <잘 먹는 소녀들>이 논란에 휩싸이듯 아이돌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팬 역시도 마찬가지다. 몇몇 팬들은 오해하고 있지만, 여성혐오 지적이 아이돌에 대한 공격은 아니다. 팬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대중문화, 미디어 콘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가 자신이 즐기는 콘텐츠를 비판하는 건 이상하지 않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201676일 다음 공식 팬카페에 여성혐오 논란에 대한 공식 입장을 게시했다. 소속사는 가사와 SNS 콘텐츠 속 여성혐오 논란을 인지하고 사과했다. ‘소속사와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여성혐오 지적사항과 문제점을 앞으로의 창작 활동에 지속적으로 참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인기 최정상 남자 아이돌 그룹이 여성혐오 비판을 받아들이고 배우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취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구매자() 대부분인 여성을 존중해주겠다는 모션은 역시 구매자 대부분이 여성이었던 뮤지컬 업계가 여성혐오 논란에 취한 모션과 천지차이다. 이제 제작자들은 아이돌 콘텐츠를 기획, 제작할 때 페미니즘을 신경 쓸 것이다.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얼마나 빨리 깨닫고, 젠더 감수성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 낼 줄 아느냐가 콘텐츠의 생명력을 담보하는 때가 왔다.

더 이상 우리 오빠가 여혐러일까봐 두려워할 시간이 없다. 내가 느낀 내 아이돌의 여성혐오를 숙고해보기에도 아까운 시간이다. 변화는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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