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여성만 성폭행을 당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2012 12 18, 대한민국 형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강간죄의 객체는 부녀, 즉 여성만 해당되었다. 여성은 유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오직 여성만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반영된 결과이다.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바꾸는 등 이러한 사고에도 변화가 생겼지만, 법률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여성은 여전히 유약하다. 본문에서는 성전환자 관련 판례의 변화와 유사강간죄 규정을 통해 여성을 바라보는 법적 프레임을 분석하고자 한다. 논리과정에서 어떤 오류가 있는지, 어떤 편견이 개입했는지 같이 살펴보도록 하자.

 

 

. 성전환자 관련 판례의 변화

 

성전환자 관련 판례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함의를 준다. 첫째, 성전환자에 대한 강간죄 성립여부를 따지는 과정에서 범죄 행위 사실을 입증하기보다, 피해자가 여성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법적 시각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둘째, 성전환자인 피해자가 여성임을 판단하는 논리 전개에서 여성에 대해 전반적인 사회, 법적 시각이 어떠한지 볼 수 있다.

 

1.    96791 판결

 

먼저 트랜스젠더가 여성이 아니기에 강간죄의 객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한 판례를 보자. 성전환수술을 받은 피해자는 가해자들의 폭행과 협박에 의해 원치 않는 성관계를 했고, 그 과정에서 얼굴에 상처도 입었다. 여러 정황이 피해자의 강간 사실을 입증했으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며 피해자는 여성이 아니기 때문에 강간죄가 아니라 판결했다.

 

 

 

본래의 내·외부성기의 구조, 정상적인 남자로서 생활한 기간, 수술 후에도 여성으로서의 생식능력은 없는 점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 사회통념상 여자로 볼 수는 없다.”

 

 

 

    ▶  본래의 내·외부성기의 구조, 정상적인 남자로서 생활한 기간

 

피해자는 정신적으로 여성에의 성 귀속감을 느껴왔고, 성전환 수술을 받음으로써 외관상으로도 여성적인 신체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구현하기 위해 그 동안 여러 노력을 해왔던 피해자에게 대법원은 본래 너는 남성이었고, 그렇게 30여 년이 넘게 살아왔으니 여성이 아니야라고 낙인을 찍는다. 판결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성전환 수술 전의 그녀를 정상적인 남자라고 지칭하며, 수술 후의 그녀를 암묵적으로 비정상적이라 가정한다.

 

  수술 후에도 여성으로서의 생식능력이 없는 점

 

판례에서 설정한 여성 여부 판단 기준에는 생식능력, 임신 및 출산의 가능여부가 있다. 이처럼 임신과 출산을 해야만 여성으로서 인정될 수 있고, 여성은 임신과 출산의 기능을 할 때, 그 존재의의가 있다. 그렇다면 불임여성은 여성이 아닌 것일까? 여성을 출산기계로 인식하는 듯한 판례의 태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2.    2009 3580 판결

 

여러 아쉬움이 남았던 지난 판결에서 10여 년이 흐른 후, 대법원은 트랜스젠더를 여성으로 인정하였고, 이에 따라 트랜스젠더 또한 강간죄의 객체가 된다고 판단했다. 해당 판결은 생물학적 요소뿐 아니라 정신적·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성전환자인 피해자를 여성으로 보았다.

 

 

 

공고한 성정체성의 인식 아래 그 성에 맞춘 의복, 두발 등의 외관을 하고 성관계 등 전환된 성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성전환 이후에도 가족들과의 관계를 유지, 개선해왔으며, 이 사건 피고인도 피해자를 여성으로 인식하여 강간범행을 저질렀다.”

 

 

 

  전환된 성으로서의 역할

 

긴 머리와 치마는 여자, 짧은 머리와 바지는 남자라는 식의 성별 맞춤식 외관은 공공연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성에 따라 분류하며, 카테고리화된 특성에 그 개인이 해당되지 않을 경우 행동에 제약을 주는 태도는 사회 전반적으로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가족들과 관계 유지, 개선 및 피고인의 인식

 

대법원은 피해자가 성전환 이후에도 가족들과의 관계를 유지, 개선해왔기 때문에 그녀를 여성으로 인정한다. 한 개인의 성적 정체성은 가족 구성원들의 인정이 없다면, 부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판례는 또한 피고인이 피해자를 여성으로 인식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피해자가 여성임을 입증하는 근거로 든다. 폭력적이다 못해 불편한 논리이다. 사회통념과 보편타당한 윤리를 중시하는 판례가 다른 논리적인 근거도 많은데, 왜 굳이 가해자가 피해자를 여자로 봐서라는 논지를 갖고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유사강간죄

 

앞서 본 판례들은 모두 강간죄의 객체를 개정하기 이전에 나왔기 때문에, 강간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여성임을 입증하는 것에 치우쳐 있다. 물론 성전환자를 전환된 성으로 인정했다는 측면에서는 큰 의의가 있으나, 유약한 존재인 여성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에 급급했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있다. 다행히도 이후 형법 297조는 개정을 통해 강간죄 객체를 여성에서 사람으로 확대했고, 강간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성별 판별보다 강간행위 그 자체를 입증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형법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강간을 바라보는 법적인 관점에는 여전히 한계점이 존재한다. 형법 297조의 2호는 강간죄와 구별하여 유사강간을 규정하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구강, 항문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한 사람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위와 같은 강간과 유사강간의 구분을 통해, 강간죄의 성립을 남성 성기를 중심으로 판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기에 대한, 성기에 의한 행위라면 그냥 강간죄에 해당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강간에 유사한 행위로서 죄값이 낮아진다. 강간죄의 객체를 사람으로 바꿨으나, 여전히 잠재적인 피해자를 유약한 존재인 여성으로 간주하고 있는 법적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애초에 강간을 개인의 성적자유결정권을 중심으로 판단했다면 어떨까? 성기의 침입이 아닌, 개인이 자유의지에 의해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선택권의 침범으로 강간 여부를 판단했다면, 유사강간죄는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굳이 형량을 달리 하면서까지 강간과 유사강간을 구별할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 침해를 기준으로 강간죄를 통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강간죄 관련 법률과 판례를 통해 사회에 내재된 여성과 성전환자, 강간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았다. 형법 명문상 강간죄 객체가 여성에서 사람으로 확대되는 등 여성을 대하는 법적 태도에 점진적인 변화는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은 여성을 여전히 잠재적인 강간죄의 객체로 판단하고, 남성의 성기를 중심으로 강간과 유사강간을 구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과 강간에 대한 고정관념이 아직도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존 판례와 법령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젠더의식을 갖고 분석해 보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앞으로의 입법과 법 개정에서 보다 긍정적인 역할을 하길 바란다.

 

 

 필자소개

 

조금이라도 걸리면 다 걸고 넘어지는, 소송대리권 없는 야매 법학도입니다:)

 

  코너소개

 

비록 소송대리권은 없지만, 학부시절 공부했던 법학지식을 토대로 성범죄 관련 판례를 평석하고자 합니다. 판례를 분석하는 시간을 통해 한 사회를 규율하는 법과 판례의 문제점과 이들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볼 것입니다.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 법, 판례, 사회적 통념 등으로 굳어진 문제점들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고쳐나갈 수 있을지,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는 시간 또한 갖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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