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여자’가 될 바에는 ‘화난 여자’가 되겠다. 

- 어느 ‘전명자’의 수기

  


  나는 지금껏 여성혐오를 하지도, 경험하지도 않았다.

 

  초등학교를 입학했던 8살부터 남자애들과 같은 반을 썼던 16살까지 학번이 항상 남자애들부터 시작되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모든 반이, 모든 학년이 남자부터 시작했으니까 원래 그러려니 했다.

  유독 2차 성징이 일찍 오고 남들보다 발육이 빨랐던 내게 오랜만에 만난 어른들은 이제 시집가도 되겠어.’라는 말을 마치 덕담인 마냥 한 마디씩 했다. 내가 신체적으로 성인의 외형을 갖춰나가는 게 어째서 시집가는 것과 연결고리가 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나의 빠른 성장에 그들이 감탄한 것뿐이라는 생각에 나는 그 말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생활기록부에 한 줄이라도 더 쓰기 위해 참가한 교내 양성평등글짓기 대회에서 나는 진정한양성평등을 위해선 꼴페미스러운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글을 썼다. 언론에서는 이라느니 알파걸이라느니 성공한 여자들 얘기만 나오던데 어째서 페미니스트들은 현실과 맞지 않는 여성주의인가, 이건 여성우월주의이지 양성평등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한 국어 선생님이 이대생이 사치스럽고 개념 없는 된장녀로 대표되지만, 한편으로는 악바리같이 공부만 하고 남자들한테 의존하지 않는 애들도 많기 때문에 진학을 추천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여대 진학을 희망하지 않는 나와는 별 상관없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어쩌다보니 생각지도 않게 여대에 입학하게 되었고, 사촌오빠와 앞으로의 진로 방향과 취업이 어려운 작금의 세태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그래도 너는 학벌도 좋고 얼굴이 예쁘기라도 하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 학벌과 용모가 나쁘지 않은 것이 취업의 어려움을 타개해줄 열쇠도 아닌데 심지어 두 가지 조건에서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 수두룩한데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취업할 때 학벌과 용모가 중요하다고들 하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정말 괜찮았을까?

  아니, 안 괜찮았다. 괜찮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페미니즘에 대한 색안경을 벗고 관심을 갖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나 자신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대학에 와서 처음 접하게 된 고전이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었고, 그와 관련된 자료들과 영화를 봤던 것이 아마 가장 첫 단계였을 것이다. 그리고 여대생의 범주에 내가 속하게 되었을 때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성차별은 나의 좁디좁았던 시각을 넓혀주는 동시에 분노 게이지를 점점 상승시켰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나를 전향하게 한 방아쇠는 장동민 사건이었다.

  ‘장동민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도대체 이 인간은 어떤 뇌구조를 가졌기에, 저딴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인가싶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남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싶어서 여러 커뮤니티를 눈팅했다. 그런데 세상에, ‘무개념발언이나 행동을 했던 여자연예인들은 가루가 될 때까지 그토록 까던 사람들이 장동민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거나 엄청난 쉴드 방벽을 치고 있었다. 장동민이 뭐라고 저렇게 궤변을 늘어놓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동안 다른 이슈들에 대해서는 비슷한 의견을 공유하던 사람들이 ()’문제에 관해서는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던 권력을 유지하고자, 위협이 되는 이들에게 서슴지 않고 폭언을 하고, 신상을 터는 것을 보며 나는 환멸을 느꼈다.

  ‘메르스 사태로 몸서리치며 분노하던 어느 날, ‘메르스 갤러리라는 게 생겼다는 것을 들었다. 무슨 이슈 하나 생기면 그 이름을 딴 갤러리가 디시인사이드에 생기기 마련이라, 처음 이름만 들었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 갤러리, 단순히 메르스 사태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아니란다. 찾아보니 홍콩행 비행기에서 메르스 의심 증상을 보이던 한국 여성이 격리 조치를 거부해 메르스를 퍼뜨렸다는 루머가 온라인을 달궜는데,[각주:1] 알고 보니 이 기사는 오보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한국 여성을 싸잡아서 욕하고 폄하하는 한남들에게 똑같이 돌려줌(미러링 스피치)’으로써 여성혐오와 억압의 현실을 드러내는 실험의 장이었던 것이다.[각주:2] 활동에 제약이 생기자 메갤러들이 따로 사이트를 만들어 떠난 곳이 메갈리아였다.

  ‘미러링 스피치에 코르셋을 찢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는 많은 이들과 달리, 나는 처음부터 메갈리아의 언어에 환호하지만은 않았다. ‘미러링이라는 개념을 얼핏 들었음에도 그들의 거친 표현에 선뜻 납득하기가 두려웠고, 무언가 모를 쾌감과 동시에 , 이래도 될까? 이게 맞는 걸까?’하는 자기검열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거친 언어를 사용하는 낯선 여자들에 대한 남자들의 당황한 모습과 경계, 곧이어 이들을 남자도 사귀어보지 못한 루저, 메퇘지들이라고 매도하고 모욕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는 그들이 우리에게 가했던 모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도 주저하고 이래도 되는 건지 고민했건만, 그들은 본인들이 가했던 여성혐오(Misogyny)’의 추함에 대해서는 파렴치하게 외면한 채, 우리들의 언어를 문제 삼았고, 더러는 여혐남혐의 구도로 몰아갔다.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심도 있게 공부하고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새 학기가 되자마자 학교 여성학 동아리의 모집 포스터를 찾으러 다녔고, 궁서체로 외않되?’라고 쓰인 유인물을 보자마자 실소를 터트린 채 바로 지원문자를 보냈다.



  ‘전명자(전직 명예자지’)’였던 나는 이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칭하고,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생각보다 페미니즘은 방대하고 복잡한 학문이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더욱 내 안의 여성혐오와 마주치고 싸우게 되면서 아직 멀었다는 생각에 좌절하기도 하고, 간혹 내가 너무 날을 세운 것은 아닐까?’하는 반문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듯이 여성혐오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걸쳐있는 것이다. 과거의 내가, 심지어 요즘도 놀라울 정도로 내 안의 새로운 여성혐오를 발견하고는 한다미처 나의 성별이 받고 있던 부당한 대우들을 깨닫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성별 위계 권력층의 생각에 때때로 동의했던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부정하고 싶다. 그러나 이러한 흑역사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고, 부조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종용했던 사회에 내가 너무나 잘 적응했던 탓이다. 중요한 건, 과거의 나를 그대로 인정하되, 이를 자각하고 타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와, 그리고 나 자신과.

  우리는 더더욱 목소리를 내고, 우리의 당연한 권리를 억압하는 것들과 싸워야 한다. 인류의 발전이나 윤리의 진보 같은 거창한 이유는 아니다.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다. 밤새 시험공부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살해당할까 떨지 않는 행복을 위해, 한여름에 창문을 열어놓고 잘 수 있는 행복을 위해서이다. 눈감고 귀닫고 권력구조에 순응해서 사는 것이 매일 마주치게 되는 여성혐오라는 골리앗과 싸우는 것보다 조금 더 편할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문학 속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있는 미친 여자들의 계보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나는 미치지 않기 위해 화를 내겠다. 더더욱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할 것이다.

 

* ‘페니스정확한 표현은 팔루스가 맞겠지만 어감 상 이 단어를 채택했습니다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여성혐오를 뜻하며, 이를 거세한다란 내 안의 여성혐오를 깨닫고 이를 타파하고자 하는 것을 말합니다.

 



<꼭지 소개>

과거 명예자지였다가 페미니스트로 전향한 필자를 비롯하여, 전직 명예자지(‘전명자’)였던 혹은 개념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일종의 계기를 통해 코르셋을 찢고 나온 이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칼럼을 작성하는 꼭지입니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 이제 막 입문하신 분들의 마음()’을 얻고 싶습니다.

 

<필자 소개>

최존: ‘새끼페미’. 세상사에 얇고 넓게 관심 많습니다. 미식가이자 위종대왕이라 불릴 만큼 대식가. 코스메틱과 패션, 역사, 영화, 음악, 배우들에 관심 많은 잡덕. 요새는 아이돌에도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비둘기와 양파를 싫어하고 세균강박증이 있습니다. 필명 뜻은 독자 분들께 맡길게요.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082147005 [본문으로]
  2. 정현희, 「왜 메갈리아는 ‘게이 논쟁’을 필요로 했는가? : ‘성차’와 ‘여성 정체성’의 모색과 한계」, 『2016 제 8회 LGBTI 인권 포럼』, 2016, 12쪽. [본문으로]

+ 최근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