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법학도의 세상읽기>

 

호 주 제

 

 

. 들어가며

 

호주제는 폐지되었지만, 폐지되지 않았다. 법조문에서 자취를 감춘 호주제는 여전히 우리의 의식 한 켠에 남아있다. 한국일보의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80%가 경조휴가 규정에서 조부모와 외조부모간 차별을 두었다고 한다. 친가 쪽 어르신 장례를 치를 때에는 경조휴가와 부의금을 탈 수 있으나, 외가 쪽 어르신이 돌아가셨을 때에는 따로 주어지는 휴가나 부의금이 없어 개인 연차를 사용해야한다는 것이다.

 

재혼 가정의 자녀를 표기하는 문제에서도 호주제의 잔재는 여실히 드러난다. 201681일부터 주민등록등본 상 재혼 가정의 자녀는 동거인에서 배우자의 자녀로 표기된다. 우리나라 대다수의 세대주가 남성인 것을 고려했을 때, 이는 새아버지를 단순히 같이 거주하는 사람에서 어머니의 남편으로 부를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호부호형은 가능하다. 그러나 재혼을 하지 않은 가정의 자녀들은 그냥 자녀라고 표기하는데 비해, 재혼가정은 배우자의라는 쓸모없는 수식어가 더해져 누가 봐도 재혼가정의 자녀임을 한 눈에 식별할 수 있다. 이처럼 남성, 부성 중심의 사고방식은 전통과 관습이라는 미명 아래 아직도 남아있다.

 

 

. 호주제 판례

 

헌법재판소의 호주제 위헌 판시는 개인의 인격을 형성하는 첫 사회화 지점인 가정을 평등에 기초한 보금자리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이 판례가 만들어지기까지 호주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은 첨예했다. 본문에서는 양측의 대립되는 주장을 소개해보겠다.

 

먼저 호주제란, “호주를 정점으로 가()라는 관념적 집합체를 구성하고, 이러한 를 직계비속남자를 통하여 승계시키는 제도”, 달리 말하면 남계혈통을 중심으로 가족집단을 구성하고 이를 대대로 영속시키는데 필요한 여러 법적 장치이다. 심지어 호주 지위의 승계적 취득에서는 철저히 남성우월적 서열을 매김으로써 남녀를 차별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와 누나들을 제치고 아들이, 또한 할머니, 어머니를 제치고 유아인 손자가 호주의 지위를 차지하기도 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없을 경우 일시적으로 가를 계승시키기 위하여 보충적으로 호주 지위가 주어지는 잔여범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호주제 존립을 찬성하는 입장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었다.

 

1. 호주제 찬성

 

1) 호주제는 고대 이래 조선 중기까지 이어져온 우리 고유의 합리적 부계혈통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아 부계혈통주의의 존립을 위한 극히 기본적인 요소만을 담고 있는 것으로서, 우리 고유의 대가족제를 상징적으로 표상한다.

 

2) 가족이나 친족집단의 존속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통의 정립을 통한 최소한의 기준과 질서의 부여가 요청된다. 반드시 부계혈통주의에 의해서만 가통이 정립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포함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전통적으로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하여 가통계승을 해왔다. 여기에는 가족에 있어서 모자관계는 생래적으로 증명되지만, 그렇지 않은 부자관계의 유대를 강화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부계혈통주의는 가족 및 친족집단 나아가 인류사회에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인류가 문명사회로 나아가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3) 여자는 혼인하면 남편의 가에 입적하게 되어 친가의 가통을 영구적으로 이어갈 수 없게 되므로, 남자우선의 원칙을 적용하면 여자를 호주로 하게 될 경우 혼인시 여자의 거가로 인한 호주의 변동으로 초래되는 호적사무의 번거로움과 인적, 물적 낭비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미 호주 등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법령의 개정에서 오는 혼란과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4) 호주제를 통하여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한 가의 구성 및 가통의 계승을 핵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계승, 발전시킴으로써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중시하고 있는 가족 및 친족공동체의 존속과 통합에 기여한다. 이렇듯 전통에 대한 존중의식을 고양함으로써 날로 팽배해져 가는 물질주의 및 개인주의의 폐단을 막아내고 완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또한 부모를 모시고 봉양하는 전통을 고무하고 조장하여 날로 심각해져 가는 노인문제의 해결에도 일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2. 호주제 반대

 

1) 호주제는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로서, 호주승계 순위, 혼인 시 신분관계 형성, 자녀의 신분관계 형성에 있어서 정당한 이유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이다. 또한 여성을 남성에 비하여 이차적, 종속적, 열위적 존재로 인식되게 함으로써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상징적, 심리적으로 불리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1-1) 호주제는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그 구성원 상호간의 평등한 법률관계 형성을 막고 남성에게 호주가 되는 우선적인 지위를 인정함으로써 합리적 근거 없이 아내의 지위를 남편보다 하위에, 어머니의 지위를 아버지보다 하위에 각 위치하게 하는 정당성 없는 남녀차별을 초래한다. (헌법 111, 361항 위반)

1-2) 부계중심주의 원칙을 채택하여 자녀가 속할 가를 원칙적으로 아버지의 가로 정하여 남녀의 성에 따른 차별을 두고 있다.

1-3) 처의 입적제도는 처의 부에 대한 수동적, 종속적 지위를 강제한다. 이는 여자의 열등적 지위와 결합하여 여성으로 하여금 어려서는 아버지의 가에, 혼인하여서는 남편의 가에, 늙어서는 아들의 가에 귀속토록 하고 있다. 이는 여성을 존엄한 독립적 인격체로서 존중하라는 헌법 제36조 제1항에서 예정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2) 부모가 이혼한 경우, 인수입적의 경우, 미혼모의 경우 등에 여성이나 자가 겪게 되는 실제적인 차별 곤란이 있다. 그래서 많은 가족들이 호주제로 인해 현실적 가족생활과 가족의 복리에 맞는 법률적 가족관계를 형성하지 못하여 여러모로 불편과 고통을 얻고 있다.

 

3) 숭조사상, 경로효친, 가족화합과 같은 전통사상이나 미풍양속은 문화와 윤리의 측면에서 얼마든지 계승, 발전시킬 수 있으므로 이를 근거로 호주제의 명백한 남녀차별성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 반박 )

 

4) 호주제는 당사자의 의사나 복리와 무관하게 남계혈통 중심의 가의 유지와 계승이라는 관념에 뿌리박은 특정한 가족관계의 형태를 일방적으로 규정, 강요함으로써 개인을 가족 내에서 존엄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가의 유지와 계승을 위한 도구적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 오늘날 가족관계는 한 사람의 가장과 그에 복속하는 가속으로 분리되는 권위주의적인 관계가 아니라, 가족원 모두가 인격을 가진 개인으로서 성별을 떠나 평등하게 존중되는 민주적인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호주제는 혼인 및 가족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에 관한 개인과 가족의 자율적 결정권을 존중하라는 헌법 제36조 제1항에 부합하지 않는다.

 

5) 일단 아버지의 가에 속하게 된 자녀가 부모의 이혼 등으로 아버지와의 가족공동생활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에도 자녀에 대하여 어머니의 가로의 전적의 여지를 두지 아니하고 있는데 이는 모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한다.

 

6) 가족제도에 관한 전통, 전통문화란 적어도 그것이 가족제도에 관한 헌법이념인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반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 반박 )

 

7) 자를 부가에 입적하는 것은 자녀가 부모의 양계혈통을 잇는 존재라는 자연스럽고 과학적인 순리에 반하며, 부에 비하여 모의 지위를 열위에 둠으로써 부당히 차별하는 것이다.

 

 

. 마무리

 

언어결정론에 따르면, 언어는 인간의 사고와 생활양식을 결정한다고 한다. 우리는 아버지의 일가를 친가(親家), 어머니의 일가를 외가(外家)라 말한다. 아버지 쪽은 친한 집’, 어머니 쪽은 바깥 집’, 즉 여성은 결혼을 하면 남의 집 사람이라는 사고방식이 일가친척을 지칭하는 단어에서부터 드러난다. 친가와 외가라는 단어를 어릴 때부터 사용하면서, 외가는 바깥 집이니 친가보다 하순위에 두도록 학습하는 것은 아닐까?

 

서론에서 보았듯 우리는 친조부모와 외조부모의 장례에 차이를 두며, 명절 날 외가 쪽 친척을 먼저 방문하는 것을 소위 생각이 트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처럼 친한 집보다 바깥 집을 똑같은 우위선상에 두거나,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의아함을 자아내고는 한다. 끊어내도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 호주제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알게 모르게 이미 자리를 잡은 고정관념을 떨치려면, 단어 규정 자체부터 변화해야 한다. 아예 친가 외가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친척이라고 통칭하는 것은 어떨까? 정 구분하고 싶다면 아버지쪽 친척이나 어머니쪽 친척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사람으로서, 동등한 인격권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의 결합이 혼인이며, 가정의 출발선이다. 행복한 가정의 형성은 가족 구성원이 동등한 인격체로서 화합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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