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 뭐냐고 물을 때가 엊그저께 같은데, 지금은 구하기 힘든 서적을 중고서점에서 싼 값에 샀다고 좋아하는 페미니즘 오타쿠가 됐다. 나 혼자 죽을 순 없고 같이 죽자는 일념 하에 많은 이들을 여성학의 길로 이끌었다. 이들은 아직까지도 너 때문에 인생 망했다며 나와 동고동락하는 사이로 남았다.

  나는 어떻게 페미니즘의 자도 모르는 사람들을 이끌어올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데 적당한 도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유혹적인 페미니즘 입문서들은 읽어보는 즉시 왜 스테디 셀러인지 이해가 간다.

페미니즘에 막 관심이 생겨 읽고 싶은 독자들이여, 이 책들에 주목해보자.

 

해쉬태그 #페미니즘_교과서 #한국사회 #젠더_인식

 


          

(▲'페미니즘의 도전' 구판과 신판, ©알라딘)

                                             

한국 페미니즘의 교과서, <페미니즘의 도전>


  처음 읽었던 책은 <페미니즘의 도전>이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 여성학 동아리에서 나이와 학년에 상관없이 내게 존대어를 쓰는 선배들을 보고 반했는데, <페미니즘의 도전>은 그 멋진 선배들이 추천해준 책이었다.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이 될 정도로 꾸준히 사랑받는 책이다.

  본인이 한참 연애를 하고 있는 20대 여성이라면 사랑과 섹스라는 파트에 먼저 관심이 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내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층위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에도 공감할 수 있게 해준다. 어머니, 노인, 연애, 가정폭력, 성매매, 군사주의, 남성성 등의 주제를 다루면서 독자가 젠더로 사회 문제를 사고할 수 있도록 인식을 심어준다.

  한 챕터를 넘길 때마다 당연하게 믿고 있던 모든 것들이 젠더차별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가히 큰 충격이었다. 더 충격이었던 점은 내가 아예 모르는 것들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본인이 접한 한국 사회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아 그게 차별이었구나를 쉽게 곱씹을 수 있다. 왜 스테디 셀러인지 알 것 같았다.

  저자 정희진은 다른 여성학 총서에서도 그가 쓴 글을 많이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활발하게 연구하는 여성학자이다. 한 번 검색해보는 것도 좋다. 페미니스트 저자의 매력에 빠진다면 페미니즘과 보다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새 여성학 강의', ©알라딘)


저자 덕질 입문, <새 여성학 강의>


  그 다음학기 세미나에서 읽은 책은 이 책이었다. 여성학의 정의, 역사, 영화, 여성운동, 섹슈얼리티, 자본주의, , 노동, 국가, 북한사회, 세계 등 총 14장에 걸쳐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앞서 소개한 <페미니즘의 도전>보다 주제가 세분화 되어있으며 한국에서 누가 어떤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지 쫙 훑어볼 수 있고,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를 골라 읽을 수도 있다.

  딱 저자 덕질하기 좋은 책이다. 저자 덕질이란 좋아하는 저자의 글들을 모두 찾아서 반복해서 읽고 기쁨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런 총서들을 통해 저자 덕질에 입문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좋아하는 저자가 쓴 글이 수록된 책을 찾아서 사느라 재산 탕진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렇지만 모든 덕질이 그렇듯,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페미니즘 분야에는 여러 저자가 자신이 연구하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쓴 뒤 묶음으로 집필한 책이 많다. 이 책도 그런 책들 중 하나다. ‘논문체라 딱딱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출간 된지 조금 된 책이지만, 초심자의 교과서로 적합한 이유는 쉬운 문장으로, 그리고 비교적 짧은 분량으로 컴팩트하게 내용을 풀어내고 있어서다.

  이 책을 펴낸 한국여성연구소는 말 그대로 한국의 다양한 젠더 이슈를 연구하는 곳이며, 동녘 출판사는 페미니즘 서적을 많이 펴내는 곳 중 하나기도 하다. 페미니즘 서적을 읽고 싶은데 무엇을 읽을 지, 자신이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다면 한국여성연구소나 동녘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을 찾아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구판(직접 촬영)과 신판, ©알라딘)

 

그래서 대체 여성혐오가 뭔데,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이 책은 내가 여성주의를 접한 지 2년째부터 지금까지 세 번을 읽었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저자가 표현한 일본의 현실은 한국의 현실, 그리고 여성 전반의 현실에 빗대어 볼 수 있다. 모든 내용이 눈여겨볼 만 하지만, 특히 제4비인기남과 여성혐오는 한국의 일베 문제를 떠올리게 함으로써 한국의 독자들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저자는 미우라의 저서 <<비인기남─남성수난의 시대>>(2009)의 내용을 인용하는데, ‘비인기남들이 여성에 대해 헛된 희망을 품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에 대해서 시니컬한 문장으로 화답한다. ‘인기가 있을 리 없다.’(76) ‘커뮤니케이션이란 달콤한 공감 같은 것이 아니다. 자아를 판돈으로 내건 필사의 줄다리기이다. 그게 싫으면 관계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84)

  저자 우에노 치즈코는 모호하고 산발적인 경험들을 언어화 시켜서 용어로 정의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녀의 위트와 풍자에 매료되었고 여성혐오의 전반적 개념과 사안을 섬세하게 분석하는 것에 푹 빠졌다.

  올해 여성혐오라는 개념이 급부상했다. 누군가 여성 혐오가 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그에게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답은 이 책에 있을지 모른다. 여성 혐오는 한 마디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아플 수도 있지만, 읽다 보면 스스로 답을 발견할 것이다(이 책은 최근에 역자후기가 문제가 되었었다. 여기서 소개는 하지 않지만 재미가 있으니 한 번 찾아보시길.)


 

내 언어를 가질 때의 기쁨, 중독적인 입문서들


  내 문제를 내가 조리 있게 말할 수 있을 때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그 감정을 희열감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나의 유혹에 이끌려온 많은 이들도 이 희열감에 중독되었을 것이다.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던 것들을 정확하게 사유하고 말할 때, 내가 받고 있던 차별의 실체는 생겨난다. 여성주의나 여성혐오라는 제재 용어 자체도 생소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위의 입문서들은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어서 어물어물 거리는 사람들의 언어를 정돈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먼저 보고 싶은 것부터, 공감할 수 있는 것부터 읽고 말하다 보면 어느새 페미니즘은 내 것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발 여성주의 서적 표지는 핑크나 빨강으로 안 만들었으면 좋겠다. 글 쓰려고 오랜만에 서적 다시 꺼내봤는데, ‘여성적인색 투성이다. 여성학 책인데 여성학적이지 않은 표지가 언젠간 바뀌길 기대해 본다.

 

 



주목할만한 신간: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알라딘)

강남역 포스트잇을 지금은 서울시청에 보관 중이라고 합니다.                                              

 

 

-필자 소개: 페미타쿠. 만년 라이트덕 인생에 페미니즘에 강려크하게 덕통 당함.

-코너 소개: 여성주의 서적 발굴해서 소개하고 홍보합니다. 물론 저도 잘 몰라서 계속 사다 계속 읽습니다. 이 코너 목표는 멋대로 써놓은 거 같은데 어쩐지~’ 눈이 가고 공감이 가는 코너입니다. 코너 제목이요? 내용을 음미하면서 곱씹기 위한 도입…(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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