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법학도의 세상읽기>

 

호 주 제

 

 

. 들어가며

 

호주제는 폐지되었지만, 폐지되지 않았다. 법조문에서 자취를 감춘 호주제는 여전히 우리의 의식 한 켠에 남아있다. 한국일보의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80%가 경조휴가 규정에서 조부모와 외조부모간 차별을 두었다고 한다. 친가 쪽 어르신 장례를 치를 때에는 경조휴가와 부의금을 탈 수 있으나, 외가 쪽 어르신이 돌아가셨을 때에는 따로 주어지는 휴가나 부의금이 없어 개인 연차를 사용해야한다는 것이다.

 

재혼 가정의 자녀를 표기하는 문제에서도 호주제의 잔재는 여실히 드러난다. 201681일부터 주민등록등본 상 재혼 가정의 자녀는 동거인에서 배우자의 자녀로 표기된다. 우리나라 대다수의 세대주가 남성인 것을 고려했을 때, 이는 새아버지를 단순히 같이 거주하는 사람에서 어머니의 남편으로 부를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호부호형은 가능하다. 그러나 재혼을 하지 않은 가정의 자녀들은 그냥 자녀라고 표기하는데 비해, 재혼가정은 배우자의라는 쓸모없는 수식어가 더해져 누가 봐도 재혼가정의 자녀임을 한 눈에 식별할 수 있다. 이처럼 남성, 부성 중심의 사고방식은 전통과 관습이라는 미명 아래 아직도 남아있다.

 

 

. 호주제 판례

 

헌법재판소의 호주제 위헌 판시는 개인의 인격을 형성하는 첫 사회화 지점인 가정을 평등에 기초한 보금자리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이 판례가 만들어지기까지 호주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은 첨예했다. 본문에서는 양측의 대립되는 주장을 소개해보겠다.

 

먼저 호주제란, “호주를 정점으로 가()라는 관념적 집합체를 구성하고, 이러한 를 직계비속남자를 통하여 승계시키는 제도”, 달리 말하면 남계혈통을 중심으로 가족집단을 구성하고 이를 대대로 영속시키는데 필요한 여러 법적 장치이다. 심지어 호주 지위의 승계적 취득에서는 철저히 남성우월적 서열을 매김으로써 남녀를 차별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와 누나들을 제치고 아들이, 또한 할머니, 어머니를 제치고 유아인 손자가 호주의 지위를 차지하기도 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없을 경우 일시적으로 가를 계승시키기 위하여 보충적으로 호주 지위가 주어지는 잔여범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호주제 존립을 찬성하는 입장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었다.

 

1. 호주제 찬성

 

1) 호주제는 고대 이래 조선 중기까지 이어져온 우리 고유의 합리적 부계혈통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아 부계혈통주의의 존립을 위한 극히 기본적인 요소만을 담고 있는 것으로서, 우리 고유의 대가족제를 상징적으로 표상한다.

 

2) 가족이나 친족집단의 존속과 통합을 위해서는 가통의 정립을 통한 최소한의 기준과 질서의 부여가 요청된다. 반드시 부계혈통주의에 의해서만 가통이 정립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포함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전통적으로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하여 가통계승을 해왔다. 여기에는 가족에 있어서 모자관계는 생래적으로 증명되지만, 그렇지 않은 부자관계의 유대를 강화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부계혈통주의는 가족 및 친족집단 나아가 인류사회에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인류가 문명사회로 나아가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3) 여자는 혼인하면 남편의 가에 입적하게 되어 친가의 가통을 영구적으로 이어갈 수 없게 되므로, 남자우선의 원칙을 적용하면 여자를 호주로 하게 될 경우 혼인시 여자의 거가로 인한 호주의 변동으로 초래되는 호적사무의 번거로움과 인적, 물적 낭비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미 호주 등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법령의 개정에서 오는 혼란과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4) 호주제를 통하여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한 가의 구성 및 가통의 계승을 핵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계승, 발전시킴으로써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중시하고 있는 가족 및 친족공동체의 존속과 통합에 기여한다. 이렇듯 전통에 대한 존중의식을 고양함으로써 날로 팽배해져 가는 물질주의 및 개인주의의 폐단을 막아내고 완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또한 부모를 모시고 봉양하는 전통을 고무하고 조장하여 날로 심각해져 가는 노인문제의 해결에도 일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2. 호주제 반대

 

1) 호주제는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로서, 호주승계 순위, 혼인 시 신분관계 형성, 자녀의 신분관계 형성에 있어서 정당한 이유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이다. 또한 여성을 남성에 비하여 이차적, 종속적, 열위적 존재로 인식되게 함으로써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상징적, 심리적으로 불리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1-1) 호주제는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그 구성원 상호간의 평등한 법률관계 형성을 막고 남성에게 호주가 되는 우선적인 지위를 인정함으로써 합리적 근거 없이 아내의 지위를 남편보다 하위에, 어머니의 지위를 아버지보다 하위에 각 위치하게 하는 정당성 없는 남녀차별을 초래한다. (헌법 111, 361항 위반)

1-2) 부계중심주의 원칙을 채택하여 자녀가 속할 가를 원칙적으로 아버지의 가로 정하여 남녀의 성에 따른 차별을 두고 있다.

1-3) 처의 입적제도는 처의 부에 대한 수동적, 종속적 지위를 강제한다. 이는 여자의 열등적 지위와 결합하여 여성으로 하여금 어려서는 아버지의 가에, 혼인하여서는 남편의 가에, 늙어서는 아들의 가에 귀속토록 하고 있다. 이는 여성을 존엄한 독립적 인격체로서 존중하라는 헌법 제36조 제1항에서 예정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2) 부모가 이혼한 경우, 인수입적의 경우, 미혼모의 경우 등에 여성이나 자가 겪게 되는 실제적인 차별 곤란이 있다. 그래서 많은 가족들이 호주제로 인해 현실적 가족생활과 가족의 복리에 맞는 법률적 가족관계를 형성하지 못하여 여러모로 불편과 고통을 얻고 있다.

 

3) 숭조사상, 경로효친, 가족화합과 같은 전통사상이나 미풍양속은 문화와 윤리의 측면에서 얼마든지 계승, 발전시킬 수 있으므로 이를 근거로 호주제의 명백한 남녀차별성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 반박 )

 

4) 호주제는 당사자의 의사나 복리와 무관하게 남계혈통 중심의 가의 유지와 계승이라는 관념에 뿌리박은 특정한 가족관계의 형태를 일방적으로 규정, 강요함으로써 개인을 가족 내에서 존엄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가의 유지와 계승을 위한 도구적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 오늘날 가족관계는 한 사람의 가장과 그에 복속하는 가속으로 분리되는 권위주의적인 관계가 아니라, 가족원 모두가 인격을 가진 개인으로서 성별을 떠나 평등하게 존중되는 민주적인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호주제는 혼인 및 가족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에 관한 개인과 가족의 자율적 결정권을 존중하라는 헌법 제36조 제1항에 부합하지 않는다.

 

5) 일단 아버지의 가에 속하게 된 자녀가 부모의 이혼 등으로 아버지와의 가족공동생활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에도 자녀에 대하여 어머니의 가로의 전적의 여지를 두지 아니하고 있는데 이는 모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한다.

 

6) 가족제도에 관한 전통, 전통문화란 적어도 그것이 가족제도에 관한 헌법이념인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반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 반박 )

 

7) 자를 부가에 입적하는 것은 자녀가 부모의 양계혈통을 잇는 존재라는 자연스럽고 과학적인 순리에 반하며, 부에 비하여 모의 지위를 열위에 둠으로써 부당히 차별하는 것이다.

 

 

. 마무리

 

언어결정론에 따르면, 언어는 인간의 사고와 생활양식을 결정한다고 한다. 우리는 아버지의 일가를 친가(親家), 어머니의 일가를 외가(外家)라 말한다. 아버지 쪽은 친한 집’, 어머니 쪽은 바깥 집’, 즉 여성은 결혼을 하면 남의 집 사람이라는 사고방식이 일가친척을 지칭하는 단어에서부터 드러난다. 친가와 외가라는 단어를 어릴 때부터 사용하면서, 외가는 바깥 집이니 친가보다 하순위에 두도록 학습하는 것은 아닐까?

 

서론에서 보았듯 우리는 친조부모와 외조부모의 장례에 차이를 두며, 명절 날 외가 쪽 친척을 먼저 방문하는 것을 소위 생각이 트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처럼 친한 집보다 바깥 집을 똑같은 우위선상에 두거나,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의아함을 자아내고는 한다. 끊어내도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 호주제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알게 모르게 이미 자리를 잡은 고정관념을 떨치려면, 단어 규정 자체부터 변화해야 한다. 아예 친가 외가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친척이라고 통칭하는 것은 어떨까? 정 구분하고 싶다면 아버지쪽 친척이나 어머니쪽 친척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사람으로서, 동등한 인격권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의 결합이 혼인이며, 가정의 출발선이다. 행복한 가정의 형성은 가족 구성원이 동등한 인격체로서 화합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여, 페미행 급행열차를 타라!

 

최존

 

  ‘전명남(전직명예남성)’시절, 우습게도 스스로를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곤 했다. 순전히 페미니즘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탓이다. 그 시절 나에게 페미니즘은 올바른 페미니즘올바르지 못한 페미니즘으로 나뉘었는데, 내 인식 속에서 한국형 페미니즘은 후자의 범주에 들었다. ‘올바른 페미니즘올바르지 못한 페미니즘’, ‘한국형 페미니즘이라지금 생각하면 코웃음이 절로 나오지만 그 때는 그랬다. 어린 내게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거나 궁금증을 해결해 줄 사람은 없었다. 선생들은 여자들은 권리를 외치기 전에 의무부터 수행해야 한다.’라거나 서양의 페미니즘은 여자도 더치페이를 하고 군대에 보내달라고 아우성인 평등사상인데 한국에 와서 변질되었다.’는 류의 헛소리들만 해댔다. 가장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은 여성혐오가 만연한 상태인데다 마치 사실인 마냥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악질적인 루머가 곳곳에 퍼져 있었다. 핑계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졌을지는 누구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레 내게 페미니스트, 그 중에서도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불리할 때만 자신의 약함을 얘기하는 비겁한 사람들이었다.

 

  그랬다. 나는 꽤나 골 때리는 전명남이었다.

 

  “, 양성평등하려면 여자도 군대 가고 데이트 비용은 반반 딱 나눠서 내야 하는 거 아냐? 너희 왜 남자한테 의존하려고 해. 떳떳하게 살아!” 이렇게 말하고 다녔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평등이라는 글자에만 집착하여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여자와 남자는 같은 사람임을 말하면서 왜 굳이 여자를 사회적 약자에 포함시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자신이 약자 그룹에 속하지 않기를 바랐다. 때문에 도와주겠다는 남자의 말을 까칠하게 거절한 채,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힘에 부치는 짐도 내가 들었다. 썸타고 있던 남자애에게 무개념녀로 인식되기 싫어서, 헤어지고 나서 그 무리에게 , 그 김치녀?”라고 회자되기 싫어서 항상 자기검열을 했다. 내 숨통을 옥죄는 코르셋의 줄을 내가 당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게 잘못된 줄 몰랐다.

  가부장제의 부조리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 모를 수 있겠나.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정에서 태어나, 주재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가장 보수적이라고 칭해지는 중동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거주했을 당시, 아버지는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항상 옷차림이 같았지만 어머니는 외출할 때마다 전신을 가리는 아바야를 착용해야했다. 아버지는 한국에서와 같이 운전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면허가 있음에도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어머니는 점차 무력해져갔고, 한국에 와서도 한동안 무력감과 우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우리보다 여권이 지극히 낮은 국가이고, 그 때의 체험은 특수한 환경에서 벌어진 예외의 것이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한국사회 역시 뿌리는 다르지 않았다. 가장이라는 말의 힘인지는 몰라도 아버지를 대하는 건 항상 어머니를 대할 때보다 어려웠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버지의 노고만큼이나 가정을 운영하는 어머니의 노고 역시 대단한데도, 아버지의 권위는 제일이었으며 아버지의 말은 어머니의 말보다 항상 앞섰다.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정확히 표현할 수 없었을 뿐더러 보통 다들 그렇게 사니 으레 그런 줄로만 알았다. 남성은 군대도 가고, 데이트할 때나 결혼할 때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고들 하고, 보통 요즘과 같이 맞벌이 부부가 많지 않았을 때의 인식이다결혼 후에는 가정의 생계를 전담하여 책임지니까 부당하더라도 그들이 의무를 더 많이 지는 만큼 권리도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군역의 의무를 지고, 똑같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부장제의 병폐를 알면서도 그 화살을 사회가 아닌, 나를 포함한 여성에게 돌렸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부르는 것은 항상 어딘가 불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보던 중 우연히 메르스갤러리 저장소페이지의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호기심이 생겨 페이지의 게시물들을 쭉 정독했다. 유레카는 이럴 때 외치는 말일까? 그동안 불편했던 감정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되는데, 굳이 나 스스로를 개념녀프레임에 맞추느라 버거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여자인 내가 아니라 여자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드는 사회를 손가락질해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런 해방감은 흔치 않았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작년부터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면서 요새는 메갈리아미러링에 대해 여혐VS남혐따위의 겉핥기식이 아닌, 비교적 심도 있는 기사들도 늘고 있다. ‘미러링이 의도된 전략이든 그동안의 미소지니에 참아왔던 여성들이 우발적으로 터뜨린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든 이제는 중요치 않다. 우아한 언어로 조리 있게 페미니즘을 말하던 여성들에게 콧방귀 뀌던 남성들이 너의 자지는 작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페미니즘이 이렇게 이슈 차트를 역주행하고 있지 않은가.

  메갈리아를 기점으로 페미니즘에 입문하게 된 많은 사람들에게 아마 나와 같은 짜릿한 순간이 적어도 한 번씩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미러링의 의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갓스시녀들이 ‘#남녀가뒤바뀐일본사회(#男女逆転した日本社会)’ 해시태그에 열광하며 그동안 여성으로서 겪었던 부당함과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 건, 미러링이 악질적인 김치녀, ‘페미나치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이제 막 페미니즘을 배우고 있는 중이고, 태어났을 때부터 노출되어왔던 탓에 나 역시 미소지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페미니즘을 지향하고부터 더욱 행복해졌다는 것이다. 더 이상 나 자신을 옥죄고 틀에 맞추기 위해 힘들이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는데, 요새 가장 따끈따끈한 내 인간관계인 연애에서도 볼 수 있다. 내게 있어서 연애의 기본적인 의미는 사랑하는 연인과 편하고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자랑 좀 하자면, 운 좋게도 애인 역시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사람인지라 페미니즘의 정서를 함께 공유한다. 내 인생에 있어 요즘과 같이 자존감이 높고 동시에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던가!

  혹자는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것 내지는 여성우월주의 아니냐고 한다. 확실히 페미니즘의 시작은 억압받는 여성들을 위한 것이었다. 페미니즘 이름 아래 수많은 목소리들이 있지만, 이러한 부조리의 근본적인 원인이 가부장제인 것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바이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하에 이뤄지는 모든 성차별과 고통에 반대한다. 당신이 여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페미니즘에 적대적일 이유가 없다.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페미니즘 하지 않겠는가.

 

 

이 글은 홍달님의 사연을 바탕으로 구성됐습니다. 이야기를 공유해주신 홍달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페미니즘으로 사유하고 싶다면, 젠더란 무엇인가

페미타쿠


  페미니즘으로 내 경험과 느낌을 어떻게 논리 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을 사회현상으로 도출해낼 수 있을까? 페미니즘 분석은 어려운 논문을 쓰는 학자들만 가능한 걸까? 그렇지 않다. 바로 젠더란 무엇인가는 독자에게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하여 깊은 사유를 연습하게 하며, 가능하게 만든다. 이 또한 내가 추천하는 입문서에 포함된다. 어려워 보이는 제목을 가진 책이 입문서라니,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제목은 고리타분하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은 반전매력을 지니고 있는 책, 젠더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저자 로빈 라일은 이 책을 비교과서적 교과서라고 칭하고 있다. ‘쉽지만’, ‘각 잡고썼다는 이야기다. 페미니즘을 어떻게 가르쳐야효과적일지 고심한 끝에 탄생한 책이다. 페미니즘 계보를 역사적 맥락에서, 접근법에 따라서, 주제별로 다양하게 소개한다. 비교적 쉬운 말로 쓰여 있으며, 개념이나 이론을 설명할 때 적절한 사례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해하고 공감하기에 어렵지 않다. 독자에게 친근하게 대화하듯 내용을 이끌어 가며, 생각할 만한 지점을 던진다. 하지만 마냥 열린 문제점으로 두지 않고, 저자 본인의 생각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젠더란 무엇인가' 양장본 표지, ©알라딘)


젠더란 무엇일까?

  책 제목대로 젠더란 무엇인지 궁금할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젠더는 주로 (sex)’이라는 생물학적인 개념과 구분해서 사회문화적인 개념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젠더를 바라보는 한 방식일 뿐이다. 학자들마다 무엇을 젠더라고 하는지, 그리고 각각이 정의한 젠더를 어떠한 프리즘으로 볼 것인지, 그 방식은 여러 가지다.

젠더에 관한 이론화가 가능하기는 한가? 아니면 젠더에 관한 다양한 경험들은 공존이 어려워 통합이 불가능할까? 예를 들어, 여성들에게 무조건 중요한 이슈들 중 전 세계 여성들이 동의할 수 없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여성운동에 관한 논의는 의미가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항상 더 구체적인 상황(인도의 하층 카스트 계급 내 힌두교도 여성들의 여성운동과 대척점에 있는 중산계급 백인 미국 여성들의 여성운동 등)을 다루어야 할까? 시간과 장소를 통틀어 젠더 경험과 유사한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젠더를 다루는 교재를 저술하려는 노력이 의미가 있을까? () 매우 중요하고도 무척 어려운 질문이라 답하기가 겁난다. 그렇다고 책을 내팽개치고 쉬운 문제로 넘어가지는 말자. 감사하게도 젠더 학자들은 계속 이 문제를 생각했고, 여러 답을 개발해왔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차이를 만들어내는 다른 중요한 범주들과 함께 젠더를 생각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다음 논의에 나오겠지만, 좀 더 정교하고 포괄적인 젠더 분석에 관한 연구는 계속 진화할 것이다.(112)


  이러한 문제에 답하기라도 하듯 저자는 젠더에 대한 고민을 그대로 이야기한다. 정말로, ‘젠더란 무엇일까? 공부를 막 시작한 우리는 학자들이 먼저 연구해놓은 선행연구를 먼저 살펴볼 것이다. 그것이 젠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발췌한 학자들의 흥미로운 구절을 읽을 수 있다. 각주가 달려있고, 대부분 원문은 번역되어있으니 단행본을 찾아보는 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답을 내리기 위하여 학자들의 연구를 읽고, 그 중 한 사람의 의견을 지지 해야 하는가? (물론 그렇게 해도 된다.)

 

몸에 대한 여성과 남성의 생각을 직접 인터뷰하거나 조사해보자. 몸 이미지 이슈나 몸을 바꾸기 위한 행동, 정신-몸 이분법에 대한 남녀의 생각에 초점을 맞춰도 좋다. 이러한 질문의 대답에서 남녀가 유사한가, 아니면 남녀에 따라 다른가? 여기에 나이, 인종, 사회 계급, 국적과 같은 다른 정체성도 고려될 수 있는가?(222)


  책에서는 저명한 페미니즘 이론을 총망라되어 있는 것은 물론 젠더를 보다 깊이 사유할 수 있는 연습문제도 수록되어 있다. 특히 연습문제는 단원 별로 주어져있는데 이 책을 읽는 이의 사례를 녹여 넣어볼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있다. 연습문제가 곧 이 책의 핵심이다. 페미니즘은 사유와 실천의 도구이며, 이를 이용하면 나만의 이야기를 사회적인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 많은 경험들을 언어화하고 구조화하는 연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위에 제시된 것과 같은 연습문제가 곧 출발점이다. 결국 젠더의 해석은 읽는 독자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을 가지고 어떻게 젠더에 접근해볼 수 있을까? 최근 읽었던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과 548일 남장 체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여성성남성성에 대해 생각할 지점이 많았기에.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과 '548일 남장 체험' 표지, ©알라딘)


  크리스티안 자이델의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독일의 기자인 중산층 남성이 보온용으로 여성용 스타킹을 신는 것을 계기로 해서 여장을 하고 약 1년간 살았던 이야기가 담겨있다. 노라 빈센트의 548일 남장 체험도 미국의 기자인 레즈비언 여성이 남장을 하고 548일간 체험한 수기를 기록한 내용이 실려있다. 이 두 책은 여성성남성성을 다뤘다는 점에서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공유하고 있는 지점이 같다. 남성이기에, 여성이기에, 젠더 스테레오타입 때문에 내비치지 못 했던 여성적 감정들이나 행하지 못 했던 과격한 남성적 행동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동성간의 교류방식 또한 여성과 남성이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다르다. 이 두 책의 저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어떻게 사회문화적으로 다른 맥락을 공유하고 있는지 본인의 가까운 경험을 통해 자세히 기술해놓았다.


여성성남성성의 경계는 존재할까?


젠더와 다른 지위들이 여성의 몸에 모두 새겨져 있듯이, 남자들의 몸에도 새겨져 있다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젠더와 몸에 관한 논의에서 생기는 의문점은, 젠더가 남성들의 몸에 새겨지는 방식과 여성들의 몸에 새겨지는 방식 사이에 중요한 차이점이 있느냐는 것이다.’(169)


  『젠더란 무엇인가를 참고하면 여성성과 남성성은 다분히 사회에서 구성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책의 저자는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모험을 하면서까지 젠더와 자신의 삶을 탐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 그러나 이들의 인식엔 한계가 있다. 여성성과 남성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 하고, 그저 남녀간의 타고난 차이만을 응시하고 있다. 이분적 구분을 쉽사리 깨지 못 하는 것이다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의 저자 크리스티안 자이델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이분화하여 나누는 세상의 편견을 깰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결국 그러지 못 한다. 여성과 그들이 타고난 여성성을 섬세하고 위대한 것이라 동경하며, 자기 안의 여성성을 찾아가는 모험에 집중한다. 여장을 했을 때 여성다운움직임을 찾아내려 애쓰고, 급기야 여성다운 걸음을 가르치는 수업까지 수강하러 교습소에 찾아간다.

  크리스티안은 왜 여성 걸음을 가르치는 교습소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을까? 완벽한 여성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여성다운 걸음이 필요하다. 보폭이 좁고 조심스럽지만 부드럽고, 골반이 흔들리는 걸음 정도로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장을 한 남성만 여성다운 걸음이 필요할까? 아니다. 여성들이 여성다운 걸음을 걷기에 타고났기에 그렇게 걷는 것이 아니다. 지정성별 여성들도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맞춰 여성답게 걷고, 여성다운 걸음을 학습한다.


남성과 여성이 움직이는 방법의 미묘한 차이는 젠더 속성을 만드는 부분이며, 따라서 그것을 보고 누가 남성이며 여성인지 알아맞힐 수 있게 된다. 이는 남성에서 여성이 된 많은 트랜스젠더가 여성처럼 움직이는 것을 배우려고 댄스 강사에게 수업을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219)


  위에서 말하는 젠더 속성은 성별을 구분하는 데 탁월한 기능을 한다. 복장만 바뀌어도 우리는 상대의 성별을 쉽사리 인지하지 못 한다. 젠더 속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학습되는 것이다. 크리스티안은 여장을 하고서 길거리를 걷다가 여성으로 패싱되어 남성에게 성적, 육체적 폭행을 당한 뒤에도, 그것이 여성의 현실이며 또 다른 소수자인 트랜스젠더의 현실이라는 것을 쉽게 자각하지 못 한다. 그의 여장 목적은 무려 남녀관계의 갈등을 없애기 위한 것으로, 이전에 억제되었던 자신의 여성성을 회복시키고 자신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자아탐색에집중한다. 본인이 죽어도 남성이라는 안도감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여장을 하면서 남자들에게 여자들이 가르쳐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 여성들이 소심한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 해서 남녀관계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548일 남장 체험의 저자 노라는 남성간의 우정이 거칠지만 허물없고 따뜻한 것에 비해서, 여성과의 우정은 빈약하고 서로의 허물을 감싸주는 것도 없이 잔인하다고 말한다. 네드(노라의 남성 이름)는 노동자 계급의 집단에 들어가는데, 그 곳의 분위기는 꽤 남성답고 거칠다. 여성과 성소수자를 비롯한 약자를 비하하는 심한 농담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짓, 그리고 성매매를 통과의례처럼 공유하고 있는 집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엇을 못 하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모습을 인간적으로 느낀다. 네드는 사람들의 거친 농담이나 폭력의 수위를 별 생각을 하지 않고 말하는 것이고 쿨하고 멋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들의 매력에 빠진다. 그들은 하루하루 육체노동을 하면서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에, 그러한 유희거리를 참으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면서.


왜 남성은 여성보다 담배를 피울 가능성이 평균적으로 더 클까? () 이는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남성성에 따라 다르지만, 죽음 및 기타 건강 관련의 행위 정보를 보면 주로 남성성 때문에 남성이 여성보다 대해 더 많은 모험을 시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흡연과 상해 입기 쉬운 것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둘 다 모험을 하는 행위다. 남자들은 무분별한 방식으로 남성성을 과시하려다가 다치기 쉽다. 미식축구, 럭비, 권투처럼 몸끼리 접촉하는 스포츠에 깊이 관여하기도 하고, 남성들이 주로 일하는 직업의 종류 때문에 특히 노동자 계층 남성들이 많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186~187)


  남성의 호모소셜은 과격하고 거칠다. 이러한 방식들은 남성을 질병에 쉽게 노출시키며 수명을 단축시킬 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한다. 호모소셜은 그저 남성을 희생시키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자신들의 집단에 승인된 남성만을 들이고, 다른 사람들을 배제시키기 위해 유지된다. 남성들이 호모소셜 집단 내부에서 구성원들의 승인을 받기 위해 몸부림을 치며 겪는 과정은 반강제적으로 실시된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도태되지만, 이에 따르면 진정한 남성이라는 칭호를 획득하며 남성의 기득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네드가 잠시 경험했던 남성들의 세계 또한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소수자 혐오가 꼭 필요했을 것이다.


마치며

  이 책의 개념을 가지고 내 나름의 분석을 해보았다. 젠더는 이렇게 다양하게 읽힐 수 있다. 젠더란 무엇인가의 젠더는 여러분의 손 안에 달려있다. 이 책을 가지고 연습을 시작해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매우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참고도서-

노라 빈센트, 공경희 옮김,  548일 남장 체험』, 위즈덤하우스, 2007

로빈 라일, 조애리 외 옮김, 젠더란 무엇인가』, 한울, 2015

크리스티안 자이델,  배명자 옮김,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지식너머, 2015



 

 

 

페미니스트=메갈리아=남성혐오(?)

 

“‘메갈이 위협적이라고?”

넥슨은 게임 클로저스에서 김자연 성우의 목소리를 삭제했다. 그녀가 자신의 트위터에 메갈리아4’‘Girls Do Not Need A Prince(소녀들은 왕자가 필요 없다)’티셔츠를 입고 인증샷을 찍어서 올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메갈리아4 티셔츠, ©메갈리아4 텀블벅 페이지)

 

김자연 성우가 입고 나온 티셔츠를 제작한 메갈리아4’는 사라진 메갈리아와는 다르지만, 그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 텀블벅 페이지다. SNS 페이스북 코리아는 여성 혐오적인 발언이 가득한 김치녀 페이지는 삭제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여성 혐오 실태에 맞서 성차별을 가시화시키려는 시도를 했던 메갈리아는 계속해서 삭제했다. 페이스북 코리아의 이중적인 태도에 메갈리아3’페이지의 운영진들은 고소를 준비하기로 결심한다. 이들은 소송 금액을 모으기 위해 메갈리아4’를 만들어 티셔츠를 판매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메갈 티셔츠. 세상을 바꾸는 한 장의 페미니즘. 김자연 성우가 입었던 바로 그 티셔츠 말이다.

 

#넥슨_보이콧 #김자연성우를_지지합니다

 

넥슨의 조치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며 김자연 성우를 지지했다. ‘여성 혐오 진영에서는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메갈’, ‘메퇘지라고 부르며 낙인찍었다. 또한 그녀를 지지한다고 표명했던 웹툰 작가들의 작품을 나열해 보지 말아야 할 웹툰 리스트라는 이름의 게시글이 제작되었고, 그것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

여성혐오자들이 작가들의 작품을 보이콧하는 것을 넘어, 웹툰 플랫폼 회사들도 이 움직임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유료 성인만화 플랫폼 탑코믹스는 김자연 성우를 지지한 스토리 작가 달곰을 부당하게 해고하기도 하고, 레진은 작가들에게 본인의 SNS에서 소신 발언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거나 이후 잘못될 경우 책임을 물게 할 것이라는 등 얌전한(?) 협박까지 불사했다. 게임, 웹툰계가 나서서 메갈리아’, ‘독자를 무시하는 건방진 작가를 골라내어 살생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넥슨게임 불매" 넥슨 판교사옥에서 항의 시위, ©부산일보)

 

여성혐오는 우리 사회에 숨쉬듯 존재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특별히 게임, 웹툰 계의 여성혐오적 분위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현재 대학에 다니고 있는 20대 여대생들은 인터넷과 친숙하며, 게임과 웹툰을 충분히 소비해왔다. 이들의 게임 이용률과 웹툰 소비율은 유의미하게 높다. 이들의 목소리는 콘텐츠 업계에 제대로 미치고 있을까? 메갈리아라는 커뮤니티와 SNS를 넘어 정치계의 분위기, 한국 분위기는 어떠할까? 여대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2차 여대회담 : ‘메갈 낙인여성 혐오의 방식

회담 진행 : 페미타쿠

 

 

Q.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를 포함하여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김나경 : 덕성여대 법학과에 다니고 있다.

바나나몬 : 청강문화산업대학에서 만화창작을 배우고 있다.

만두 : 동덕여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에 다니고 있다.


 

Q.넥슨의 성우 교체는 정당한 일이었나?


김나경 : 성우란 자신의 목소리를 이용해서 일하는 사람이다. 단지 이 사람이 (회사에) 안 맞아서 계약을 끝내고, 계약금을 주긴 했다면 문제가 없긴 할 것 같다. 그러나 해지의 사유가 개인의 가치관이나 정치적 성향 때문이라면 분명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 성우의 사상이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남자들이 게임을 이용하지 않을까예상만하고 자른 것이기 때문이다.

 

페미타쿠 : 게임 이용률을 보면 남자나 여자나 비슷한데 왜 넥슨은 남자고객을 무서워할까?

: 넥슨이라는 회사의 특징인 것 같다. 원래 유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회사가 아니다. 유저의 캐시가 3~4만원 털려도, 복구를 잘 안 해 준다. 아이디가 해킹을 당해도 복구하려면 한 달이나 걸린다. 청소년을 성폭행한 성우 때문에 한 차례 문제가 됐던 적도 있다. 그 성우를 해고하는 데는 2~3개월이 걸렸다. 이 때 성우협회에서는 성폭행 피해자에게 성우가 너 때문에 밥벌이 잃었다고도 했다. 그런 일에 느리게 대처할 정도로 넥슨은 원래 빠릿하게 유저의 리액션에 대응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넥슨이, (나는) 주문한 메갈리아4 티셔츠를 받기도 전에 (김자연 성우의 목소리를) 신속하게 잘랐다. 기업 내에서, 상부에서 페미니즘을 혐오한다. 게임을 이용하는 여성 유저가 40프로 정도가 되는 걸 분명 모르지 않을 텐데. 누가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상관없이 넥슨은 남성유저들만이 구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빠릿하게 대응한 듯하다.


 

(김자연 성우가 녹음을 맡았던 캐릭터 티나’, ©클로저스 공식 트위터)


 

Q.예스컷 노쉴드에 대한 생각은?

 

김나경 : 너무 당연히 정당하지 못한 건데, 이런 식으로 논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정말 힘들다.

: 콘텐츠를 만드는 직종에 종사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콘텐츠가 점점 유료화 되어가는 것에 대해 동의를 한다. 그런데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불만이 많다. ‘왜 이렇게 비싸냐는 거다. 사실 되게 싼 건데. 애초에 콘텐츠 자체를 유료로 이용하는 것 자체에 동의를 못하는 실태다. 디즈니 사장이 한국에 와서, “한국은 최고의 컨텐츠를 최저의 가격에 판다고 한마디 하고 갔을 정도다.

자본주의에서는 예스컷, 노쉴드하려면 돈으로 보여줘야 한다. ‘네가 그렇게 얘기했어? 나 그럼 네 거 안 사이렇게. 그런데 (한국의 웹툰 소비자들은 돈으로 콘텐츠를 구매한 적이 없으면서) ‘너는 사상이 이상하니까 작가를 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소비자의 권리를 너무 크게 보는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은 컨텐츠 생산하는 프리랜서가 MBC, KBS, NAVER 등 배급사에 붙질 않으면 작품 생산을 할 수가 없다. 기업을 벗어나서 창작하기란 어렵고, 작품이 불법으로 돌아다니게 되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기업에 붙어 계약금을 받으며 일할 수밖에 없다.

바나나몬 : ‘예스컷, 노쉴드는 작가랑 독자 사이의 갑을 관계를 나타낸다. 사실상 공짜로 컨텐츠를 소비하면서 독자들이 네 작품은 내가 보기에 괜찮아야 해라며 작가의 사상을 검열하는 거 자체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가분이 페미니스트로 유명하신데, 메갈리아4의 티셔츠 구입 여부가 알려지자마자 독자들이 보이콧하고 별점 테러하고 그러더라.

 

페미타쿠 : 청강대는 이번 사건 이후 메갈대라고도 불리는 거 같던데?

바나나몬 : 학교 측은 신경 안 쓰고, 심지어 노이즈마케팅이라고 좋다고 생각한다. ‘결국에 우리에게 남는 이미지는 페미니즘 대학이니까 좋은 거 아닌가’, ‘몇 억 들여도 되지 않는 홍보를 해주고 있다’, 이렇게. 그런데 남자애들은 우리학교 (메갈학교 되어서 불만스럽다) 쒸익쒸익이런다. (모두 웃음) 한번은 학교로 김자연 성우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며 전화가 왔다.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끊었다고 한다.(모두 웃음) 익명으로 학교로 민원을 넣는 상황이 웃기다. 청강대 졸업한 작가들 중에 김자연 성우를 지지한 사람이 많았고, 여러 교수님들이 미러링 지지 발언을 올렸다. 페미니즘도 지지한다.

김나경 : 만화를 되게 좋아하는 편이다. 작가들의 개인 사상이나 가치관을 볼 수 있어서다.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추다 보면 만화 자체의 매력이 사라지지 않을까.

 


(▲'예스컷' 로고)



Q.JTBC의 보도와 정의당 문예위, 진중권 칼럼, 해외 매체의 반응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의 여성 혐오 실태를 진단할 수 있을까?


페미타쿠 : 김자연 성우 사건은 페미니스트들도 얘기를 했지만,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하고 정의당 문예위에서도 글을 내고, 진중권 패자부활전하고, 해외매체들도 웃기다고 반응했다. 이런 반응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나경 : JTBC보도는 극혐이었다. 손석희가 약자의 편에 선다고 했으면서, 약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젠더 기득권층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도 없는 상태인데 그런 식으로 뉴스에서 말을 했다는 게 너무 화난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봉사를 많이 하고, 세월호에 대해 의견을 표명한다고 하더라도, 위선적으로 느껴졌다.

: 손석희를 페미니스트라 생각했고, 엄청나게 영향력 있는 사람이니까 되게 기대를 많이 하고 강연을 들었는데 실망했다. 요번 JTBC 보도에서 중립충같은 짓을 했다.

페미타쿠 : 나는 JTBC 보도가 아니라 기사를 봤는데 덧글이 다 왜 메갈 옹호하냐?’ 더라.

: 그러니까 그 정도도 메갈 옹호라고 보는 게 (어이없다). JTBC는 지면기사와 방송기사 노선이 다르다. 지면기사는 보수인데 방송기사는 굉장히 진보적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진보 안에 여성인권운동은 없는 게 느껴진다.

 

페미타쿠 : 진중권 칼럼은 신기하지 않았나? 작가의 창작권을 위협받는 것에 대해 쓴 거 같은데,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 이 글도 웃겼지만, 이 글을 쓴 사람이 진중권이라는 게 더 웃겼다. 진중권이 그걸 실제로 타이핑하는 장면을 상상하니까. (웃음) 사람들이 말하길 그가 간헐적으로 정상이 된다니 너무 웃기다.

만두 : 칼럼이 길어서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나도 메갈리안이다라는 문구는 딱 기억에 남았다. 기업이 노동권을 침해하는 것에 대해 분노한 거다. 이에 동의를 한다.

바나나몬 : ‘초라한 남근으로 만들어진 남근다발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었지만 댓글 반응은 완전 반대더라. 진중권 이전에 어떤 논란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 ‘여자는 기어오르지 마라그런 발언 때문에 논란이 됐었다.

김나경 : 저는 진중권씨가 낄껴라고 생각했다. (모두 웃음) 낄 데 끼고 빠질 때 빠져라. 커뮤니티를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가 하는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얘기를 보고 사태를 판단한다. 그 안에서 하는 말들이 팩트인 줄 알고. 근데 진중권은 유명하기도 하고, 오유에서 인기가 많기 때문에, ‘진중권이 메갈이라니! 메갈이 아예 정신 나간 집단은 아닌가? 한 번 찾아볼까?’ 이런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페미타쿠 : 파급력이 있다는 건가. 진중권은 진보진영이라는 오유에서 추앙을 받는 사람이니까.

: 오유의 토템 같은 존재 진중권.(웃음)

 


(해외 사이트 코타쿠기사, ©KOTAKU(www.kotaku.com))

 

 

페미타쿠 : 해외매체의 반응은 어땠나?

: 생각보다 많은 매체에서 다뤘다. 영국, 네덜란드에서도 다뤄졌고. 네덜란드가 미디어업계에서는 되게 좀 영향력이 큰 국가 중 하나다.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쇼 프로그램도 창의적으로 만드는 편이라서. 반응은 다 하나같이 말도 안 된다는 식이다. 페미니스트 티셔츠 입었고, 해고됐고,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그 나라에서는 말이 안 되는 거다. 이 사람들이 이걸 팩트로 전달하자니 말이 안 되고, 그러니까 비꼬기를 하는 것 같다. 거기선 이 사건이 동아시아의 작은 국가에서 나타난 해프닝이다.

페미타쿠 : 어머, 어머, 쟤네 이런 일이 있었대. 대박이다, 미쳤나봐. (모두 웃음)

: 한국 남자들이 해외 기사에 거기다 ‘you don’t know the truth’라고, 메갈리안들 다 사탄이라고 댓글 달더라.(모두 웃음) 해외매체 반응이 의미가 있는 건 우리나라 게임업체가 해외매체의 눈치를 많이 본다는 점에서다. <오버워치>에서 다 옷 입고 나오니까 다른 게임에서도 캐릭터 다 옷 입고 나오고. 안보는 척 하는데 뒤에서는 다 찾아본다.

 


Q.여성 캐릭터를 묘사한 방식 때문에 논란이 된 넥슨의 <서든어택2>가 얼마 전 서비스를 종료했다. 게임 업계의 분위기와, 제작되는 컨텐츠의 성격은 어떠한가?


페미타쿠 : 넥슨의 조치가 페미니스트들의 반발을 사면서 수익률에 영향을 미쳤을까?

: <서든어택2>가 서비스 종료를 했다. 그게 망한 이유는 여성혐오 때문만은 아니다. 수많은 리뷰들과 전문가 평론을 보면, 넥슨이 <서든어택2> 운영도 느슨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투자금 300억을 메우려고 아이템을 엄청 팔았다. 넥슨도 선정성 문제가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것을 자존심상 표현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도 돈만 있으면 (많은 게임의) 패치를 싹 바꿔버리고 있고, 정말 다급하다는 게 여러 방면에서 많이 보인다.

김나경 : 아무리 여성 유저가 40%라고 한들 넥슨은 남성유저를 주 고객으로 보고 있다. <서든어택2>의 여성 캐릭터의 목소리나 그림을 보면 남성의 눈높이에 맞춰 게임을 팔아보려는 집념이 보인다.

바나나몬 : ‘남성유저들이 반발을 하니까 그 목소리를 들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헤비 유저들이 주로 남성이고, 김자연 성우의 사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먼저 냈던 것도 그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아예 여자캐릭터를 삭제해 버린거고, 김자연 성우의 목소리도 삭제해버리고, 계속 문제가 되니까 <서든어택2> 자체를 없애버리는 사태가 벌어 졌던 게 아닌가.

김나경 : 약간 우리 정치 같다.(웃음)

: 고심 끝에 해체하기로.(웃음) 서비스를 종료해서 놀랐다. 웬만하면 서비스 종료는 안 한다. 넥슨의 일랜시아이런 게임이 15년 정도 된 게임인데 아예 운영자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그렇게 운영자가 없어도 서비스 종료를 안 하는데, 300억의 돈을 들였고 투입된 인력도 많았을 게임을, 서비스 종료했다는 게 놀라웠다.

바나나몬 : 당연히 게임을 좀 보수하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었다. 게임업계에 종사하시는 분 말씀이, 캐릭터를 다 손보고, 시스템을 손보는 것보다는 아예 게임을 삭제해 버리는 게 이득이라고 하더라. 삭제해버리면서 논란도 같이 없애니까 게임 업체에서는 (오히려) 이득이라고 한다.

페미타쿠 : 그렇다면 <서든어택2> 서비스 종료의 이유가 여성유저들의 반발이 빗발쳐서가 아니라 남자 고객들의 눈치를 봐서, 서비스가 엉망이라서, 게임을 유지보수하는 것보다 삭제하고 다른 걸 만드는 게 수지타산에 맞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김나경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 페미니즘이 영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점은 넥슨 게임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에서도 헐벗고 있던 게임 캐릭터들이 옷을 입었다는 점이다.

: (모두 웃음) <테라>도 그렇고.

김나경 : 점점 여성 캐릭터의 화장도 연해지고, 옷도 주워 입고. 이게 어떤 문제인지 알리는 기회가 된 것 같다.

페미타쿠 : 서비스 종료 네이버 기사를 보니까 누가 저딴 걸 하냐, 저렇게 발가벗으면 남자들이 좋아할 줄 아냐, 남자들을 뭘로 보는 거냐, <오버워치>는 다 입고 나오는데도 PC방가면 애들이 <오버워치>만 한다.’라는 댓글을 남자들이 썼더라.

: 친구들 중에서도 남자애들이 서든한다고 하면 그거 포르노 아니냐는 등 자기 검열을 하는 것 같다. 거기에 페미니즘이 작용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넥슨이 (페미니즘에) 도움이 됐던 게 상상초월로 이상한 것을 내놓아서. (모두 웃음) 300억 써서 우리에게 도움을 준 것은 아닐까.

김나경 : 학원에서 1년 넘게 영어를 가르쳤다.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무슨 게임하냐고 물어보니까 <서든어택>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 <서든어택2>가 출시되기 전에 너는 어떻게 생각해? 좀 야하더라.’라고 얘기했더니 그래서 흥분되니까 한다고 그러더라. 서비스 종료할 때 즈음 어떻게 생각하냐 다시 물어봤더니 부모님들 눈치도 보이고 친구들끼리 하기에도 조금 그렇다고 하더라. 또 여자애들이 서든한다고 하면 변태라고 한다고.



(오버워치 아나캐릭터, ©블리자드 공식 트위터)


 

페미타쿠 : 게임이 노골적이어서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못하겠다는 건데, 이걸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볼 수 있을까?

만두 :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갔다 온지 2주밖에 안 됐다. 미국 남자들이 얘기하는 걸 보면 여자들 눈치를 조금 많이 본다.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하면 여자들이 나를 쓰레기같이 보지 않을까?’ 이러면서 눈치를 많이 보는 거다. 자기 검열을 하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이게 페미니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눈치를 보게 만드는 건 중요하다.

 

페미타쿠 : 게임 업계의 분위기나 제작되는 컨텐츠 성격은 어떤지? 왜 게임을 이용하는지? 최근의 사태로 분위기가 바뀌었는지 아니면 그대로인지?

바나나몬 : 게임 캐릭터 일러스트 원화를 만드는 분이 이야기해주기를, 게임 제작과정에서 캐릭터 일러스트를 만드는데 회사 상무가 여자 캐릭터를 만들 때에는 무조건 벗기라고 했단다. 남자캐릭터는 상관이 없는데 여자캐릭터는 레벨이 올라갈수록 더 벗기라고. 이게 심지어 최근 일이다. 윗선에서는 변하지 않는 공식인 것 같다. 예를 들면 아이돌한테 토끼 귀를 씌우라는 둥, 취향이 변하질 않는다. 제작과정에 투자자들의 취향이 그대로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 기업에서 팔아준다. 아무리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어도 업계에서 받아들여주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린다고 하더라. 그래서 아직은 게임업계가 많이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 내가 했던 게임은 <테일즈위버>라는 게임인데, 서비스를 한지 10년이 넘었다. 룬의 아이들이라는 소설을 베이스로 만든 게임이라서 캐릭터가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스토리도 원작을 그대로 반영하는 편이었다, 원래는. 그런데 작년 초반에 갑자기 뜬금없이 가슴이 보이는 캐릭터가 나왔다. <테일즈위버>가 오래된 게임이라서 그래픽이 평면적이고 캐릭터도 작은 편인데, 이 캐릭터는 3D도 아니고 2D도 아니고 애매모호한 그래픽에, 캐릭터가 뛰면 가슴이 출렁거리는 게 보였다. 유저들은 왜 원작에 있지도 않은 캐릭터를 가져와 굳이 저렇게 야하게 만들어 등장시켰냐며 반발했다.

또한 게임은 캐릭터가 서로 밸런스가 맞아야 하는데, 새로 나온 캐릭터가 팔려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밸런스를 무너뜨릴 정도로 능력치가 높았다. 노가다하며 수련 하고 사냥해서 열심히 자기 캐릭터들을 키워왔던 기존 유저들이 진이 빠져서 많이 그만 뒀다. 금전적 손실을 입고 나니, 가슴 출렁거리는 이펙트를 삭제하고 캐릭터 능력치를 내렸다. 당시에는 페미니즘을 잘 몰라서 단순히 넥슨이 헛짓했네이랬는데, 이번 넥슨 사건의 복선이었던 것 같다.

바나나몬 : 최근에 놀러와 마이룸이라는, 집을 꾸미는 아기자기한 게임을 한다. 실제로 여성 유저들이 많이 한다. 거기에서는 딱히 여성 혐오적인 컨텐츠를 찾지는 못 했다. 유저 간 여성혐오를 말해보자면, 마이크를 끼고 하는 게임 같은 경우에는 여성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부터 대우들이 달라지더라. 갑자기 친한 척 한다거나 게임 못 한다고 무시하거나.

: 여자들이 그런 게임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여자들은 이런 저런 게임들을 다 하는데 남자들이 아기자기한 게임을 안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애들 게임은 정형화되어있고.

페미타쿠 : <서든어택>, <피파>, 이런 거?

: (끄덕) 나는 3D 게임도 좋아하는데, 플레이할 때 여성유저들에 대한 편견이 되게 심하다는 걸 매번 확인한다. 웬만하면 여자라는 거 안 밝히고, 게임 톡도 참여 안 한다. 여자라는 걸 밝히면 대부분은 어머 저분은 여성이니까 엄호해뭐 이렇게 우호적으로 변한다. (모두 웃음) 또 일대일로 대화 오고, 여러모로 불편하다.


페미타쿠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 게임에 매력을 느끼는지?

: 스토리나 즐길 수 있는 컨텐츠에 매력을 느껴서 했다. 여성 혐오적인 것을 알면서도 감안하면서, 선택지가 없으니까. 그래서 <오버워치>가 등장한 게 너무 반갑다. 즐겁고 질 높은 대안이 생긴 것이다. <오버워치>가 세계로 뻗어나갔음 좋겠다.



(메갈리아 로고, ©메갈리아 홈페이지)

 


Q.사람들은 일베에 대적할만한 커뮤니티로 메갈이 등장했다면서, ‘여혐 하는 일베’, ‘남혐 하는 메갈, ‘여혐 대 남혐 구도를 주장한다. 메갈리아는 남성혐오를 하는가?

 

김나경 : 엄마가 오늘의 유머이용자인데 정말 많이 싸우게 된다. 나보고 메갈년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변, 특히 학교에 명예남성이 진짜 많다. (그래서 주로 오프라인에서는 주변사람들과 얘기를 할 기회가 많지 않고) 나는 온라인에서 여혐 이슈로 키보트배틀(이하 키배’)’를 많이 벌이는 편인데, 그 때마다 내 논리는 백인이 흑인을 혐오할 수는 있지만, 흑인이 백인을 혐오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혐이라는 말은 아예 성립되지 않는다.’이다.

페미타쿠 : 어떤 뜻에서 남혐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김나경 : ‘남성혐오혐오싫어한다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여성혐오혐오싫어한다의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물리적으로 여성을 배제하는 현상을 뜻한다. 여성이 남성을 싫어할 수는 있겠지만, 젠더 메커니즘의 약자이자 피기득권층인 여성이 기득권층인 남성을 똑같이 배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회적으로도 높은 직급에 여성이 적을뿐더러, 여성이 남성의 성별을 문제시하여 퇴직시키거나 해고할 수 없는 구조인데 어떻게 혐오가 가능하겠나. ‘여성혐오의 대등한 말로서 남성혐오란 말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페미타쿠: ‘여성혐오라는 단어에 대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 본 적이 있는가?

바나나몬 : 학교에서 같이 만화를 배우는 남자애와 이런 얘기(여성혐오)를 해 볼 기회가 생겼는데, ‘내가 오히려 약자야. 왜냐면 우리 학교는 여초이고 그 중에서도 여자가 많은 과에 속하기 때문에 나는 소수야. 그래서 나는 너희들의 눈치를 봐야 해. 자칫하면 너희들이 나를 몰아서 공격할 거잖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난 여자 좋아해란 말은 꼭 붙이더라. (웃음) ‘나 여혐 안 해. 나 여자 존중해. 근데 내가 무슨 말하면 너희들이 화내고 나한테 여혐한다고 할까봐 무서워서 말을 못하겠어.’라는데, 진짜 빻았다고 생각했다.(웃음) 여성혐오의 맥락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만두 : (그 동안 여자 연예인에 대한 외모 품평에 대한 미러링으로) 남자 연예인의 외모를 깎아 내리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남자들한테 여자들이 느꼈던 걸 똑같이 느끼게 해주는 점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메갈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친구들이 , 거기 이상한 데잖아.’라고 손사래를 친다. 여자인 친구들도 그렇게 부정적으로 얘기를 하니까 어디 가서 섣불리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페미타쿠 : 여성혐오에 관해서 주변에 말해본 적이 있는지?

만두 : 사실 주변에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거의 없다.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해본 적도 없고. 주변 남자애들이 가사노동 분담이라든가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과 같은 이슈에서 공감하고 생각해주는 애들이라 여성혐오와 관련해서 논쟁을 많이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나도 좀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메갈리아의 주장에 대해서 반대하지는 않았는데, 메갈리아가 남혐을 한다고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방금 이야기를 하면서 남성혐오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Q.메갈리아에서 선택한 미러링 전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두 : 미러링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는 건데 그렇게까지 하는 게 괜찮은 걸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누군가가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여자들이 그 동안 느껴왔던 감정을 남자들도 느껴볼 수 있게 하는 전략은 없는 걸까 싶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미러링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 남성을 낮추는 것에 대한 의의는 이런 면에서도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이 낮춰진 자신의 인권을 신장하려고 노력할 때, ‘그래, 너희도 당해보니까 그렇잖아. 너희도 인권신장 운동하게 되지? 그럼 우리 다 같이 노력하자.’ 이렇게 (연대하여 공동의 목표로 나아가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나 싶다. 미러링의 의미는 우리가 여혐 당한 것처럼 너희도 한 번 느껴봐. 이게 바로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 너를 바라보는 거다. 느껴봐라. 역지사지해보고, 너도 부당함을 느꼈으니 우리 함께 잘살아보세.’인데, 애들이 일단 까이니까 그게 열 받아서 쒸익쒸익 한다. (모두 웃음)

김나경: 같이 해야 하는데, 남성들은 너네도 이거 kibun 나쁘다면서 왜 해? 너네 kibun 나쁘잖아. 왜 해?’라고만 하니까 답답하다.



 



Q.메갈리아에 대한 주변 여대생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페미타쿠 : 미러링은 남성들에게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영향력이 있다. 주변에 친밀하게 지내는 여성들과 메갈리아에 관해 얘기를 해본 적이 있는지?

바나나몬 : 올해 초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처럼 메갈리아가 남혐을 하는 곳이라 생각해서 부정적이었다. 그러다가 여성주의를 많이 공부한 현업 작가님과 얘기를 해봤는데, 그 분 말씀이 메갈리아의 가장 큰 의의는 무엇보다도 여자들의 생각을 일깨워주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되돌아보니 나도 메갈리아를 통해 깨달은 점이 많았고, 주변 여자애들한테도 너희도 이런 거 알아야 해.’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많은 여자들한테 더 많이 생각하게 해 줄 수 있는 계기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페미타쿠 : 생각이 바뀌게 된 특정한 전환점이 있었나? 아니면 그 분 말씀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나?

바나나몬 : 그 분 말씀이 계기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 분의 작품도 남성들이 아니라 여성들에게 하는 얘기라고 말씀하셨다. ‘여자들이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만화를 기획한 것이다.’라고. 그 말씀을 듣고 긍정적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김나경 : 학교에는 명예남성이 많아서 주로 학원에서 가르치는 애들과 이런 얘기들을 하는데, 확실히 남학생과 여학생의 반응이 다르다. 남자애들은 대번에 ‘(선생님) 김치녀예요?’라고 말하길래 아예 얘기를 안 했다. 그래서 주로 여자애들과 얘기를 한다.

처음 메갈리아 얘기를 꺼내게 된 건 퀴어 페스티벌이 계기였다. 특정 성(여성)이 억압을 받아 페미니즘이라 이름 지어진 거지, 페미니즘이 목표하는 건 모든 성이 평등한 것을 말한다는 설명해주면서 메갈리아까지 얘기가 넘어갔다.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메갈리아 사이트에 접속해서 게시물을 봤다는 얘기를 할 정도로 긍정적으로 인식이 변했다. 물론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니까 그랬을 지도 모르지만.

페이스북에서 페미니즘 관련 글들을 공유하면 너 왜 페미니스트 짓 해?’라고 하던 명예남성친구들이 요새는 너 아직도 페미니즘 하면 나한테 설명 좀 해 줘. 내가 요새 이런 일을 겪었는데 이것도 여성혐오가 원인인 건지 너한테서 얘기를 듣고 싶어.’라고 연락이 오곤 한다.

페미타쿠 : 어떤 이야기였나?

김나경 : 내 친구가 아이돌 같이 화려하게 생겨서 눈에 띄는 편이다. 그 친구가 노래방 카운터에서 돈만 받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취객이 와서 나는 네가 좋다. 네가 우리 방으로 와라.’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

처음에 이 친구랑 크게 싸웠던 계기가 박유천 성폭행 사건이었다. 당시 토일렛(toilet) ’, ‘룸키유천이런 식으로 별명을 지어 조롱하곤 했는데, 그 친구는 왜 사람 이름 앞에 토일렛을 붙이냐면서 엄청 싫어했다. 내가 화장실에서 성폭행했으니까 토일렛을 붙이지.’라고 대꾸하면서 싸움이 났다. 나는 성노동 종사자들도 인권이 있다고 주장을 했고 (그 친구는 반대 의견이었다.). 친구가 자신이 성매매 종사자로 오해를 받은 게 여성혐오 때문이냐고 묻길래 설명해주다가 네가 만약에 성매매 종사자였으면 기분이 어땠겠냐. 너는 성을 판매하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식으로 취급을 받았다. 그럼 그 사람들은 평소에 어떤 대우를 받겠냐.’고 얘기를 했다.

: 최근에 절친한 언니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 언니를 못 본 사이에 내가 페이스북에서 페미나치짓을 엄청 했는데, (모두 웃음) 최근 <진짜 사나이><냉장고를 부탁해>를 리뷰하면서 신랄하게 비판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진짜 사나이>에 대한 비판 글을 쓰게 된 계기가 걸크러쉬 타입인 서인영이 순한 양이 되는 게 이번 특집의 키포인트다.’라는 <진짜 사나이> PD의 말이었다. 나는 이에 대해 비판을 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줬다. 신나서 더욱 활발하게 활동을 했는데, 언니가 그런 걸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 언니의 어머니는 딸의 외모를 엄청 비하하는 여혐러이다. 언니가 무슨 옷을 입으면 저 살 좀 봐라. 네가 그런 거 해서 되겠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일상이다. 언니는 그걸 평생 겪으면서 살아왔고, 아무리 싫다고 얘기를 해도 엄마가 듣지를 않으니 그런 점은 대충 감안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던 언니가 미국을 잠시 다녀왔는데, 소위 살이 흘러넘치는 데도불구하고 비키니를 입는 사람들과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않는 곳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살아보니까 그 동안 자신의 생활이 너무나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 더 이상 엄마한테 당해서는 안 되겠다고. 메갈리아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더니, 자기는 무섭다고 했다. 메갈리아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미러링이 어떤 힘이 있는지 너를 통해서 들으니 다 알겠고, 자기가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것도 알겠고, 엄마한테 가서 한 소리 해야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 모든 걸 부딪히는 게 자기는 너무 무섭다고. 그러면서 나한테 너 같이 용기 있는 애들이 앞서 나가주면,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거기에 편승하고 싶다.’고 했다. 그 동안 많은 여자 지인들한테 메갈리아에 대한 얘기를 해봤는데, 그렇게 솔직한 얘기는 처음 들어봤다. 동의하면서도 선뜻 동의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정말 많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나경 : 강남역 사건 당시 꼬박 6일 동안 시위에 나갈 정도로 분노했었다. 그 때 엄마랑 가장 크게 싸웠다. 그러고 나서 거의 한 달간 연락을 안 했는데, 엄마께서 먼저 연락하셨다. (그동안은 강남역 사건은 여혐사건이 아니라고 하시던) 엄마가 처음으로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이거 여혐 사건 맞는 거 같아. 엄마가 잘못 생각했어.’라고 하셨다. ‘여성혐오라는 것은 앞으로 너의 진로를 막을 수도 있고, 네가 가장 영향을 받고, 또 아파하는 부분인데, 지금까지도 아빠의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살고 있는데, 나는 네 말에 귀 기울여 듣지 못했다. 가장 많이 느꼈던 게 내가 여성혐오자라는 사실이다. 앞으론 이런 거에 대해서 너랑 가장 많이 얘기를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모두 박수)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라로고, ©페미니즘 위키)

 


Q.진짜 페미니즘과 가짜 페미니즘을 나눌 수 있는가? 여성 혐오자들은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되라고, ‘진정한 페미니즘을 하라고 말한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정한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여혐의 홍수 속에서 남혐하는 메갈로 대표되는 한국 페미니스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김나경 : 용감해져야 한다. 미러링과 같은 방법론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를 밝힐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메갈이라고 하든 안 하든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힘든 일이다. 나는 아빠한테 굉장히 많은 폭력을 당하고 살았고, 불과 몇 달 전에는 나한테 자꾸 뚱뚱하다고 해서 그만하라고 했다가 길거리에서 신발로 폭행을 당했다. 경찰서에 갔는데 경찰이 피해자인 내가 아니라 가해자인 아빠 편을 들었다. 대학 다니는 지식인인 네가 아빠를 고소하냐, 너는 패륜아다, 넌 대학을 다닐 필요도 없고 대학에 전화해서 못 다니게 만들어야 한다고 경찰이 말했다. 나도 지지 않고 용감하게 사람이 맞고 경찰서에 왔는데 고작 한다는 소리가 그런 거냐. 그게 자랑스럽냐, 당신은 그게 정의롭다고 생각 하냐.’고 얘기했더니 거기 있던 경찰관들이 나이 많은 남자한테 얘기하는 거 봐라. 자기 아버지뻘한테 얘기하는 거 봐라.’라고 하면서 나를 둘러싸고 미친년 취급을 했다. 솔직히 이런 반응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난 (내 생각을) 얘기했다. 용감해지는 게 가장 크고, 중요한 순서라고 생각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얘기해주는 거.

 

페미타쿠 : 근데 용감하게 행동할 경우에 위험에 처할 확률이 높지 않은가. 이런 거에 대한 두려움은? (어떻게 해결하나?)

김나경 : 모든 사람한테 너 이렇게 했어야지. 나는 네 가치관이랑 달라.’ 이렇게 하자는 게 아니다. 물론 나 역시도 많이 두려워했고, 두렵다.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를 때리는 사람 앞에서 그렇게 얘기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근데 방법은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대화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반응할 수도 있고. 일단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 생각을 말하는 거다. 말이 아니더라도 행동으로써. 표정이나 몸짓만으로도 할 수 있으니까. 이것도 굉장히 용기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무섭다. 페미니스트는 회사 다니기도 무섭고, 어디 가는 것도 무섭다. 그런데 사실, 페미니스트가 아니어도 무서운 건 마찬가지다. 통계에 따르면 여자는 3일에 한 번씩 죽어나가니까.

바나나몬 : 학교에서 여성혐오를 주제로 한 번 수업이 이뤄진 적이 있다. 중년 남자 교수님께서 처음에는 메갈리아? 미러링? 근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좀 더 부드럽고 좋게 할 수도 있지 않아?’라고 말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난 뒤 교수님과 얘기를 했었는데, 다음 수업 때 교수님이 일주일 동안 생각을 해봤는데, 미러링을 하지 않았으면 나라도 생각이 안 바뀌었을 것 같아.’라고 하셨다. 그 후로는 혹시 내가 실례되는 말을 했니?’라거나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너희에게 안 좋은 인식을 심어주니?’라고 계속 묻더라. 그러면서 사실 이렇게 하는 거 불편한데 내가 불편하지 않으면 너희가 불편할 거 아니냐.’고 말씀하셨다. SNS에서 페미니즘 관련 글에 많이 관심을 보였는데, 살생부에 내 계정이 올라갔다. ‘, 나 좀 행동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엄마한테 얘기했는데 엄마가 엄청 걱정하셨다. 신상 털리고, 그 사람들이 내 사진을 이상하게 왜곡해서 유포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면서 엄마가 너무 걱정이 많지? 미안해.’라고 말했다. 생각을 드러낸다는 이유로 위협받을 수 있다는 걸 두려워해야 한다는 게 너무 슬펐다. ‘엄마 말대로 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잠들고 나서 일어나보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김나경 : 키배(키보드배틀)뜨다가 일베충 고소해서 일본 여행도 다녀온 적 있다. (모두 놀람)

: 고소 노하우 좀 알려 달라.

김나경 : 나는 일명 과격파이다. 가릴 거 없이 상대 기를 팍 죽여서 한 마디도 못하게 만드는 편이다. 하도 YTN기사마다 덧글을 달고 다니니까 누군가는 나의 덧글을 캡쳐 해놨을 거 같다는 생각에 일베에 들어갔다. 있더라. (웃음) 고맙게도 아이피가 나타나기 때문에 구글링을 해서 나를 욕한 사람들을 명예훼손과 사이버 고소죄로 고소했다.

만두 : 페미니즘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실행은 못했다. 오늘 얘기 들으니까 정말 신기하고 존경스럽다. 용기를 내서 얘기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데. 부모님이나 언니가 가끔씩 여혐 발언을 할 때, 혹은 친척분들이 듣기 불편한 말씀을 하실 때 왜 저러시지라고 생각은 들지만, 논리적으로 따지지를 못하니까 그냥 듣고 넘기게만 되던데. 주변에 워낙 원만하게 살자주의의 친구들만 있고, 그 친구들은 뭐 어때. 그냥 이렇게 끼어서 살다가 나중에 유명해지거나 돈 많이 벌면 그 때 가서 의견 피력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주의다. 나 자신도 원만하고 무난하게 사는 편이라 그럴 때마다 그냥 넘기고는 한다. 인터넷에서 페미니즘 관련된 주제는 아니지만 키배 비슷하게 설전을 벌인 적이 있는데 일주일 동안 엄청 스트레스 받아서 물도 잘 못 마실 정도였다. 정말 다들 대단하다.

 

페미타쿠 : 주변이 그렇게 다 여혐 이슈에 무심하면 본인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 텐데, 무엇인가?

만두 :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혹은 그런 경우를 목격할 때가 있다.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 문제라든지, 혹은 친척집에서 이모는 일하는데 이모부는 앉아있기만 한다든지. , 언니가 유학 생활 얘기를 해줄 때마다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 꿈같고 부럽기도 했다. 나도 이번에 미국에서 교환학생 갔다 와서 느낀 건데, 미국에 있을 때는 살찌는 것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 오자마자 사람들이 너 왜 이렇게 살 많이 쪘냐고 뭐라고 하더라. 가끔 이런 걸 얘기해보면 사람들이 나한테 너 페미니스트야?’라고 묻는다. 그러면 항상 회피하기만 했다. 페미니즘이 뭔지도 잘 모르고, 뭔가를 더 해야만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얘기할 사람도 없고 아무도 공감하지 않으니 나만 되게 이상한 사람 같고.

 

페미타쿠 : 페미니스트라고 낙인 찍히는 게 싫어서 회피한 건지, 아니면 페미니즘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그랬던 건지?

만두: 둘 다 인 것 같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걸 잘 못해서 논쟁을 피하는 성향이 있다. 페미니스트라고 얘기했을 때에는 페미니즘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는데 논리적으로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특히 한국에서는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주변에서 좋지 않게 바라보기도 하니까.

: 약간 입덕기인 것 같다. 트위터를 시작해보는 게 어떤가. (웃음)

김나경 : 나도 페미니즘에 입문하면서 그런 과정을 겪었다. 논리적이지 않으면 아무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SNS를 시작했는데, 사람들과 얘기하고 들어보면서 내 나름의 논리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페미니즘에 뛰어든 이후로 학교 성적도 올라갔다. 보통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얘기할 때 통계치를 많이 쓰는데, 통계를 보면 논리가 나오고 거기에 내 경험도 덧붙여서 쓰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처음에는 반대쪽도 비논리적으로 나를 폄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똑같이 비논리적으로 대응하면 된다.

: 그러고 나면 내가 일베와 동급이 된 거 같아서 현타가 올 수 있다. 나 진짜 못났다고 자괴감에 빠질 수 있다. 내가 그랬다. 강남역 사건 떄, 이게 왜 여혐이냐고 묻는 사람한테 똑같이 대응하다 보니 나도 빻은 소리를 하고 있더라. 그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페미니즘 책을 읽게 되었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얘기를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솔직히 책 한 권 읽었다고 엄청난 페미니스트가 되는 건 아니지만, 자신감도 많이 얻고 논리왕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키배에 참여하게 되면서 주워듣는 것도 많고.

페미타쿠 : 스스로가 공감할 수 있는 쉬운 것부터 시작하면 좋은 것 같다.

만두 : 근데 현실적으로 많은 여성분들이 너무 바쁘기 때문에 참여를 못하는 것 같다. 취업도 해야 하고 여러 가지 준비할 것들이 많지 않은가. 나 같은 경우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뭐 하나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하는데, 현실에 놓여 있는 과제는 너무 많고, 그러다 보니 다른 데에는 시간을 할애할 수가 없다. 부담되니까 아예 뒷전으로 밀어버리게 되더라.

: 나도 취준생이다. 페미니즘을 시작하면 제일 먼저 바뀌는 게 사유하는 과정이다. 때문에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짜증이 나고,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다 보이게 된다. 속칭 페미병이라는 건데. (웃음) 근데 이게 나한테는 도움이 되었다. 나는 PD 지망생이고 PD는 사람을 관찰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 전까지는 사람을 관찰하는 데 시간을 크게 할애하지 않았다. 그런데 페미니즘을 하다 보니까 사람을 관찰하게 되었고, 정말 모든 게 잘 보이더라. 카페에 어떤 아저씨가 들어와서 알바생한테 어떤 멘트들을 던지는지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물론 그게 초반에는 잠도 잘 못 자고 신경 쓰여서 피곤하긴 하다. 근데 한번 지랄을 해보면 괜찮아진다. 강남역 사건이 계기였다. 그전에도 관심은 많았지만 드러내기가 두려웠다. 주변에 남자 지인들도 많아서 더 이상 인맥을 유지하기도 어려울 거고, 내가 페미니스트인 걸 드러내는 순간 모든 여혐러들이 다 나를 손가락질 할 거고. 근데 강남역 사건 이후로 내가 언제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까? 나도 언젠가는 폭력에 노출된 여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페이스북 상에서 빻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다 친하게 지냈던 남자 지인들이었다. ‘사이좋게 지내요. 남자 여자 싸우지 마세요.’ 이런 글을 올리는 걸 봤을 때, 내가 왜 이런 인맥을 유지해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서 내 페이스북에나는 페미니스트이고, 앞으로 내 타임라인에 이러이러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안 봤으면 좋겠다. 만약 그럴 경우에 페친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그 때부터 드러내기 시작해서 (페미니즘 활동한 건) 얼마 안 됐다.





페미타쿠 :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 요새 취업 준비를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스터디원들이 모두 여자고, 한 명만 여대에 재학 중인 여대생, 나머지는 공학출신이다. 여대생인 사람은 페미니즘에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한 상태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약간 명예남성인 사람들이다. 언론 공부를 하다 보니 콘텐츠 얘기를 많이 하는데, 우리가 접하는 콘텐츠에 여혐이 진짜 많지 않은가. 더 이상 그 부분을 짚지 않고선 토론을 진행할 수 없었다. 그랬더니 한 사람이 불편하다고, 어차피 우리는 그 업계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인데 자꾸 이렇게 딴죽을 걸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고 하더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기서 지지 않고 너는 어떻게 여자면서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냐.’고 지적하는 거다. 비슷한 예로, 저번 학기에 100명 정도가 수강하는 미디어 학부 수업을 들었을 때다. 대중문화에 대해 논하는 수업이었고 진행하시는 교수님도 페미니스트이신 분이셨는데, 강남역 사건이 터졌을 무렵이었다. 교수님께서는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분명 교수님 자신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 자신이 의견을 내면 그 사람들이 불편해 할 것이다, 강단에 서는 사람으로서 매우 고민된다고 하시더라. 그 때 교수님께서 망설이시는 걸 막았더니, 교수님께서 나보고 한 번 얘기해보라고 하셨다. 그 때 당시 페미니즘 책 한 권을 다 읽은 상태였는데, 그걸 가지고 다 깠다. 마지막으로 했던 얘기가, ‘여기 100명 정도가 앉아있고 대부분이 미디어 전공자인데 이런 감수성 없이 언론인이 된다는 건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다.’였다. 그런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나머지는 취업을 하고 나서 그 안에서 지랄을 하는 게 내 임무겠지. ‘생활 속의 지랄이 정말 엄청난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만 지랄해봤으면 좋겠다고 주변인들한테 호소하고 다닌다. 근데 그게 진짜 어려운가 보다.

김나경 : 내 가족인데, 가족마저 나한테 등을 돌리면 어떡해.

: 페미니스트라고 하고 나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그럼 너희 아빠도 한남충이야?’이다. 그럼 나는 , 한남충이야. 최고의 한남충이야. , 너는 아닐 거 같아? 너도 한남충이야. 벌레 충이 기분 나쁘면 충실한 충 해줄게. 남성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해줄게.’ 이런 식으로 맞받아친다. 이처럼 우리를 공격하려고 질문이 들어올 때 지지 않고 더 나아가야 한다. 나경 씨가 악플러들을 고소하는 것처럼.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런 걸 페미니스트라고 불러야 되는 것 같다. 한 번 해보면 페미니스트, 별 거 아니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김나경 : 생각만 가지고 있는 것도 페미니즘이니까.

: 일단 덤비는 거다. 나 자신을 검열하지 않고 내가 맞다 생각하는 걸 화두로 던져보는 게 중요하다. 상대가 논리적으로 답을 하면 나도 그에 맞데 다시 화두를 던지고 이런 식으로 논의가 활발해지는 모든 과정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김나경 : 가장 공감했던 책은 미움 받을 용기였다. 저 사람이 나한테 뭐라고 해도, 그거 뭐 어쩌라고, 이런 사고가 가능하게 된다.

: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이 없다. (모두 공감) 그리고 사람들이 페미니즘 한다고 하면 싫어할 것 같지? 안 싫어한다, 멋있다고 하지. (웃음) ‘너 용기 있다.’ 이렇게 얘기해주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구리다고 하는 사람들과는 관계를 끊는 게 정신건강에 좋고. 멋있다고 해주는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면 되는 거다.

: (페미니즘 책) 한 권만 읽어도 99명 후려 팰 수 있다. (웃음)

김나경 : 페미니즘은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최종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성차별도 없고, 게이(성소수자)를 봐도, ‘, 게이(성소수자)!’ 이러지도 않고. (모두 웃음) 여자한테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보지 않고 애인 있냐고 물어보는 사회가 인간 최고의 발전이고 목표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페미니스트로서의 단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단계를 정해야 하는 것 같다. 어쨌거나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들이 훨씬 많으니까 난 그 사람들 보다 먼저 페미니스트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차피 쟤네들도 여기(페미니스트 단계) 와야 하는데.

: 도태를 생각하면 될 거 같다. 너네는 번식 탈락할 것이고. (모두 웃음)

 


대담 후기

: 정말 재미있었다. 사실 우리 학교 내에는 페미니스트가 많다고 믿고 있고, 이게 애교심이 급상승한 원인이기도 하다. ‘나 이 학교 와서 인생 폈다. 숙대짱이다.’이런 생각을 4학년 때 제일 많이 하기도 했고. 근데 숙대 이외의 친구들을 만나서 이렇게 얘기해보니 거기에도 있구나, 전쟁에 비유하자면 저쪽 동네에도 독립군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만두처럼 페미니즘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하니까 기분이 좋았다. 평생 이런 사람들하고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만두 : 살면서 무언가에 대해 이렇게 깊게 얘기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평소에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훨씬 좋아하는데, 많은 생각들을 들을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고, 용기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챱이 말한 생활 속의 지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엄마나 언니가 얘기하는 거에 대해서 적당히 넘어가고 회피했는데, 이제는 뭔가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 사는 여성분들 중에 나 같은 사람이 되게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도 이런 내용에 대해 더 많이 노출되어 보고 토론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이런 얘기가 더 많이 나오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바나나몬 : 열띤 토론을 벌인지라 에어컨이 정말 필요했다. 감명을 많이 받았다. 연대하면서 공동체의식을 느끼고 자극 받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요새 작업하느라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는데, 오늘 자리 나오기 전에 이것저것 찾아보고, 와서 얘기하면서 역시 나는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라고 생각했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목소리를 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김나경 : 주변에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정말 좋았다. 유명한 페미니즘 만병통치약 짤방도 생각났다. 이런 기회가 와서 정말 좋았다.

여자 아이돌, 야동이거나 상품이거나.

by.광개토

 

 


한국의 미디어 제작자들은 여자 아이돌을 사람으로 대하는 방법을 아직 모르는 듯하다.


 

Mnet <프로듀스 101>을 제작한 한동철 피디는 지난 7월 잡지 <하이컷>에서 남자들에게 건전한 야을 만들어주기 위해 해당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고 인터뷰했다. 그 말을 반증이라도 하는 듯, <프로듀스 101>의 참가자들은 교복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고 온갖 대상화의 시선에 재단당해야 했다. 한동철 피디는 논란이 가중되자 의도가 잘못 전해졌다고 해명했다. 한동철 피디는 어찌 보면 피디다운 명철함을 지닌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자 아이돌은 야동이거나 상품이다.

최창수 피디가 이끌고 있는 JTBC <아는 형님>723일 러블리즈 편에서 걸그룹 러블리즈의 멤버 케이와 프로그램 패널 강호동이 각각 데이트에 늦은 여자 친구와 남자 친구 역을 맡아 연기하는 모습을 내보낸다. 상황극에서 강호동은 죽고 싶어?’라는 협박과 함께 폭력을 휘두를 것 같은 위협적인 행동을 취한다. 이에 케이는 강호동의 손을 잡으며 애교를 선보인다. 마치 데이트 폭력 현장을 재현한 듯한 모습임에도 이 장면은 방송 후 케이의 애교에 집중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한편 SBS는 남성 패널들의 운명을 시청자가 직접 결정한다는 여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꽃놀이패>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다. 프로그램은 남성 패널 간 시청자 인기투표를 진행해 상위 랭크인 패널을 꽃길이라고 부르는 호화 여행길에, 하위 랭크인 패널을 흙길이라고 부르는 힘든 여행길에 서게 한다. 꽃길인 편안한 여행 코스 중에는 걸그룹 트와이스와 노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었다. 인기가 많은 남성은 미모의 어린 여성들과 시간을 보낼 기회를 갖는다.

여자 아이돌은 데이트 폭력을 행사하려는 남자에게 화를 풀어주려 목숨을 건 애교를 부리거나, 인기 많은 남성의 승리의 트로피가 된다. 이 두 가지 소비 방식에서 벗어난 여자 아이돌은 찾기 어렵다. 한국 여성 아이돌의 시초인 S.E.S.가 데뷔한 지 약 20년이 지났고, 카라의 전 멤버 강지영이 SBS <라디오 스타>에서 애교 강요에 눈물을 쏟은 지 3년이다. 한국의 미디어 제작자들은 여자 아이돌을 사람으로 대하는 방법을 아직 모르는 듯하다.

 

 


( 나혜석_저것이 무엇인고_신여자 제2호_목판화_1920 )

1920년대, 사회에 나온 첫 여성인 신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람이 아닌

잠재적 연애대상이었다.


 

 

나이 어리고 예쁜 여자에 대한 혐오적 시선을 대중 미디어가 확대,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남성뿐이던 회사에 나타난 여자직원의 역할을 알 수 없어 커피 심부름을 시키고, 아직도 여름이면 여성들의 옷차림에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르겠다며 히잡을 씌웠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성들은 그간 자신의 세계에 있던 두 종류의 여성-어머니로 대표되는 가족여성 혹은 창녀로 대표되는 성적 대상화된 여성-외의 여성을 낯설어 한다. 여성을 사람으로 대한 적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눈앞에 나타난 인간인 여성을 자기들이 아는 여성인 여자 친구 혹은 창녀로 읽으려 든다.

이런 사회적 풍조는 고스란히 대중 미디어에 투영된다. 특히 성 상품화와 대상화에 대한 담론이 끊기다시피 한 한국 여자 아이돌은 더욱 쉽게 노출된다. 무대에서는 섹시 디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왈가닥의 대명사였던 이효리가 결혼 후 참한 주부로 그려지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나이 어리고 예쁜 여자에 대한 혐오적 시선을 대중 미디어가 확대,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걸스피릿>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14년 데뷔한 걸그룹 마마무는 음오아예발표 후 걸크러쉬의 대명사로 불리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한 눈에 반했는데 알고 보니 여자였더라라는 내용의 가사와 뮤비는 여성 팬층을 확고히 했다. ‘걸그룹이라도 여성팬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면 남성팬은 자연스레 따라온다SM 엔터테인먼트 관계자의 말처럼, 성별을 막론하고 아이돌 그룹 기획자들은 여성 팬층을 붙잡는 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적어도 아이돌 시장에서 여성은 중요한 고객인 것이다.

팬 대부분이 여성인 아이돌을 기용하면서도 아이돌의 역할에 대한 고민 없이 콘텐츠를 만드는 행위는 제작자로서의 책임감이 결여된 기만적 행동이다. 팬들은 그저 방송의 꽃, 방송의 활력소, 방송의 장식 역할에 그치는 내 아이돌의 모습에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팬들의 화력(시청율, 인터넷 내 입소문 등)을 기대하며 아이돌 게스트를 섭외하면서, 아이돌과 팬들에 대한 배려는 없다.

기울어진 성 역할을 여실히 드러내는 프로그램은 콘텐츠의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은 물론, 재미도 없다. <12>에서 무대 의상인 양말까지 신은 채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남성 패널을 위한 노래와 춤, 애교를 부리는 트와이스의 모습은 군부대 앞에서 공연하는 걸그룹 이상의 감흥을 주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아는 형님> 속 강호동의 모습은 데이트 폭력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할 뿐 웃음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자라면 어떤 웃음이 현재 한국 사회에 필요한 지 아는 기민함이 필요할 것이다. 과연 현 한국에서 폭력과 성적 대상화가 무해한 웃음이 될 수 있을까?

이런 분위기에 맞춰, JTBC는 최근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해본 적 없는 걸그룹 멤버들이 1위를 놓고 노래 실력을 경쟁하는 방송 <걸스피릿>을 내놓았다. 아이돌 시장의 포화로 노래할 무대가 줄어든 여자 아이돌들을 위해, <걸스피릿>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남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겨졌던 경쟁에 어린 여자들이 뛰어든다는 점에서 <걸스피릿>은 최근 나온 예능 방송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경쟁에 참여하는 12명의 아이돌 역시 서로에 대한 경쟁의식을 숨기지 않는다. 야동도 상품도 아닌 목소리를 내는 여자 아이돌’, ‘질투가 아닌, 경쟁하는 여자 아이돌의 등장을 기쁘게 응원한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 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세일러문 크리스탈과 오마이걸입니다.

  페미니즘이 뭐냐고 물을 때가 엊그저께 같은데, 지금은 구하기 힘든 서적을 중고서점에서 싼 값에 샀다고 좋아하는 페미니즘 오타쿠가 됐다. 나 혼자 죽을 순 없고 같이 죽자는 일념 하에 많은 이들을 여성학의 길로 이끌었다. 이들은 아직까지도 너 때문에 인생 망했다며 나와 동고동락하는 사이로 남았다.

  나는 어떻게 페미니즘의 자도 모르는 사람들을 이끌어올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데 적당한 도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유혹적인 페미니즘 입문서들은 읽어보는 즉시 왜 스테디 셀러인지 이해가 간다.

페미니즘에 막 관심이 생겨 읽고 싶은 독자들이여, 이 책들에 주목해보자.

 

해쉬태그 #페미니즘_교과서 #한국사회 #젠더_인식

 


          

(▲'페미니즘의 도전' 구판과 신판, ©알라딘)

                                             

한국 페미니즘의 교과서, <페미니즘의 도전>


  처음 읽었던 책은 <페미니즘의 도전>이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 여성학 동아리에서 나이와 학년에 상관없이 내게 존대어를 쓰는 선배들을 보고 반했는데, <페미니즘의 도전>은 그 멋진 선배들이 추천해준 책이었다.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이 될 정도로 꾸준히 사랑받는 책이다.

  본인이 한참 연애를 하고 있는 20대 여성이라면 사랑과 섹스라는 파트에 먼저 관심이 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내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층위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에도 공감할 수 있게 해준다. 어머니, 노인, 연애, 가정폭력, 성매매, 군사주의, 남성성 등의 주제를 다루면서 독자가 젠더로 사회 문제를 사고할 수 있도록 인식을 심어준다.

  한 챕터를 넘길 때마다 당연하게 믿고 있던 모든 것들이 젠더차별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가히 큰 충격이었다. 더 충격이었던 점은 내가 아예 모르는 것들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본인이 접한 한국 사회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아 그게 차별이었구나를 쉽게 곱씹을 수 있다. 왜 스테디 셀러인지 알 것 같았다.

  저자 정희진은 다른 여성학 총서에서도 그가 쓴 글을 많이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활발하게 연구하는 여성학자이다. 한 번 검색해보는 것도 좋다. 페미니스트 저자의 매력에 빠진다면 페미니즘과 보다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새 여성학 강의', ©알라딘)


저자 덕질 입문, <새 여성학 강의>


  그 다음학기 세미나에서 읽은 책은 이 책이었다. 여성학의 정의, 역사, 영화, 여성운동, 섹슈얼리티, 자본주의, , 노동, 국가, 북한사회, 세계 등 총 14장에 걸쳐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앞서 소개한 <페미니즘의 도전>보다 주제가 세분화 되어있으며 한국에서 누가 어떤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지 쫙 훑어볼 수 있고,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를 골라 읽을 수도 있다.

  딱 저자 덕질하기 좋은 책이다. 저자 덕질이란 좋아하는 저자의 글들을 모두 찾아서 반복해서 읽고 기쁨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런 총서들을 통해 저자 덕질에 입문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좋아하는 저자가 쓴 글이 수록된 책을 찾아서 사느라 재산 탕진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렇지만 모든 덕질이 그렇듯,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페미니즘 분야에는 여러 저자가 자신이 연구하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쓴 뒤 묶음으로 집필한 책이 많다. 이 책도 그런 책들 중 하나다. ‘논문체라 딱딱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출간 된지 조금 된 책이지만, 초심자의 교과서로 적합한 이유는 쉬운 문장으로, 그리고 비교적 짧은 분량으로 컴팩트하게 내용을 풀어내고 있어서다.

  이 책을 펴낸 한국여성연구소는 말 그대로 한국의 다양한 젠더 이슈를 연구하는 곳이며, 동녘 출판사는 페미니즘 서적을 많이 펴내는 곳 중 하나기도 하다. 페미니즘 서적을 읽고 싶은데 무엇을 읽을 지, 자신이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다면 한국여성연구소나 동녘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을 찾아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구판(직접 촬영)과 신판, ©알라딘)

 

그래서 대체 여성혐오가 뭔데,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이 책은 내가 여성주의를 접한 지 2년째부터 지금까지 세 번을 읽었는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저자가 표현한 일본의 현실은 한국의 현실, 그리고 여성 전반의 현실에 빗대어 볼 수 있다. 모든 내용이 눈여겨볼 만 하지만, 특히 제4비인기남과 여성혐오는 한국의 일베 문제를 떠올리게 함으로써 한국의 독자들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저자는 미우라의 저서 <<비인기남─남성수난의 시대>>(2009)의 내용을 인용하는데, ‘비인기남들이 여성에 대해 헛된 희망을 품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에 대해서 시니컬한 문장으로 화답한다. ‘인기가 있을 리 없다.’(76) ‘커뮤니케이션이란 달콤한 공감 같은 것이 아니다. 자아를 판돈으로 내건 필사의 줄다리기이다. 그게 싫으면 관계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84)

  저자 우에노 치즈코는 모호하고 산발적인 경험들을 언어화 시켜서 용어로 정의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녀의 위트와 풍자에 매료되었고 여성혐오의 전반적 개념과 사안을 섬세하게 분석하는 것에 푹 빠졌다.

  올해 여성혐오라는 개념이 급부상했다. 누군가 여성 혐오가 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그에게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답은 이 책에 있을지 모른다. 여성 혐오는 한 마디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아플 수도 있지만, 읽다 보면 스스로 답을 발견할 것이다(이 책은 최근에 역자후기가 문제가 되었었다. 여기서 소개는 하지 않지만 재미가 있으니 한 번 찾아보시길.)


 

내 언어를 가질 때의 기쁨, 중독적인 입문서들


  내 문제를 내가 조리 있게 말할 수 있을 때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그 감정을 희열감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나의 유혹에 이끌려온 많은 이들도 이 희열감에 중독되었을 것이다.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던 것들을 정확하게 사유하고 말할 때, 내가 받고 있던 차별의 실체는 생겨난다. 여성주의나 여성혐오라는 제재 용어 자체도 생소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위의 입문서들은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어서 어물어물 거리는 사람들의 언어를 정돈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먼저 보고 싶은 것부터, 공감할 수 있는 것부터 읽고 말하다 보면 어느새 페미니즘은 내 것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발 여성주의 서적 표지는 핑크나 빨강으로 안 만들었으면 좋겠다. 글 쓰려고 오랜만에 서적 다시 꺼내봤는데, ‘여성적인색 투성이다. 여성학 책인데 여성학적이지 않은 표지가 언젠간 바뀌길 기대해 본다.

 

 



주목할만한 신간: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알라딘)

강남역 포스트잇을 지금은 서울시청에 보관 중이라고 합니다.                                              

 

 

-필자 소개: 페미타쿠. 만년 라이트덕 인생에 페미니즘에 강려크하게 덕통 당함.

-코너 소개: 여성주의 서적 발굴해서 소개하고 홍보합니다. 물론 저도 잘 몰라서 계속 사다 계속 읽습니다. 이 코너 목표는 멋대로 써놓은 거 같은데 어쩐지~’ 눈이 가고 공감이 가는 코너입니다. 코너 제목이요? 내용을 음미하면서 곱씹기 위한 도입…(이하 생략)

 

 

. 들어가며

 

여성만 성폭행을 당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2012 12 18, 대한민국 형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강간죄의 객체는 부녀, 즉 여성만 해당되었다. 여성은 유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오직 여성만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반영된 결과이다.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바꾸는 등 이러한 사고에도 변화가 생겼지만, 법률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여성은 여전히 유약하다. 본문에서는 성전환자 관련 판례의 변화와 유사강간죄 규정을 통해 여성을 바라보는 법적 프레임을 분석하고자 한다. 논리과정에서 어떤 오류가 있는지, 어떤 편견이 개입했는지 같이 살펴보도록 하자.

 

 

. 성전환자 관련 판례의 변화

 

성전환자 관련 판례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함의를 준다. 첫째, 성전환자에 대한 강간죄 성립여부를 따지는 과정에서 범죄 행위 사실을 입증하기보다, 피해자가 여성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법적 시각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둘째, 성전환자인 피해자가 여성임을 판단하는 논리 전개에서 여성에 대해 전반적인 사회, 법적 시각이 어떠한지 볼 수 있다.

 

1.    96791 판결

 

먼저 트랜스젠더가 여성이 아니기에 강간죄의 객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한 판례를 보자. 성전환수술을 받은 피해자는 가해자들의 폭행과 협박에 의해 원치 않는 성관계를 했고, 그 과정에서 얼굴에 상처도 입었다. 여러 정황이 피해자의 강간 사실을 입증했으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며 피해자는 여성이 아니기 때문에 강간죄가 아니라 판결했다.

 

 

 

본래의 내·외부성기의 구조, 정상적인 남자로서 생활한 기간, 수술 후에도 여성으로서의 생식능력은 없는 점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면 사회통념상 여자로 볼 수는 없다.”

 

 

 

    ▶  본래의 내·외부성기의 구조, 정상적인 남자로서 생활한 기간

 

피해자는 정신적으로 여성에의 성 귀속감을 느껴왔고, 성전환 수술을 받음으로써 외관상으로도 여성적인 신체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구현하기 위해 그 동안 여러 노력을 해왔던 피해자에게 대법원은 본래 너는 남성이었고, 그렇게 30여 년이 넘게 살아왔으니 여성이 아니야라고 낙인을 찍는다. 판결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성전환 수술 전의 그녀를 정상적인 남자라고 지칭하며, 수술 후의 그녀를 암묵적으로 비정상적이라 가정한다.

 

  수술 후에도 여성으로서의 생식능력이 없는 점

 

판례에서 설정한 여성 여부 판단 기준에는 생식능력, 임신 및 출산의 가능여부가 있다. 이처럼 임신과 출산을 해야만 여성으로서 인정될 수 있고, 여성은 임신과 출산의 기능을 할 때, 그 존재의의가 있다. 그렇다면 불임여성은 여성이 아닌 것일까? 여성을 출산기계로 인식하는 듯한 판례의 태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2.    2009 3580 판결

 

여러 아쉬움이 남았던 지난 판결에서 10여 년이 흐른 후, 대법원은 트랜스젠더를 여성으로 인정하였고, 이에 따라 트랜스젠더 또한 강간죄의 객체가 된다고 판단했다. 해당 판결은 생물학적 요소뿐 아니라 정신적·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성전환자인 피해자를 여성으로 보았다.

 

 

 

공고한 성정체성의 인식 아래 그 성에 맞춘 의복, 두발 등의 외관을 하고 성관계 등 전환된 성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성전환 이후에도 가족들과의 관계를 유지, 개선해왔으며, 이 사건 피고인도 피해자를 여성으로 인식하여 강간범행을 저질렀다.”

 

 

 

  전환된 성으로서의 역할

 

긴 머리와 치마는 여자, 짧은 머리와 바지는 남자라는 식의 성별 맞춤식 외관은 공공연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성에 따라 분류하며, 카테고리화된 특성에 그 개인이 해당되지 않을 경우 행동에 제약을 주는 태도는 사회 전반적으로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가족들과 관계 유지, 개선 및 피고인의 인식

 

대법원은 피해자가 성전환 이후에도 가족들과의 관계를 유지, 개선해왔기 때문에 그녀를 여성으로 인정한다. 한 개인의 성적 정체성은 가족 구성원들의 인정이 없다면, 부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판례는 또한 피고인이 피해자를 여성으로 인식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피해자가 여성임을 입증하는 근거로 든다. 폭력적이다 못해 불편한 논리이다. 사회통념과 보편타당한 윤리를 중시하는 판례가 다른 논리적인 근거도 많은데, 왜 굳이 가해자가 피해자를 여자로 봐서라는 논지를 갖고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유사강간죄

 

앞서 본 판례들은 모두 강간죄의 객체를 개정하기 이전에 나왔기 때문에, 강간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여성임을 입증하는 것에 치우쳐 있다. 물론 성전환자를 전환된 성으로 인정했다는 측면에서는 큰 의의가 있으나, 유약한 존재인 여성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에 급급했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있다. 다행히도 이후 형법 297조는 개정을 통해 강간죄 객체를 여성에서 사람으로 확대했고, 강간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성별 판별보다 강간행위 그 자체를 입증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형법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강간을 바라보는 법적인 관점에는 여전히 한계점이 존재한다. 형법 297조의 2호는 강간죄와 구별하여 유사강간을 규정하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구강, 항문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성기는 제외한다)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한 사람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위와 같은 강간과 유사강간의 구분을 통해, 강간죄의 성립을 남성 성기를 중심으로 판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기에 대한, 성기에 의한 행위라면 그냥 강간죄에 해당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강간에 유사한 행위로서 죄값이 낮아진다. 강간죄의 객체를 사람으로 바꿨으나, 여전히 잠재적인 피해자를 유약한 존재인 여성으로 간주하고 있는 법적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애초에 강간을 개인의 성적자유결정권을 중심으로 판단했다면 어떨까? 성기의 침입이 아닌, 개인이 자유의지에 의해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선택권의 침범으로 강간 여부를 판단했다면, 유사강간죄는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굳이 형량을 달리 하면서까지 강간과 유사강간을 구별할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 침해를 기준으로 강간죄를 통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강간죄 관련 법률과 판례를 통해 사회에 내재된 여성과 성전환자, 강간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았다. 형법 명문상 강간죄 객체가 여성에서 사람으로 확대되는 등 여성을 대하는 법적 태도에 점진적인 변화는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은 여성을 여전히 잠재적인 강간죄의 객체로 판단하고, 남성의 성기를 중심으로 강간과 유사강간을 구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과 강간에 대한 고정관념이 아직도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존 판례와 법령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젠더의식을 갖고 분석해 보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앞으로의 입법과 법 개정에서 보다 긍정적인 역할을 하길 바란다.

 

 

 필자소개

 

조금이라도 걸리면 다 걸고 넘어지는, 소송대리권 없는 야매 법학도입니다:)

 

  코너소개

 

비록 소송대리권은 없지만, 학부시절 공부했던 법학지식을 토대로 성범죄 관련 판례를 평석하고자 합니다. 판례를 분석하는 시간을 통해 한 사회를 규율하는 법과 판례의 문제점과 이들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볼 것입니다.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 법, 판례, 사회적 통념 등으로 굳어진 문제점들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고쳐나갈 수 있을지,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는 시간 또한 갖고자 합니다!

 

 ‘미친 여자’가 될 바에는 ‘화난 여자’가 되겠다. 

- 어느 ‘전명자’의 수기

  


  나는 지금껏 여성혐오를 하지도, 경험하지도 않았다.

 

  초등학교를 입학했던 8살부터 남자애들과 같은 반을 썼던 16살까지 학번이 항상 남자애들부터 시작되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모든 반이, 모든 학년이 남자부터 시작했으니까 원래 그러려니 했다.

  유독 2차 성징이 일찍 오고 남들보다 발육이 빨랐던 내게 오랜만에 만난 어른들은 이제 시집가도 되겠어.’라는 말을 마치 덕담인 마냥 한 마디씩 했다. 내가 신체적으로 성인의 외형을 갖춰나가는 게 어째서 시집가는 것과 연결고리가 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나의 빠른 성장에 그들이 감탄한 것뿐이라는 생각에 나는 그 말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생활기록부에 한 줄이라도 더 쓰기 위해 참가한 교내 양성평등글짓기 대회에서 나는 진정한양성평등을 위해선 꼴페미스러운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글을 썼다. 언론에서는 이라느니 알파걸이라느니 성공한 여자들 얘기만 나오던데 어째서 페미니스트들은 현실과 맞지 않는 여성주의인가, 이건 여성우월주의이지 양성평등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한 국어 선생님이 이대생이 사치스럽고 개념 없는 된장녀로 대표되지만, 한편으로는 악바리같이 공부만 하고 남자들한테 의존하지 않는 애들도 많기 때문에 진학을 추천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여대 진학을 희망하지 않는 나와는 별 상관없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어쩌다보니 생각지도 않게 여대에 입학하게 되었고, 사촌오빠와 앞으로의 진로 방향과 취업이 어려운 작금의 세태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그래도 너는 학벌도 좋고 얼굴이 예쁘기라도 하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 학벌과 용모가 나쁘지 않은 것이 취업의 어려움을 타개해줄 열쇠도 아닌데 심지어 두 가지 조건에서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 수두룩한데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취업할 때 학벌과 용모가 중요하다고들 하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정말 괜찮았을까?

  아니, 안 괜찮았다. 괜찮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페미니즘에 대한 색안경을 벗고 관심을 갖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나 자신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대학에 와서 처음 접하게 된 고전이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었고, 그와 관련된 자료들과 영화를 봤던 것이 아마 가장 첫 단계였을 것이다. 그리고 여대생의 범주에 내가 속하게 되었을 때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성차별은 나의 좁디좁았던 시각을 넓혀주는 동시에 분노 게이지를 점점 상승시켰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나를 전향하게 한 방아쇠는 장동민 사건이었다.

  ‘장동민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도대체 이 인간은 어떤 뇌구조를 가졌기에, 저딴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인가싶었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남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싶어서 여러 커뮤니티를 눈팅했다. 그런데 세상에, ‘무개념발언이나 행동을 했던 여자연예인들은 가루가 될 때까지 그토록 까던 사람들이 장동민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거나 엄청난 쉴드 방벽을 치고 있었다. 장동민이 뭐라고 저렇게 궤변을 늘어놓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동안 다른 이슈들에 대해서는 비슷한 의견을 공유하던 사람들이 ()’문제에 관해서는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던 권력을 유지하고자, 위협이 되는 이들에게 서슴지 않고 폭언을 하고, 신상을 터는 것을 보며 나는 환멸을 느꼈다.

  ‘메르스 사태로 몸서리치며 분노하던 어느 날, ‘메르스 갤러리라는 게 생겼다는 것을 들었다. 무슨 이슈 하나 생기면 그 이름을 딴 갤러리가 디시인사이드에 생기기 마련이라, 처음 이름만 들었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 갤러리, 단순히 메르스 사태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아니란다. 찾아보니 홍콩행 비행기에서 메르스 의심 증상을 보이던 한국 여성이 격리 조치를 거부해 메르스를 퍼뜨렸다는 루머가 온라인을 달궜는데,[각주:1] 알고 보니 이 기사는 오보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한국 여성을 싸잡아서 욕하고 폄하하는 한남들에게 똑같이 돌려줌(미러링 스피치)’으로써 여성혐오와 억압의 현실을 드러내는 실험의 장이었던 것이다.[각주:2] 활동에 제약이 생기자 메갤러들이 따로 사이트를 만들어 떠난 곳이 메갈리아였다.

  ‘미러링 스피치에 코르셋을 찢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는 많은 이들과 달리, 나는 처음부터 메갈리아의 언어에 환호하지만은 않았다. ‘미러링이라는 개념을 얼핏 들었음에도 그들의 거친 표현에 선뜻 납득하기가 두려웠고, 무언가 모를 쾌감과 동시에 , 이래도 될까? 이게 맞는 걸까?’하는 자기검열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거친 언어를 사용하는 낯선 여자들에 대한 남자들의 당황한 모습과 경계, 곧이어 이들을 남자도 사귀어보지 못한 루저, 메퇘지들이라고 매도하고 모욕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는 그들이 우리에게 가했던 모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도 주저하고 이래도 되는 건지 고민했건만, 그들은 본인들이 가했던 여성혐오(Misogyny)’의 추함에 대해서는 파렴치하게 외면한 채, 우리들의 언어를 문제 삼았고, 더러는 여혐남혐의 구도로 몰아갔다.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심도 있게 공부하고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새 학기가 되자마자 학교 여성학 동아리의 모집 포스터를 찾으러 다녔고, 궁서체로 외않되?’라고 쓰인 유인물을 보자마자 실소를 터트린 채 바로 지원문자를 보냈다.



  ‘전명자(전직 명예자지’)’였던 나는 이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칭하고,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생각보다 페미니즘은 방대하고 복잡한 학문이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더욱 내 안의 여성혐오와 마주치고 싸우게 되면서 아직 멀었다는 생각에 좌절하기도 하고, 간혹 내가 너무 날을 세운 것은 아닐까?’하는 반문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듯이 여성혐오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걸쳐있는 것이다. 과거의 내가, 심지어 요즘도 놀라울 정도로 내 안의 새로운 여성혐오를 발견하고는 한다미처 나의 성별이 받고 있던 부당한 대우들을 깨닫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성별 위계 권력층의 생각에 때때로 동의했던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부정하고 싶다. 그러나 이러한 흑역사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고, 부조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종용했던 사회에 내가 너무나 잘 적응했던 탓이다. 중요한 건, 과거의 나를 그대로 인정하되, 이를 자각하고 타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와, 그리고 나 자신과.

  우리는 더더욱 목소리를 내고, 우리의 당연한 권리를 억압하는 것들과 싸워야 한다. 인류의 발전이나 윤리의 진보 같은 거창한 이유는 아니다.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다. 밤새 시험공부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살해당할까 떨지 않는 행복을 위해, 한여름에 창문을 열어놓고 잘 수 있는 행복을 위해서이다. 눈감고 귀닫고 권력구조에 순응해서 사는 것이 매일 마주치게 되는 여성혐오라는 골리앗과 싸우는 것보다 조금 더 편할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문학 속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있는 미친 여자들의 계보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나는 미치지 않기 위해 화를 내겠다. 더더욱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할 것이다.

 

* ‘페니스정확한 표현은 팔루스가 맞겠지만 어감 상 이 단어를 채택했습니다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여성혐오를 뜻하며, 이를 거세한다란 내 안의 여성혐오를 깨닫고 이를 타파하고자 하는 것을 말합니다.

 



<꼭지 소개>

과거 명예자지였다가 페미니스트로 전향한 필자를 비롯하여, 전직 명예자지(‘전명자’)였던 혹은 개념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일종의 계기를 통해 코르셋을 찢고 나온 이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칼럼을 작성하는 꼭지입니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 이제 막 입문하신 분들의 마음()’을 얻고 싶습니다.

 

<필자 소개>

최존: ‘새끼페미’. 세상사에 얇고 넓게 관심 많습니다. 미식가이자 위종대왕이라 불릴 만큼 대식가. 코스메틱과 패션, 역사, 영화, 음악, 배우들에 관심 많은 잡덕. 요새는 아이돌에도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비둘기와 양파를 싫어하고 세균강박증이 있습니다. 필명 뜻은 독자 분들께 맡길게요.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082147005 [본문으로]
  2. 정현희, 「왜 메갈리아는 ‘게이 논쟁’을 필요로 했는가? : ‘성차’와 ‘여성 정체성’의 모색과 한계」, 『2016 제 8회 LGBTI 인권 포럼』, 2016, 12쪽. [본문으로]


<여대회담> 시작에 부쳐

 


다른 여대생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여대회담>의 시작이었다. 문득 궁금했다. 다른 여대생들은 강의실에서 빈번하게 나오는 교수의 성차별적 발언을, 강남역 살인사건을, 블랙넛의 가사를, 동아리 남자 선배들의 성희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고 떠들고 싶었다.


여자들은 이 세계에서 얼마나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모인다는 정상회담 성비는 5:5가 되지 않는다. 재미있게도, 각국의 청년 패널들을 모아 토론을 진행한다는 포맷의 JTBC 예능 <비정상회담>는 게스트를 제외하면 패널부터 사회자까지 전부 남성이다. 여성 패널이 주로 등장했던 KBS <미녀들의 수다>(20105월 방송 종료)회담이 아닌 수다이다. 등장인물 역시 각국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미녀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연설도중 울면 마음약한 여성이, 강한 어조로 연설하면 지독한 여성이 된다. 테레사 메이가 영국 총리의 자리에 오르자 한국의 기자들은 그녀가 낸 정치적 목소리가 아닌 패션에 집중한 기사를 냈다. 우리가 접하는 목소리의 대부분은 남성의 것이다. 여성의 목소리는 쉽게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설 자리를 잃어왔다.

앞으로 <여대회담>에서는 여대생 패널을 모집해 여성주의 이슈에 대한 생각을 나눈다. 우리에겐 목소리와, 이야기를 할 장이 필요하다. 꼭 유의미한 결론을 낼 필요는 없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여대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이야기를 할 공간과 기록할 면이 필요하다. <여대회담>은 기록의 장이다.

 



 

KBS 예능프로그램 <12>은 대학 특집으로 이화여대 편을 방송한 후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여대생을 으로 지칭하거나 즉석 미팅을 신청하는 등의 모습이 여대와 여대생을 학생이 아닌 대상화된 젊은 여자로만 보았다는 비판이었다. 작년 이맘때 방송한 서울대 편에서 출연자들이 재학생과 함께 수업을 듣거나 퀴즈 대결을 펼쳤던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느껴지는 방송이었다.

 



(숙명여대 대나무숲 / Facebook)



 

페이스북 페이지 숙명여대 대나무숲에는 남대가 있다면 남자인 입장에서 남자들은 죽어도 가기 싫어할 것 같은데 여자들은 어떤 이유에서 여대를 지원하나요?’라는 질문이 올라오기도 했다. 학생들은 대학은 공부하러 왔을 뿐이라는 명쾌한 대답으로 맞대응했다.

96년 상명여자대학교가 공학화 하면서 현재 서울 소재 4년제 여자대학은 총 6개이다. 공학인 대학교와 다름없이 공부하기 위해 진학했음에도 여자대학 학생들은 한국 사회에서 학생이 아닌 이자 연애 대상인 듯하다. 여대생에 대한 편견은 어디에나 있지만, 편견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는 장은 없었다.

이에 대해 여자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직접 목소리를 냈다. 1차 여대회담에서는 여자대학교 학생들에 대한 편견을 이야기해보고자, 서울 소재 4년제 여자대학교 학생들을 대담자로 만났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여대생을 따라다니는 편견에 대해 이야기한 솔직한 회담자리를 공개한다.

 

 



1차 여대회담 : ‘너 여대 티나’ - 여대생 편견

회담 진행 : 광개토

 



 

Q.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를 포함하여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슾하 : 숙명여대 2학년에 재학 중이다

혜주 : 서울여대 공예학과 16학번. 새내기이다.

슈슈용 : 성신여자대학교 11학번에 다녔었고, 현재는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

읭용 : 이화여자대학교 11학번으로 학부를 마치고 동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Q.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학교의 여성주의 친화력은 어느 정도인가?

슈슈용 : 높지는 않다. 학교 총장 심화진이 여대의 존재 이유에 대해 여성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기 위해서라는 요지의 발언을 해 어이가 없었다. (반면) 학교 에브리타임에서는 여성주의 대한 토론이 활발하다. 여성주의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면 공격당하는 분위기도 있다. 교양 수업에 여성학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못 들어봤다.

혜주 : (서울여대) 에브리타임에서도 강남역 사건 이후로 활발하게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한 사제동행 프로젝트라고 해서, 학교에서 지원을 받아 미술대학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여성주의 세미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다음 학기부터 참여할 예정이다. 여성주의 강의를 하시는 분은 딱 한 분 계시는데 과목명이 <결혼과 가정>이다. 학생들이 말하길 내 인생 강의라고 지칭한다. 듣고 나서 결혼관과 여성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본인은 너무 유명해서 수강신청을 못 했다.

읭용 : 이화여대에도 여성학 강의가 유명해 수강신청이 치열하다. 3학년 때 쯤에는 학생문화회관에서 보지 그림 전시를 봤다. 설치한 천막 안에 들어가면 다양한 여성 생식기나 가슴, 여성의 몸에 대한 전시를 볼 수 있게끔 했다. 그 밑에 전시품 설명이 있었는데, 학생들에게 자신의 몸을 받아들이게끔 하는데 효과적이었다. 본인도 처음엔 충격적이었는데 보다 보니까 신선하고 좋은 경험이었다.

슾하 : 숙명여대에는 11학년도에 여성학 연계전공이 없어졌다. 작년에는 <여성과 리더십>이라는 수업이 교양핵심 영역 수업 중 하나였는데, 올해는 다 교양선택으로 넘어갔다. 대신에 대형강의로 바뀌고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 수강신청 경쟁도 치열한 거 같긴 한데 교양핵심이 아니라 선택으로 변경됐다는 점에서 이전처럼 활성화되진 않는 거 같다. 교수들의 수준도 각각 다르다.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굳이 밝히지 않더라도 깨어있는 분들도 계신 반면에 여자애들은 술 마시면 안 돼, 담배 피우면 안 돼라고 말하는 교수들도 많다.

 

 

1.입학

Q.‘여대에 진학하겠다 / 입학했다라는 말을 했을 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혜주 : 재수를 했는데 첫 입시에는 동덕여대를 썼다. 그런데 담당 학원 선생님이 너는 동덕여대랑 안 맞을 거 같은데? 거기 애들은 싸우고 서로 뒷담하고 그러는데네가 고생하지 않을까라고 하셨다. 막상 여대에 입학해 면학 분위기를 경험하고 보니, 그 때 그런 말을 왜 하셨는지 이해가 안 된다.

슈슈용 : ‘성신여대니까 고려대랑 미팅하겠네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페이스북 성신여대 대나무 숲페이지에는 성신여대 학생들 너무 많은데 오빠가 보듬어줄게요라는 글도 올라온다. 우리 학생들은 여대 다녀서 지린내 나는 복학생 선배 안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너 같은 애들이 대숲 분위기를 흐린다라고 욕을 했다.

슾하 : 여중, 여고를 졸업하고 여대에 입학했다. 재수를 했는데, 한국외대와 숙명여대 중에 고민을 하다 숙대에 입학했다. 숙대는 진학하고 싶은 과였고 외대는 전과를 해야 했다. , 언니가 숙명여대에 재학 중이라 자매장학금을 노린 선택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재수까지 했는데 숙대 밖에 못 가냐 욕을 했고, 친구도 외대를 왜 버리냐고 재차 물었다. 한국외대도 좋지만 전과 과정이 너무 힘들 거 같다고 대답했더니 친구가 요즘엔 회사에서 여대를 안 좋아한다고 했다.

알바를 할 때도 숙대생이라고 말하면 결혼정보회사에서 잘 먹히겠네’ ‘시집 잘 가겠네라고 한다. 대학에 들어왔는데 머리는 똑똑하지만 너희는 결국 남성의 아내 엄마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취직을 못한다는 건 여대에 입학하면 많이 듣는 말인 것 같다.


 

(인터넷에서 떠돌았던 '된장녀' 이미지)

 


읭용 : 이화여대 합격을 했을 때 다들 축하는 해줬다. 그런데 이대 가면 너 명품 같은 거 사야 되는 거 아니냐, 화장도 하고 하이힐도 신고 옷도 가방도 다 명품으로 구비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주변에서 계속 그러니까 나 자신도 아 명품을 사야 되나?’ ‘입학하면 다 명품을 몸에 휘두르고 있는 거 아닌가?’ 걱정하게 됐다. 실제 이대생 들을 보지도 않고 말이다. 막상 와보니까 다들 편하게 츄리닝 입고 다닌다. 내가 지금 입은 것처럼. (웃음)

슾하 : 사촌언니들이 다 이대생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 아는 선생님께 이대생들은 다 명품을 들고 다니냐고 물어봤다. 오히려 주변에서 이런 이미지를 만드는 거 같다.

슈슈용 : 그래서 이대는 된장녀가 많다는 말도 만들어지고.

슾하 : 동문회 나가면 사람들이 숙대의 라이벌이 이대라고 말한다. 이대는 사치스럽지만 숙대는 조신한 이미지를 가졌다고 한다. 우리는 이대처럼 된장녀 프레임이 없으니 더 조신하게 지내야 한다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자기 스스로 코르셋을 입고 성녀창녀 이분법에 휩싸여서, ‘난 잘 하고 있으니까 욕먹지 않는 안전지대에 있다고 생각한다.

 

 

2.학업

Q.여대생들은 독하게 공부한다? vs 여대생들은 하이힐에 핸드백 들고 풀 메이크업으로 수업을 다닌다?

슾하 :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남녀공학보다 여대 출석률이 높은 걸로 알고 있다. 남녀공학은 남학생들의 결석률이 높다고 한다. 여대생은 그렇게 독하게 공부하는 데도 취업시장에 진입할 수가 없다.

읭용 : 독하게 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여자가 열심히 하니까 독하다 한다. 남자가 하면 안 그랬을 텐데.

슈슈용 : 공학에서 학점 잘 따는 여자를 보고 학점마녀라고 한다고 한다. 남자들은 여자가 잘나면 못 참는다.

 

광개토: ‘공부를 안 한다는 편견은 어떤가? 예를 들어, 중동 배낭여행 모집하는 광고에 전공 책 하나도 못 들어서 오빠한테 들어달라고 하는 네가 감히 여길 오겠냐라는 카피가 논란이 됐었다. 얼굴 꾸밀 줄만 알지 공부할 줄은 모른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셨는지?

슾하 : 왜 전공 책을 제본해서 가볍게 들고 다닐 생각을 안 하나. 왜 가볍게 들 생각을 안 하는 건지? pdf 파일도 많은데.

슈슈용 : 요새 전공 책 들고 다니는 사람도 많이 없는데남자들이 여자들을 상상하는 것 같다. 무슨 설화의 주인공처럼.

슾하 : 막상 꾸미지 않고 열심히 전공 공부만 하면, 대학생인데 화장도 안 하냐고 뭐라고 하면서.

읭용 : 예쁘게 꾸미고 싶어서 꾸미고, 전공 책을 손에 들고 나간 적이 있다. 그걸 보고 가방을 큰 걸 들고 다니면 되지, 왜 작은 가방을 매냐고 지적을 받았다. '공부하는 티 내는 거냐'는 거다.

슈슈용 : 힘든 건 난데. 책을 손에 들고 다니는 게 나은 경우도 있다. 가방이 너무 무겁다.

읭용 : 자기들이 보고 싶은 여대생의 모습만 이야기한다.

 

 

3.연애

Q.여대생들은 미팅을 많이 한다? 연합동아리를 찾아다닌다?

슾하 : 나는 동창들에게 연락을 해서 미팅을 잡기도 하고, 시켜줘서 나가기도 했다. 과 친구들의 성향에 따라 미팅을 하는 빈도는 다른 것 같다.

혜주 : 서울여대 바로 앞에 육군사관학교가 있다. 서울여대를 다닌다고 하면 육사랑 미팅을 많이 하겠다고 한다. 육사랑 미팅 안 해보면 바보, 육사랑 안 사귀어보면 바보, 근데 육사랑 결혼하면 바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나가본 적이 없다. 술게임을 못할 뿐더러 일단 가면 돈을 써야 하니까. 만원을 한 번 버려볼까 이런 심정이 아니면 나가지 않는다. 또 내가 다니는 과는 되게 소수라 선배들과 유대가 없다. 과가 생긴지 60년이 됐는데 엠티를 두 번 갔다고 한다. 작년에 한번 올해에 한번. 선배들과의 유대가 없다 보니까 정말 자급자족이다. 선배들이 미팅을 잡아주는 것도 없고. 가끔 보면 서울여대 학생들보다 정작 외부 사람들이 더 극성인 것 같다.

 

광개토: 이화여대랑 성신여대 같은 경우는 근처에 각각 연대와 고대가 있는데 어떤 이야기가 나오나?

슈슈용 : 자급자족 해본 적도 있고 선배들이 약속을 잡아준 경우도 많다. 11번을 해봤다. 고려대랑도 미팅을 해봤다. 노는 걸 좋아해서 많이 나갔다. 1학년 때 미팅이 부질없는지 몰라서 계속 나갔는데서울여대 분이 현명하시다.(웃음) 처음에는 남자를 사귀겠다고 생각하고 나가는데 나중엔 단순히 놀러 나간다. 번호교환은 몇 번 하지만 그게 연애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이 없다.

읭용 : 미팅을 많이 하는 건 맞는 거 같다. 졸업 전까지 미팅을 100번하겠다고 다짐을 한 친구가 있었는데 일단 50번은 넘은 걸로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10번이상 해본 친구들도 많다. 연애를 하려고 미팅 하는 애들도 있고, 친구 사귀려고 하는 애들도 있고, 하루 놀러 가는 애들도 있다. 나도 처음에는 연애를 목적으로 미팅을 나갔었는데 나중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는 새로운 사람과 술 마시고 싶으면 나간다.

 

광개토: 여대생이 미팅을 하는 이유는 남자대학생이 없어서, 연애를 하기 위해서라고들 한다. 근데 지금 보니까 단순히 놀러 나가는 거 같은데, 왜 놀러 나가는 걸까?

읭용 : 나는 낯선 사람하고 놀기 위해서다. 새로운 느낌, 신선한 느낌을 얻기 위해. 굳이 남자가 아니어도 된다. 내가 낯선 사람을 만나는 손쉬운 방법이 미팅이기 때문에 미팅을 나간다.

슾하 : 남자를 만나기 위해 미팅을 한다? 아직 대학문화가 이성애 중심구도에 벗어나지 못 했다. 미팅을 나가는 이유는 남성들과 가볍게 놀 수 있어서다. 여자애들은 위험한 일이 있을 수 있으니 취하면 서로 챙겨줄 수 있는데, 남자애들은 취해도 내팽개치고 잘 안 챙겨도 되니까.

읭용 : ‘조신하지 않게술 퍼 마시고 싶은데, 미팅에 나가면 막 남자처럼 먹을 수 있다.

슾하 : 나도 술게임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다른 곳에선 함부로 하지 못하는데 미팅에선 함부로 하고 MC도 한다.(웃음)

혜주 : ‘여대 들어가면 미팅 많이 하겠네이런 말로 학습 당한다고 생각한다. ‘여대 와서 남자도 없다’, ‘여자끼리밖에 없다라는 말을 보면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의무감, 그리고 패배의식을 볼 수 있다.

슾하 : 사회가 특히나 여자의 모든 가치를 결혼으로 연결시킨다. ‘취직 잘해서 결혼 잘 하겠네’ ‘대학 가서 결혼 잘 하겠네’ ‘좋은 이성을 만나면 결혼 잘하겠네여성의 삶을 무조건 다 결혼하고 연관시키는 사회분위기가 존재한다.

 

광개토: 여자대학생은 연애하려고 연합동아리를 들어간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지?

읭용 : 등산 연합동아리를 하고 있다. 이대 등산동아리도 있지만 아까 미팅을 나가는 이유와 비슷하게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의 신선함이 좋아 들어갔다. 이 사실을 말하면 다 등산동아리라는 것엔 집중 안하고 연대랑 연합한다는 것에만 집중한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중앙동아리 들어갈 걸 그랬나.

슾하 : 여대는 여자들뿐이어서 고립되었고, 한 성별 뿐이라 사회성이 없다고 욕을 하면서, 여대생이 연합동아리에 들어가면 남자에 굶주린 것처럼 본다. 남자들이 오히려 여자들 보려고 들어온 경우도 많은데.

 



 

4.대학생활

Q.여대는 남자가 없어서 재미없다?

혜주 : 남자가 없어서 너무 행복하다. 왜냐고? 헛소리 안 들어도 되니까. 여대 학생들은 누가 머리를 안 감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든, 누가 풀 메이크업하고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든 아무 소리 안 한다. 남성이 캠퍼스에 있었으면 분명 화장도 안 하냐 예의가 없다혹은 쟤 너무 꾸민 게 과하다라고 품평을 했을 것이다. 활동 중인 연합동아리 남자들을 보며 확신했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얼굴평가를 한다. 예쁜 사람한테도, 못 생긴 사람한테도. 아무런 문제의식이나 자각이 없다.

 

광개토: 여대에는 놀이문화, 특히 술 문화가 없어서 재미없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혜주 : 과마다 다르다. 우리 과는 전혀 없는데, 어떤 과는 신입생 환영회도 하고 선배들이랑 대면식도 하고 MT가서 같이 술도 먹는다고 한다. 동아리 마다도 다 다르다.

슾하 : 여대가 덜 폭력적이라는 걸 반증하는 말이 아닌가? 고대 사발식만 생각해봐도 고대생들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거기서 마시고 토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그게 관례처럼 강요되는 건데 문제점을 찾지 못 한다. 여대에서 술을 먹이는 게 없다는 건 그런 강요가 없다는 거 아닌가?

우리 과는 마시기 싫으면 마시지 말라고 강조했다. 40명이 맥주 한 병에 소주 두 병밖에 안 마셨다. 개인의 주량을 고려해주는 것이다. 왜 그게 재미없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술 마시는 것 말고 사담만으로도 재미있게 놀 수 있다. 나의 경우 엠티에서 친구들하고 섹스판타지 이야기를 했었다. 남자들이 있었을 때는 맘 놓고 이야기를 못 했을 것이다. 많은 남자들이 여자가 섹스 이야기를 하면 아 얘랑 해도 되는 구나라고 판단하고, 함부로 섹스하자고 하기 때문이다.

슈슈용 : ‘여대가 남자가 없어서 재미없다는 말을 여대가 남자가 없어서 안전하다라고 바꾸고 싶다. 남자가 없어 정말 클린하다.

 

Q.여대는 편 갈라 싸우고 뒷담이 심하지 않나?

슾하 : 편을 가를 만큼 서로에게 관심이 있지 않습니다

슈슈용 : ‘여적여프레임이라고 한다. 동아리 회식을 갔다가 여대가 더 심하다던데 군기 잡는 거?’라는 소리를 들었다. 군기 잡는 건 남자들이 더 심하지 않나.

슾하 : 마리텔에서 간호학과 애들이 너무 편 갈라서 싸운다는 말에 김구라가 싸우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남자끼리만 있어도 그러지 않느냐라고 하는 걸 봤다. 역사적으로는 남자들이 오히려 주도해서 전쟁을 한 게 훨씬 많다. 성별을 왜 나눠서 이야기하는지?

슈슈용 : 페이스북에 툭하면 보적보이야기 하는 사람들한테 자적자라고 하니까 그제야 인간의 적은 인간이라고 했다.

 

Q.여대생들은 개인주의가 심하다?

읭용 : 개인주의가 있어서 더 편하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가 있어야만 화장실도 가고 밥도 먹고 그랬는데, 대학에선 다들 개인적으로 시간이 나면 혼자서 공부하고 밥을 먹는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걸 주체적으로 혼자서 할 수 있게 됐다. 개인주의가 필요할 때 개인적으로 활동하고, 서로가 필요할 땐 연계활동을 할 수 있는 건 별개다.

혜주 : 개인주의는 나쁜 게 아니라 자기 할 일을 스스로 하는 거다. 친구들이 여대에서 밥을 혼자 먹냐고 많이 놀린다. 그럼 너는 밥 혼자 못 먹어?’라고 물어본다.(웃음)

슾하 : 여대뿐만 아니라 전체 대학 생활이 개인주의적 성향을 띄지 않나. 고등학교 때는 밥을 먹으려면 최소 두 명씩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대학 와서는 혼자서 뭘 하든 알아서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있다. 공학도 그런데 왜 여대에만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한국의 대학문화가 개인주의적으로 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대한테 이기적이라는 이미지를 덮어씌우는 게 아닐까?

슈슈용 : 사람들은 개인적인 것을 배타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여대에선 서로서로 모르는 것도 안 알려준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공부 잘 하는 친구들한테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다 대답을 해준다.

읭용 : 개인주의랑 이기주의를 혼동해서 쓰는 것 같다. 남자가 아니라 여자들이 그러니까 나쁜 거라고 하기도 하고.

 

Q.여대생들은 드세다?

슾하 : 과 교수님이 남녀공학의 여학생들은 무거운 걸 들 때는 무조건 남자들을 시키는 반면에 너희들은 너희가 들 수 있지 않냐고 했다. 스스로 하는 여자들에겐 드세다고 하지만 스스로 하지 않는 여자들에겐 멍청하다고, 그러니까 여자들은 안 된다고 한다. 여자들이 뭘 하는 꼴을 못 본다는 말이다.

혜주 : 얼마 전 참여한 농촌활동에서 마늘을 까며 여대생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한 언니는 무거운 캐리어를 별 생각 없이 들었더니 야 여대 티 내지마. 오빠들이 다 해주는데 뭐 하러 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여대 티 난다는 말을 부정적으로 쓰는 게 화가 났다. 드센 여자가 나쁘기 때문에 여대 애들은 드세고, 여대 티 내는 게 나쁘다는 뜻이겠지.

슈슈용 : 동아리에서 무거운 짐은 내가 그냥 든다. 누군가 들어줄까 물어 보길래 됐다고 했더니 상대방이 너는 연애할 생각이 없냐, 남자가 호의를 베풀 땐 너무 철벽 치지 말고 너무 혼자 다 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혜주 : 나도 캐리어 들고 가고 있는데 어떤 오빠가 들어줄까 라고 하길래 저도 팔다리 있어요라고 말하고 갔다.(모두 웃음)

 

Q.여대생들은 사치스럽다?

 


 

읭용 : 이대는 ECC라는 곳 안에 스타벅스가 있다. 그 주변에 열람실도 있어서 학생들이 커피를 많이 마시고, 관광객도 많고, 영화관인 아트하우스 모모도 있어서 매출이 좋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 역시 이대생, 역시 된장녀라고 말한다.

슈슈용 : <여성혐오의 근원>이라는 책에서 스타벅스-이대생-된장녀가 이어진 이유가 나온다. 스타벅스 처음 입점할 때 이대에 생겨서 그렇다고 한다.

슾하 : 자신의 형편보다 비싸게 소비하는 걸 사치라고 말 한다. 요즘 스타벅스 커피는 비싼 커피도 아니다. 커피 말고도 여자들이 뭘 사는 꼴을 못 보는 거 같다. 외적인 부분을 꾸밀 줄 알고 자기관리를 잘 한다고 볼 수도 있는 건데. 그러는 남자들은 지나치게 꾸미지 않는다. 남자들은 안경조차 바꾸지 않는 경우도 많고, 머리 염색 하나 했다고 우쭐해 한다.

읭용 : 잘사는 학생들이 있긴 있다. 그 학생들은 부모님이 지원해주는 거에 맞게 소비를 한 것뿐이다. 그런데도 사치를 한다고 생각한다.

슈슈용 : 돈 많은 여대생이 남자가 되면 유정이 되는 건데.(모두 웃음)

읭용 : 여대생한테만 그런 거 같다.

슾하 : 남자는 아무리 사치스러운 시계를 차도 주변에서 별 말 안 한다.

혜주 : 돈 쓰는 게 나쁜 게 아닌데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슾하 :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에 이바지해주는 건데

슈슈용 : 도끼는 돈 쓸 줄 아는 남잔데, 왜 서인영은 된장녀인가? 그녀가 다른 남자들한테 명품을 받았다고 사치스런 된장녀인가? 남자들이 좋아서 준거지. 누가 여자들이 가방 사는 게 사치스럽다 하길래 여자들이 다들 자기 행복에 맞춰서 소비하는 건데 뭘 사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남자들도 비싼 신발 사지 않냐고 했더니 신발은 오래 신는다고 답하더라. 가방도 오래 드는데.

슾하 : 물건의 지속성 측면으로 따져보자면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자동차가 제일 떨어진다. 주기적인 관리 비용이 많이 드니까.

혜주 : 나는 만년필을 사 모으는데, 만년필은 한 번 사면 20년 동안 쓸 수 있다. 관리비용까지 합치면 지속성은 만년필이 최고다.

 

 

5.졸업

Q.여대생들은 졸업을 해도 취직 선배들이 끌어주지 않는다던데?

슾하 : 왜 자신들의 엘리트주의와 학연주의를 이런 식으로 풀어나가나. 학연주의는 공정성에 어긋난다. 취직시장이 워낙 경쟁률이 높으니 학연주의를 이용한다 치자. 공학은 남자만 끌어 준다. 지인이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왔는데 여학생은 아무리 공부를 잘 해도 교수들이 추천서를 잘 써주지 않았고, 성적이 떨어지는 남자들에게 밀린다고 했다. 어차피 취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여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

슈슈용 : 같은 성별끼리 경쟁했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편견도 있는 거 같다.

읭용 : ‘여자애들은 후배가 들어와도 잘 끌어주는 게 없다더라. 그러니 너희가 알아서 취업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슾하 : 선배들이 안 끌어준다는 이야기의 실체는 취업한 여자 선배들이 적고, 고위직에 여자가 적다는 현실이다. 현재 한국에서 직장인 여성이 후배를 끌어줄 위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여성성을 잘 활용해서 입사한 뒤 잘 살아남아서 우리 세대를 바꾸자는 말이 있을까.

 

Q.정말 졸업사진으로 맞선봐서 취집하려고 졸업사진에 목숨 거나?

읭용 : 졸업사진이 나오면 맞선 해주는 마담 뚜쟁이들이 그걸 사간다는 소문이 있다. 예쁜 애들을 골라내서 남자들하고 연결해준다고. 그러나 주변에 아~무도(강조) 진심으로 취집을 위해 사진찍는 친구는 없었다. ‘대학 때 남는 사진이 이거 하나니까’, ‘제일 예쁠 때 인생 샷을 남기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많았다.

슾하 : 지인이 실제로 맞선 제안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그거 불법인데.(웃음) 취집을 목표로 사진 찍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20대의 기록을 남긴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대학 졸업사진이 마지막 졸업사진이 되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옛날엔 여대생들은 부잣집에 시집간다는 말이 있었는데 아직도 이런 말이 유효하다니.

 



 

광개토: 취집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혜주 : 친구가 언론영상학과인데 수업시간에 충격을 받고 왔다. 교수님이 너네 반드시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어머니가 될 거라는 걸 전제로 깔고 이야기를 했는데도 학생들이 전혀 반감이 없었다고 한다. 목표는 돈 많은 사람 만나서 결혼해서 행복한 인생 꾸리는 것이란 학생들이 대다수였다는 게 더 놀랍다. 나는 결혼을 할 생각이 드는 것도 신기한데

안전교육을 하는데도 교수님이 아무렇지 않게 나중에 여러분은 어머니가 될 거니까 잘 들으라고 말했다. 에브리타임에서는 결혼 안 할 사람 하면 덧글 터지는데, 주변에도 결혼 안 할 생각인 사람이 대다수고.

슈슈용 : 결혼을 생각하면 자조적으로 이번 생은 망했어이러기도 하는데.(웃음) 취업 준비할 때 너무 힘들어서 취집하면 편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더 부러운 건 돈 많은 백조지만.

슾하 : 나도 자조적으로 취집이나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취집이 제일 어려운 걸 수도 있다. 결혼이라는 건 선택인데 여자들이 마지막 동아줄마냥 생각하게 된 이유는, 워낙 여자가 사회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나마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라도 살고 싶은 걸 거다. 하지만 결혼하면 무조건 안정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남자들도 취업시장에 뛰어들기 만만찮고, 시월드도 있고.

슈슈용 : 주변에서 결혼은 안정적이라고 주입하려는 시도들이 많다. 취업이 힘들다보니 시월드도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혜주 : 취집은 진짜 비참한 선택이다. 자기 능력을 사회에 펼칠 수 없으니까 구석에 몰려서 선택하는 게 결혼이라는 거다. 재수할 당시, 한양대는 경쟁비율이 200:1이 될 정도로 가기 힘든 학교였다. 그런데 재수 담임선생님은 ‘(여자는) 능력 좋게 한양대에 가도 졸업해서 애 낳고 빨래를 한다고 했다. 자기 부인도 한양대 나왔는데 애보고 있다고. 반강제로 결혼이란 선택지밖에 남지 않는다. 비참하다. 얼마나 힘들게 공부하고 졸업했는데. 얼마나 꿈이 많았는데.

 

 

6.‘여대생인 나, 졸업 이후의

Q.‘여대생이란 사회에서 어떤 존재일까?

슈슈용 : 여대생은 시집 잘 가는 애들이라는 보수적인 생각밖에 안 난다.

슾하 : <12일 이화여대 특집>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외부인이 봤을 때 여대생은 어느 정도 지성이 있고 자기를 꾸밀 줄 알고 꽃향기를 풍기는 요정 같은 이미지이다. 반대로 사치부리고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화장이 강한 마녀 같은 이미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후에는 엄마가 되어 애들을 잘 가르치고, 남편의 지적인 대화에 어느 정도 장단을 맞춰줄 수 있는 가정의 천사가 되어야 한다. 온통 대상화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여대생은 여혐의 아이콘이다.

슈슈용 : 여대가 금남의 구역이다 보니 호기심을 가진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딱 맞춘 여성들이 존재할 거라고 믿는다. 예전에 한양대생들하고 미팅했을 때, ‘여대생들은 점심 먹을 때 파스타 먹어요?’라는 질문을 받아봤다. 여대생을 대상화하고 본인들의 판타지를 투영하는데 익숙하다.

혜주 : 공예과라고 하면 아기자기한 반지 같은 거 만드는 줄 아나 본데 아니다. 망치 같은 와일드한 공구를 쓰며 힘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을 한다.

슾하 : 남녀공학의 여자대학생과 여대의 여자대학생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여대에는 이데아에 가까운 여자가 있다고 믿는 거 같다.

슈슈용 : 공대여자들은 남성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거 같이.

혜주 : 고백 네 번 이상 못 받으면 여자 아니라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때릴 뻔했다.

 

Q.오늘날 한국에 여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슾하 : 엄마가 숙대도 공학되면 좋지 않냐고 했다. 졸업할 때 남녀공학이 더 좋다고 말이다. 취업시장에서 여자들이 걸러진다는 증거다. 여자들이 고위직에 없는 이유는 여자들이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인구의 절반이 여자인데 여자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초반에 여자들이 걸러지기 때문이다. 취업 시장에서 여자들을 직접 양성해야 그나마 나아질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남녀공학에서는 취업에 여성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는다. 한국 상황에서는 여대가 더 생겨야 한다. 아직도 남자들은 재수시키는데 여자들은 무엇 하러 재수를 시키냐고 한다. 여자한테 덜 투자하는 것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혜주 : 나는 앞에서 남자가 없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남자들의 헛소리를 듣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지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광개토: 내가 여중여고여대에서 가장 충격이었던 점은 그룹의 장들이 모두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부회장, 회장, 반장 전부 여자. 여자만 있을 때 배울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혜주 : 서울여대 에브리타임엔 노원지역 학생들이 모이는 노원지역게시판과 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학교게시판이 있다. 노원지역 게시판, 노지게는 없애야 한다는 말이 많을 정도로 헛소리가 많다.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서도 가해자가 조현병 환자라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개인적인 문제고, 여성들이 몸조심을 해야 한다는 말이 지배적이다. 서울여대가 공학이었다면 이런 얘기를 지금보다 더 비판 없이 수용했을 것이다.

슈슈용 : 여대를 다닌다고 해서 남성주의적인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안 받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대 안에서 페미니즘적 사고를 기르기 쉽고, 학습 분위기도 조성되어 있다. 남성들의 일상적인 언어들에 학습을 당할 이유도 없다.

읭용 : 성평등한 사회면 여대가 필요 없을 텐데, 아직까지 그런 사회가 안 됐기 때문에 여자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 아직 교육 측면에서, 사회 측면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정말 평등한 사회가 오면 여대가 사라지지 않을까?

 




Q.여대생이 말하는 여대생 / 여대생이 바라는 여대생

슈슈용 : 능동적이고 주체적이고 독립적이고. 독립적인 것을 위해서 자신들을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이들이 여대생이다. 1학년 때 가는 엠티에서는 학생들이 남자 없음에 한탄하기도 한다. 학교 모토가 자주성신이다. 자주! 성신! 이러면서 짐을 나른다.(모두 웃음) 짐을 나르면서도 즐거워한다.

읭용 : 주변의 남자들이 성차별적인 이야기를 했을 때 그건 성차별적인 이야기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쟤 페미니스트야?’냐고 묻는다. 아직까진 소극적이지만 이제는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혜주 : 사람들이 하는 말들에 괴로워하지 않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여대생들이 남자들과 대등하게 토론할 때 정말 멋있다라고 생각했지, 남자와 잘 결혼했을 때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슾하 : 현재는 약자지만, 과거의 약자로 남으면 좋겠다. 미래에는 전공을 살려 맛있는 걸 많이 먹고, 칼럼을 기고하고 부자인 남자여자들과 다자연애를 즐기며 행복한 삶을 일궈나가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대담 후기

슈슈용 : 김주하씨의 명언이 떠올랐다. ‘이대를 다니면서 이대의 편견을 뛰어넘기 위해서 노력했던 시간이 내 밑거름이 됐다오늘 말을 거칠게 했지만 다음엔 정제된 언어를 가지고 오겠다는 다짐을 했다.

슾하 : 여자로 살아가는 것,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것만 생각했는데, 더욱 세분화해서 여대생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읭용 : 이런 걸 주제로 토론한 자리가 처음이었는데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뜻깊은시간이었다. 생각을 깊게 해볼 수 있어 좋았다.

혜주 : 지인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언니 한 명이 화장실을 가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오빠들이 쟤는 너무 예민하다는 말을 했다. 현실에서 저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여대회담에서는 그런 눈치 볼 거 없이 마음껏 이야기하고 들어서 정말 뜻 깊은 자리였다.

 


우리 오빠가 여혐러일까요? (벌벌)

by.광개토

 



인터넷의 덕밍아웃 서사는 덕후임을 들킨 뒤의 이야기는 전하지 않는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고등학교 친구들 중 몇몇은 내가 더 이상 편안한 덕질 라이프를 즐기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학생이 되어서까지 소위 말하는 덕밍아웃을 감수하면서 덕질을 할 수 없을 거라는 말이었다. 오빠 사진으로 된 핸드폰 배경화면을 숨기기에 급급하고 언니 사진이 가득한 자취방에 친구를 들일 수 없어 전전긍긍하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앞으로 조심해서 덕질을 해야 겠다 마음먹었지만 n년 간 일반인 코스프레라는 걸 모르고 살았던 내가 그리 쉽게 본능을 숨길 수 있을 리 없었다. OT 자리에서 흥이 겨운 나머지 나는 아이돌 덕후임을 밝혔다.

인터넷의 덕밍아웃 서사는 덕후임을 들킨 뒤의 이야기는 전하지 않는다. 조별 과제에서 대놓고 왕따를 당할까? 나를 뺀 단체 메신저 방을 만들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체 어디서 덕질을 숨기라는 경고가 나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 덕후임을 숨기지 않는 나를 조롱하거나 비웃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덕후인 친구들이 늘었다. 대학은 콘서트를 가든 밤새 아이돌 예능을 보든 상관없는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덕질은 대학생활을 더욱 풍족하게 만들어 주었다.

많은 덕후들을 만나면서 내가 얻은 프리 덕질 라이프가 여대라서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공학에 다니는 친구들은 정말 인터넷에서 보던 덕질을 숨기는 여대생의 모습을 답습하고 있었다. 아직도 아이돌을 좋아하는 행위를 마치 10대 시절 철없는 여자애들이나 하는 모습으로 격하시키는 사회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한다. 숨길 이유가 없는 당당한 취미생활임에도 불구하고 20대 여자들은 아이돌 팬질을 하는 자신을 지운다.

이런 배경을 두고 <디지털 싱글 : 페미아이돌>을 발매해보기로 했다. 이 코너에서는 앞으로 3개월 동안 페미니스트 여대생 덕후가 보는 K-아이돌과 팬 문화를 써볼 예정이다. 디지털 싱글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작지만 꽉 채워서.

 


여성혐오라는 유령이 남자 아이돌 팬덤을 떠돌고 있다.


 

플레디스 소속의 일 년 차 보이그룹 세븐틴은 최근 그룹 리얼리티 예능인 <세븐틴의 어느 멋진 날>을 찍었다. 섬이라는 고립된 장소에서 열 세 명의 멤버들이 직접 식재료를 구하고 요리해 살아남는다는, 일종의 생존기였다. 확고한 캐릭터를 가진 멤버들이 좌충우돌 부딪히며 섬 생활을 해내는 모습은 기존에 볼 수 있던 무대 위주의 방송이 아닌 실생활의 멤버들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팬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세븐틴의 인기를 실감한 제작진은 본편을 종영한 뒤 편집본을 이어붙인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내보낸다. 이 비하인드 방송에서 제작진은 세븐틴 멤버들을 대상으로 이상형 올림픽을 진행한다. 제작진이 두 가지 타입의 여성을 제시하면 멤버들이 본인의 이상형에 가까운 여성을 선택하는 형식이었다. 제작진은 순댓국 먹는 여자vs파스타 먹는 여자라는 선택지를 제시하고 멤버들 중 다수는 순댓국 먹는 여자를 선택한다.

선택지가 께름칙하긴 하지만 자신과 식성이 비슷한 사람을 꼽을 수 있다고 양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내가 파스타를 좋아하니까라고 답한 멤버는 소수였다. ‘순댓국을 먹는 여자는 파스타도 먹을 수 있지만 파스타 먹는 여자는 순댓국을 못 먹을 것 같다라는 한 멤버의 발언은 여성을 어떤 기준으로 나누어 고정관념 속에 가둔다. 이제는 오래된 혐오 프레임인 비싼 파스타와 커피를 즐기고 명품백을 밝히는 된장녀를 떠올리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저런 선택지를 제시한 제작진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순댓국 먹는 털털한 여자 vs 파스타 먹는 우아한 여자였을까? 순댓국 먹는 우아한 여자를 상상할 수 없다면 그 얼마나 빈약한 상상력인가.

세븐틴의 순댓국은 트위터 실시간 트랜드에 오를 정도로 활발한 논쟁이 진행됐다. 그만큼 여성혐오 의혹(?)은 팬 대부분이 여성인 남자 아이돌에게 특히 치명적이다.

여성혐오 의혹은 현재 인기 고공비행 중인 방탄소년단도 피해가지 못했다. 힙합 아이돌을 표명하는 방탄소년단은 랩 가사는 물론 곡의 프로듀싱 전반에도 참여할 정도로 앨범 제작 참여도가 높다. 특히 랩퍼인 멤버들은 본인의 벌스(verse)를 대부분 직접 작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방탄소년단의 앨범 수록곡 가사가 여성혐오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음식을 눈으로 먹냐 여자애들처럼

사진 좀 찍지 마라 내 입맛 떨어져

-핸드폰 좀 꺼줄래

 

명품백을 쥐기보다는 내 손을 잡아주는

질투심과 시기보단 됨됨이를 알아주는

그런 너와 함께 우리의 미래를 그려봐

-miss right

 


위의 가사를 시작으로 멤버가 낸 믹스테입의 가사가 여성혐오로 지적받거나, 운영하고 있는 트위터 계정에 올린 멘션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의 팬들 중 일부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소속사와 방탄소년단에 피드백을 요청하고 있다. 주로 트위터 계정에서 움직이고 있는 이들은 얼마 전 아이돌로지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내 아이돌이 여성혐오를 한다는 사실도 속상한데, 더 속상한 것은 여성혐오 사실이 팬덤 간 세력 싸움에 이용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아이돌 전성시대. 크고 작은 기획사에서 아이돌들을 데뷔시키고 있다. 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 아이돌을 예뻐하기도 모자란 시간, 다른 그룹 팬들이 내 아이돌을 물어뜯을 구실을 넘겨주기 싫어서라도 여성혐오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동시에 타 그룹의 멤버가 여성혐오적이라고 말하고 싶어서 눈에 불을 켜고 마이너스 덕질을 하는 팬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같은 그룹의 팬들 사이에서도 여성혐오는 민감한 사안이다. 내 아이돌의 행동이 여성혐오적이라는 점을 비판하면 정말 이 그룹의 팬이 맞냐?’는 사상검증이 시작된다. 무조건적으로 내 아이돌이 옳다고 말해야만 하는 폐쇄적인 분위기는 남자 아이돌 팬덤 특유의 아이돌에 대한 높은 충성도와 더불어 위에서 짚었던 것처럼 세력 싸움이나 안티 팬들과의 기싸움과 무관하지 않다. 몇몇 팬들은 여성혐오 지적이 비난인지 비판인지 분간할 힘을 상실했다.

내 아이돌은 절대 여성혐오하지 않지만 네 아이돌은 여성혐오 덩어리임을 입증하고픈 팬들. 여성혐오라는 유령이 남자 아이돌 팬덤을 떠돌고 있다.

 


모두가 여성혐오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이쯤에서 짚어봐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과연 여성혐오하는 아이돌은 2016년에 뿅 하고 나타난 걸까? 여성혐오(Misogyny)는 고대 그리스어에 그 뿌리를 둔 단어로 가부장제가 시행된 이후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자신의 지정성별이 여성이냐 남성이냐와 무관하게, 어떤 남자에게 여자 친구가 있고 그가 이성애 포르노를 좋아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여성혐오는 모두가 수행한다.

한국 가요계도 마찬가지다. 남자 아이돌이라고 해서 여성혐오에 면죄부를 갖고 있지는 않다. 나와 내 친구, 선후배들과 마찬가지로 내 아이돌 역시 여성혐오를 할 수 있다. 그것은 특이하고 이상한 일이라기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모두가 여성혐오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중요한 사실은 어떤 그룹이 여성혐오를 한다는 사실보다, 아이돌 콘텐츠 속에서 여성혐오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를 헤드라인에 올리는 기자가 비판받듯, JTBC 예능 프로그램 <잘 먹는 소녀들>이 논란에 휩싸이듯 아이돌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팬 역시도 마찬가지다. 몇몇 팬들은 오해하고 있지만, 여성혐오 지적이 아이돌에 대한 공격은 아니다. 팬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대중문화, 미디어 콘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가 자신이 즐기는 콘텐츠를 비판하는 건 이상하지 않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201676일 다음 공식 팬카페에 여성혐오 논란에 대한 공식 입장을 게시했다. 소속사는 가사와 SNS 콘텐츠 속 여성혐오 논란을 인지하고 사과했다. ‘소속사와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여성혐오 지적사항과 문제점을 앞으로의 창작 활동에 지속적으로 참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인기 최정상 남자 아이돌 그룹이 여성혐오 비판을 받아들이고 배우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취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구매자() 대부분인 여성을 존중해주겠다는 모션은 역시 구매자 대부분이 여성이었던 뮤지컬 업계가 여성혐오 논란에 취한 모션과 천지차이다. 이제 제작자들은 아이돌 콘텐츠를 기획, 제작할 때 페미니즘을 신경 쓸 것이다.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얼마나 빨리 깨닫고, 젠더 감수성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 낼 줄 아느냐가 콘텐츠의 생명력을 담보하는 때가 왔다.

더 이상 우리 오빠가 여혐러일까봐 두려워할 시간이 없다. 내가 느낀 내 아이돌의 여성혐오를 숙고해보기에도 아까운 시간이다. 변화는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 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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