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른 거 그거 완전 좋은 거 아니냐?>

암탉

 

    한국만큼 외모지상주의가 극에 달한 나라를 찾아보기도 힘들 것이다. 지하철 플랫폼엔 성형외과 광고가 벽지처럼 도배되어 있고 화장은 예절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또한, 그 잣대는 유독 여성들만을 향해 날을 벼리고 있다. 여성의 신체를 부위별로 나누어 평가하고 여성들로 하여금 파편화된 여성상에 다가가도록 한다. 미의 기준에서 벗어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징벌은 가혹하다. (온갖 매체에서 미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연예인들이 외모로 인해 굴욕을 겪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그 상황은 분명히 유도된 것이다) 이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여성혐오의 일종이다. ‘몸을 지배하는 여성혐오속에서 여성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한다. 외모 꾸미기가 하나의 생존 전략이 된 셈이다.

 

    ‘몸을 지배하는 여성혐오의 대표적인 예시로 지난 회차에서 이야기했던 살찜 혐오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몸을 지배하는 여성혐오를 짚으며 마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다이어트의 성정치를 절반만 알고 넘어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번 회차에서는 마름 혐오’(Skinny Shaming)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 마른 거 그거 완전 좋은 거 아니냐?’, ‘마른 걸 누가 혐오해?’라고 생각했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마른여자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법

 

    난 168cm 45kg의 여자이다. 원래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이라 딱히 운동하지 않아도 항상 이와 비슷한 몸무게를 유지한다.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살찔 걱정 없어서 좋겠다며 축복받은 체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의 삶은 몸무게에 대한 압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쭉 강박증을 가지고 살아왔다. 중고등학생 시절, 폐쇄적인 또래 집단 안에서 우리들은 서로에게 외모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내 몸이 평균보다 말랐기 때문에 항상 나는 마른 애로 분류되었고, 때때로 내 이름이 아닌 몇 반 마른 애로 불리곤 했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지 하나하나 나의 마른 몸과 연관 지어 그러니까 살이 안 찌는 거야’, ‘병원에 가봐’, ‘한약을 먹어봐등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일부 몰지각한 아이들은 걱정해준답시고 밥을 입에 쑤셔 넣기도 했다. 폭언을 일삼는 이도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해골 같다’, ‘왜 이렇게 삐쩍 말라 비틀어졌냐’, ‘환자 같다는 식의, 듣기만 해도 기분 나빠지는 말들을 툭툭 내뱉던 아이들이 아직도 기억난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너는 내 옆에 서지 말라며 밀어내 무안할 때가 있다. 나를 두고 자신의 몸매와 비교하면서 우울해 하는 친구들도 많다. 내가 딱히 노력해서 마른 것도 아니고 유전적으로 살이 안 붙는 체질일 뿐인데 나에게 체형 유지 방법이나 식습관에 관해 물어보니 해줄 말이 없다. 원래 살이 안 붙는 체질이라고 대답했을 때 혼자만 알려고 하냐’, ‘치사하다는 반응이 돌아오면 난감하다. 이렇게 부러움 당하는상황에서 나는 굉장히 애매한 위치가 되어 버린다. 정작 나는 다이어트를 해보는 게 소원일 정도로 마른 몸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는데, 친구들이 나에게 너는 다이어트 안 해도 되니까 좋겠다는 말을 할 때면 내 몸에 대한 발언권을 빼앗긴 느낌이 들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Body Shaming(타인의 몸매를 비웃거나 비난하면서 수치심을 주는 행위[각주:1], 이하 바디 셰이밍)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여전히 나에게 너무 말랐다’, ‘살 좀 쪄라’, ‘밥 좀 먹어’, ‘혹시 다이어트하세요?’ 따위의 말로 운을 띄우는 이들이 있다. 23년째 듣다 보니 이제는 인사치레구나 할 정도로 익숙해졌을 뿐이다. 10대 때의 바디 셰이밍과 차이점이 있다면 성인이 된 후의 바디 셰이밍에는 남성에게 대상화되는 시선이 더해졌다는 점일 것이다. ‘이렇게 마르면 남자들이 안 좋아한다부터 너무 마르면 가슴이 작다는 성희롱 발언까지, 사회가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난 내 몸이 말랐다는 사실에 대해 크게 관심 두고 싶지도 않고 별로 자각하고 살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네가 지금 어떠어떠한 몸 상태입니다.’, ‘너의 몸매가 어떻습니다.’하고 각인시켜줘야 직성이 풀리는 것처럼 구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당당하게 말이다. 그들은 내 몸에 대해 평가할 자격이 없고 난 그들에게 내가 마른 이유에 관해 설명할 의무가 없다.

 

마름 혐오도 바디 셰이밍이야?

 

    바디 셰이밍 하면 보통 살찐 몸매를 향한 것을 떠올리게 된다. 마른 몸매를 향한 바디 셰이밍은 그와 약간 다르다. 마른 몸매를 향한 바디 셰이밍은 살찐 몸매를 향한 바디 셰이밍보다 더 당당하다. 보통 살찐 몸매를 가진 사람에게는 왜 이렇게 뚱뚱하냐’, ‘살 좀 빼라고 대놓고 말하지 않는데 마른 몸매를 가진 사람에게는 너 왜 이렇게 말랐냐’, ‘살 좀 쪄라하는 식의 직접적인 지적이 거침없이 쏟아진다. 전자와 후자 모두 상대방의 몸매를 평가하는 행위이고 무례한 지적인 건 마찬가지인데, 후자의 경우 실례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아가서 본인이 하는 이야기가 칭찬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마름 혐오가 상대적으로 덜 가시화되었기 때문이다. 마른 몸매를 가진 사람들은 자랑질이라는 오명 아래 바디 셰이밍을 바디 셰이밍이라고 말할 발언권조차 박탈당한다. 전시할 기회를 빼앗겼기 때문에 마름 혐오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말라서 더 쉽다.

 

뚱뚱하면 뚱뚱하다고 지X, 마르면 말랐다고 X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란 없다. 미의 기준은 매우 모호하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속에서 획일화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신체를 못생겼다고 평가한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징과 상관없이 획일화된 기준에 다가가기 위해 약품, 수술 등 인공적인 방법이 동원된다. 외모 꾸미기 비용은 마치 세금처럼 여성들에게 부과된다. 병든 사회가 개인에게 외모지상주의라는 강박증을 뒤집어씌우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살과 뼈를 깎게 한다.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틀을 무분별하게 소비하고 대상화시키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이 개개인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끼친다. 여성의 신체를 부위별로 조각내고 상품화하여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환상의 틀을 만들고, 경쟁적으로 이 이미지에 부위별로 가까워지길 강요한다. 이런 사회에서 설리는 예쁘지만, 키가 너무 큰 여자고, 설현은 예쁘지만, 너무 까무잡잡한 여자다. 여성의 외모는 항상 흠결사항으로 읽혀, 그 여성이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남성의 외모가 항상 장점 혹은 매력으로 읽히는 것과 대조된다.)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에 준하는 여성이 존재할까? 나는 없다고 확신한다. 아름다움, 나아가 미의 신화 자체가 여성을 구속하기 위해 만들어진, 실존하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에서 모든 사회가 여성에게 어떤 이상적 아름다움을 고취시켜 왔지만, 그 목적이 다수를 배제하는 것에 있으므로 이상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다수가 그 이상에 다가서면 이상이 변화한다고 말했다. 또한, 나오미 울프는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에서 여성이 법적·물질적 장애를 돌파할수록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이미지는 더 엄격하고 무겁고 무자비하게 여성을 짓누른다고 말했다. 무너져가는 남성중심사회를 유지하고자 아름다움이 정치적 도구로써 이용됐다는 것이다. 파도처럼 잡히지 않는 아름다움에 다가가기 위해 스스로를 억압하는 여성은 계급화하기 쉬운, 다루기 쉬운 여자가 된다.

 

    ‘살찜 혐오이든, ‘마름 혐오이든 그 근본에는 여성혐오가 자리 잡고 있다. 마른 몸매를 선호하는 사회에 사는 내가 마름 혐오를 겪게 되는 이유는 내가 마름이라는 방식으로 아름다운 여성의 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살찜이라는 방식이든 마름이라는 방식이든 획일화된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교정의 대상, 곧 비난의 대상이 된다. 어떤 길로 탈선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너무 뚱뚱한 사람 혹은 너무 마른 사람만 남는다. 도달할 수 없는 기준을 정해 놓고 그 기준에 다가가라며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것, 그것이 미의 신화가 의도한 바이다.

 

페미니즘이 나에게 준 해답

 

    나에게 페미니즘이란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다 잡은 동아줄 같은 존재이다. 살기 위해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회가 살기 편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접해도 나처럼 절박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회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발 벗고 나서서 사회 구조를 분석할 수밖에 없는 게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페미니즘은 타자화된 내 몸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힘이다. 페미니즘을 통해 나의 몸과 삶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방향성을 찾았다. 마른 내 몸이 기형적인 게 아니라 사회가 기형적인 것이다. Shame을 주는 Shameless들을 족치자.

 

이 글은 Sarah 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야기를 공유해주신 Sarah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필자 소개

여태껏 내 손으로 덕질한 것 중에 페미니즘만큼 재밌는 게 있었나? 페미니즘에 강하게 치인 새내기 페미입니다.

 


  1. 출처: Oxforddictionaries.com [본문으로]

책 읽어주는 나나

제1호 「벨라 B.의 환상」


(출처 : 아마존프랑스)

레몽 장(1925-2012)은 단편집 『벨라. B의 환상』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이자 교수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벨라. B의 환상』을 3호에 걸쳐서 살펴 볼 계획인데요. 오늘은 첫 번째 단편, 「벨라 B.의 환상」입니다.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던 즈음, 레몽 장은 엉뚱한 착상을 한다거나 신선한 자극을 안겨주는 작가로 평이 나있었습니다. 옮긴이의 말을 잠시 살펴볼까요? “우리 주변에서는 논리성을 저버린 일들이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 다만 우리들이 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뿐이다.” 맞아요. 이 이야기는 “논리성”을 저버린 이야기에요. 그렇다고 그 “논리성”이라는 것이 논리적이라고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엉뚱하고 신선하다고도 하는데요, 글쎄요, 무엇이 엉뚱한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무슨 말인지 궁금하시지요? 지금 바로 살펴봅시다.




<벨라 B.의 환상>


벨라는 어떤 불안을 느끼고 있는 한 소녀입니다. 오랜 증세 때문인지 그녀는 가냘프고 생기없이 초췌하기만 한데요. 그녀를 진단해야 하는 ‘나’는 그녀를 유심히 관찰합니다. 그러다 문득 벨라를 프로이트나 그로덱의 환자와 닮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의사이고, 그녀는 치료받아야 할 환자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자문하는데요. 그러면 ‘나’는 프로이트인건가요?


벨라는 “과육과 같이 도톰”한 입술과 “얇은 실크 블라우스 아래로 풍만하고 지나치리만큼 커보이는 가슴”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에 따르면 말이에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이게 참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벨라의 인품에서는 조심성이나 신중함이 두드러지는데, 왜 자꾸 “상당히 묵직한 이 두 개의 젖가슴”을 감추려고는 하지 않는 거냐고요.


그녀는 “거미 공포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미라는 것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벨라가 밤에 잠자리에 들 때만 그녀 위로 기어오르는 것인데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침대 발치 벽에 뚫린 구멍으로부터 나온다는데, 심지어 그 구멍조차 육안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벨라는 이를 잘 알고 거의 체념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거미들이 그녀의 성기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이를 벨라의 환상쯤으로 생각합니다. 주치의 페트렐 박사 또한 “성에 관계된 예민한 사안이 확실하다”며 정신과 상담을 받을 것을 조언하지요.


(출처 : 구글)


그리하여 벨라와 가족들은 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네메츠 교수를 만나게 됩니다. 네메츠 교수 또한 벨라의 케이스를 어린 소녀들이 가질 수 있는 전형적인 거미 혐오감, 혹은 공포증이라고 진단하며, 그 원인은 “성과 관련된 사항들”에 있다고 합니다. 그는 벨라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거미 이야기나 하는 이 어린 처녀가 이야기를 꾸며댈까 걱정스러웠답니다. 그래서 그녀의 가족들에게 어린 시절, 특히 벌레와 관련된 이야기가 없는지 묻습니다.


그런데 들어보니 벌레가 벨라를 괴롭혔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개미들이 벨라의 몸 위를 기어 다니면서 아랫배와 허벅지를 가로지르는 붉은 자국을 만들어낸 사건, 해변의 모래가 “절대로 안되는 곳”, “은밀한 장소”로 들어간다며 벨라가 불평하던 사건, 파리를 잡아 가두려고 유리컵을 사방에 탁탁 치던 벨라의 몸에 다음날 붉은 원 자국들이 생긴 사건(아마 파리가 벨라의 몸 위에 붙어댔던 모양입니다. 우리는 추측만 할 따름이지요.) 등. 물론 이번 거미 사건과 마찬가지로 벌레를 실제로 볼 수 있었던 사람은 벨라 뿐이었습니다.


(출처 : 구글)


네메츠 교수는 가족들의 증언에서 확신을 얻게 됩니다. 자신의 예측이 옳았던 것입니다. 더불어 그녀의 “야릇한 아름다움”, “묵직한 가슴”과 함께, “얌전하고 겸손하며 수줍”어하는 모습은 그로 하여금 어떠한 사명감까지 갖게 했다는데요. 심지어는 눈물이 북받칠 정도랍니다. 생전 가져본 적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나. 말하자면 ‘내가 그녀를 꼭 치료해 주겠다, 그녀의 치료를 나의 사명으로 삼겠다’라는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치료는 “정기적인 면담” 내지 “진정제” 처방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벨라의 증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벨라가 말하길, 그 거미들이 온 몸을 기어다닐 뿐만 아니라, 그녀를 물기라도 하는 것인지 온 몸에 붉은 자국이 넓게 퍼져나간다는 것인데요. 그 붉고 따가운 자국들은 점점 커지다가 마침내는 가운데가 거뭇거뭇하게 변하기까지 합니다. 이를 두고 네메츠 교수는 “심신상관적인 징후의 새로운 발현”이라며, 이를 미리 예고했던 본인의 선견지명에 감탄할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벨라의 증세는 악화되어가고 거뭇한 자국도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는 갑자기 가정환경을 탓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곳에서 벨라를 끌어내어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선, 그녀의 옷차림새부터 바꾸어야할 것 같습니다. “이 얇은 천과 레이스류, 그녀가 줄곧 입고 다니는 이 펑퍼짐한 치마들, 간들간들하게 이마 위로 길게 늘어진 머리, 팔목에 무겁게 늘어진 팔찌들, 그녀가 자주 바꿔 다는 귀고리, 브래지어, 어쩌면 그녀가 착용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코르셋”. 그녀를 “요즘의 젊은 처녀들”처럼 현대적인 여자로 바꾸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벨라는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만들려는 이 치료법을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결국에는 점점 “다른 여자”로 변해갔습니다. 팽팽히 부풀어 한가운데가 거뭇거뭇한 자국들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말이지요. 이제는 청바지도 입게 된 그녀에게 남은 것은, 때 지난 헤어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벨라는 이상하게도 유독 긴장하게 됩니다. 미용 중에도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어댄 탓에 결국 미용사 클라라의 면도칼에 살짝 베이게 되는데요. 하필이면 잔뜩 부어있던 피부가 베이게 됩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걸, 그 베인 상처에서부터 아주 작은 거미 세 마리가 튀어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다행인건 벨라가 이제는 회복했다고 합니다.



<누구의 환상일까?>


우리는 적어도 벨라의 케이스에선 프로이트주의적 진단이 패배한 것을 목격했습니다. 벨라의 환상이 아니라 정신분석학적 진단이야 말로 환상이었던 것이지요. 모두는 벨라의 증언이나 경험, 심지어 그 증거조차도 믿지 않았습니다. 다만 정신분석학을 믿을 뿐이었지요. 벨라의 목소리는 보기 좋게 묵살당하고, 그 고통에 있어서 타인일수밖에 없는 정신 분석학의 목소리에 의해서만 그녀의 병명이 진단되었습니다. 왜 세상은 벨라의 병이 신경증이라고 판단하였을까요? 왜 그녀의 일관된 증언을 믿지 않고, 그녀의 몸이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들을 무시하고 그녀가 겪었던 모든 일에서 오로지 정신분석의의 예측이 옳다는 것만을 보았을까요?


이 세계가 벨라에게는 ‘적응’하기 힘든 것임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거미들은 벨라의 몸을 자신들의 소유지로 삼은 듯 밤마다 그 위를 기어 다닐 뿐 아니라, 알집, 즉 자궁으로써 그녀의 몸을 취했지요. 사실 벨라는 사춘기 이전부터 외부세계의 물질이 그녀를 파고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벨라가 그녀의 성기와 관련하여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은, 그녀의 성이 이 세계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에 불편함을 가진다는 것과 무관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벨라의 질 속으로 파고드는 거미를 여성,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은밀히 침투해 지배하려 하는 세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남성 중심 세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그녀의 몸이 거미들이 기어다닐 수 있는 소유지, 즉 남성 세계의 소유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고, 자궁의 기능, 즉 여성의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확실히 벨라를 좀먹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벨라 만이 벌레를 포착할 수 있었던 이유도 추측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성립된 세계의 질서 속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적 지배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왜 요즘 한국에서도 여성의 몸, 섹슈얼리티에 대한 지배나 억압이 어디 있는지 전혀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프로 불편러’라는 말도 자주 사용되고요. 어쨌든 벨라의 신체를 넘어서 정신까지 이 세상에 적응시키고자 했던 것이 바로 정신분석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신분석학은 그녀의 경험을 일종의 판타지, 신경증, “성에 관계된 예민한 사안”으로 진단하여 궁극적으로 그녀를 거미를 볼 수 없는 다른 사람들처럼 현실에 눈멀게 하고자 하니까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없었던 것처럼, 벌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출처 : 구글)


거미는 벨라의 몸을 소유합니다. 바로 옆에서 정신분석학은 그녀의 목소리를 빼앗아버리고 병을 진단합니다. 프로이트주의는 임의로 그녀를 진단하였지요. 거미를 목격한다는 것, 즉 그녀의 몸에 대한 거미의 침투를 포착한다는 것만으로 그녀를 신경증 환자로 진단내렸습니다. 거미들은 적극적으로 벨라 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듯했고, 정신분석의는 벨라가 이 지배에 대해 적응하거나 또는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도왔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벨라의 “환상”으로부터 그녀를 자유롭게 해준 것은 정신분석학이 아니었지요. 한 미용사의 실수, 면도 컷이 벨라를 정신분석학적 진단으로부터 해방시켜준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남성의 지배에서 벗어난 세계로의 해방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정신분석학이 주장하는 신경증의 원인은 사실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자, 확실히 이 이야기는 “논리성”을 저버린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거미? 정신분석의? 아니면 둘 다? 설마 거미가 기어들어갈 수 있는 여성기를 벨라가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 않겠지요?



<프로이트에 대한 말말말>


(출처 : 구글)


“신프로이트주의적 수정주의를 가장 잘 특징짓는 용어는 아마 ‘적응’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에의 적응인가? 기초가 되는 가정은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 흑인, 또는 특별히 불운한 계층의 일원이면 어떠한가? 그들은 이중적으로 불운하다. 그들은 우리가 보아온 대로 특권을 가진 사람들에게조차 어렵고 불안정한 정상성을 획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그들의 가능성을 제한시키는 특수한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에 ‘적응’해야만 한다. 그들은 자기정의 또는 자기결정하려는 모든 시도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므로 마르쿠제의 관점에 있어서, 치료의 과정은 ‘체념의 과정’일 뿐이고, 건강과 신경증 간의 차이는 ‘체념의 정도와 효과’일 뿐이다.”

“프로이트는 여성해방론이 치유하려고 하는 것을 진단하는 사람에 불과했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정신분석은 가부장제 사회를 ‘위한’ 추천이 아니라, 하나의 가부장제 사회‘의’ 분석이다.”

-줄리엣 미첼


“정신분석학은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는 진실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


“만일 당신의 신경질적으로 비참한 기분을 우리가 치료를 통해서 일상적인 불행으로 변형시키는 일에 성공한다면 많은 것이 얻어질 것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참고문헌>


레몽 장, 이인철 옮김, 『오페라 택시, 세계사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김예숙 옮김, 성의 변증법, 풀빛

시몬느 드 보부아르, 이희영 옮김, 제2의 성, 동서문화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정신분석세미나팀, 페미니스트 정신분석이론가들, 여이연

위키페디아 프랑스, https://fr.wikipedia.org/wiki/Raymond_Jean






나나

“사내아이를 낳아야 했어, 그래야 그럭저럭 살아 나가기 쉽고, 이 파리에서 수많은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야.”

내가 태어난 날 우리 엄마가 나를 보고 되뇌었어요.

(출처 : 구글)


3. 치열한 입시를 치르고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캠퍼스를 밟는 때이다. 새내기 A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첫 강의를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이게 무슨 일인가. 강의계획서를 꼼꼼히 읽고 고른 대학 강의의 교수는 강단에 서서 여학생들이 칠칠맞은 남학생들의 뒷바라지를 잘 해주라고 발언한다. 손을 들고 교수의 발언을 제지하는 학생들은 아무도 없다.

피곤한 마음에 과방에서 조금 쉬려고 했더니 소파는 이미 만원이다. 의자에 앉아 엎드리려는데 여자 선배가 조용히 불러내 속삭인다. ‘과방에서 쉬는 건 위험하니 여학생 휴게실에 가봐라는 조언이다. 무엇이 위험한지 새내기 A는 어안이 벙벙하다.

신나는 개강 총회. 새내기 A는 총회를 진행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과 학생회장도, 과대도 전부 남자인데 부학생회장과 부과대는 여자다. 바쁘게 움직이는 학생회 구성원의 성비를 보고도 동기들은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대표는 남자가, 부대표는 여자가맡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분위기에 새내기 A는 더더욱 이상한 기분이 든다.

뒤풀이 술자리에서 A는 선배들이 가르쳐주는 각종 애교스런 벌칙과 게임을 한다. 여자들에게는 귀엽거나 섹시한 버전의 FM을 가르치고, 남자 선배들은 작년 MT에서 했던 여장 사진을 보여준다. 게이샷레즈샷을 신명나게 외치는 뒤풀이 자리에서 A는 점점 불편한 자신이 유난스러운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뒤풀이 장소를 뛰쳐나온 A. A를 위한 장소는 어디에 있을까?

 

불편한 A를 위한 자리를 월간 여기에서 마련했다. 기대를 안고 입학한 나의 학교, 나의 학과에서 벌어지는 여성혐오 발언에 벌써부터 지친 새내기 페미니스트들을 한 자리에 모셨다. 입시부터 입학식, 학생회와 교수를 아우르는 17학번 새내기 여대생 페미니스트들의 시원한 우리 학교 뒷담을 들어보자.



 

(출처 : 구글)

6차 여대회담 :

갓 입학한 새내기 여대생 페미니스트가경악!

- 새내기 페미가 말하는 우리 학교는 여혐러

회담 진행 : 광개토

 

 

Q.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dare: 17학번 21살 성공회대 영어학과 학생이다. 지금은 과대표 활동을 하고 있다. 학교 친구들에게 자기소개하면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는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상태이다.

가명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dare로 했다. dare는 사전적으로 감히 ~하다, ~할 엄두나 용기 내다라는 뜻이다.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뒤에 예전의 나였더라면 눈치 보느라 못 했을 것들이나 말들을 전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 예전이면 ‘how dare?’ 했을 일들을 나는 지금 그냥 한다.

-john: 한세대학교 17학번 미디어광고학과 학생이다.

-청온: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17학번 신입생이다.

 


Q.언제, 어떤 계기로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했는가?


-광개토: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언제 어떤 계기로 페미니스트로 정체화 했는지 궁금하다.

 

-청온: 중학교 1학년 때 키도 작고 통통하고 안경을 쓴 소심한 아이였다. 남자아이들이 너는 여자인데 왜 꾸미지도 않냐고 외모를 가지고 많이 놀렸다. 여자는 왜 예뻐야 하는지, 왜 내가 외모로 놀림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맘고생을 하는 과정에서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라는 책을 읽고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책을 읽고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겠다고 확실히 깨달은 것 같다.

 

-dare: 나는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갈 때 정체화했다. 전에는 소위 말하는 여자 마초였다. 종종 나는 그런 애들이랑 다르다고 말하곤 했다.

부모님 두 분 다 흡연을 하시는데 아빠는 밖에서 담배 피운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만, 엄마는 친구들 사이에서가 아니면 담배를 피우지 못했다. 엄마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여자가 밖에서 담배 피우면 안 좋게 본다.”고 하셨다. 그 대답이 너무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마침 메갈리아가 화제였다. 페미니스트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메갈리아의 지향점이나 그들이 선택한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날 소위 말하는 셀프 코르셋을 다 풀어 던지게 되었다. 내가 스스로를 압박하던 게 사회적인 이유도 있었구나, 나부터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john: 이 중에서 제일 늦게 정체화한 편이다. 원래 여성학이나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여성가족부에 대한 안 좋은 편견들도 있고 나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방탄소년단의 팬인데, 3 후반 즈음 트위터에서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을 접하게 됐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후 재수를 시작하면서 기독교 기숙학원에 들어가게 됐는데 여성혐오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지식이 조금 있는 상태여서 (여성혐오 분위기에) 저항하기 위해 새끼 페미라고 불릴만한 짓을 많이 했다. 애매하게 싸우다 망해서 나 페미니스트해도 되나?’ 고민하기도 했다.

수능이 다가오면서 입시 때문에 심적으로 힘들 때 내가 행복해지려면 페미니스트가 돼야겠다고 생각하고 정체화하기 시작했다. 사실 페미니스트가 된 지 1년도 안 된 셈이다.

 


Q.대학 입시 준비를 하면서 겪었던 성차별이 있는가? 


-광개토: 회담자들 모두 본격적인 입시 전에 페미니스트로 정체화를 했다. 입시 과정에서 겪은 성차별이 있나?

 

-dare: 너무너무 많았다. 재수를 하면서 수학을 포기했었다. 수학을 포기하니까 여대를 준비해야 했는데, 여대를 준비하겠다고 아빠에게 말하자 제일 먼저 돌아온 말이 '여대 가면 안 돼.'였다. ‘여대 가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진다’, ‘여자는 기가 세기 때문에 가서 치인다’, ‘여자들이랑 같이 있으면 너도 그렇게 된다’. 뭐가 그렇게 된다는 것인가?

그래서 아빠가 정한 마지노선이 이화여대, 숙명여대였다. 이화여대, 숙명여대까지는 허락을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나는 입학할 성적도 안 되는데 왜 (대학이 아닌 아빠가) 허락해주지? (웃음)

성적이 되는 서울여대를 가겠다고 하니 제일 먼저 '육사'가 돌아왔다. '육군사관학교와 놀고먹기 때문에 서울여대 이미지가 안 좋다.', '육사 사귀겠네? 군인이 얼마나 더럽게 노는데.', '너도 그렇게 변할 것이다.' (광개토: 다 미래형이다. 왜 앞날을 점치는가?) 집안에 유리구슬이 있는가 보다. 나도 모르는. (웃음)

나는 이해가 안 됐다. '여대를 나오면 시야가 좁아진다.' 이거는 어쩌라고? 싶었고, '서울여대'라는 여대가 다른 공학 대학에 의해 평가받고 있지 않나. 서울여대가 얼마나 아웃풋을 냈다, 이것도 아니고. 그 옆에 육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고 있었다여대에 대한 이상한 편견이 너무 많고, 나한테 너도 직접적으로 변할 거라고 말하니까 대답할 가치가 없었다. 근거가 있는 말도 아니고, 남성의 시각에서 본 기준이다. 어이가 없던 입시준비 기간이었다.




여대에 대한 편견은 당분간 계속될 듯 하다.

여자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말하는 여대 편견은 

<월간 여기>의 제1차 여대회담 : '너 여대 티나'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 http://weolganyeogi.tistory.com/21

(출처 : 구글)


 

-청온: 이건 친구의 이야기다. 음대를 지망하는 학생이었는데 개인지도 선생님이 있었다. 그분도 여자였는데, '음악으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으니 잘 나가는 남자를 한 명 잡아서, 결혼을 하는 게 낫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친구가) 그래야겠다. 관리를 잘해야겠다고 나에게 말하더라.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사회적으로 아직도 남자에게 여자가 종속되어있다는 인식이 많다.

 

-dare: 내 친구는 문·이과 전체 1등이었다. 지금 서울대 경제학부를 다니는데, ·이과를 고민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이과 가지 마라'였다. 그 친구는 이과로 가고 싶어 했다. 그 친구의 부모님은 이과에 진학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의 공간지각능력이나 수학적 능력이 더 떨어지기 때문에 지금은 1등을 해도 2, 3학년 때 남자애들이 어떻게 치고 올라올지 모른다, 이과에 가면 남자애들에게 치여서 서울대 진학을 못 할 것이다'라며 말렸다. 남학생들과 성적이 월등히 차이가 났는데도!

나중에 그 친구가 서울대를 쓸지, 다른 데를 쓸지 고민했다. 주변에서는 교대를 쓰라고 권했다. 교사 될 마음이 없는데 왜 교대를 추천하냐 물어보니, '결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서는 교대를 가서 너의 시간을 가정에 할애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단다. 어른들의 눈에는 이 친구의 미래에 결혼을 하고 육아를 담당한단 전제가 깔려있던 것이다.

'결혼도 육아도 안 할 건데요.'라고 말하자 '그게 네 말처럼 되느냐?', '그렇게 말하는 애들이 꼭 시집 빨리 간다.'는 말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 친구는 결국 자기 뜻대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갔지만,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청온: 어른들이 왜 미래를 말하는가?

-john: 내 미래에는 아이돌 밖에 없는데. (모두 웃음)

 



치열한 입시를 견디기도 바쁜데 여자들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여성혐오도 함께 견뎌야만 한다.

(출처 : 구글)




-john : 입시 당시 여대를 희망했는데 여대를 희망한다고 말하면, 왜 여대를 희망하냐고 물어보더라. 공학이랑 똑같은 이유로 여대를 희망할 수도 있는데.

나는 서울여대 국어국문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국어국문과와 문예창작학과가 함께 있는 대학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서울여대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하면 '남자에게 상처를 받았냐', '남자를 싫어하냐'는 질문으로 무조건 이어졌다. 여고 출신인데, '여고·여대를 가면 좀 그렇지 않냐'는 얘기도 들었다.

기숙학원에서는 예배를 드렸다. 한번은 목사님이 성경을 인용하면서, ‘여자랑 남자가 사귀면 남자는 원래 스킨십을 끝까지 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남자가 끝까지 가고 싶어 해도 여자는 허락하면 안 된다. 그러면 순결을 지킬 수 없다라고 말했다. 졸음을 참아가며 새벽 5시 반에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참을 수 없어서 조용한 예배 시간에 문을 소리 나게 박차고 나갔다. 서러워서 눈물이 펑펑 나고, 재수하기도 싫었는데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가 싶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다. 기숙학원 사람들에게 말하면 내가 목사님을 욕했다고 반드시 말이 돌 게 뻔했다. 그때 다른 여자선생님이 나와서 위로랍시고 '성차별이 그렇게 심한 목사님은 아니지 않느냐. 성경을 기반으로 한 말이다.'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이게 제일 힘들었던 사건이었다.


 

Q.대학에 입학하기 전, 대학 혹은 대학 생활에 대해 가졌던 감정은 어땠나? (기대감, 불안함 등) 그런 감정이 든 이유는 무엇인가?

 

(출처 : 구글)


-광개토: 힘든 입시 과정을 겪었는데, 불안감보다는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는지 궁금하다.

 

-john: 기대감이 더 컸다. 불안감까지 생각하기엔 너무 슬펐다.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dare: 솔직히 원하는 대학교에 온 게 아니라 기대도 불안도 없었다. 앞으로 내가 어떤 바보 같은 애들을 만나 어떤 멍청한 소리를 들을지 예상됐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입시 준비하면서도 살 좀 빼라, 넌 갈수록 살이 찌냐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어차피 여기 있던 애들이 같이 대학갈 것 아닌가? 여기서 뽑힌 애들이 흩어져서 각 대학에 가겠구나, 그러면 난 이런 멍청한 애들을 무시하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단 생각밖에 없었다. 무뎌진 것 같다. 무뎌지면 안 되는데 말이다.

 

-광개토: john은 기대감만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john: (폐쇄적인) 기숙학원에서 지냈으니까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컸다. 대학에 가면 최소한 4년은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경우 연애보다는 대학 공부, 소모임에 대한 기대감이 정말 컸다.

 

-청온: 3 시절을 힘들게 보냈다. 아예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다. 부모님이 명문대 출신의 굉장히 보수적인 분들이셔서 어릴 때부터 자신들을 따라 명문대를 나와야 한다고 강요하셨다. 오히려 그런 압박감 때문에 대학에 가기 싫었고 공부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여성학과 프랑스 문화에 관심이 생겼다. 대학교에 가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공부했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불행했던 이유, 대학에 가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한다는 압박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학에서 자유롭게 지내고 싶어서 대학에 왔다. 지금은 동아리도 하고 행복하다. 엄마도 엄마가 보기에도 지금 넌 정말 행복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변하신 것 같다.

 


Q.대학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느낀 성차별은 무엇인가?


(출처 : 구글)


-광개토: 대체로 기대감이 컸던 듯하다. 그렇다면 이런 기대감을 깨뜨렸을 첫 번째로 느낀 성차별은 무엇인가?

 

-dare: '언니 남자친구 있어?'. 여자친구가 있을 수도 있는데! 여자에게는 남자친구 있어? 남자에게는 여자친구 있어?라고 당연하게 묻는다.

여자 둘이 손잡고 갈 수 있는데, '뭐냐? 너네 사귀냐?'라고 묻는다. (여기에 깔린 생각은) ‘당연히 너네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지이다. 그냥 놀리기 위해서 물어보는 그게 너무 기분 나쁜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대고 '. 우리 사귀어.' 라고 말하면 웃더라. 당연히 (퀴어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거 되게 거만한 게 아닌가. 자기가 뭔데 나를 퀴어가 아니라고 단정 짓는가. 퀴어 조롱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굉장히 조롱하는 말이었는데, 여자 선배가 남자에게 ', 술 한 잔 마셔라.'라고 하자 다른 남자 선배가 '이거 남자가 여자에게 하면 나중에 신고하고 성희롱이니 뭐니 하면서 범죄자로 몰아갈 수 있는 일'이라면서 '남자가 술을 잘 마실 거라는 거 이런 게 성차별이지, 이런 게 역차별'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여자 선배는 대꾸를 안 하고 다른 선배가 시끄럽다고 해서 일단 그 상황이 종료됐다.

OT 때 성교육시간이 있었다. 선배가 후배에게 말하면 안 되는 행동에 대한 교육 시간이었는데, '그런 것은 역차별일 수 있다.',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 남자더라. 왜냐하면 여자들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어서 무섭지만, (남자들은) 본인에게 일어날 일이 아니기 때문에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거다. 무슨 말만 하면 역차별이라더라.

 

-청온: 입학 후 숙대에 대한 페이스북 페이지를 돌아다니다가 '연대 응원가'를 보고 충격 받았다. ‘이대나 숙대 같은 여대생들은 명문대의 여친이라는 내용의 가사였다. 지금은 21세기인데. 내가 가려는 이 대학교, 여대생이라는 지위가 이 정도였나? 싶더라.

-john: '하지 말아야지'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니 놀랍다. 생각해야하는 거 아닌가.

-dare: 인간이라면 말이다.

-청온: 엄마가 보시던 90년대 후반의 여성 잡지에 비슷한 가사가 있었는데, 그걸 아직도 부르다니 믿을 수 없다.




 


연세대학교 공식 페이스북 지난 210일에 올린 연대 응원가동영상 캡쳐.

문제가 된 응원곡 ‘Woo’

고대 못생겼어 / 일단 못생겼어 (중략) 이대한테 차이고 숙대한테 차이고 / 여기저기 차이고

라는 가사로 해당 학교에 다니는 여자 학생을 지우고 

여자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화했다는 점에서 여성혐오 지적을 받았다.

(2차 출처 : http://www.huffingtonpost.kr/2017/02/13/story_n_14716144.html)

 

 

Q.대학에 입학한 뒤 다양한 행사들을 겪었을 것이다.(OT, 입학식, 새내기캠프 등) 어떤 행사들을 겪었고, 그 행사들은 페미니스트인 나에게 어떻게 다가왔는가?

 

-john: OT에서 성교육을 했는데 00년대 초중반에 유행했던 뇌 구조 그림을 띄워 놓고, 남자는 여자랑 뇌 구조가 달라서 여자는 사랑해야 성욕이 생기지만 남자는 사랑을 하지 않아도 성욕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지?’ 싶었다. 그만 졸고 말았다. 조는 게 제일 고통스럽지 않은 방법이었다.




(출처 : 구글)



-john: 기독교 기반 학교라서 억지로 남녀를 엮는 일은 없었다. 술을 마실 때도 (술을) 마시지 않고 싶으면 부담 없이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여서 좋았는데, 섹시 댄스·애교 같은 술 게임 벌칙이 불편했다. 차라리 여자, 남자 모두 웃기게 혹은 모두 진지하게 하면 모르겠는데 남자 선배들이 할 때는 장난처럼 코믹하게 하고, 여자 선배들이 할 때는 진지하게 반응하니까 참기 어려웠다.

학교 분위기가 보수적이라서 축제 때 주점도 없고 다른 학교처럼 대놓고 여자를 대상화하고 희롱하는 건 드문 것 같다. (학교가) 젠더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런 게 아니라 기독교 기반이라 성적인 얘기 자체가 금지된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딱히 기분 좋지는 않다. 성적으로 자율적인 것 자체를 반대해서 퀴어, 여성학 동아리를 만들려고 하면 학교 자체에서 막을 것이다.

 

-dare: 우리 학교도 그런 분위기가 있다. 술 마시기 싫으면 마시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여자들에게만 과하게 많이 한다. 자기들은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여성들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애들이 꼭 양성평등한다.

 



연세대학교 제28대 총여학생회 'around'에서 제작한 성폭력사건 대응 매뉴얼

구체적인 고민이 엿보인다.

(출처 : https://www.facebook.com/ys.female.council/ )

 

 

-광개토: OT나 첫 MT에서 FM, AM, CM 등을 많이 시키지 않나? 이런 문화나 다른 성차별을 겪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청온: 여대라서 그런지 FM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시범을 보이고 선물을 줄 테니 도전해보라고 권유하는 식이었다.

 

-dare: 그런 것은 없었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처음 본 포스터가 RaIN(성공회대 퀴어 모임)의 회원을 모집한다는 포스터였고, 행사가 끝나고 숙소에 돌아오니 방마다 <페미들의 성교육> 책자가 뿌려져 있었다.

 

 


불꽃페미액션에서 진행한 페미들의 성교육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feministaction )

 

 

-dare: 과에서 주최한 새내기 배움터에서 처음에 선배가 후배에게 하면 안 될 행동을 상황극으로 배웠다. 5개 조로 나뉘어서 상황극을 보고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었다. 우리 조는 남자 선배가 여자 후배에게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어 1년 정도 되었다고 답하자 기분 나쁘게 웃는 내용의 상황극을 보았다. 굉장히 퀴어포빅하고 성희롱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에 후기를 말하는데 어떤 조에서 소위 말하는 젠더 이퀄리즘, 양성평등을 주장했다. 우리 과는 앞으로 양성평등을 지향하고 위계적 분위기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성별에 따른 인식차가 크다는 것을 느꼈다. 여성 조는 상황극 속 퀴어포빅한 점을 지적하고 다양한 문제들을 짚어냈지만, 남성 조는 퀴어포빅은커녕 말 그대로 양성평등을 주장했다.

 

 


페미위키의 '젠더 이퀄리즘 날조 사건' 항목

(출처 : https://femiwiki.com/w/%EC%A0%A0%EB%8D%94_%EC%9D%B4%ED%80%84%EB%A6%AC%EC%A6%98_%EB%82%A0%EC%A1%B0_%EC%82%AC%EA%B1%B4 )

 

 

Q.처음으로 수업을 고르고 대학 강의를 들어봤을 텐데, 직접 느낀 대학 강의의 젠더 감수성은 어느 정도인가? (강의 선택의 다양성, 강의계획서, 교수의 발언 등)

 

-청온: 수업시간에 여대의 단점을 물어보시더라. 한 학생이 (단점이) 없다고 말하니 계속 있다는 식으로 유도하는데 그 학생이 끝까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본인도 큰 단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님은) 남자가 없는 것이 단점이라는 식으로 답변을 유도했다. 남자는 여대 밖에서도 만날 수 있는 존재이며 단점을 결정짓는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dare: 젠더학이 3개가 열려 있었다. '젠더로 보는 문학', '젠더로 세상 보기', '여성·평화·생명'이었다. 강의 계획서를 보니 '젠더로 세상 보기'는 왜 지금까지 여성정치가나 여성 사관이 없었는지, 왜 사회적으로 그들을 압박했는지를 첫 수업부터 다루더라. '여성·평화·생명'은 지금까지 남자들에 의해 죽어 나간 여성들을 첫 수업에서 다루고 있었다.

나는 '젠더로 보는 문학'을 선택했는데, 교수님이 페미니스트가 아닌 거 같다. 그 교수님이 OT양성평등을 반대한다를 가지고 오셔서 기대감에 찼다. 그런데 수업 중에 하시는 말씀이, '나중에 싸움이 날수도 있는 주젠데 메갈리아에 대한 찬반을 논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메갈리아의 지향점과 그들의 방식에 찬반을 논하겠다고 말하더라. 이미 존재하는 그룹에 어떻게 찬성과 반대를 하고, 그들의 지향점에는 어떻게 반대를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교수님은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싶었던 것이라고 믿고 싶다.

 

 

실체가 없어도 너무너무 무서운 메갈리아.

이쯤 되면 죽은 메갈공명이 산 사마여혐러를 잡는다.

(출처 : 구글)

 

 

-dare: '말과 글'이라는 영어학과 필수 수업은 젠더로 보는 문학과 같은 교수님이 진행하신다. 이 교수님이 질문지를 나눠주셨다. 질문지를 기반으로 자기소개를 하라는 의도였다. 그런데 그 질문지 중에 '나는 이성 친구가 있다.'라는 워딩이 있었다. 젠더학을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이성 친구라는 워딩을 사용해도 되나? 애인의 대체어로 이성 친구를 쓴 것 같은데 너무 당황스러웠다. 처음에는 '남자 사람 친구', '여자 사람 친구' 이런 걸 말하는 거겠지 라고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친구들은 이미 '애인'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이성인 친구를 뜻하는) 의도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애인이라고 받아들이면 이미 실패한 게 아닌가. 나는 당연히 페미니스트겠지 싶어서 기대하고 들었는데 이성 친구를 논하고 있고 메갈에 찬반을 논하고 있고.

'Fun English'라는 수업도 있는데, 영어 교수님께서 여자 친구에게 말하는 게 'Do you have a boy friend?'이고, 남자 친구에게는 '- girl friend?'라고 물어봤다. 'ppt를 준비하는 건 여자들이 더 뛰어나서 여자 학생들에게 더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지금까지 보니까 남자들이 뛰어난 거 같다. 그런 면에서 남자 여자가 동등하게 경쟁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신다는 거다. 남자의 이성, 여자의 ppt 능력을 말하니 실망했고 답답했다. 지적하고 싶은데 지적도 못하고.

영어 발음 연습이라는 수업도 있는데 그 수업에서도 '보통 여자 친구들이 이런 건 더 많이 패스하죠. 여자에게 기대가 더 크다'라고 하시더라. '여자를 더 잘한다'라고 말하고 싶으셨던 거 같은데, 그것도 편견이지 않은가. 여자와 남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언제 젠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출처 : 구글)




-john: 우리 학교는 기독교 학교고 강의 다양성도 없다. 모든 강의와 강의 계획서를 봤는데 젠더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건 하나도 없다. 학교는 신학과가 엄청 크고, 실무 중심의 학과가 많다. 강의선택의 다양성은 전혀 없고 필수로 기독교 과목을 들어야 하는데, 완전 교회다.

아직 한 주밖에 안 됐고 OT 끝나고 오긴 했는데, 수업 만족도가 너무 낮다. 아직 입문이니까 기초적인 내용을 가르쳐준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공부가 아니라 실망했다. 일상적인 발화가 이분법적이고 헤테로 중심적인 것밖에 없다. 남자에게 주어진 잘생기고 멋진 특성, 여성에게 주어진 예쁘고 그런 특성을 강조한다. 과제를 해올 때도 '남자는 멋지게, 여자는 예쁘게 해오세요'라고 얘기한다. 시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다 비슷비슷한 시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남자애들이 윤동주 시인을 가져오면 '역시 남자라서' 그렇다고 하고, 여자가 꽃 이런 거 가져오면 '역시 여자라서 감성이.'이러더라. 이런 걸 하나하나 지적하기도 힘들어서 답답함만 매일매일 쌓여가고 대외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Q.대학 내에는 다양한 학생 모임들이 있다.(학생회, 소모임, 동아리, 자치 단체 등) 학생모임의 첫 인상은 어땠는가?

 

-광개토: 학생회, 소모임, 동아리, 자치 단체 등 다양한 학생 모임이 있을 텐데 혹시 가입한 모임이 있는가?

 

-청온: 두 모임에 가입했다. 하나는 S.F.A(숙명여대 여성학 중앙 동아리)인데 페미니즘에 대해 함께 의견을 공유하고 공부하는 동아리이다. 만족하고 있다. 다들 똑똑하셔서 나도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반성했다.

다른 하나는 신촌 연합 사회학회이다. 두 가지 세션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번 학기에는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한다. 오늘 면접을 보고 왔는데 거기는 여남 다 섞여 있고 지역도 다양해서 기대 중이다.

 

-dare: 내 첫인상은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해 처먹을 거 남자애들이 다 해 처먹는다는 것이었다. 정해진 규칙은 아니지만 모든 학생회, 동아리에서 회장 같은 중요한 자리는 남자가 차지하고 여자는 (부회장 같은) 보조 역할을 맡는다. 사실 이번에 과대를 하게 된 것도 (부과대로 지원했는데) 과대 지원자가 안 나와서 맡게 된 거다.

나중에 과대는 대부분 남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있는 곳만이라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대를 하면 후에 아 그때 여자 과대가 있었으니 여자가 (과대를) 해도 돼라는 말을 할 것이다. 선례를 남기고 분위기를 환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 구글)



-dare: 친구는 동아대 의대에 다니는데 그 학교는 무조건 장은 남자, 총무는 여자가 맡는다. 대범한 일은 남자가 잘할 수 있고 총무같이 꼼꼼한 일은 여자가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동아리도 장은 전부 남자가 맡아서 (여자 구성원들이 열심히 공연만하고) 마지막에 인사하며 박수 받는 건 전부 남자였다. 여자는 동아리의 부속품인가?

38일 여성의 날에 학교에 대자보가 붙었는데 누가 봐도 찢은 것 같은 자국이 있었다. 그 위에 다시 테이프를 붙였는데 나중에 또 뜯어졌다. 그걸 누가 에브리타임에 찍어서 올렸다. 학생들 중 몇몇은 바람이 너무 세서 찢어졌다고 우기기도 하고 대자보지 get it’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대자보가 맘에 안 들면 옆에 따로 대자보를 붙이지 왜 찢냐는 글이 올라오니까 누가 뗐다는 증거도 없는데 왜 보들보들?’이라는 댓글도 달렸다.

 

-광개토: 성공회대에서 38일 여성의 날에 행사를 했다고 들었는데 설명해줄 수 있나?

 

-dare: 전국 디바 협회, 펭귄 서포터즈등 여러 단체에서 모여 부스를 설치하고 (행사 취지를) 설명해주는 행사였다. 여자 학생들은 행사에 관심을 보이고 설명을 듣고 가곤 했는데 남학생들은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한 남학생이 페미니스트들은 인터넷에서 조용히 만나면 되지 굳이 밖에서 저러더라, 난 아무 생각 없었는데 저러니까 괜히 더 거부감 든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퀴어 페스티벌에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 (john: 너희도 집에서 여혐하면 되지 밖에서 왜 그러니?) (모두 웃음)

 

 

블리자드 사의 게임 오버워치의 한국인 여성 캐릭터 D.Va가 게임 내 미래의 한국에서 군인이자 게이머로 활동할 수 있도록 현재의 한국에서 성평등 운동을 하겠다는 취지로 움직이는 페미니스트 게이머 모임

(사이트 : https://national-dva-association.tumblr.com/post/156308195090/introduction-to-the-national-dva )

 

 


오버워치의 메인 디렉터 재프리 캐플런이 2017 DICE SUMIT에서 '전디협'을 직접 언급한 사건은

그동안 게임계에서 여성혐오에 목소리를 높혔던 페미니스트들 뿐 아니라 

한국에서 활동하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힘이 되었다.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재프리 캐플런이 '잘못' 알고 있다며 한탄하고 있지만.

(출처 : https://youtu.be/0zy_PObi5Jk )

 

 


펭귄프로젝트평등한 대학을 위한 3.30 펭귄들의 반란행사 포스터

펭귄프로젝트는 대학에서 겪을 수 있는 불편한 문화와 성폭력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과 대사의 제시를 통한 문제제기는 물론 이러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주체별, 상황별, 유형별 등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는 캠페인을 주도한다.

(페이스북 : https://m.facebook.com/pengminist/ )

 

 

 

-john: 한세대는 한숨뿐이다. 동아리 자체가 별로 없고 해외 선교 동아리 같은 기독교 관련 동아리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댄스 동아리, 흑인 음악 동아리 정도가 있는데 웃긴 게 랩은 다 남자가 하고 보컬은 여자가 하더라.

동아리에 대한 첫인상이 정말 안 좋았다. ‘방돌이라고 OT에서 동아리가 방마다 돌면서 동아리를 소개하고 세숫대야에 음료 및 술들을 마구잡이로 부어 정체 모를 음료를 만든 뒤 세숫대야에 가득 찬 술을 동아리 부원들끼리 돌아가며 마시는 문화가 있다. ‘방돌이를 직접 목격하고 내가 기안대에 왔나?’ 생각했다. 첫인상도 좋지 않았고 맘에 드는 동아리도 없었기 때문에 동아리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

다른 이야기지만 기숙사에 사는데 (룸메이트가) 다 선배다. 동아리를 만들 수는 없냐고 물었더니 동아리를 만든다고···? 몰라 그런 애는 지금까지 한 명도 못 봤어라고 하더라.

 

-광개토: 한세대 하면 반동성애 모임이 유명하다.

 

 

한세대 반동성애모임 트위터 계정

본 계정은 폭파되었으며 두 번째로 생성한 계정 역시 사람들의 신고로 삭제됐다.

(출처 : 구글)

 

 

-john: (합격하고) 트위터에 한세대를 검색했는데 그 모임이 상단에 떠서 충격 받았다. 사람들이 신고해서 계정이 없어졌는데 다시 만들었다. 이 계정 신고 좀 해달라고 홍보하고 다닌다. 직접 활동하는 건 못 봤지만 아마 본인들이 (반동성애 모임 활동 사실을) 밝힐 것 같다. 기본적으로 기독교에서 동성애를 배척하기 때문에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분위기이다. 페미니즘을 떠나 성적으로 자유로운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분위기이다. ‘호섹호스하지도 못한다. (섹스를 섹스라고 말하지도 못한다) 난 결혼 안 할 것이고 혼전순결 신경 안 쓴다고 하면 아웃사이더가 될지도 모른다.



Q.앞으로 4, 혹은 그보다 더 길어질 대학생활 중 대학생 페미니스트로서 꼭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가?

 

-청온: 나는 시위도 많이 참여하고 싶고, 외국인 학생들과도 페미니즘을 논하고 싶다. 우리 학교는 주변에 다른 학교가 없기 때문에 나만의 지도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있는 것도 행복하지만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더 나아가야 더 기억에 남을 것 같고, 공부도 더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한다.

 

-dare: 나는 개인적으로 여성학 소모임을 만들어서 동아리로 만든 후에 이 학교를 나가는 게 목표이다. 친구들은 대학에서 페미니스트임을 밝히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무시했다. 자기소개를 할 때 제일 처음 한 말이 '스물한 살 dare이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여성학에 관심이 많습니다.'였다. 그렇게 말하니까 나중에 몇몇 친구들이 나한테 찾아오더라. '언니 페미니스트야? 나도야. 나중에 그 책 읽고 재미있으면 나도 알려주면 안 돼?'라고 하더라. 다른 수업에서도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했는데 그 수업의 다른 친구도 페미니스트라고, 나도 아직 모른다고, 나중에 같이 연대했으면 좋겠다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페미니스트라고 말했을 뿐인데 주위에 연대할 사람이 자꾸 생겨나는 거다.

가끔 학교에서 페미니스트로서는 되게 외롭다고 느꼈는데 말한 뒤에 연대할 친구들이 생겨나니까, 지금 당장 논의하지 않아도 언젠가 논의할 친구가 생긴 게 되게 좋았다. 그런 기회를 다른 친구들에게도 열어주고 싶다. 페미니스트로 다녀도 외롭지 않고 연대할 사람이 있다는 걸 확고하게 애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소모임을 만들려고 두 명 정도를 포섭했다.




(출처 : 구글)

 


-john: 나도 소모임을 만들고 싶다. (여성주의 소모임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생각했는데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게 무섭다. 작년부터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면, 연대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게 아니라 "너는 원래 예민하니까."라고 했다. 그다음부터는 내가 맞는 말을 해도 너는 맞는 말을 하지만 예민한 사람이다.’, ‘너는 이런 쪽으로 많이 알고 있는 애니까 그렇게 생각하지만, 다수는 그렇지 않다.’라는 반응이 온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선입견이 날 공격한다. ‘너는 옳지만, 다수가 아니다. 너는 소수다.’ 이런 식으로. 과 단톡방을 봐도 페미니스트의 도 찾아볼 수 없고 또다른 선입견이 날 공격할까봐 (공개적으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지 못했다. 나는 (페미니즘 관련) 배지를 달고 다니니까 그걸 아는 사람들은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걸 알아보지 않을까?

지금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애들이 4명 정도 있는데, 할 수 있다면 그 친구들과 소모임을 하고 싶다. 그리고 외부 모임을 하고 싶다.

 


Q.후기

 

-dare: 영어학과니까 영어로 남기겠다. <Be bold for change> 이번 여성의 날에 구호처럼 쓰인 말이라고 한다. 변화에 대담해지라는 뜻이다. 우린 변화에 대담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비투비 여혐 공론화 파이팅! 비투비 사과해라. (john: 한남을 사랑한 페미니스트다)

 

-청온: 나도 팬질로 마무리를 하자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도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john: 이런 지성체에 속해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기쁘다. 대학 와서 이런 일을 하고 싶었다. 페미니스트들이 살아있는 걸 보면 너무 기쁘다. 3D로 여러분을 보는 게 행복하다. 계셔주셔서, 연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방탄소년단 여혐 그만 해라.


우남빻덕에게-이 목소리가 너에게 닿기를!

By.광개토女


 


빻았다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물론 여기서 말할 빻았다가 사전적 의미의 물기가 없는 것을 짓찧어서 가루로 만들다는 아니라는 걸, 꼭 헤비 인터넷 유저가 아니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외모를 비하하는 의미의 은어로 빻았다를 사용하고 있다.

빻았다가 인터넷 대중들 사이에 확산된 건 프로듀스 101가 방영된 이후다. 일부 사이트에서 출연진이자 프로듀스 101의 센터 멤버였던 최유정의 외모를 보고 빻유정이라는 별명으로 부른 것이 확산되어 일종의 밈이 되었고, 이후 여자 아이돌들의 이름이나 그룹명 앞에 외모를 조롱하는 의미의 을 붙이는 데 서슴없어졌다. 현재도 포털 사이트에 빻았다라는 동사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여자 아이돌의 이름이나 그룹명이 따라 붙는다.

걸그룹에 대한 공개적인 외모 조롱은 최근 있었던 걸그룹 우주소녀의 남자팬들, 소위 말하는 우남빻덕의 무례한 행동에서 정점을 찍었다. 스타쉽의 13인조 걸그룹 우주소녀는 지난 14일 세 번째 미니 앨범인 From. 우주소녀를 발표하고 타이틀 곡 너에게 닿기를로 활동했다. 몽환적인 이미지와 색감의 향연인 뮤비와 발랄한 멜로디의 타이틀 곡은 대중들에게 여러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219일에 있었던 대구 팬사인회에서 멤버 은서가 눈물을 터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사인을 받던 남자 팬이 외모를 비하할 목적으로 ‘(너와 닮은) 축구선수 즐라탄을 아냐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16년 8월 부산에서 있었던 우주소녀의 팬사인회 영상.

한 남성 팬이 멤버 은서에게 '즐라탄'을 아냐고 묻고 있다.

(출처 : https://youtu.be/O_r3ANMhmoY )




 

이는 우발적으로 행해진 장난이 아니었다. 28일에 업로드 된 이 영상에는 168월 부산에서 진행된 팬사인회에서 한 남성 팬이 축구선수 즐라탄을 아냐고 묻고, 은서가 누구냐고 되묻는 끝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담겨있다. 질문을 하자마자 행사장 곳곳에서 터지는 남자 팬들의 웃음소리는 팬덤 내에서 은서가 오랫동안 외모를 비하당해 왔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우주소녀 팬덤은 놀랍게도 두 의견으로 갈라졌다. 팬들을 만나는 장소인 팬사인회에서 운 은서가 프로답지 못하다는 비판이 인 것이다. ‘일부팬들은 본인들이 누리던 여성의 외모를 조롱하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한 채 은서가 예민하다’, ‘장난을 받아줄 줄 모른다등 엇나간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급기야는 그날인가보다라는, 여성의 의견을 묵살하기 위해 곧잘 사용되는 혐오성 짙은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우주소녀의 일부팬들의 발언을 지켜보던 다른 아이돌 팬들과 우주소녀 팬들은 이들에게 우주소녀 남자 팬들 빻았다라는 의미로 우남빻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걸그룹의 외모를 비하하기 위해 사용되던 빻았다가 남자 팬들의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짧은 생각, 가꾸지 않는 외관을 비하하기 위해 역으로 사용된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16년 3월 26일 대구 동성로 게릴라 콘서트에서

'심쿵빻파워'를 해달라는 팬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최유정의 모습.

연예인이라고 해서 외모비하적인 농담을 웃으며 받아주고 수용해야할까?

(출처 : https://youtu.be/fSKflH0m350 )


 



-’은 남자 아이돌의 이름 앞에는 붙지 않는다. 남자 아이돌 팬덤 대부분을 형성하는 여성 팬들은 빻았다라는 말이 외모를 조롱하는 의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난으로라도 외모를 조롱하는 일이 바람직하지 못하단 합의가 팬덤 내에 자리 잡고 있다. 남자 아이돌을 향한 빻았다는 음성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팬덤은 누군가 남자 아이돌에게 빻았다고 발언하면 교정을 넘어서 사이버 불링에 해당하는 린치를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여자 아이돌과 은 친하다. 앞서 언급한 최유정은 오프라인 행사에서 직접적으로 팬에게 빻았다에서 파생된 심쿵빻파워를 보여달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는 당시 최유정의 팬덤이 빻유정에 대항하려 선택한 방식이 빻음을 인정하고 귀여움이라는 의미로 단어를 희석시키는 정도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유정이 이후 본인의 외모에 낮은 자신감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장난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팬들은 계속 존재한다.







나무위키 '최유정' 항목 외모 파트

여전히 '못생겼다'는 외모비하가 장난이라고 주장한다.

(출처 : https://namu.wiki/w/%EC%B5%9C%EC%9C%A0%EC%A0%95 )

 





여자 아이돌이란 직접적으로 외모를 지적하고 네가 귀여워서 그런다고 얼버무릴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마치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를 괴롭히면 너를 좋아해서그러는 것이라고 여자아이를 되려 가르치려 드는 행태와 유사하다. 이런 젠더에 따른 차별을 인지한 몇몇 팬들은 운동적 차원에서 남자 아이돌을 향해 일부러 빻았다는 단어를 쓰길 고집하기도 한다.

아이돌 그룹과 팬 사이에는 항상 엎치락뒤치락하는 미묘한 권력구도가 존재한다. 팬들은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곤 하면서, 동시에 아이돌에게 무섭게 상품일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성 비율이 높은 팬덤을 가진 걸그룹과 팬덤 사이에서는 오직 팬덤이 우위인 구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프로듀스 101출연 당시 김세정의 남자 팬이 세정의 서포트 돈을 모금 받으면서 아이패드는 사주지 말자, 버릇이 나빠진다라고 발언했던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그가 진행한 서포트 물품 가격이 입금됐을 거라 예상하는 금액에 한참 못 미치자 서포트에 참여 했던 사람들이 해명을 요구했고, 일부 물품과 비용을 서포트 진행자가 횡령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이후 사과문에 나이도 자신과 비슷한 세정에게 많은 돈이 서포트 비용으로 입금 되는 것이 배가 아팠다고 전했다








당시 DC 김세정 갤러리에 올라왔던 글들

(위) 서포트 총대 (아래) 서포트 참여자이자 김세정의 팬




당시 모든 팬들을 분노케했던 총 350만원 어치의 서포트 물품 사진

(출처 : 구글 )





남자 아이돌 팬덤이 서로 어떤 비싸고 귀한 물건을 선물하는 지 경쟁하는 것과 달리, 여자 아이돌 팬덤은 아이돌의 필요와 기쁨보다 팬인 자신이 잘난 여성을 해체하는 기쁨을 더 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판매자와 소비자의 구도보다 젠더권력이 더 강력하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남성젠더에 더불어 소비자 권력까지 얻은 남성 팬들은 걸그룹에게 팬사인회나 공개방송 등에서 네가 나에게 잘 해주지 않으면 팬을 그만 두겠다는 협박을 수시로 가하고, 언어폭력이나 다름없는 모욕적 언사를 하고도 자신을 향해 웃어주길 요구한다. 자신이 가한 폭력은 그저 장난으로 얼버무리고 피해자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책임의 화살을 돌린다.

이런 젠더 폭력적 만족감을 구하는 남성의 모습은 아내를 폭행하는 남편의 모습과 유사하다. 경제력을 끊어버리겠다는 협박으로 아내를 구속하고, 아내에게서 성적 만족감을 얻는 동시에 폭력이 주는 우월감을 얻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자 아이돌은 자신의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재능을 판매하고 있을 뿐인데, 가정폭력과 유사한 폭력에 실제로 노출되고 있다.


 


걸그룹을 좋아하는 여성 팬들과 멤버들 사이에는 독특한 유대관계가 있다. 이 유대관계는 여덕(여자 팬)이 더 늘어야 한다는 소망에서 기인한다. 걸그룹 여성 팬들은 팬질을 위해 남성 팬들에게 번호를 달라거나 함께 식사를 하자는 추근거림부터 성희롱과 폭력을 감수하기도 한다. 많은 걸그룹 여성 팬들이 남성 팬들의 폭력에 질려 탈덕하기도 한다. 각종 행사에서 신체 및 외모비하, 행동교정, 조롱을 당하는 걸그룹 멤버들을 생각해보면 멤버들과 여성 팬 사이의 유대관계는 당연함을 넘어서 필수적인 여성연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남자들은 아이돌 팬질을 할 기쁨조차 누릴 수 없다는 말이냐!’는 볼멘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우남빻덕이 도래한 지금, 남성 팬들은 본인의 덕질 원동력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기쁨에서 오는지, ‘어리고 예쁜 여성을 비하하는 즐거움에서 오는지 돌이켜 볼 때이다. 물론, ‘일부빻은 남성 팬들에 한해서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세일러문 크리스탈과 오마이걸입니다.

 

생태주의와 탈식민주의 협주곡 제1번 페미조

(Ecologism and Postcolonialism Concerto No.1 in Feminism)

최존

 

  

  내가 채식주의를 행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페미니스트를 바라보는 뭇 사람들의 시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괴짜다.

유난이네.

누가 알아준다고 힘들게 그래.

너 하나 그런다고 세상이 얼마나 바뀔 거 같아?

 

  누군가가 채식주의자든 페미니스트든 가장 힘든 건 주변 사람들의 냉소가 아닐까 싶다.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괴롭거나 힘든 일만도 아니다. 오히려 그 신념을 거스르는 게 더 힘든 법이다.

  너무나도 쉽게, 이미지만을 소비하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내가 먹고 있는 음식 하나에 얼마나 많은 코드가 담겨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내 눈 앞에 놓인 음식은 그저 내 배를 채우고 만족감을 선사하는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 숨겨진 수많은 의미들을 읽는 순간, 아무 생각 없이 삼키던 걸 잠시 멈춘 채, 생각하게 된다. 내가 무엇인가를 먹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더 이상 아무렇지 않게 삼킬 수는 없게 된다.

  지금은 채식을 하고 있지는 않다. 바깥에 있는 시간이 길거나, 일정 상 시간이 없으면 아무래도 채식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문제의식을 저버렸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의식을 갖고 계속 실천하려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다시 채식을 시도할 예정이다.

 

  페미니즘 내에서도 비주류인 생태주의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성주의와 관련된 논문들을 섭렵하던 중, ‘여성주의와 채식주의라는 논문을 읽게 된 것이 계기였다. 기존의 생태여성주의의 한계점을 비판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채식주의적 생태여성주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논조의 글이었다. 시야가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페미니즘이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하는 학문이라면 생태주의 페미니즘은 그 사고의 확장판 같았다. 미소지니스트(Misogynist)들이 남성중심주의를 바탕으로 우월하고 강한 남성열등하고 약한 여성으로 인간을 구분해왔다면, 종차별주의자들은 인간중심주의를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을 대립된 것으로 바라본다. 그들에게 자연은 인간에게 종속된, 개발의 대상일 뿐이다. 가부장제의 억압을 철폐하자고 외치면서 그 외의 억압은 도외시하는 것은 일종의 위선이 아닌가 싶었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탈식민주의는 서구-문명-남성적VS()서구-야만-여성적과 같은 근대의 이분법적 사고를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나 같은 경우는 개인적인 경험이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토대로 크게 작용했다.

  대학교 1-2학년 때 외국인 유학생을 도우는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아시아 출신의 여성들이었다. 어쩌다보니 터키에서 온 유학생과 매우 절친한 사이가 되어 그 친구의 친구들과도 같이 어울리고, 방학 동안 터키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은 내가 알게 모르게 갖고 있던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마주하고 깨트리는 데 아주 크게 작용했다. 이전까지 나는 무슬림 여성들을 수동적이고 억압받는 피해자라고만 생각해왔다. 물론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이 행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을 아무런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기만 하는 존재로 파악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일례로 내 친구의 가족과 그 친척들의 모습을 보자면, 집에 손님이 왔을 경우, 남자는 남자들끼리 여자는 여자들끼리 모여 밥을 먹는다. 얼핏 들으면 식사자리에서도 차별과 억압이 행해지는구나 싶겠지만 실제 모습은 그렇지 않다. 남자들은 좁은 방에서 식사만 하는 반면, 여자들은 넓은 방에서 요란스럽게 식사시간을 즐기고는 했다. 손님이나 친구를 초대하여 흥을 나누는 것도 주로 여자들이다. 또한 난 그전까지 무슬림 여성들이 담배 피는 걸 상상도 못했는데, 다들 담배도 거리낌 없이 피우고, 신나게 엉덩이춤도 추고, -오신하지 못하게 서로 발길질을 하며 노는 것이 아닌가. 생각지도 못한 풍경을 보며 내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물론, 터키가 세속국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이슬람국가에 비해 자유로운 면이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무슬림 여성들에게서 수동적이고 억압받는 피해자의 이미지만을 투영하는 것은 지나치게 서구중심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게 아닌가 싶다.

 

(▲ “Your Body is a Battleground”,1989, ©Barbara Kruger/The Broad)

   

  탈식민주의는 어떤 지역 간, 국가 간의 역학관계에서만 해당하는 개념이 아니다. ‘Your Body is a Battleground(여성의 몸은 전쟁터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1980년대에 임신중절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외치며 나온 구호이다. 탈식민주의의 관점에서도 이 말에 대한 유의미한 해석이 이루어질 수 있다. 식민주의 담론 중 하나가 자연’, ‘순수로 대표되는 피식민지 지역을 근대화된 서구의 손길로 정복하고 문명화하는 것이 계몽이라는 것이다. 여성의 몸을 남성, 그리고 남성중심주의의 사회가 식민화하는 것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역시 탈식민주의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분야가 타투(Tattoo). 나는 타투에서 몸의 정치학에 해당하는 내용을 읽을 수 있다고 본다. 사회가 만든 아름다움을 위해 여성이 성형수술을 하고 다이어트를 하는 신체변형은 자연스러운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그러한 미의 기준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몸에 그림을 그린다든가 피어싱을 하는 등의 신체변형(Body Modification)’추한 것’, ‘올바르지 못한 것으로 낙인찍힌다. 이러한 편견과 낙인은 특히 여성에게 더욱 엄격하게 작용한다. 때문에 여성주의의 시각에서 타투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내가 요새 구상하고 있는 타투 디자인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에 메두사의 얼굴을 합친 것이다. 모두가 숭상하는 미의 상징인 비너스에 쳐다보기만 해도 온 몸이 돌로 굳는 추한 메두사의 얼굴의 조합이라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이 글은 이슬(YouTube ‘페민이스트계정 운영자)’님의 사연을 바탕으로 구성됐습니다.

이야기를 공유해주신 이슬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연말연시 한국의 페미니즘, 기록하고 기념하라

페미타쿠

 

3년간 한국은 페미니즘 이슈로 시끄러웠다. 페미니즘이 싫어 IS로 가고 싶다는 김군이 등장했고, 메갈리아가 탄생했으며, 강남역 10번출구 사건을 구심점으로 많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최근에 박근혜 탄핵을 위해 사람들이 모인 시위에서 페미니스트들이 페미존을 만든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들의 관심과 맞물려 페미니즘 도서도 쏟아져 나왔다. 사실 이전에도 여성주의 이슈는 많았지만, 이번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페미니즘 도서가 출간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사건을 가시화하고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사건을 제대로 기록하고, 이 화력을 계속 가지고 가려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이번에 나온 단행본들의 수가 그러한 관심의 정도를 말해준다.

  연말이니 한 해를 정리하는 느낌으로 좋은 페미니즘 도서들을 뽑아보았다. 특히 이론서뿐만 아니라, 20대 페미니스트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책이 출간된 것이 특징이다. 이번호에서는 페미니즘 뽕을 맞아 유행하고 있는 책들을 리뷰해 보겠다.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표지, ©알라딘)

 

여성에게도 역사가 존재한다,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역사적 상상력을 가지고 접근하라. 여성에게도 계보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의 저자가 펴낸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는 지금 어느 때보다 필요한 말을 우리에게 전한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나와 비슷한 나이의 페미니스트들이 겪는 고민을 잘 이야기하면서도, 한 발 앞서나갔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나는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2015년과 2016년은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 논의가 활발했다고 썼다가는 지웠다. 1990년대 한창 페미니즘이 흥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으니, 그저 언제나 지금이 전성기처럼 보이는 착시 탓은 아닌가 생각한 때문이다.(9) 


 

  우리는 여성에 대한 기록이 있어도 알지 못 한다. 여성의 기록은 금세 지워지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분류되어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매우 공감하고 있었던 나는 본문을 읽는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페미니즘 책을 많이 읽어보았다고 생각했는데, 독립운동을 한 여성은 누구인지, 여성이 발명한 것은 무엇인지, 여성들이 나서서 해결한 사건이 얼마나 많은지, 언제였는지 묻는 연습문제에 하나도 대답하지 못 했다. 부끄러웠다. 앞으로 어떤 지식을 발굴하고 기억해야 하는지 동기부여를 주었다.

 

 


오늘날까지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면? 어떤 억압도 깨어지지 않은 가운데 맞이했을 당신의 오늘을 상상하여 써보자.(58)


 

  이 책은 페미니즘 문제를 가지고 참신하고 재미있게 독자에게 다가가면서 보다 실질적인 정보들을 전달한다. 그리고 상상하는 문제는 우리에게 페미니즘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것이며 더 나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한다.

 

 

 


여성의 성취가 운 좋게 기록으로 남는 데까지 성공했다 해도, 그 기록은 빛이 들지 않는 구석자리, 혹은 책장 맨 위칸처럼 손 닿기 어려운 데 놓인다.(88)

그런데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된다. 기록이 있는데 왜 진작 알아보고자 하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은 넣어두고, 앞선 여성의 성취가 놓여야 할 마땅한 자리를 요구해야 한다. (90)


 

  기록물은 기록하고 끝나지 않아야 한다. 잊히지 않고 전해지려면 과거의 성취를 잊지 않고 끊임없이 기념해야 한다. 저자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여성의 삶을 대하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계보는 기록과 기념으로 남는다.

 

 

 

(▲'페미니즘 선언' 표지, ©알라딘)

 

급진주의 페미니즘 정신의 흐름, <페미니즘 선언>

 

1210일에 첫 쇄를 찍어 서문에서 한국의 낙태시위가 기록되어있다. 이 따끈따끈한 책을 바로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었다! 꽤 감흥이 크다, 누군가가 바로 신청해두었다는 이야기인데,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이 책은 선언문만 모여 있는 독특한 책이다. 앞에 30페이지가량에는 미국에서 성폭력, 낙태, 시민권, 퀴어 운동의 사진이 실려 있고 그 다음부터 유명한 선언문들을 확인할 수 있다. 선언문만 담겨있어 별 내용 없을 것 같다고 느낄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페미니스트들의 생생한 경험에 기반한 호소력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독자에게 선언문을 직접 듣는 것처럼 감동을 주며 유머와 풍자도 가미되어 읽는 것이 즐겁다.

  이번 전국민시위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선언문을 쓰고 독자적인 구호를 외쳤듯, 미국 역사에서도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선언문을 쓰고 절박하게 구호를 외쳤다. 이 페미니즘 운동의 기록은 비단 한국에서만 운동하고 있는(었던) 게 아니라, 우리는 모두 운동하고 있으며 모두 연결되어있다는 말을 실감케한다레드 스타킹의 선언문에서 낙태 공개발언은 한국의 검은 시위를 떠오르게 한다. 1969년 뉴욕에서는 당시 저명한 여성학자들과 많은 여성들이 낙태 경험이 있다고 입을 모았고, 낙태 불법에 항의했다.

 

 


드센 소녀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이 남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점차 깨닫는다. 직장에 다닐 때나 어떤 단체에 속했을 때나 드센 년은 조용히 앉아 지시받은 일을 처리하는 데 만족하지 못한다. 드센 년은 자기만의 사고방식을 지녔고, 그걸 쓰길 원한다. 자신이 더 높이 올라가기를, 창조적이기를, 책임을 맡길 원한다. 그녀는 자기가 가진 능력을 잘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또 활용하기를 원한다는 것도 안다. 물론 그것은 그녀의 남자 상사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드센 년에게 남자 상사의 기쁨조 되기는 안중에도 없는 문제다.(62)


 

  드센 년 선언문은 당신이 페미니스트라면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드센 년 묘사는 웃기면서도 슬프다. 삶의 주체, 진취성, 능력, 남자였다면 모두 긍정적일 속성들이다. 이것들을 여성이어서 가지지 못 하는 '드센 년'들은 바로 우리, 페미니스트들이다.

 

 


레즈비언이란 무엇인가? 레즈비언은 모든 여성이 폭발 직전까지 응축해놓은 분노다. -<레즈비언 페미니즘 선언문>(113쪽)

 

나는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 무슨 혁명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들은 반동분자-기득권-이익-권력의 체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로빈 모건, <자매애는 강하다(sisterhood is powerful)>의 서문(166쪽)

 

요컨대 아버지들은 남성성으로 세상을 부패시켜왔다. 남자는 부정적인 미다스의 손을 가졌다. 뭐든지 그가 만지기만 하면 전부 똥으로 변한다. -밸러리 솔래너스, <남성거세결사단 선언문>(185쪽)

 

수동적이고, 적응을 잘하며, 남자들을 향한 존경심과 경외심이 넘치는 아빠딸은 자신과 만난 남자가 역겹고 무딘 주절거림을 계속하게 둔다. 이는 그녀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밸러리 솔래너스, <남성거세결사단 선언문>(198쪽)


 

  공감되는 문장들이 많아 몇 문장을 인용해보았다. 수록된 선언문 중 남성 기득권에 대한 풍자를 하지 않은 선언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밸러리 솔래너스의 남성거세결사단 선언문은 강한 풍자와 유머를 가지고 남성들을 희화화하며 통쾌함을 준다. 메갈리아에서 했던 미러링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머감각이 어떤 웃음을 가져오는지, 어떤 비판적 원동력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보고 많은 사람들이 웃고 해소했으면 한다. 

 

 

 

마치며

위 두 권은 가장 최근에 나온 책으로 지금 읽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면 당장 읽어보라고 재촉하고 싶다.

  두 권 만을 소개해서 아쉽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에게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근래에 얼마나 많은 책이 나왔는지 훑어보는 것을 권한다. 도서관에서 페미니즘을 치면 검색어에 걸리는 단행본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어 기쁘다책과 기록물들이 나온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내년에는 페미니즘 책을 찾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늘어났으면 한다

  연말을 뜨겁게 만드는 책! 페미니즘 도서와 한 해를 마무리해보자.

 

 

-참고도서-

이민경,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봄알람, 2016

한우리, 페미니즘 선언, 현실문화, 2016

내 삶을 짓누르는 살

암탉

 

    내가 요즈음 취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스트레스받는 것은 자소서도, 면접도 아닌 외모 꾸미기이다. 사회에서 말하는 취준생의 틀에 내 모습을 맞추면서 개성이 지워지는 것 같아 씁쓸했다. 또 한편으로는 사회적 기준에 내 모습을 맞추는 것이 처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릴 적 다 컸네! 미스코리아 나가도 되겠다.’는 동네 어른들의 인사말부터 넌 여자애가 맨날 후드티만 입고 다니냐? 좀 꾸미고 다녀라는 남자 선배의 말까지, 의식하지 못했을 뿐 내 몸을 둘러싼 사회적 담화는 끊이지 않고 있었다. 나를 졸졸 쫓아다니는 외모 이야기가 지겨워졌다. 거울을 통해 바라본 내 몸이 정말 몸인지 의문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내 몸을 되찾고, 내 주위를 맴도는 진정한 여성의 몸이라는 망령을 떨쳐내고 싶다. 그래서 떠들기로 했다. ‘진정한 여성의 몸이 아닌 내가, ‘여성의 몸에 대해. 5호부터 함께할 새 코너 <내 몸 탈환기>에서는 여성의 몸, 즉 외모를 둘러싼 사회적 시선에 대해 20대 여자 대학생의 시선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대학교 가려면 살 빼야 돼!”

 

    고3이 되고 본격적인 입시 준비에 돌입했다.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공부만 하다 보니 살이 찌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눈에 띄게 통통해진 내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참기 힘들다는 듯 (그들의 말에 따르면)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여자애가 왜 이렇게 살이 쪘니! 그래도 고3이니까 괜찮아 대학 가서 살 빼면 되지~”

 

    나는 졸지에 고3이라는 신분을 빌어 내 몸의 살찜을 허락받은 꼴이 됐다. 내 몸의 상태조차 누군가에게 허락받아야 하는 사회, 그곳이 내가 살고 있는 사회였다. 그들은 어떠한 기준을 정해 놓고 날 그 기준에서 벗어난 반항아 취급했다. 3이라는 신분을 빌어 살찜이라는 일탈을 허락해줄 테니, 언젠가는 끝내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갑자기 찐 살을 두고 마치 시한폭탄이라도 떠안게 된 것처럼 빨리 떨쳐내라고 구는 것이 싫었다.

 

    대학에 합격하고 고3이라는 살찜 면죄부를 박탈당하면서 합격 축하한다는 말보다 대학교에 가려면 살 빼야 한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합격 발표가 나고도 다이어트하지 않는 나에게 엄마는 답답하다. (네 몸) 더는 못 봐주겠다.”고 했다. 마치 내가 마름을 빚지기라도 한 것처럼 구는 엄마 때문에 심란했다. 내 몸은 봐주지 못할 잘못된 몸인가?

 

빼앗긴 몸에도 봄은 오는가

 

    대학교 1학년 때 들어간 동아리는 Body shaming의 장이었다. 엄마의 닦달에 못 이겨 어느 정도 체중 감량을 하긴 했지만, 동아리 친구들 사이에 서보면 내 다리는 꽤 통통한 편이었다. 이런 내 다리를 두고 왜 치마를 입냐?’, ‘상체만 보면 괜찮은데 하체를 보면···.’ 하는 식의 발언들이 오고 갔다. 초면에 묻지도 않은 다이어트 방법을 알려주는 이도 있었다. 지금 같았으면 당신은 내 몸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리가 없다고 쏘아붙였겠지만, 당시에는 이런 발언에 이의를 제기하면 동아리의 분위기를 망치게 될까 무서웠다.


    여성의 몸은 주인 없는 땅처럼 많은 이들로부터 침범당한다.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기에 간섭당해도 되는 몸이다. 특히 여성 비만인은 마름의 기준아름다운 여성의 기준에서 모두 벗어난 완전한 이방인이다. 그들의 몸은 사회적으로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여 체제를 어지럽힌다. 이렇게 비체화된 몸은 손쉽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 사회는 기준에서 벗어난 여성들의 몸을 이질적이라고 판단하여 기준 안에 짜 맞추기 위해 지적을 아끼지 않는다. 나아가서는 충격요법이랍시고 비난을 일삼기도 한다. 여성들의 몸은 사회적으로 빼앗겼다. 말 그대로 전쟁터와 다름없다.

 

* 비체(abject)란 대상(object)~이 아닌을 뜻하는 접두사 ‘a-’를 붙여 만든 단어로 주체(subject)도 객체(object)도 아닌, 경계를 넘나들며 정체성, 질서, 체계를 어지럽히는 것들을 말한다.[각주:1]

 

비혐(비만 혐오) 사회에서 살아남기

 

    광고 수업 시간이었다. 교재 한 귀퉁이에 실린 조그만 예시가 눈에 띄었다. ‘내 몸매 완전 착해라는 카피의 핸드폰 광고였다. 이미 관용어로 자리 잡은 착한 몸매라는 말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몸의 생김새를 옳고 그름, 착하고 나쁨으로 나눌 수 있는 걸까?

 

    우리 사회에서 몸무게는 이미 윤리의 범위 안에 속해 있다.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먹으면 죄책감을 느껴야 하고 야식 섭취는 양심 없는행동이다. ‘회개리카노라는 단어를 아는가? 잘못을 뉘우친다는 뜻의 회개와 아메리카노의 합성어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그동안 섭취했던 칼로리가 0으로 초기화된다는 농담에서 파생된 신조어이다. 고칼로리의 음식을 먹고 지방분해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회개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살찜을 죄악시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살찜에 대한 비판적 정당성을 제공하고 나아가 외모지상주의를 더욱 공고히 한다. 살찜은 죄악이고 양심 없는짓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의 연장선에 비만 여성을 괴롭히며 즐거워하는 풍토가 있다. TV를 켜면 내 또래의 비만 여성을 찾아볼 수 없다. 있다고 해도 자신의 몸이나 식습관을 희화하여 개그 코드로 소모하는 코미디언뿐이다. 그들이 비만 여성이기 때문에 소외되고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소름 끼친다. 장군 어깨, 드럼통 허리, 무다리 등등 여성의 신체를 파편화해 비하하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쓰이고, 여성의 신체에 대한 비난을 하나의 웃음거리로 소비하는 것이 당연한 나라이다. ‘뚱뚱한 여자그 자체이므로 그들을 혐오하고 괴롭히는 데에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한 사람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비만 여성을 괴롭히고 비하하며 시청자들의 웃음을 이끌어 내는 풍조는 현실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비만 혐오도 우아하게 할 수 있다. ‘자기관리라는 마법의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관리의 미명 아래 누구나 우아하게 비만인을 혐오할 수 있다. 자격지심 따위의 말을 붙여 상대방을 간단하게 프로 예민러취급하거나, ‘널 생각해서 말해주는 건데~’로 운을 띄움으로써 상대방의 입을 원천 봉쇄해버리면 된다. 여기서 널 생각해서 말해주는 건데~’내가 지금부터 너의 몸을 평가하고 참견할 건데 널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포장해놓았으니 내가 네 몸을 비난해도 욕하지 마라고 봐도 무방하다.

 

    자기관리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 기준에 옳고 그름이란 없다. 또한 자기관리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그 잣대를 들이댈 권리도 없다. 사실 타인의 몸매를 지적하는 이들이 정말 자기관리 때문에 타인의 몸매를 지적하는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여성이 열등해서 2등 시민이 됐다는 것처럼 자신의 근본 없는 비하 발언에 타당성을 부여해 줄 가장 적합한 말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재생산될 뿐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경제와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여성을 착취하고 미의 신화라는 감옥 안에 가두어버린다.


    살은 그냥 살이고 몸은 그냥 몸이다. 어떠한 죄악이나 잘못도 아니고 옳고 그름의 개념도 없으며 그 사람의 행복함이나 게으름을 보여주는 정확한 지표가 되지 못한다. 설사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누군가의 외모를 평가하고 비하하는 행동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 줄 수 없다.

 

    남들의 기준에 내가 나쁜몸매일지라도 난 착한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으며 사랑받을 수도 있다. 나에겐 모든 사람들이 착하다고 칭하는 몸매를 갖고 사회적 아름다움을 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 사회가 나의 몸을 잘못됐다고 결정하고 부끄러워하길 강요할지라도 난 내 몸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가치중립적인 내 몸에 부정적인 가치를 덮어씌우는 것은 사회이다. 잘못된 것은 무엇인가?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제 우리가 사회에 되물어볼 차례이다



필자 소개 

여태껏 내 손으로 덕질한 것 중에 페미니즘만큼 재밌는 게 있었나? 페미니즘에 강하게 치인 새내기 페미입니다.

  1.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 이현재, 2016 [본문으로]


출처 : 뉴시스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821_0014338235&cID=10201&pID=10200)



지난 728, 이화여대 학생들은 미래라이프 대학 신설을 반대하며 총장실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대학이라면 돈을 주고 학위를 사고팔아선 안 된다는 것이 이화여대 학생들의 주장이었다. 결국 83, 총장 측은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을 철회했고 11월에는 총장 자리에서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화여대에 재학 중이던 정유라의 학점 특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비선실세 최순실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숨겨진 마지막 퍼즐을 찾은 것처럼 박근혜 정권의 석연찮음은 최순실과 8선녀, 그리고 재벌들의 등장으로 서서히 맞춰지기 시작했다.

 분노에 찬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혔다. 그러나 시위의 양상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고 외치는 이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페미존을 만들어 여성혐오를 비롯한 약자 혐오 발언을 막고, 집회 주최자들에게 혐오 방지 매뉴얼 사용을 권고했다. 시위는 과거 성추행과 각종 혐오발언으로 물들었던 모습에서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모습으로 변하면서 마침내 100만 명이란 사람들을 광장으로 이끌어 낸다.

 그리고 129일 금요일. 42일 간의 퇴진 시위 끝에 국회에서는 234표의 압도적인 찬성표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탄핵안을 발의하고 가결시키기까지의 과정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당대표의 행보는 특히 눈에 띄었다. 탄핵안이 헌재로 넘어간 지금도 많은 여성 의원들이 각자의 정치 필드 내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던데, 현대 대한민국은 나라를 망치는 빌런도 여자, 나라를 구하는 영웅도 여자다.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더없이 와 닿는 요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정치권에서 활발히 움직이는 페미니스트 여자 대학생들을 회담에 모셨다. 정치권의 여성혐오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의 성정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출처 : 페미당당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femidangdang/)

 

5차 여대회담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 정치권 내 여성혐오

회담 진행 : 광개토





 

Q.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지안: 페미당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울대 노어노문 전공 학생이다.

-소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학생이다. 녹색당 당원 활동하고 있다.

-은지: 가톨릭대 국사학과 수료생이다. 학교 교지를 만들고 과 학생회 생활을 했다. 에코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고 있다.

-현수: 서울권 대학 경영대에서 학생회를 했었고 지금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이는 연합동아리 평화나비에서 활동 중이다.

 


Q.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사회 곳곳에서 여성혐오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회담자들이 보고 느낀 여성혐오를 나눠보자. (친구, 부모님, 몸담고 있는 단체, 퇴진 집회 등)

 

-소라: 자유발언대에 나와서 발언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때 재밌었다. 4-50대 남성인 사람이 올라가자마자 미쓰박!!!!’이라 외치자 앞의 사람들이 환호했다. 녹색당 사람들 얼굴은 싹 굳어가고 있었다. 그 남성은 미쓰박이라고 해도 싸!’라며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인상 깊었던 건, 자유발언을 진행하던 사회자가 방금 말했던 미쓰박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한 표현이었으며 자유발언대에서 모든 혐오적 발언을 지양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것이었다.


-은지: 처음에 집회 갔을 때 김제동이 이런 발언을 했다. 본인이 꿈꾸는 미래는 결혼해서 아들딸을 낳는 것인데, 아들이라면 독립시키고 딸이라면 내가 계속 지원하고 끼고 살겠다고. 미안하다는 이유였다. 딸이 자기를 닮으면 외모가 좋지 않을 거란 (자기 비하적) 유머를 하려고 했던 거다. 그게 다른 사람들이 웃고 즐기는 멘트가 된 게 불쾌했다.

또 본부의 자유발언대 말고 조그만 트럭의 자유발언대에서 우리 또래의 남학생들이 하던 발언도 생각난다. ‘우리가 왜 여성을 대통령으로 뽑았나, 어머니처럼 잘 감싸주는 포용력 있는 자세를 기대해서 뽑은 거 아니냐더라. 내 주위의 사람들은 동의를 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이 그 발언을 정치적 비판으로 여겨 환호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들었다. 사회자가 없었기 때문에 거르지 못 하는 말이 많았다. 집회에서 나오고 싶었다. 이런 말을 들으려고 나왔나? 다음 집회에 가고 싶지 않았다.


-현수: 첫 번째 전국민 시위를 하고 나서 성추행 후기가 많이 올라왔다. 사람들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은 그렇게 놀랍지 않았다. 그 수가 모이면 분명히 그런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놀란 점은 성추행을 지적하면 공격한다고 느낀다는 점이었다. ‘시위 참여자들도 다 좋은 마음으로 나온 것이다’, ‘성추행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엄청 소수인데 다수의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만드냐’, ‘일반화 하지 말라고 하는 거 있잖나. 그럼에도 진보하고 있다고는 생각한다. (예전에는) ‘미쓰박이 부적절한 발언이니까 삼가달라는 정리 멘트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여성혐오적 발언들에 언짢아하면서도 그게 시정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안: 자유발언대에서 미쓰박’, ‘박양발언이 있었고, 사회자가 정정을 한 사건에 대해 뿌듯함을 느낀다. 열 개 넘는 여성주의자 단체들을 모아서 페미존을 모아서 나갔었는데 그 때가 2차 페미존 때였다. 자유발언자가 미쓰박’, ‘박양발언을 해서 여성혐오 발언하지 말라고 구호를 다 같이 외쳤다. 공동행동 페이스북 주최 측에 정정과 사과발언을 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공감한다는 답변이 오고, 바로 사회자가 (현장에서) 정정발언을 했다. 은혜가 말했듯 시위 내 여성혐오가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 못 했는데, 바로 피드백이 오고 바뀌어 나간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자는 대응방안을 마련한 건 1차 페미존으로 집회에 참여했을 때 김제동의 발언을 듣고 나서였다. 김제동은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어머니와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모자보건법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모자보건법을 모성보호법이라고 말하면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어머니와 그 옆에 있는 아버지를 봐라, 국가는 어머니와 같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는 우왕좌왕하다가 말았는데, 다음번 집회에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생각했다. 이후에 대응방안과 매뉴얼을 만들어서 구호를 외치고, 투쟁 본부 페이스북에 메시지를 보낼 생각도 하게 됐다. 작은 변화지만 바뀌니까 뿌듯했다.


 



지난 1111, 민중총궐기투쟁본부와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게시한 여성혐오적 발언에 대한 사과문

출처 :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페이스북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3387693620284&id=1629891637303223)

 


-지안: 집회 참여자들의 혐오발언도 들었다. 남성들이 시발년아, 나쁜년아를 우리 바로 옆에서 단체로 외쳤다. 우리가 혐오발언하지 말라고 맞받아서 외치니까 옆에서 젊은 남자들이 막 소리를 질렀다. 우리 측 자경단이 왜 소리를 지르냐, 혐오발언을 멈춰 달라 요구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하길래 우리와 생각이 다른 거 같으니 자리를 옮겨 달라고 요청했다. 그 무리 중 한 남성은 나라 바꾸는 계집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이런 스티커를 붙이고 혐오발언 하면 안 되지 않느냐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스티커를 팍 떼어 구겨서 버렸다. 그 사람은 그 문구를 나라 바꿔버린 계집년들이라고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다. 집회에서 개저씨들을 상대하는 건 힘들긴 해도 익숙해서 놀랍지는 않다. 그런데 여성을 혐오하는 젊은 남자들과 눈앞에서 대면하고 싸우는 경험은 생소했다. 우리를 비웃는 20대 초반의 남자들을 바로 보니까 그건 많이 스트레스가 되었다.


-광개토: DJ DOC가 무대에 서는 것을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페미당당에서 처음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지안: 우리 혼자 반대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는 페미존 텔레그램 방이 있다. 처음 거기서 뉴스를 접하고 신곡 발표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했다. 페이스북 메시지로 주최 측에 문제제기를 하자는 쪽으로 입이 모아졌다. ‘페미존에는 강남역 10번출구불꽃페미액션등 여러 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그중 페미당당이 표적이 돼서 공격을 받고 있는 거 같다.

-은지: DJ DOC 전에 산이가 더 먼저 곡을 내지 않았나? 게다가 산이의 곡은 음원사이트에서 인기가 높았다. (광개토: 멜론에서 1위를 했다.) 그런데 DJ DOC는 아예 올라와서 무대를 한다고 하니까. (충격적이었다) 한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든 욕하면 되는 분위기와 시위의 몰목적성에 환멸이 느껴졌다.

 

 


숙명여대에 붙은 '내가 시위에 가지 않은 이유1, 2' 대자보는 많은 공감과 함께 회자되었다.


 


Q.최근 대학가에 붙은 내가 시위에 가지 않은 이유라는 제목의 대자보에서는 진보 성향을 띠고 있는 집회나 모임에서의 여성혐오를 꼬집었다. 진보 정당/단체/학생회의 여성 인권감수성은 어느 정도인가? 각 단체에서 여자 대학생으로서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는가?

 

-현수: 내가 있던 경영대 학생회는 진보적인 학생회는 아니었다. 그냥 보편적인 수준의 술 마시기 좋아하는 애들이 모인 학생회였다. 당시엔 동기들이 너무 좋아서 들어가게 됐는데 (성차별적인 분위기가) 매우 심각했다. 2012, 2013년 연이어 학생회를 2년 동안 하면서 성폭력 예방 교육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회담 요청을 받고 지옥 같았던 지난 2년을 되돌아보니 너무 많은 사건이 있었다. 예를 들어 신입생 환영회 준비를 위한 단운위(단과대 운영 위원회, 이후 단운위’) 회의 시간에 경영대 학생회장이 프로젝터로 신입생 명단을 띄워 놓고 페이스북에 이름을 검색해 외모를 품평한 일이 있었다. 우리 과 전체 성비는 5.5:4.5 정도로 남녀가 비슷한 수준인데 학생회 성비는 거의 9:1 정도 된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한 번은 어떤 여자 연예인 섹스 비디오가 유출됐었는데, 단운위 단체 카톡방에서 한 사람이 그 파일을 구했다고 하니까 다른 남자 임원들이 파일을 보내달라고 이메일 주소를 올리는 일도 있었다. 2년 동안 이런 일들의 연속이어서 매우 힘들었다. 결국, 그 안에서 폭력 문제가 발생해서 내부 고발하고 나왔다. 나오고 나서도 신입생 환영회에서 성추행으로 문제가 됐던 걸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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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5일,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12.28. 한일 합의 규탄 기자회견 중인 평화나비 네트워크

출처 : 뉴스천지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368857)




-현수 : 그 이후로 평화나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평화나비는 매우 특수하다. 들어오는 학생들의 젠더감수성 범위가 굉장히 넓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여성에 대한 제노사이드로 볼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가끔 일베마인드를 가지고 나는 애국 보수야, 꽃 같은 순결을 빼앗겨버린 할머니들을 지킬 거야!”라면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굉장히 극단적이다. 들어오는 사람을 보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개념화됐는지 투명하게 보인다. 딱 영화 귀향느낌이다. 할머니들은 고령의 연세이신데도 외교관이 오면 소리치는 투사이시다. 우리끼리 농담으로 할머니들이 몸이 안 좋으셔서 앉아 계시는 거지 지금 태어나셨으면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였을 것이다, 다 불사지르고 다니셨을 거다.”라고 한다. 동아리 내부에서는 싸우는 여성에 대한 존중이 있는데 종종 시혜적인 생각을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커리큘럼을 보고 견디지 못해 금방 나가버리지만.

 

-광개토: 수요 집회 같은 동아리 외부 활동을 할 때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현수: 여성 구성원이 많다보니 활동할 때 여자들만 있는 경우가 많다. 동아리 특성상 길거리에서 캠페인이나 집회를 진행할 때가 많은데 우리 사회가 어린 여성들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 알 수 있다. 캠페인을 하면 수많은 개저씨와 할아버지들이 오신다. 저희는 반공 할아버지라고 부르는데 (모두 웃음) 빨간 별 박힌 모자 쓰고 해병대 군복 입은 분들이 오셔서 빨갱이라고 소리치고 가신다. (캠페인이나 집회에서) 남자들이 많을 때랑 없을 때 (분위기가) 아예 다르다. 하다못해 집회 신고를 하러 갈 때도 똑같이 준비해서 가도 여자가 가면 안 해준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아는 오빠를 부르는데 그 오빠가 오면 일이 바로 처리된다. 나이 있는 남자가 한 명 왔을 뿐인데 두 시간 고생하던 일이 30분 만에 끝난다. 그 사람들에겐 어떤 일을 하냐도 중요하지만 누가 하느냐가 정말 중요한 거다.

 

-광개토: 젠더 권력이 확실히 느껴진다.

 

-지안: 은혜 얘기를 들으면서 너무 많은 일이 생각났다. 검은 시위할 때도 2~300명이 모였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두 명뿐이었다. 우리가 평화적으로 시위를 진행할 거라고 짐작하고 우리를 안 무서워하는 거다. 그때 강남역 10번 출구’, ‘불꽃페미액션’, ‘페미당당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우리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거 아니냐?”, “너희 지금 우리를 물대포로 쏘지 않은 걸 후회할거다. 우리가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인 줄도 모르고라고 얘기했었다. (모두 웃음) 아까 은혜 씨가 반공 할아버지얘기를 하셨는데, ‘페미당당페미존을 운영하면서 혐오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 페미존의 '혐오 대응 매뉴얼' 

출처 : 지안 제공



 

-지안: 매뉴얼을 만들면서 혐오 형태에 따른 분류를 했는데 첫 번째로 사진형이 있다. “미스코리아보다 예쁘네~” 하면서 얼굴 찍어가는 유형이다. 항상 술 냄새가 나고, “사진 찍지 마세요. 다른 곳으로 가세요.” 하면 엥 내가 뭘 잘못했다구 미안합니다~”이러고 간다. 두 번째는 방해형, 위협형이 있는데 말 그대로 와서 위협하는 유형이다. 대부분 관심종자라서 사과하라고 하면 사과도 오래 한다. 그냥 가라고 해도 계속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끊임없이 사과한다. 그다음으로는 조언형이 있다. 와서는 시위를 이렇게 하면 안 되지! 더 강렬하게 해야지!” 참견한다. 칭찬형도 있다. “어린 여학생들이 기특하네~” 자기 딴에는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하려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여기 나와서 이러고 있어?” 이런 식으로 참견한다. 마지막으로는 질문형이 있다. “페미니스트가 뭐야?” 계속 물어본다. 그러면 저희는 여자도 사람이랍니다~”라고 대답한다. (모두 웃음)

-현수: 어린 여자를 보면 정말 가르치려고 든다. 우리 동아리는 한 학기에 일본군 위안부와 평화에 관련된 책을 몇 십 권씩 읽는데 와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훈계한다. 내가 더 잘 아는데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어린 여자를) 가르침의 대상으로 보는 게 너무 투명하게 보여서 안타깝다.

-지안: 다가와서 쉽게 만지는 것도 싫다. 저번 시위 때 자경단 활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사람들이 안전하게 집회에 나오게 하려고 (자경단 활동을) 하는 건데 최전선에 서다 보니 우리가 위험에 노출됐다. 지난 집회에서 방해형에게 집회 진행 중이니 비켜달라고 요청했더니 내 몸을 쓱 만졌다. 너무 당황해서 왜 남의 몸을 동의 없이 만지세요? 사과하세요.” 하니까 웃으며 미안하다고 했는데 너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백번 말하는 것보다 더 무력해졌다. ‘내가 어떻게 해야 저 사람들에게 우습게 보이지 않을까?’ 고민스러웠다. 내가 아무리 스터드 천 개 박힌 옷을 입고 무기를 들어도 웃길 것 같았다. 그럼 자경단을 남자로 해야 하나? 그럼 나는 정말 약한 건가? 더 무력해지는 것이다. 그러던 와중, 다음 시위의 페미존에서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페미존 사람들이 다 같이 사과하세요.”, “비켜주세요.” 외쳐주었다. 무척 힘이 됐다.

페미니스트들이 전체 운동 약화시키는 거 아니냐, 페미니스트들 프락치다, 페미니스트들 어둠의 친박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의 반복과 변주인 것 같다. DJ DOC 무대가 취소됐을 때도 (시위에서)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는 게 박근혜 퇴진이라는 대의를 위한 동력을 약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항의가 많았다. 페미니스트 시국선언에도 썼듯, 어떤 사람한테는 페미니즘이 조개 줍는 일로 보이겠지만, 그 사람들한테는 조개로 보이는 게 우리한테는 상처 입은 사람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부패 정권만을 해일로 생각하겠지만 여성에게는 일상적으로 겪는 여혐이 해일 그 자체다.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전체 동력을 약화시킨다고 하지만 그 사람들이 말하는 우리속에 여성은 배제되어 있다. 그래서 (페미당당은) 비가시화되는 사람들을 우리속으로 끌어오고 공론장에서 우리 자리를 되찾기 위한 싸움을 하는 거다. 그런데 진보진영 내에서도 전체 동력을 약화시킨다는 공격이 들어오니 생각이 많아졌다. 난 누구랑 싸우는 건가?




11월 26일, 제 5차 촛불집회에서 있었던 페미당당 시국선언

출처 : 페미당당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pg/femidangdang/videos/?ref=page_internal)

 



광개토: 진보성향을 가지고 있는 단체 내에서도 낙차가 많이 느껴진다. 소라 씨 같은 경우에는 녹색당 당원이신데, 녹색당은 진보성향이고 당 특성상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인데도 그 안에서도 많은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소라: 녹색당은 정당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정당은 하나의 가치만을 이야기할 수 없다. 녹색당은 특히 차별에 반대하고 혐오에 반대하며 모두가 함께하는 세상을 꿈꾸는 정당이라 단 한가지만을 중요하게 여길 수 없다. 먹거리, 동물권 보호 등 (주제가 다양하다.) 동물권 보호를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부딪히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개 같다라는 말이나 박근혜에게 이라고 얘기하는 건 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느낄만한 단어들이다. 여성도 이라는 단어 들으면 스트레스를 받듯 말이다. 그래서 모두 평등을 이야기를 하자고 합의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전제하에 만든 매뉴얼이 평등문화약속문이다당 공식 행사를 할 때는 반드시 평등문화약속을 읽고 시작한다조항 1번은 성별·성적 지향·성 정체성·장애 여부·국적·나이·지역·출신 등에 관한 모든 차별을 지양하자는 내용이다어떤 한 사람이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발언을 했다면 다 같이 항의하고 저항할 준비를 해야 한단 내용도 평등문화약속문에 포함 돼 있다.

 




녹색당의 평등문화 약속문

출처 : 녹색당 공식 트위터 

(https://twitter.com/greenpartyk/status/754929658332782596)

 



-소라나는 **지역운영위원장을 하고 있는데, 올해 처음 총회가 성립돼 지역을 이끌어 나가게 됐다. 회의를 하기 전에 약속을 만들고 이끌어 나가야 할 거 같아서 첫 회의 때 평등문화약속문으로 회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50대 당원 한 명이 그것은 국민학교 다닐 때 나라에 충성하는 선언문을 떠오르게 한다며 이건 폭력적이라고 문제제기를 했고, 나는 거기에 설득 당했다. 평등문화약속문을 이야기하자고 강요를 했는지 긴가민가했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아니었다. (현수: 인권선언문도 폭력인가?) 평등문화약속문의 내용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폭력이라는 거다. 그 뒤로 무조건 평등문화약속문을 프린트해놓고 회의를 했다.

정당의 딜레마가 있다. 녹색당에서는 지적질을 환영한다고 해놓고 내부가 끈끈해야 한다는 명목아래에서 지적질을 참게 한다. 당원에게 잘못된 발언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된다고 하면 먼저 사과를 하고 인정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왔고 자신은 앞으로도 조심할 거기 때문에 이해해 달라.’라는 말이 따라온다.

메갈리아 티셔츠 사건이 일어났을 때 청년 녹색당에서 관련 논평을 냈다. 우리는 성우를 지지하고 넥슨을 규탄한다고. 그런데 당원 게시판에 어떤 사람이 청년 녹색당 논평 철회하라는 글을 올렸다. 요지는 당원 모두의 의견도 아닌데 어떻게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논평을 낼 수 있는가였다. 게시판에 불이 붙었다. 원래는 이용이 활발하지는 않은 편인 게시판인데. (모두 웃음)

최근에는 당내에서 성폭력 사건도 있었다. 성폭력 가해자가 청년녹색당 운영위원장이었기 때문에 입장 정리를 빨리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 사람들은 가해자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면서, 생존자가 계속 말을 바꾸고 있다고 비난했다.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자기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잘 파악을 할 수 없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당원들도 (이 사태를 어떻게 대처할지) 잘 몰랐던 거다.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녹색당 안에서 사람들이 이제 뭘 공부해야하는지는 깨닫고 있는 거 같다. 그래서 희망이 있는 거 같다.


-은지: 나는 2학년 때 국사학과 학생회를 했었다. 그 때는 (여성주의적인 문제와 관련해) 별다른 걸 느끼지 못 했다. 그런데 지켜본 바로는 과대가 항상 군필 남성이더라. 내가 수료를 마친 지금까지도 과대는 군필 남성이 도맡아 했다. 학교 기구로는 반성폭력위원회가 총학생회 산하에 있었지만 불과 2년여 만에 인준이 부결되었다.

 



전학대회에서 반성폭력위원회 인준이 부결되자 이에 항의하는 가톨릭대 학생들의 대자보가 학교 곳곳에 붙었다.

출처 : 은지 제공

 



-은지: 학내 자치활동이 미비하고, 학교 분위기도 트러블을 만들지 않는 조용조용한 편이라 전학대회에서 웬만하면 (안건이나 인준이) 가결되기 마련인 곳이다. 그런데 반성폭력위원회가 페미니즘적이라는 말이 퍼지면서 부결처리가 된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올해 성평등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인준 준비를 했는데 역시나 부결되었다. 교내에서 화장실 몰카 사건 등 (성폭력에) 관련한 사건이 다수 발생한 학교인데도 말이다. 학내 상설 기구가 있어야 대처가 가능하고, 예방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광개토: 학내 자치기구 임원 중 여학생 비중은 어떻게 되는가? 여학생들이 임원을 할 수 있는 분위기인가?


-은지: 전과생들이 말하길 남학생들이 여학생들 옷 입는 거 품평 안 해서 좋다(여성혐오적인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낫다)고는 한다. 그렇지만 과내에 남자가 많고 무의식적으로 스며들어있는 여성혐오적 심리는 무시 못 하는 것 같다. ‘야 그래도 (임원엔) 군필 남자가 낫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현수: 나는 경영대에서 부학생회장을 했었다. 후보 중 제일 표를 많이 받은 1등이 정, 2등이 부를 맡는다. 1년이 지나고서야(임기가 끝날 때) 내가 정보다 표를 더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직속선배가 군대 가고 나서 이야기해줬는데, 선배들이 여자가 정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던 거다. 여자는 그래도 부를 해야 하고 남자는 정을 하는 게 맞다고. 게다가 정은 3월부터 잠수를 타서 1년 동안 혼자 일을 해야 했었는데. 놀랍게도 2012년의 이야기다.


-광개토: 이런 분위기면 여학우에 대한 공약이 안 나올 것 같다.


-현수: 리더십 있고 목소리 크고 술 잘 먹는 건 남자가 더 잘한다고, 남성 임원을 뽑는 거다. 여성의 목소리를 지우는 거다.


-지안: 1학년 때 새터(새내기 배움터)에 갔을 때 반성폭력 교육을 맡은 선배들이 생리대 여기 있으니까 부끄러워 하지 마세요. 아 부끄러워~”, “그런 일이 생기면 외치세요. 반성폭력!” 이런 식으로 장난처럼 교육을 진행했다. 그런데 그 날 밤, 같이 술을 마시던 남자 동기한테 강제로 키스를 당했다. 그때 떠오른 말이 반성폭력!’ 밖에 없어서 반성폭력!” 외치면서 도망쳤다. (반성폭력교육에서)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식으로 교육받았고 당시에 성추행이라고 인식도 못 했기 때문에 2년 동안 말을 못했다. 내가 먼저 꼬리 쳤다는 둥, 행실이 안 좋았다는 둥 나쁜 소문이 날까봐 두려웠다.

14년도에 '반성폭력''어울림'으로 이름이 바뀌고, 15년도에 인문대 새터 어울림 전체 공동팀장을 맡았다인권 단체에 자문도 구하고 역할극도 하고 매우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교육을 받은 일학년 반 중 한 반에서 카톡방 사건이 터졌다. 무력감이 들었다.

 



지난 711일 서울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는 서울대남들의 카톡방 성폭력 고발했다.

출처 : 2차 중앙일보 <'서울대 단톡방 성희롱' 논란 이는데 학생들은 "카톡 공개는 인권유린" 반응?>

(http://news.joins.com/article/20290706)

 



-지안: 당시 나와 공동으로 어울림 팀장을 맡았던 사람이자 올해 인문대 회장이었던 남자가 있는데, 새터에서 성폭력 가해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지금 진조위(진상 조사 위원회)가 꾸려졌다. 작년에 어울림 팀장을 했던 사람이 가해 지목인이 된 것이 충격적이었다. 이후 진조위(진상 조사 위원회)를 꾸리자는 안건으로 임시 전인대회(전체 인문대 학생 대표자 회의)가 열렸었다. 그런데 한 참관자가 손을 들고 피해자와 가해자 개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왜 전인대회까지 끌고 오냐고 하더라.

이러한 학내 성폭력 사건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계속 피해자에게 대한 정보를 밝히길 요구한다고 한다. 피해자는 피해 사실만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자세하게 정보 공개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부담감에 시달린다. , 인문대 내에 반성폭력 내규가 없었다. 매뉴얼이 없어서 실수를 하게 되는데 실수에 대한 책임을 모조리 피해자가 떠안게 되고 매뉴얼을 찾아보는 것도 피해자 책임이 되어버린다.

학교 커뮤니티 내의 여성 혐오적인 분위기도 심각하다. ‘애초에 진짜 성폭력이었으면 사법 신고를 해야 했던 거 아니냐고 한다. 피해자들은 좁은 인간관계 내에서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나 때문에 분위기가 껄끄러워질까봐,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을 와해시킬까봐 신고하길 꺼린다. 신고한다고 해도 신체적인 손상이 일어난 것이 아니므로 경찰 측에서 합의하길 종용한다. 이런 점들에 대해 전혀 고민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떳떳하면 왜 신고를 안 하냐고 하니 답답하다.

앞서 말한 성폭력 가해지목인은 지금은 인문대 회장 자리에서 사퇴한 상태이다. 새로운 인문대 회장이 당선됐는데 그 사람이 총운영위원회 및 전임 신임 학생회장 대면식 겸 뒤풀이에서 또 성폭력 가해를 했다고 한다. (모두 탄식)

 

-광개토: 이쯤 되면 남자를 왜 뽑는지 알 수 없다.

 

-지안: 여자가 큰일을 해야 한다. 정의당 여성주의자 모임, 정의당 여성주의 위원회, 정의당 이대 특위 분들이 페미존에 오셨는데 다른 당 창당 모임에 너희가 왜 가냐부터 시작해서 아예 정의당 당게(정당 게시판)가 테러 당했다. 정의당 여성위원회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너희 프락치 같은데 이럴 거면 정의당에서 나가라고 한다. 정의당 이대 학위의 경우는 정의당 구성원 중 일부에게 페미존 가지 마라, 갈 거면 이대 학생 위원회 이름 떼고 나가’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임시 명칭을 만들었다. 위원회가 아니다. one회다. (모두 웃음) 그런 식으로 정당 내에서 공격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은지: 진보 남성들의 수준이 처참하다.


-소라: 노란색 당 남자 당원들이 1년에 한 번씩 교육하는 걸 갖고 교육 열심히 한다고 그렇게 자랑을 한다.


-현수: 강간 안 한다고 성추행 안 하는 게 아니다. (웃음)


-지안: 너무 시혜적으로 나 공부하고 있으니까 봐달라고 한다. 어쩌라고.


 

Q.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는 페미존이 나타나고 소수자 혐오 방지 매뉴얼이 등장하는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 한편, 여전히 길라임ㅋㅋㅋㅋㅅㅂㅋㅋ미친년ㅋㅋㅋㅋㅋ이라고 쓴 플랭카드가 풍자로 소비되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앞서 언급한 대자보는 여성혐오적인 시위에 보이콧을 주장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안: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 못 나오는지, 왜 나가기가 두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혐오에) 익숙해진다고 무섭지 않은 것도 아니고, 너무 자주 일어나서 지겨워진다고 괴롭지 않은 게 아닌 걸 안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 텔레그램 방에서도 여러 가지 대응 방안 얘기가 나왔었다. “DJ DOC 노래를 공론장에서 튼다면 보이콧을 하자고 주장하시는 분도 계셨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혐오적인 분위기 때문에 못 나오는 여성, 청소년, 장애인, 퀴어들에게 혐오 프리존을 제공해 (시위 참여가) 쉬워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페미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DJ DOC의 노래 수취인 불명에서 수취인이 박근혜라고는 하지만, 유명한 페이스북 글처럼 광장에서 수취인 불명이 울려 퍼지게 되면 그 노래를 듣게 되는 수취인은 누군가? 바로 옆에서 같이 싸우자고 나온 여성들이다. 그 순간 그 여성들의 존재가 비가시화되고 목소리는 지워질 것이다. 그 고통을 감내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여러 사람이 보이콧하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페미당당이나 나의 역할은 페미존을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위) 11월 12일 열린 촛불집회 페미존에 모인 사람들.

(아래) 페미존에 모인 깃발들.

출처 : 페미당당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femidangdang/)




-소라: 나는 (시위에) 나가기로 했다. ‘범국민대회’, ‘민중총궐기아닌가? 지금 이 사회에서 누가 궐기를 하느냐를 보여주는 것이 집회다. 페미존을 통해 페미니스트, 소수자들이 나와서 우리가 있다고 보여주는 게 집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같이 나왔으면 좋겠고, 나도 참여하는 거다.

녹색당의 경우 이번 집회 때 탈핵을 키워드로 들고 나갔다. ‘박정희가 시작한 핵발전소 박근혜 때 끝장내자란 슬로건이었는데, 이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왜 하냐고 욕을 많이 먹었다. 그런 지적이 들어왔을 때 여기는 범국민대회고 같이 얘기해야할 다양한 주제가 있으며 당신이 알아가야 된다는 것을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보이콧을 주장하지 않는다.

 

-현수: 보이콧을 함으로써 집회에서 페미니스트들이 다 빠지면 집회는 결국 바뀌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정의당에서 못하겠다고 나가면 정의당이 바뀔까? 녹색당에서 못 버티고 나가면 녹색당이 바뀔까? 내가 학생회를 할 때 못 버티고 나갔는데 안 바뀌었다. 지금도 쓰레기다. 물론 나간 사람은 피해자이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없지만 행동하지 않으면 결국 바뀌지 않으니까 설득해서 같이 가고 싶다.


-은지: 보이콧에는 대안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집회에서 페미존을 만들고 움직이는 것처럼 대안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사실 집회는 쪽수다. 어쨌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페미존에 있고, 그게 여성운동으로 가시화된다면 그 자체가 보이콧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지안: 처음 페미존 시작했을 때 집회에 참석한 아저씨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나와 있냐?”고 핀잔을 줬다. 순간 공부는 아저씨나 하세요.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라고 선창을 했더니 사람들이 다 따라 하더라. ‘우리가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통해 어쨌든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꿀 거고,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궁극적으로는 페미존이 생길 필요가 없어지고 집회 전체가 페미존이 됐으면 좋겠다.

 


Q.임신 중단의 자유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검은 시위가 1015일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검은 시위의 존재를 모른다. 여성 운동, 여성 정치를 가시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


-광개토: 개인적으로 유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메갈리아나 워마드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미러링에서 해방감과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메갈리아나 워마드의 유머는 마이너스 유머였고, 이제 플러스 유머가 필요하지 않을까.


-지안: 검은 시위 주최를 했던 사람으로서, 질문지를 받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홍보를 더 해야 할까? 아니면 이제 남은 길은 죽이는 길밖에 없나? (모두 웃음) 주변에서 유럽 페미니즘, 선진 페미니즘 하라고 하는데, 그럼 이제 죽이는 수밖에 없다.(웃음) 나는 정말 모르겠다. 방금 광개토가 유머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는데 공감이 간다. (그 일환으로) 시위에서 찬송가를 개사해서 불렀고, 모임도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한다.

시위 이후 낙태죄 관련 오픈세미나를 했는데 국제연대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검은 시위에서 폴란드나 아일랜드나 아르헨티나 등 서구 페미니스트들과 연대를 했었는데, 세미나를 하다 보니 서구의 낙태죄와 한국의 낙태죄의 맥락이 전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인도나 필리핀,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시기에 서구에서 낙태, 산아제한 정책이 정부 주도 하에 한국에 수입되었다. 서구 국가들뿐 만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과의 연대가 필요할 것 같다.


-광개토: 국내 개인과 개인 연대 필요성도 커 보이는데.


-지안: 20대 여성 액션 그룹에 있는 여성으로서 고민이 많다. 메갈리아 활동을 하다가 소송을 당한 개인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 사이에 남아버렸다. 나는 우리 시대의 페미니즘이 망한다면, 원인이 연대할 방법을 찾지 못 해서라고 생각한다. 연대체를 꾸리고 있는데 난제가 많다. 인터넷에서만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은 파편화되어있고, ‘꿘충혐오와 같은 결벽이 있다. 단체가 아닌 개인이어야만 하고, 친목하면 안 되고, 그런 것들이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페미니스트들이 소송을 당했을 때 어디에 도움 요청하기가 훨씬 어렵고, (여성혐오적인 바깥 분위기에) 쉽게 입막음을 당한다.


-현수: 주변에 페미니즘에 공감하는 사람을 굉장히 많이 봤다. 여자인 친구들은 낙태 등의 이슈에 쉽게 공감한다. 그런데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오해한다. 사람들이 보는 페미니스트는 항상 화나있고, 합리적이지 않고, 공격적이고, 여성우월주의자들이고, 남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존재다. 성폭력 사건이 다 없어져야 된다는 내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내가 페미니스트 같지 않다고 말한다.


-광개토: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빼앗겼다는 느낌이다.


-현수: 마치 새누리당한테 평화통일 뺏긴 것처럼. 대학원 진학 준비를 하면서 면접 스터디를 하는데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다. 내 말에 동의를 다 하면서도 본인이 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여긴다. 이게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프레이밍 싸움을 해야 하지 않나. 지금 시위가 평화시위의 프레이밍에 갇힌 것처럼, 당한 거다.


-지안: 우리는 페미니스트의 역사를 모르고 계보를 모른다. 우리 이전엔 호주제폐지 세대, 1.5세대, 90년대 영페미니스트가 있는데 90년대 영페미니스트는 위 세대를 부정해서 윗 세대와 사이가 안 좋다고 한다. 1.5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우리는 모이면 선배들 욕을 하는데 너희도 그러지 않냐고 했다. 우리는 모르니까 욕을 하고 말 것도 없다. 아무도,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민경의 페미니즘 실용서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은 

역사 속에서 쉽게 지워진 여성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한 책이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이후, 페미니스트 여성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출처 : 텀블벅 봄알람 출판프로젝트 페이지

(https://tumblbug.com/baumealame1)

 



-지안: 90년대 영페미니스트들에게 행사에 나와 달라고 연락하면,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모두가 그래서 이름이 남아있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이름을 박아야겠다고 느꼈다. 우리가 역사가 되자.


-광개토: 기록이 필요하다는 말로 들린다.


-지안: 남자들은 업무에 조금만 발을 담갔어도 그걸 내가 했다고 강력히 주장하는데, 여자들은 했어도 나는 별거 안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우리가 했다고 생색내고 싶다. 우리가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봊풍당당한 자세를 견지하자. 여자가 큰 일하는데 실수 좀 할 수 있지, 여자애가 뭐 다치고 좀 깨지고 그럴 수 있는 거지 이런 말을 듣고 자랐으면 얼마나 자유로웠을까.


-광개토: 이번에 좋은 말이 많이 나왔다. 기록을 하자, 연대를 해자, 배포를 크게 가지자. 다 좋은 방안이다.


-은지: 뚜렷한 성과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시니어 페미니스트들이 호주제 성과를 얘기하듯이, 성매매 특별법은 논란이 있지만 이를 성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낙태죄 폐지를 우리의 성과로 여기면 어떨까.


-지안: 작지만 낙태죄 폐지를 전리품으로 남기고 싶다.


-현수: 승리의 경험이 중요하다. 어떤 세대는 독립을 했고 어떤 세대는 민주화를 만들었는데, 2-30대는 뭘 했냐는 소리만 듣는다. 해봤자 안 되니까 정치에 무관심해지고, 냉소하게 된다. 페미니스트들도 마찬가지다. 작은 범위에서든 큰 범위에서든,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하나 승리하는 행보라고 생각한다. 여러 매뉴얼도 나오고, 논란이 있든 없든 DJ DOC 공연도 취소 됐다. ‘그래, 우리 이 때도 이겼어!’라는 생각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Q.내가 뽑는 2018 대통령. 내 맘대로 후보!


-광개토: 6번 질문은 약간의 유머와 함께 만들어 봤다. 개인적으로 나는 키우는 햄스터를 밀고 있다. 이 친구가 임기를 채울 수 없다는 게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일 정도로 정말 괜찮은 후보다. 내 친구들은 모두 밀고 있다. (모두 웃음) 여러분이 생각하는 후보로는 누가 있는가?

 

-현수: 현실성 측면에서 햄스터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진선미 의원이 했으면 좋겠다. 그분은 대표적인 꿘 페미니스트로서 계속 시민운동 하시다가 정치권으로 가신 건데, 그런 분이 성공하면 그게 또 하나의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희 동아리는 우리 나중에 꼭 성공하자고 한다.


-지안: 스타 만들기 정말 중요하다.


-현수: 맞다. 우리는 다 전문직 되기로 약속 했다. 평화나비하면 다 약사 되고, 변호사 되고, 정치인 되는 걸 이렇게 보여줘야 다들 도전할 것 아닌가? 지금 여성 운동하시는 분들 다 내려놓고 하시는 건데 (도전하는 것에 대해서) 당연히 성공할 거라고 말은 못해주지만 그런 사람도 있다고 보여주는 게 엄청 유의미하지 않을까 한다.


-지안: 성공한 롤모델의 존재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이번 해에 나는 불행한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왜냐하면, 미쳐서 자살해버린, 정신병원에서 죽은 불행한 페미니스트의 서사는 이미 많기 때문이다. 행복한 페미니스트의 형상을 계속 그리고, 보여주는 게 매우 중요한 것 같다. 힐러리도 하나의 롤모델이 될 수 있었는데 트럼프한테 져서 너무 슬프다. (모두 눈물)


-현수: (트럼프 당선이) 미국 청년들한테 엄청난 영향을 끼칠 거라고 본다.


-지안: 힐러리 연설 중에 정말 큰 패배지만 내가 깨지 못한 유리천장을 깰 사람이 생각보다 더 빨리 나올 것이다.”라는 말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내가 미는 후보는 페미당당의 수령인 심미섭이다. 인도 불교 철학을 전공하고 있다. 페미당당 사람들이 계속 정치하라고, 대통령 하라고 꼬시고 있다. (광개토: 후보로 추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무척 똑똑하고 말을 우아하게 잘한다. 인권 감수성도 뛰어나고 루키즘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름답다. (모두 웃음) 스타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

 


Q.후기

 

-은지: 열심히 하시는 분들을 보고 배우기도 많이 배웠고 지금 딱히 단체나 정당을 하고 있지 않아서 나도 뭘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지쳐서 쉬고 있었는데 역시 싸워야 되는 구나, 가만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 이런 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강남역 10번 출구 이후에 페미니즘이 이런 물살을 타기 시작한 게 사실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말을 못하고 있다가, 누가 말을 꺼내니까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고민하고 우리는 돌아가더라도 바른길을 갈 거라고 서로 확신을 주는 게 좋은 것 같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지안: 사실 이야기를 한 번 더 반복해야 하다 보니 인터뷰를 준비하는 것 자체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막상 와서 이야기해 보니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측면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대회담에서 이야기해봤으면 좋겠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소라: 오늘 (인터뷰) 오기 전에 누군가를 설득할 일이 있었다. 진이 다 빠져 말을 많이 못 한 게 너무 아쉽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줘 감사하다.

팬덤이 허락한 페미니즘 ;진정한 페미니스트를 찾아서

By.광개토

 

 


 16124, 샤이니 멤버 종현의 솔로 콘서트를 다녀온 한 팬이 종현이 콘서트장에서 보여준 제노포빅, 호모포빅한 발언에 대해 트위터를 통해 피드백을 요구했다. 종현은 콘서트에서 인도 문화를 희화하는 vcr을 내보내고, 토크 중 남성 팬에게 성향은 존중하지만 자신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종현은 팬들의 지적에 발빠르게 대처했다. 논란이 된 당일,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다음 공연에서는 vcr을 삭제하는 등 조치를 취한다. 이에 몇몇 팬들은 종현의 사과에 감사를 보내기도 했다.

 

 


샤이니 종현이 12월 3일 본인의 트위터에 게재한 글 


 


 그러나 본격적인 사건은 이제부터였다. 트위터에서 종현에게 피드백을 요구했던 일군의 팬들에 대한 사이버 불링이 시작된 것이다. 가해를 시작한 팬들은 종현에게 피드백을 요구한 팬들을 일명 트위터 페미니스트, 줄여서 트페미로 명명하고, ‘지인이 얼굴을 알고 있다는데 만나면 논리적으로 얘기해볼 것이라는 신상 정보를 알고 있다는 협박부터 인신매매 당해라’, ‘강간당했으면 좋겠다등 원색적인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사이버 불링에 비판이 일자 팬들은 트페미들이 그동안 샤이니를 성희롱했다고 주장하며 정당화했다. 이들은 트페미들이 샤이니를 성적으로 소비해온 트위터 멘션을 캡쳐해 증거 자료로 올리면서 팬인 척 하면서 샤이니를 성희롱했으며, 진정한 페미니스트도 팬도 아니라고 비판했다.

 일은 점점 커져 종현에게 피드백을 요구했던 트페미 중 한 명은 콘서트 장에서 얼굴을 알아본 팬들에게 무슨 낯짝으로 콘서트를 보러 왔냐는 등 직접적인 언어폭력을 당했다. 피해자는 이를 트위터에 올렸고 사건은 일파만파 퍼졌다.

그러나 팬들은 피해자가 거짓말을 한다고 가정하고 콘서트 티켓을 인증하라 압박했다. 피해자에게 당신이 피해자가 맞는지, 피해 사실을 증명하라는 요구였다. 급기야는 피해자가 있었던 자리를 소거법으로 찾아보자며 해당 날짜에 콘서트에 다녀온 팬들을 대상으로 콘서트 티켓 인증을 받기도 했다. 이 계정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찍어 올린 콘서트 티켓 사진들이 몰려왔고 계정주는 좌석을 색칠해가며 피해자를 압박했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피해자의 또 다른 SNS 계정을 알아냈다고 밝혀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심각한 수준의 사이버불링에 사람들은 팬덤내 사이버 불링을 알리는 #팬덤내_사이버불링_아웃 해시태그를 만든다. 이에 팬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사이버 불링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팬코_악질성희롱_아웃(팬코; 팬 코스프레의 준말로 진정한 한 그룹의 팬이 아니라 팬 흉내를 내는 사람), #트위터내_아이돌_성희롱 등의 해시태그를 만들어 맞불을 놓았다. 팬들은 계속해서 종현은 제노/호모포빅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부터 트페미들이 종현에게 혐오행동을 교정하길 요구했으면서, 페미니스트답지 않게 그간 아이돌을 성희롱해왔다라거나, ‘종현을 비판한 것과 별개로 트페미들이 샤이니를 성희롱해온 것을 이제 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돌에 대한 팬들의 지나친 성적 대상화 문제는 아이돌 산업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한 번 쯤 고민해본 주제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토론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성적 대상화를 실시한 페미니스트를 비판한다는 점이 팬들의 자성적 움직임이라고 보기 어렵게 한다. 이들은 트위터가 아닌 타 커뮤니티에서 벌어진 성적 대상화를 지적하거나, 대상화의 끝인 RPS를 지적하지는 않는다. 팬덤 내 아이돌 성희롱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특별히 가해자가 페미니스트임을 지적하거나, 트페미들 중에서 가해자를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이들이 공격하고자 하는 사람은 사실상 가해자인 누군가가 아닌, 페미니스트인 누군가, 더 좁히면 트페미이다.

 이들은 왜 트페미를 공격하는 것일까? 사이버 불링과 성희롱 의혹 제기가 종현에 대한 피드백 요구 이후로 이어진 정황을 살펴보면, 내 아이돌에게 어떤 비판도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팬덤 내 불문율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감히 내 아이돌에게 호모/제노포빅하다고 지적한 팬-페미니스트를 심판하겠다는 목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샤이니 팬덤 이전에 트페미로 고통 받은(?) 아이돌 팬덤이 있다. 바로 방탄소년단이다. 방탄소년단의 팬 중 여성혐오를 공론화하고자 마음먹은 사람들이 모여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을 만들었다. 이들은 방탄소년단과 소속사에게 여성혐오에 대한 피드백을 요구했다. 이에 방탄소년단과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시정해 나가겠다는 글을 공식적으로 올렸지만, 공론화 계정 계정주들은 팬들에게 신상 정보를 캐내겠다는 협박과 온갖 욕설 등 심각한 수준의 사이버 불링에 시달려야 했다.

팬들은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공격했다. 여성혐오를 지적하는 팬들을 진정한 팬이 아니라고 배제하는 한편, 팬덤 내 트위터 페미니스트들이 스스로의 언피씨(unpolitical current;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음)함은 돌아보지 못하는 가짜 페미니스트라고 비난했다. 아이돌에 대한 무비판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팬덤 분위기에 안 그래도 어려웠던 여성혐오 지적은 더욱 힘들어졌다.

 이런 현상은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이 방탄소년단이 여성혐오에 대해 피드백한 후 발표한 정규 2집 앨범 'WINGS'의 수록곡 <21세기 소녀>를 비판했을 때 더 거세졌다. 계속해서 여성혐오적 콘텐츠를 만드는 방탄소년단과 소속사를 소비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팬들은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을 통해 릴레이 탈덕 선언을 했다.

 

 


(위) 7월 6일,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공식 팬카페에 게재한 입장문

(출처 : http://cafe.daum.net/BANGTAN/jbaj/326 )

(아래)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이 올린 릴레이탈덕선언



 

 팬덤은 이전부터 정치세력화의 한 방식으로 오빠에 대한 사랑의 진정성을 수배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했다. 진정성의 기준은 사람들이 믿는 것과 달리 주관적이다. 팬덤은 아이돌의 여성혐오를 지적하지 않는 팬들을 진정성 없는 팬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누가 먼저 진정성의 기준을 세우냐에 따라 손쉽게 공격대상을 진정성 없음의 늪으로 빠뜨릴 수 있다. ‘진정성이 없는 팬의 의견은 묵살해도 되고, 어떤 공격을 받아도 싸다’.

 팬덤이 진정성을 무기로 사이버 불링을 정당화하고 개인의 목소리를 지우는 행위는 페미니스트의 입을 막는 오래된 방식과 유사하다. 페미니스트가 어떤 주장을 내놓으면 사람들은 말투나 성적 취향, 평소의 생각 등을 전시하고,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페미니스트로서의 진정성을 평가한다. 사람들은 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람은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샤이니 팬들이 트페미들을 공격할 수단으로 본인들조차 자유롭지 못한 성적 대상화(성범죄)’를 선택한 이유를 이제 쉽게 알 수 있다. 팬덤은 페미니스트에게 요구되는 결벽성이 존재한다고 믿고, 치명적 결함 중 하나가 성범죄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는 완전무결한 인간임을 증명하는 딱지가 아니다. 완전무결한 인간만이 페미니스트가 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백보 양보해 설사 그 사람이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하더라도, 진정한 페미니스트만이 혐오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여성학자 정희진이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정의한 바에 따르면 페미니스트는 여성혐오를 깨달은 사람이다. 페미니스트는 누군가에게 진정성을 평가받아 자격이 주어지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 정체화한 존재다. 때문에 계속해서 스스로 배운다. 그러지 않은 페미니스트는 그저 역사의 뒤에 남는 페미니스트일 뿐이다.

 



 종현의 일이 불거지자 또다시 소환된 꽃길만 걷자는 말은 꽤 의미심장하다. 내 아이돌이 오로지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봤으면 좋겠다는 팬들의 소망은 아이돌에게 어떤 비판(나쁜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팬덤 내 암묵적 규율을 낳았다. 이 불문율과 결탁한 진정성이 팬덤으로 하여금 내 아이돌의 혐오발언에는 눈 감는 페미니스트를 원하게 만든다. 팬덤은 마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찾는 남성처럼 팬덤이 허락한 페미니즘만을 수용하려 든다.

 지금도 팬들은 트페미 블락 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해 트페미들을 팬덤 내에서 고립시키고 사이버 불링을 가하고 있다. 아이돌 팬인 페미니스트들은 팬과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의심받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사이버 불링을 당하는 페미니스트-팬을 지켜보면서 팬들은 점점 더 목소리를 내길 두려워한다. 자성의 목소리를 잃은 문화는 고립되어 상하기 마련이다. 아이돌 문화의 지속가능성에 진정한 빨간불이 울리고 있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세일러문 크리스탈과 오마이걸입니다.

 




이슬람교의 여성혐오와 3세계 페미니즘

페미타쿠


 

페미니즘은 단 하나의 갈래로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말하느냐, 누가 경험하느냐에 따라 맥락과 의미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1세계3세계는 향유하고 있는 문화가 다르고 ‘백인비백인이 처한 상황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주로 백인 여성들을 위해 진행되어오던 서구의 페미니즘이 아니라 ‘3세계라고 칭해지는 이슬람 문화권에 관한 페미니즘을 같이 읽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이슬람 문화권이 거리상으로 한국과 가깝지 않고, 이슬람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어서 당장은 생소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를 구축하고 있는 이슬람교는 다분히 윤리적이지 않고 여성혐오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종교가 토대가 되어 여성차별의 정서가 그들의 문화 속에 곳곳이 스며있다. 밑의 책들이 문제제기하며 설명하는 쟁점들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여성들에게 유효한 지점이다. 지금부터 소개할 책들을 읽어본다면 문화상대주의로 덧입혀져 보이지 않던 이슬람교의 소수자 탄압과 비윤리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왜 이슬람 개혁을 말하는가' 표지, ©알라딘)


혐오와 테러는 명백히 종교의 문제, 나는 왜 이슬람 개혁을 말하는가


이슬람교에 대해서 논의할 때, 특히 종교가 여성을 통제하고 억압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그것은 서구중심적인 생각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움츠러든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이런 분위기를 타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이슬람교에 대해 비판을 시도한다. 저자는 목숨을 무릅쓰고 이슬람교를 개혁하자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가 위협을 받는 이유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종교적인 문제제기는 어떤 경우라도 용납이 안 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서구는 인종차별과 문화상대주의적 입장을 고수하면서 이슬람교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으려 들지만, 저자는 이슬람교가 자행하는 종교적인폐해를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순교행위라는 이름의 자살폭탄테러는 이슬람 문화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이슬람교의 교리와 긴밀한 연관이 있으며, 특히 이슬람교는 여성과 소수자를 가혹하게 억압하고 그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본인이 그 문화권에서 살았으며 한 때는 독실한 신자로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이슬람 문화권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면서도, 개혁의 필요성을 진정성을 담아 이야기한다. 이슬람교에 몸담고 있을 때 직접 눈으로 목격했던 폭력적인 사례들과, 지금 외국에서 배교자로 살아가며 느끼는 혼란들을 이 책에 담아냈다. 그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생생히 전해질 것이다.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표지, ©알라딘)


이슬람 여성 문제는 꼭 논의되어야 할 문제,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이 책은 이슬람교의 문제들을 제재 중심별로 분석했다. 저자 오은경은 이슬람교에 배어있는 여성혐오적·비윤리적 문제들을 통찰력 있게 제시한다. 가부장제의 체계를 지키기 위해 남성들의 민족주의이념에 여성들이 희생당했으며, 여성에게 재생산의 의무를 부여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여성을 희생시켰는가로 처음을 시작한다. 그리고나서 신여성이 등장한 배경과 당시에 어떤 가능성을 지녔는지 살펴보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 하는 신여성의 모습을 문학을 통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한국인으로 비교문학을 연구했으며, 예시된 문학 텍스트들은 한국의 1920년대부터 찾아볼 수 있는 신여성들의 문학과 비교해 볼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구석이 있어 흥미롭다.

  이외에도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는 베일을 남성의 페티시즘과 관련해서 조명하고, 명예살인과 여성 할례와 같이 여성의 신체를 극단적으로 다루거나 훼손하는 문제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후반부로 가면 각성한 여성들이 남성적 민족주의를 어떻게 극복하는가, ‘이슬람 페미니즘’, ‘3세계 페미니즘’, ‘탈식민주의라는 이름하에 정의된 용어들은 어떤 식으로 논의가 되었는가와 같이 비교적 근현대의 쟁점들도 정리되어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을 가져와 한국의 역사도 이슬람 문화권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이며 마무리한다.

저자는 이슬람 문화권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렇기에 여성 일반으로서 볼 수 있는 성차별적 문제들을 총망라한다. 국가와 민족주의에 의한 여성 문제는 초국가적인 문제임을 시사하며 독자로 하여금 여성에게는 국가가 없다는 말을 공감케 한다.

 

 

마치며

 

이슬람 문화는 낯선 주제일 수 있다. 그러나 종교민족주의의 이름하에 희생당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비단 남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책들을 접하면 보다 체계적으로 이슬람의 문제들을 바라보고,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도서-

아얀 히르시 알리, 이정민 옮김, 나는 왜 이슬람 개혁을 말하는가, 책담, 2016

오은경,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시대의창,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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