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으로 사유하고 싶다면, 『젠더란 무엇인가』
페미타쿠
페미니즘으로 내 경험과 느낌을 어떻게 논리 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을 사회현상으로 도출해낼 수 있을까? 페미니즘 분석은 어려운 논문을 쓰는 학자들만 가능한 걸까? 그렇지 않다. 바로 『젠더란 무엇인가』는 독자에게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하여 깊은 사유를 연습하게 하며, 가능하게 만든다. 이 또한 내가 추천하는 입문서에 포함된다. 어려워 보이는 제목을 가진 책이 입문서라니,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제목은 고리타분하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은 반전매력을 지니고 있는 책, 『젠더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저자 로빈 라일은 이 책을 ‘비교과서적 교과서’라고 칭하고 있다. ‘쉽지만’, ‘각 잡고’ 썼다는 이야기다. 페미니즘을 ‘어떻게 가르쳐야’ 효과적일지 고심한 끝에 탄생한 책이다. 페미니즘 계보를 역사적 맥락에서, 접근법에 따라서, 주제별로 다양하게 소개한다. 비교적 쉬운 말로 쓰여 있으며, 개념이나 이론을 설명할 때 적절한 사례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해하고 공감하기에 어렵지 않다. 독자에게 친근하게 대화하듯 내용을 이끌어 가며, 생각할 만한 지점을 던진다. 하지만 마냥 열린 문제점으로 두지 않고, 저자 본인의 생각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젠더란 무엇인가' 양장본 표지, ©알라딘)
‘젠더’란 무엇일까?
책 제목대로 ‘젠더’란 무엇인지 궁금할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젠더’는 주로 ‘성(sex)’이라는 생물학적인 개념과 구분해서 사회문화적인 개념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젠더’를 바라보는 한 방식일 뿐이다. 학자들마다 무엇을 ‘젠더’라고 하는지, 그리고 각각이 정의한 ‘젠더’를 어떠한 프리즘으로 볼 것인지, 그 방식은 여러 가지다.
‘젠더에 관한 이론화가 가능하기는 한가? 아니면 젠더에 관한 다양한 경험들은 공존이 어려워 통합이 불가능할까? 예를 들어, 여성들에게 무조건 중요한 이슈들 중 전 세계 여성들이 동의할 수 없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여성운동에 관한 논의는 의미가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항상 더 구체적인 상황(인도의 하층 카스트 계급 내 힌두교도 여성들의 여성운동과 대척점에 있는 중산계급 백인 미국 여성들의 여성운동 등)을 다루어야 할까? 시간과 장소를 통틀어 젠더 경험과 유사한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젠더를 다루는 교재를 저술하려는 노력이 의미가 있을까? (…) 매우 중요하고도 무척 어려운 질문이라 답하기가 겁난다. 그렇다고 책을 내팽개치고 쉬운 문제로 넘어가지는 말자. 감사하게도 젠더 학자들은 계속 이 문제를 생각했고, 여러 답을 개발해왔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차이를 만들어내는 다른 중요한 범주들과 함께 젠더를 생각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다음 논의에 나오겠지만, 좀 더 정교하고 포괄적인 젠더 분석에 관한 연구는 계속 진화할 것이다.(112쪽)
이러한 문제에 답하기라도 하듯 저자는 젠더에 대한 고민을 그대로 이야기한다. 정말로, ‘젠더’란 무엇일까? 공부를 막 시작한 우리는 학자들이 먼저 연구해놓은 선행연구를 먼저 살펴볼 것이다. 그것이 젠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발췌한 학자들의 흥미로운 구절을 읽을 수 있다. 각주가 달려있고, 대부분 원문은 번역되어있으니 단행본을 찾아보는 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답을 내리기 위하여 학자들의 연구를 읽고, 그 중 한 사람의 의견을 지지 해야 하는가? (물론 그렇게 해도 된다.)
몸에 대한 여성과 남성의 생각을 직접 인터뷰하거나 조사해보자. 몸 이미지 이슈나 몸을 바꾸기 위한 행동, 정신-몸 이분법에 대한 남녀의 생각에 초점을 맞춰도 좋다. 이러한 질문의 대답에서 남녀가 유사한가, 아니면 남녀에 따라 다른가? 여기에 나이, 인종, 사회 계급, 국적과 같은 다른 정체성도 고려될 수 있는가?(222쪽)
책에서는 저명한 페미니즘 이론을 총망라되어 있는 것은 물론 젠더를 보다 깊이 사유할 수 있는 연습문제도 수록되어 있다. 특히 연습문제는 단원 별로 주어져있는데 이 책을 읽는 이의 사례를 녹여 넣어볼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있다. 연습문제가 곧 이 책의 핵심이다. 페미니즘은 사유와 실천의 도구이며, 이를 이용하면 나만의 이야기를 사회적인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 많은 경험들을 언어화하고 구조화하는 연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위에 제시된 것과 같은 연습문제가 곧 출발점이다. 결국 젠더의 해석은 읽는 독자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을 가지고 어떻게 ‘젠더’에 접근해볼 수 있을까? 최근 읽었던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과 『548일 남장 체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해 생각할 지점이 많았기에.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과 '548일 남장 체험' 표지, ©알라딘)
크리스티안 자이델의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독일의 기자인 중산층 남성이 보온용으로 여성용 스타킹을 신는 것을 계기로 해서 여장을 하고 약 1년간 살았던 이야기가 담겨있다. 노라 빈센트의 『548일 남장 체험』도 미국의 기자인 레즈비언 여성이 남장을 하고 548일간 체험한 수기를 기록한 내용이 실려있다. 이 두 책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다뤘다는 점에서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공유하고 있는 지점이 같다. 남성이기에, 여성이기에, 젠더 스테레오타입 때문에 내비치지 못 했던 여성적 감정들이나 행하지 못 했던 과격한 남성적 행동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동성간의 교류방식 또한 여성과 남성이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다르다. 이 두 책의 저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어떻게 사회문화적으로 다른 맥락을 공유하고 있는지 본인의 가까운 경험을 통해 자세히 기술해놓았다.
‘여성성’과 ‘남성성’의 경계는 존재할까?
‘젠더와 다른 지위들이 여성의 몸에 모두 새겨져 있듯이, 남자들의 몸에도 새겨져 있다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젠더와 몸에 관한 논의에서 생기는 의문점은, 젠더가 남성들의 몸에 새겨지는 방식과 여성들의 몸에 새겨지는 방식 사이에 중요한 차이점이 있느냐는 것이다.’(169쪽)
『젠더란 무엇인가』를 참고하면 여성성과 남성성은 다분히 사회에서 구성된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책의 저자는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모험을 하면서까지 젠더와 자신의 삶을 탐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 그러나 이들의 인식엔 한계가 있다. 여성성과 남성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 하고, 그저 남녀간의 ‘타고난 차이’만을 응시하고 있다. 이분적 구분을 쉽사리 깨지 못 하는 것이다.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의 저자 크리스티안 자이델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이분화하여 나누는 세상의 편견을 깰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결국 그러지 못 한다. 여성과 그들이 타고난 ‘여성성’을 섬세하고 위대한 것이라 동경하며, 자기 안의 여성성을 찾아가는 모험에 집중한다. 여장을 했을 때 ‘여성다운’ 움직임을 찾아내려 애쓰고, 급기야 여성다운 걸음을 가르치는 수업까지 수강하러 교습소에 찾아간다.
크리스티안은 왜 여성 걸음을 가르치는 교습소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을까? 완벽한 여성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여성다운 걸음이 필요하다. 보폭이 좁고 조심스럽지만 부드럽고, 골반이 흔들리는 걸음 정도로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장을 한 남성만 여성다운 걸음이 필요할까? 아니다. 여성들이 여성다운 걸음을 걷기에 타고났기에 그렇게 걷는 것이 아니다. 지정성별 여성들도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맞춰 여성답게 걷고, 여성다운 걸음을 학습한다.
남성과 여성이 움직이는 방법의 미묘한 차이는 젠더 속성을 만드는 부분이며, 따라서 그것을 보고 누가 남성이며 여성인지 알아맞힐 수 있게 된다. 이는 남성에서 여성이 된 많은 트랜스젠더가 여성처럼 움직이는 것을 배우려고 댄스 강사에게 수업을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219쪽)
위에서 말하는 ‘젠더 속성’은 성별을 구분하는 데 탁월한 기능을 한다. 복장만 바뀌어도 우리는 상대의 성별을 쉽사리 인지하지 못 한다. 젠더 속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학습되는 것이다. 크리스티안은 여장을 하고서 길거리를 걷다가 여성으로 패싱되어 남성에게 성적, 육체적 폭행을 당한 뒤에도, 그것이 여성의 현실이며 또 다른 소수자인 트랜스젠더의 현실이라는 것을 쉽게 자각하지 못 한다. 그의 여장 목적은 무려 남녀관계의 갈등을 없애기 위한 것으로, 이전에 억제되었던 자신의 ‘여성성’을 회복시키고 자신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자아탐색에’만’ 집중한다. 본인이 죽어도 남성이라는 안도감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여장을 하면서 남자들에게 여자들이 가르쳐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 여성들이 소심한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 해서 남녀관계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548일 남장 체험』의 저자 노라는 남성간의 우정이 거칠지만 허물없고 따뜻한 것에 비해서, 여성과의 우정은 빈약하고 서로의 허물을 감싸주는 것도 없이 잔인하다고 말한다. 네드(노라의 남성 이름)는 노동자 계급의 집단에 들어가는데, 그 곳의 분위기는 꽤 ‘남성’답고 거칠다. 여성과 성소수자를 비롯한 약자를 비하하는 심한 농담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짓, 그리고 성매매를 통과의례처럼 공유하고 있는 집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엇을 못 하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모습을 인간적으로 느낀다. 네드는 사람들의 거친 농담이나 폭력의 수위를 ‘별 생각을 하지 않고 말하는 것’이고 쿨하고 멋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들의 매력에 빠진다. 그들은 하루하루 육체노동을 하면서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에, 그러한 유희거리를 참으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면서.
왜 남성은 여성보다 담배를 피울 가능성이 평균적으로 더 클까? (…) 이는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남성성에 따라 다르지만, 죽음 및 기타 건강 관련의 행위 정보를 보면 주로 남성성 때문에 남성이 여성보다 대해 더 많은 모험을 시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흡연과 상해 입기 쉬운 것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둘 다 모험을 하는 행위다. 남자들은 무분별한 방식으로 남성성을 과시하려다가 다치기 쉽다. 미식축구, 럭비, 권투처럼 몸끼리 접촉하는 스포츠에 깊이 관여하기도 하고, 남성들이 주로 일하는 직업의 종류 때문에 특히 노동자 계층 남성들이 많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186~187쪽)
남성의 호모소셜은 과격하고 거칠다. 이러한 방식들은 남성을 질병에 쉽게 노출시키며 수명을 단축시킬 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한다. 호모소셜은 그저 남성을 희생시키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자신들의 집단에 ‘승인된 남성’만을 들이고, 다른 사람들을 배제시키기 위해 유지된다. 남성들이 호모소셜 집단 내부에서 구성원들의 승인을 받기 위해 몸부림을 치며 겪는 과정은 반강제적으로 실시된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도태되지만, 이에 따르면 진정한 남성이라는 칭호를 획득하며 남성의 기득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네드가 잠시 경험했던 남성들의 세계 또한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소수자 혐오가 꼭 필요했을 것이다.
마치며
이 책의 개념을 가지고 내 나름의 분석을 해보았다. 젠더는 이렇게 다양하게 읽힐 수 있다. 『젠더란 무엇인가』의 젠더는 여러분의 손 안에 달려있다. 이 책을 가지고 연습을 시작해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매우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참고도서-
노라 빈센트, 공경희 옮김, 『548일 남장 체험』, 위즈덤하우스, 2007
로빈 라일, 조애리 외 옮김, 『젠더란 무엇인가』, 한울, 2015
크리스티안 자이델, 배명자 옮김,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지식너머,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