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빻덕에게-이 목소리가 너에게 닿기를!

By.광개토女


 


빻았다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물론 여기서 말할 빻았다가 사전적 의미의 물기가 없는 것을 짓찧어서 가루로 만들다는 아니라는 걸, 꼭 헤비 인터넷 유저가 아니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외모를 비하하는 의미의 은어로 빻았다를 사용하고 있다.

빻았다가 인터넷 대중들 사이에 확산된 건 프로듀스 101가 방영된 이후다. 일부 사이트에서 출연진이자 프로듀스 101의 센터 멤버였던 최유정의 외모를 보고 빻유정이라는 별명으로 부른 것이 확산되어 일종의 밈이 되었고, 이후 여자 아이돌들의 이름이나 그룹명 앞에 외모를 조롱하는 의미의 을 붙이는 데 서슴없어졌다. 현재도 포털 사이트에 빻았다라는 동사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여자 아이돌의 이름이나 그룹명이 따라 붙는다.

걸그룹에 대한 공개적인 외모 조롱은 최근 있었던 걸그룹 우주소녀의 남자팬들, 소위 말하는 우남빻덕의 무례한 행동에서 정점을 찍었다. 스타쉽의 13인조 걸그룹 우주소녀는 지난 14일 세 번째 미니 앨범인 From. 우주소녀를 발표하고 타이틀 곡 너에게 닿기를로 활동했다. 몽환적인 이미지와 색감의 향연인 뮤비와 발랄한 멜로디의 타이틀 곡은 대중들에게 여러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219일에 있었던 대구 팬사인회에서 멤버 은서가 눈물을 터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사인을 받던 남자 팬이 외모를 비하할 목적으로 ‘(너와 닮은) 축구선수 즐라탄을 아냐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16년 8월 부산에서 있었던 우주소녀의 팬사인회 영상.

한 남성 팬이 멤버 은서에게 '즐라탄'을 아냐고 묻고 있다.

(출처 : https://youtu.be/O_r3ANMhmoY )




 

이는 우발적으로 행해진 장난이 아니었다. 28일에 업로드 된 이 영상에는 168월 부산에서 진행된 팬사인회에서 한 남성 팬이 축구선수 즐라탄을 아냐고 묻고, 은서가 누구냐고 되묻는 끝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담겨있다. 질문을 하자마자 행사장 곳곳에서 터지는 남자 팬들의 웃음소리는 팬덤 내에서 은서가 오랫동안 외모를 비하당해 왔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우주소녀 팬덤은 놀랍게도 두 의견으로 갈라졌다. 팬들을 만나는 장소인 팬사인회에서 운 은서가 프로답지 못하다는 비판이 인 것이다. ‘일부팬들은 본인들이 누리던 여성의 외모를 조롱하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한 채 은서가 예민하다’, ‘장난을 받아줄 줄 모른다등 엇나간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급기야는 그날인가보다라는, 여성의 의견을 묵살하기 위해 곧잘 사용되는 혐오성 짙은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우주소녀의 일부팬들의 발언을 지켜보던 다른 아이돌 팬들과 우주소녀 팬들은 이들에게 우주소녀 남자 팬들 빻았다라는 의미로 우남빻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걸그룹의 외모를 비하하기 위해 사용되던 빻았다가 남자 팬들의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짧은 생각, 가꾸지 않는 외관을 비하하기 위해 역으로 사용된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16년 3월 26일 대구 동성로 게릴라 콘서트에서

'심쿵빻파워'를 해달라는 팬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최유정의 모습.

연예인이라고 해서 외모비하적인 농담을 웃으며 받아주고 수용해야할까?

(출처 : https://youtu.be/fSKflH0m350 )


 



-’은 남자 아이돌의 이름 앞에는 붙지 않는다. 남자 아이돌 팬덤 대부분을 형성하는 여성 팬들은 빻았다라는 말이 외모를 조롱하는 의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난으로라도 외모를 조롱하는 일이 바람직하지 못하단 합의가 팬덤 내에 자리 잡고 있다. 남자 아이돌을 향한 빻았다는 음성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팬덤은 누군가 남자 아이돌에게 빻았다고 발언하면 교정을 넘어서 사이버 불링에 해당하는 린치를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여자 아이돌과 은 친하다. 앞서 언급한 최유정은 오프라인 행사에서 직접적으로 팬에게 빻았다에서 파생된 심쿵빻파워를 보여달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는 당시 최유정의 팬덤이 빻유정에 대항하려 선택한 방식이 빻음을 인정하고 귀여움이라는 의미로 단어를 희석시키는 정도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유정이 이후 본인의 외모에 낮은 자신감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장난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팬들은 계속 존재한다.







나무위키 '최유정' 항목 외모 파트

여전히 '못생겼다'는 외모비하가 장난이라고 주장한다.

(출처 : https://namu.wiki/w/%EC%B5%9C%EC%9C%A0%EC%A0%95 )

 





여자 아이돌이란 직접적으로 외모를 지적하고 네가 귀여워서 그런다고 얼버무릴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마치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를 괴롭히면 너를 좋아해서그러는 것이라고 여자아이를 되려 가르치려 드는 행태와 유사하다. 이런 젠더에 따른 차별을 인지한 몇몇 팬들은 운동적 차원에서 남자 아이돌을 향해 일부러 빻았다는 단어를 쓰길 고집하기도 한다.

아이돌 그룹과 팬 사이에는 항상 엎치락뒤치락하는 미묘한 권력구도가 존재한다. 팬들은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곤 하면서, 동시에 아이돌에게 무섭게 상품일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성 비율이 높은 팬덤을 가진 걸그룹과 팬덤 사이에서는 오직 팬덤이 우위인 구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프로듀스 101출연 당시 김세정의 남자 팬이 세정의 서포트 돈을 모금 받으면서 아이패드는 사주지 말자, 버릇이 나빠진다라고 발언했던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그가 진행한 서포트 물품 가격이 입금됐을 거라 예상하는 금액에 한참 못 미치자 서포트에 참여 했던 사람들이 해명을 요구했고, 일부 물품과 비용을 서포트 진행자가 횡령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이후 사과문에 나이도 자신과 비슷한 세정에게 많은 돈이 서포트 비용으로 입금 되는 것이 배가 아팠다고 전했다








당시 DC 김세정 갤러리에 올라왔던 글들

(위) 서포트 총대 (아래) 서포트 참여자이자 김세정의 팬




당시 모든 팬들을 분노케했던 총 350만원 어치의 서포트 물품 사진

(출처 : 구글 )





남자 아이돌 팬덤이 서로 어떤 비싸고 귀한 물건을 선물하는 지 경쟁하는 것과 달리, 여자 아이돌 팬덤은 아이돌의 필요와 기쁨보다 팬인 자신이 잘난 여성을 해체하는 기쁨을 더 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판매자와 소비자의 구도보다 젠더권력이 더 강력하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남성젠더에 더불어 소비자 권력까지 얻은 남성 팬들은 걸그룹에게 팬사인회나 공개방송 등에서 네가 나에게 잘 해주지 않으면 팬을 그만 두겠다는 협박을 수시로 가하고, 언어폭력이나 다름없는 모욕적 언사를 하고도 자신을 향해 웃어주길 요구한다. 자신이 가한 폭력은 그저 장난으로 얼버무리고 피해자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책임의 화살을 돌린다.

이런 젠더 폭력적 만족감을 구하는 남성의 모습은 아내를 폭행하는 남편의 모습과 유사하다. 경제력을 끊어버리겠다는 협박으로 아내를 구속하고, 아내에게서 성적 만족감을 얻는 동시에 폭력이 주는 우월감을 얻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자 아이돌은 자신의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재능을 판매하고 있을 뿐인데, 가정폭력과 유사한 폭력에 실제로 노출되고 있다.


 


걸그룹을 좋아하는 여성 팬들과 멤버들 사이에는 독특한 유대관계가 있다. 이 유대관계는 여덕(여자 팬)이 더 늘어야 한다는 소망에서 기인한다. 걸그룹 여성 팬들은 팬질을 위해 남성 팬들에게 번호를 달라거나 함께 식사를 하자는 추근거림부터 성희롱과 폭력을 감수하기도 한다. 많은 걸그룹 여성 팬들이 남성 팬들의 폭력에 질려 탈덕하기도 한다. 각종 행사에서 신체 및 외모비하, 행동교정, 조롱을 당하는 걸그룹 멤버들을 생각해보면 멤버들과 여성 팬 사이의 유대관계는 당연함을 넘어서 필수적인 여성연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남자들은 아이돌 팬질을 할 기쁨조차 누릴 수 없다는 말이냐!’는 볼멘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우남빻덕이 도래한 지금, 남성 팬들은 본인의 덕질 원동력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기쁨에서 오는지, ‘어리고 예쁜 여성을 비하하는 즐거움에서 오는지 돌이켜 볼 때이다. 물론, ‘일부빻은 남성 팬들에 한해서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세일러문 크리스탈과 오마이걸입니다.

 

생태주의와 탈식민주의 협주곡 제1번 페미조

(Ecologism and Postcolonialism Concerto No.1 in Feminism)

최존

 

  

  내가 채식주의를 행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페미니스트를 바라보는 뭇 사람들의 시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괴짜다.

유난이네.

누가 알아준다고 힘들게 그래.

너 하나 그런다고 세상이 얼마나 바뀔 거 같아?

 

  누군가가 채식주의자든 페미니스트든 가장 힘든 건 주변 사람들의 냉소가 아닐까 싶다.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괴롭거나 힘든 일만도 아니다. 오히려 그 신념을 거스르는 게 더 힘든 법이다.

  너무나도 쉽게, 이미지만을 소비하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내가 먹고 있는 음식 하나에 얼마나 많은 코드가 담겨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내 눈 앞에 놓인 음식은 그저 내 배를 채우고 만족감을 선사하는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 숨겨진 수많은 의미들을 읽는 순간, 아무 생각 없이 삼키던 걸 잠시 멈춘 채, 생각하게 된다. 내가 무엇인가를 먹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더 이상 아무렇지 않게 삼킬 수는 없게 된다.

  지금은 채식을 하고 있지는 않다. 바깥에 있는 시간이 길거나, 일정 상 시간이 없으면 아무래도 채식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문제의식을 저버렸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의식을 갖고 계속 실천하려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다시 채식을 시도할 예정이다.

 

  페미니즘 내에서도 비주류인 생태주의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성주의와 관련된 논문들을 섭렵하던 중, ‘여성주의와 채식주의라는 논문을 읽게 된 것이 계기였다. 기존의 생태여성주의의 한계점을 비판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채식주의적 생태여성주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논조의 글이었다. 시야가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페미니즘이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하는 학문이라면 생태주의 페미니즘은 그 사고의 확장판 같았다. 미소지니스트(Misogynist)들이 남성중심주의를 바탕으로 우월하고 강한 남성열등하고 약한 여성으로 인간을 구분해왔다면, 종차별주의자들은 인간중심주의를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을 대립된 것으로 바라본다. 그들에게 자연은 인간에게 종속된, 개발의 대상일 뿐이다. 가부장제의 억압을 철폐하자고 외치면서 그 외의 억압은 도외시하는 것은 일종의 위선이 아닌가 싶었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탈식민주의는 서구-문명-남성적VS()서구-야만-여성적과 같은 근대의 이분법적 사고를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나 같은 경우는 개인적인 경험이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토대로 크게 작용했다.

  대학교 1-2학년 때 외국인 유학생을 도우는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아시아 출신의 여성들이었다. 어쩌다보니 터키에서 온 유학생과 매우 절친한 사이가 되어 그 친구의 친구들과도 같이 어울리고, 방학 동안 터키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은 내가 알게 모르게 갖고 있던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마주하고 깨트리는 데 아주 크게 작용했다. 이전까지 나는 무슬림 여성들을 수동적이고 억압받는 피해자라고만 생각해왔다. 물론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이 행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을 아무런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기만 하는 존재로 파악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일례로 내 친구의 가족과 그 친척들의 모습을 보자면, 집에 손님이 왔을 경우, 남자는 남자들끼리 여자는 여자들끼리 모여 밥을 먹는다. 얼핏 들으면 식사자리에서도 차별과 억압이 행해지는구나 싶겠지만 실제 모습은 그렇지 않다. 남자들은 좁은 방에서 식사만 하는 반면, 여자들은 넓은 방에서 요란스럽게 식사시간을 즐기고는 했다. 손님이나 친구를 초대하여 흥을 나누는 것도 주로 여자들이다. 또한 난 그전까지 무슬림 여성들이 담배 피는 걸 상상도 못했는데, 다들 담배도 거리낌 없이 피우고, 신나게 엉덩이춤도 추고, -오신하지 못하게 서로 발길질을 하며 노는 것이 아닌가. 생각지도 못한 풍경을 보며 내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물론, 터키가 세속국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이슬람국가에 비해 자유로운 면이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무슬림 여성들에게서 수동적이고 억압받는 피해자의 이미지만을 투영하는 것은 지나치게 서구중심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게 아닌가 싶다.

 

(▲ “Your Body is a Battleground”,1989, ©Barbara Kruger/The Broad)

   

  탈식민주의는 어떤 지역 간, 국가 간의 역학관계에서만 해당하는 개념이 아니다. ‘Your Body is a Battleground(여성의 몸은 전쟁터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1980년대에 임신중절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외치며 나온 구호이다. 탈식민주의의 관점에서도 이 말에 대한 유의미한 해석이 이루어질 수 있다. 식민주의 담론 중 하나가 자연’, ‘순수로 대표되는 피식민지 지역을 근대화된 서구의 손길로 정복하고 문명화하는 것이 계몽이라는 것이다. 여성의 몸을 남성, 그리고 남성중심주의의 사회가 식민화하는 것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역시 탈식민주의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분야가 타투(Tattoo). 나는 타투에서 몸의 정치학에 해당하는 내용을 읽을 수 있다고 본다. 사회가 만든 아름다움을 위해 여성이 성형수술을 하고 다이어트를 하는 신체변형은 자연스러운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그러한 미의 기준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몸에 그림을 그린다든가 피어싱을 하는 등의 신체변형(Body Modification)’추한 것’, ‘올바르지 못한 것으로 낙인찍힌다. 이러한 편견과 낙인은 특히 여성에게 더욱 엄격하게 작용한다. 때문에 여성주의의 시각에서 타투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내가 요새 구상하고 있는 타투 디자인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에 메두사의 얼굴을 합친 것이다. 모두가 숭상하는 미의 상징인 비너스에 쳐다보기만 해도 온 몸이 돌로 굳는 추한 메두사의 얼굴의 조합이라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이 글은 이슬(YouTube ‘페민이스트계정 운영자)’님의 사연을 바탕으로 구성됐습니다.

이야기를 공유해주신 이슬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연말연시 한국의 페미니즘, 기록하고 기념하라

페미타쿠

 

3년간 한국은 페미니즘 이슈로 시끄러웠다. 페미니즘이 싫어 IS로 가고 싶다는 김군이 등장했고, 메갈리아가 탄생했으며, 강남역 10번출구 사건을 구심점으로 많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최근에 박근혜 탄핵을 위해 사람들이 모인 시위에서 페미니스트들이 페미존을 만든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들의 관심과 맞물려 페미니즘 도서도 쏟아져 나왔다. 사실 이전에도 여성주의 이슈는 많았지만, 이번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페미니즘 도서가 출간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사건을 가시화하고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사건을 제대로 기록하고, 이 화력을 계속 가지고 가려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이번에 나온 단행본들의 수가 그러한 관심의 정도를 말해준다.

  연말이니 한 해를 정리하는 느낌으로 좋은 페미니즘 도서들을 뽑아보았다. 특히 이론서뿐만 아니라, 20대 페미니스트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책이 출간된 것이 특징이다. 이번호에서는 페미니즘 뽕을 맞아 유행하고 있는 책들을 리뷰해 보겠다.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표지, ©알라딘)

 

여성에게도 역사가 존재한다,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역사적 상상력을 가지고 접근하라. 여성에게도 계보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의 저자가 펴낸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는 지금 어느 때보다 필요한 말을 우리에게 전한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나와 비슷한 나이의 페미니스트들이 겪는 고민을 잘 이야기하면서도, 한 발 앞서나갔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나는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2015년과 2016년은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 논의가 활발했다고 썼다가는 지웠다. 1990년대 한창 페미니즘이 흥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으니, 그저 언제나 지금이 전성기처럼 보이는 착시 탓은 아닌가 생각한 때문이다.(9) 


 

  우리는 여성에 대한 기록이 있어도 알지 못 한다. 여성의 기록은 금세 지워지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분류되어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매우 공감하고 있었던 나는 본문을 읽는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페미니즘 책을 많이 읽어보았다고 생각했는데, 독립운동을 한 여성은 누구인지, 여성이 발명한 것은 무엇인지, 여성들이 나서서 해결한 사건이 얼마나 많은지, 언제였는지 묻는 연습문제에 하나도 대답하지 못 했다. 부끄러웠다. 앞으로 어떤 지식을 발굴하고 기억해야 하는지 동기부여를 주었다.

 

 


오늘날까지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면? 어떤 억압도 깨어지지 않은 가운데 맞이했을 당신의 오늘을 상상하여 써보자.(58)


 

  이 책은 페미니즘 문제를 가지고 참신하고 재미있게 독자에게 다가가면서 보다 실질적인 정보들을 전달한다. 그리고 상상하는 문제는 우리에게 페미니즘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것이며 더 나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한다.

 

 

 


여성의 성취가 운 좋게 기록으로 남는 데까지 성공했다 해도, 그 기록은 빛이 들지 않는 구석자리, 혹은 책장 맨 위칸처럼 손 닿기 어려운 데 놓인다.(88)

그런데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된다. 기록이 있는데 왜 진작 알아보고자 하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은 넣어두고, 앞선 여성의 성취가 놓여야 할 마땅한 자리를 요구해야 한다. (90)


 

  기록물은 기록하고 끝나지 않아야 한다. 잊히지 않고 전해지려면 과거의 성취를 잊지 않고 끊임없이 기념해야 한다. 저자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여성의 삶을 대하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계보는 기록과 기념으로 남는다.

 

 

 

(▲'페미니즘 선언' 표지, ©알라딘)

 

급진주의 페미니즘 정신의 흐름, <페미니즘 선언>

 

1210일에 첫 쇄를 찍어 서문에서 한국의 낙태시위가 기록되어있다. 이 따끈따끈한 책을 바로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었다! 꽤 감흥이 크다, 누군가가 바로 신청해두었다는 이야기인데,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이 책은 선언문만 모여 있는 독특한 책이다. 앞에 30페이지가량에는 미국에서 성폭력, 낙태, 시민권, 퀴어 운동의 사진이 실려 있고 그 다음부터 유명한 선언문들을 확인할 수 있다. 선언문만 담겨있어 별 내용 없을 것 같다고 느낄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페미니스트들의 생생한 경험에 기반한 호소력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독자에게 선언문을 직접 듣는 것처럼 감동을 주며 유머와 풍자도 가미되어 읽는 것이 즐겁다.

  이번 전국민시위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선언문을 쓰고 독자적인 구호를 외쳤듯, 미국 역사에서도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선언문을 쓰고 절박하게 구호를 외쳤다. 이 페미니즘 운동의 기록은 비단 한국에서만 운동하고 있는(었던) 게 아니라, 우리는 모두 운동하고 있으며 모두 연결되어있다는 말을 실감케한다레드 스타킹의 선언문에서 낙태 공개발언은 한국의 검은 시위를 떠오르게 한다. 1969년 뉴욕에서는 당시 저명한 여성학자들과 많은 여성들이 낙태 경험이 있다고 입을 모았고, 낙태 불법에 항의했다.

 

 


드센 소녀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이 남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점차 깨닫는다. 직장에 다닐 때나 어떤 단체에 속했을 때나 드센 년은 조용히 앉아 지시받은 일을 처리하는 데 만족하지 못한다. 드센 년은 자기만의 사고방식을 지녔고, 그걸 쓰길 원한다. 자신이 더 높이 올라가기를, 창조적이기를, 책임을 맡길 원한다. 그녀는 자기가 가진 능력을 잘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또 활용하기를 원한다는 것도 안다. 물론 그것은 그녀의 남자 상사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드센 년에게 남자 상사의 기쁨조 되기는 안중에도 없는 문제다.(62)


 

  드센 년 선언문은 당신이 페미니스트라면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드센 년 묘사는 웃기면서도 슬프다. 삶의 주체, 진취성, 능력, 남자였다면 모두 긍정적일 속성들이다. 이것들을 여성이어서 가지지 못 하는 '드센 년'들은 바로 우리, 페미니스트들이다.

 

 


레즈비언이란 무엇인가? 레즈비언은 모든 여성이 폭발 직전까지 응축해놓은 분노다. -<레즈비언 페미니즘 선언문>(113쪽)

 

나는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 무슨 혁명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들은 반동분자-기득권-이익-권력의 체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로빈 모건, <자매애는 강하다(sisterhood is powerful)>의 서문(166쪽)

 

요컨대 아버지들은 남성성으로 세상을 부패시켜왔다. 남자는 부정적인 미다스의 손을 가졌다. 뭐든지 그가 만지기만 하면 전부 똥으로 변한다. -밸러리 솔래너스, <남성거세결사단 선언문>(185쪽)

 

수동적이고, 적응을 잘하며, 남자들을 향한 존경심과 경외심이 넘치는 아빠딸은 자신과 만난 남자가 역겹고 무딘 주절거림을 계속하게 둔다. 이는 그녀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밸러리 솔래너스, <남성거세결사단 선언문>(198쪽)


 

  공감되는 문장들이 많아 몇 문장을 인용해보았다. 수록된 선언문 중 남성 기득권에 대한 풍자를 하지 않은 선언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밸러리 솔래너스의 남성거세결사단 선언문은 강한 풍자와 유머를 가지고 남성들을 희화화하며 통쾌함을 준다. 메갈리아에서 했던 미러링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머감각이 어떤 웃음을 가져오는지, 어떤 비판적 원동력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보고 많은 사람들이 웃고 해소했으면 한다. 

 

 

 

마치며

위 두 권은 가장 최근에 나온 책으로 지금 읽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면 당장 읽어보라고 재촉하고 싶다.

  두 권 만을 소개해서 아쉽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에게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근래에 얼마나 많은 책이 나왔는지 훑어보는 것을 권한다. 도서관에서 페미니즘을 치면 검색어에 걸리는 단행본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어 기쁘다책과 기록물들이 나온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내년에는 페미니즘 책을 찾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늘어났으면 한다

  연말을 뜨겁게 만드는 책! 페미니즘 도서와 한 해를 마무리해보자.

 

 

-참고도서-

이민경,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봄알람, 2016

한우리, 페미니즘 선언, 현실문화, 2016

내 삶을 짓누르는 살

암탉

 

    내가 요즈음 취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스트레스받는 것은 자소서도, 면접도 아닌 외모 꾸미기이다. 사회에서 말하는 취준생의 틀에 내 모습을 맞추면서 개성이 지워지는 것 같아 씁쓸했다. 또 한편으로는 사회적 기준에 내 모습을 맞추는 것이 처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릴 적 다 컸네! 미스코리아 나가도 되겠다.’는 동네 어른들의 인사말부터 넌 여자애가 맨날 후드티만 입고 다니냐? 좀 꾸미고 다녀라는 남자 선배의 말까지, 의식하지 못했을 뿐 내 몸을 둘러싼 사회적 담화는 끊이지 않고 있었다. 나를 졸졸 쫓아다니는 외모 이야기가 지겨워졌다. 거울을 통해 바라본 내 몸이 정말 몸인지 의문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내 몸을 되찾고, 내 주위를 맴도는 진정한 여성의 몸이라는 망령을 떨쳐내고 싶다. 그래서 떠들기로 했다. ‘진정한 여성의 몸이 아닌 내가, ‘여성의 몸에 대해. 5호부터 함께할 새 코너 <내 몸 탈환기>에서는 여성의 몸, 즉 외모를 둘러싼 사회적 시선에 대해 20대 여자 대학생의 시선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대학교 가려면 살 빼야 돼!”

 

    고3이 되고 본격적인 입시 준비에 돌입했다.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공부만 하다 보니 살이 찌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눈에 띄게 통통해진 내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참기 힘들다는 듯 (그들의 말에 따르면)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여자애가 왜 이렇게 살이 쪘니! 그래도 고3이니까 괜찮아 대학 가서 살 빼면 되지~”

 

    나는 졸지에 고3이라는 신분을 빌어 내 몸의 살찜을 허락받은 꼴이 됐다. 내 몸의 상태조차 누군가에게 허락받아야 하는 사회, 그곳이 내가 살고 있는 사회였다. 그들은 어떠한 기준을 정해 놓고 날 그 기준에서 벗어난 반항아 취급했다. 3이라는 신분을 빌어 살찜이라는 일탈을 허락해줄 테니, 언젠가는 끝내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갑자기 찐 살을 두고 마치 시한폭탄이라도 떠안게 된 것처럼 빨리 떨쳐내라고 구는 것이 싫었다.

 

    대학에 합격하고 고3이라는 살찜 면죄부를 박탈당하면서 합격 축하한다는 말보다 대학교에 가려면 살 빼야 한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합격 발표가 나고도 다이어트하지 않는 나에게 엄마는 답답하다. (네 몸) 더는 못 봐주겠다.”고 했다. 마치 내가 마름을 빚지기라도 한 것처럼 구는 엄마 때문에 심란했다. 내 몸은 봐주지 못할 잘못된 몸인가?

 

빼앗긴 몸에도 봄은 오는가

 

    대학교 1학년 때 들어간 동아리는 Body shaming의 장이었다. 엄마의 닦달에 못 이겨 어느 정도 체중 감량을 하긴 했지만, 동아리 친구들 사이에 서보면 내 다리는 꽤 통통한 편이었다. 이런 내 다리를 두고 왜 치마를 입냐?’, ‘상체만 보면 괜찮은데 하체를 보면···.’ 하는 식의 발언들이 오고 갔다. 초면에 묻지도 않은 다이어트 방법을 알려주는 이도 있었다. 지금 같았으면 당신은 내 몸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리가 없다고 쏘아붙였겠지만, 당시에는 이런 발언에 이의를 제기하면 동아리의 분위기를 망치게 될까 무서웠다.


    여성의 몸은 주인 없는 땅처럼 많은 이들로부터 침범당한다.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기에 간섭당해도 되는 몸이다. 특히 여성 비만인은 마름의 기준아름다운 여성의 기준에서 모두 벗어난 완전한 이방인이다. 그들의 몸은 사회적으로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여 체제를 어지럽힌다. 이렇게 비체화된 몸은 손쉽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 사회는 기준에서 벗어난 여성들의 몸을 이질적이라고 판단하여 기준 안에 짜 맞추기 위해 지적을 아끼지 않는다. 나아가서는 충격요법이랍시고 비난을 일삼기도 한다. 여성들의 몸은 사회적으로 빼앗겼다. 말 그대로 전쟁터와 다름없다.

 

* 비체(abject)란 대상(object)~이 아닌을 뜻하는 접두사 ‘a-’를 붙여 만든 단어로 주체(subject)도 객체(object)도 아닌, 경계를 넘나들며 정체성, 질서, 체계를 어지럽히는 것들을 말한다.[각주:1]

 

비혐(비만 혐오) 사회에서 살아남기

 

    광고 수업 시간이었다. 교재 한 귀퉁이에 실린 조그만 예시가 눈에 띄었다. ‘내 몸매 완전 착해라는 카피의 핸드폰 광고였다. 이미 관용어로 자리 잡은 착한 몸매라는 말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몸의 생김새를 옳고 그름, 착하고 나쁨으로 나눌 수 있는 걸까?

 

    우리 사회에서 몸무게는 이미 윤리의 범위 안에 속해 있다.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먹으면 죄책감을 느껴야 하고 야식 섭취는 양심 없는행동이다. ‘회개리카노라는 단어를 아는가? 잘못을 뉘우친다는 뜻의 회개와 아메리카노의 합성어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그동안 섭취했던 칼로리가 0으로 초기화된다는 농담에서 파생된 신조어이다. 고칼로리의 음식을 먹고 지방분해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회개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살찜을 죄악시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살찜에 대한 비판적 정당성을 제공하고 나아가 외모지상주의를 더욱 공고히 한다. 살찜은 죄악이고 양심 없는짓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의 연장선에 비만 여성을 괴롭히며 즐거워하는 풍토가 있다. TV를 켜면 내 또래의 비만 여성을 찾아볼 수 없다. 있다고 해도 자신의 몸이나 식습관을 희화하여 개그 코드로 소모하는 코미디언뿐이다. 그들이 비만 여성이기 때문에 소외되고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소름 끼친다. 장군 어깨, 드럼통 허리, 무다리 등등 여성의 신체를 파편화해 비하하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쓰이고, 여성의 신체에 대한 비난을 하나의 웃음거리로 소비하는 것이 당연한 나라이다. ‘뚱뚱한 여자그 자체이므로 그들을 혐오하고 괴롭히는 데에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한 사람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비만 여성을 괴롭히고 비하하며 시청자들의 웃음을 이끌어 내는 풍조는 현실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비만 혐오도 우아하게 할 수 있다. ‘자기관리라는 마법의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관리의 미명 아래 누구나 우아하게 비만인을 혐오할 수 있다. 자격지심 따위의 말을 붙여 상대방을 간단하게 프로 예민러취급하거나, ‘널 생각해서 말해주는 건데~’로 운을 띄움으로써 상대방의 입을 원천 봉쇄해버리면 된다. 여기서 널 생각해서 말해주는 건데~’내가 지금부터 너의 몸을 평가하고 참견할 건데 널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포장해놓았으니 내가 네 몸을 비난해도 욕하지 마라고 봐도 무방하다.

 

    자기관리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 기준에 옳고 그름이란 없다. 또한 자기관리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그 잣대를 들이댈 권리도 없다. 사실 타인의 몸매를 지적하는 이들이 정말 자기관리 때문에 타인의 몸매를 지적하는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여성이 열등해서 2등 시민이 됐다는 것처럼 자신의 근본 없는 비하 발언에 타당성을 부여해 줄 가장 적합한 말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재생산될 뿐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경제와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여성을 착취하고 미의 신화라는 감옥 안에 가두어버린다.


    살은 그냥 살이고 몸은 그냥 몸이다. 어떠한 죄악이나 잘못도 아니고 옳고 그름의 개념도 없으며 그 사람의 행복함이나 게으름을 보여주는 정확한 지표가 되지 못한다. 설사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누군가의 외모를 평가하고 비하하는 행동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 줄 수 없다.

 

    남들의 기준에 내가 나쁜몸매일지라도 난 착한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으며 사랑받을 수도 있다. 나에겐 모든 사람들이 착하다고 칭하는 몸매를 갖고 사회적 아름다움을 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 사회가 나의 몸을 잘못됐다고 결정하고 부끄러워하길 강요할지라도 난 내 몸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가치중립적인 내 몸에 부정적인 가치를 덮어씌우는 것은 사회이다. 잘못된 것은 무엇인가?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제 우리가 사회에 되물어볼 차례이다



필자 소개 

여태껏 내 손으로 덕질한 것 중에 페미니즘만큼 재밌는 게 있었나? 페미니즘에 강하게 치인 새내기 페미입니다.

  1.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 이현재, 2016 [본문으로]


출처 : 뉴시스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821_0014338235&cID=10201&pID=10200)



지난 728, 이화여대 학생들은 미래라이프 대학 신설을 반대하며 총장실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대학이라면 돈을 주고 학위를 사고팔아선 안 된다는 것이 이화여대 학생들의 주장이었다. 결국 83, 총장 측은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을 철회했고 11월에는 총장 자리에서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화여대에 재학 중이던 정유라의 학점 특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비선실세 최순실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숨겨진 마지막 퍼즐을 찾은 것처럼 박근혜 정권의 석연찮음은 최순실과 8선녀, 그리고 재벌들의 등장으로 서서히 맞춰지기 시작했다.

 분노에 찬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혔다. 그러나 시위의 양상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고 외치는 이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페미존을 만들어 여성혐오를 비롯한 약자 혐오 발언을 막고, 집회 주최자들에게 혐오 방지 매뉴얼 사용을 권고했다. 시위는 과거 성추행과 각종 혐오발언으로 물들었던 모습에서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모습으로 변하면서 마침내 100만 명이란 사람들을 광장으로 이끌어 낸다.

 그리고 129일 금요일. 42일 간의 퇴진 시위 끝에 국회에서는 234표의 압도적인 찬성표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탄핵안을 발의하고 가결시키기까지의 과정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당대표의 행보는 특히 눈에 띄었다. 탄핵안이 헌재로 넘어간 지금도 많은 여성 의원들이 각자의 정치 필드 내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던데, 현대 대한민국은 나라를 망치는 빌런도 여자, 나라를 구하는 영웅도 여자다.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더없이 와 닿는 요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정치권에서 활발히 움직이는 페미니스트 여자 대학생들을 회담에 모셨다. 정치권의 여성혐오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의 성정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출처 : 페미당당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femidangdang/)

 

5차 여대회담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 정치권 내 여성혐오

회담 진행 : 광개토





 

Q.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지안: 페미당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울대 노어노문 전공 학생이다.

-소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학생이다. 녹색당 당원 활동하고 있다.

-은지: 가톨릭대 국사학과 수료생이다. 학교 교지를 만들고 과 학생회 생활을 했다. 에코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고 있다.

-현수: 서울권 대학 경영대에서 학생회를 했었고 지금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이는 연합동아리 평화나비에서 활동 중이다.

 


Q.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사회 곳곳에서 여성혐오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회담자들이 보고 느낀 여성혐오를 나눠보자. (친구, 부모님, 몸담고 있는 단체, 퇴진 집회 등)

 

-소라: 자유발언대에 나와서 발언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때 재밌었다. 4-50대 남성인 사람이 올라가자마자 미쓰박!!!!’이라 외치자 앞의 사람들이 환호했다. 녹색당 사람들 얼굴은 싹 굳어가고 있었다. 그 남성은 미쓰박이라고 해도 싸!’라며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인상 깊었던 건, 자유발언을 진행하던 사회자가 방금 말했던 미쓰박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한 표현이었으며 자유발언대에서 모든 혐오적 발언을 지양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것이었다.


-은지: 처음에 집회 갔을 때 김제동이 이런 발언을 했다. 본인이 꿈꾸는 미래는 결혼해서 아들딸을 낳는 것인데, 아들이라면 독립시키고 딸이라면 내가 계속 지원하고 끼고 살겠다고. 미안하다는 이유였다. 딸이 자기를 닮으면 외모가 좋지 않을 거란 (자기 비하적) 유머를 하려고 했던 거다. 그게 다른 사람들이 웃고 즐기는 멘트가 된 게 불쾌했다.

또 본부의 자유발언대 말고 조그만 트럭의 자유발언대에서 우리 또래의 남학생들이 하던 발언도 생각난다. ‘우리가 왜 여성을 대통령으로 뽑았나, 어머니처럼 잘 감싸주는 포용력 있는 자세를 기대해서 뽑은 거 아니냐더라. 내 주위의 사람들은 동의를 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이 그 발언을 정치적 비판으로 여겨 환호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들었다. 사회자가 없었기 때문에 거르지 못 하는 말이 많았다. 집회에서 나오고 싶었다. 이런 말을 들으려고 나왔나? 다음 집회에 가고 싶지 않았다.


-현수: 첫 번째 전국민 시위를 하고 나서 성추행 후기가 많이 올라왔다. 사람들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은 그렇게 놀랍지 않았다. 그 수가 모이면 분명히 그런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놀란 점은 성추행을 지적하면 공격한다고 느낀다는 점이었다. ‘시위 참여자들도 다 좋은 마음으로 나온 것이다’, ‘성추행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엄청 소수인데 다수의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만드냐’, ‘일반화 하지 말라고 하는 거 있잖나. 그럼에도 진보하고 있다고는 생각한다. (예전에는) ‘미쓰박이 부적절한 발언이니까 삼가달라는 정리 멘트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여성혐오적 발언들에 언짢아하면서도 그게 시정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안: 자유발언대에서 미쓰박’, ‘박양발언이 있었고, 사회자가 정정을 한 사건에 대해 뿌듯함을 느낀다. 열 개 넘는 여성주의자 단체들을 모아서 페미존을 모아서 나갔었는데 그 때가 2차 페미존 때였다. 자유발언자가 미쓰박’, ‘박양발언을 해서 여성혐오 발언하지 말라고 구호를 다 같이 외쳤다. 공동행동 페이스북 주최 측에 정정과 사과발언을 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공감한다는 답변이 오고, 바로 사회자가 (현장에서) 정정발언을 했다. 은혜가 말했듯 시위 내 여성혐오가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 못 했는데, 바로 피드백이 오고 바뀌어 나간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자는 대응방안을 마련한 건 1차 페미존으로 집회에 참여했을 때 김제동의 발언을 듣고 나서였다. 김제동은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어머니와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모자보건법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모자보건법을 모성보호법이라고 말하면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어머니와 그 옆에 있는 아버지를 봐라, 국가는 어머니와 같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는 우왕좌왕하다가 말았는데, 다음번 집회에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생각했다. 이후에 대응방안과 매뉴얼을 만들어서 구호를 외치고, 투쟁 본부 페이스북에 메시지를 보낼 생각도 하게 됐다. 작은 변화지만 바뀌니까 뿌듯했다.


 



지난 1111, 민중총궐기투쟁본부와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게시한 여성혐오적 발언에 대한 사과문

출처 :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페이스북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3387693620284&id=1629891637303223)

 


-지안: 집회 참여자들의 혐오발언도 들었다. 남성들이 시발년아, 나쁜년아를 우리 바로 옆에서 단체로 외쳤다. 우리가 혐오발언하지 말라고 맞받아서 외치니까 옆에서 젊은 남자들이 막 소리를 질렀다. 우리 측 자경단이 왜 소리를 지르냐, 혐오발언을 멈춰 달라 요구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하길래 우리와 생각이 다른 거 같으니 자리를 옮겨 달라고 요청했다. 그 무리 중 한 남성은 나라 바꾸는 계집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이런 스티커를 붙이고 혐오발언 하면 안 되지 않느냐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스티커를 팍 떼어 구겨서 버렸다. 그 사람은 그 문구를 나라 바꿔버린 계집년들이라고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다. 집회에서 개저씨들을 상대하는 건 힘들긴 해도 익숙해서 놀랍지는 않다. 그런데 여성을 혐오하는 젊은 남자들과 눈앞에서 대면하고 싸우는 경험은 생소했다. 우리를 비웃는 20대 초반의 남자들을 바로 보니까 그건 많이 스트레스가 되었다.


-광개토: DJ DOC가 무대에 서는 것을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페미당당에서 처음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지안: 우리 혼자 반대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는 페미존 텔레그램 방이 있다. 처음 거기서 뉴스를 접하고 신곡 발표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했다. 페이스북 메시지로 주최 측에 문제제기를 하자는 쪽으로 입이 모아졌다. ‘페미존에는 강남역 10번출구불꽃페미액션등 여러 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그중 페미당당이 표적이 돼서 공격을 받고 있는 거 같다.

-은지: DJ DOC 전에 산이가 더 먼저 곡을 내지 않았나? 게다가 산이의 곡은 음원사이트에서 인기가 높았다. (광개토: 멜론에서 1위를 했다.) 그런데 DJ DOC는 아예 올라와서 무대를 한다고 하니까. (충격적이었다) 한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든 욕하면 되는 분위기와 시위의 몰목적성에 환멸이 느껴졌다.

 

 


숙명여대에 붙은 '내가 시위에 가지 않은 이유1, 2' 대자보는 많은 공감과 함께 회자되었다.


 


Q.최근 대학가에 붙은 내가 시위에 가지 않은 이유라는 제목의 대자보에서는 진보 성향을 띠고 있는 집회나 모임에서의 여성혐오를 꼬집었다. 진보 정당/단체/학생회의 여성 인권감수성은 어느 정도인가? 각 단체에서 여자 대학생으로서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는가?

 

-현수: 내가 있던 경영대 학생회는 진보적인 학생회는 아니었다. 그냥 보편적인 수준의 술 마시기 좋아하는 애들이 모인 학생회였다. 당시엔 동기들이 너무 좋아서 들어가게 됐는데 (성차별적인 분위기가) 매우 심각했다. 2012, 2013년 연이어 학생회를 2년 동안 하면서 성폭력 예방 교육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회담 요청을 받고 지옥 같았던 지난 2년을 되돌아보니 너무 많은 사건이 있었다. 예를 들어 신입생 환영회 준비를 위한 단운위(단과대 운영 위원회, 이후 단운위’) 회의 시간에 경영대 학생회장이 프로젝터로 신입생 명단을 띄워 놓고 페이스북에 이름을 검색해 외모를 품평한 일이 있었다. 우리 과 전체 성비는 5.5:4.5 정도로 남녀가 비슷한 수준인데 학생회 성비는 거의 9:1 정도 된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한 번은 어떤 여자 연예인 섹스 비디오가 유출됐었는데, 단운위 단체 카톡방에서 한 사람이 그 파일을 구했다고 하니까 다른 남자 임원들이 파일을 보내달라고 이메일 주소를 올리는 일도 있었다. 2년 동안 이런 일들의 연속이어서 매우 힘들었다. 결국, 그 안에서 폭력 문제가 발생해서 내부 고발하고 나왔다. 나오고 나서도 신입생 환영회에서 성추행으로 문제가 됐던 걸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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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5일,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12.28. 한일 합의 규탄 기자회견 중인 평화나비 네트워크

출처 : 뉴스천지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368857)




-현수 : 그 이후로 평화나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평화나비는 매우 특수하다. 들어오는 학생들의 젠더감수성 범위가 굉장히 넓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여성에 대한 제노사이드로 볼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가끔 일베마인드를 가지고 나는 애국 보수야, 꽃 같은 순결을 빼앗겨버린 할머니들을 지킬 거야!”라면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굉장히 극단적이다. 들어오는 사람을 보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개념화됐는지 투명하게 보인다. 딱 영화 귀향느낌이다. 할머니들은 고령의 연세이신데도 외교관이 오면 소리치는 투사이시다. 우리끼리 농담으로 할머니들이 몸이 안 좋으셔서 앉아 계시는 거지 지금 태어나셨으면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였을 것이다, 다 불사지르고 다니셨을 거다.”라고 한다. 동아리 내부에서는 싸우는 여성에 대한 존중이 있는데 종종 시혜적인 생각을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커리큘럼을 보고 견디지 못해 금방 나가버리지만.

 

-광개토: 수요 집회 같은 동아리 외부 활동을 할 때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현수: 여성 구성원이 많다보니 활동할 때 여자들만 있는 경우가 많다. 동아리 특성상 길거리에서 캠페인이나 집회를 진행할 때가 많은데 우리 사회가 어린 여성들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 알 수 있다. 캠페인을 하면 수많은 개저씨와 할아버지들이 오신다. 저희는 반공 할아버지라고 부르는데 (모두 웃음) 빨간 별 박힌 모자 쓰고 해병대 군복 입은 분들이 오셔서 빨갱이라고 소리치고 가신다. (캠페인이나 집회에서) 남자들이 많을 때랑 없을 때 (분위기가) 아예 다르다. 하다못해 집회 신고를 하러 갈 때도 똑같이 준비해서 가도 여자가 가면 안 해준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아는 오빠를 부르는데 그 오빠가 오면 일이 바로 처리된다. 나이 있는 남자가 한 명 왔을 뿐인데 두 시간 고생하던 일이 30분 만에 끝난다. 그 사람들에겐 어떤 일을 하냐도 중요하지만 누가 하느냐가 정말 중요한 거다.

 

-광개토: 젠더 권력이 확실히 느껴진다.

 

-지안: 은혜 얘기를 들으면서 너무 많은 일이 생각났다. 검은 시위할 때도 2~300명이 모였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두 명뿐이었다. 우리가 평화적으로 시위를 진행할 거라고 짐작하고 우리를 안 무서워하는 거다. 그때 강남역 10번 출구’, ‘불꽃페미액션’, ‘페미당당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우리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거 아니냐?”, “너희 지금 우리를 물대포로 쏘지 않은 걸 후회할거다. 우리가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인 줄도 모르고라고 얘기했었다. (모두 웃음) 아까 은혜 씨가 반공 할아버지얘기를 하셨는데, ‘페미당당페미존을 운영하면서 혐오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 페미존의 '혐오 대응 매뉴얼' 

출처 : 지안 제공



 

-지안: 매뉴얼을 만들면서 혐오 형태에 따른 분류를 했는데 첫 번째로 사진형이 있다. “미스코리아보다 예쁘네~” 하면서 얼굴 찍어가는 유형이다. 항상 술 냄새가 나고, “사진 찍지 마세요. 다른 곳으로 가세요.” 하면 엥 내가 뭘 잘못했다구 미안합니다~”이러고 간다. 두 번째는 방해형, 위협형이 있는데 말 그대로 와서 위협하는 유형이다. 대부분 관심종자라서 사과하라고 하면 사과도 오래 한다. 그냥 가라고 해도 계속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끊임없이 사과한다. 그다음으로는 조언형이 있다. 와서는 시위를 이렇게 하면 안 되지! 더 강렬하게 해야지!” 참견한다. 칭찬형도 있다. “어린 여학생들이 기특하네~” 자기 딴에는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하려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여기 나와서 이러고 있어?” 이런 식으로 참견한다. 마지막으로는 질문형이 있다. “페미니스트가 뭐야?” 계속 물어본다. 그러면 저희는 여자도 사람이랍니다~”라고 대답한다. (모두 웃음)

-현수: 어린 여자를 보면 정말 가르치려고 든다. 우리 동아리는 한 학기에 일본군 위안부와 평화에 관련된 책을 몇 십 권씩 읽는데 와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훈계한다. 내가 더 잘 아는데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어린 여자를) 가르침의 대상으로 보는 게 너무 투명하게 보여서 안타깝다.

-지안: 다가와서 쉽게 만지는 것도 싫다. 저번 시위 때 자경단 활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사람들이 안전하게 집회에 나오게 하려고 (자경단 활동을) 하는 건데 최전선에 서다 보니 우리가 위험에 노출됐다. 지난 집회에서 방해형에게 집회 진행 중이니 비켜달라고 요청했더니 내 몸을 쓱 만졌다. 너무 당황해서 왜 남의 몸을 동의 없이 만지세요? 사과하세요.” 하니까 웃으며 미안하다고 했는데 너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백번 말하는 것보다 더 무력해졌다. ‘내가 어떻게 해야 저 사람들에게 우습게 보이지 않을까?’ 고민스러웠다. 내가 아무리 스터드 천 개 박힌 옷을 입고 무기를 들어도 웃길 것 같았다. 그럼 자경단을 남자로 해야 하나? 그럼 나는 정말 약한 건가? 더 무력해지는 것이다. 그러던 와중, 다음 시위의 페미존에서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페미존 사람들이 다 같이 사과하세요.”, “비켜주세요.” 외쳐주었다. 무척 힘이 됐다.

페미니스트들이 전체 운동 약화시키는 거 아니냐, 페미니스트들 프락치다, 페미니스트들 어둠의 친박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의 반복과 변주인 것 같다. DJ DOC 무대가 취소됐을 때도 (시위에서)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는 게 박근혜 퇴진이라는 대의를 위한 동력을 약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항의가 많았다. 페미니스트 시국선언에도 썼듯, 어떤 사람한테는 페미니즘이 조개 줍는 일로 보이겠지만, 그 사람들한테는 조개로 보이는 게 우리한테는 상처 입은 사람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부패 정권만을 해일로 생각하겠지만 여성에게는 일상적으로 겪는 여혐이 해일 그 자체다.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전체 동력을 약화시킨다고 하지만 그 사람들이 말하는 우리속에 여성은 배제되어 있다. 그래서 (페미당당은) 비가시화되는 사람들을 우리속으로 끌어오고 공론장에서 우리 자리를 되찾기 위한 싸움을 하는 거다. 그런데 진보진영 내에서도 전체 동력을 약화시킨다는 공격이 들어오니 생각이 많아졌다. 난 누구랑 싸우는 건가?




11월 26일, 제 5차 촛불집회에서 있었던 페미당당 시국선언

출처 : 페미당당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pg/femidangdang/videos/?ref=page_internal)

 



광개토: 진보성향을 가지고 있는 단체 내에서도 낙차가 많이 느껴진다. 소라 씨 같은 경우에는 녹색당 당원이신데, 녹색당은 진보성향이고 당 특성상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인데도 그 안에서도 많은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소라: 녹색당은 정당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정당은 하나의 가치만을 이야기할 수 없다. 녹색당은 특히 차별에 반대하고 혐오에 반대하며 모두가 함께하는 세상을 꿈꾸는 정당이라 단 한가지만을 중요하게 여길 수 없다. 먹거리, 동물권 보호 등 (주제가 다양하다.) 동물권 보호를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부딪히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개 같다라는 말이나 박근혜에게 이라고 얘기하는 건 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느낄만한 단어들이다. 여성도 이라는 단어 들으면 스트레스를 받듯 말이다. 그래서 모두 평등을 이야기를 하자고 합의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전제하에 만든 매뉴얼이 평등문화약속문이다당 공식 행사를 할 때는 반드시 평등문화약속을 읽고 시작한다조항 1번은 성별·성적 지향·성 정체성·장애 여부·국적·나이·지역·출신 등에 관한 모든 차별을 지양하자는 내용이다어떤 한 사람이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발언을 했다면 다 같이 항의하고 저항할 준비를 해야 한단 내용도 평등문화약속문에 포함 돼 있다.

 




녹색당의 평등문화 약속문

출처 : 녹색당 공식 트위터 

(https://twitter.com/greenpartyk/status/754929658332782596)

 



-소라나는 **지역운영위원장을 하고 있는데, 올해 처음 총회가 성립돼 지역을 이끌어 나가게 됐다. 회의를 하기 전에 약속을 만들고 이끌어 나가야 할 거 같아서 첫 회의 때 평등문화약속문으로 회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50대 당원 한 명이 그것은 국민학교 다닐 때 나라에 충성하는 선언문을 떠오르게 한다며 이건 폭력적이라고 문제제기를 했고, 나는 거기에 설득 당했다. 평등문화약속문을 이야기하자고 강요를 했는지 긴가민가했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아니었다. (현수: 인권선언문도 폭력인가?) 평등문화약속문의 내용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폭력이라는 거다. 그 뒤로 무조건 평등문화약속문을 프린트해놓고 회의를 했다.

정당의 딜레마가 있다. 녹색당에서는 지적질을 환영한다고 해놓고 내부가 끈끈해야 한다는 명목아래에서 지적질을 참게 한다. 당원에게 잘못된 발언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된다고 하면 먼저 사과를 하고 인정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왔고 자신은 앞으로도 조심할 거기 때문에 이해해 달라.’라는 말이 따라온다.

메갈리아 티셔츠 사건이 일어났을 때 청년 녹색당에서 관련 논평을 냈다. 우리는 성우를 지지하고 넥슨을 규탄한다고. 그런데 당원 게시판에 어떤 사람이 청년 녹색당 논평 철회하라는 글을 올렸다. 요지는 당원 모두의 의견도 아닌데 어떻게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논평을 낼 수 있는가였다. 게시판에 불이 붙었다. 원래는 이용이 활발하지는 않은 편인 게시판인데. (모두 웃음)

최근에는 당내에서 성폭력 사건도 있었다. 성폭력 가해자가 청년녹색당 운영위원장이었기 때문에 입장 정리를 빨리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 사람들은 가해자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면서, 생존자가 계속 말을 바꾸고 있다고 비난했다.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자기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잘 파악을 할 수 없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당원들도 (이 사태를 어떻게 대처할지) 잘 몰랐던 거다.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녹색당 안에서 사람들이 이제 뭘 공부해야하는지는 깨닫고 있는 거 같다. 그래서 희망이 있는 거 같다.


-은지: 나는 2학년 때 국사학과 학생회를 했었다. 그 때는 (여성주의적인 문제와 관련해) 별다른 걸 느끼지 못 했다. 그런데 지켜본 바로는 과대가 항상 군필 남성이더라. 내가 수료를 마친 지금까지도 과대는 군필 남성이 도맡아 했다. 학교 기구로는 반성폭력위원회가 총학생회 산하에 있었지만 불과 2년여 만에 인준이 부결되었다.

 



전학대회에서 반성폭력위원회 인준이 부결되자 이에 항의하는 가톨릭대 학생들의 대자보가 학교 곳곳에 붙었다.

출처 : 은지 제공

 



-은지: 학내 자치활동이 미비하고, 학교 분위기도 트러블을 만들지 않는 조용조용한 편이라 전학대회에서 웬만하면 (안건이나 인준이) 가결되기 마련인 곳이다. 그런데 반성폭력위원회가 페미니즘적이라는 말이 퍼지면서 부결처리가 된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올해 성평등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인준 준비를 했는데 역시나 부결되었다. 교내에서 화장실 몰카 사건 등 (성폭력에) 관련한 사건이 다수 발생한 학교인데도 말이다. 학내 상설 기구가 있어야 대처가 가능하고, 예방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광개토: 학내 자치기구 임원 중 여학생 비중은 어떻게 되는가? 여학생들이 임원을 할 수 있는 분위기인가?


-은지: 전과생들이 말하길 남학생들이 여학생들 옷 입는 거 품평 안 해서 좋다(여성혐오적인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낫다)고는 한다. 그렇지만 과내에 남자가 많고 무의식적으로 스며들어있는 여성혐오적 심리는 무시 못 하는 것 같다. ‘야 그래도 (임원엔) 군필 남자가 낫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현수: 나는 경영대에서 부학생회장을 했었다. 후보 중 제일 표를 많이 받은 1등이 정, 2등이 부를 맡는다. 1년이 지나고서야(임기가 끝날 때) 내가 정보다 표를 더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직속선배가 군대 가고 나서 이야기해줬는데, 선배들이 여자가 정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던 거다. 여자는 그래도 부를 해야 하고 남자는 정을 하는 게 맞다고. 게다가 정은 3월부터 잠수를 타서 1년 동안 혼자 일을 해야 했었는데. 놀랍게도 2012년의 이야기다.


-광개토: 이런 분위기면 여학우에 대한 공약이 안 나올 것 같다.


-현수: 리더십 있고 목소리 크고 술 잘 먹는 건 남자가 더 잘한다고, 남성 임원을 뽑는 거다. 여성의 목소리를 지우는 거다.


-지안: 1학년 때 새터(새내기 배움터)에 갔을 때 반성폭력 교육을 맡은 선배들이 생리대 여기 있으니까 부끄러워 하지 마세요. 아 부끄러워~”, “그런 일이 생기면 외치세요. 반성폭력!” 이런 식으로 장난처럼 교육을 진행했다. 그런데 그 날 밤, 같이 술을 마시던 남자 동기한테 강제로 키스를 당했다. 그때 떠오른 말이 반성폭력!’ 밖에 없어서 반성폭력!” 외치면서 도망쳤다. (반성폭력교육에서)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식으로 교육받았고 당시에 성추행이라고 인식도 못 했기 때문에 2년 동안 말을 못했다. 내가 먼저 꼬리 쳤다는 둥, 행실이 안 좋았다는 둥 나쁜 소문이 날까봐 두려웠다.

14년도에 '반성폭력''어울림'으로 이름이 바뀌고, 15년도에 인문대 새터 어울림 전체 공동팀장을 맡았다인권 단체에 자문도 구하고 역할극도 하고 매우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교육을 받은 일학년 반 중 한 반에서 카톡방 사건이 터졌다. 무력감이 들었다.

 



지난 711일 서울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는 서울대남들의 카톡방 성폭력 고발했다.

출처 : 2차 중앙일보 <'서울대 단톡방 성희롱' 논란 이는데 학생들은 "카톡 공개는 인권유린" 반응?>

(http://news.joins.com/article/20290706)

 



-지안: 당시 나와 공동으로 어울림 팀장을 맡았던 사람이자 올해 인문대 회장이었던 남자가 있는데, 새터에서 성폭력 가해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지금 진조위(진상 조사 위원회)가 꾸려졌다. 작년에 어울림 팀장을 했던 사람이 가해 지목인이 된 것이 충격적이었다. 이후 진조위(진상 조사 위원회)를 꾸리자는 안건으로 임시 전인대회(전체 인문대 학생 대표자 회의)가 열렸었다. 그런데 한 참관자가 손을 들고 피해자와 가해자 개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왜 전인대회까지 끌고 오냐고 하더라.

이러한 학내 성폭력 사건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계속 피해자에게 대한 정보를 밝히길 요구한다고 한다. 피해자는 피해 사실만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자세하게 정보 공개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부담감에 시달린다. , 인문대 내에 반성폭력 내규가 없었다. 매뉴얼이 없어서 실수를 하게 되는데 실수에 대한 책임을 모조리 피해자가 떠안게 되고 매뉴얼을 찾아보는 것도 피해자 책임이 되어버린다.

학교 커뮤니티 내의 여성 혐오적인 분위기도 심각하다. ‘애초에 진짜 성폭력이었으면 사법 신고를 해야 했던 거 아니냐고 한다. 피해자들은 좁은 인간관계 내에서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나 때문에 분위기가 껄끄러워질까봐,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을 와해시킬까봐 신고하길 꺼린다. 신고한다고 해도 신체적인 손상이 일어난 것이 아니므로 경찰 측에서 합의하길 종용한다. 이런 점들에 대해 전혀 고민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떳떳하면 왜 신고를 안 하냐고 하니 답답하다.

앞서 말한 성폭력 가해지목인은 지금은 인문대 회장 자리에서 사퇴한 상태이다. 새로운 인문대 회장이 당선됐는데 그 사람이 총운영위원회 및 전임 신임 학생회장 대면식 겸 뒤풀이에서 또 성폭력 가해를 했다고 한다. (모두 탄식)

 

-광개토: 이쯤 되면 남자를 왜 뽑는지 알 수 없다.

 

-지안: 여자가 큰일을 해야 한다. 정의당 여성주의자 모임, 정의당 여성주의 위원회, 정의당 이대 특위 분들이 페미존에 오셨는데 다른 당 창당 모임에 너희가 왜 가냐부터 시작해서 아예 정의당 당게(정당 게시판)가 테러 당했다. 정의당 여성위원회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너희 프락치 같은데 이럴 거면 정의당에서 나가라고 한다. 정의당 이대 학위의 경우는 정의당 구성원 중 일부에게 페미존 가지 마라, 갈 거면 이대 학생 위원회 이름 떼고 나가’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임시 명칭을 만들었다. 위원회가 아니다. one회다. (모두 웃음) 그런 식으로 정당 내에서 공격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은지: 진보 남성들의 수준이 처참하다.


-소라: 노란색 당 남자 당원들이 1년에 한 번씩 교육하는 걸 갖고 교육 열심히 한다고 그렇게 자랑을 한다.


-현수: 강간 안 한다고 성추행 안 하는 게 아니다. (웃음)


-지안: 너무 시혜적으로 나 공부하고 있으니까 봐달라고 한다. 어쩌라고.


 

Q.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는 페미존이 나타나고 소수자 혐오 방지 매뉴얼이 등장하는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 한편, 여전히 길라임ㅋㅋㅋㅋㅅㅂㅋㅋ미친년ㅋㅋㅋㅋㅋ이라고 쓴 플랭카드가 풍자로 소비되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앞서 언급한 대자보는 여성혐오적인 시위에 보이콧을 주장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안: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 못 나오는지, 왜 나가기가 두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혐오에) 익숙해진다고 무섭지 않은 것도 아니고, 너무 자주 일어나서 지겨워진다고 괴롭지 않은 게 아닌 걸 안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 텔레그램 방에서도 여러 가지 대응 방안 얘기가 나왔었다. “DJ DOC 노래를 공론장에서 튼다면 보이콧을 하자고 주장하시는 분도 계셨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혐오적인 분위기 때문에 못 나오는 여성, 청소년, 장애인, 퀴어들에게 혐오 프리존을 제공해 (시위 참여가) 쉬워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페미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DJ DOC의 노래 수취인 불명에서 수취인이 박근혜라고는 하지만, 유명한 페이스북 글처럼 광장에서 수취인 불명이 울려 퍼지게 되면 그 노래를 듣게 되는 수취인은 누군가? 바로 옆에서 같이 싸우자고 나온 여성들이다. 그 순간 그 여성들의 존재가 비가시화되고 목소리는 지워질 것이다. 그 고통을 감내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여러 사람이 보이콧하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페미당당이나 나의 역할은 페미존을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위) 11월 12일 열린 촛불집회 페미존에 모인 사람들.

(아래) 페미존에 모인 깃발들.

출처 : 페미당당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femidangdang/)




-소라: 나는 (시위에) 나가기로 했다. ‘범국민대회’, ‘민중총궐기아닌가? 지금 이 사회에서 누가 궐기를 하느냐를 보여주는 것이 집회다. 페미존을 통해 페미니스트, 소수자들이 나와서 우리가 있다고 보여주는 게 집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같이 나왔으면 좋겠고, 나도 참여하는 거다.

녹색당의 경우 이번 집회 때 탈핵을 키워드로 들고 나갔다. ‘박정희가 시작한 핵발전소 박근혜 때 끝장내자란 슬로건이었는데, 이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왜 하냐고 욕을 많이 먹었다. 그런 지적이 들어왔을 때 여기는 범국민대회고 같이 얘기해야할 다양한 주제가 있으며 당신이 알아가야 된다는 것을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보이콧을 주장하지 않는다.

 

-현수: 보이콧을 함으로써 집회에서 페미니스트들이 다 빠지면 집회는 결국 바뀌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정의당에서 못하겠다고 나가면 정의당이 바뀔까? 녹색당에서 못 버티고 나가면 녹색당이 바뀔까? 내가 학생회를 할 때 못 버티고 나갔는데 안 바뀌었다. 지금도 쓰레기다. 물론 나간 사람은 피해자이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없지만 행동하지 않으면 결국 바뀌지 않으니까 설득해서 같이 가고 싶다.


-은지: 보이콧에는 대안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집회에서 페미존을 만들고 움직이는 것처럼 대안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사실 집회는 쪽수다. 어쨌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페미존에 있고, 그게 여성운동으로 가시화된다면 그 자체가 보이콧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지안: 처음 페미존 시작했을 때 집회에 참석한 아저씨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나와 있냐?”고 핀잔을 줬다. 순간 공부는 아저씨나 하세요.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라고 선창을 했더니 사람들이 다 따라 하더라. ‘우리가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통해 어쨌든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꿀 거고,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궁극적으로는 페미존이 생길 필요가 없어지고 집회 전체가 페미존이 됐으면 좋겠다.

 


Q.임신 중단의 자유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검은 시위가 1015일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검은 시위의 존재를 모른다. 여성 운동, 여성 정치를 가시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


-광개토: 개인적으로 유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메갈리아나 워마드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미러링에서 해방감과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메갈리아나 워마드의 유머는 마이너스 유머였고, 이제 플러스 유머가 필요하지 않을까.


-지안: 검은 시위 주최를 했던 사람으로서, 질문지를 받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홍보를 더 해야 할까? 아니면 이제 남은 길은 죽이는 길밖에 없나? (모두 웃음) 주변에서 유럽 페미니즘, 선진 페미니즘 하라고 하는데, 그럼 이제 죽이는 수밖에 없다.(웃음) 나는 정말 모르겠다. 방금 광개토가 유머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는데 공감이 간다. (그 일환으로) 시위에서 찬송가를 개사해서 불렀고, 모임도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한다.

시위 이후 낙태죄 관련 오픈세미나를 했는데 국제연대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검은 시위에서 폴란드나 아일랜드나 아르헨티나 등 서구 페미니스트들과 연대를 했었는데, 세미나를 하다 보니 서구의 낙태죄와 한국의 낙태죄의 맥락이 전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인도나 필리핀,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시기에 서구에서 낙태, 산아제한 정책이 정부 주도 하에 한국에 수입되었다. 서구 국가들뿐 만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과의 연대가 필요할 것 같다.


-광개토: 국내 개인과 개인 연대 필요성도 커 보이는데.


-지안: 20대 여성 액션 그룹에 있는 여성으로서 고민이 많다. 메갈리아 활동을 하다가 소송을 당한 개인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 사이에 남아버렸다. 나는 우리 시대의 페미니즘이 망한다면, 원인이 연대할 방법을 찾지 못 해서라고 생각한다. 연대체를 꾸리고 있는데 난제가 많다. 인터넷에서만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은 파편화되어있고, ‘꿘충혐오와 같은 결벽이 있다. 단체가 아닌 개인이어야만 하고, 친목하면 안 되고, 그런 것들이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페미니스트들이 소송을 당했을 때 어디에 도움 요청하기가 훨씬 어렵고, (여성혐오적인 바깥 분위기에) 쉽게 입막음을 당한다.


-현수: 주변에 페미니즘에 공감하는 사람을 굉장히 많이 봤다. 여자인 친구들은 낙태 등의 이슈에 쉽게 공감한다. 그런데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오해한다. 사람들이 보는 페미니스트는 항상 화나있고, 합리적이지 않고, 공격적이고, 여성우월주의자들이고, 남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존재다. 성폭력 사건이 다 없어져야 된다는 내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내가 페미니스트 같지 않다고 말한다.


-광개토: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빼앗겼다는 느낌이다.


-현수: 마치 새누리당한테 평화통일 뺏긴 것처럼. 대학원 진학 준비를 하면서 면접 스터디를 하는데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다. 내 말에 동의를 다 하면서도 본인이 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여긴다. 이게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프레이밍 싸움을 해야 하지 않나. 지금 시위가 평화시위의 프레이밍에 갇힌 것처럼, 당한 거다.


-지안: 우리는 페미니스트의 역사를 모르고 계보를 모른다. 우리 이전엔 호주제폐지 세대, 1.5세대, 90년대 영페미니스트가 있는데 90년대 영페미니스트는 위 세대를 부정해서 윗 세대와 사이가 안 좋다고 한다. 1.5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우리는 모이면 선배들 욕을 하는데 너희도 그러지 않냐고 했다. 우리는 모르니까 욕을 하고 말 것도 없다. 아무도,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민경의 페미니즘 실용서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은 

역사 속에서 쉽게 지워진 여성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한 책이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이후, 페미니스트 여성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출처 : 텀블벅 봄알람 출판프로젝트 페이지

(https://tumblbug.com/baumealame1)

 



-지안: 90년대 영페미니스트들에게 행사에 나와 달라고 연락하면,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모두가 그래서 이름이 남아있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이름을 박아야겠다고 느꼈다. 우리가 역사가 되자.


-광개토: 기록이 필요하다는 말로 들린다.


-지안: 남자들은 업무에 조금만 발을 담갔어도 그걸 내가 했다고 강력히 주장하는데, 여자들은 했어도 나는 별거 안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우리가 했다고 생색내고 싶다. 우리가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봊풍당당한 자세를 견지하자. 여자가 큰 일하는데 실수 좀 할 수 있지, 여자애가 뭐 다치고 좀 깨지고 그럴 수 있는 거지 이런 말을 듣고 자랐으면 얼마나 자유로웠을까.


-광개토: 이번에 좋은 말이 많이 나왔다. 기록을 하자, 연대를 해자, 배포를 크게 가지자. 다 좋은 방안이다.


-은지: 뚜렷한 성과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시니어 페미니스트들이 호주제 성과를 얘기하듯이, 성매매 특별법은 논란이 있지만 이를 성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낙태죄 폐지를 우리의 성과로 여기면 어떨까.


-지안: 작지만 낙태죄 폐지를 전리품으로 남기고 싶다.


-현수: 승리의 경험이 중요하다. 어떤 세대는 독립을 했고 어떤 세대는 민주화를 만들었는데, 2-30대는 뭘 했냐는 소리만 듣는다. 해봤자 안 되니까 정치에 무관심해지고, 냉소하게 된다. 페미니스트들도 마찬가지다. 작은 범위에서든 큰 범위에서든,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하나 승리하는 행보라고 생각한다. 여러 매뉴얼도 나오고, 논란이 있든 없든 DJ DOC 공연도 취소 됐다. ‘그래, 우리 이 때도 이겼어!’라는 생각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Q.내가 뽑는 2018 대통령. 내 맘대로 후보!


-광개토: 6번 질문은 약간의 유머와 함께 만들어 봤다. 개인적으로 나는 키우는 햄스터를 밀고 있다. 이 친구가 임기를 채울 수 없다는 게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일 정도로 정말 괜찮은 후보다. 내 친구들은 모두 밀고 있다. (모두 웃음) 여러분이 생각하는 후보로는 누가 있는가?

 

-현수: 현실성 측면에서 햄스터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진선미 의원이 했으면 좋겠다. 그분은 대표적인 꿘 페미니스트로서 계속 시민운동 하시다가 정치권으로 가신 건데, 그런 분이 성공하면 그게 또 하나의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희 동아리는 우리 나중에 꼭 성공하자고 한다.


-지안: 스타 만들기 정말 중요하다.


-현수: 맞다. 우리는 다 전문직 되기로 약속 했다. 평화나비하면 다 약사 되고, 변호사 되고, 정치인 되는 걸 이렇게 보여줘야 다들 도전할 것 아닌가? 지금 여성 운동하시는 분들 다 내려놓고 하시는 건데 (도전하는 것에 대해서) 당연히 성공할 거라고 말은 못해주지만 그런 사람도 있다고 보여주는 게 엄청 유의미하지 않을까 한다.


-지안: 성공한 롤모델의 존재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이번 해에 나는 불행한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왜냐하면, 미쳐서 자살해버린, 정신병원에서 죽은 불행한 페미니스트의 서사는 이미 많기 때문이다. 행복한 페미니스트의 형상을 계속 그리고, 보여주는 게 매우 중요한 것 같다. 힐러리도 하나의 롤모델이 될 수 있었는데 트럼프한테 져서 너무 슬프다. (모두 눈물)


-현수: (트럼프 당선이) 미국 청년들한테 엄청난 영향을 끼칠 거라고 본다.


-지안: 힐러리 연설 중에 정말 큰 패배지만 내가 깨지 못한 유리천장을 깰 사람이 생각보다 더 빨리 나올 것이다.”라는 말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내가 미는 후보는 페미당당의 수령인 심미섭이다. 인도 불교 철학을 전공하고 있다. 페미당당 사람들이 계속 정치하라고, 대통령 하라고 꼬시고 있다. (광개토: 후보로 추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무척 똑똑하고 말을 우아하게 잘한다. 인권 감수성도 뛰어나고 루키즘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름답다. (모두 웃음) 스타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

 


Q.후기

 

-은지: 열심히 하시는 분들을 보고 배우기도 많이 배웠고 지금 딱히 단체나 정당을 하고 있지 않아서 나도 뭘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지쳐서 쉬고 있었는데 역시 싸워야 되는 구나, 가만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 이런 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강남역 10번 출구 이후에 페미니즘이 이런 물살을 타기 시작한 게 사실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말을 못하고 있다가, 누가 말을 꺼내니까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고민하고 우리는 돌아가더라도 바른길을 갈 거라고 서로 확신을 주는 게 좋은 것 같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지안: 사실 이야기를 한 번 더 반복해야 하다 보니 인터뷰를 준비하는 것 자체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막상 와서 이야기해 보니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측면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대회담에서 이야기해봤으면 좋겠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소라: 오늘 (인터뷰) 오기 전에 누군가를 설득할 일이 있었다. 진이 다 빠져 말을 많이 못 한 게 너무 아쉽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줘 감사하다.

팬덤이 허락한 페미니즘 ;진정한 페미니스트를 찾아서

By.광개토

 

 


 16124, 샤이니 멤버 종현의 솔로 콘서트를 다녀온 한 팬이 종현이 콘서트장에서 보여준 제노포빅, 호모포빅한 발언에 대해 트위터를 통해 피드백을 요구했다. 종현은 콘서트에서 인도 문화를 희화하는 vcr을 내보내고, 토크 중 남성 팬에게 성향은 존중하지만 자신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종현은 팬들의 지적에 발빠르게 대처했다. 논란이 된 당일,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다음 공연에서는 vcr을 삭제하는 등 조치를 취한다. 이에 몇몇 팬들은 종현의 사과에 감사를 보내기도 했다.

 

 


샤이니 종현이 12월 3일 본인의 트위터에 게재한 글 


 


 그러나 본격적인 사건은 이제부터였다. 트위터에서 종현에게 피드백을 요구했던 일군의 팬들에 대한 사이버 불링이 시작된 것이다. 가해를 시작한 팬들은 종현에게 피드백을 요구한 팬들을 일명 트위터 페미니스트, 줄여서 트페미로 명명하고, ‘지인이 얼굴을 알고 있다는데 만나면 논리적으로 얘기해볼 것이라는 신상 정보를 알고 있다는 협박부터 인신매매 당해라’, ‘강간당했으면 좋겠다등 원색적인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사이버 불링에 비판이 일자 팬들은 트페미들이 그동안 샤이니를 성희롱했다고 주장하며 정당화했다. 이들은 트페미들이 샤이니를 성적으로 소비해온 트위터 멘션을 캡쳐해 증거 자료로 올리면서 팬인 척 하면서 샤이니를 성희롱했으며, 진정한 페미니스트도 팬도 아니라고 비판했다.

 일은 점점 커져 종현에게 피드백을 요구했던 트페미 중 한 명은 콘서트 장에서 얼굴을 알아본 팬들에게 무슨 낯짝으로 콘서트를 보러 왔냐는 등 직접적인 언어폭력을 당했다. 피해자는 이를 트위터에 올렸고 사건은 일파만파 퍼졌다.

그러나 팬들은 피해자가 거짓말을 한다고 가정하고 콘서트 티켓을 인증하라 압박했다. 피해자에게 당신이 피해자가 맞는지, 피해 사실을 증명하라는 요구였다. 급기야는 피해자가 있었던 자리를 소거법으로 찾아보자며 해당 날짜에 콘서트에 다녀온 팬들을 대상으로 콘서트 티켓 인증을 받기도 했다. 이 계정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찍어 올린 콘서트 티켓 사진들이 몰려왔고 계정주는 좌석을 색칠해가며 피해자를 압박했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피해자의 또 다른 SNS 계정을 알아냈다고 밝혀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심각한 수준의 사이버불링에 사람들은 팬덤내 사이버 불링을 알리는 #팬덤내_사이버불링_아웃 해시태그를 만든다. 이에 팬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사이버 불링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팬코_악질성희롱_아웃(팬코; 팬 코스프레의 준말로 진정한 한 그룹의 팬이 아니라 팬 흉내를 내는 사람), #트위터내_아이돌_성희롱 등의 해시태그를 만들어 맞불을 놓았다. 팬들은 계속해서 종현은 제노/호모포빅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부터 트페미들이 종현에게 혐오행동을 교정하길 요구했으면서, 페미니스트답지 않게 그간 아이돌을 성희롱해왔다라거나, ‘종현을 비판한 것과 별개로 트페미들이 샤이니를 성희롱해온 것을 이제 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돌에 대한 팬들의 지나친 성적 대상화 문제는 아이돌 산업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한 번 쯤 고민해본 주제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토론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성적 대상화를 실시한 페미니스트를 비판한다는 점이 팬들의 자성적 움직임이라고 보기 어렵게 한다. 이들은 트위터가 아닌 타 커뮤니티에서 벌어진 성적 대상화를 지적하거나, 대상화의 끝인 RPS를 지적하지는 않는다. 팬덤 내 아이돌 성희롱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특별히 가해자가 페미니스트임을 지적하거나, 트페미들 중에서 가해자를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이들이 공격하고자 하는 사람은 사실상 가해자인 누군가가 아닌, 페미니스트인 누군가, 더 좁히면 트페미이다.

 이들은 왜 트페미를 공격하는 것일까? 사이버 불링과 성희롱 의혹 제기가 종현에 대한 피드백 요구 이후로 이어진 정황을 살펴보면, 내 아이돌에게 어떤 비판도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팬덤 내 불문율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감히 내 아이돌에게 호모/제노포빅하다고 지적한 팬-페미니스트를 심판하겠다는 목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샤이니 팬덤 이전에 트페미로 고통 받은(?) 아이돌 팬덤이 있다. 바로 방탄소년단이다. 방탄소년단의 팬 중 여성혐오를 공론화하고자 마음먹은 사람들이 모여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을 만들었다. 이들은 방탄소년단과 소속사에게 여성혐오에 대한 피드백을 요구했다. 이에 방탄소년단과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시정해 나가겠다는 글을 공식적으로 올렸지만, 공론화 계정 계정주들은 팬들에게 신상 정보를 캐내겠다는 협박과 온갖 욕설 등 심각한 수준의 사이버 불링에 시달려야 했다.

팬들은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공격했다. 여성혐오를 지적하는 팬들을 진정한 팬이 아니라고 배제하는 한편, 팬덤 내 트위터 페미니스트들이 스스로의 언피씨(unpolitical current;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음)함은 돌아보지 못하는 가짜 페미니스트라고 비난했다. 아이돌에 대한 무비판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팬덤 분위기에 안 그래도 어려웠던 여성혐오 지적은 더욱 힘들어졌다.

 이런 현상은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이 방탄소년단이 여성혐오에 대해 피드백한 후 발표한 정규 2집 앨범 'WINGS'의 수록곡 <21세기 소녀>를 비판했을 때 더 거세졌다. 계속해서 여성혐오적 콘텐츠를 만드는 방탄소년단과 소속사를 소비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팬들은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을 통해 릴레이 탈덕 선언을 했다.

 

 


(위) 7월 6일,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공식 팬카페에 게재한 입장문

(출처 : http://cafe.daum.net/BANGTAN/jbaj/326 )

(아래)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이 올린 릴레이탈덕선언



 

 팬덤은 이전부터 정치세력화의 한 방식으로 오빠에 대한 사랑의 진정성을 수배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했다. 진정성의 기준은 사람들이 믿는 것과 달리 주관적이다. 팬덤은 아이돌의 여성혐오를 지적하지 않는 팬들을 진정성 없는 팬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누가 먼저 진정성의 기준을 세우냐에 따라 손쉽게 공격대상을 진정성 없음의 늪으로 빠뜨릴 수 있다. ‘진정성이 없는 팬의 의견은 묵살해도 되고, 어떤 공격을 받아도 싸다’.

 팬덤이 진정성을 무기로 사이버 불링을 정당화하고 개인의 목소리를 지우는 행위는 페미니스트의 입을 막는 오래된 방식과 유사하다. 페미니스트가 어떤 주장을 내놓으면 사람들은 말투나 성적 취향, 평소의 생각 등을 전시하고,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페미니스트로서의 진정성을 평가한다. 사람들은 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람은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샤이니 팬들이 트페미들을 공격할 수단으로 본인들조차 자유롭지 못한 성적 대상화(성범죄)’를 선택한 이유를 이제 쉽게 알 수 있다. 팬덤은 페미니스트에게 요구되는 결벽성이 존재한다고 믿고, 치명적 결함 중 하나가 성범죄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는 완전무결한 인간임을 증명하는 딱지가 아니다. 완전무결한 인간만이 페미니스트가 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백보 양보해 설사 그 사람이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하더라도, 진정한 페미니스트만이 혐오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여성학자 정희진이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정의한 바에 따르면 페미니스트는 여성혐오를 깨달은 사람이다. 페미니스트는 누군가에게 진정성을 평가받아 자격이 주어지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 정체화한 존재다. 때문에 계속해서 스스로 배운다. 그러지 않은 페미니스트는 그저 역사의 뒤에 남는 페미니스트일 뿐이다.

 



 종현의 일이 불거지자 또다시 소환된 꽃길만 걷자는 말은 꽤 의미심장하다. 내 아이돌이 오로지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봤으면 좋겠다는 팬들의 소망은 아이돌에게 어떤 비판(나쁜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팬덤 내 암묵적 규율을 낳았다. 이 불문율과 결탁한 진정성이 팬덤으로 하여금 내 아이돌의 혐오발언에는 눈 감는 페미니스트를 원하게 만든다. 팬덤은 마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찾는 남성처럼 팬덤이 허락한 페미니즘만을 수용하려 든다.

 지금도 팬들은 트페미 블락 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해 트페미들을 팬덤 내에서 고립시키고 사이버 불링을 가하고 있다. 아이돌 팬인 페미니스트들은 팬과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의심받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사이버 불링을 당하는 페미니스트-팬을 지켜보면서 팬들은 점점 더 목소리를 내길 두려워한다. 자성의 목소리를 잃은 문화는 고립되어 상하기 마련이다. 아이돌 문화의 지속가능성에 진정한 빨간불이 울리고 있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세일러문 크리스탈과 오마이걸입니다.

 




이슬람교의 여성혐오와 3세계 페미니즘

페미타쿠


 

페미니즘은 단 하나의 갈래로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말하느냐, 누가 경험하느냐에 따라 맥락과 의미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1세계3세계는 향유하고 있는 문화가 다르고 ‘백인비백인이 처한 상황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주로 백인 여성들을 위해 진행되어오던 서구의 페미니즘이 아니라 ‘3세계라고 칭해지는 이슬람 문화권에 관한 페미니즘을 같이 읽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이슬람 문화권이 거리상으로 한국과 가깝지 않고, 이슬람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어서 당장은 생소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를 구축하고 있는 이슬람교는 다분히 윤리적이지 않고 여성혐오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종교가 토대가 되어 여성차별의 정서가 그들의 문화 속에 곳곳이 스며있다. 밑의 책들이 문제제기하며 설명하는 쟁점들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여성들에게 유효한 지점이다. 지금부터 소개할 책들을 읽어본다면 문화상대주의로 덧입혀져 보이지 않던 이슬람교의 소수자 탄압과 비윤리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왜 이슬람 개혁을 말하는가' 표지, ©알라딘)


혐오와 테러는 명백히 종교의 문제, 나는 왜 이슬람 개혁을 말하는가


이슬람교에 대해서 논의할 때, 특히 종교가 여성을 통제하고 억압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그것은 서구중심적인 생각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움츠러든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이런 분위기를 타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이슬람교에 대해 비판을 시도한다. 저자는 목숨을 무릅쓰고 이슬람교를 개혁하자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가 위협을 받는 이유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종교적인 문제제기는 어떤 경우라도 용납이 안 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서구는 인종차별과 문화상대주의적 입장을 고수하면서 이슬람교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으려 들지만, 저자는 이슬람교가 자행하는 종교적인폐해를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순교행위라는 이름의 자살폭탄테러는 이슬람 문화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이슬람교의 교리와 긴밀한 연관이 있으며, 특히 이슬람교는 여성과 소수자를 가혹하게 억압하고 그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본인이 그 문화권에서 살았으며 한 때는 독실한 신자로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이슬람 문화권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면서도, 개혁의 필요성을 진정성을 담아 이야기한다. 이슬람교에 몸담고 있을 때 직접 눈으로 목격했던 폭력적인 사례들과, 지금 외국에서 배교자로 살아가며 느끼는 혼란들을 이 책에 담아냈다. 그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생생히 전해질 것이다.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표지, ©알라딘)


이슬람 여성 문제는 꼭 논의되어야 할 문제,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이 책은 이슬람교의 문제들을 제재 중심별로 분석했다. 저자 오은경은 이슬람교에 배어있는 여성혐오적·비윤리적 문제들을 통찰력 있게 제시한다. 가부장제의 체계를 지키기 위해 남성들의 민족주의이념에 여성들이 희생당했으며, 여성에게 재생산의 의무를 부여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여성을 희생시켰는가로 처음을 시작한다. 그리고나서 신여성이 등장한 배경과 당시에 어떤 가능성을 지녔는지 살펴보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 하는 신여성의 모습을 문학을 통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한국인으로 비교문학을 연구했으며, 예시된 문학 텍스트들은 한국의 1920년대부터 찾아볼 수 있는 신여성들의 문학과 비교해 볼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구석이 있어 흥미롭다.

  이외에도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는 베일을 남성의 페티시즘과 관련해서 조명하고, 명예살인과 여성 할례와 같이 여성의 신체를 극단적으로 다루거나 훼손하는 문제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후반부로 가면 각성한 여성들이 남성적 민족주의를 어떻게 극복하는가, ‘이슬람 페미니즘’, ‘3세계 페미니즘’, ‘탈식민주의라는 이름하에 정의된 용어들은 어떤 식으로 논의가 되었는가와 같이 비교적 근현대의 쟁점들도 정리되어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을 가져와 한국의 역사도 이슬람 문화권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이며 마무리한다.

저자는 이슬람 문화권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렇기에 여성 일반으로서 볼 수 있는 성차별적 문제들을 총망라한다. 국가와 민족주의에 의한 여성 문제는 초국가적인 문제임을 시사하며 독자로 하여금 여성에게는 국가가 없다는 말을 공감케 한다.

 

 

마치며

 

이슬람 문화는 낯선 주제일 수 있다. 그러나 종교민족주의의 이름하에 희생당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비단 남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책들을 접하면 보다 체계적으로 이슬람의 문제들을 바라보고,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도서-

아얀 히르시 알리, 이정민 옮김, 나는 왜 이슬람 개혁을 말하는가, 책담, 2016

오은경,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시대의창, 2015

, 퀴어 페미니스트, 이하제


최존

 


  “여자애가 단정치 못하게 그게 뭐니?”

  “얘가 말하는 것 좀 봐? 그게 여자애 입에서 나올 소리야?”

  “, 넌 축구 빠져. 여자잖아.”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날이 가면 갈수록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사람들이 억압과 제재를 가하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무얼 잘못한 것일까?’

 

  천성이 순종적이고 체제-순응적이었기에 고민은 나날이 깊어졌다. ‘여자에 관한 책을 읽으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권장도서목록의 여자혹은 여성이 들어간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 책들이 딱히 내 고민을 해결해준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더러는 여성혐오 범벅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아주 쓸모없는 노력은 아니었다. 나의 독서는 자연스레 페미니즘에 발들일 수 있도록 해주었고, 그제야 답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단찮은 이유가 없었다. 그동안 내가 겪었던 차별, 혐오, 멸시, 평가는 내가 갖고 태어난 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상반된 두 감정이 휘몰아쳤다. 이 모든 게 내 개인의 잘못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안도감, 그리고 서러움이었다. 내가 보지를 갖고 태어난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차별받아야 했다.

  남은 감정은 분노였다. 혼자 겪고 배운 페미니즘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연대할 동료 페미니스트도 없었기에 더욱 정제되지 않은 분노를 표출했다. 아무리 내가 분노하고 싸워도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좌절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또래 친구들과 나를 분리하기도 했다. 친구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잇다는 우월감이라도 두르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았다.

 

 

 

  이전까지는 내가 퀴어라는 것과 페미니스트인 것은 별개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스로를 논바이너리[각주:1] 트랜스젠더(Non-binary Transgender)라도 정체화한 이후, 여성학과 퀴어 이론의 교차점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을 퀴어-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한 이후 여러 가지가 변했다. 이를테면 퀴어 뿐만 아니라 가난과 장애, 아동-청소년, 외국인이나 이주노동자 등 다른 소수자성이나 소수자성 간의 교차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소수자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좀 더 깊은 층위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어느 분야에서나 비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가진 권력에 무지하고, 혹 알지라도 쉽게 간과하고는 한다. 페미니즘 진영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같은 퀴어-페미니스트들, 소수자성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기존의 시스젠더[각주:2] 헤테로 알로섹슈얼[각주:3] 페미니즘을 할 때 배제되었던 여성들을 페미니즘으로 끌어들일 수 있고, 페미니즘을 보다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메갈리아 탄생 이후 페미니즘 논의는 일상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퀴어, 그리고 퀴어-페미니즘에 관련해서는 지지부진하다. 20대 이하의 젊은 세대의 인식이 기성세대보다야 낫다고 하지만 아직 멀었다.

  앞으로 전공을 살려 여성과 퀴어를 대상으로 한 심리학 연구를 진행하고 싶다. 심리학 역시 굉장히 남성중심적인 학문이라, 프로이트의 연구를 비롯한 초기의 많은 실험에서 여성은 실험대상으로 고려되지 않았다. 그러나 페미니즘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여성 역시 피실험자가 되고, 관련 논문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나 역시 퀴어-여성(혹은 여성으로 패싱[각주:4]되거나 지정성별이 여성인 사람)에 대해서 연구하고 싶다. 지금까지 가시화되지 않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정체성에 대해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싶다.


  흔히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그렇지만 내 이름 석자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보다도 내가 연구한 분야가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고, 내가 세상에 왔다간 흔적을 남기고 싶다. 그것이 나, 퀴어-페미니스트 이하제의 지향이다.

 

 

 

이 글은 이하제님의 사연을 바탕으로 구성됐습니다. 이야기를 공유해주신 이하제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 여성과 남성 이분법에 해당되지 않는 모든 젠더 정체성을 말한다. <출처: 젠더 Wikia> [본문으로]
  2. 성별 정체성과 지정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3. 유성애자. 성욕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적행위에 대한 끌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성욕 유무와 상관없이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무성애자(Asexual)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출처: 에이로그 ALOG 네이버 블로그> [본문으로]
  4. 어떤 사람의 외적 모습이 사회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성 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말한다. <출처: 한국 위키피디아> [본문으로]

<개강 특집> 언냐들, 이거 나만 불편해?

 

 

  "대학가가 '여혐'의 불바다가 되었다."

  지난 3,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편집위원회가 여성혐오 발언을 제보 받아 대자보를 작성했다. 해당 자보에는 ○○, 너 여자애처럼 애교도 좀 부리고 다소곳하게 좀 해봐.”, “여자는 똑똑하면 남자한테 인기가 없어. (중략) 조금 멍청하고 백치미가 있어야 남자한테 사랑받지.” 등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들었던 교수들의 성차별성희롱 발언들이 쓰여 있었다.

 

 

 (고려대 여성주의 교지 석순대자보 ©데일리안)  

 

 

  그런가 하면 국민대, 고려대, 경희대, 서울대, 서강대, 연세대 등 서울의 유수한 대학들에서 연쇄적으로 불거진 대학교 단톡방(단체 카카오톡방) 성폭력 사건은 여학생들을 상대로 원색적인 성희롱 발언을 일삼는 남학생들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최근 온라인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경희대 대나무숲 사건의 경우, 피해자 신지윤씨는 가혹행위를 가한 선배의 성별을 물어봤다는 이유로 신상정보가 유출되고 각종 협박과 욕설에 시달리는 등 전교생으로부터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 확실히, 대학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개강시즌을 맞아, <월간여기>대학 내 여성문제를 주제로 제3차 여대회담을 진행하였다. 특히 남녀공학은 구성원 성비 특성상, 간접적인 성폭력이 발생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때문에 이번 회담은 남녀공학 출신, 그 중에서도 학내 여성 기구 운영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토론진을 구성하였다. 각 대학 내 여성혐오 분위기 실태와 학내 여성문제 해결을 위한 기구, 여학생을 대표하는 기구의 운영상황, 그리고 대학 내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취할 스탠스에 대해 저마다 할 말이 많은 대담자들이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답답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마무리를 맺었던 페르가즘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한다.

 

  거기, 페미니즘을 힐난하기 위해 오늘도 어슬렁거리는 당신! 긴장하시라. 그들이 몰려오고 있으니까. (쿵쾅쿵쾅)

 

 

제3차 여대회담 : 여대생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 대학 내 여성문제

회담 진행: 최존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카멜리아 : 차기 검찰총장을 꿈꾸며, 성균관대학교에서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다.

이연 : 서울교대를 졸업했고, 현재는 교직에 몸담고 있다.

옥지은 :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장이다.

GODDESS : 숙명여자대학교 LCB외식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다.

 

 

Q. 요새 대학 교/강사들의 성차별성희롱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교수나 강사의 성차별 발언을 직접 들어본 적 있는가?

 

카멜리아: 지난 학기 수강한 경제학 수업에서였다.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수업은 안하고 맨날 재테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노후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그러면서 항상 하는 말이 아빠는 돈을 버니까 괜찮고, 엄마는 돈을 벌지 않으니까 엄마의 노후준비는 꼼꼼한 딸들이 꼭 챙겨줘야 된다. 딸들이 꼼꼼하니까 그래야 된다.”였다. ‘여자들은 꼼꼼하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꼼꼼하지 않으면 여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본인의 부인을 언급했는데, ‘이대 출신에 박사 학위까지 받은 여자인데 운전도 못하고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렇지만 대단한 복부인, 재테크의 여왕이라면서 너희들도 재테크에 능숙한 지혜로운 여성이 되어라.”라고 했다. 대학 다니면서 들었던 가장 가시적이고 성차별적인 발언이었다.

GODDESS: 새내기 때였다. 대학교 수업은 어떨지 정말 궁금하고 설렜다. 기대감을 잔뜩 안고 수업을 들었는데, 교수님이 남성들은 이성적이고 여성들은 비논리적인 부분이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순간, ‘여기 여대 아닌가?’ 하고 의문이 들었다. 아무래도 여대면 이런 부분에 민감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옥지은: 작년에 학교에서 논란이 일었던 사건이 있었다. 학교 신문인 <대학주보>에 한 학생이 제보를 해서 알려지게 되었는데, 심리학 수업에서 교수님이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여자들은 집에서 애를 보지 않고 금테 안경 끼고 밖에 나가서 일하는 여자들이며, 그 순간부터 그 (여자의) 애들 인생은 망한 거다.”라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카멜리아: 최악이다.

옥지은: 그 외에도 엄마 없이 자란 애들은 어딜 가도 티가 난다’, ‘남성은 여성이 밖에 나가지 않게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아빠도 아이를 돌볼 수 있지만 엄마만큼은 못한다. 모성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서 일하는 것은 남성이 할 일이지, 여성의 영역이 아니다와 같은 이야기들을 자주 했다고 한다. 결국 이 교수님은 해임이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총여학생회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시간에 비슷한 발언들을 들은 적이 있는지 혹은 성희롱/성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간단하게 조사를 했다. 교수님이 예쁜 학생들만 좋아한다’, ‘외국인 교수님이 (여학생들한테) 사적으로 연락한다’, ‘여자는 군대를 가지 않아서 평생 겁만 가지고 살기 때문에 시집가서 구박받는 거다’, 특정 여학생한테 너 밤일 나가니?’라고 하는 등 다양한 대답들을 들을 수 있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2학년 때였는지 3학년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전공수업에서 교수님이 남편과 사별한 여성을 비하하는 과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기억난다.

최존: 총여학생회에서 조사하기 전까지는 교/강사들의 성차별적인 발언들이 공론화되지 않았나?

옥지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퍼졌을 수 있지만, 한 번도 공론화된 적은 없었다. 이렇게 (성차별 발언이) 수면 위로 올라온 건 작년 심리학 수업 사건이 처음이었다. 그 교수님은 문제의 발언뿐만 아니라 굉장히 권위적이고 수업 진행에 있어서 학생들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많이 보였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학생들의 불만이 쌓인 상태였고, 한 용기 있는 남학생이 제보를 해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최존: 제보자가 남학생이라고 말했다. 다른 부분에서도 문제가 있었지만 성차별 발언의 경우는 직접적인 피해자가 여학생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학생들은 왜 제보하지 못했을까? 경희대는 총여학생회가 있으니까 총여학생회에 알려서 가시화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옥지은: 나도 궁금하다. (웃음) 확실히 수강생들 사이에서 (당 사건이) 논란이었다고는 하더라. 그 교수님이 굉장히 오랫동안 당 수업을 진행해오셨고, 불만이 누적되다가 결국 터졌던 걸로 보인다. 총여학생회에 얘기를 안 해주신 건 나도 아쉽다고 생각한다.

최존: 교대는 여학생의 비율이 높다고 들었다. GODDESS의 경우처럼 여대임에도 성차별적 발언을 하는 교/강사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나 교대생이나 교사는 교사는 일등 신붓감’, ‘여자는 교사가 최고야등의 성차별 발언 대상으로 자주 오른다. 그러한 발언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가?

이연: (재학 당시) 강의 중에는 딱히 성차별 발언을 들은 기억은 없다. 내가 잘 까먹는 편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진행자가) 아까 말했듯이 교대생이라고 밝히면, ‘시집 잘 가겠다’, ‘신붓감 1위네와 같은 말을 자주 들었는데, 정말 싫었다. 나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교대에 들어간 건데 마치 결혼하기 위해 교대에 들어간 것처럼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러한 말들이 성차별적인 부분이 있다고는 생각해왔지만, 교사라는 직업이 안정적이고, 다른 직업에 비해 여가시간도 많은데다 임신과 출산 때문에 경력이 단절될 우려도 없으니까 들을 때마다 짜증나긴 하지만 (위의 발언들이) 사회적 맥락에서 동떨어진, 막연한 성차별 발언인 것 같지는 않다.

카멜리아: 그렇지만 그러한 말들의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그 말을 듣는 교대 다니는 여학생들이 당연히 결혼을 하고 애를 낳을 거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이 선택할 문제인데, 당연히 결혼하고, 당연히 임신하고 출산할 거라고 정해놓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성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이연: (앞서 말했다시피) 내가 다녔던 학교의 교수님들로부터 딱히 성차별 발언을 들은 적은 없다. 그렇지만 다른 학교의 경우를 들은 적이 있다. 서울의 한 유명 대학의 굉장히 저명한 교수가 남학생들만 모아놓고 자신이 해외 출장 나가서 사귀었던 여자 친구들 사진을 보여주면서 돈 많이 벌면 (나처럼) 여자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하더라. , 내게 이 얘기를 해준 학생 말에 따르면, 그의 동기들 사이에서 여자를 (물건처럼) 평가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능력은 있지만 상식이나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감성 면에서는 결여된 남자들이 그런 (성차별적인) 생각을 많이 갖는 것 같다.

카멜리아: 상식이나 감성 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사회가 성차별적 분위기에 노출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왜 유명한 짤들 있지 않나. ‘재밌는 교훈이라면서 ‘10분만 더 공부하면 여자친구/마누라 얼굴이 바뀐다와 같은. 이런 식으로 성공한 남성에게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 보상처럼 따라올 것이다라고 사회가 주입하고 있다. 의대면 최고의 학벌 중 하나가 아닌가. 그 사람들이 상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상식이 그렇게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존: 우리 사회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개체가 아닌, 남자들의 성공을 위한 보상으로 여긴다는 것인가?

카멜리아: 그렇다. ‘성공하면 예쁜 여자, 매력적인 여자랑 잘 수 있어류의 생각들. (여성을) 무슨 게임 퀘스트에 대한 보상물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소위 성공한남성들의 변태 행위에 대한 얘기를 적지 않게 듣는 편인데, 아마 그들은 내가 이렇게 높은 위치까지 올랐으니 여자들을 아무리 함부로 대하고 미친X같이 굴어도 사회는 용인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다.

GODDESS: 맞다. 범죄를 일으킨 게 분명해도 봐주지 않나? 의대생이 몰카찍으면 의사의 꿈이 좌절돼선 안 되니까 봐주자면서.

카멜리아: 판례를 조사하는 게 과제여서 보던 중 정말 어이없는 경우를 봤다. 강간미수 사건이었는데, 가해자가 모 대학 법대생이었다. 판결문에 나와 있는 내용 중 눈에 띄는 것을 그대로 얘기해보자면, ‘법대생이므로 그 남자가 법을 오인했을 리 없다. , 법을 잘 배워나갈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일(강간미수)을 벌일 일이 없다.’가 있었다. 결국 가해자가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는지 무죄판결을 받았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끝난 사건들이 꽤 있다.

GODDESS: (카멜리아가) 여성이 액세서리로 인식되는 게 어렸을 때부터 사회로부터 그러한 생각을 주입받고 있다고 하시지 않았나. 정말 공감하는 게, 요즘 대중가요 가사들을 보면 내가 성공해서 버스에 여자들 가득 태워서 돌아오겠다’, ‘내가 너무 멋져서 여자들이 다리를 벌린다이런 식이다. 저런 가사 싫다고 하면 예민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힙합이 원래 이런 건데, 너무 예민하신 것 아닌가요?”

카멜리아: 너 메갈하니? (웃음)

GODDESS: 이런 게 정말 사소해 보이지만, 사람들 인식을 형성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행사한다. 앞으로 이런 콘텐츠들을 많이 지적하고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서울대, 연세대 단톡방 성희롱 발언 내용 ©동아닷컴, 한국일보)

 

 

Q. 성차별 발언은 강단에서뿐만 아니라 같은 학우끼리도 행해지고 있다. 최근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일련의 대학 단톡방 성폭력 사건이나 에브리타임, 각종 대학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여성혐오 분위기가 만연한 것이 그 예다. 대학 인터넷 커뮤니티나 동기 단톡방에서 성차별 발언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GODDESS: 숙대 커뮤니티에서 있던 일이다. ‘남자친구가 ROTC 후보생인데, 여대 ROTC 후보생들은 힘든 일도 잘 안하려 하고, 남자들보다 성취 기준도 낮은데 여대라고 점수를 잘 받는다. 그래서 어이가 없다.’라는 글을 누가 작성했다. 반박댓글을 달았는데, ‘근데 여대가 ROTC 1위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라는 작성자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게 이상한 일인가? 그 외에도 회사에서 성희롱이 종종 일어나고 있지만, 하나하나 따지려 들지 말고 어느 정도 참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글도 봤다. 그런 거 하나하나 다 문제 삼으니까 여자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활동을 못하고, ‘이러니까 여자들은 안 돼라는 말이나 듣는 거 아니냐면서, 사회에 어느 정도 맞춰줘야 되는 거 아니냐는 거다. 정말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카멜리아: GODDESS가 말한 것과 비슷한 사례를 본 적이 있다. 한 여학우가 학교 대나무숲에 여잔데 ROTC가 하고 싶다. 군필인 남자친구에게도 말했는데, 그가 군대는 여자들이 갈 곳이 못 된다고 힘들 거라면서 하지 말라더라. 근데 정말 ROTC가 되고 싶다. 남성분들, 여자친구가 군인이면 싫나요?’라는 내용의 질문을 올린 적이 있었다. 대나무숲 페이지 관리자가 달은 댓글이 아주 가관이었는데, ‘여자 ROTC 후보생들 많이 아는데, 걔네들은 어떠한 사명감으로 ROTC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스펙 한 줄 더 추가하고, 여자 ROTC 타이틀 하나 따서 그 뽕에 취하려는 애들이다.’라고 댓글을 남겼다. 그러면서 만약 사명감이 있었다면 사관학교를 갔어야죠. 왜 성대에 왔나요?’라고 추가로 또 복장 터지는 소리를 하더라. 교내 ROTC, 특히 ROTC 여학우분들의 항의가 빗발쳤는데, 어떠한 사과문도 없이, 그냥 논란이 되어서 댓글을 지웠다며 문제 댓글만 쏙 지우더라. 그 뿐만이 아니다. 대나무숲 제보 중에는 여성혐오적인 것도 많은데, 그러한 내용에 대한 필터링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누군가 그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 그 사람들을 차단하고 글을 삭제해버리기 일쑤다. ‘남녀 분란글은 무조건 필터링을 하겠다는 원칙을 7월부터 세워놓고선 페미니즘 내용의 제보는 다 거르고 여성혐오적인 제보는 올린다. 감수성이 빻아서그런 건지, 아니면 일부러 싸워보자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문제제기 하러 달려가서 뭐라고 하면 바로 (해당 내용을) 삭제하긴 하지만, 그에 대해서 아무런 사과나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GODDESS: 살면서 정말 많은 여성혐오 글을 봤는데, 그럴 때는 절대 남녀 분란 조장글이라고 욕을 먹지 않았다. ‘요즘 여자들이 정말 문제입니다. 요즘 여자들은 어쩌고저쩌고라고 해도 절대 욕먹지 않고, 오히려 맞아요. 솔직히 다 맞는 말들이런 식의 동조하는 댓글들이 달리더라. 여자들조차 맞아. 요즘 여자들 개념 없는 게 사실이지.’ 이러고.

카멜리아: ‘나도 여자지만~.’ (웃음)

GODDESS: 그러다가 한번쯤 남자들에 대해 지적하는 글이 나오면 남녀 분란 조장글이라는 둥, 메갈이 쓴 게 틀림없다는 둥, 당장 내려야 한다는 둥.

카멜리아: 동아리 회식자리에서도 문제가 있다. 0으로 시작하는 학번의 선배들이 1학년 여자애들을 앉혀놓고 술을 엄청나게 먹인다. 회식하는 날이면 그 여자애들 휴대폰이 터질 때까지 술 같이 마셔달라고 전화를 하고, 자신들에게 술 따르라고 시킨다더라. 거의 접대부 취급을 받는 것 같다는 친구도 있었다. 여학생을 술자리의 꽃으로 취급한다고 들었다.

옥지은: 어떤 동아리 같은 경우는 요즘 계속 단톡방 사건이 터지니까 남자애들이 , 이 단톡방 보여주면 안 된다면서 단톡방을 안 보여준다고 한다. 내게 이 얘기를 해준 친구는 아마 그 단톡방에도 그런 (성폭력적인)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더라.

최존: 대학교 단톡방 내 성폭력 발언 사건들이 최근 뜨거운 이슈이지 않았나. 남학생들이 , 더 이상 이러면 안 되겠다. 이거 범죄구나.’라고 반성하며 자정하는 것인지, ‘우리끼리 이야기한 것뿐인데, 들키지만 않으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건지 궁금해진다.

GODDESS: 그들은 아예 (성폭언이)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네들끼리 음담패설하는 거고, 여자들도 남자들 없을 때 야한 얘기하지 않느냐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 이걸 범죄라고 하지? 다른 남자들도 다 하는 건데?’, ‘걔네가 재수 없게 들킨 거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나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분위기 상) 그렇게 말해야하는 것 같으니까 잘못된 거지만, 남자들 사이에선 어쩔 수 없다. 같이 동조하지 않으면 씹선비라고 욕먹게 되고. 그냥 멋있어 보이려고 허세 부리는 거다. (성폭언은) 모든 애들이 하는 거라서 이걸 막거나 고칠 수 없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겨야 된다.’라고 얘기하더라. 이걸 정말 진지하게 문제라고 생각하고 해선 안 되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여자들 중에서도 이게 왜? 다른 사람들도 다 하지 않아?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카멜리아: 굉장히 충격 받은 적이 있다. 얼마 전 서강대 사건이 터졌을 때였다. 평소에 젠더 감수성이 있다고 생각한 남자 과동기와 얘기를 했는데, 내가 걔네 완전 쓰레기들이야. 우리 과 남자 단톡도 그러고 남을 거 같아. 우리 과 남톡도 털어서 박제해갖고 창피한 줄 알게 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가 이게 뭐가 문제야. 걔네들이 범죄의 목적을 갖고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재미로 얘기하는 건데라고 하더라. 특정 여성을 저격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굉장히 성차별적이고 여자를 성적 객체화하는 발언 자체가 문제인데.

GODDESS: 국민대 사건이 터졌을 때도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서 카톡방 성폭언도 그렇고, 더 나아가서 몰래카메라도 당사자만 모르면 범죄가 아니라고, 성희롱의 영어 정의를 가져와서 얘기하더라.

 

 

(이미지 출처 = ©Berry College)

 

Q. 학교에서 여성학 수업 혹은 젠더 관련 수업이 개설되어 있는가?

 

GODDESS: (여성학 수업이) 개설은 되어 있는데, 굉장히 부족하다. 매 학기마다 열리는 것도 아니고, 정말 안타깝다. 여성학과 관련된 수업도 적은 편이고. 이화여대 다니는 친구 얘기를 들어보면 여성학 수업이 굉장히 많더라. ‘여성과 ~’, ‘여성의 ~’ 이런 식으로. 필수로 들어야 되는 수업도 있고.

카멜리아: 내 친구도 이대를 다니는데, 교양 과목 마지막 단원은 꼭 여성학 얘기가 나온다고 하더라. 친구가 하는 말이 이대에서 교양 들으면 기---여성학이라고. 그런데 그렇게 가르쳐도 못 알아먹는 사람들도 참 많은 것 같다. 여성학 수업만 해서 신물 난다고. 여성학 수업은 해도 해도 모자라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교양은 기---페미니즘이라 힘들고 재미없다’, ‘맨날 똑같은 말만 한다는 식의 반응들도 더러 있다고 하더라.

최존: (페미니즘이) 여성과 굉장히 밀접한 학문인데도 재미없고 불필요하게 느끼는 것은 본인이 페미니즘 이슈와 무관하다고 생각해서일까?

카멜리아: 그렇기도 하지만, 페미니즘을 말하는 사람은 늘 예민하게 취급받고, 어떤 자리에서는 불청객처럼 여겨지지 않는가. 그런 것의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여성도 여성혐오를 하듯이, 페미니즘에 대해 반감을 갖는 이유는 구조적 문제를 파악하지 못해서이거나, 남성우월적인 사상에 너무 젖어있기 때문에, 혹은 문제라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어쩌라고?’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 자체가 젠더 감수성이 매우 낮으니까.

GODDESS: 성차별 사건에 대해 얘기하면 그건 너무 극단적인 거 아냐?’, ‘현실에 없는 얘기 아니야?’라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성차별을 당해도 당하는 줄 모른다. 그게 성차별인지를 모르니까. , 요즘에는 페미니즘을 말하는 여자들을 남자한테 사랑 못 받는 못생기고 뚱뚱하고 현실에 불만이 많은 메퇘지라고 프레이밍하지 않는가. 우리나라에서 외모지상주의가 매우 팽배한 것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을 말하는 사람을 저렇게 몰아버리면, 그런 이미지를 갖기 싫으니까 피하는 것도 있을 거다. 아까 말한 이대 친구가 여성학 수업을 듣다 보니 관심이 생겨서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었는데, 남들이 보면 자신을 뭐라고 생각할지 몰라서 그 책을 숨겼다고 하더라.

최존: 성균관대나 경희대, 서울교대는 여성과 관련한 수업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연: 없다.

카멜리아: 필수로 듣는 교양 중에는 없는 것 같다. 전공 수업 중에는 두 가지 정도 있는 것 같다. 여성학 연계전공이 있긴 하지만, 한 학기에 한 두 개정도밖에 열리지 않는다고 들었다. 문제라고 생각한다. 젠더의식과 관련한 수업을 필수 교양으로 지정해야 대학생들이라도 문제의식을 가질 텐데, 안타깝다.

옥지은: 10학번이라 요새는 어떤지 잘은 모르지만,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작년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여성학 수업이 그나마 한 학기에 한 개 정도 선택교양으로 열린다. 그거 말고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사회학과에 여성학 관련 수업이 있다고 해서 들으러 갔다가 오티를 듣고선 젠더 의식이 전혀 없다고 판단하여 수강 신청을 취소했던 기억이 있다.

GODDESS: 여성학 수업들이 있다고 해도 그걸 가르치시는 분들이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숙대도 그런 강사가 있다고 들었다.

최존: /강사들이 젠더 감수성이 없다는 것인가.

카멜리아: 여성이나 젠더 관련 수업들이 인기가 없기 때문에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다른 비인기 과목들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인기가 없으면 듣는 애들도 별로 없고, 담당하는 교수님도 없고. 강사만 맨날 바뀌는데, 그러다보니 수업의 질이 좋아지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더 안 듣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게 아닐까.

GODDESS: 숙대는 수강 신청할 때 세 분반이 꽉 찰 정도로 여성학 수업에 대한 수요가 많은데 왜 더 많이 열어주지 않는지 궁금하다.

 

 

Q. 학교에 성폭력/성평등 상담소가 설치되어 있는가? 존재한다면 학생들의 이용 빈도는 어떠한지 궁금하다. , 위와 같은 대학 내 기구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성평등 교육을 실시하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러한 교육 프로그램이 유효성 면에서 어떤 지도 궁금하다.

 

카멜리아: 학교에 이름부터 빻은 양성평등센터가 있다. 그런 기구가 있다는 걸 2015년에서야 알았다. 한 남자 ROTC 후보생이 여학생에게 성폭력을 가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나도 (센터의 존재를) 몰랐고, (다른 학생들도) 관심이 있지 않은 이상 거의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이용 빈도도 매우 낮은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센터 구성을 보면 여성학적 교양이나 지식을 갖고 있는 상담사 분들은 1-2명밖에 없고 나머지 구성원은 양성평등센터로 발령받은 행정직원들이 대부분이다. 센터장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센터를 홍보할 생각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지도 알 수 없다. 이런 구조면 (센터가) 제대로 운영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최존: ROTC 후보생의 성폭력 사건 당시 양성평등센터의 입장은 어땠나?

카멜리아: 양성평등센터는 학생이 신고를 하면 징계위원회에 회부를 해주는 기구다. 그 사건이 공론화된 계기는 피해 학생이 문과대 소속 여학생위원회에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검토한 결과, 사건의 수위가 학교에서 징계를 내릴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양성평등센터로 가자는 결정이 났다. 그곳은 그저 학교의 행정기관일 뿐이다. 어떤 입장을 취하지는 않는다. 규정대로 징계를 내릴 뿐이다. 그런데 그 징계도 (피해자나 피해자를 도운 사람들) 마음에 차지 않았던 것 같다.

최존: 그럼 성차별이나 성폭력과 관련한 교칙이 제정되어 있다는 건가?

카멜리아: 그렇다. 양성평등 교칙이 있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에 대한 정의도 있고, 누가 징계를 내릴 수 있다든지 세칙들이 존재한다. 아무도 모르지만.

최존: 그러한 교칙들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잘 안 알려준다는 건가?

카멜리아: 그렇다. 새터(새내기배움터) , 술을 마시기 때문에 성폭력이나 성희롱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안전교육 시, 성교육도 하라고 총학생회에서 지침이 내려온다. 입학했을 때 내가 소속된 단과대에서는 술 많이 마실 수 있으니 조심해야 된다이 정도에서 (성교육이) 그쳤다. 다른 단과대에서도 다들 마찬가지라고 들었다. 유일하게 문과대에만 여성주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여성주체를 각 단과마다 뽑아서 문과대소속 여학생위원회에서 6주 동안 반()성폭력 세미나도 하고, 새터에서 여성주체가 된 사람들이 나와서 교육도 진행한다. 그런데 그 여성주체도 전학대회(전체학생대표자회의) 때마다 없애야 되는 거 아니냐고 말이 나온다.

최존: 어떤 이유로 철폐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가?

카멜리아: 하는 것도 없고 이름만 있는데 필요하냐는 식이다. ‘문과대에서 그런 문제가 얼마나 발생한다고? 필요 없잖아?’ 내가 소속된 단과대 세칙이 수정됐는데,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성범죄) 관련 세칙이 전혀 나와 있지 않았다. 다른 단과대 세칙도 마찬가지다. 90년대에 만들어져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여학생위원회에 신고가 들어와 학교 측에 (가해자에게) 징계를 내려달라고 요청할 때도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떻게 조치를 취해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난감했다.

이연: 학교에 학생들 고민을 들어주는 그냥 상담소는 있었지만, 성평등 상담소는 없었다.

옥지은: 경희대는 원래 성폭력 상담실이 있었는데 성평등 상담실로 이름을 바꿨다. 상담실은 실장님과 상담사 한 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담실은 여학생과라는 행정부서도 겸하고 있다. 매년 여성가족부가 성폭력 예방 교육 지침을 내리고 결과를 보고하게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각 대학은 징계를 받게 된다. 이전 상담실장님 같은 경우는 되게 의욕적인 분이어서 각 대학 새터를 다 돌면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진행하셨다. 근데 내용 면에서 문제가 많았다. 결국 2014년에 정경대를 시작으로 교육받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가 불거졌다.

최존: 문제 제기된 내용은 무엇인가?

옥지은: 실장님이 연세가 있는 분이었는데, 초반에는 이러한 사례는 성폭력이다, 관련 법률 조항으로는 이런 게 있다는 식으로 진행하다가, 사례를 들면서 여학생들에게 남자 선배들과 술 마시지 마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게 무슨 성폭력 예방 교육이냐는 말이 많았다. 이 분의 정년퇴임 이후 새로운 실장님이 부임하셨는데, 새터를 다 돌기가 쉽지 않아 서울캠퍼스와 국제캠퍼스 학생들 모두 모이는 입학식 때 강연을 했다. 굉장히 형식적이었다. 만 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집중을 하겠는가? 학생들 중 몇 퍼센트가 교육을 받았는지 서류로 보고를 해야 하는데, 서류상으로 실적은 나오겠지만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최존: 형식적인 보고를 위해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인가?

옥지은: 운영진분들이 의욕이 없는 건 아니다. 학교에서는 계속 예산을 줄이고 있고, 적은 예산과 인력으로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곳이 가장 심하게 예산이 축소된 기구 중 한 곳이다. 예산팀에서 상담실을 학교에서 가장 필요 없는 곳이라 생각하는 거 같다. 2012년까지만 해도 남녀학생들 모아서 MT를 가는 프로그램이라든가, 여성학 관련해서 발표대회를 열고 시상도 하는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는데 지원 예산이 축소되니 사업 규모도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온라인을 통해 교육을 진행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상담실은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용이 썩 좋은 편이 아니어서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최존: 상담소 이용 빈도는 어떠한가?

옥지은: 이용 빈도가 높지는 않은 것 같다. 주변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여학생 남학생 모두 존재 여부도 잘 모른다.

GODDESS: 주변에서 이용하는 사람을 보긴 했지만, 나는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다. 상담사들이 어떤 기준으로 뽑히는 건지도 모르고, 앞으로도 이용할 것 같지는 않다.

최존: 성평등 상담소가 설치되어 있어도 형식적인 면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대학 내 이러한 기구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Students in the Powell Reading Room at Sweet Briar College, circa 1950 ©Rebecca Thompson/Flikr)

 

   

Q. 총여학생회 및 여학생위원회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이러한 기구 이외에도 학내에 또 다른 여성 단위들이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옥지은: 총여학생회가 존재한다. 성폭력 신고가 들어올 경우 성폭력 대책위원회가 열리는데, 참가 위원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그 중 당연직은 회의에 필수로 참석해야 하는 위원인데, 그 중 한 명이 총여학생회장이다. 총여학생회가 기본적으로 하는 사업들은 대부분 오늘 했던 이야기들과 관련된 것이다.

최존: 여학생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기구로서 말이다. 그렇다면 총여학생회 말고 다른 여성 단위는 없는가?

옥지은: 원래 단과대나 학과마다 여학생회가 있었는데, 2000년대 중반에 다 사라졌다고 들었다. 동아리나 학회, 소모임 등은 존재하고 있는 상태다.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거의 없었는데, 메갈리아 이후 담론이 활성화되다보니 많이 생겼다.

GODDESS: 숙명여대에는 중앙 동아리로 여성학 동아리가 있다.

이연: 서울교대에는 젠더나 여성학과 관련된 모임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카멜리아: 성균관대는 2009년까지는 총여학생회가 존재했었다. 2012년에 총여학생회를 세울 준비를 했으나, 투표율 미달로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했다고 들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한 번 총여학생회를 세워보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선거본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엎어졌다. 단과 대학이나 각 과에서 소모임처럼 여성 단위가 있다고 들었지만, 현재 제일 크게 남아있는 기구가 문과대 소속 여학생위원회다. 여학생위원회가 학내 여성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현재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열 명도 되지 않는다. 있는 줄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더라. 여학생위원회에서는 성폭력 사건을 접수받으면 주로 세 가지의 루트로 활동을 한다. 공동체 내의 해결이라는 대자보 붙이기, 징계위원회 또는 양성평등센터 소환하기, 그리고 형사고소 준비하기. 이 세 가지 방법이 동시에 진행될 수도 있고 개별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그 외에는 방학마다 여성학 세미나를 진행하고, 일 년에 한 번씩 페미니즘 문화제를 주최한다. 페미니즘 문화제에서는 영화제나 강연회, 토크 타임, 게임 등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학내에서 여성주의모임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린다.

최존: 문화제나 세미나에 학생들이 어느 정도 참여하는가?

카멜리아: 2014년까지는 기존에 활동하던 인원들만 참여했기 때문에 조촐했다. 그러다가 2015년에 메갈리아가 나오면서 강연회가 정말 대박이 났다. 올해 행사는 지금 준비 단계인데, 총 세 가지 정도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GODDESS: 숙대도 한 때는 여성학 동아리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작년부터 회원 수가 급증하고 활발해졌다고 들었다.

 

  

Q. 공학 내 총여학생회가 많이들 사라졌고, 일부는 총학 산하기구로 편입되거나 다른 기구로 대체되는 등 그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고 들었다. 아직까지도 여학생은 각종 성범죄에 쉽게 노출되어 있고, 앞의 사례들을 봤을 때 젠더 위계에서 명백히 피기득권층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학생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기구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는가?

 

옥지은: 왜냐하면 남학생 여학생 가릴 것 없이 모두 여성이 피기득권층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멜리아: 특히 대학 안이라서 더 그런 것 같다. ‘우리가 오히려 역차별 당해. 요새 여자들 살기 편하잖아. 군대도 안 가고, 밥도 잘 얻어먹고 다니고.’라는 남자들의 말을 보면, 살기 편안한 여자들20대의 젊고 예쁜 여자들이다. 근데 그 여자들이 모여 있는 대표적인 집단이 대학이지 않은가. 그래서 가시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GODDESS: ‘여자들은 좋겠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자들이 밥 사줘, 얼굴 반반하면 취직 걱정할 필요 없이 돈 많은 남자 잡아서 시집가면 되고. 요즘은 여자들이 살기 더 좋은 세상이야.’라는 사람들이 있다. 여자의 미모와 젊음을 여자만의 권력 내지는 특권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걸 권력이라고 바라볼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걸 권력이라고 치면 그 권력을 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남자들이다. 남자들이 쥐어주지 않으면 그러한 권력조차 가질 수 없는데 어떻게 여성들이 권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가?

최존: 총여학생회가 있는 경희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데, 총여학생회 존폐위기도 있었던 걸로 안다. 총여학생회에 대한 여학생들의 일반적인 여론이나 반응이 궁금하다.

옥지은: 2015년 전, 그러니까 메갈리아 전의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2012년부터 총여학생회를 시작했고, 2013년에는 선본을 못 세워서 공백이 있었다. 2014년에 다시 총여학생회를 세우고 그 해를 마무리하며 여학생들 1000명을 대상으로 총여학생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설문조사를 했었다. 결과가 재미있었다. 많은 여학생들이 자기를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동시에 깊은 내면에서는 언제든 자신이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게 보였다. 남자가 역차별 받는 시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았다. 한편으로는 총여학생회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장 논란이 된 지점은 총여학생회는 여학생을 위한 기구인데 왜 남녀 모두에게서 회비를 받는가이었다. 그 말의 기저에는 여성들이 더 이상 차별받지 않는데 총여학생회가 도대체 왜 필요하냐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2014년도까지 여학생들도 공유하고 있었다.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2015년에 메갈리아가 등장하면서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다. 확실히 대나무숲 페이지를 보면 이전에는 남녀갈등관련 글이 올라오면 여학우들은 댓글을 거의 달지 않았다. 근데 메갈리아 이후부터는 여학우분들도 댓글을 달기 시작하더라.

GODDESS: 사실 그 전까지의 글은 남녀 갈등글이라기보단 그냥 여혐 글아닌가?

카멜리아: 된장녀라고, 김치녀라고 여자 욕하고. 없는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프레임 만들어서 여자들은 왜 그래?’ 이런 말이나 하고.

옥지은: 조리돌림이나 마녀사냥 등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때문에 내가 무슨 말을 했을 때, 어떤 식으로 댓글들이 달릴지 아니까, 과거에는 여자들이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지나갔다면 이제는 (반박)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기더라. 메갈이 생겨남으로써 숨어 있던 여성 문제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 같다. 그 동안은 우린 차별 받지 않아라는 목소리가 우세했는데, 이제는 우린 차별 받는 게 확실하다라는 목소리가 생겼다. 그전까지는 총여학생회가 왜 있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여성으로 묶이는 것 자체가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총여학생회가 정말 필요하다고 느꼈다는 분들도 더러 계신 걸 보면 총여학생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상당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최존: 대학 내 여성 단체를 운영하는 데 있어 어떠한 어려움이 겪는가?

카멜리아: 여학생위원회에 참여하게 된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일단 발언의 수위조절이 굉장히 어렵다. 왜냐면 우리가 어떤 주장을 하고 싶어도 그걸 그대로 내보일 수가 없다. 학내에서의 고립이라는 문제를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러다보니 내부적으로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그게 제일 무서운 것 같다. (여학생위원회인) 우리조차도 우리의 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

최존: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여러 곳에서 위협이 들어오기 때문인 건가.

카멜리아: 그렇지. 한마디로 여학생위원회의 이름을 걸고 누군가가 허락하는 페미니즘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언젠가 여학생위원회에서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한 글에 한 남성이 빻은 소리를 한 적이 있다. 긴급회의 후, 굉장히 온건하게 당신의 말을 이렇고 저런 이유로 빻았어요. 아시겠죠? 앞으로 이런 말을 하지 말아주세요.’라는 식으로 댓글을 달았다. 그랬더니 다른 메갈년들이랑 다르게 여러분들은 정말 친절하고 논리적으로 말씀해주시네요. 진정한 페미니스트이십니다.’ 이렇게 말하더라. (웃음)

GODDESS: 그 사람들은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 온건하게 지적해줘도 항상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개념녀시네요. 이런 여자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따위로 글을 맺는다.

카멜리아: 그 댓글에 여학생위원회 일원들 모두가 기분이 나빴다. 우리의 말은 기존의 메갈년들과 주장이 다른 것도 아니고 논조만 달랐을 뿐인데. 우리의 말을 경청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밖에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그렇지 않으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하고 신상이 털리는 걸 감수해야 된다는 게 너무나 어렵다. 얼마나 억울해.

GODDESS: 남자들을 일반화하지 않고, 남자가 군대 다녀온다는 걸 고마워하는 개념녀임을 증명하지 않으면 메갈년이 되는 거다.

옥지은: 자기 검열 부분에서 정말 많이 공감이 간다.

카멜리아: 친절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게 정말 큰 굴레인 것 같다. 학내 기구의 한계랄까.

옥지은: 정치 조직이기 때문에 이미지 관리도 신경 써야 한다. 총여학생회라는 이유만으로 스토킹당한 적도 있다. 나보다도 새내기 내지 2학년 밖에 안 된 집행부 친구들이 위협을 받는 게 너무나도 싫다.

 

 

  (이미지출처 = ©ElleAfrique)

 

 

Q. 대학 내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학내 여성들은 어떤 위치를 점해야 할까?

 

옥지은: 총여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느낀 건, 우리가 방어적으로, 그리고 수박 겉핥기식의 우회적인 활동을 할수록 여학생들은 더더욱 총여학생회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논쟁이 될 만한 주제의 핵심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훨씬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더라.

GODDESS: 숙대 여성학 동아리가 보지 좀 보지부스를 진행했던 것처럼.

카멜리아: 작년 페미니즘 문화제의 주제가 여성혐오였다. 여성혐오 주제는 가장 첨예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메갈리아도 터졌고, 어차피 우리도 곧 망할 것 같으니까 불타오르자는 심정으로 (여성혐오를 주제로 선정)했는데, 재생산도 많이 되고 자리가 모자라니까 사람들이 막 서서 강연 듣고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신입생도 많이 들어왔다고 하더라. PC(Political Correctness) 중요하고, 학내에서 고립 안 되는 거 중요하다. 그런데 하고 싶은 말 다한다고 해서 꼭 고립이 될까 싶기도 한다. 지금 내가 회담에서 하는 말들, 내 실명 밝히면서도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옥지은: PC함과 un-PC함 사이에서 줄타기를 계속 해야 한다. 주제는 첨예하되, 그걸 다루는 방식은 PC하게.

이연: (지은이) 정제해서 말하는 것과 대놓고 말하는 것 사이의 줄타기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 공감한다. 나 같은 경우도 페미니즘을 잘 모르는 상태이지만, 갈등하는 것 자체가 사람들한테 페미니즘이 공격적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하는 것 같다. 여성학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지 않은가. 행사 등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페미니즘을 더 많이 설파하다보면 줄타기를 하는 것도 갈수록 줄어들 것 같다.

GODDESS: 페미니즘이 많이 확산이 되어야 할 텐데, 고민인 건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도록 친절해져야 하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고, 해야 할 이야기를 선별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카멜리아: 근데 이제 그 나만 불편해?’라는 말조차도 못 쓰게 한다.

GODDESS: 그렇다고 해서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거기에서 거부감이 느껴진다고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최존: 페미니즘의 스펙트럼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하나의 방향으로만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GODDESS: 맞다. 사실 페미니즘은 굉장히 그 갈래가 다양하다. 그런데도 <윤리와 사상>같은 과목에서는 페미니즘이 마치 하나의 사상인 것처럼 가르친다. ‘올바른 페미니즘따위의 빻은 소리가 나오는 게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카멜리아: 페미니즘을 올바르다/올바르지 않다고 판단하는 기준도 너무나 자의적인 게, 올바르다고 하는 페미니즘, 지금까지 끊임없이 페미니스트들이 말해오던 것이 아닌가. 좋게 얘기했을 땐 듣지도 않더니. 이제는 한남충’, ‘6.9’, ‘재기해이러니까 님들이 말하는 건 올바른 페미니즘이 아닙니다.’라며 올바른 페미니즘을 찬양하는 게 너무나 웃기다. 나는 그래서 페미니즘이 재밌어져야 하는 것 같다.

GODDESS: ‘김치녀라는 단어가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퍼진 이유는 재밌기 때문이다. 남초 커뮤니티를 좀 오래 했었는데, 걔네가 (여혐)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재밌고 웃기니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희화화하는 게 얼마나 재밌나.

카멜리아: PC함과 un-PC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때, 좋은 평행대가 유머인 것 같다. ‘한남충’, ‘재기해와 같은 단어가 우리끼리는 재밌지만, 폭력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내가 메갈에 유입하게 된 건 재밌어서였다. 말이 웃기니까 붙잡고 주장을 읽어보게 되고, 그렇게 페미니즘에 입문하게 되었다. 사실, 페미니즘 다 맞는 말 아닌가. 맞는 말을 하는데 그걸 제대로 이해했을 때, 거부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제대로 알지 못하니까 불편하게 느끼고 거부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람들을) 붙잡을 수 있게, 재미있고 유머러스하게 페미니즘 운동이 진행되면 좋겠다.

옥지은: 전략을 다양하게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총여학생회는 하는 일이 정치적이기 때문에 채택할 수 있는 전략이 한정적이다. 온건한 방식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메갈리아 워마드는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머리 풀고 달려들 수 있는 곳이지 않은가. 총여학생회는 학내 여학생의 대표조직이기 때문에 어쩔 때는 핵심적으로 찌르고 나가야 될 때, 그런 (유쾌한) 전략들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슈화 될 걸 못 가져가는 경우도 많았다. 총여학생회와 같은 조직이 그런 걸 못한다면 다른 곳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집행부 인원수가 증가했다. 메갈리아 이후 페미니즘이 퍼지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면을 봤을 때, 여성혐오 문제를 이슈화 시키는 집단이 있어 계속 문제제기를 하다보면, 보는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더 많아지게 되고, 그럴수록 페미니즘 장벽이 더 허물어질 것이다. 메갈처럼 날뛰는 사람, PC하게 말하는 사람, 친절하게 말하는 사람, PC함과 un-PC함 중간에 있는 사람, 유머러스하게 얘기하는 사람 등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다양해질 거란 말이지. 전략이 다양해지려면 일단 사람들이 많아져야하지 않겠는가. 그 수단은 유머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난 일베의 장점이 유머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폭력적이고 저질스러운 내용을 포장하는 유머, 드립이라는 게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드립이라는 그들의 무기를 뺏어 와야 한다. 다양한 전략으로 한 곳을 바라본다면, 시너지효과가 생겨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대담후기

카멜리아: 정말 즐겁고 또 오고 싶다. 학교에서도 세미나를 하는데, (학내에서 하는 세미나는) 지인들끼리 모이기 때문에 스펙트럼이 넓지 않은데, 확실히 다른 학교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를 하니까 스펙트럼이 훨씬 넓고 정말 즐겁다. 다음에 또 오고 싶은 정도다.

이연: 솔직히 이렇게까지 생각 못하고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왔었다. 사실, 여성학이나 페미니즘에 대해 썩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 자리를 통해 좀 알게 된 면이 있고, 나도 많이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나는 애들을 가르치는 교사니까. 애들이 가끔 남녀차별 운운할 때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페미니즘과 젠더문제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옥지은: 교대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들이 많아서 재밌었다. 오늘 나눴던 이야기들이 사실 주변 사람들과 다 한 번씩 얘기해봤던 것들이라, ‘다들 비슷하게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고민이다. 총여학생회 입장에서만 바라보다가 여성위원회나 평범한 학우의 입장에서 바라보니까 새로운 모습이 보여서. 이런 건 나도 고민해봐야겠다고 느꼈다.

GODDESS: 다양한 학교 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다. 아무래도 여대다 보니 다른 남녀공학 대학교의 분위기는 잘 모르지 않나. 알아갈 수 있는 기회라서 좋았다.

럭키 퀴어 페미쇼(LUCKY QUEER FEMI SHOW)

 

최존

 

 

  나는 퀴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시스젠더[각주:1] 레즈비언 알로섹슈얼(Cisgender Lesbian Allosexual)[각주:2]이고, 굳이 성적 지향성을 숨기지 않는 공개적인 레즈비언(Openly Lesbian)’이다. 그리고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여성이자 성소수자라는 점에서 나는 꽤나 두드러진 소수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내가 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여러 가지 제약과 차별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퀴어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 나를 용감한 사람이라 여길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내가 페미니스트였던 것도 아니고, 두려움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처음 커밍아웃했을 때였다. 가장 친한 친구라 여겼던 옆 반 남자아이에게 내가 여성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그 애는 표정이 싹 굳은 채, ‘남자와 안 자봐서 그렇다며 나를 교정강간하려 했다. 그 이후, 그 애는 나를 철저히 무시했으며, 지나갈 때 침을 뱉기도 했다. 그렇게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

  운 좋게도,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은 나의 성적 지향성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엄마께 커밍아웃하기로 마음먹은 날이었다. “엄마, 만약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너무 힘들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 얘기를 꺼냈다. 엄마는 내가 임신한 줄 아시고 괜찮아. 네가 낳고 싶으면 낳아도 되지만, 감당할 수 없으면 병원가자.”라고 하셨다. 내가 엄마, 그게 아니라 나 여자를 좋아해.”라고 했을 때, 엄마는 왜 그런 걸로 울면서 진지하게 얘기하냐? 난 너 애 가진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라며 무색할 정도로 나의 커밍아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셨다. 엄마의 반응은 세상 모두가 내가 레즈비언인 걸 알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만큼 큰 용기를 주었다.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였다.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교양 수업에서 교수님이 제시하신 주제는 한국에서는 왜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지 않을까?’였다. 한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동성애자는 에이즈를 유발시키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께서 그건 학술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논거라고 지적하시자, 그는 동성애는 사회적 혐오를 조장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맙소사! 너무나도 확신에 찬 그의 대답, 부끄럼 한 점 없는 당당한 그의 태도에 나는 경악했다.

  “이 반에 분명 성소수자가 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세요? 부끄럽지 않으세요?”라고 내가 묻자, 그는 주춤하더니 , 그럼 본인이?”라고 되묻고서는 자리에 앉았다.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도 그였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조용히 살고자 했건만, 교내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호모포비아적이라면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후 나는 교내에 성소수자 인권동아리를 창설했고, 활발히 활동했다.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비교적 별 탈 없이 확립한 것에 비해, 페미니즘에 입문한 것은 조금 늦은 편이었다. 페미니즘에 대해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수적으로도 소수이기 때문에 더욱 뚜렷한 퀴어로서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담론은 매우 긴밀하고 중요하게 느껴졌지만, 여성은 인구의 절반인데다 여성이기에 받는 억압은 내가 억압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어려울 정도로 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퀴어로서의 삶과 여성으로서의 삶은 분리되어 있었다. 그랬던 내가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교 2학년 때 수강한 문학과 여성이라는 수업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억압을 다루는 문학작품을 공부하면서 젠더 위계구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여성이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받는 억압과 성 역할에 갇혀 스스로를 억압하는 내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 전까지 나는 철저히 젠더 코르셋으로 스스로를 조이고 있었다. 각각의 성에 걸맞은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화장을 하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고, 여자가 다리를 벌리고 앉거나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건 여성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타고난 성별과 성적 지향성 때문에 차별받아선 안 된다고 주장해왔던 내가, 특정 성별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에 적합한 행동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 이후부터 나는 퀴어 담론과 페미니즘 담론은 떼려야 뗄 수 없다고 생각해왔고, 스스로를 퀴어-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해왔다.

 

  여성이슈를 바라보는 데 있어 시스젠더 헤테로[각주:3]-알로섹슈얼(Cisgender Hetero-Allosexual) 페미니스트와 퀴어 페미니스트 간 차이가 존재하는지 묻는다면, 본질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퀴어로서 받는 차별과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은 다르지만,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여성 카테고리 안에서도 퀴어 여성, 장애인 여성으로서 또 다른 차별을 받는 이들이 존재하고, 기존의 페미니즘 담론에서 소외될 수 있는 이러한 영역까지 논의의 대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퀴어-페미니즘의 의의가 있다고 본다.

  몇몇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게이 커뮤니티에 여성혐오적 분위기가 만연한 건 분명하다. 그러나 여성혐오가 게이 커뮤니티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게이를 똥꼬충과 같은 단어로 비하한다든가, 아웃팅을 시도한다든가, 혹은 레즈비언을 무조건 성역화하는 등의 태도로 대응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애당초 게이 커뮤니티의 여성혐오는 그들이 게이여서가 아니라, ‘한국남자이기 때문이고,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는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너무나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갈 길이 매우 멀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 갑자기 일어난 변화가 아니다. 퀴어의 존재를 아예 인지하지 못하거나/않거나, 내 주변에는 없는 별난사람들 이야기로 치부해버리곤 했던 사람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목소리를 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가장 작은 단위인 커밍아웃을 통해 기존의 인식을 깨부수는 데 동참하고자 한다.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종로에서 게이라는 이유만으로 집단폭행을 당한 사건만 봐도, 퀴어로 산다는 건 생각보다 정말 많은 위협에 노출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신변에 위험을 느낀 적은 없지만, 나 역시 간담이 서늘했던 적은 있다.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가 없던 시절, 성소수자 인권 동아리를 만들고 회원을 모집하는 데 어쩔 수 없이 포스트잇에 내 전화번호를 써서 붙이고 다녔던 적이 있다. 그 때 익명의 문자가 한 통 날아왔는데, “, 진짜 더러워.”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전화번호를 어디에 뿌리고 다니더라도 위협을 느끼지 않는 것이 정상인데, 그저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모욕당하는 현실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렇지만 내가 존재한다는 걸 숨길 수는 없었다. 그러면 더더욱 내가 설 자리가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확실히 나는 운이 좋은 경우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 가족과 공통된 관심사를 가졌기 때문에, 혹시라도 내가 빻은말을 하는 경우에는 지적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모두가 나와 같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만 한 번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얘기해보길 추천한다. 일상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다양하다. 무엇보다 뜻을 함께할 수 있는 공동체와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더 많은 페미니즘 웹진, 퀴어 웹진이 발행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하고 싶은 건 많다.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도 되고 싶고, 등단도 하고 싶고, 페미니즘 담론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시도 쓰고 싶다. 무엇보다도 젠더 인식에 있어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일조하고자 한다. 때문에 나는 퀴어-페미니스트로서 계속 사람들에게 를 말할 것이다.

 

   

이 글은 사월님의 사연을 바탕으로 구성됐습니다. 이야기를 공유해주신 사월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 성별 정체성과 지정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2. 유성애자. 성욕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적행위에 대한 끌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성욕 유무와 상관없이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무성애자(Asexual)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출처: 에이로그 ALOG 네이버 블로그> [본문으로]
  3. 이성애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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