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퀴어 페미니스트, 이하제


최존

 


  “여자애가 단정치 못하게 그게 뭐니?”

  “얘가 말하는 것 좀 봐? 그게 여자애 입에서 나올 소리야?”

  “, 넌 축구 빠져. 여자잖아.”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날이 가면 갈수록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사람들이 억압과 제재를 가하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무얼 잘못한 것일까?’

 

  천성이 순종적이고 체제-순응적이었기에 고민은 나날이 깊어졌다. ‘여자에 관한 책을 읽으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권장도서목록의 여자혹은 여성이 들어간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 책들이 딱히 내 고민을 해결해준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더러는 여성혐오 범벅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아주 쓸모없는 노력은 아니었다. 나의 독서는 자연스레 페미니즘에 발들일 수 있도록 해주었고, 그제야 답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단찮은 이유가 없었다. 그동안 내가 겪었던 차별, 혐오, 멸시, 평가는 내가 갖고 태어난 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상반된 두 감정이 휘몰아쳤다. 이 모든 게 내 개인의 잘못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안도감, 그리고 서러움이었다. 내가 보지를 갖고 태어난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차별받아야 했다.

  남은 감정은 분노였다. 혼자 겪고 배운 페미니즘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연대할 동료 페미니스트도 없었기에 더욱 정제되지 않은 분노를 표출했다. 아무리 내가 분노하고 싸워도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좌절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또래 친구들과 나를 분리하기도 했다. 친구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잇다는 우월감이라도 두르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았다.

 

 

 

  이전까지는 내가 퀴어라는 것과 페미니스트인 것은 별개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스로를 논바이너리[각주:1] 트랜스젠더(Non-binary Transgender)라도 정체화한 이후, 여성학과 퀴어 이론의 교차점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을 퀴어-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한 이후 여러 가지가 변했다. 이를테면 퀴어 뿐만 아니라 가난과 장애, 아동-청소년, 외국인이나 이주노동자 등 다른 소수자성이나 소수자성 간의 교차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소수자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좀 더 깊은 층위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어느 분야에서나 비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가진 권력에 무지하고, 혹 알지라도 쉽게 간과하고는 한다. 페미니즘 진영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같은 퀴어-페미니스트들, 소수자성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기존의 시스젠더[각주:2] 헤테로 알로섹슈얼[각주:3] 페미니즘을 할 때 배제되었던 여성들을 페미니즘으로 끌어들일 수 있고, 페미니즘을 보다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메갈리아 탄생 이후 페미니즘 논의는 일상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퀴어, 그리고 퀴어-페미니즘에 관련해서는 지지부진하다. 20대 이하의 젊은 세대의 인식이 기성세대보다야 낫다고 하지만 아직 멀었다.

  앞으로 전공을 살려 여성과 퀴어를 대상으로 한 심리학 연구를 진행하고 싶다. 심리학 역시 굉장히 남성중심적인 학문이라, 프로이트의 연구를 비롯한 초기의 많은 실험에서 여성은 실험대상으로 고려되지 않았다. 그러나 페미니즘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여성 역시 피실험자가 되고, 관련 논문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나 역시 퀴어-여성(혹은 여성으로 패싱[각주:4]되거나 지정성별이 여성인 사람)에 대해서 연구하고 싶다. 지금까지 가시화되지 않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정체성에 대해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싶다.


  흔히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그렇지만 내 이름 석자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보다도 내가 연구한 분야가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고, 내가 세상에 왔다간 흔적을 남기고 싶다. 그것이 나, 퀴어-페미니스트 이하제의 지향이다.

 

 

 

이 글은 이하제님의 사연을 바탕으로 구성됐습니다. 이야기를 공유해주신 이하제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 여성과 남성 이분법에 해당되지 않는 모든 젠더 정체성을 말한다. <출처: 젠더 Wikia> [본문으로]
  2. 성별 정체성과 지정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3. 유성애자. 성욕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적행위에 대한 끌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성욕 유무와 상관없이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무성애자(Asexual)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출처: 에이로그 ALOG 네이버 블로그> [본문으로]
  4. 어떤 사람의 외적 모습이 사회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성 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말한다. <출처: 한국 위키피디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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