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무대라는 운동장 위의 소녀

By.광개토

 



 Mnet 프로듀스 101을 통해 데뷔한 그룹 I.O.I.의 마지막 활동곡이 발표됐다. 데뷔곡 ‘Dream girl’에 이어 ‘Whatta man’역시 큰 인기를 끌었던 터라 마지막 활동에도 대중의 관심이 쏠렸다. JYP 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이 프로듀싱을 맡았다는 말에 더 큰 주목을 받은 I.O.I.의 마지막 곡은 너무너무너무였다. 상대방의 사랑 고백을 유도하는 가사와 테니스 스커트를 입은 소녀들의 귀여운 안무는 여느 걸그룹들의 행보와 다르지 않았지만 I.O.I.의 일부 팬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I.O.I.의 멤버 최유정은 지난 111일 방영된 SBS 더 쇼의 코너 미션 60’에서 보이그룹의 멤버가 된다면 어느 그룹의 멤버이고 싶냐는 질문에 방탄소년단이라고 답했다. 최유정은 방탄소년단의 정규 2집 타이틀인 피땀눈물의 안무가 본인이 좋아하고, 그동안 해왔던 안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유정을 프로듀스 101에서부터 지켜본 팬들은 물론, 최유정을 모르는 사람들도 그의 훌륭한 퍼포먼스적 기량은 한 번 쯤 보았을 것이다. 프로듀스 101의 메인 곡인 ‘Pick me’의 센터멤버에 이어 대중들에게 최유정이라는 이름을 분명하게 새겼던 댄스 포지션 평가 무대 ‘Bang Bang’ 덕분이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넘치는 안무와 쇼맨십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무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Bang Bang’ 무대에는 최유정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전소미, 김청하, 김도연 등 현재 I.O.I.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멤버 다수가 함께였다. 특히 김청하는 Mnet 프로그램 힛 더 스테이지에서 수준급의 왁킹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김청하는 프로듀스 101초입, 연습생 개인기를 보여줄 때부터 춤 실력으로 주목받았고, 소위 말하는 제작진의 푸쉬 없이 오직 본인의 퍼포먼스 기량으로 최종 멤버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 멤버이기도 하다.

 




[힛더스테이지160810] 김청하+Waack Crush - Intro+Single Ladies+Run the World(Girls)



 

 〈프로듀스 101에서는 춤과 노래실력으로 클래스를 나누고 수업 강도를 조절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연습생들은 상위 클래스에 올라가기 위해, 최상위 클래스인 A 클래스인 연습생들은 자신의 클래스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프로그램은 강도 높은 퍼포먼스를 단기간에 소화하길 요구하는 미션을 연습생들에게 부여하고, 연습생들은 이를 훌륭히 소화해내며 마침내 데뷔한다. 극악의 경쟁 상태로 몰아넣는 프로그램에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이런 경쟁 속에서 데뷔한 I.O.I.가 활동 기간 중 보여준 퍼포먼스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일 년 동안 활동하는 단기 프로젝트 그룹인 만큼 안무 강도를 조절할 필요성이 있었겠지만,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조합인 I.O.I.의 역량을 최대치로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Bang Bang’에서 무대를 압도하며 걸어 나오던 김청하나, 전소미의 재기발랄한 안무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너무너무너무에서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콩콩 뛰는 안무를 추는 I.O.I.의 모습은 연습생 시절의 그들과 괴리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너무너무너무의 프로듀서가 박진영인 것이 문제였을까? 미니앨범 3집을 발표한 트와이스의 ‘TT’ 역시 비슷한 수준의 안무를 보여준다. 눈물을 묘사한 T모양 손가락으로 우는 흉내를 내거나, 허리에 손을 댄 채 삐진 모습을 표현하는 안무는 춤이라기보다 율동에 가깝다.

 트와이스는 데뷔 프로그램 식스틴을 통해 데뷔한 그룹으로, I.O.I.<프로듀스 101>에서처럼 다양한 댄스 미션을 수행했었다. 당시 연습생이었던 모모의 탁월한 댄스 실력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모모가 소화해야하는 안무는 안무라고 말하기 어려운, 팔다리를 흔드는 단순한 동작에 불과하다.

 


 김예란은 아이돌 공화국:소녀 산업의 지구화와 소녀 육체의 상업화에서 걸그룹의 안무가 느슨하고 부드러운 몸동작, 획일적으로 패턴화된 안무로 구성되어 수동적 이미지를 전시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각주:1]. 보이그룹의 안무와 대비해서 보면 걸그룹의 안무가 얼마나 유아동적인지 확연히 보인다.

 보이그룹을 소개할 때에는 고강도의 파워풀한 안무를 강조하곤 하지만 걸그룹을 소개할 때 그들의 안무를 강조하는 일은 많지 않다. 트와이스의 cheer up에서 화제가 됐던 샤샤샤는 안무라기보다 어린 아이가 하는 유아적 행동에 불과하며, 포인트 안무로 소개되는 안무들은 의상을 들추거나 팔을 흔드는 정도에 그친다. 보이그룹의 노래에서는 댄스멤버들을 부각시킬 수 있는 댄스브레이크 구간이 존재하는 반면 걸그룹의 곡에서는 댄스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낼 구간 자체가 없는 일도 많다.

 이는 최근 걸그룹의 대세 컨셉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걸그룹들은 강해보이는 인상을 멀리하고 순종적이고 무해한 이미지를 재현하는 데 집중했다. 05MKMF에서 보아가 보여주었던 ‘Over the Top’ 무대와 트와이스의 ‘TT’를 보면, ‘Bang Bang’ 무대의 I.O.I. 멤버들과 너무너무너무무대의 I.O.I. 멤버들을 볼 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괴리가 있다.


 

 소녀시대 효연은 힛 더 스테이지에서 본인의 본 전공인 힙합 외에도 탱고, 왁킹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낸다. 그는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그룹 활동 동안 본인이 보여주고 싶은 퍼포먼스를 제대로 표현할 만한 무대가 없었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힛 더 스테이지에 출연한 대다수 여성 출연자들이 한 말이기도 하다.

 




[힛더스테이지160921] 소녀시대 효연 - Mek It Bunx Up



 

 파워풀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걸그룹 멤버들을 보다보면 운동장을 빼앗기는 여자아이들이 떠오른다. 어느 순간부터 여자아이는 운동장에서 뛰지 못하고 축구나 농구를 하는 남자 아이들을 구경하는 위치에 선다. 운동을 즐기려는 여자아이는 별종 취급을 받는다. 사회는 왜소하고 부드러운 여자의 몸을 원한다. 남자가 열심히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소리치고 몸의 역량을 시험할 때, 여자는 뛰기보다 걷기를, 걷기보다 다리를 모으고 앉아있기를 요구받는다.

 트와이스의 미니2‘PAGE TWO’의 앨범 자켓이 보여주는 대로 현재의 걸그룹은 벤치에 앉아있는 소녀를 재현한다. 운동장 한 가운데에서 뛰지 못하고, 누군가 찾아와 손을 뻗어 데려가기를 기다리는 여성이다. 무대에서 뛰고 싶은 욕구는 걸그룹으로서 활동할 때는 해소할 수 없으며, 걸그룹이라는 위치를 내려놓고 댄서인 개인이 되어야만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진다.

 




구구단(gugudan) COVER PROJECT #05 ‘chained up’ by VIXX



 

 최근 걸그룹 구구단은 커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같은 소속사의 보이그룹 빅스의 사슬을 커버한 영상을 올렸다. 이 커버 영상은 같은 커버 프로젝트 영상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높은 24만 뷰라는 기록을 올리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커버 영상의 퀄리티가 댄스버전 뮤직비디오 수준으로 높은 것도 놀라움을 자아내지만, 구구단이 새로 해석한 사슬이 주는 즐거움은 무대에서 마음껏 뛰지 못하는 걸그룹에 대한 답답함이 전제하기에 존재한다. 걸그룹 팬들은 너무 오랫동안 제대로 된 퍼포먼스를 보지 못했다. 구구단의 사슬은 파워풀한 걸그룹 퍼포먼스에 목말랐던 팬들의 욕구에 부합하는 영상이었다.



 


Beyoncé Run the World Girls Live at Oprah Winfrey (HD)



 

 2016년을 마무리하는 연말 무대에 대한 소식이 슬슬 들려올 때이다. 필자는 매 연말이 다가오면 오프라 윈프리 파이널 쇼에서 비욘세가 보여주었던 ‘run the world’ 같은 무대를 언제쯤 볼 수 있을 지 궁금해 하곤 한다. 무대 위에서 마음껏 뛰는 소녀들을 보는 일, 요원한 소망이 아니기만을 바란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세일러문 크리스탈과 오마이걸입니다.

 

  1. 김예란, 「아이돌 공화국:소녀 산업의 지구화와 소녀 육체의 상업화」, 『젠더와 사회』, 동녘, 402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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