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나나

제4호: 「프리마돈나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아주 잘 알려진 프랑스 소설가입니다. 그녀의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인데요. 필명 사강은 그녀가 무척 좋아하는 작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출처 : 구글)

 

"나는 베이스볼을 하는 건강한, 그리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청년이 좋아요."

 

사강의 취향은 그녀의 소설에서도 드러나는 듯합니다. 그녀는 중년에서 노년의 여성과 열정이 넘치는 젊은 청년과의 로맨스를 종종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사강의 여성들은 어린 남자들의 열렬한 구애를 받기도 하며, 그들에게 옷과 보석들을 제공해주기도 하고 생활비를 부담해주기도 합니다. 이미 잘 알려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단편 사내놈」, 그리고 「프리마돈나」가 이런 플롯을 갖고 있습니다. 그 중 우리는 「프리마돈나」를 살펴보도록 해요.

 

 

 

<프리마돈나>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당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이유는 당신이 싫어서가 결코 아니에요. 그렇지만 전 당신보다 그이를 더 사랑하고 있어요.”

 

그녀는 프리마돈나, 그러나 늙은 프리마돈나. 그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라카치오를 따라다닌 지는 벌써 6개월이 넘었습니다. '어떤 남자가 늙은 여자의 들러리 노릇을 하기 위해 살고 싶을까!'그는 그녀에게서 최대한으로 뽕을 뽑아낸 뒤 재빠르게 도망쳐버릴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금전상의 궁색함이 그의 화를 억눌렀습니다. 질투일까요? 도대체 그이란 누구란 말인가요?

 

그녀는 항상 그랬습니다. 무대에만 오르면 그녀의 나이나 주름살, 몸무게, 심지어 그마저도, 아니 세 명의 남편이나 서른 명의 애인까지도 모조리 망각해버렸지요. 라카치오는 질투에 빠진 이 남자보다 두 배나 몸무게가 더 나갔고, 나이는 몇 배나 더 많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니 그는 화가 났어요. ‘나는 금발에 아주 멋진 남자란 말이야. 한물간 저 여자는 더 비싼 대가를 치러야해!’

 

이 곡은 내 평생에 꼭 세 번 불렀어요. 그런데 그 때마다 세 번 다 그를 다시 만났어요. 오늘 저녁에도 역시 그가 오면 좋겠어요.”

 

너무나도 풍만하여 음란하기까지 한 그녀의 육체덩어리, 그 육체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저 저속한 관객들을 현혹시켰습니다. 그가 보기엔 아주 형편없었죠. 이제 30분만 있으면 공연은 곧 끝날 예정이니 그에게는 다행이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견딜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무대 쪽으로 신경이 쏠렸습니다. ‘세 번이나 만난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란 말이야?’ 그는 라카치오에게 선택 당했습니다. 그를 선택한 것이 바로 그녀란 말이에요.

 

막이 올랐습니다. 모든 연주자들은 반짝이는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노예이며 시종처럼 보였어요. 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녀를 갈망하고 있었어요. 그러자 그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휘청거렸습니다. ‘그녀가 나이가 많고 뚱뚱하다는 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사람들이 그녀를 원하는 것처럼 나를 원하는 사람은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할까?’ 도대체 그이라는 미지의 인물은 누구란 말인가요! ‘그이는 그를 단숨에 기생충으로 전락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 이야기 속에 나오는 싱거운 말썽꾼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지요. 그는 화를 내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세 번이나 만났다는 그 사람이 누구지?”

 

그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상냥하고 부드럽게 웃었어요.

 

그건 바로 베르디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장 높은 음, 고음 C조예요.”

 

라카치오가 그에게 선물해준 그의 옷이 그의 살갗을 뜨겁게 불태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삼십 초 동안 계속해서 음을 내야 된다는 게 중요해요.”

 

그러고 그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게 갔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어요.

 

그것뿐이 아니에요. 그건 돈으로 살 수도 없는 것이거든요.”

 

(출처 : 구글)

 

 

 

<사강스러움>

 

'저속해!', '형편없어!' 재능있는 프리마돈나 라카치오를 따라 순방길에 오른 그는 잘나가는 그녀에게 불만이 아주 많습니다. 어리고 잘생겼으며 남자답기까지 한 자신이 나이 많고 뚱뚱한 여자를 따라다니며 기생한다는 것이 영 속이 뒤틀렸나 봅니다. 물질적 풍요와 경제적 궁핍을 이유로 그녀의 들러리가 되어 따라다닐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재능과 인기, 당찬 모습을 보고는 깨닫게 됩니다. 더욱이 그녀가 만나길 좋아하는 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자 질투에까지 휩싸이고요. 라카치오는 그런 모습에도 부드럽게 웃으며 ‘C음은 너처럼 돈을 받진 않지라고 태연히 말합니다. 그는 이름조차 없습니다. , 중요하지 않았나봅니다. 30명의 정부 중 하나겠지요. 어찌됐든 어리고 잘생겼으며, 많은 돈과 선물을 들인 젊은 남자들은 C음보다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강은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종종 썼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중년의 여성 폴르와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어리고 철없는 견습 변호사 시몽과의 정사를 그렸지요. 또 단편집 길모퉁이의 카페사내놈에서는 노년의 여성들이 어린 남자들에게 옷과 보석, 생활비를 모두 부담해주며 연애를 하고요. 그러다가 귀찮아지면 다른 부인에게 보내버리는거죠. 그러나 한 청년은 자신을 다른 부인에게 넘기려는 주인(?)에게 괴로운 사랑 고백을 합니다. 그 고백에 그녀는 슬퍼하지만 결국은 신경질 나는 일이야라고 생각하며 잠을 청할 뿐입니다.

 

우리는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의 로맨스는 질리도록 봐 왔습니다. 사강은 그런 뻔한 스토리에서 남자와 여자의 입장을 전도시켰지요. 그녀의 취향에 걸맞는, 건강하고 아무 생각이 없는 남자로는 아무래도 어린 편이 좋았나봅니다. 그러나 이런 등장인물 설정이 몇 번 반복되자 너무나 사강스럽다거나, 사강의 매너리즘에 빠진 감이 있다는 평이 있었어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대한 한 서평을 살펴볼까요.

 

"사강의 만네리즘에 빠진 감도 없지 않으나 호의를 가지고 보면 개성적인 분위기를 견지"(프랑수아즈 사강, 방곤·김정수 옮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마음의 푸른 상처, 성도문화사, p.6.)

 

하지만 우리는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나이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 로맨스에서는 어떠한 매너리즘을 찾지는 않아요. 그만큼 나이 많은 여성의 입장에서 자신보다 어린 남자와 연애하는 이야기가 새롭고 이색적인 것처럼 느껴졌던 것일까요?

 

한편 아쉽게도 사강의 여인들은 나이 어린 청년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이성적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녀들은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나이를 깨닫고 떠나보내거든요. 라카치오의 경우를 볼까요? 우리가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를 보고 라카치오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맙소사, 저이가 서른 살이라니! 날씬하고 또 거기에 미남이고 보니 그 어느 이란공주의 사랑도 받을 수 있을거야. 이 쭈글쭈글하고 분장을 하고 땀으로 온통 엉망이 된 얼굴로 어떻게 감히 그에게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을 수가 있단 말이지?"

 

마찬가지로 같은 단편집의 「사내놈」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의 여성들도 이렇게 느끼지요. 이런 점에서 사강의 매너리즘이란 다름 아닌 아름답고 능력있지만 여성의 나이라는 굴레에서는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사강의 한마디>

 

"위스키와 도박, 페라리가 집안일보다 낫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을지는 몰라도, 버스를 타고 우느니 재규어를 타고 울겠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참고문헌>

 

프랑수아즈 사강, 이환·이평우 옮김, 슬픔이여 안녕 / 어떤 미소, 성도문화사.

프랑수아즈 사강, 방곤·김정수 옮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마음의 푸른 상처, 성도문화사.

프랑수아즈 사강, 장재형 옮김, 길모퉁이의 카페, 성도문화사.

프랑수아즈 사강, 길해옥 옮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여백.

위키페디아 프랑스, https://fr.wikipedia.org/wiki/Fran%C3%A7oise_Sagan.

 

 

 


 

나나

“사내아이를 낳아야 했어, 그래야 그럭저럭 살아 나가기 쉽고, 이 파리에서 수많은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야.” 내가 태어난 날 우리 엄마가 나를 보고 되뇌었어요.

 

책 읽어주는 나나
제3호: 레몽 장의 단편 「치마」

 

(출처 : 알라딘)

레몽 장(1925-2012)은 단편집 『벨라. B의 환상』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이자 교수입니다. 우리는 3호에 걸쳐 이 단편집을 살펴 볼 계획이었는데요. 오늘은 그 마지막 작품, 「치마」입니다.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던 즈음, 레몽 장은 엉뚱한 착상을 한다거나 신선한 자극을 안겨주는 작가로 평이 나있었습니다. 옮긴이의 말을 잠시 살펴볼까요? ‘우리 주변에서는 논리성을 저버린 일들이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 다만 우리들이 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뿐이다.’ 맞아요. 이 이야기들은 ‘논리성’을 저버렸어요. 그렇다고 그 ‘논리성’이라는 것이 논리적이라고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엉뚱하고 신선하다고도 하는데요, 글쎄요, 무엇이 엉뚱한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무슨 말인지 궁금하시지요? 지금 바로 살펴봅시다.

 

 

 

<치마>

 

뤼시엥은 모처럼 휴일이니 아내 조슬린에게 사창가를 따라 산책하기를 제안합니다. 조슬린은 내키지 않지만, 남편에게 순응하는 착한 아내이니, 무엇이든 바라는 대로 따라줍니다. 남자가 밖에서 큰 일 하는데, 이런 기분전환 거리야 늘 필요하지 않겠어요. 뤼시엥은 그 곳을 거닐면서 여러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들에게 얼빠진 시선을 보내지만, 조슬린은 그녀들을 쳐다보기가 심히 민망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이 거리를 거니는 여자를 멸시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문득, 남편이 멈춰 서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합이 맞았는지, 조슬린에게 '기다려'라는 말만 남기고 둘이 한 건물 윗층으로 올라가는데요. 조슬린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 그렇구나. 남편이 나를 아랫층에 세워두고 섹스를 하러 간 게 맞구나.' 조슬린은 숨이 막혔습니다. 뤼시엥은 종종 아무 짓이나 해대기도 하는데요. 그녀가 보기에 그것은 일종의 “광기”였습니다. 아내를 두고 이런 일을 벌이다니요. 그가 광기에 사로잡힌 “개자식”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이야! 조슬린은 후회합니다. 남편과 이런 곳에 같이 오기로 하다니, 이런 일을 당해도 싸지! 그녀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거리를 배회합니다. '나 같이 멍청한 여자가 또 있을까? 무슨 생각으로 남편과 여길 온 걸까?'

 

순간 어떤 남자가 조슬린의 팔목을 낚아챕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이끌고 가는데요. 조슬린은 지금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도 이해하지 못했고, 알았다 하더라도 반항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뤼시엥의 광기가 조슬린을 이토록 무력하게 만들어버린 걸까요? 결국 둘은 한 호텔로 들어갑니다. 그녀는 침대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람?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온 남자는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다른 여자들과 달라.’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조슬린은 당황스럽기만 하지만, 잠깐만요, 이 남자 구릿빛 피부에 떡 벌어진 어깨, 얼굴도 꽤나 멋집니다. 심지어 목소리마저 노래하는 듯 감미롭기만 한데요. 아... 그렇담 될 대로 되라지.

 

 

(출처 : 구글)

 

남자는 꽤 다정하고 부드럽게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옷을 천천히 벗겼습니다. 결국 조슬린의 치마는 호텔 바닥에 툭 던져져 “생면부지의 물건처럼 방바닥에 나뒹”굽니다. 그는 느리고 침착했지만, “두 눈에서는 놀랄 만한 불길”이 타올랐고, 몸집은 커다랬지만 얼굴은 어린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정신없이 애무를 하니 도무지 저항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온몸을 부풀리고 전율시키고 열어놓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그의 입술이 부드러운 그녀의 목살을 덥석 물었다가, 겨드랑이의 치모를 헤쳐 놓았고, 유두를 힘껏 빨았다가는, 아랫배로 내려와서 그녀 성기의 촉촉한 꽃 위에 내려앉으며 천천히, 오래도록, 깊숙이 꽃잎들을 펼쳐 나갔다. 그녀는 정신이 없었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말없이 경련하며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조슬린은 이런 오르가즘이 가능할 줄은 꿈에도 몰랐답니다. 그것도 3번이나! 섹스가 정녕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요?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 멋진 남자가 뭘 좀 먹고 싶은지 묻네요. 다정하기도 해라. 평소 같았으면 차는 입에도 대지 않지만, 그녀는 어쩐 일인지 차를 마시겠다고 대답합니다. 조슬린은 기분이 매우 유쾌하고 좋았습니다. 행복한 바캉스를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지경이더래요. 더군다나 오늘 조슬린의 몸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말이지,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랍니다. “세상은 뒤집혀버렸다네!”

 

몇 분이 지나고 호텔의 여자 종업원이 차를 들고 올라옵니다. 그러자 이 남자, 발가벗은 몸으로 그 여자에게 문을 열어주는데요. 그런데 둘이 뭐라고 속닥대더니, 갑자기 종업원이 문을 잠급니다. 그리고 옷을 다 벗어재끼고는... 조슬린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쓰리썸. 조슬린의 온 몸 구석구석이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행복하고 편안했습니다.

 

조슬린은 치마를 주워 입고 그 곳을 떠납니다. 아, 이전의 그녀는 누구였을까요. 집으로 향하던 도중, 카페 안에 앉아있는 뤼시엥을 발견합니다. '그냥 가던 길이나 계속 갈까?' 그러나 그녀는 그의 옆에 가 앉습니다. 뤼시엥은 얼굴을 두 팔에 묻고는 미친듯이 괴로워합니다.

 

(출처 : 구글)

 

'내가 미친놈이었어. 뭐에 홀렸었나봐. 있잖아, 나 10분 후에 바로 내려왔어. 알겠지? 날 용서해줘. 내가 너무 추잡해서 견딜 수가 없어!'

 

가만히 미동도 않는 조슬린이 미심쩍었는지 뤼시엥이 묻습니다.

 

'당신 뭐 했어?'

 

'그냥 돌아다녔어.'

 

'어디를?'

 

뤼시엥은 조슬린이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줬으면 하고 바랐을겁니다. 하지만 그녀가 그의 광기에 전혀 화가 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니, 남자란 종종 못된 짓도 하기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현명하고 질투 많은 여자들이 닦달해주어야 하는것 아닌가요?

 

'아냐. 조슬린, 우리 이건 다 잊자. 앞으로 일요일은 집에서 보내자. 티비나 보자!'

 

조슬린은 계속 침묵을 지킵니다.

 

'당신 뭐 좀 마실래?'

 

'......'

 

'차 시킬까?'

 

초조했던지 뤼시엥은 아무 말이나 던집니다. 뤼시엥은 조슬린이 차를 절대 안 마신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이미 한 잔 마셨어.'

 

이상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오늘 있었던 일에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한없이 상쾌해 보이기만 하는데요. “짐짓 다정스런 몸짓으로 그녀의 무릎에 손을 얹은 뤼시엥은 그녀의 치마를 만지작거렸”습니다.

 

 


<세상은 뒤집혀버렸다네>

 

지금까지 우리는 3호에 걸쳐서 『벨라 B.의 환상』을 살펴보았습니다. 거미에게 자신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벨라, 지구상 유일하게 성별이 전복된 지점인 P. K. 35, 그리고 남편이 데려간 사창가에서 비로소 온 몸의 쾌락이 깨어난 조슬린. 엉뚱하고 논리적이지 않으며, 사악하기도, 기괴하기도 한 이야기입니다. 왜일까요? 거미가 벨라의 질 속으로 들어가거나, 남자가 여자에게 차와 돈은 물론 입고 있던 옷가지마저 빼앗기고, 뤼시엥은 아내 조슬린과 사창가에 가니까요? 이게 바로 지배적인 평이지만, 한 번 뒤집어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건 어떨까요? 당사자인 벨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타자인 정신분석의의 목소리만 받아들여, 벨라의 경험을 일종의 환상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비논리적이고 엉뚱하다는 것. 거미가 벨라의 몸을 지배하려고 한다는 것이 그들에겐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같았나봅니다. 기묘한 지점 P. K. 35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까요. 남자인 자신이 심지어 여자에게 피해를 당하고 심지어 옷마저 빼앗겼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워 자리를 박차고 도망간 폴. 그녀들은 총까지 들고 그에게 쏴댔지만, 어쨌거나 총알도 안 나오는 남근이 더 강하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지요. 엉뚱하게도 말이에요. 마지막으로 순종적이고 정숙하고, 또 불쌍하게도 오르가즘 한 번 느껴보지 못한 조슬린이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의 외도 덕에 쾌락에 눈을 뜬 이야기. 조슬린은 순순히 사창가까지 배웅해줬고, 화를 내지도 않았어요. 남자들은 원래 그렇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지요.

 

뤼시엥은 친절히 아내를 쾌락으로 안내해 줄 남자에게 배웅해준 겁니다. 그 남자는 또 다른 여자까지 끌어들여 말도 안 되는 행복감, 편안함까지 조슬린에게 선물한거죠. 대개 남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성욕이 한순간에 조슬린의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성의 포텐이 터진거죠.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두 남자의 도움을 받게 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요? 그녀의 몸이 활짝 깨어났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단편집이 엉뚱하고 비논리적이고 기괴하다는 것은 이 짧은 단편들이 현실에선 있음직하지 않은 상상적인, 환상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지요. 한편 레몽 장은 환상은 진실을 폭로하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그는 자신을 페미니스트 작가로 정체화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실로 환상과 에로티시즘을 다뤘던 것이에요. 하지만 그것도 뭐 대수인가요? 그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거미가 벨라를 좀먹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35km지점에선 젠더 고정관념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보았고, 마지막으로는 조슬린의 성적 쾌락과 욕망이 깨어나는 것을 목격했으니까요. 거미를 보지 못하고 사는 것 보다는, 치마를 벗어 던지고 뜨거운 구릿빛 차를 마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전 페미니스트 작가는 아니지만 페미니스트를 지지합니다. 7, 80년대 페미니스트 운동에도 공감을 느꼈어요. (...) 만약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면 여성들은 좋아하겠지만, 여성을 책 속에 그려낼 땐 수동적이면서 대상화된 모습을 발견하지요. 그런걸 그녀들이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 그녀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녀들은 시선 받고 싶어하고 찬양받고 싶어하고, 적당히 비위도 맞춰주길 바라는 동시에 그들의 도덕적, 사회적 가치 등으로 존중받길 바라죠. 바로 이 갈등이 제가 특히 관심 갖는 것입니다. 저는 관찰자이지만 그렇다고 마초적인 면이 있는 건 아니에요. 전 그녀들을 존중합니다.”

"레몽 장과의 인터뷰" 중 (Francofonia, no.28, p.12)

 

 

 

<참고문헌>

 

레몽 장, 이인철 옮김, 『오페라 택시』, 세계사, 1998.
Premier supplément à la Bibliographie critique de la nouvelle de langue française (1940-1990), René Godenne, Droz, 1992.
"Entretien avec Raymond Jean", Francofonia, no.28, pp.3-18.

위키페디아 프랑스, https://fr.wikipedia.org/wiki/Raymond_Jean.

 

 

 


 

나나

“사내아이를 낳아야 했어, 그래야 그럭저럭 살아 나가기 쉽고, 이 파리에서 수많은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야.” 내가 태어난 날 우리 엄마가 나를 보고 되뇌었어요.

책 읽어주는 나나

제2호 「P. K. 35

 

(출처 : 아마존프랑스)

레몽 장(1925-2012)은 단편집 벨라. B의 환상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이자 교수입니다. 우리는 벨라. B의 환상을 총 3호에 걸쳐서 살펴 볼 계획인데요. 오늘은 두 번째 단편, P. K. 35입니다.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던 즈음, 레몽 장은 엉뚱한 착상을 한다거나 신선한 자극을 안겨주는 작가로 평이 나있었습니다. 옮긴이의 말을 잠시 살펴볼까요? “우리 주변에서는 논리성을 저버린 일들이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 다만 우리들이 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뿐이다.” 맞아요. 이 이야기는 논리성을 저버린 이야기에요. 그렇다고 그 논리성이라는 것이 논리적이라고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엉뚱하고 신선하다고도 하는데요, 글쎄요, 무엇이 엉뚱한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우리는 일단 레몽이 보여주는 대로 폴의 증언을 먼저 들어볼거에요.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나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를 폴이 아닌 경찰의 관점에서 다시 보도록 해요. 

 

 

 

<P. K. 35>

 

이 일은 “35km 지점에서 일어났습니다. 그곳에서 희생자H. 는 히치하이크를 하는 두 여자를 발견합니다. 조금은 수상했지만, 이내 편협한 생각이었다며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그 여자들은 아름다웠거든요. 그녀들을 태워야겠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감사하다고도,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목적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서요. 그저 이름이 데지, 그리고 메이라는 것만 밝히고는 담배만 피워댔습니다. 이 여자들, “예의도 없었고 순수하지도 않았습니다. 폴은 짜증이 났지만, 두 여자의 몸매가 잘빠졌기에 그래도 참아봅니다. 그는 운전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두 여성들의 몸에 시선이 가 있는데요.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일은 생각지도 못한 채 도톰한 입술과 풍만하고 탱탱한 가슴만 슬쩍슬쩍 곁눈질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메이가 그의 척추에 권총을 갖다 댑니다. “바로 그거야, 허튼수작 하지 마, 네 등에는 VW27구경 권총이 노리고 있어.” 그녀들은 차를 인적이 드문 작은 숲속으로 끌고 가, 폴에게 잠시 차에서 내려 풀밭에 누워 있으라고 요구합니다. 그는 용감하게도 지금의 이 우스꽝스러운 짓거리가 대체 무얼 하자는 것이며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인지 알고 싶다고 대꾸를 하지만, 메이가 총알 한 발을 주저없이 그의 주변에 쏘아버리자 곧장 바닥에 누워 버립니다. 하지만 뒤이어 그의 두 손도 목 뒤로 놓으라고 또 명령을 하다니, 이거 아주 기분이 상해서 몸이 움직이질 않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 바로 옆에 총알이 박힙니다. 공포에 질린 그는 그녀들의 말에 조용히 고분고분 따르기로 결심하지요.

 

(출처 : 유튜브)

 

그녀들은 그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 갑자기 옷이 싫증이 난다며 갖고 있던 다른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합니다. 가슴을 다 드러내기까지 하는데, 그는 포로인 주제에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조금은 얼이 빠지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기까지 하지요. 옷을 다 갈아입은 두 강도들은 이제 그의 옷까지 벗깁니다. 그의 티셔츠 뿐 아니라, 바지 주머니 안에 있는 모든 잡다한 물건들까지 다 빼내어 그의 차를 타고 사라져버립니다.

 

(출처 : 유튜브)

 

그는 강도들이 남겨준 바지와 구두, 담배 두 개비를 챙겨 도로로 나옵니다. 그리고는 어딘가에 있을 긴급 전화박스를 찾아 헤매는데요. 그러나 겨우 찾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여자 목소리네요. 여자 경찰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에게 다시 짜증이 치밀게 만든 모양입니다. 어쨌든 그는 경찰의 도움이 필요했고, 경찰 초소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고 하니, 힘없는 발걸음을 질질 끌고 갑니다.

 

그가 초소에서 만난 경찰은 운동선수같이 건장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아름다웠고 가슴도 엄청나게 커보였다고 합니다. 또 꼭 끼는 치마를 입은 탓에 그녀가 다리를 꼬려고 움직일 때마다 허벅지가 거리낌없이 드러나기도 하는데요. 폴이 보기에 그녀에겐 분명 도발적인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이 여자에게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설명하자니, 비웃음을 면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쉽게 말이 나오지가 않습니다. 정말 이 여자에게 남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굴욕적인 사건을 털어놓는 것이 최선이란 말인가? 이런 외딴 초소에 위험하게 여자 혼자 있을 리가 없을 것 같기도 한데요. 잠깐, 옆방에서 타자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 아니네요. 그저 폴의 환상이었어요.

 

(출처 : 유튜브)

 

폴이 말 한마디를 꺼내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이자, 경찰이 폴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네며 어르자 그는 조금씩 사건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특히 무기들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았지만, 그는 그저 대구경의 권총 한 자루밖에 말해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계속 웃음을 짓고 있는데요. 이 웃음이 그에게는 아주 거슬렸다고 합니다. ‘나를 미치광이로 보는 걸까?’ 그녀는 계속해서 폴에게 세부적인 사항들을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아무런 질문도, 대답도 하지 않으며 그가 말하는 것에 귀만 기울이며 미소를 띠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점이 폴에게는 너무 이상했다고 합니다. 확실히 그녀는 그를 횡설수설 지껄이는 정신병자로 생각하여 그의 말을 재미있게 듣고있음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는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가 몸을 일으켰지만 그녀가 입에 담배를 물고, 위압적인 말투로 이야기를 계속 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는 수없이 다시 앉아서 설명을 이어갔지만, 이내 다시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여자경찰에게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이처럼 털어놓아야만 한다는 것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앉으라고 지시했고, 그는 다시 한 번 순순히 그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그녀는 그의 앞에서, 마치 말을 타는 것처럼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경찰에게는 상당히 자연스러운 태도였겠지만, 그래도 그가 보는 앞에서 의자 위에 이렇게 말 탄 자세로 걸터앉아있다니요? 그녀는 전혀 부끄러운 줄 모르고허벅지와 가슴이 두드러져 보이는 채로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외설스럽고 지나치리만큼 난잡스러워그는 공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안되겠습니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겠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는 냅다 달렸습니다. 그녀가 그를 잡을 수 없게 한참을 힘껏 뛰었습니다. 결국 그는 며칠을 헤매고 나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폴이 말해준 이야기의 전부인데요. “그렇지만 그것이 사실이었을까?”

 

 

 

<기묘한 지점 P. K. 35>

 

결국 오늘도 좆뱀이었습니다. P. K. 35, 이 지점은 상당히 기묘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떠도는 두 명의 강도단이 있다는 소문은 이미 파다한데요. 종종 그녀들에게 당했다는 남자들이 근처의 전화박스로 저에게 전화를 걸어옵니다. 참 이상한 점은, 그들이 늘 같은 태도를 보인다는 겁니다. 오늘도 그곳에서 저에게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또 어떤 남자였는데요.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제가 있는 경찰초소로 오는 길을 물었습니다. 20분이 지났을까, 그의 눈동자는 이미 빛을 잃었고, 힘없는 발걸음으로 겨우 이 곳에 다다른 것 같았습니다. 그는 지금 모든 것을 약탈당했고, 바지와 구두 외에는 입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의 몸은 창백했고, 두 팔은 유행에 맞게 단련되어 있었습니다. 유륜은 옅었고, 작게 동그란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낮게 튀어나온 유두 또한 아주 옅은 갈색이었고, 털 하나 없었습니다. 자연산 같은데요. 아주 행운이지요. 저런 가슴은 모든 남자가 원하는, 몇몇은 수술까지 감행하는 그런 모양입니다. 저렇게 예쁜 몸을 하고,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돌아다니는 걸까요.

 

그런데 이 남자, 한참이 지나도 아무 말도 못하고 머뭇대기만 합니다. 무언가 말을 하려다 포기하기를 반복한 게 몇 번인지 몰라요. 한 마디도 완성할 줄을 모르기에 제가 잘 어르고 달래보았죠. 그러나 그가 우연히 제 가슴을 보더니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마치 그와 같은 사람, 즉 같은 성을 가진 경찰을 찾는 듯 싶었습니다. 하지만 무능한 남경이 이런 외딴 초소에 있을 리는 만무하지요. 폴이 이해는 가지만, 본인의 망상으로 성별을 이유로 들어 저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역차별로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출처 : 유튜브)

 

다행히 이 상처받은 남자에게 훈계를 둘 일은 없었습니다. 초소에 있는 경찰은 저 하나뿐이거든요. 저는 끝까지 친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에게 겁먹은, 특히 여자들에게 약탈까지 당한 직후의 남성을 대하는 법은 확실하니까요. 그를 안심시켜주고, 여자를 대할 때보다 더욱 부드럽고 온화하게 다루어야 하는 법이지요. 그러나 저의 이런 친절이 그의 신경을 더욱 자극한 듯 보였습니다. 그는 주로 제 시선을 피해 눈을 내리깔았지만, 그러다가 제 가슴이나 허벅지가 보이면 깜짝 놀란 새끼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들썩거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보통 경찰이 아닙니다. 이런 낯선 곳에 있다 보면 어떤 상황에도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는 법입니다. 저는 그를 안심시키고,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반라로 이곳을 찾은 남자가 당한 일은 뻔했으니까요. 그는 평생 이 사실을 가능한 한 숨기며 수치스러운 상처로 안고 살아갈 것입니다. 저는 그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옅은 미소를 잃지 않고, 다그치지도 않으며 가만히 있었죠. 마치 섬세한 작은 토끼를 다루는 것 처럼요. 이제 그에게는 그 수치스러운 사실을 저에게 말하는 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제게 하나 둘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길을 떠도는 두 여성을 순순히 차에 태웠다고 합니다. 세상 어느 곳에서 남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여성 두 명을 차에 태운답니까? 남자가 짧은 옷을 입고 여자를 자기 차에 들인다면 결말은 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명백합니다. 이건 그냥 좆뱀질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순수하게 여자들에게 어떤 호의나 인정이라도 기대했다는 말인가요? 요즘 남자들은 약아 빠져서 여자들의 넘치는 성욕을 이용하지요. 제가 의심의 눈빛을 보내자 그는 갑자기 발끈하여, 그도 처음에는 그 사람들을 의심했었노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태웠단 말인가요? 믿을 수는 없었지만 저는 그에게 다그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 어린 남자가 말을 꾸며댈까 염려스러워 가만히 있었습니다. 폴은 방금 그 말은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했던지, 갑자기 그녀들이 아름다웠었다고 둘러댑니다. 거리에서 모르는 두 여성을, 그저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차에 태우는 남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더군다나 그는 혼자였고, 그 흔한 호신용 도구조차 하나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듯 저 또한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의문스러운 점은 바로 이 점입니다. 그 강도들이 그의 옷을 다 벗겼는데, 그는 별 다른 일을 당하지 않고 바지를 돌려받아 왔다는 것입니다. 보통 이런 사건의 경우에는 남자들은, 정말 괘씸한 일이지만, 욕을 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단연코 이런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몹쓸 여자들이 불쌍한 희생자 한 명을 제압하고 옷을 벗겼는데, 그에게서 돈과 차만 빼앗아갔다니. 오늘날의 못된 여성들 중에도 그런 예의는 갖출 줄 아는, 숙녀 중의 숙녀가 존재했던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폴이 남자로서의 존엄성은 지키면서, 어떤 무고한 시민을 상대로 보상을 원하고 있다고 밖에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여러분들이 그의 섬세한 목선과 흥분하여 붉어졌지만 여전히 투명한 피부, 미성년같은 외모, 작지만 꼿꼿하게 선 젖꼭지를 보았다면요. 이 한 번도 더럽혀지지 않은 듯한 그의 몸을 보았다면 그 숙녀분들이 그냥 두고 갔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불쌍한 폴은 계속 말했습니다. “대구경의 권총으로 위협을 당했다고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자꾸 저를 힐끔 쳐다보며 제 눈치를 살핍니다. 제가 이 남자의 말을 믿기가 어려웠던 데에 한 몫 한 것은 바로 이런 태도 때문입니다. 그는 시종일관 사건의 요소를 하나하나 말할 때마다 저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제가 믿는지, 안 믿는지를 확인하려는 게 틀림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도둑들에 대해 말할 때에는 매우 흥분하며 아름다웠다고 하며 바르르 떠는 것이, 확실히 제 정신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작고 연약한 폴은 아마 당분간의 치료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세상 경험이 적은 젊은 청년들을 능숙히 다루는 정신분석의를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두려움, 여성에 대한 어린 남자들의 두려움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고, 완치 사례도 금방 찾아볼 수 있습니다. 폴도 그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저는 점점 헛소리를 하는 이 남자가 짜증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려보이는 얼굴과 젖꼭지가 꽤 귀여워 보이기는 했지만요. 우리 여자들은 그렇게 예쁜 외모를 하고 있더라도 성가시게 일을 방해하는 남자라면 단호히 혼낼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도 눈치를 챈 듯 뾰로통해져 자신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조금은 당돌하기까지 한 이 남자를 잘만 구슬리면, P. K. 35의 비밀, 즉 요즘의 젊은 남자들의 비밀을 어느 정도 파악하여 그들의 치료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를 다시 앉혔습니다. 저는 인내를 갖고 그에게서 몇 가지 진실을 끌어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늘어놓는 사건의 전말은 단편적으로 끊기거나 중단되고는 했으며,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마침내 점점 참을 수 없는 지경으로 이르러 소리치기 직전까지 화가 치밀자, 눈치 빠른 폴은 갑자기 말을 멈추고 저를 살피더니, 움찔거렸습니다. 이 남자도 도망가려는 모양이군요. 저는 기진맥진해져 더 이상 그의 일에 관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모르는 척 미소를 짓자, 폴은 있는 힘껏 자리를 박차 그 지점의 반대쪽으로 달려갔습니다.

 

P. K. 35, 이 지점은 참 기묘합니다. 젊은 총각들이 말을 지어대지만, 그들에겐 어떤 일관된 태도가 있습니다. 과연 실화일까요? 

 

(출처 : 유튜브)

 

 

 

<미러링에 대한 말말말>

 

메갈리안들이 하고 있는 미러링 스피치는 과거의 혐오발언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언급'하고 있는 것에 해당된다. 혐오발언의 사용일 뿐 아니라 과거의 여성 혐오발언들을 언급하고 보여주고 전시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미러링 스피치에는 언어의 언급과 전시(display)의 측면이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혐오발언에 대한 언급의 측면이 존재하는 한, 메갈리안들의 혐오발언에 대한 '언급'을 일베를 비롯한 여성혐오 발언의 직접적인 '사용'과 혼동하는 것은 "사용과 언급을 혼동하는 오류"에 해당된다. 예를 들자면, "개새끼는 욕입니다"라고 말한 것을 가지고 "똑같이 개새끼라고 욕했군요"라고 하는 격이랄까. 따라서 이 주장은 메갈리아의 미러링이 언급의 측면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있다.

-유민석

 

한국 남성의 여성 지배와 성차별적 행태 전체가 이른바 미러링에 의해 효과적으로 고발되었다. ‘씹치남같은 단어는 그야말로 도발적이면서 신선하게 한국 남자의 섹슈얼리티와 콤플렉스를 적확히 치고 들어간 강렬한 풍자고 비판이었다.

-천정환

 

페미니즘은 어떠해야 한다, 페미니스트는 어떠해야 한다와 같은 잣대를 만들어놓고 그녀들에게 도덕적 순수성과 논리적 완결성을 요구하는 일이야말로 버틀러가 말한 '윤리적 폭력'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현재

 

 

 

<참고문헌>

 

레몽 장, 이인철 옮김, 오페라 택시』, 세계사, 1998.

이현재,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 들녘, 2016.

유민석, 혐오발언에 기생하기 : 메갈리아의 반란적인 발화, /성이론, Vol.33, pp.126-152, 2015.

천정환,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메갈리아논쟁까지, 역사비평, Vol.116, pp.353-381, 2016.

위키페디아 프랑스, https://fr.wikipedia.org/wiki/Raymond_Jean

 

 




나나

“사내아이를 낳아야 했어, 그래야 그럭저럭 살아 나가기 쉽고, 이 파리에서 수많은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야.”

내가 태어난 날 우리 엄마가 나를 보고 되뇌었어요.

책 읽어주는 나나

제1호 「벨라 B.의 환상」


(출처 : 아마존프랑스)

레몽 장(1925-2012)은 단편집 『벨라. B의 환상』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이자 교수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벨라. B의 환상』을 3호에 걸쳐서 살펴 볼 계획인데요. 오늘은 첫 번째 단편, 「벨라 B.의 환상」입니다.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던 즈음, 레몽 장은 엉뚱한 착상을 한다거나 신선한 자극을 안겨주는 작가로 평이 나있었습니다. 옮긴이의 말을 잠시 살펴볼까요? “우리 주변에서는 논리성을 저버린 일들이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 다만 우리들이 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뿐이다.” 맞아요. 이 이야기는 “논리성”을 저버린 이야기에요. 그렇다고 그 “논리성”이라는 것이 논리적이라고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엉뚱하고 신선하다고도 하는데요, 글쎄요, 무엇이 엉뚱한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무슨 말인지 궁금하시지요? 지금 바로 살펴봅시다.




<벨라 B.의 환상>


벨라는 어떤 불안을 느끼고 있는 한 소녀입니다. 오랜 증세 때문인지 그녀는 가냘프고 생기없이 초췌하기만 한데요. 그녀를 진단해야 하는 ‘나’는 그녀를 유심히 관찰합니다. 그러다 문득 벨라를 프로이트나 그로덱의 환자와 닮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의사이고, 그녀는 치료받아야 할 환자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자문하는데요. 그러면 ‘나’는 프로이트인건가요?


벨라는 “과육과 같이 도톰”한 입술과 “얇은 실크 블라우스 아래로 풍만하고 지나치리만큼 커보이는 가슴”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에 따르면 말이에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이게 참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벨라의 인품에서는 조심성이나 신중함이 두드러지는데, 왜 자꾸 “상당히 묵직한 이 두 개의 젖가슴”을 감추려고는 하지 않는 거냐고요.


그녀는 “거미 공포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미라는 것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벨라가 밤에 잠자리에 들 때만 그녀 위로 기어오르는 것인데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침대 발치 벽에 뚫린 구멍으로부터 나온다는데, 심지어 그 구멍조차 육안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벨라는 이를 잘 알고 거의 체념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거미들이 그녀의 성기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이를 벨라의 환상쯤으로 생각합니다. 주치의 페트렐 박사 또한 “성에 관계된 예민한 사안이 확실하다”며 정신과 상담을 받을 것을 조언하지요.


(출처 : 구글)


그리하여 벨라와 가족들은 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네메츠 교수를 만나게 됩니다. 네메츠 교수 또한 벨라의 케이스를 어린 소녀들이 가질 수 있는 전형적인 거미 혐오감, 혹은 공포증이라고 진단하며, 그 원인은 “성과 관련된 사항들”에 있다고 합니다. 그는 벨라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거미 이야기나 하는 이 어린 처녀가 이야기를 꾸며댈까 걱정스러웠답니다. 그래서 그녀의 가족들에게 어린 시절, 특히 벌레와 관련된 이야기가 없는지 묻습니다.


그런데 들어보니 벌레가 벨라를 괴롭혔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개미들이 벨라의 몸 위를 기어 다니면서 아랫배와 허벅지를 가로지르는 붉은 자국을 만들어낸 사건, 해변의 모래가 “절대로 안되는 곳”, “은밀한 장소”로 들어간다며 벨라가 불평하던 사건, 파리를 잡아 가두려고 유리컵을 사방에 탁탁 치던 벨라의 몸에 다음날 붉은 원 자국들이 생긴 사건(아마 파리가 벨라의 몸 위에 붙어댔던 모양입니다. 우리는 추측만 할 따름이지요.) 등. 물론 이번 거미 사건과 마찬가지로 벌레를 실제로 볼 수 있었던 사람은 벨라 뿐이었습니다.


(출처 : 구글)


네메츠 교수는 가족들의 증언에서 확신을 얻게 됩니다. 자신의 예측이 옳았던 것입니다. 더불어 그녀의 “야릇한 아름다움”, “묵직한 가슴”과 함께, “얌전하고 겸손하며 수줍”어하는 모습은 그로 하여금 어떠한 사명감까지 갖게 했다는데요. 심지어는 눈물이 북받칠 정도랍니다. 생전 가져본 적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나. 말하자면 ‘내가 그녀를 꼭 치료해 주겠다, 그녀의 치료를 나의 사명으로 삼겠다’라는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치료는 “정기적인 면담” 내지 “진정제” 처방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벨라의 증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벨라가 말하길, 그 거미들이 온 몸을 기어다닐 뿐만 아니라, 그녀를 물기라도 하는 것인지 온 몸에 붉은 자국이 넓게 퍼져나간다는 것인데요. 그 붉고 따가운 자국들은 점점 커지다가 마침내는 가운데가 거뭇거뭇하게 변하기까지 합니다. 이를 두고 네메츠 교수는 “심신상관적인 징후의 새로운 발현”이라며, 이를 미리 예고했던 본인의 선견지명에 감탄할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벨라의 증세는 악화되어가고 거뭇한 자국도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는 갑자기 가정환경을 탓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곳에서 벨라를 끌어내어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선, 그녀의 옷차림새부터 바꾸어야할 것 같습니다. “이 얇은 천과 레이스류, 그녀가 줄곧 입고 다니는 이 펑퍼짐한 치마들, 간들간들하게 이마 위로 길게 늘어진 머리, 팔목에 무겁게 늘어진 팔찌들, 그녀가 자주 바꿔 다는 귀고리, 브래지어, 어쩌면 그녀가 착용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코르셋”. 그녀를 “요즘의 젊은 처녀들”처럼 현대적인 여자로 바꾸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벨라는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만들려는 이 치료법을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결국에는 점점 “다른 여자”로 변해갔습니다. 팽팽히 부풀어 한가운데가 거뭇거뭇한 자국들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말이지요. 이제는 청바지도 입게 된 그녀에게 남은 것은, 때 지난 헤어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벨라는 이상하게도 유독 긴장하게 됩니다. 미용 중에도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어댄 탓에 결국 미용사 클라라의 면도칼에 살짝 베이게 되는데요. 하필이면 잔뜩 부어있던 피부가 베이게 됩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걸, 그 베인 상처에서부터 아주 작은 거미 세 마리가 튀어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다행인건 벨라가 이제는 회복했다고 합니다.



<누구의 환상일까?>


우리는 적어도 벨라의 케이스에선 프로이트주의적 진단이 패배한 것을 목격했습니다. 벨라의 환상이 아니라 정신분석학적 진단이야 말로 환상이었던 것이지요. 모두는 벨라의 증언이나 경험, 심지어 그 증거조차도 믿지 않았습니다. 다만 정신분석학을 믿을 뿐이었지요. 벨라의 목소리는 보기 좋게 묵살당하고, 그 고통에 있어서 타인일수밖에 없는 정신 분석학의 목소리에 의해서만 그녀의 병명이 진단되었습니다. 왜 세상은 벨라의 병이 신경증이라고 판단하였을까요? 왜 그녀의 일관된 증언을 믿지 않고, 그녀의 몸이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들을 무시하고 그녀가 겪었던 모든 일에서 오로지 정신분석의의 예측이 옳다는 것만을 보았을까요?


이 세계가 벨라에게는 ‘적응’하기 힘든 것임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거미들은 벨라의 몸을 자신들의 소유지로 삼은 듯 밤마다 그 위를 기어 다닐 뿐 아니라, 알집, 즉 자궁으로써 그녀의 몸을 취했지요. 사실 벨라는 사춘기 이전부터 외부세계의 물질이 그녀를 파고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벨라가 그녀의 성기와 관련하여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은, 그녀의 성이 이 세계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에 불편함을 가진다는 것과 무관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벨라의 질 속으로 파고드는 거미를 여성,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은밀히 침투해 지배하려 하는 세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남성 중심 세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그녀의 몸이 거미들이 기어다닐 수 있는 소유지, 즉 남성 세계의 소유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고, 자궁의 기능, 즉 여성의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확실히 벨라를 좀먹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벨라 만이 벌레를 포착할 수 있었던 이유도 추측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성립된 세계의 질서 속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적 지배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왜 요즘 한국에서도 여성의 몸, 섹슈얼리티에 대한 지배나 억압이 어디 있는지 전혀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프로 불편러’라는 말도 자주 사용되고요. 어쨌든 벨라의 신체를 넘어서 정신까지 이 세상에 적응시키고자 했던 것이 바로 정신분석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신분석학은 그녀의 경험을 일종의 판타지, 신경증, “성에 관계된 예민한 사안”으로 진단하여 궁극적으로 그녀를 거미를 볼 수 없는 다른 사람들처럼 현실에 눈멀게 하고자 하니까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없었던 것처럼, 벌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출처 : 구글)


거미는 벨라의 몸을 소유합니다. 바로 옆에서 정신분석학은 그녀의 목소리를 빼앗아버리고 병을 진단합니다. 프로이트주의는 임의로 그녀를 진단하였지요. 거미를 목격한다는 것, 즉 그녀의 몸에 대한 거미의 침투를 포착한다는 것만으로 그녀를 신경증 환자로 진단내렸습니다. 거미들은 적극적으로 벨라 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듯했고, 정신분석의는 벨라가 이 지배에 대해 적응하거나 또는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도왔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벨라의 “환상”으로부터 그녀를 자유롭게 해준 것은 정신분석학이 아니었지요. 한 미용사의 실수, 면도 컷이 벨라를 정신분석학적 진단으로부터 해방시켜준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남성의 지배에서 벗어난 세계로의 해방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정신분석학이 주장하는 신경증의 원인은 사실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자, 확실히 이 이야기는 “논리성”을 저버린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거미? 정신분석의? 아니면 둘 다? 설마 거미가 기어들어갈 수 있는 여성기를 벨라가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 않겠지요?



<프로이트에 대한 말말말>


(출처 : 구글)


“신프로이트주의적 수정주의를 가장 잘 특징짓는 용어는 아마 ‘적응’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에의 적응인가? 기초가 되는 가정은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 흑인, 또는 특별히 불운한 계층의 일원이면 어떠한가? 그들은 이중적으로 불운하다. 그들은 우리가 보아온 대로 특권을 가진 사람들에게조차 어렵고 불안정한 정상성을 획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그들의 가능성을 제한시키는 특수한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에 ‘적응’해야만 한다. 그들은 자기정의 또는 자기결정하려는 모든 시도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므로 마르쿠제의 관점에 있어서, 치료의 과정은 ‘체념의 과정’일 뿐이고, 건강과 신경증 간의 차이는 ‘체념의 정도와 효과’일 뿐이다.”

“프로이트는 여성해방론이 치유하려고 하는 것을 진단하는 사람에 불과했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정신분석은 가부장제 사회를 ‘위한’ 추천이 아니라, 하나의 가부장제 사회‘의’ 분석이다.”

-줄리엣 미첼


“정신분석학은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는 진실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


“만일 당신의 신경질적으로 비참한 기분을 우리가 치료를 통해서 일상적인 불행으로 변형시키는 일에 성공한다면 많은 것이 얻어질 것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참고문헌>


레몽 장, 이인철 옮김, 『오페라 택시, 세계사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김예숙 옮김, 성의 변증법, 풀빛

시몬느 드 보부아르, 이희영 옮김, 제2의 성, 동서문화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정신분석세미나팀, 페미니스트 정신분석이론가들, 여이연

위키페디아 프랑스, https://fr.wikipedia.org/wiki/Raymond_Jean






나나

“사내아이를 낳아야 했어, 그래야 그럭저럭 살아 나가기 쉽고, 이 파리에서 수많은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야.”

내가 태어난 날 우리 엄마가 나를 보고 되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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