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안을 두고 전국 각지에서 검은 시위가 일어나는 등 국민들의 반대가 거셌다. 해당 안은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하다 적발된 의사에 대해 자격정지 기간을 정하는 것으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령안' (2016.09.22.) 

 

       -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을 위반해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우

       - 진료 중 성폭력을 저지른 경우

       - 대리 수술

       - 마약, 대마, 향정신성의약품 복용

      등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하다가 적발되면 최대 1년간 의사 자격을 정지할 수 있게 된다.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 명시한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위반한 임신중절수술은 비도덕적 진료행위의 범주에 들어가며, 이를 하다 적발된 의사는 최대 1년간 자격 정지를 하겠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위 안건은 철회되었다. 그러나 이를 시발점으로 한국 사회 내에서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여러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해당 사안과 관련하여 아직 해결되지 않은 법적, 사회적, 제도적 여러 문제들에 대해 같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제 4차 여대회담 : 나의 자궁, 나의 것

회담 진행자: 야매법학도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 까마귀: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에 다니고 있다. 검은 시위를 참여했었다.

- 웅디민디: 성신여대에 다니고 있다. 종교인이면서 낙태 찬성하는 페미니스트인 분을 구한다고 해서 난가?’했는데 갑자기 여기 와 있어...(모두 웃음)

 

- 밍챠챠: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 티쯔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다.

 

 

 

Q. ‘검은 시위는 어떤 이유로 참여했는지, 또한 직접 겪은 현장 분위기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까마귀: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 참여 했던 시위다. 조금 무서웠다. 시위를 나갈 때 몰카에 찍히거나 신상이 밝혀질까 걱정을 했다. 평소 페이스북에 실명을 써서 올리거나, 공개적으로 올리는데, 이번 시위는 직접적으로 참여한다고 게시글을 올리지 못했다. 시위는 고등학교 동창인 페미니스트 친구랑 같이 갔다. 마스크하고 모자를 다 챙겨갔다. 옷도 다르게 입고 갔다. 행렬 맨 앞에 있었는데 아무도 나인지 모를 것이다. 무서울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무서운 집회는 아니었고 유쾌한 집회였다. 젊은 세대들의 발언도 많았고, 엄숙주의 같은 게 없어서 좋았다. (사람들이) 자유발언을 하는데 슬펐다. 성은 안전과 직결되는 부분인데. 시위에서 자신의 낙태 경험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지인이 낙태경험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맞닥뜨려 있는데도 생각보다 논의가 안 되어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어떤 분이 왜 여성의 몸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논의가 되지 않는 것인가라고 의문을 던지는 것에 대해서 공감했다.

 

 

밍챠챠: 보건복지부가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입법예고를 해서 이슈가 됐다. 관련 정보를 찾아보다가 참여하게 됐다. 출산율 감소를 여성에게서 찾는 것이 화가 났다. 산부인과협의회가 처벌을 강화하면 우리 낙태시설을 전면 금지할거라고 했다. 이게 말이 되나? 이걸 알고 어떻게 가만히 있나? 낙태 시술을 전면 금지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사망하는 여성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산부인과 의료인이 낙태시술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한 것은 여성의 목숨을 담보로 방패막이 삼은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현장분위기는 좋았다. 만 명 넘어가는 시위와 다르게 자유발언 할 때 가깝고, 대화하는 느낌이 들었다. 발언자와 청취자가 딱 구분되어있는 느낌이 아니고, 모두 발언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그 자리에 있는 많은 여성들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우는 사람도 있었다. 저 사람(우는 사람)은 나와서 이야기하지 못 하지만 마음속에 어떤 응어리가 있을까, 감정적으로 다가왔던 시위였다.

 

 

(검은시위 이미지, ©강남역10번출구 페이스북 페이지)

 

 

 

Q. ‘나의 자궁, 나의 것’, ‘국가는 나대지 마라등 여러 문구의 피켓들이 많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시위 참가자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피켓 문구나 발언이 궁금하다.

 

밍챠챠: 생소하고 재밌는 것 중에 두 개를 추려봤다. ‘우리는 연대할수록 강하다이번 시위가 페미니스트들이 연대를 해서 만들어진 시위라서 이 문구가 와 닿았다. 많은 사람들이 연대해서 모였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들이 나와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거 같다. 또 다른 하나는 해외의 반정부 시위 사진이었는데 한 남자가 ‘I don’t need sex because the government fucks me everyday‘ 피켓을 들고 있었다. (모두 웃음)

 

까마귀: 사실 나는 기독교인이다. 시위에서 사람들이 찬송가를 개사해서 불렀는데 재미있었다.

 

웅디민디: 진짜 웃겼다.

 

밍챠챠: 다 같이 부르면 희열이 장난이 아니다.

 

까마귀: 박자가 조금 어렵다. 복음 성가가 엇박이 있어서 사람들이 자꾸 틀렸다. 20년 동안 들었는데 나도 똑같이 틀렸다. (모두 웃음) 너무 웃겼다. 예전엔 낙태 집회를 하는데 찬송가를 개사해서 부르는 것이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페미니즘과 인권과 평등의 개념을 접하다보니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신성모독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그래서 사람들이 개사한 노래를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유쾌했는데 부르다보니 너무 슬펐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개사한 노래를 들으며 나중에 전문직을 가지길 바라고, 육아로 경력단절 되지 않길 바랐다. ‘마귀들아 싸울지라라는 노래에서는 맨 마지막에 곧 승리하리라만 개사를 안 했다. 그 곧이 언젠지 모르겠다.

 

웅디민디: 시위에는 못 갔지만, 커뮤니티를 세 개 이상 하고 있고 트위터도 하고 있어서 정보를 많이 접했다. 인상 깊게 본 사진이 있다. ‘수정란이 세포면 암세포도 생명이냐과학적이고 참 좋았다.

 

 

 

(검은시위 포스터, ©한국여성민우회 트위터)

 

 

 

Q. 기사를 보면, 2-30대 여성뿐 아니라, 청장년층 남성, 가족단위까지 시위에 참석했다고 한다. 이 사안과 관련하여 과거에 비해 조금 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해석해도 될까?

 

밍챠챠: 가족단위 참여자가 적어서 찍힌 게 아닐까. 실제로 참여자의 대부분은 2-30대의 여성들이었다. 물론 과거에 비해선 공감대가 구축된 거 같긴 한데, 아직 갈 길이 멀다. 어떤 사람이 낙태죄 폐지 피켓을 들고 가는데 어떤 아저씨가 시비를 걸었다는 사례를 봤다. 답답한 게 정말 많다. 그래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를 낸 것이기에, 바뀔 거라는 믿음이 조금은 생겼다. 사실 1차 검은 시위 때는 남성 참여를 막아라, 자궁 있는 사람들만 이야기해라, 라는 말이 있어서 논란이 됐다. 그래서 2차 시위 때는 관심 있는 사람들 모두 참여할 수 있게 돼서 좀 더 (성별, 연령대가) 다양해졌다.

 

 

까마귀: 주최 측의 성향에 따라 시위 참여자 제한을 두는 것 같다. 내가 갔던 집회는 남성의 참여를 막는 것을 반대하는 성격이었다. 노선이나 전략에 따라서 (입장이) 나뉘는 것 같다.

 

웅디민디: 여기서 논란은 성소수자의 의제와 맞물린다. 사람의 젠더는 딱 두 개만 있는 게 아니고, 트랜스젠더, 젠더리스를 포함해 굉장히 많은 젠더가 있다. 근데 아예 여자인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게. 그럼 나는 몸은 여잔데 정신이 여자가 아니면 참여 못 하는 거냐고 물을 수 있다. 안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 워마드에서 남성 참여에 반발을 했던 이유는 이해가 간다. 유저들은 남성이 정말 이거(낙태)에 관심이 있어서 오는 건가에 대한 의문을 느낀다. 남자가 진짜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은 있는가? 낙태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시위에) 와야 하는데, 이 시위를 정치적으로 혹은 다른 것으로(낙태와 관련 없는 사안에) 이용하려고 올 수도 있으니까. 방향이 많이 흐트러질까봐 우려를 한 것 같다. 아예 뭐 배제하자는 게 아니라 날짜를 나눠서 (시위 참여자의 성별을 나눠서) 하자는 둥 차선책이 나오더라.

 

까마귀: 방금 말씀하신 것에 공감했다. 기사를 보니까 이번 시위 참여자 중 다수였던 젊은 여성들을 전혀 조명하지 않았다. 시위 참여자에 남자도 있다, 이렇게 남성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원래는 남자를 왜 굳이 빼야하나 했는데, 기사를 보면서 여성 인권과 관련된 시위에서도 여성의 주체성이 지워지는 것을 봤다. 그들의 입장이 이해는 간다.

 

밍챠챠: 청소년 연대에서 성인들을 배제하는 이유가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들었다. 낙태 시위에서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가 간다. 하지만 표현이 조금 거칠었던 것 같다.

 

웅디민디: 낙태에 대해 그 전에 비해서 갑자기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이번 시위를 페미니즘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Q. ‘낙태에 대한 논의는 태아생명권산모의 신체 자기결정권에 대한 입장이 대립되는 구조로 흘러가고는 한다. 낙태의 불법화, 음지화, 일과 가정 양립의 어려움, 경력단절여성의 증가, 양육시설의 부족, 성교육의 부재라는 현 한국상황에 비추어보았을 때에도 이와 같은 대립각이 합리적일까?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말씀해주시기 바란다.

 

 

티쯔: 이 프레임은 말이 안 된다. 나는 생명은 존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명을 품고 있는 사람이 산모다. (뱃속의) 생명에 대해서 논의하기 전에 산모의 건강에 대해서 논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게 없이 태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건 무의미하다. 이 법이 적용되는 대상은 문란한 여성들이 아니라 벼랑 끝에 몰린 사회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여성들이다. 도대체 이 법을 통해서 과연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절벽사회 이미지, ©21세기북스)

 

 

야매법학도 : 그 벼랑 끝에 몰린 여성들을 처벌하면서 얻는 게 뭔지?

 

밍챠챠: 몸 함부로 굴린 년을 처벌하자. (모두 웃음)

 

웅디민디: 진짜 맞는 것 같다.

 

까마귀: 나하고 안 자고 딴 놈이랑 잔년을 처벌하자. (모두 웃음)

 

웅디민디: 왜 나랑 안 만나줘? 왜 나랑 안 자 줘? (모두 웃음)

 

밍챠챠: 생명권 대 선택권 프레임은 굉장히 해롭다. 임신 중단을 결정하기 위해서 가족, 경제적 능력(양육 능력), 건강상태, 친부와의 관계 등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는데, 저 프레임은 이 조건들을 다 지운다. 그러면 낙태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나? 이것은 생명의 문제다. 국가가 책임지고 보호해야 하는 생명의 문제. 또한 아이를 낳기 힘든 사회 환경 문제들이다. 그것을 관장하는 게 국가니까. 미혼모에 대한 낙인, 태어난 생명에 대한 지원, 육아 휴직, 경력 단절, 임신과 출산에 대한 올바른 교육, 또는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육아의 부담, 이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국가차원에서 논의가 되어야 한다. 생명권 대 선택권이 아니라. 이건 정말 버려야 한다. 태아의 생명권에 대해서는 엄청 말 하면서, 태어난 아이에 대해선 아무도 책임지고 얘기하지 않는다. 너무 웃기지 않은가? 수정이 된 순간부터 생명의 시작이라고 한다. (모두 웃음) 근데 수정된 수정란은 대부분은 착상에 실패한다. 너무 많은 수의 수정란이 착상에 실패한다. 그럼 착상 실패해서 생명을 죽인 건가? 난임 부부에게 시험관 수술할 때, 수정란 엄청 만들어서 성공한 거 제외하고 다 버린다고 알고 있다. 그럼 그 사람들은 다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인가? 수정란이 생명이면 뱃속에 있는 태아는 왜 인구집계 안 하나? 수정란이 되기 몇초 전에는 정자와 난자다. 진짜 몇 초 전에. 근데 그건 왜 또 생명이 아닌가? (모두 웃음) 정말 이해가 안 돼서.

 

까마귀: 수정이 되는 순간 어디선가 신비로운 힘이 깃들어서, 생명이 되는 기운이~(모두 웃음)

 

밍챠챠: 한국에서는 몸 함부로 굴린 년을 처벌하자는 마인드로 낙태죄를 대한다. 근데 필리핀에는 (한국 남성 때문에) 코피노 문제가 정말 많다. 너무 웃기지 않은가? 코피노들은 생명 아닌가? 필리핀 사람이라서?

 

까마귀: 검은 시위 할 때쯤에 정부에서 (내년에 태어나는) 아기의 수를 2만 명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필리핀에 있는 코피노가 3만 명이라고 한다. 그러면 코피노를 지원하자, 한국 여성의 출산 문제도 해결이 되고, 인구 문제도 해결이 되고, 정부가 좋아하는 생명도 보호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기회가 되면 정부 앞에다 슬로건을 써서 걸어주고 싶었다.

 

밍챠챠: 근데 아직도 외면하고 있다. 외교부로 컨택이 들어오는데 다 무시한다.

 

웅디민디: 베트남 라이따이한들은 베트남 전쟁 때 태어난 아이들이다. 아예 마을이 있어서 그들끼리 모여 산다고, 그런데 사회에서 엄청 배척당한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은 역사책에서도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밍챠챠: 베트남에는 코피노 아빠 찾는 커뮤니티도 있다. 한국에서 아예 화제도 안 된다. 어떻게 이렇게 사회가 남성중심적으로 돌아갈까.

 

까마귀: 관련 기사가 나와도 댓글을 다는 사람의 성별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지들이 했으니까. 찔려서 절대 거기다 얘기 못 하는 거다. 자기가 가서 (성매매) 했는데.

 

야매법학도: 필리핀에는 낙태 관련법이 있나?

 

 

웅디민디: 필리핀은 굉장히 빈곤한 국가다. 아이폰을 하나 훔치면 6개월의 생계가 해결된다고 한다. 의료 서비스 시설도 잘 없고, 서비스 비용도 비싸다. 이런 경제적인 이유가 있어서 자가낙태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사망률이 높을 것 같은데, 자세한 통계는 잘 모른다.

 

티쯔: 라오스만 해도 의료수준이 진짜 바닥이다. 산부인과 시설을 본 적이 있다. 애기 낳고 나서 의료진이 수술을 제대로 안 해놔서 자궁이 다 떡이 됐다고 하더라. 그 곳은 사람들이 의사가 되고 싶어서 되는 게 아니라, 공무원이 되고 싶어서 의사가 된다. 의사가 공무원이 되기 쉬우니까. 사명감이 없는 사람들이 의사를 하고 있다. 도립병원에 갔는데 판자촌 같이 시설이 형편없다. 만약 그런데서 낙태시술이 있다고 한다면 엄청 위험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낙태 관련해서 말하길 쉬쉬하는 분위기다. 어떻게 보면 이 기회(시위)는 좋은 기회다. 낙태 이슈를 양지화하는 게 중요한데, 그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리모와 관련해서, 외국에선 각 상황에 따른 법률 조항이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남자 정자를 가지고 오느냐 수정란을 가지고 오느냐와 같이 세세히 나눠놓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리모에 관한 법 자체가 없다. 이 시위를 통해 우리나라 수준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법이 어떻게 나올까 싶기도 한데.(모두 웃음) 이 모든 이슈를 양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Q. 군부 독재시절인 6, 70년대에는 경제발전을 위한 인구 억제 정책을, 현재는 저출산문제의 대두로 출산장려 정책을 정부차원에서 펼치며 여성의 선택권을 박탈하고 있다.

 

 

 

(산아제한정책 vs 출산장려정책, ©미디어일다)

 

 

밍챠챠: 출산율과 여성을 연관지어서 생각하는 것은 여성에게는 재생산의 의무가 있다고 전제를 두는 것이다. 여성을 필요에 따라 통제할 수 있다는 상식은 여성을 도구화한다. 8-90년대 여아낙태를 정부가 묵인했다. 그래서 셋째아이 성비가 300이 넘어가는 곳도 여러 군데 있다. 나도 그 지역 중 한 곳 출신이며 다행히 둘째 아이라 낙태당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근데 지금은 출산율 낮아지니까 이제 와서 낙태 불법화하는 게 어이없다. 여자는 국가의 자궁 취급을 받고 있다. 국가 대상으로 나도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해봤다.

 

까마귀: 애초에 사람이라고 생각을 안 한다. 세금은 내라고 해놓고, 계속 이런 안 좋은 현상들이 유지가 된다.

 

웅디민디: 출산장려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여성의 산후 휴가를 고려한다든지, 경력단절여성을 최대한 줄이겠다든지 아무튼 많은 정책을 내세운다. 국가적으로 단체미팅을 주선하겠다든지.

 

까마귀: 아이를 낳았을 때 실질적인 복지정책을 제대로 구비해놓지도 않고, 낳아라, 낳지 말아라, 그거야말로 비윤리적인 문제다. 지들이 뭔데 개인의 성생활이나 고귀하다는 생명의 탄생을 국가정책으로 두고 개입하는지 주제넘은 짓 같다.

 

웅디민디: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다. 출산장려정책을 지들 나름대론 열심히 하고 있다. 우린 이렇게 미팅도 시켜주고, 휴가도 주고, 나는 너희들에게 모든 걸 해줬는데 애를 안 낳아? 요새 젊은 여자들 이기적이라 애를 안 낳네. 결국 미혼 여성들과 애를 안 낳지 않는 여성들에게 화살이 돌아 갈까봐 걱정된다. 싱글세를 부과한다든지 이런 방식으로.

 

밍챠챠: 한국남자들이 자기 멋대로 들이대 놓고 왜 나 안 만나 주냐고 쿵쾅거리면서 한국여자는 다 김치녀, 된장녀라고 욕하는 거랑 비슷하다. (모두 웃음) 연애를 하고 말고도 개인의 선택권 아닌가? 결혼 하라고 사회적 압박을 주는 것은 개인권 침해다. 나는 연애를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건데, 너무 이상한 사람으로 몰린다. 혼자 산다고.

 

까마귀: 출산은 여성의 권리라고 방금 들었는데, 지금은 출산을 의무화 시키는 것 같다. 싱글세를 부여한다든지, 낙태를 금지하는 것이 출산을 의무화하는 것과 연결되어있다고 본다. 또한 출산을 성스러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출산이 성스러운 것이기에 그 환상이 깨진다고 분만실에 남성을 못 들어오게 한다. 남성이 출산에서 소위 말하는 애기씨를 주는 역할을 하고 빠지고. 일가정양립 정책에 대해서도 여성의 일가정양립만 이야기하고, 남성의 일가정양립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여성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문제다. 출산율을 높이고 싶으면 이 지점을 건드려야 한다. 임신과 출산을 포함한 모든 과정에 남성을 넣어보고 생각을 해야 한다. 아이의 모든 것을 여성의 전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문제다.

 

밍챠챠: 결국 국가 정책 실패의 빚을 개인한테 다 전가하는 거다. 정말 파렴치하다. 출산율 감소는 국가정책실패의 결과지. 애 낳고 싶은 나라를 만들면 애 낳는다. 여성의 몸을 통제해서 강제적으로 애를 낳게 만들려고 하는 게, 사람 머리에서 나올 정책인가 싶다.

 

까마귀: 애 낳으면 뭐하냐. 나는 여자애를 낳을까봐 걱정되어서 애를 낳지 않으려는 것도 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았기 때문에 별다른 (성범죄) 피해 없이 자랐다. 듣기론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동대상범죄가 정말 많았다고 한다. 특히나 여아는 범죄대상, 그것도 성범죄대상으로 쉽게 노려진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봐온 바로는 범죄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는 것 같지도 않고. 뱃속에서 뇌도 없고 심장도 없을 때는 고귀한 생명체를 죽이면 안 된다. 살인이다.’ 이러면서 막상 애가 태어나면 관심도 안 가진다. 몇 년 동안 그렇게 애지중지 귀하게 키운 생명이 죽임당하면, ‘어쩔 수 없는 거야. 아동이라 취약해서, 운이 안 좋아서 당한거야.’ 이딴 태도로 나오니까 어이가 없다. 생명 존중할거면 이미 태어난 아동들에게도 관심을 쏟고 더 존중해야지. 지들 편한 데서만 생명 존중찾고, 낳고 나서는 나 몰라라 하는 게 너무 어이가 없다. 그런 스탠스를 가질 거면 생명 존중한답시고 낙태 불법 외치지를 말든가.

 

웅디민디: 과거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에서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짓고 무조건 애가 생기면 낳게 했었다. 그런데 애를 낳고 버리는 것에 대한 제재는 없었다. 결국 루마니아의 고아원이 다 포화상태가 되고,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나 인신매매가 극성했다고 들었다.

 

밍챠챠: 그 시기 동안 사망하는 산모의 비율이 800퍼센트나 증가했다고 들었다. (모두 경악)

 

야매법학도: 산모는 사람도 아니야?

 

밍챠챠: 생명은 중요하다고 하는데, 거기에 산모의 생명에 대한 고려는 없다. 차우셰스쿠 정권이 무너지고 낙태금지법이 철폐되고 나서 바로 다음해 산모 사망률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들었다.

 

 

 

Q. 형법 제269조는 이미 낙태에 관해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고,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이에 대한 예외적 규정이다. 이마저도 배우자의 동의를 받는 경우, ‘임신 24주 이하에 한한다. 법조항을 보면, 처벌대상자에는 임신을 한 부녀, 즉 당사자만 해당이 된다. 공동책임자인 남성에게는 책임을 묻지도, 그는 처벌대상에도 해당되지 않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형법 제269조 (낙태) 

 

모자보건법 제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된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1항의 경우에 배우자의 사망, 실종, 행방불명, 그 밖에 부득이한 사유로 동의를 받을 수 없으면 본인의 동의만으로 그 수술을 할 수 있다.

 

 

 

1항의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때에는 그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로, 친권자나 후견인이 없을 때에는 부양의무자의 동의로 각각 그 동의를 갈음할 수 있다. [전문개정 2009.1.7.]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12.29.>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개정1995.12.29.>

 

 

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1995.12.29.>

 

 

 

 

 

 

웅디민디: 남성만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낙태를 생각하는 여성에게는 원하던 관계에 의해서든 원하지 않았던 관계에 의해서든 임신 자체가 짐이고 일종의 형벌이 아닌가. 이미 너무 많은 책임이 여성에게만 지워져있는 상태다. 처벌을 해야 한다면 남성한테 그 책임을 무는 것이 무게중심이 맞지 않을까 싶다.

 

밍챠챠: 여성들만 처벌 대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을 보고 여자는 죄다 성모 마리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혼자 임신한 거 아닌데. 심지어 법 이름도 모자보건법이다. 애비가 없다. (모두 웃음) 회담을 준비하면서 많은 자료들을 읽었는데 너무나 와 닿는 글귀가 있었다. “'낙태죄'는 현재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 국가가 생명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해버리는 가장 쉬운 수단이다. 이는 여성의 성적 권리를 통제하기 위한 가부장, 남성 중심 사회가 공모한 결과다.” 이러니까 처벌법 조항에서 남자가 빠질 수밖에 없지. 여자 혼자 임신하는 거 아니지 않은가. (낙태시술)의료인도 처벌하는 마당에 남자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도대체 왜? 똑같은 상황에서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은 남성과는 달리) 여성은 몸 함부로 굴린 년취급을 받고, 온갖 삿대질과 욕설에 시달린다. 심지어 임신까지 한 상태다. 모든 책임은 여자가 지고 있는 상태인 거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덴마크 같은 경우에는 싸질러 놓고 튀는 놈을 처벌한다고 한다. 아이 아빠로 지목된 사람은 반드시’ DNA 검사를 받아야 하고, 생부로 판명 날 경우에는 매달 한화 기준으로 60만 원 정도의 금액을 엄마와 아이에게 지원해줘야 한다. ‘생부가 양육비를 안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할 텐데 아니다. 양육비를 지원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엄마에게 양육비를 지원하고 생부의 소득에서 원천징수해버린다고 한다. 만약 외국으로 도망가면, 덴마크에 입국하자마자 환수조치를 한다고 한다. 이것도 완벽하진 않다. 돈만 가지고 임신과 출산, 육아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냐. 법은 최소한의 장치이고, 양육비는 최소한의 책임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이뤄지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까마귀: 인간을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문제인 거 같다. 뇌가 없는 상태의 태아는 지각을 못하는데 과연 이 상태를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지, 낙태를 살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낙태는 살인이다라고 주입되어져왔는데, 사실 그 바탕에는 논리가 없었다.

 

밍챠챠: 남성이 동의해야만 낙태죄 처벌대상에서 벗어난다는 게 제일 화가 난다. 임신에 일조했으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남성이 동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간피해로 임신해서 애를 지우고 싶어도, 보호자인 어머니가 동의를 해도 낙태를 할 수 없다. 남성이, 없다면 강간범이 동의를 해야만 내가 처벌받지 않고, 낙태를 시술한 의료인이 처벌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이 예외사항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는 것 같다. 강간범의 아이를 낙태하려고 하면 병원에서 강간피해를 입증할 고소장을 가져오라고 하고 미뤄지다가 결국 강간범의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던 경우가 상당하다고 들었다. 예외사항이 제대로 안 지켜지고 있다는 증거다. (명확하게 강간임을 인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는) 여성이 강간피해를 인지하고, 임신사실을 깨닫게 되고 결국 내가 강간 피해자라는 것을 밝히는 것은 정말 큰 부담이지 않은가. 이러한 부담을 감수하면서 고소를 결심하고 변호사를 선임해서 증거를 수집하고 서류를 준비해서 고소장을 제출하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계속 자라나고. 이 모든 책임은 피해자 여성이 지게 된다. 이 조항, 가해자를 위한 법 같다. 너무나 화가 난다.

 

까마귀: 여성이 낙태를 할 때 배우자나 (아이) 친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어찌 보면 정상가족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 페미니즘 공부하면서 항상 느끼는 건데 성소수자 이슈나 (가부장적) 가족문화와도 많이 엮여있는 것 같다.

 

 

 

<회담후기>

 

 

까마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정보들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 모두 낙태처벌죄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그러한 결론에 다다르게 된 데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 않나. 혼자만 생각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분들과 얘기를 하며 의견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머리가 너무 아픈데, 그만큼 이 시간을 통해서 얻은 게 많다. 값진 경험이었다.

 

웅디민디: 역시 여자들이 똑똑하다. (모두 웃음)

 

밍챠챠: 워낙 관심 있는 분야라 회담 제의가 들어왔을 때 신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제대로 얘기하지 못할까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는 회담 분위기도 좋고, 정말 재밌었다. 특히, 나의 경우는 무교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부분과 연결 지어서 생각해볼 일이 없었는데 새로운 시각을 접하게 되어서 재밌었다. 우린 더 예민하고 더 불편해져야 한다. 여자가 짱이다. (모두 박수)

 

티쯔: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서 사실 자료조사를 제대로 못했는데, 그 점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오늘 회담에 참여하게 되면서 배운 게 정말 많았다. 앞으로 계속 관심을 갖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대학생활을 하면서 무언가에 대해 깊게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장이 적어서 항상 아쉬웠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런 갈급함이 조금 채워지는 것 같아 정말 좋았다. 끊임없이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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