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노출의 계절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를 위한 노출일까요? 우리는 언제까지 성희롱이나 몰카, 품평을 위해 노출하는 것으로 여겨질까요? 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거울 앞에서 한참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래시가드를 만든 사람은 감방에 처넣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하석진과 노브라로 미친년이 된 설리가 공존합니다. 말하자면 오빠가 허락해준선에서만 노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출처 : 구글)

 

이번 회 여대회담에서는 여성의 패션에 대한 자유를 다루어보았습니다. 여자와 패션 그리고 여대와 패션에 대해 이야기 해 볼 건데요. 그럼 제9차 여대회담, 지금부터 시작해볼까요.

 

 

9차 여대회담: 패션에의 자유

회담진행: 나나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지완: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지완이다. 오늘로 페미니스트가 된지 딱 2년이 됐다.

 

 

Q. 오늘 외출하기 전, 거울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나요?

 

-지완: ‘오늘도 고생 시작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꾸미려면 한두 시간은 걸리니까 거울만 봐도 피곤하다. 오늘 입은 옷은 내가 봐도 참 예쁘고 또 가슴이 파이지 않아 신경도 안 쓰이고 편하다.

 

-나나: 꾸미지 않고 편안한 차림으로 외출할 때에는 어떤지?

 

-지완: 민낯으로 편한 옷을 입고 나오면 움츠러드는 편이다.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내가 너무 후줄근해서 쳐다보는 건가?’, ‘서울 다니는데 너무 안 꾸몄나?’ 이런 생각을 한다.

 

-나나: 가슴이 파이지 않은 옷을 입어서 편하다고 하셨는데, 옷을 고를 때에 시선폭행 때문에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편인지?

 

-지완: 피곤한 날에는 일부러 노출 없는 옷을 고른다. 남자들이 쳐다보면 신경이 곤두서서 더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깊게 파인 브이넥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나갔는데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운전하면서까지 쳐다보더라. 한번은 학교 앞 역에서 한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우후~’라는 소리를 냈다. 내가 ?’라며 소리를 쳤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며 자리를 떴다. 파인 옷을 입으면 저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기분 나빴다.

 

 

Q. 일상생활 속, 특히 어떤 점에서 여성의 패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완: 브래지어와 속바지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내 친구들은 브라 끈이 보이면 부끄러워하며 당장 가리라고 한다. 친구들 때문에 나도 강박이 생겨 한여름에도 브래지어 위에 민소매를 항상 같이 입었다. 지금은 노브라로 다닌 지 두세 달 정도 됐다. 편하다. 친구들은 부끄러워하더라. 나는 아무 생각도 없는데. 그래도 니플 패치는 꼭 붙인다. 하지 않고 명동에 갔다가 심하게 시선폭행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여자는 섹시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가뜩이나 가슴, 브라까지 안 하고 있으니 얼마나 작아 보이는 줄 아냐?’라고 하시며 여자로서의 매력이 반감된다고 하더라. 더워서 안 하는 것일 뿐인데 무슨 섹시얘기까지 나오는지. 가슴이 작으면 노브라로 다니는 게 이상한건가?

 

(출처 : 구글)

 

-나나: 집에서 노브라로 있을 때에는 어떠한지?

 

-지완: 집에선 무조건 브라를 하지 않는다. 내가 아빠나 오빠를 잘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시원해보이게 입고 있으면 조금 눈치를 보게 된다. 말은 안 해도 시선이 있다는 걸 아니까. 친구들은 나에게 집에 남자 형제가 있는데 어떻게 브라를 안 하느냐, 젖꼭지가 다 보이는데 쪽팔리지도 않느냐고 한다.

브래지어뿐만 아니라 속바지에 대한 스트레스도 심하다. 예전에 학교 모 커뮤니티에서 올라온 글이 생각난다. ‘한 여성이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는데 속바지가 다 보였다. 가방으로 가리지 않고 계단을 올라가는 건 예의 없는 짓이다.’ 댓글로도 꼭 가리고 올라가야 한다는 글만 올라오더라. 팬티 보이지 말라고 속바지를 입었는데, 속바지를 또 가려야 한다. 브라랑 똑같지않나. 가슴 가리려고 브라를 했는데 브라까지 가려야 하니까. 온 몸을 꽁꽁 싸매고 다녀야하나? 엄마는 내가 속바지를 입는지 확인한다. 난 속바지 입는 게 너무 싫다. 지금이 32도인데 내가 또 안에 속바지를 입으라고? 그래도 엄마가 왜 걱정하시는지는 잘 알고 있다. 지하철만 타도 몰카를 찍으니 걱정하시는 거다. 어쩔 땐 나도 몰카가 걱정이 되어 속바지를 입는다. 여자라서 몰카의 표적이 될 상황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게 스트레스다.

 

 

Q. 시선폭행으로 특히 불쾌했던 경험이 있나요?

 

-지완: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지하철을 탄 적이 있다. 어떤 할아버지가 나를 계속 쳐다보더라. 그래서 나도 계속 쳐다봤다. 그런데 내가 교통카드를 찍고 개찰구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욕을 하고 도망갔다. 내가 남자였다면, 하다못해 내 옆에 남자친구로 보이는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이런 일은 처음 겪어봐서 충격적이었다. 노출이 있는 옷을 입으면 남자들이 추근대거나 시비를 걸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또 오프숄더를 입었다가 시선폭행을 굉장히 심하게 겪은 일도 있다. 어떤 남자가 내 옆에 앉았는데,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심하게 쳐다보더라. 너무 불쾌해서 자리를 옮겼다. 내릴 때가 되어 버스 손잡이를 잡고 기다리고 있는데, 남자가 나를 계속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몰래 보고 있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피하지 않나. 그래서 내가 일부러 쳐다봤는데도 계속 보고 있더라. 소름끼쳤다. 내리니까 창문으로 빤히 보고 있더라. 무서워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지만 엄마는 뭐 입고 있었는데?’라고 물었다. 오프숄더를 입고 있었다고 하니까 별 반응이 없었다. 서러워서 울었다.

 

(출처 : news1)

 

 

Q. 남성과 비교해봤을 때 패션 자유도가 더 낮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완: 그렇다. 인터넷 쇼핑을 좋아하는데, 모든 쇼핑몰마다 남친이 반했어’, ‘남친이 또 반했어’, ‘남심 흔드는 샤랄라 원피스막 이러고 있더라. (웃음) 정말 모든 쇼핑몰이 다 이런 문구야.

 

-나나: 옷을 구매할 때 그런 문구를 신경쓰는지?

 

-지완: 나는 남자들이 좋아한다는 걸 신경 쓰진 않지만, 그런 문구들을 보면 많은 쇼핑몰 취향이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걸로 맞춰지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안 예쁘다고 생각한 옷들인데, ‘남자친구가 좋아해’, ‘남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해라는 문구로 세뇌를 시키니까 진짜 예뻐 보이나?’라는 생각도 들면서 한 번 더 보게 되더라. 남자들을 반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옷을 입지 않고, 그런 마음에서 최대한 벗어나려 하지만, 완전히 벗어나는 건 힘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원하는 스타일대로 꾸미는 것에 대해서도 자유도가 낮다고 생각한다. 숏컷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 싶은데 여자한테 잘 안 어울린다는 말을 많이 해서 못 자르겠더라. 타투도 하고 싶은데 어머니께서 심하게 반대하신다. 엄마가 허용하는 유일한 문신은 눈썹 문신이다. 항상 여자 몸에는 함부로 새기면 안 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화장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그렇게 입술을 빨갛게 하고 다니면 남자들이 별로 안 좋아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난 빨갛게 칠하는 걸 좋아하는데. 악세사리 또한 이와 비슷하다. 큰 귀걸이를 좋아하는데 이런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튀는 건 별로라며 남자들이 다가가기 편한 수수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

 

(출처 : 구글)

 

 

Q. 패션에 대한 여대 편견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짤이 있지 않나. 여대 다니는 사람이 풀메이크업에 예쁘게 꾸미고 왔을 때에는 역시 여대에 다니는 사람들은 빡세게 꾸미네라고 말하고, 추레하게 다닐 때에는 여자들만 있는 학교 다니는 거 티 내냐?’라는 내용의 짤.

나도 이전에는 여대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명품백만 들고 다니며 사치스러울 것이라는 편견. ‘이대 애들은 어떻고 숙대 애들은 어떻고...’ 루머일 뿐인데 사람들은 그걸 믿더라. 그로인해 여대생에 대한 혐오도 더 생기는 것 같다. 사촌오빠는 내게 여대 애들이 좀 사치스럽지 않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나는 그런 애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애도 있으며, 그건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른 것이라고 답한다. 그러면 사촌오빠는 내 말을 안 듣는다. 원하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니까 갑자기 휴대폰을 하더라. 내가 만약 여대 다니는 사람들은 다 김치년이고 남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백을 사주며, 그 백을 들고 클럽에도 다닌다라고 말한다면 , 그래?’하면서 귀 기울였을 걸? (웃음) 자기가 생각할 때 자극적이고 여대혐오에 적합한 이야기를 해주면 귀 기울이고 아니면 아무 말도 안 한다.

 

(출처 : 구글)

 

-나나: 그렇다면 여대와 패션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지완: 자유로움. 공학에 다니는 학생들보다 패션에 대해 더 자유로울 것 같다. 내가 공학에 다녔다면 시선폭행에 대한 걱정과 스트레스로 힘들었을 것 같다. 여대에 다니면 파인 옷을 입어도 편하게 등교할 수 있다. 브라나 속바지를 입지 않는 것도 용기를 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시선폭행은 일반화가 아닌 팩트다. 보통 일반화라고 말하는 사람은 남자, 즉 그런 시선을 당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여자들은 적어도 한 번씩은 겪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선폭행을 하는 사람들은 노출에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몇 초 보는 건 괜찮겠지라는 생각 같은데, 그런 사람들이 거리에 몇 명씩 있다고 생각해보라. 노이로제 걸린다. 우연히 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시선폭행은 눈이 마주치는 빈도나 시선이 머무는 시간이 다르다. 그런 걸 살면서 여자들이 자주 겪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여대에서는 이런 일을 안겪는다.

또 남자들이 많으면 몰카 걱정을 해야 한다. 이런 말도 일반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남자가 많으면 몰카 설치 비율이 높다. 뿐만 아니라 공학 학교 커뮤니티에는 여자 학우들을 품평하는 글도 올라오더라. ‘오늘 지나다니던 어느 학과 여자 너무 예뻤다라고 공개적으로 쓴 글을 봤는데 아무도 제지하지 않더라. 이런게 아니더라도 빤히 쳐다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시선폭행 때문에 지금보다는 얌전하게 입어야 했을 것 같다.

 

-나나: ‘노출에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완: 그러니까 그들에게 여자는 성적 객체다. 여자를 성적으로 대상화해서 조금만 노출이 있어도 시선폭행을 하는 것이다. 오프숄더가 그렇게 노출이 심한 옷도 아닌데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보니까 어깨만 보여도 시선폭행을 하지 않았나. 지하철 몰카 중에는 노출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반팔 원피스를 입고 있는 사람도 있더라. 그 여성을 몰카로 찍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다리만 살짝 보여도 디지털 성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news1)

 

 

6. 모든 방해물이 제거된다면 가장 하고 싶은 패션 아이템이 특히 있으신가요?

 

-지완: 브라탑, 브라렛에 청바지만 입고 돌아다니고 싶다. 외국에선 브라탑, 브라렛을 단독으로 입고 다니는데 한국은 쳐다보는 시선이 있어서 꼭 티셔츠와 함께 입지 않나. 그리고 팔 전부를 덮는 용 문신을 하고 싶다. 이효리가 공중목욕탕에 갔더니 여자가 몸에 그림을 그렸냐고 지적했다고 하더라. 이런 시선들이 사라진다면 여기저기에 타투를 하고 싶다. 또 투블럭컷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치마를 입었을 때 가방으로 가리고 계단 올라가는 것 좀 안 하고 싶다, 몰카에 대한 걱정 없이.

 

(출처 : 코스모폴리탄)

 

 

7. 후기

 

-지완: 정말 재밌는 시간이었다. 페미니즘에 관심 없는 사람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답답한 반응이 돌아오지 않나? 보여지기 위해 그렇게 입은 거 아니냐는 둥 맨날 도돌이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속 터놓고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여자끼리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면 좋을 것 같다.

 

브라 태우는 여자들

 암탉


만화 재윤의 삶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굉장히 보수적인 기독교계 여자 고등학교였다. 여름이면 겉보기에 비치지 않는 얌전한브라에 브라를 가려줄 하얀색 민무늬 반팔 티셔츠를 입고 그 위로 또 하복 블라우스를 입어야 했다. 만에 하나 위의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선생님은 젖가슴 내놓고 다니지 말라며 쩌렁쩌렁하게 고함을 지르곤 하셨는데, 너희들이 단정하게다녔으면 하는 마음에 일부러 수치심을 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내 몸엔 가슴이 달렸다. 이는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내 몸에 가슴이 달렸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사회는 여성의 가슴을 금기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나는 가슴을 가려줄 브라를 해야만 했다. 내가 브라를 착용한다는 사실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브라를 했다는 사실이 티 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색깔이 도드라지는 브라를 하면 안 되고 브라를 가려줄 옷을 겹쳐 입어야 한다. 그마저도 브라 끈이 보일 수 있으니 끈 민소매는 금물이다. 브라를 가려줄 옷입고 등교하는 것도 금물이다. 그 위에 학교에서 규정한 하복 블라우스를 입고 단추도 풀면 안 된다. 조오신하지 않으니까. 도대체 뭐 어쩌라는 걸까? 고등학생 암탉이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브라의 시초는 나름 페미니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 여성들은 몸통을 꽉 조이는 코르셋을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성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코르셋에 비유하듯, 코르셋은 여성 신체에 엄청난 위해를 가하고 있었다. 몸통을 비정상적으로 변형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소화에 지장을 줌은 물론이고 호흡 곤란을 유발해 질식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코르셋의 위험성에 대해 많은 의사들이 경고했지만, 이는 보통 촌스러운-패션 센스와 거리가 먼조언으로 받아들여졌고, (오늘날의 브라처럼) 여성에게 필수적인 속옷으로 여겨져 미착용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고 한다. ‘패션의 이름으로 여성의 허리-, 건강을 졸라매던 코르셋이 브라에게 밀리기 시작한 것은 1913년이었다. 당시 미국 사교계를 휘어잡던 유명인사 메리 펠프스 제이콥스는 저녁 파티에 입고 갈 드레스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정말 맘에 드는 드레스인데, 상체가 비쳐 코르셋을 착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드레스를 포기하기 싫었던 메리는 손수건과 끈 몇 가닥을 이어 현대의 브라에 가까운 손수건 브라를 만들어냈다.

 

      

() 현대식 브라의 창시자 메리 펠프스 제이콥스, () 메리가 만든 즉석 손수건 브라

 

당시에도 여성의 신체를 감추기 위해 속옷을 착용해야 하지만, 그 속옷이 드러나면 안 된다는 모순은 그대로였다. 따라서 여성들은 불편한 코르셋을 착용하고, 코르셋을 감춰줄 수 있는 두꺼운 옷만을 착용해야 했다. 메리의 손수건 브라를 본 여성들은 열광했다. 가슴을 가려주면서도 무척 얇아 의복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기 때문이다. ‘패션이라는 매력적인 명목으로 여성들에게 다가간 브라는 삽시간에 코르셋의 자리를 빼앗았다. 여성들은 숨통을 졸라매는 코르셋의 악몽에서 벗어났지만, 상대적으로 덜 가혹해 보이는 브라의 지옥에 빠지게 됐다.

 


미스 아메리카 대회 폐지 시위 현장 (출처: 구글)


    ‘페미니스트하면 화난 여성들이 브라를 태우는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고정 관념의 시초는 1968년 행해진 미스 아메리카 반대 시위이다. 급진 페미니즘이 부흥하면서 브라, 하이힐 등 여성을 향한 물리적 구속을 거부하는 이들이 늘어나던 시기였다. 여성의 몸을 성 상품화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남성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미스 아메리카 대회에 분노한 페미니스트들이 미스 아메리카 대회장 앞에 모였다. 그들은 준비해온 구호를 외치며 미스 아메리카 대회를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Freedom Trash Can’에 브라, 하이힐 등을 내다 버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짜로 브라를 태우지는 않았다. 경찰의 진압으로 시위가 생각보다 빨리 해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 브라 태우기 퍼포먼스(미수)’가 페미니즘 운동을 대표하는 하나의 아이콘처럼 자리 잡은 걸까? 이건 공포감에 가깝다. 브라를 태우는 것 곧, 노브라 상태가 얼마나 무서우면 하나같이 공통된 진술을 읊는 걸까? “그 미친 여자들이 브라를 태우면서 (안 태웠다니까) 난동을 부렸어···.”라고 말이다.

 


    2015년 여름, 인스타그램 측에서 여성의 유두가 부적절하다는 규정을 내세워 여성의 가슴 사진만 대거 검열·삭제한 일이 있었다. 인스타그램 유저들은 이에 유쾌하게(?) 대응했다. #this is a male nipple 운동이 그것이다.

 

인스타그램, 세상을 안전하게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세상은 무시무시한 여성의 젖꼭지로부터 자유로워졌어요!

 

여성의 가슴에 남성의 젖꼭지만 합성한 사진

 

인스타그램 유저들은 #this is a male nipple 태그를 걸고 젖꼭지만 잘라 놓은 사진에 이것은 남성의 젖꼭지입니다.’라고 적어 놓거나, 브라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의 몸에 남성의 젖꼭지사진만 합성하는 등 인스타그램의 여성혐오적 규정을 비꼬는 사진들을 업로드했다. 놀랍게도 이러한 사진들은 모두 인스타그램의 검열을 피할 수 있었다. 여성의 가슴과 남성의 가슴 차이 몰까...? 남성의 젖꼭지라는 사족이 달리면 사진의 유해함이 증발하기라도 하는 걸까?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이건 공포감에 가깝다고.

 


    인스타그램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노브라 포비아들의 바람이 무색하게 요 몇 년 사이 한국에도 노브라 담화가 대두되고 있다. 언급하기도 식상하지만, 노브라 담화의 확산에 힘을 보탠 주역이 설리의 인스타그램 사진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작년 4, 설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노브라 차림의 사진을 업로드했다. 설리의 브라 착용 여부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댓글들이 (무려 9000여개 가량!) 이어졌다. 긍정적인 점은 이 일을 통해 노브라담화가 수면 위로 끌어올려 졌다는 것이다. ‘미친 꼴페미의 상징이었던 노브라 담화가 설리라는 유명 연예인 이슈의 탈을 쓰고 활발하게 소비되기 시작했다.

 

좀 더 편안한 형태의 브라, 브라렛. 정말 편할까? (출처: 구글)

 

노브라에 대한 관심이 좀 더 편한 브라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브라렛이 급부상한 것이다. 지난 회차에서도 말했지만 브라 선택의 완전한자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설리의 인스타그램에 달린 댓글들처럼 쏟아지는 시선과 오지랖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브라의 부담감은 줄여주면서도 훨씬 편안한 브라렛은 훌륭한 대안이다. 많은 브랜드에서 브라렛을 내놓고 있고 내 주변에도 브라렛 전도사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브라렛의 유행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찝찝한 것도 사실이다. 포털 사이트에 브라렛을 검색해보자. 편안한 착용감을 내세워 마케팅하고 있지만,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디자인의 브라렛이 대다수이다. 실제로 쇼핑몰을 둘러보면 까슬까슬한 레이스 탓에 피부가 간지럽다거나, ‘레이스가 힘이 없어서 오히려 더 불편하다는 댓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편안함을 위해 선택한 브라렛 마저 불편하더라도 남들이 보기에 예쁜디자인을 취하게 된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과거 브라가 패션의 이름으로 여성들에게 다가갔다면, 이젠 편안함이라는 좀 더 교묘해진 방법으로 여성들에게 다가가는 건 아닐까? 더는 엮이고 싶지 않은 덜 가혹해 보이는구속의 연속은 아닐까? 난 좀 더 근본적인 대안을 원한다.

 


    이쯤에서 2014년 개봉한 ‘Free the Nipple’(한국 개봉명 가슴 노출을 허하라)이라는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 여성의 신체에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검열법에 항의하고자 노브라 시위를 진행한 활동가들의 이야기이다. 영화 중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전쟁과 여성의 가슴 중 무엇이 더 음란한가?”

 

미디어는 폭력, 살인, 전쟁 등의 비윤리적 행위는 아무 거리낌 없이 내보내면서, 여성의 신체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 그들, 곧 남성의 기준에 맞는 여성의 신체는 환영받고 선별적으로 노출되며 나아가 신격화된다. 하지만 여성이 주체적으로 내보이는 신체는 검열의 대상이 된다. 사회가 여성의 가슴을 신체가 아닌 성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감추라고 강요당한다. 폭력과 가슴 중 무엇이 더 음란한가? 음란한 것은 여성의 가슴을 음란하다고 낙인찍은 시선 아닌가? 성적 대상인 가슴이 아니라 우리 몸인 가슴을 되찾기 위해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필자소개

여태껏 내 손으로 덕질한 것 중에 페미니즘만큼 재밌는 게 있었나? 페미니즘에 강하게 치인 새내기 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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