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아무도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by.한의 민족


페미니즘을 알기 전까지 나는 소위 '개념녀'였다.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있는 줄도 몰랐다. 남녀평등은 이미 이뤄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정성별 여성임에도 선별적 낙태를 당하지 않았고, 남자 형제를 위해 학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됐으며, 남자 아이들과 동등하게 의무교육과정을 이수한 90년대 생이었으니까. 학교에서 내가 만나는 남자아이가 가지고 있는 권리는 당연히 나에게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생물학적 차이를 떠나 똑같은 인간으로 보였다. 똑같은 권리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같은 몫을 부담해야 한다고, 그게 공평한 것이라고 믿었다. 남자와 여자는 공평하게 더치페이를 해야 하고, 여자에겐 의무가 아닌 군대를 가는 남성들을 불쌍하게 생각했다. 단순히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부담해야 하는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내가 '평등하다고 생각한' 세계에서 편한 삶을 살았고, 굳이 여성학을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런 내가 페미니즘에 눈을 뜨게 된 것은 대학 선배의 추천으로 여성학 동아리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동아리에서 처음으로 세미나를 했던 때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신은 여남 임금 격차가 36.6%나 난다는 사실을 알았는가? 한국 남성이 한 번이라도 성매매를 해 본 경험이 다른 나라의 남성들과 2배 이상 차이를 내며 당당하게 1위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나는 미처 몰랐었다. 첫 세미나를 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수치에 대해서라기보다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이 여혐민국에서 남성중심적으로 사고하도록 사회화된 채 살아왔는지 깨닫게 된 충격이랄까.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내가 그동안 얼마나 스스로를 검열하고 남자들을 정당화시켜주었는지 깨달았다.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인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페미니스트는 이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해 불평등에 맞서 싸울 수 있어야 했다. 이런 점에서 난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 나는 여전히 "빻은" 말을 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피하려고 한다. 어쩌면 정신력을 소모해야 하는 논쟁이 귀찮았던 것일지도 모르고 아직 스스로가 자신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어야만 한다. 나의 목소리가 나의 행동이 모여 사회를 바꾼다. 행동력이 절실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내가 적을 두고 있는 자대 여성학 동아리에는 최근 신입생이 폭발한다. 많은 학우들이 혐오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서 동아리에 가입했다고들 말한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동감과 연대의 손수건을 휘날리며 이 코너를 기획했다. 이 코너는 주제별로 빻은 반응에 대처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과 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책과 자료를 함께 기재할 예정이다. 페미니스트에게 팩트는 가장 좋은 무기니까!

 

<1. 아무도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여성혐오? 난 여자 좋아하는데? 난 여성혐오자 아니야.

a) 너는 '여성혐오'가 뭔지부터 찾아보고 와야겠다.

b) '여성혐오''미소지니misogyny'의 번역어로 하나의 단어야. 여성+혐오가 아니라고.

c) 여성숭배라는 의미를 지닌 필로지니philogyny 또한 여성을 타자화시킨다는 점에서 여성혐오란다.

 

앵그르-그랑드 오달리스크 

(출처:구글)


여성혐오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벗어날 수 없다.

 

싫어하고 미워함을 뜻하는 국어사전의 혐오라는 단어와 여성혐오의 혐오는 전혀 다른 단어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여성혐오(misogyny)란 여성을 다른 존재로 보이게 만들어 분리된 존재로 부각해 남성 집단에 대해 낯선 존재, '타자'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여성에 대한 '타자화'는 여성을 남성에 비교하여 이질적인 면을 부각해 공동체에서 소외되게끔 만들어 대상을 하나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만들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잃게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에 위험하다.

여성을 좋아한다. 혹은 여성숭배의 의미를 지닌 필로지니(philogyny) 또한 여성을 타자화시킨다는 점에서 여성혐오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멸시나 업신여김, 또는 여성에 대한 편견뿐만 아니라,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열등한 존재, 위험한 존재 또는 성스러운 존재 등으로 여기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여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는 '여성혐오'의 알리바이가 될 수 없다.

 


언능 예쁜 색시 데려와서 엄마 손에 물 안 묻히게 해줄게! 내가 이렇게 효자인데 여성혐오자라니?

a) 예쁜 색시 대리효도시킬 생각 말고 효도는 셀프로 하기~

b) 여성을 사적 영역(가정)으로 몰아넣으면서 여성 억압이 시작됐어. 여성=가사노동을 할 노예로 생각하는 건 여성혐오야.

c) 다른 여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가사일을 가사일을 할 사람이 없니? 남자인 너도 설거지는 할 수 있잖아!

 

(출처: 페이스북)


남성의 커리어는 여성의 죄책감에 기생한다.

 

어머니를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결혼을 한다는 것은 여성을 노예로 보고 있다는 인식의 표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아내로 이어지는 가사노동의 세습은 가부장제를 답습하고 여성 억압적인 사회구조를 유지하는데 기여한다. 확실히 말하지만, 집안일은 여성만의 일이 아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그렇게 구조화되었을 뿐이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에서 여성을 억압하기 위해 여성의 운신 범위를 사적 영역-가정-으로 제한하고 공적 영역-직장-은 남성이 독점하였으며, 이러한 공-사 이분은 여성억압의 기반이 된다고 말한다. 남성들은 공적 영역을 독점하기 위해 여성에게 맡긴 가사노동을 후려치고 평가절하 했다. 그 결과 여성은 직업과 정기적인 소득을 잃어버렸고, 남성이 벌어온 소득에 의존적인 존재가 되었으며, 이윽고 남성의 '벌이'에 감사하며 '벌어오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까지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은 가사 노동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노예가 되었다.

여성혐오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남자들이 자주 제시하는 증거로써 어머니를 위하는 '효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낳아주고 길러준 불쌍하고 가여운 우리 어머니의 보드라운 손을 되찾기 위해 결혼을 하겠다는 남자들의 변명은 웃기지도 않는다. 어머니 손에 물 안 묻히게 하는데 색시가 왜 필요한가? 본인이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는 것이 더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 아닌가?



(퇴근하면 3시간 집안일에 녹초.."한국남자와 결혼? 말리고 싶죠" <파이넨셜 뉴스> http://www.fnnews.com/news/201507021717168881)

심지어 맞벌이 가정에서조차 여성은 하루 평균 가사 노동에 3시간 13분을, 남성은 40분을 쓴다는 통계청 수치가 있다.

 


난 내 여자 친구가 짧은 치마 입으면 내가 코트로 가려주는데? 내가 이렇게 여자한테 매너 있는 남잔데 어떻게 여성혐오자라는 거야?

a) 남이 짧은 치마 입겠다는데 니가 뭐라고 난리신지?

b) 매너 있는 행동이 여성이 억압받는 사회 구조를 숨기고 있다는 거 알아?

c) 어딜 남자가 경망스럽게 코트를 함부로 막 벗고 그래?

 

호의? 누가 마음대로 호의래?

 

묻고 싶다. 왜 여친의 짧은 치마를 본인의 코트로 가려주는 행위가 '매너 있는 행동'이 되는지? 당신의 여자친구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다. 당신의 마음대로 타인에게 전시할지 말지를 정하는 작품-심지어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에서 '낭만적 사랑' 역시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임을 강조한다. 여태까지 여성은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억압됨으로써 남성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경제적·사회적 억압만으로는 더는 그러한 의존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낭만주의'라는 문화적 장치가 도입된다. 낭만주의적인 사랑 속에서 여성은 '거짓 숭배'된다. 가령 테이블에 앉을 때 여성에게 의자를 빼준다거나, 문을 잡아준다거나, 여성의 치마를 코트로 가려준다거나 하는 낭만적인-매너 있는- 행동은 당장 여성들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느끼게 하지만, 그런 행동들이 여성에게 가해지는 경제적·사회적 억압을 해결해주지 않을뿐더러, 실질적인 억압 구조의 존재를 가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낭만주의는 여성이 그들이 처한 실질적인 경제적, 사회적 억압 구조를 알지 못하게 막는 남성권력의 문화적 도구이다.

종종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호의가 무례하고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하는 행동임을 인지하지 못한다. 특히 소위 '매너'라고 칭해지는 이러한 행동양식은 호의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에 지적하기도 곤란하다. 그러나 남성은 '호의'라는 명목하에 여성을 통제해왔고, 여성을 순종적인 존재로, 수동적인 존재로, 스스로 검열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모든 개인은 자유로워야 한다. 그것이 범죄가 아니라면, 누구나 그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뤄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어느 누가 주체적인 개인의 자유 의지를 규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짧은 치마를 입고 싶은 사람은 입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짧은 치마를 코트로 가려주는 '매너'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여성혐오의 한 갈래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도 여자지만 솔직히 여자들 감정적이고 예민한 거 인정한다난 그래서 남자애들이랑 노는 게 더 편하더라. 걔네는 그런 게 없거든.

a) 모든 여자들이 다 감정적이고 예민한 건 아닌데 왜 확대 해석해서 일반화하세요?

b) 너도 감정적이고 예민한 적 있지 않니? 사람이면 누구나 그래~

c) 너 지금 여성혐오하고 있는 거 알아? 여자도 여성혐오를 할 수 있어.

 

아무도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여성도 여성혐오를 할 수 있다. 여성을 열등하고 기생적인 계급으로 정의하는 남성이 운영하는 사회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남성의 승인을 받지 못한 여성은 불행하다. 이러한 사회에서 여성의 여성혐오는 주로 자기혐오로 나타난다. 그러나 자기혐오가 아닌 다른 방식의 여성혐오를 하기도 한다. 본인은 예외적인 여성이 되어 타자화한 다른 여성을 혐오함으로써 그 혐의-열등하고 기생적인 존재로서의 여성-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소위 '명예 남성'은 이렇게 태어난다.

이들이 자신을 제외한 여성 집단을 혐오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감정적이고 예민해서, 외모에만 관심이 많고 다른 데에는 무지해서, ㅇㅇ해서, ㅇㅇ해서. ㅇㅇ의 자리에 무엇이 들어가는지는 큰 상관이 없다. 그것은 단지 스스로를 특별한 '예외'로 만들기 위한 발판일 뿐이다. 그들은 여성에게서 보이는 일부의 특성을 여성 일반으로 확대하여 혐오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본인은 그 열등한여성 일반과 차별화된, 우월한, 특별한 개인이 되기를 원하며, 기득권층인 남성 사회의 인정을 받고 궁극적으로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문제는 그녀 또한 남성 집단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잘해봐야 표면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으나 동지로 받아들여지는 일은 없다. 오히려 이들은 남성 집단에 의해 차별구조를 온존하고 지속적해서 재생산하'특권적인 예외'로써 이용될 뿐이다.

여성의 부분적인 특징을 여성 일반의 특성으로 확대하여 받아들이는 것은 여성을 하나의 집단화하여 타자화한다는 점에서 여성혐오의 한 방식이다. 여성이 갖는 특정한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들이 그런 특성을 보이도록 만든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이 우선해야 한다.


-필자 소개: 한의 민족. 페미니즘을 접하고 나서 매일 흑흑거리고 부들부들거리며 살고 있다. 

-코너 소개: 저는 저런 말을 들었을 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미리 시뮬레이션 해뒀다가 실제로 그런 말 들었을 때 당황하지 말고 카운터 펀치를 날리기 위한 코너입니다.

<? 마른 거 그거 완전 좋은 거 아니냐?>

암탉

 

    한국만큼 외모지상주의가 극에 달한 나라를 찾아보기도 힘들 것이다. 지하철 플랫폼엔 성형외과 광고가 벽지처럼 도배되어 있고 화장은 예절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또한, 그 잣대는 유독 여성들만을 향해 날을 벼리고 있다. 여성의 신체를 부위별로 나누어 평가하고 여성들로 하여금 파편화된 여성상에 다가가도록 한다. 미의 기준에서 벗어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징벌은 가혹하다. (온갖 매체에서 미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연예인들이 외모로 인해 굴욕을 겪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그 상황은 분명히 유도된 것이다) 이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여성혐오의 일종이다. ‘몸을 지배하는 여성혐오속에서 여성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한다. 외모 꾸미기가 하나의 생존 전략이 된 셈이다.

 

    ‘몸을 지배하는 여성혐오의 대표적인 예시로 지난 회차에서 이야기했던 살찜 혐오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몸을 지배하는 여성혐오를 짚으며 마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다이어트의 성정치를 절반만 알고 넘어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번 회차에서는 마름 혐오’(Skinny Shaming)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 마른 거 그거 완전 좋은 거 아니냐?’, ‘마른 걸 누가 혐오해?’라고 생각했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마른여자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법

 

    난 168cm 45kg의 여자이다. 원래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이라 딱히 운동하지 않아도 항상 이와 비슷한 몸무게를 유지한다.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살찔 걱정 없어서 좋겠다며 축복받은 체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의 삶은 몸무게에 대한 압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쭉 강박증을 가지고 살아왔다. 중고등학생 시절, 폐쇄적인 또래 집단 안에서 우리들은 서로에게 외모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내 몸이 평균보다 말랐기 때문에 항상 나는 마른 애로 분류되었고, 때때로 내 이름이 아닌 몇 반 마른 애로 불리곤 했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지 하나하나 나의 마른 몸과 연관 지어 그러니까 살이 안 찌는 거야’, ‘병원에 가봐’, ‘한약을 먹어봐등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일부 몰지각한 아이들은 걱정해준답시고 밥을 입에 쑤셔 넣기도 했다. 폭언을 일삼는 이도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해골 같다’, ‘왜 이렇게 삐쩍 말라 비틀어졌냐’, ‘환자 같다는 식의, 듣기만 해도 기분 나빠지는 말들을 툭툭 내뱉던 아이들이 아직도 기억난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너는 내 옆에 서지 말라며 밀어내 무안할 때가 있다. 나를 두고 자신의 몸매와 비교하면서 우울해 하는 친구들도 많다. 내가 딱히 노력해서 마른 것도 아니고 유전적으로 살이 안 붙는 체질일 뿐인데 나에게 체형 유지 방법이나 식습관에 관해 물어보니 해줄 말이 없다. 원래 살이 안 붙는 체질이라고 대답했을 때 혼자만 알려고 하냐’, ‘치사하다는 반응이 돌아오면 난감하다. 이렇게 부러움 당하는상황에서 나는 굉장히 애매한 위치가 되어 버린다. 정작 나는 다이어트를 해보는 게 소원일 정도로 마른 몸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는데, 친구들이 나에게 너는 다이어트 안 해도 되니까 좋겠다는 말을 할 때면 내 몸에 대한 발언권을 빼앗긴 느낌이 들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Body Shaming(타인의 몸매를 비웃거나 비난하면서 수치심을 주는 행위[각주:1], 이하 바디 셰이밍)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여전히 나에게 너무 말랐다’, ‘살 좀 쪄라’, ‘밥 좀 먹어’, ‘혹시 다이어트하세요?’ 따위의 말로 운을 띄우는 이들이 있다. 23년째 듣다 보니 이제는 인사치레구나 할 정도로 익숙해졌을 뿐이다. 10대 때의 바디 셰이밍과 차이점이 있다면 성인이 된 후의 바디 셰이밍에는 남성에게 대상화되는 시선이 더해졌다는 점일 것이다. ‘이렇게 마르면 남자들이 안 좋아한다부터 너무 마르면 가슴이 작다는 성희롱 발언까지, 사회가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난 내 몸이 말랐다는 사실에 대해 크게 관심 두고 싶지도 않고 별로 자각하고 살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네가 지금 어떠어떠한 몸 상태입니다.’, ‘너의 몸매가 어떻습니다.’하고 각인시켜줘야 직성이 풀리는 것처럼 구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당당하게 말이다. 그들은 내 몸에 대해 평가할 자격이 없고 난 그들에게 내가 마른 이유에 관해 설명할 의무가 없다.

 

마름 혐오도 바디 셰이밍이야?

 

    바디 셰이밍 하면 보통 살찐 몸매를 향한 것을 떠올리게 된다. 마른 몸매를 향한 바디 셰이밍은 그와 약간 다르다. 마른 몸매를 향한 바디 셰이밍은 살찐 몸매를 향한 바디 셰이밍보다 더 당당하다. 보통 살찐 몸매를 가진 사람에게는 왜 이렇게 뚱뚱하냐’, ‘살 좀 빼라고 대놓고 말하지 않는데 마른 몸매를 가진 사람에게는 너 왜 이렇게 말랐냐’, ‘살 좀 쪄라하는 식의 직접적인 지적이 거침없이 쏟아진다. 전자와 후자 모두 상대방의 몸매를 평가하는 행위이고 무례한 지적인 건 마찬가지인데, 후자의 경우 실례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아가서 본인이 하는 이야기가 칭찬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마름 혐오가 상대적으로 덜 가시화되었기 때문이다. 마른 몸매를 가진 사람들은 자랑질이라는 오명 아래 바디 셰이밍을 바디 셰이밍이라고 말할 발언권조차 박탈당한다. 전시할 기회를 빼앗겼기 때문에 마름 혐오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말라서 더 쉽다.

 

뚱뚱하면 뚱뚱하다고 지X, 마르면 말랐다고 X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란 없다. 미의 기준은 매우 모호하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속에서 획일화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신체를 못생겼다고 평가한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징과 상관없이 획일화된 기준에 다가가기 위해 약품, 수술 등 인공적인 방법이 동원된다. 외모 꾸미기 비용은 마치 세금처럼 여성들에게 부과된다. 병든 사회가 개인에게 외모지상주의라는 강박증을 뒤집어씌우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살과 뼈를 깎게 한다.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틀을 무분별하게 소비하고 대상화시키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이 개개인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끼친다. 여성의 신체를 부위별로 조각내고 상품화하여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환상의 틀을 만들고, 경쟁적으로 이 이미지에 부위별로 가까워지길 강요한다. 이런 사회에서 설리는 예쁘지만, 키가 너무 큰 여자고, 설현은 예쁘지만, 너무 까무잡잡한 여자다. 여성의 외모는 항상 흠결사항으로 읽혀, 그 여성이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남성의 외모가 항상 장점 혹은 매력으로 읽히는 것과 대조된다.)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에 준하는 여성이 존재할까? 나는 없다고 확신한다. 아름다움, 나아가 미의 신화 자체가 여성을 구속하기 위해 만들어진, 실존하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에서 모든 사회가 여성에게 어떤 이상적 아름다움을 고취시켜 왔지만, 그 목적이 다수를 배제하는 것에 있으므로 이상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다수가 그 이상에 다가서면 이상이 변화한다고 말했다. 또한, 나오미 울프는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에서 여성이 법적·물질적 장애를 돌파할수록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이미지는 더 엄격하고 무겁고 무자비하게 여성을 짓누른다고 말했다. 무너져가는 남성중심사회를 유지하고자 아름다움이 정치적 도구로써 이용됐다는 것이다. 파도처럼 잡히지 않는 아름다움에 다가가기 위해 스스로를 억압하는 여성은 계급화하기 쉬운, 다루기 쉬운 여자가 된다.

 

    ‘살찜 혐오이든, ‘마름 혐오이든 그 근본에는 여성혐오가 자리 잡고 있다. 마른 몸매를 선호하는 사회에 사는 내가 마름 혐오를 겪게 되는 이유는 내가 마름이라는 방식으로 아름다운 여성의 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살찜이라는 방식이든 마름이라는 방식이든 획일화된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교정의 대상, 곧 비난의 대상이 된다. 어떤 길로 탈선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너무 뚱뚱한 사람 혹은 너무 마른 사람만 남는다. 도달할 수 없는 기준을 정해 놓고 그 기준에 다가가라며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것, 그것이 미의 신화가 의도한 바이다.

 

페미니즘이 나에게 준 해답

 

    나에게 페미니즘이란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다 잡은 동아줄 같은 존재이다. 살기 위해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회가 살기 편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접해도 나처럼 절박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회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발 벗고 나서서 사회 구조를 분석할 수밖에 없는 게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페미니즘은 타자화된 내 몸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힘이다. 페미니즘을 통해 나의 몸과 삶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방향성을 찾았다. 마른 내 몸이 기형적인 게 아니라 사회가 기형적인 것이다. Shame을 주는 Shameless들을 족치자.

 

이 글은 Sarah 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야기를 공유해주신 Sarah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필자 소개

여태껏 내 손으로 덕질한 것 중에 페미니즘만큼 재밌는 게 있었나? 페미니즘에 강하게 치인 새내기 페미입니다.

 


  1. 출처: Oxforddictionaries.com [본문으로]

책 읽어주는 나나

제1호 「벨라 B.의 환상」


(출처 : 아마존프랑스)

레몽 장(1925-2012)은 단편집 『벨라. B의 환상』으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이자 교수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벨라. B의 환상』을 3호에 걸쳐서 살펴 볼 계획인데요. 오늘은 첫 번째 단편, 「벨라 B.의 환상」입니다.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던 즈음, 레몽 장은 엉뚱한 착상을 한다거나 신선한 자극을 안겨주는 작가로 평이 나있었습니다. 옮긴이의 말을 잠시 살펴볼까요? “우리 주변에서는 논리성을 저버린 일들이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 다만 우리들이 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뿐이다.” 맞아요. 이 이야기는 “논리성”을 저버린 이야기에요. 그렇다고 그 “논리성”이라는 것이 논리적이라고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엉뚱하고 신선하다고도 하는데요, 글쎄요, 무엇이 엉뚱한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무슨 말인지 궁금하시지요? 지금 바로 살펴봅시다.




<벨라 B.의 환상>


벨라는 어떤 불안을 느끼고 있는 한 소녀입니다. 오랜 증세 때문인지 그녀는 가냘프고 생기없이 초췌하기만 한데요. 그녀를 진단해야 하는 ‘나’는 그녀를 유심히 관찰합니다. 그러다 문득 벨라를 프로이트나 그로덱의 환자와 닮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의사이고, 그녀는 치료받아야 할 환자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자문하는데요. 그러면 ‘나’는 프로이트인건가요?


벨라는 “과육과 같이 도톰”한 입술과 “얇은 실크 블라우스 아래로 풍만하고 지나치리만큼 커보이는 가슴”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에 따르면 말이에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이게 참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벨라의 인품에서는 조심성이나 신중함이 두드러지는데, 왜 자꾸 “상당히 묵직한 이 두 개의 젖가슴”을 감추려고는 하지 않는 거냐고요.


그녀는 “거미 공포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미라는 것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벨라가 밤에 잠자리에 들 때만 그녀 위로 기어오르는 것인데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침대 발치 벽에 뚫린 구멍으로부터 나온다는데, 심지어 그 구멍조차 육안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벨라는 이를 잘 알고 거의 체념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거미들이 그녀의 성기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이를 벨라의 환상쯤으로 생각합니다. 주치의 페트렐 박사 또한 “성에 관계된 예민한 사안이 확실하다”며 정신과 상담을 받을 것을 조언하지요.


(출처 : 구글)


그리하여 벨라와 가족들은 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네메츠 교수를 만나게 됩니다. 네메츠 교수 또한 벨라의 케이스를 어린 소녀들이 가질 수 있는 전형적인 거미 혐오감, 혹은 공포증이라고 진단하며, 그 원인은 “성과 관련된 사항들”에 있다고 합니다. 그는 벨라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거미 이야기나 하는 이 어린 처녀가 이야기를 꾸며댈까 걱정스러웠답니다. 그래서 그녀의 가족들에게 어린 시절, 특히 벌레와 관련된 이야기가 없는지 묻습니다.


그런데 들어보니 벌레가 벨라를 괴롭혔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개미들이 벨라의 몸 위를 기어 다니면서 아랫배와 허벅지를 가로지르는 붉은 자국을 만들어낸 사건, 해변의 모래가 “절대로 안되는 곳”, “은밀한 장소”로 들어간다며 벨라가 불평하던 사건, 파리를 잡아 가두려고 유리컵을 사방에 탁탁 치던 벨라의 몸에 다음날 붉은 원 자국들이 생긴 사건(아마 파리가 벨라의 몸 위에 붙어댔던 모양입니다. 우리는 추측만 할 따름이지요.) 등. 물론 이번 거미 사건과 마찬가지로 벌레를 실제로 볼 수 있었던 사람은 벨라 뿐이었습니다.


(출처 : 구글)


네메츠 교수는 가족들의 증언에서 확신을 얻게 됩니다. 자신의 예측이 옳았던 것입니다. 더불어 그녀의 “야릇한 아름다움”, “묵직한 가슴”과 함께, “얌전하고 겸손하며 수줍”어하는 모습은 그로 하여금 어떠한 사명감까지 갖게 했다는데요. 심지어는 눈물이 북받칠 정도랍니다. 생전 가져본 적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나. 말하자면 ‘내가 그녀를 꼭 치료해 주겠다, 그녀의 치료를 나의 사명으로 삼겠다’라는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치료는 “정기적인 면담” 내지 “진정제” 처방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벨라의 증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벨라가 말하길, 그 거미들이 온 몸을 기어다닐 뿐만 아니라, 그녀를 물기라도 하는 것인지 온 몸에 붉은 자국이 넓게 퍼져나간다는 것인데요. 그 붉고 따가운 자국들은 점점 커지다가 마침내는 가운데가 거뭇거뭇하게 변하기까지 합니다. 이를 두고 네메츠 교수는 “심신상관적인 징후의 새로운 발현”이라며, 이를 미리 예고했던 본인의 선견지명에 감탄할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벨라의 증세는 악화되어가고 거뭇한 자국도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는 갑자기 가정환경을 탓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곳에서 벨라를 끌어내어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선, 그녀의 옷차림새부터 바꾸어야할 것 같습니다. “이 얇은 천과 레이스류, 그녀가 줄곧 입고 다니는 이 펑퍼짐한 치마들, 간들간들하게 이마 위로 길게 늘어진 머리, 팔목에 무겁게 늘어진 팔찌들, 그녀가 자주 바꿔 다는 귀고리, 브래지어, 어쩌면 그녀가 착용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코르셋”. 그녀를 “요즘의 젊은 처녀들”처럼 현대적인 여자로 바꾸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벨라는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만들려는 이 치료법을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결국에는 점점 “다른 여자”로 변해갔습니다. 팽팽히 부풀어 한가운데가 거뭇거뭇한 자국들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말이지요. 이제는 청바지도 입게 된 그녀에게 남은 것은, 때 지난 헤어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벨라는 이상하게도 유독 긴장하게 됩니다. 미용 중에도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어댄 탓에 결국 미용사 클라라의 면도칼에 살짝 베이게 되는데요. 하필이면 잔뜩 부어있던 피부가 베이게 됩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걸, 그 베인 상처에서부터 아주 작은 거미 세 마리가 튀어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다행인건 벨라가 이제는 회복했다고 합니다.



<누구의 환상일까?>


우리는 적어도 벨라의 케이스에선 프로이트주의적 진단이 패배한 것을 목격했습니다. 벨라의 환상이 아니라 정신분석학적 진단이야 말로 환상이었던 것이지요. 모두는 벨라의 증언이나 경험, 심지어 그 증거조차도 믿지 않았습니다. 다만 정신분석학을 믿을 뿐이었지요. 벨라의 목소리는 보기 좋게 묵살당하고, 그 고통에 있어서 타인일수밖에 없는 정신 분석학의 목소리에 의해서만 그녀의 병명이 진단되었습니다. 왜 세상은 벨라의 병이 신경증이라고 판단하였을까요? 왜 그녀의 일관된 증언을 믿지 않고, 그녀의 몸이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들을 무시하고 그녀가 겪었던 모든 일에서 오로지 정신분석의의 예측이 옳다는 것만을 보았을까요?


이 세계가 벨라에게는 ‘적응’하기 힘든 것임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거미들은 벨라의 몸을 자신들의 소유지로 삼은 듯 밤마다 그 위를 기어 다닐 뿐 아니라, 알집, 즉 자궁으로써 그녀의 몸을 취했지요. 사실 벨라는 사춘기 이전부터 외부세계의 물질이 그녀를 파고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벨라가 그녀의 성기와 관련하여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은, 그녀의 성이 이 세계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에 불편함을 가진다는 것과 무관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벨라의 질 속으로 파고드는 거미를 여성,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은밀히 침투해 지배하려 하는 세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남성 중심 세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그녀의 몸이 거미들이 기어다닐 수 있는 소유지, 즉 남성 세계의 소유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고, 자궁의 기능, 즉 여성의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확실히 벨라를 좀먹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벨라 만이 벌레를 포착할 수 있었던 이유도 추측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성립된 세계의 질서 속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적 지배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왜 요즘 한국에서도 여성의 몸, 섹슈얼리티에 대한 지배나 억압이 어디 있는지 전혀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프로 불편러’라는 말도 자주 사용되고요. 어쨌든 벨라의 신체를 넘어서 정신까지 이 세상에 적응시키고자 했던 것이 바로 정신분석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신분석학은 그녀의 경험을 일종의 판타지, 신경증, “성에 관계된 예민한 사안”으로 진단하여 궁극적으로 그녀를 거미를 볼 수 없는 다른 사람들처럼 현실에 눈멀게 하고자 하니까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없었던 것처럼, 벌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출처 : 구글)


거미는 벨라의 몸을 소유합니다. 바로 옆에서 정신분석학은 그녀의 목소리를 빼앗아버리고 병을 진단합니다. 프로이트주의는 임의로 그녀를 진단하였지요. 거미를 목격한다는 것, 즉 그녀의 몸에 대한 거미의 침투를 포착한다는 것만으로 그녀를 신경증 환자로 진단내렸습니다. 거미들은 적극적으로 벨라 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듯했고, 정신분석의는 벨라가 이 지배에 대해 적응하거나 또는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도왔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벨라의 “환상”으로부터 그녀를 자유롭게 해준 것은 정신분석학이 아니었지요. 한 미용사의 실수, 면도 컷이 벨라를 정신분석학적 진단으로부터 해방시켜준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남성의 지배에서 벗어난 세계로의 해방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정신분석학이 주장하는 신경증의 원인은 사실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자, 확실히 이 이야기는 “논리성”을 저버린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거미? 정신분석의? 아니면 둘 다? 설마 거미가 기어들어갈 수 있는 여성기를 벨라가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 않겠지요?



<프로이트에 대한 말말말>


(출처 : 구글)


“신프로이트주의적 수정주의를 가장 잘 특징짓는 용어는 아마 ‘적응’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에의 적응인가? 기초가 되는 가정은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 흑인, 또는 특별히 불운한 계층의 일원이면 어떠한가? 그들은 이중적으로 불운하다. 그들은 우리가 보아온 대로 특권을 가진 사람들에게조차 어렵고 불안정한 정상성을 획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그들의 가능성을 제한시키는 특수한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에 ‘적응’해야만 한다. 그들은 자기정의 또는 자기결정하려는 모든 시도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므로 마르쿠제의 관점에 있어서, 치료의 과정은 ‘체념의 과정’일 뿐이고, 건강과 신경증 간의 차이는 ‘체념의 정도와 효과’일 뿐이다.”

“프로이트는 여성해방론이 치유하려고 하는 것을 진단하는 사람에 불과했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정신분석은 가부장제 사회를 ‘위한’ 추천이 아니라, 하나의 가부장제 사회‘의’ 분석이다.”

-줄리엣 미첼


“정신분석학은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는 진실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


“만일 당신의 신경질적으로 비참한 기분을 우리가 치료를 통해서 일상적인 불행으로 변형시키는 일에 성공한다면 많은 것이 얻어질 것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참고문헌>


레몽 장, 이인철 옮김, 『오페라 택시, 세계사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김예숙 옮김, 성의 변증법, 풀빛

시몬느 드 보부아르, 이희영 옮김, 제2의 성, 동서문화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정신분석세미나팀, 페미니스트 정신분석이론가들, 여이연

위키페디아 프랑스, https://fr.wikipedia.org/wiki/Raymond_Jean






나나

“사내아이를 낳아야 했어, 그래야 그럭저럭 살아 나가기 쉽고, 이 파리에서 수많은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야.”

내가 태어난 날 우리 엄마가 나를 보고 되뇌었어요.

(출처 : 구글)


3. 치열한 입시를 치르고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캠퍼스를 밟는 때이다. 새내기 A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첫 강의를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이게 무슨 일인가. 강의계획서를 꼼꼼히 읽고 고른 대학 강의의 교수는 강단에 서서 여학생들이 칠칠맞은 남학생들의 뒷바라지를 잘 해주라고 발언한다. 손을 들고 교수의 발언을 제지하는 학생들은 아무도 없다.

피곤한 마음에 과방에서 조금 쉬려고 했더니 소파는 이미 만원이다. 의자에 앉아 엎드리려는데 여자 선배가 조용히 불러내 속삭인다. ‘과방에서 쉬는 건 위험하니 여학생 휴게실에 가봐라는 조언이다. 무엇이 위험한지 새내기 A는 어안이 벙벙하다.

신나는 개강 총회. 새내기 A는 총회를 진행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과 학생회장도, 과대도 전부 남자인데 부학생회장과 부과대는 여자다. 바쁘게 움직이는 학생회 구성원의 성비를 보고도 동기들은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대표는 남자가, 부대표는 여자가맡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분위기에 새내기 A는 더더욱 이상한 기분이 든다.

뒤풀이 술자리에서 A는 선배들이 가르쳐주는 각종 애교스런 벌칙과 게임을 한다. 여자들에게는 귀엽거나 섹시한 버전의 FM을 가르치고, 남자 선배들은 작년 MT에서 했던 여장 사진을 보여준다. 게이샷레즈샷을 신명나게 외치는 뒤풀이 자리에서 A는 점점 불편한 자신이 유난스러운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뒤풀이 장소를 뛰쳐나온 A. A를 위한 장소는 어디에 있을까?

 

불편한 A를 위한 자리를 월간 여기에서 마련했다. 기대를 안고 입학한 나의 학교, 나의 학과에서 벌어지는 여성혐오 발언에 벌써부터 지친 새내기 페미니스트들을 한 자리에 모셨다. 입시부터 입학식, 학생회와 교수를 아우르는 17학번 새내기 여대생 페미니스트들의 시원한 우리 학교 뒷담을 들어보자.



 

(출처 : 구글)

6차 여대회담 :

갓 입학한 새내기 여대생 페미니스트가경악!

- 새내기 페미가 말하는 우리 학교는 여혐러

회담 진행 : 광개토

 

 

Q.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dare: 17학번 21살 성공회대 영어학과 학생이다. 지금은 과대표 활동을 하고 있다. 학교 친구들에게 자기소개하면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는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상태이다.

가명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dare로 했다. dare는 사전적으로 감히 ~하다, ~할 엄두나 용기 내다라는 뜻이다.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뒤에 예전의 나였더라면 눈치 보느라 못 했을 것들이나 말들을 전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 예전이면 ‘how dare?’ 했을 일들을 나는 지금 그냥 한다.

-john: 한세대학교 17학번 미디어광고학과 학생이다.

-청온: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17학번 신입생이다.

 


Q.언제, 어떤 계기로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했는가?


-광개토: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언제 어떤 계기로 페미니스트로 정체화 했는지 궁금하다.

 

-청온: 중학교 1학년 때 키도 작고 통통하고 안경을 쓴 소심한 아이였다. 남자아이들이 너는 여자인데 왜 꾸미지도 않냐고 외모를 가지고 많이 놀렸다. 여자는 왜 예뻐야 하는지, 왜 내가 외모로 놀림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맘고생을 하는 과정에서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라는 책을 읽고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책을 읽고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겠다고 확실히 깨달은 것 같다.

 

-dare: 나는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갈 때 정체화했다. 전에는 소위 말하는 여자 마초였다. 종종 나는 그런 애들이랑 다르다고 말하곤 했다.

부모님 두 분 다 흡연을 하시는데 아빠는 밖에서 담배 피운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만, 엄마는 친구들 사이에서가 아니면 담배를 피우지 못했다. 엄마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여자가 밖에서 담배 피우면 안 좋게 본다.”고 하셨다. 그 대답이 너무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마침 메갈리아가 화제였다. 페미니스트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메갈리아의 지향점이나 그들이 선택한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날 소위 말하는 셀프 코르셋을 다 풀어 던지게 되었다. 내가 스스로를 압박하던 게 사회적인 이유도 있었구나, 나부터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john: 이 중에서 제일 늦게 정체화한 편이다. 원래 여성학이나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여성가족부에 대한 안 좋은 편견들도 있고 나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방탄소년단의 팬인데, 3 후반 즈음 트위터에서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을 접하게 됐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후 재수를 시작하면서 기독교 기숙학원에 들어가게 됐는데 여성혐오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지식이 조금 있는 상태여서 (여성혐오 분위기에) 저항하기 위해 새끼 페미라고 불릴만한 짓을 많이 했다. 애매하게 싸우다 망해서 나 페미니스트해도 되나?’ 고민하기도 했다.

수능이 다가오면서 입시 때문에 심적으로 힘들 때 내가 행복해지려면 페미니스트가 돼야겠다고 생각하고 정체화하기 시작했다. 사실 페미니스트가 된 지 1년도 안 된 셈이다.

 


Q.대학 입시 준비를 하면서 겪었던 성차별이 있는가? 


-광개토: 회담자들 모두 본격적인 입시 전에 페미니스트로 정체화를 했다. 입시 과정에서 겪은 성차별이 있나?

 

-dare: 너무너무 많았다. 재수를 하면서 수학을 포기했었다. 수학을 포기하니까 여대를 준비해야 했는데, 여대를 준비하겠다고 아빠에게 말하자 제일 먼저 돌아온 말이 '여대 가면 안 돼.'였다. ‘여대 가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아진다’, ‘여자는 기가 세기 때문에 가서 치인다’, ‘여자들이랑 같이 있으면 너도 그렇게 된다’. 뭐가 그렇게 된다는 것인가?

그래서 아빠가 정한 마지노선이 이화여대, 숙명여대였다. 이화여대, 숙명여대까지는 허락을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나는 입학할 성적도 안 되는데 왜 (대학이 아닌 아빠가) 허락해주지? (웃음)

성적이 되는 서울여대를 가겠다고 하니 제일 먼저 '육사'가 돌아왔다. '육군사관학교와 놀고먹기 때문에 서울여대 이미지가 안 좋다.', '육사 사귀겠네? 군인이 얼마나 더럽게 노는데.', '너도 그렇게 변할 것이다.' (광개토: 다 미래형이다. 왜 앞날을 점치는가?) 집안에 유리구슬이 있는가 보다. 나도 모르는. (웃음)

나는 이해가 안 됐다. '여대를 나오면 시야가 좁아진다.' 이거는 어쩌라고? 싶었고, '서울여대'라는 여대가 다른 공학 대학에 의해 평가받고 있지 않나. 서울여대가 얼마나 아웃풋을 냈다, 이것도 아니고. 그 옆에 육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고 있었다여대에 대한 이상한 편견이 너무 많고, 나한테 너도 직접적으로 변할 거라고 말하니까 대답할 가치가 없었다. 근거가 있는 말도 아니고, 남성의 시각에서 본 기준이다. 어이가 없던 입시준비 기간이었다.




여대에 대한 편견은 당분간 계속될 듯 하다.

여자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말하는 여대 편견은 

<월간 여기>의 제1차 여대회담 : '너 여대 티나'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 http://weolganyeogi.tistory.com/21

(출처 : 구글)


 

-청온: 이건 친구의 이야기다. 음대를 지망하는 학생이었는데 개인지도 선생님이 있었다. 그분도 여자였는데, '음악으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으니 잘 나가는 남자를 한 명 잡아서, 결혼을 하는 게 낫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친구가) 그래야겠다. 관리를 잘해야겠다고 나에게 말하더라.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사회적으로 아직도 남자에게 여자가 종속되어있다는 인식이 많다.

 

-dare: 내 친구는 문·이과 전체 1등이었다. 지금 서울대 경제학부를 다니는데, ·이과를 고민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이과 가지 마라'였다. 그 친구는 이과로 가고 싶어 했다. 그 친구의 부모님은 이과에 진학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의 공간지각능력이나 수학적 능력이 더 떨어지기 때문에 지금은 1등을 해도 2, 3학년 때 남자애들이 어떻게 치고 올라올지 모른다, 이과에 가면 남자애들에게 치여서 서울대 진학을 못 할 것이다'라며 말렸다. 남학생들과 성적이 월등히 차이가 났는데도!

나중에 그 친구가 서울대를 쓸지, 다른 데를 쓸지 고민했다. 주변에서는 교대를 쓰라고 권했다. 교사 될 마음이 없는데 왜 교대를 추천하냐 물어보니, '결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서는 교대를 가서 너의 시간을 가정에 할애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단다. 어른들의 눈에는 이 친구의 미래에 결혼을 하고 육아를 담당한단 전제가 깔려있던 것이다.

'결혼도 육아도 안 할 건데요.'라고 말하자 '그게 네 말처럼 되느냐?', '그렇게 말하는 애들이 꼭 시집 빨리 간다.'는 말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 친구는 결국 자기 뜻대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갔지만,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청온: 어른들이 왜 미래를 말하는가?

-john: 내 미래에는 아이돌 밖에 없는데. (모두 웃음)

 



치열한 입시를 견디기도 바쁜데 여자들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여성혐오도 함께 견뎌야만 한다.

(출처 : 구글)




-john : 입시 당시 여대를 희망했는데 여대를 희망한다고 말하면, 왜 여대를 희망하냐고 물어보더라. 공학이랑 똑같은 이유로 여대를 희망할 수도 있는데.

나는 서울여대 국어국문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국어국문과와 문예창작학과가 함께 있는 대학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서울여대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하면 '남자에게 상처를 받았냐', '남자를 싫어하냐'는 질문으로 무조건 이어졌다. 여고 출신인데, '여고·여대를 가면 좀 그렇지 않냐'는 얘기도 들었다.

기숙학원에서는 예배를 드렸다. 한번은 목사님이 성경을 인용하면서, ‘여자랑 남자가 사귀면 남자는 원래 스킨십을 끝까지 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남자가 끝까지 가고 싶어 해도 여자는 허락하면 안 된다. 그러면 순결을 지킬 수 없다라고 말했다. 졸음을 참아가며 새벽 5시 반에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참을 수 없어서 조용한 예배 시간에 문을 소리 나게 박차고 나갔다. 서러워서 눈물이 펑펑 나고, 재수하기도 싫었는데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가 싶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다. 기숙학원 사람들에게 말하면 내가 목사님을 욕했다고 반드시 말이 돌 게 뻔했다. 그때 다른 여자선생님이 나와서 위로랍시고 '성차별이 그렇게 심한 목사님은 아니지 않느냐. 성경을 기반으로 한 말이다.'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이게 제일 힘들었던 사건이었다.


 

Q.대학에 입학하기 전, 대학 혹은 대학 생활에 대해 가졌던 감정은 어땠나? (기대감, 불안함 등) 그런 감정이 든 이유는 무엇인가?

 

(출처 : 구글)


-광개토: 힘든 입시 과정을 겪었는데, 불안감보다는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는지 궁금하다.

 

-john: 기대감이 더 컸다. 불안감까지 생각하기엔 너무 슬펐다.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dare: 솔직히 원하는 대학교에 온 게 아니라 기대도 불안도 없었다. 앞으로 내가 어떤 바보 같은 애들을 만나 어떤 멍청한 소리를 들을지 예상됐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입시 준비하면서도 살 좀 빼라, 넌 갈수록 살이 찌냐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어차피 여기 있던 애들이 같이 대학갈 것 아닌가? 여기서 뽑힌 애들이 흩어져서 각 대학에 가겠구나, 그러면 난 이런 멍청한 애들을 무시하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단 생각밖에 없었다. 무뎌진 것 같다. 무뎌지면 안 되는데 말이다.

 

-광개토: john은 기대감만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john: (폐쇄적인) 기숙학원에서 지냈으니까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컸다. 대학에 가면 최소한 4년은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경우 연애보다는 대학 공부, 소모임에 대한 기대감이 정말 컸다.

 

-청온: 3 시절을 힘들게 보냈다. 아예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다. 부모님이 명문대 출신의 굉장히 보수적인 분들이셔서 어릴 때부터 자신들을 따라 명문대를 나와야 한다고 강요하셨다. 오히려 그런 압박감 때문에 대학에 가기 싫었고 공부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여성학과 프랑스 문화에 관심이 생겼다. 대학교에 가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공부했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불행했던 이유, 대학에 가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한다는 압박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학에서 자유롭게 지내고 싶어서 대학에 왔다. 지금은 동아리도 하고 행복하다. 엄마도 엄마가 보기에도 지금 넌 정말 행복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변하신 것 같다.

 


Q.대학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느낀 성차별은 무엇인가?


(출처 : 구글)


-광개토: 대체로 기대감이 컸던 듯하다. 그렇다면 이런 기대감을 깨뜨렸을 첫 번째로 느낀 성차별은 무엇인가?

 

-dare: '언니 남자친구 있어?'. 여자친구가 있을 수도 있는데! 여자에게는 남자친구 있어? 남자에게는 여자친구 있어?라고 당연하게 묻는다.

여자 둘이 손잡고 갈 수 있는데, '뭐냐? 너네 사귀냐?'라고 묻는다. (여기에 깔린 생각은) ‘당연히 너네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지이다. 그냥 놀리기 위해서 물어보는 그게 너무 기분 나쁜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대고 '. 우리 사귀어.' 라고 말하면 웃더라. 당연히 (퀴어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거 되게 거만한 게 아닌가. 자기가 뭔데 나를 퀴어가 아니라고 단정 짓는가. 퀴어 조롱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굉장히 조롱하는 말이었는데, 여자 선배가 남자에게 ', 술 한 잔 마셔라.'라고 하자 다른 남자 선배가 '이거 남자가 여자에게 하면 나중에 신고하고 성희롱이니 뭐니 하면서 범죄자로 몰아갈 수 있는 일'이라면서 '남자가 술을 잘 마실 거라는 거 이런 게 성차별이지, 이런 게 역차별'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여자 선배는 대꾸를 안 하고 다른 선배가 시끄럽다고 해서 일단 그 상황이 종료됐다.

OT 때 성교육시간이 있었다. 선배가 후배에게 말하면 안 되는 행동에 대한 교육 시간이었는데, '그런 것은 역차별일 수 있다.',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 남자더라. 왜냐하면 여자들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어서 무섭지만, (남자들은) 본인에게 일어날 일이 아니기 때문에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거다. 무슨 말만 하면 역차별이라더라.

 

-청온: 입학 후 숙대에 대한 페이스북 페이지를 돌아다니다가 '연대 응원가'를 보고 충격 받았다. ‘이대나 숙대 같은 여대생들은 명문대의 여친이라는 내용의 가사였다. 지금은 21세기인데. 내가 가려는 이 대학교, 여대생이라는 지위가 이 정도였나? 싶더라.

-john: '하지 말아야지'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니 놀랍다. 생각해야하는 거 아닌가.

-dare: 인간이라면 말이다.

-청온: 엄마가 보시던 90년대 후반의 여성 잡지에 비슷한 가사가 있었는데, 그걸 아직도 부르다니 믿을 수 없다.




 


연세대학교 공식 페이스북 지난 210일에 올린 연대 응원가동영상 캡쳐.

문제가 된 응원곡 ‘Woo’

고대 못생겼어 / 일단 못생겼어 (중략) 이대한테 차이고 숙대한테 차이고 / 여기저기 차이고

라는 가사로 해당 학교에 다니는 여자 학생을 지우고 

여자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화했다는 점에서 여성혐오 지적을 받았다.

(2차 출처 : http://www.huffingtonpost.kr/2017/02/13/story_n_14716144.html)

 

 

Q.대학에 입학한 뒤 다양한 행사들을 겪었을 것이다.(OT, 입학식, 새내기캠프 등) 어떤 행사들을 겪었고, 그 행사들은 페미니스트인 나에게 어떻게 다가왔는가?

 

-john: OT에서 성교육을 했는데 00년대 초중반에 유행했던 뇌 구조 그림을 띄워 놓고, 남자는 여자랑 뇌 구조가 달라서 여자는 사랑해야 성욕이 생기지만 남자는 사랑을 하지 않아도 성욕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지?’ 싶었다. 그만 졸고 말았다. 조는 게 제일 고통스럽지 않은 방법이었다.




(출처 : 구글)



-john: 기독교 기반 학교라서 억지로 남녀를 엮는 일은 없었다. 술을 마실 때도 (술을) 마시지 않고 싶으면 부담 없이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여서 좋았는데, 섹시 댄스·애교 같은 술 게임 벌칙이 불편했다. 차라리 여자, 남자 모두 웃기게 혹은 모두 진지하게 하면 모르겠는데 남자 선배들이 할 때는 장난처럼 코믹하게 하고, 여자 선배들이 할 때는 진지하게 반응하니까 참기 어려웠다.

학교 분위기가 보수적이라서 축제 때 주점도 없고 다른 학교처럼 대놓고 여자를 대상화하고 희롱하는 건 드문 것 같다. (학교가) 젠더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런 게 아니라 기독교 기반이라 성적인 얘기 자체가 금지된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딱히 기분 좋지는 않다. 성적으로 자율적인 것 자체를 반대해서 퀴어, 여성학 동아리를 만들려고 하면 학교 자체에서 막을 것이다.

 

-dare: 우리 학교도 그런 분위기가 있다. 술 마시기 싫으면 마시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여자들에게만 과하게 많이 한다. 자기들은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여성들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애들이 꼭 양성평등한다.

 



연세대학교 제28대 총여학생회 'around'에서 제작한 성폭력사건 대응 매뉴얼

구체적인 고민이 엿보인다.

(출처 : https://www.facebook.com/ys.female.council/ )

 

 

-광개토: OT나 첫 MT에서 FM, AM, CM 등을 많이 시키지 않나? 이런 문화나 다른 성차별을 겪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청온: 여대라서 그런지 FM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시범을 보이고 선물을 줄 테니 도전해보라고 권유하는 식이었다.

 

-dare: 그런 것은 없었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처음 본 포스터가 RaIN(성공회대 퀴어 모임)의 회원을 모집한다는 포스터였고, 행사가 끝나고 숙소에 돌아오니 방마다 <페미들의 성교육> 책자가 뿌려져 있었다.

 

 


불꽃페미액션에서 진행한 페미들의 성교육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feministaction )

 

 

-dare: 과에서 주최한 새내기 배움터에서 처음에 선배가 후배에게 하면 안 될 행동을 상황극으로 배웠다. 5개 조로 나뉘어서 상황극을 보고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었다. 우리 조는 남자 선배가 여자 후배에게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어 1년 정도 되었다고 답하자 기분 나쁘게 웃는 내용의 상황극을 보았다. 굉장히 퀴어포빅하고 성희롱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에 후기를 말하는데 어떤 조에서 소위 말하는 젠더 이퀄리즘, 양성평등을 주장했다. 우리 과는 앞으로 양성평등을 지향하고 위계적 분위기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성별에 따른 인식차가 크다는 것을 느꼈다. 여성 조는 상황극 속 퀴어포빅한 점을 지적하고 다양한 문제들을 짚어냈지만, 남성 조는 퀴어포빅은커녕 말 그대로 양성평등을 주장했다.

 

 


페미위키의 '젠더 이퀄리즘 날조 사건' 항목

(출처 : https://femiwiki.com/w/%EC%A0%A0%EB%8D%94_%EC%9D%B4%ED%80%84%EB%A6%AC%EC%A6%98_%EB%82%A0%EC%A1%B0_%EC%82%AC%EA%B1%B4 )

 

 

Q.처음으로 수업을 고르고 대학 강의를 들어봤을 텐데, 직접 느낀 대학 강의의 젠더 감수성은 어느 정도인가? (강의 선택의 다양성, 강의계획서, 교수의 발언 등)

 

-청온: 수업시간에 여대의 단점을 물어보시더라. 한 학생이 (단점이) 없다고 말하니 계속 있다는 식으로 유도하는데 그 학생이 끝까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본인도 큰 단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님은) 남자가 없는 것이 단점이라는 식으로 답변을 유도했다. 남자는 여대 밖에서도 만날 수 있는 존재이며 단점을 결정짓는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dare: 젠더학이 3개가 열려 있었다. '젠더로 보는 문학', '젠더로 세상 보기', '여성·평화·생명'이었다. 강의 계획서를 보니 '젠더로 세상 보기'는 왜 지금까지 여성정치가나 여성 사관이 없었는지, 왜 사회적으로 그들을 압박했는지를 첫 수업부터 다루더라. '여성·평화·생명'은 지금까지 남자들에 의해 죽어 나간 여성들을 첫 수업에서 다루고 있었다.

나는 '젠더로 보는 문학'을 선택했는데, 교수님이 페미니스트가 아닌 거 같다. 그 교수님이 OT양성평등을 반대한다를 가지고 오셔서 기대감에 찼다. 그런데 수업 중에 하시는 말씀이, '나중에 싸움이 날수도 있는 주젠데 메갈리아에 대한 찬반을 논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메갈리아의 지향점과 그들의 방식에 찬반을 논하겠다고 말하더라. 이미 존재하는 그룹에 어떻게 찬성과 반대를 하고, 그들의 지향점에는 어떻게 반대를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교수님은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싶었던 것이라고 믿고 싶다.

 

 

실체가 없어도 너무너무 무서운 메갈리아.

이쯤 되면 죽은 메갈공명이 산 사마여혐러를 잡는다.

(출처 : 구글)

 

 

-dare: '말과 글'이라는 영어학과 필수 수업은 젠더로 보는 문학과 같은 교수님이 진행하신다. 이 교수님이 질문지를 나눠주셨다. 질문지를 기반으로 자기소개를 하라는 의도였다. 그런데 그 질문지 중에 '나는 이성 친구가 있다.'라는 워딩이 있었다. 젠더학을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이성 친구라는 워딩을 사용해도 되나? 애인의 대체어로 이성 친구를 쓴 것 같은데 너무 당황스러웠다. 처음에는 '남자 사람 친구', '여자 사람 친구' 이런 걸 말하는 거겠지 라고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친구들은 이미 '애인'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이성인 친구를 뜻하는) 의도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애인이라고 받아들이면 이미 실패한 게 아닌가. 나는 당연히 페미니스트겠지 싶어서 기대하고 들었는데 이성 친구를 논하고 있고 메갈에 찬반을 논하고 있고.

'Fun English'라는 수업도 있는데, 영어 교수님께서 여자 친구에게 말하는 게 'Do you have a boy friend?'이고, 남자 친구에게는 '- girl friend?'라고 물어봤다. 'ppt를 준비하는 건 여자들이 더 뛰어나서 여자 학생들에게 더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지금까지 보니까 남자들이 뛰어난 거 같다. 그런 면에서 남자 여자가 동등하게 경쟁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신다는 거다. 남자의 이성, 여자의 ppt 능력을 말하니 실망했고 답답했다. 지적하고 싶은데 지적도 못하고.

영어 발음 연습이라는 수업도 있는데 그 수업에서도 '보통 여자 친구들이 이런 건 더 많이 패스하죠. 여자에게 기대가 더 크다'라고 하시더라. '여자를 더 잘한다'라고 말하고 싶으셨던 거 같은데, 그것도 편견이지 않은가. 여자와 남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언제 젠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출처 : 구글)




-john: 우리 학교는 기독교 학교고 강의 다양성도 없다. 모든 강의와 강의 계획서를 봤는데 젠더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건 하나도 없다. 학교는 신학과가 엄청 크고, 실무 중심의 학과가 많다. 강의선택의 다양성은 전혀 없고 필수로 기독교 과목을 들어야 하는데, 완전 교회다.

아직 한 주밖에 안 됐고 OT 끝나고 오긴 했는데, 수업 만족도가 너무 낮다. 아직 입문이니까 기초적인 내용을 가르쳐준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공부가 아니라 실망했다. 일상적인 발화가 이분법적이고 헤테로 중심적인 것밖에 없다. 남자에게 주어진 잘생기고 멋진 특성, 여성에게 주어진 예쁘고 그런 특성을 강조한다. 과제를 해올 때도 '남자는 멋지게, 여자는 예쁘게 해오세요'라고 얘기한다. 시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다 비슷비슷한 시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남자애들이 윤동주 시인을 가져오면 '역시 남자라서' 그렇다고 하고, 여자가 꽃 이런 거 가져오면 '역시 여자라서 감성이.'이러더라. 이런 걸 하나하나 지적하기도 힘들어서 답답함만 매일매일 쌓여가고 대외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Q.대학 내에는 다양한 학생 모임들이 있다.(학생회, 소모임, 동아리, 자치 단체 등) 학생모임의 첫 인상은 어땠는가?

 

-광개토: 학생회, 소모임, 동아리, 자치 단체 등 다양한 학생 모임이 있을 텐데 혹시 가입한 모임이 있는가?

 

-청온: 두 모임에 가입했다. 하나는 S.F.A(숙명여대 여성학 중앙 동아리)인데 페미니즘에 대해 함께 의견을 공유하고 공부하는 동아리이다. 만족하고 있다. 다들 똑똑하셔서 나도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반성했다.

다른 하나는 신촌 연합 사회학회이다. 두 가지 세션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번 학기에는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한다. 오늘 면접을 보고 왔는데 거기는 여남 다 섞여 있고 지역도 다양해서 기대 중이다.

 

-dare: 내 첫인상은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해 처먹을 거 남자애들이 다 해 처먹는다는 것이었다. 정해진 규칙은 아니지만 모든 학생회, 동아리에서 회장 같은 중요한 자리는 남자가 차지하고 여자는 (부회장 같은) 보조 역할을 맡는다. 사실 이번에 과대를 하게 된 것도 (부과대로 지원했는데) 과대 지원자가 안 나와서 맡게 된 거다.

나중에 과대는 대부분 남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있는 곳만이라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대를 하면 후에 아 그때 여자 과대가 있었으니 여자가 (과대를) 해도 돼라는 말을 할 것이다. 선례를 남기고 분위기를 환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 구글)



-dare: 친구는 동아대 의대에 다니는데 그 학교는 무조건 장은 남자, 총무는 여자가 맡는다. 대범한 일은 남자가 잘할 수 있고 총무같이 꼼꼼한 일은 여자가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동아리도 장은 전부 남자가 맡아서 (여자 구성원들이 열심히 공연만하고) 마지막에 인사하며 박수 받는 건 전부 남자였다. 여자는 동아리의 부속품인가?

38일 여성의 날에 학교에 대자보가 붙었는데 누가 봐도 찢은 것 같은 자국이 있었다. 그 위에 다시 테이프를 붙였는데 나중에 또 뜯어졌다. 그걸 누가 에브리타임에 찍어서 올렸다. 학생들 중 몇몇은 바람이 너무 세서 찢어졌다고 우기기도 하고 대자보지 get it’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대자보가 맘에 안 들면 옆에 따로 대자보를 붙이지 왜 찢냐는 글이 올라오니까 누가 뗐다는 증거도 없는데 왜 보들보들?’이라는 댓글도 달렸다.

 

-광개토: 성공회대에서 38일 여성의 날에 행사를 했다고 들었는데 설명해줄 수 있나?

 

-dare: 전국 디바 협회, 펭귄 서포터즈등 여러 단체에서 모여 부스를 설치하고 (행사 취지를) 설명해주는 행사였다. 여자 학생들은 행사에 관심을 보이고 설명을 듣고 가곤 했는데 남학생들은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한 남학생이 페미니스트들은 인터넷에서 조용히 만나면 되지 굳이 밖에서 저러더라, 난 아무 생각 없었는데 저러니까 괜히 더 거부감 든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퀴어 페스티벌에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 (john: 너희도 집에서 여혐하면 되지 밖에서 왜 그러니?) (모두 웃음)

 

 

블리자드 사의 게임 오버워치의 한국인 여성 캐릭터 D.Va가 게임 내 미래의 한국에서 군인이자 게이머로 활동할 수 있도록 현재의 한국에서 성평등 운동을 하겠다는 취지로 움직이는 페미니스트 게이머 모임

(사이트 : https://national-dva-association.tumblr.com/post/156308195090/introduction-to-the-national-dva )

 

 


오버워치의 메인 디렉터 재프리 캐플런이 2017 DICE SUMIT에서 '전디협'을 직접 언급한 사건은

그동안 게임계에서 여성혐오에 목소리를 높혔던 페미니스트들 뿐 아니라 

한국에서 활동하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힘이 되었다.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재프리 캐플런이 '잘못' 알고 있다며 한탄하고 있지만.

(출처 : https://youtu.be/0zy_PObi5Jk )

 

 


펭귄프로젝트평등한 대학을 위한 3.30 펭귄들의 반란행사 포스터

펭귄프로젝트는 대학에서 겪을 수 있는 불편한 문화와 성폭력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과 대사의 제시를 통한 문제제기는 물론 이러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주체별, 상황별, 유형별 등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는 캠페인을 주도한다.

(페이스북 : https://m.facebook.com/pengminist/ )

 

 

 

-john: 한세대는 한숨뿐이다. 동아리 자체가 별로 없고 해외 선교 동아리 같은 기독교 관련 동아리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댄스 동아리, 흑인 음악 동아리 정도가 있는데 웃긴 게 랩은 다 남자가 하고 보컬은 여자가 하더라.

동아리에 대한 첫인상이 정말 안 좋았다. ‘방돌이라고 OT에서 동아리가 방마다 돌면서 동아리를 소개하고 세숫대야에 음료 및 술들을 마구잡이로 부어 정체 모를 음료를 만든 뒤 세숫대야에 가득 찬 술을 동아리 부원들끼리 돌아가며 마시는 문화가 있다. ‘방돌이를 직접 목격하고 내가 기안대에 왔나?’ 생각했다. 첫인상도 좋지 않았고 맘에 드는 동아리도 없었기 때문에 동아리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

다른 이야기지만 기숙사에 사는데 (룸메이트가) 다 선배다. 동아리를 만들 수는 없냐고 물었더니 동아리를 만든다고···? 몰라 그런 애는 지금까지 한 명도 못 봤어라고 하더라.

 

-광개토: 한세대 하면 반동성애 모임이 유명하다.

 

 

한세대 반동성애모임 트위터 계정

본 계정은 폭파되었으며 두 번째로 생성한 계정 역시 사람들의 신고로 삭제됐다.

(출처 : 구글)

 

 

-john: (합격하고) 트위터에 한세대를 검색했는데 그 모임이 상단에 떠서 충격 받았다. 사람들이 신고해서 계정이 없어졌는데 다시 만들었다. 이 계정 신고 좀 해달라고 홍보하고 다닌다. 직접 활동하는 건 못 봤지만 아마 본인들이 (반동성애 모임 활동 사실을) 밝힐 것 같다. 기본적으로 기독교에서 동성애를 배척하기 때문에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분위기이다. 페미니즘을 떠나 성적으로 자유로운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분위기이다. ‘호섹호스하지도 못한다. (섹스를 섹스라고 말하지도 못한다) 난 결혼 안 할 것이고 혼전순결 신경 안 쓴다고 하면 아웃사이더가 될지도 모른다.



Q.앞으로 4, 혹은 그보다 더 길어질 대학생활 중 대학생 페미니스트로서 꼭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가?

 

-청온: 나는 시위도 많이 참여하고 싶고, 외국인 학생들과도 페미니즘을 논하고 싶다. 우리 학교는 주변에 다른 학교가 없기 때문에 나만의 지도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있는 것도 행복하지만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더 나아가야 더 기억에 남을 것 같고, 공부도 더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한다.

 

-dare: 나는 개인적으로 여성학 소모임을 만들어서 동아리로 만든 후에 이 학교를 나가는 게 목표이다. 친구들은 대학에서 페미니스트임을 밝히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무시했다. 자기소개를 할 때 제일 처음 한 말이 '스물한 살 dare이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여성학에 관심이 많습니다.'였다. 그렇게 말하니까 나중에 몇몇 친구들이 나한테 찾아오더라. '언니 페미니스트야? 나도야. 나중에 그 책 읽고 재미있으면 나도 알려주면 안 돼?'라고 하더라. 다른 수업에서도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했는데 그 수업의 다른 친구도 페미니스트라고, 나도 아직 모른다고, 나중에 같이 연대했으면 좋겠다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페미니스트라고 말했을 뿐인데 주위에 연대할 사람이 자꾸 생겨나는 거다.

가끔 학교에서 페미니스트로서는 되게 외롭다고 느꼈는데 말한 뒤에 연대할 친구들이 생겨나니까, 지금 당장 논의하지 않아도 언젠가 논의할 친구가 생긴 게 되게 좋았다. 그런 기회를 다른 친구들에게도 열어주고 싶다. 페미니스트로 다녀도 외롭지 않고 연대할 사람이 있다는 걸 확고하게 애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소모임을 만들려고 두 명 정도를 포섭했다.




(출처 : 구글)

 


-john: 나도 소모임을 만들고 싶다. (여성주의 소모임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생각했는데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게 무섭다. 작년부터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면, 연대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게 아니라 "너는 원래 예민하니까."라고 했다. 그다음부터는 내가 맞는 말을 해도 너는 맞는 말을 하지만 예민한 사람이다.’, ‘너는 이런 쪽으로 많이 알고 있는 애니까 그렇게 생각하지만, 다수는 그렇지 않다.’라는 반응이 온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선입견이 날 공격한다. ‘너는 옳지만, 다수가 아니다. 너는 소수다.’ 이런 식으로. 과 단톡방을 봐도 페미니스트의 도 찾아볼 수 없고 또다른 선입견이 날 공격할까봐 (공개적으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지 못했다. 나는 (페미니즘 관련) 배지를 달고 다니니까 그걸 아는 사람들은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걸 알아보지 않을까?

지금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애들이 4명 정도 있는데, 할 수 있다면 그 친구들과 소모임을 하고 싶다. 그리고 외부 모임을 하고 싶다.

 


Q.후기

 

-dare: 영어학과니까 영어로 남기겠다. <Be bold for change> 이번 여성의 날에 구호처럼 쓰인 말이라고 한다. 변화에 대담해지라는 뜻이다. 우린 변화에 대담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비투비 여혐 공론화 파이팅! 비투비 사과해라. (john: 한남을 사랑한 페미니스트다)

 

-청온: 나도 팬질로 마무리를 하자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도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john: 이런 지성체에 속해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기쁘다. 대학 와서 이런 일을 하고 싶었다. 페미니스트들이 살아있는 걸 보면 너무 기쁘다. 3D로 여러분을 보는 게 행복하다. 계셔주셔서, 연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방탄소년단 여혐 그만 해라.


우남빻덕에게-이 목소리가 너에게 닿기를!

By.광개토女


 


빻았다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물론 여기서 말할 빻았다가 사전적 의미의 물기가 없는 것을 짓찧어서 가루로 만들다는 아니라는 걸, 꼭 헤비 인터넷 유저가 아니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외모를 비하하는 의미의 은어로 빻았다를 사용하고 있다.

빻았다가 인터넷 대중들 사이에 확산된 건 프로듀스 101가 방영된 이후다. 일부 사이트에서 출연진이자 프로듀스 101의 센터 멤버였던 최유정의 외모를 보고 빻유정이라는 별명으로 부른 것이 확산되어 일종의 밈이 되었고, 이후 여자 아이돌들의 이름이나 그룹명 앞에 외모를 조롱하는 의미의 을 붙이는 데 서슴없어졌다. 현재도 포털 사이트에 빻았다라는 동사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여자 아이돌의 이름이나 그룹명이 따라 붙는다.

걸그룹에 대한 공개적인 외모 조롱은 최근 있었던 걸그룹 우주소녀의 남자팬들, 소위 말하는 우남빻덕의 무례한 행동에서 정점을 찍었다. 스타쉽의 13인조 걸그룹 우주소녀는 지난 14일 세 번째 미니 앨범인 From. 우주소녀를 발표하고 타이틀 곡 너에게 닿기를로 활동했다. 몽환적인 이미지와 색감의 향연인 뮤비와 발랄한 멜로디의 타이틀 곡은 대중들에게 여러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219일에 있었던 대구 팬사인회에서 멤버 은서가 눈물을 터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사인을 받던 남자 팬이 외모를 비하할 목적으로 ‘(너와 닮은) 축구선수 즐라탄을 아냐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16년 8월 부산에서 있었던 우주소녀의 팬사인회 영상.

한 남성 팬이 멤버 은서에게 '즐라탄'을 아냐고 묻고 있다.

(출처 : https://youtu.be/O_r3ANMhmoY )




 

이는 우발적으로 행해진 장난이 아니었다. 28일에 업로드 된 이 영상에는 168월 부산에서 진행된 팬사인회에서 한 남성 팬이 축구선수 즐라탄을 아냐고 묻고, 은서가 누구냐고 되묻는 끝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담겨있다. 질문을 하자마자 행사장 곳곳에서 터지는 남자 팬들의 웃음소리는 팬덤 내에서 은서가 오랫동안 외모를 비하당해 왔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우주소녀 팬덤은 놀랍게도 두 의견으로 갈라졌다. 팬들을 만나는 장소인 팬사인회에서 운 은서가 프로답지 못하다는 비판이 인 것이다. ‘일부팬들은 본인들이 누리던 여성의 외모를 조롱하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한 채 은서가 예민하다’, ‘장난을 받아줄 줄 모른다등 엇나간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급기야는 그날인가보다라는, 여성의 의견을 묵살하기 위해 곧잘 사용되는 혐오성 짙은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우주소녀의 일부팬들의 발언을 지켜보던 다른 아이돌 팬들과 우주소녀 팬들은 이들에게 우주소녀 남자 팬들 빻았다라는 의미로 우남빻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걸그룹의 외모를 비하하기 위해 사용되던 빻았다가 남자 팬들의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짧은 생각, 가꾸지 않는 외관을 비하하기 위해 역으로 사용된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16년 3월 26일 대구 동성로 게릴라 콘서트에서

'심쿵빻파워'를 해달라는 팬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최유정의 모습.

연예인이라고 해서 외모비하적인 농담을 웃으며 받아주고 수용해야할까?

(출처 : https://youtu.be/fSKflH0m350 )


 



-’은 남자 아이돌의 이름 앞에는 붙지 않는다. 남자 아이돌 팬덤 대부분을 형성하는 여성 팬들은 빻았다라는 말이 외모를 조롱하는 의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난으로라도 외모를 조롱하는 일이 바람직하지 못하단 합의가 팬덤 내에 자리 잡고 있다. 남자 아이돌을 향한 빻았다는 음성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팬덤은 누군가 남자 아이돌에게 빻았다고 발언하면 교정을 넘어서 사이버 불링에 해당하는 린치를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여자 아이돌과 은 친하다. 앞서 언급한 최유정은 오프라인 행사에서 직접적으로 팬에게 빻았다에서 파생된 심쿵빻파워를 보여달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는 당시 최유정의 팬덤이 빻유정에 대항하려 선택한 방식이 빻음을 인정하고 귀여움이라는 의미로 단어를 희석시키는 정도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유정이 이후 본인의 외모에 낮은 자신감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장난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팬들은 계속 존재한다.







나무위키 '최유정' 항목 외모 파트

여전히 '못생겼다'는 외모비하가 장난이라고 주장한다.

(출처 : https://namu.wiki/w/%EC%B5%9C%EC%9C%A0%EC%A0%95 )

 





여자 아이돌이란 직접적으로 외모를 지적하고 네가 귀여워서 그런다고 얼버무릴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마치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를 괴롭히면 너를 좋아해서그러는 것이라고 여자아이를 되려 가르치려 드는 행태와 유사하다. 이런 젠더에 따른 차별을 인지한 몇몇 팬들은 운동적 차원에서 남자 아이돌을 향해 일부러 빻았다는 단어를 쓰길 고집하기도 한다.

아이돌 그룹과 팬 사이에는 항상 엎치락뒤치락하는 미묘한 권력구도가 존재한다. 팬들은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곤 하면서, 동시에 아이돌에게 무섭게 상품일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성 비율이 높은 팬덤을 가진 걸그룹과 팬덤 사이에서는 오직 팬덤이 우위인 구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프로듀스 101출연 당시 김세정의 남자 팬이 세정의 서포트 돈을 모금 받으면서 아이패드는 사주지 말자, 버릇이 나빠진다라고 발언했던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그가 진행한 서포트 물품 가격이 입금됐을 거라 예상하는 금액에 한참 못 미치자 서포트에 참여 했던 사람들이 해명을 요구했고, 일부 물품과 비용을 서포트 진행자가 횡령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이후 사과문에 나이도 자신과 비슷한 세정에게 많은 돈이 서포트 비용으로 입금 되는 것이 배가 아팠다고 전했다








당시 DC 김세정 갤러리에 올라왔던 글들

(위) 서포트 총대 (아래) 서포트 참여자이자 김세정의 팬




당시 모든 팬들을 분노케했던 총 350만원 어치의 서포트 물품 사진

(출처 : 구글 )





남자 아이돌 팬덤이 서로 어떤 비싸고 귀한 물건을 선물하는 지 경쟁하는 것과 달리, 여자 아이돌 팬덤은 아이돌의 필요와 기쁨보다 팬인 자신이 잘난 여성을 해체하는 기쁨을 더 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판매자와 소비자의 구도보다 젠더권력이 더 강력하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남성젠더에 더불어 소비자 권력까지 얻은 남성 팬들은 걸그룹에게 팬사인회나 공개방송 등에서 네가 나에게 잘 해주지 않으면 팬을 그만 두겠다는 협박을 수시로 가하고, 언어폭력이나 다름없는 모욕적 언사를 하고도 자신을 향해 웃어주길 요구한다. 자신이 가한 폭력은 그저 장난으로 얼버무리고 피해자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책임의 화살을 돌린다.

이런 젠더 폭력적 만족감을 구하는 남성의 모습은 아내를 폭행하는 남편의 모습과 유사하다. 경제력을 끊어버리겠다는 협박으로 아내를 구속하고, 아내에게서 성적 만족감을 얻는 동시에 폭력이 주는 우월감을 얻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자 아이돌은 자신의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재능을 판매하고 있을 뿐인데, 가정폭력과 유사한 폭력에 실제로 노출되고 있다.


 


걸그룹을 좋아하는 여성 팬들과 멤버들 사이에는 독특한 유대관계가 있다. 이 유대관계는 여덕(여자 팬)이 더 늘어야 한다는 소망에서 기인한다. 걸그룹 여성 팬들은 팬질을 위해 남성 팬들에게 번호를 달라거나 함께 식사를 하자는 추근거림부터 성희롱과 폭력을 감수하기도 한다. 많은 걸그룹 여성 팬들이 남성 팬들의 폭력에 질려 탈덕하기도 한다. 각종 행사에서 신체 및 외모비하, 행동교정, 조롱을 당하는 걸그룹 멤버들을 생각해보면 멤버들과 여성 팬 사이의 유대관계는 당연함을 넘어서 필수적인 여성연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남자들은 아이돌 팬질을 할 기쁨조차 누릴 수 없다는 말이냐!’는 볼멘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우남빻덕이 도래한 지금, 남성 팬들은 본인의 덕질 원동력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기쁨에서 오는지, ‘어리고 예쁜 여성을 비하하는 즐거움에서 오는지 돌이켜 볼 때이다. 물론, ‘일부빻은 남성 팬들에 한해서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세일러문 크리스탈과 오마이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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