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은 페미니즘, 외롭지 않은 덕질 ; 페미바순허브와의 인터뷰

By.광개토女



via.구글


 슬프게도, 페미니스트는 외롭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모두 웃을 때 홀로 웃지 못하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비유에 홀로 의문을 갖는다. 주변 사람들은 둔해지라고 말한다. 어떻게 둔해질 수 있단 말인가? 페미니즘을 안 이상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페미니스트인 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여성혐오가 숨 쉬듯 벌어지는 한국사회에서(지구에서?) 페미니스트는 다수일 때보다 소수일 때가 더 많고, 자주 혼자됨을 경험한다. 국립국어원은 외롭다라는 형용사를 홀로 되거나 의지할 곳 없이 쓸쓸하다고 설명했다. 국립국어원이 페미니스트에 대해 내린 정의인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보다 외롭다의 정의가 더 정확하게 페미니스트를 설명하는 것 같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에게 연대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거창한 목적과 행동의식을 가지고 모이지 않더라도, 홀로 싸우고 있는 게 아니란 걸 확인하면 개인은 더 강해진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거야라는 슬로건은 이런 페미니스트의 상황을 잘 말한다. 페미니스트는 모여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165월 등장한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을 시작으로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내 아이돌의 여성혐오 여부가 뜨거운 감자였다. 팬덤 내 젠더 감수성 상승은 콘텐츠의 변화로 이어졌다. 마마무의 소속사는 논란됐던 뮤비 데칼코마니를 유튜브 계정에서 내렸고, 빅스 라비는 자신의 솔로 앨범 타이틀 곡 뮤비 ‘BOMB’에 대해 사과했다



마마무의 소속사 RBW는 타이틀곡 '데칼코마니' 뮤비 속 데이트폭력 장면을 삭제하고 재업로드했다.

via.마마무

페미니스트들을 공격하던 팬들이 자기 아이돌의 책장에 맨박스가 꽂혀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빠지다가도, 팬덤 전반이 페미니즘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는 건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현 시점에서 아이돌 팬은 문화예술 소비자들 중 가장 활발히 페미니즘을 논의하고 있다. 지금도 페미니스트 팬들은 아이돌에게 페미니즘 서적을 서포트 하기 위해 모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공론화 과정에서 벌어진 페미니스트 팬을 향한 사이버불링과 오프라인 린치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알계와의 분투 속에서 홀연히 등장한 한 트위터 계정은 홀로 외롭게 싸우던 페미니스트 팬들에게 안정을 주었다. 저기에 가면 우리가 된다는 희망, ‘-한 페미-바순들의 안식처를 자칭하는 페미바순허브의 등장이었다.



페미바순허브 로고

via.페미바순허브


 ‘페미바순허브는 페미니스트 팬들이 정치 세력화할 온라인 기반을 제공함은 물론, 페미니스트 팬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었던 페미바순파티와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에서 가진 전국페미바순대집회까지 오프라인에서의 활동도 이어 나가고 있다. ‘페미바순허브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궁금하다. 과연 페미바순허브에서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수 있을까?

 



Q.‘페미바순허브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페미바순허브는 페미니스트 팬들을 연결하고 의견을 나누는 허브다. 페미니스트 팬들이 좋아하는 그룹/개인(아이돌, 배우, 모델 등)DM(direct message)으로 보내면 해당 그룹/개인 리스트에 등록한다. 리스트를 통해 페미니스트 팬들은 서로 친목을 도모할 수 있고, 좋아하는 장르의 여성혐오적 발언이나 그러한 콘텐츠를 지적·연대할 수 있다. ‘바순이 원하면 언제든지 새로운 리스트를 작성하며, 리스트에 등록하지 않아도 누구나 열람해 페미니스트인 팬들과 친해질 수 있다.

그밖에 새로운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이 생기거나 페미니스트 팬에 대한 사이버불링 등의 사건이 생기면 쉽게 연대할 수 있도록 리트윗을 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페바헙 파티’,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에서 주최한 페밋-테이블참가 등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허브가 실체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여러 활동을 기획, 진행 중에 있다.

 


Q.‘페미바순허브계정은 언제, 어떻게, 어떤 이유로 만들게 되었는가?

20164월부터 남자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여성혐오적 콘텐츠(가사, 공식 트위터 멘션)에 대한 피드백을 요구하는 운동을 했다. 167월 경,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로부터 여성혐오 콘텐츠를 지양하겠다는 내용의 공지를 공식적으로 받았다. 문제되는 트위터 멘션은 삭제하지 않은 점, 여전히 문제가 되었던 노래가사를 수정하지 않고 부른다는 점, 피드백을 동아일보에서 기사화한 이후 팬클럽에만 올렸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긍정적인 피드백이었다.



via.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란화 계정


1610, 방탄소년단의 컴백 트랙리스트가 공개되었고 ‘21세기소녀라는 제목의 노래를 확인했다. 제목을 보고 여성혐오적이라고 생각했다. 소녀를 대상화하고 있는 제목이라고 느꼈다. 이에 대해 개인 트위터 계정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아직 가사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너무 섣부른 것 아니냐, 왜 소녀가 여혐이냐, 팬 맞냐, 탈덕해라등등 욕설 섞인 다수의 멘션이었다. 그들과 일일이 싸우던 와중 나와 뜻을 같이하는 아이돌 팬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리트윗과 디엠으로 응원을 해주고 의견을 내는 등 같이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과 맞팔을 하고 트친소(트위터 친구 소개)를 대대적으로 했다. 서로 연결해주는 일만 세 시간 정도 하다 보니 아예 아이돌 팬 페미니스트 트친소 계정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은 아이돌 팬 트친소가 목적인 계정이었지만 배우, 모델 등 다양한 장르로 확장했고, 운영진을 추가 모집한 현재는 활동 영역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Q.‘페미바순허브계정을 운영하면서 겪은 사건들 중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최근에 페미바순허브의 이름에 들어가는 '바순'에 대한 논의가 의미 있었다. 페미'바순'허브 라는 이름으로 계정을 운영하면서 빠순이가 팬덤 외부에서는 멸칭으로 쓰이지 않느냐, 모든 젠더를 포괄하지 못하는 말이 아니냐라는 의견들이 나왔고 이에 대해 팔로워들(혹은 이 논의를 우연히 접한 사람들)과 페바헙을 태그하여 의견을 보내는 형식으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페미바순허브'에서 '바순'이란 용어를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여러 의견(위)과

'페미바순허브' 운영진의 입장(아래).

via.페미바순허브


운영진들은 팬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빠순'이라 호명하고 긍정적으로 전유함으로써 단어가 가진 비하를 전복할 수 있고, 여성형 단어인 '빠순'이 성별 상관없는 단어로 확장되는 데에도 의의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 의견에 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빠돌이'''가 바로 여성형 단어에서 젠더 상관없는 단어로 확장된 전례라며 충분히 '빠순' 또한 확장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논의에 참여하지 않은 분들도 페바헙이 던진 논의 주제를 통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논의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페미바순허브가 가진 공론장으로서의 가능성을 보기도 했다. 페미바순허브가 단순히 페미니스트인 팬들을 묶는 역할 뿐 아니라 공론을 열어줄 수도 있고 이들의 목소리를 퍼지게 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역할 가능성을 보았다.

 


Q.‘페미바순허브계정을 운영하면서 많은 애로사항을 겪었을 듯하다. 운영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

자금 문제가 크다. 무슨 행사를 하던 돈이 든다. 온라인에서 리트윗 이벤트를 하려고 해도 돈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 자금을 운영진이 부담하는 건 모순인 것 같다. 수익성이 있으면서 의미 있는 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콘텐츠는 무엇인지, 또 돈이 들지 않으면서 진행할 수 있는 이벤트는 무엇인지 계속해서 논의하고 있다.

또 개인들을 모아 놓은 허브이니만큼 페미니스트끼리도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은데 이걸 페미바순허브에서 어떤 식으로 조율하고 담론을 이끌어낼지, 또 트위터가 그런 일에 맞는 매체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페미바순파티 PPT 이미지

via.페미바순허브



Q.‘페미바순파티라는 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해 개최한 것으로 알고 있다. ‘페미바순파티를 개최한 이유는 무엇인가?

공론화 계정들이 하나 둘씩 목소리를 잃어 가고, 지속되는 사이버불링으로 인해 페미니스트 팬들이 위축되어 갈 때 파티를 하자고 생각했다. 단순히 온라인으로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우리가 연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서로 외롭게 싸워오던 분들이 많아서 다 같이 더 친해지고 그동안의 괴로움을 풀 기회를 만들기 위해 행사를 기획했다. 무엇보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았다.

 


Q.행사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행사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어땠는가?

페미니스트 빠순들만이 할 수 있는 게임이나 이벤트를 생각했다. 도착하는 순서대로 준비된 아이돌 이름표를 랜덤으로 뽑아 닉네임을 정했고, 조를 짜서 각 조마다 한명씩 나와 그 사람의 본진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맞추기 놀이를 했다. 그 다음은 한명씩 아이돌 춤을 추어서 해당 노래를 맞추기를 했다. ‘아이돌 혐오발언 어워즈는 행사의 백미였다



페미바순파티에서 개최한 '아이돌 혐오발언 어워즈' 각각 노래, 방송, 팬사랑 부문 후보에 올랐던 그룹과 혐오발언들.

이외에도 다양한 그룹들과 다양한(?) 혐오발언들이 후보에 올랐다. 

via.페미바순허브

방송, 노래, 팬 사랑 부문으로 나누어서 각 분야 혐오왕을 뽑았다. 참고로 1회 수상자는 인피니트이다. 생각보다 다들 긍정적인 평가를 주셨다.


 

Q.행사를 진행하면서 느낀 어려움이 있다면?

참가자를 신청 받는 과정에서 사이버불링 위협이 있었다. 파티 신청을 처음 받을 때 참가 희망자의 계정을 폼으로 신청 받고, 희망자에 한해 프로텍트 계정으로 초대해 다시 신청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 했음에도 불구하고 참가 희망 의사를 밝히신 분의 Ask(익명질문)계정에 오프에서 보자는 내용의 사이버불링 협박이 있었다


via.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사이버불링' 항목


당시 린지님 등 사이버불링에 대한 불안이 극에 달해 있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행사를 중단할지 고민이 많았다.[각주:1] 실제로도 파티 시작 전까지 참가자가 페미니스트인지확인하는 방식에 대해서 골머리를 앓았다. 한번 중단할 뻔한 뒤로 급하게 준비한 파티였기 때문에 예산 책정 부분이나 계획 부분이나 구멍이 좀 있었다. 다음 파티 때에는 조금 더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으면 한다.

 


Q.‘페미바순허브계정 운영진이 바라는 페미니스트-바순이 문화는?

아이돌 산업 내 여성혐오 이슈가 대두된 지는 꽤 시간이 지났고, 페바헙 팔로워가 2000명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도 늘었다. 다만 아직도 많은 바순들이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여성혐오에는 귀를 막아버리거나 이런 저런 핑계를 붙여가며 합리화 하는 등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면 싫어하는 아이돌이 여성혐오를 드러내면 눈에 불을 켜고 비판을 하기 바쁘다.



via.구글



'페미빠순판'의 내부자로 있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 이런 '선택적 페미니즘'을 하는 바순들을 볼 때이다. 나는 이 현상이 바순들이 본인과 가수를 동일시하고,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여성혐오로 비판받으면 마치 자기가 욕을 먹은 것처럼 가슴아파하고 상처받는다. 이 때문에 팬덤 내 사이버불링이 일어나기도 한다.

많이 걸어왔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이돌 팬들도 트위터라는 매체 속에서 여성혐오 이슈를 접하고 페미니즘을 배워가고 있다. 하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돌은 비판하지 못하는 선택적 페미니즘을 한다면 페미빠순들의 목소리는 억압받을 수밖에 없다. 팬들이 본인과 가수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좀 더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판단하여 페미빠순들의 목소리를 크게 해줬으면 좋겠다.

페미바순허브 트위터 계정의 헤더 이미지

via.페미바순허브



Q.‘페미바순허브계정의 앞으로의 운영 계획은?

그동안 페바헙은 조용히 페미빠순들을 연결해주고 연대하기만 하는 계정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초반과 다르게 굉장히 많은 페미빠순들이 페바헙을 팔로하고 페미빠순 리스트에 등록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필요성을 느낀다. '전국디바협회'가 다양한 온오프라인 활동을 통해 여성 페미니스트 게이머를 가시화한 것처럼 많은 페미빠순들이 모여 있는 허브에서도 페미니스트 팬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페스티벌인 페밋이 주관한 토크테이블 페밋-테이블에 참여한 것도 이런 생각의 일환이었다. 페밋-테이블 참여를 기점으로 기사를 기고하거나 페미바순파티2, 아이돌 팬 페미 스터디 등 여러 온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해 페미빠순을 가시화하고 고여 있는 물을 순환시키고 싶다.



※페미바순허브에서 제공한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페미바순허브에 있습니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NCT와 아이유입니다.  

 

  1. 샤이니 팬덤 내에서 혐오에 대해 지적한 팬(린지님)들을 사이버불링한 사건. ※참고 : 5.팬덤이 허락한 페미니즘 ;진정한 페미니스트를 찾아서 http://weolganyeogi.tistory.com/4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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