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족일까 코르셋일까

암탉

    ‘코덕이자 페미니스트로서 요즈음 고민하고 있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나는 조금 이르게 코덕에 입문한 편이다. 내가 초등학교~중학교에 다닐 무렵 뷰티 블로그붐이 불기 시작했다. 우연히 포털 사이트 메인에 뜬 뷰티 블로그 글을 보고 다양한 색의 화장품에 매혹됐다. 이후 적은 용돈을 모아 야금야금 화장품을 사 모으고, 메이크업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활동하며 즐거운 코덕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 (모든 페미니스트가 그렇듯) 그러던 어느 날, 불편한 부분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으로 도배된 광고 문구를 볼 때나 그런 화장은 남자들이 안 좋아해~” 따위의 말을 들을 때 설명할 수 없는 불쾌함을 느꼈다. 그 무렵 페미니즘을 접하게 됐다. 여성의 행동을 모두 남성을 위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 혹은 그래야 한다는 강요가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되자 정말 신기하게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페미니즘이 코덕 정체성에의 돌파구로 작용한 셈이다.

 

    믿었던 페미니즘이 발등 찍은 건 최근의 일이다. 아니, 사실 양심적으로 말하자면 코덕이자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한 그 순간부터 항상 맘 한 구석에서 나를 쿡쿡 찌르던 불편한 생각들이 있다. 내가 활동하는 메이크업 커뮤니티는 페미니즘적 성향을 띄고 있다. 여성만 가입할 수 있는 커뮤니티라 상대적으로 페미니즘 이야기를 나누기 자유로운 분위기다. 현실에서 겪은 성차별적 상황을 털어놓고 서로 위로하며, 서명 운동 링크를 공유하기도 하고, ‘남성을 위한 메이크업에 분노한다. 내가 정말 즐거워서,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화장한다는데 누가 참견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종종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자기표현을 위한 메이크업이라기엔 우리는 너무 똑같은 화장을 하고 있지 않나? , 얼굴을 자주 들여다봐야 하는 메이크업의 특성상 이목구비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정말 세세하다. 눈이나 얼굴 길이 등을 자로 재서 공유하기도 한다. 당연히 외모에 대한 강박적 집착 및 우울함을 호소하는 글도 많이 올라온다. 뷰티 유튜브를 볼 때도 그렇다. 화장으로 다크서클이나 여드름 자국을 가리지 않으면 예의가 없는 것이고, 화장 후 얼굴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며, 어느 정도 화장을 완성하면 빼먹지 않고 이제야 사람 같다고 한다. (여성의 민낯은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난 것인가?) 이제 여성들 사이에서 화장은 자기만족을 위한 행동이라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실제로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 심리적, 물리적으로 제약이 생긴다면 그걸 정말 자기만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엠티 가서 일부러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자는 친구들을 볼 때, 화장을 망친 날은 미묘하게 다운되는 나를 발견할 때 나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과 코덕으로서의 정체성이 충돌하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왜 민낯 공포증에 걸렸을까

    화장을 하지 않고 학교에 왔을 때 예의 없다며 주변에서 핀잔을 주는 친구들, 그 옆에서 모자를 꾹 눌러쓰고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죄스러워하는 민낯의 친구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민낯에 대한 거부감이 공포증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이건 포비아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한 것 같다. 사실 민낯으로 학교, 토익 학원에 간다고 해서 어떤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민낯 공포증을 앓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볼에 여드름이 나서? 안색이 창백해보여서? 이런 이유로는 설명할 수 없다. 문제는 훨씬 크고,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온 것 같다. 우리가 왜 우리의 민낯을 부끄럽다고 여기게 됐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출처: 미미박스)

 

    작년 119, 한 뷰티 소셜커머스 사이트에 올라온 유두 미백 크림 광고가 저급한 내용으로 논란이 되었다. ‘늑대들이 좋아하는 핑크빛 유두, 이렇게 될 수 있다면’, ‘진한 색상 유두 NO’ 따위의 문구를 내걸고 (전혀 궁금하지 않은) 여성 유두에 대한 남성 9명의 의견을 함께 게시한 것이다. 위 광고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해당 사이트는 결국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였다. 사실 이 광고를 처음 접했을 때 화나긴 했지만,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남성의 시선을 부각해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수치스럽게 여기도록 하는 방식은 화장품 업계의 유구한 광고 전략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손톱에 난 세로 결을 없애준다는 손톱 영양제 광고를 본 적이 있다. 3가지 종류로 구성된 해당 제품을 통해 꾸준히 손톱을 관리하면 손톱에 난 세로 결이 없어지고 여성여성한손이 된단다. 광고가 끝난 후 형용할 수 없는 회의감에 사로 잡혔다. 이제 손톱 결에도 신경 써야 하나? 광고를 보기 전까지 난 내 손톱에 세로로 결이 있는지도 몰랐다. 뷰티 업계가 우리의 몸을 토막 내어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와 닿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S라인, T, 헤어 라인, 수분부족형 지성 따위의 단어들은 사실 뷰티 업계에서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이런 단어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멀리서 몸을 보았을 때 몸매의 외곽선이 S모양인지, 얼굴의 중심의 T존이 입체적인지, 헤어 라인이 동그랗고 머리숱이 빽빽한지를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뷰티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고 기존 제품으로 승부하기엔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니, 원래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신체 부위까지 끌고 와 (자사의 제품을 이용해) 자사가 제시하는 정답에 자신을 끼워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시감을 느끼고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미디어의 도움을 받아 이는 곧 미의 기준으로 굳어진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여성들에게 자신의 신체를 부끄럽게 여기도록 종용하여 미의 기준을 전파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뷰티 업계는 항상 새로운 미의 기준을 제시한다. 그들이 지적하기 전까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혹은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별별 신체 부분에 아름다움의 가이드라인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여기에 미디어가 나서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것은 미의 기준으로 확정지어진다. 뷰티 업계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맞는 실제 사람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미디어는 가이드라인 안에 속한 이들에게 무결점, 여신 같은 온갖 찬사를 퍼붓는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평가의 시선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평가자의 위치에 서있는 남성의 시선을 빌려온다.) 혹은 가이드라인에 맞지 않는 사람을 데려와 인위적으로 가이드라인에 맞추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노력, 자기관리 따위의 미사어구로 아름답게 치장한다. (여성들이 말하는 자기관리의 범위가 외모 쪽으로 치중되어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사람들은 이쪽에 더 열렬한 반응을 보인다. 관념상으로만 존재했던 가이드라인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 즉시 자신과 비교하기 시작한다. 연예인 누구누구도 저렇게 노력하는데 나는 뭘까? 사실은 연예인 누구누구니까저렇게 하는 것인데 말이다. 화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뷰티 산업 및 미디어는 (화장 방법은 둘째 치고) 화장하지 않은 상태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라고 강요한다. ‘화장은 예절따위의 말을 동원하거나 화장 하지 않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노출시킨다. ‘민낯 공포증은 여기서 출발한다.

 


(출처: 알바노조, 한국일보)

 

    사회는 이를 착실히 받아들였다. 작년 3, 한 영화관 프랜차이즈에서 여성 직원에게만 더 엄격한 외모 꾸미기 규정(화장, 머리 모양, 의상 등)을 적용해왔던 것이 밝혀졌다. 실제로 해당 규정을 지키지 않을 시 꼬질이딱지(자신의 담당 구역을 청소하지 않거나 유니폼을 더럽게 관리하는 등 위생 관련 규정을 위반했을 때 부여되는 패널티)가 붙고, 벌점이 누적되어 임금 삭감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여성에게만 엄격한 외모 꾸미기 규정을 적용하는 곳은 위의 기업뿐만이 아니다. 작년, 한 글로벌 컨설팅 기업에서 하이힐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성 접수원을 해고했다가 항의 끝에 규정을 완화한 바 있다. 올해 초에는 한 증권사의 여성 직원 복장 규정이 도마 위에 올랐다. 여성 직원들은 사용해야 할 아이섀도우 숫자, 스타킹 색상까지 규정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남성 직원에 대해서는 노타이 정장, 콤비(혼합 정장) 금지 정도만 언급되어 있었다고 한다. 화장이 (인위적인 방법으로) 정말 예절’, 즉 규범이 된 것이다. 이쯤 되면 민낯 공포증을 하나의 방어 기제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

 




(출처: APA/FRANZ NEUMAYR, 한국일보)

 

    메르켈 총리와 스티브 잡스의 사진을 보자. 두 사람 모두 항상 비슷한 복장을 고수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반응은 전혀 다르다. 스티브 잡스의 경우, 옷 고르는 시간마저 아끼는 성실한 CEO의 대표적 사례로 항상 언급될뿐더러 패션 아이콘에 등극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의 경우 패션 테러리스트딱지에, 옷이 한 벌 뿐이냐는 비아냥을 받는 등 부정적 반응 일색이다.

 


A: 남자애들은 왜 화장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보이는 걸까?

B: 왜냐면 사회가 남자애들한테는 화장 안 하면 못 생겼다고 하지 않았거든.

(출처: Feminist Apparel)

 

    취업 포털 커리어에서 여성 직장인 422명을 대상으로 화장하는 이유에 대해 조사한 결과, 62.8%체면(품위) 유지를 이유로 꼽았다고 한다. 62.8%의 여성은 화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화장하지 않아서 예의없다는 잔소리를 들은 남성 직장인을 본 적 있는가? 화장을 못해서 모자를 눌러쓰고 등교하는 남학생을 본 적 있는가? 꾸미지 않을 수 있는 것도 권력이다. 남성들은 꾸미지 않아도 괜찮다. 꾸미지 않아도 생긴 그대로 인정받는다. 이게 권력이 아니면 무엇인가? 여성들에게도 직장에서, 학교에서 이런 권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민낯 공포증의 종말을 원한다.


그래서 뭐, 화장하지 말라고?

    난 정말 화장품을 좋아하고 화장하는 과정이 즐겁다. ‘코덕질은 하나의 취미 생활로써 내 삶의 작은 활력소가 되어준다. 하지만 나의 이런 취향이 형성되기까지 사회적 압박의 영향이 전무했느냐고 묻는다면 확답할 수 없다. 내가 즐기는 화장에 억압적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에게 화장이 정말 선택일 수 있을까? 화장을 통한 자기만족에 외모 경쟁력을 갖췄다는 안도감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화장을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 제도적 차별, 자유도의 부재에 대한 고민 없이 자발적 행동이라고 뭉뚱그려버리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 당장의 여성혐오적 발언(‘화장은 남자보라고 하는 거잖아~’)은 받아칠 수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또 다른 억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억압은 타인, 99%의 확률로 여성에게 적용될 것이다.

 

    화장하지 않는 사람만 자신감 넘치는 진정한 페미니스트고 화장하는 사람은 자신감 없는 반여성주의자라고 매도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는 여성에게 실체 없는 미의 기준을 실현하라 강요하는 여성혐오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화장은 가장 손쉬운 방어법이다. 완전한 자율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여성 개인을 탓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문제는 한쪽 성에게만 화장을 의무화했다는 것, 미디어와 뷰티 산업이 이에 발맞춰 여성을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정말 화장을 좋아해서 즐기는 것과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 위축되고 불이익 받는 것, 나아가 맨 얼굴을 택할 권리가 없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브라, 하이힐 등 여느 뷰티 아이템들이 그러했듯이 자유도의 문제다. 그래서, 코덕 동지로서 같이 고민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누가 화장 코르셋을 조이고 있고, 어떤 화장이 코르셋인지를 따질 것이 아니라 화장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나 억압적 성격을 인정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어떻게 전복해야 할지를 같이 고민해봐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정말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기표현으로서의 화장을 위해서 말이다.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필자소개

여태껏 내 손으로 덕질한 것 중에 페미니즘만큼 재밌는 게 있었나? 페미니즘에 강하게 치인 새내기 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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