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고백할 것이 하나 있다. 필자는 게임 문외한, 일명 겜알못이다. 오버워치를 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왜 하필 게임 컨텐츠를 맡았냐 하면 궁금한 게 있었기 때문이다. 오버워치가 왜 페미니즘의 아이콘처럼 자리 잡았는지 말이다.

 

 

2016년 한 해가 페미니즘 이슈로 뜨거웠듯, 오버워치를 중심으로 게임계에도 많은 페미니즘 이슈들이 대두되었다. 시간순으로 정리해보자. 일단 20165, 오버워치가 출시됐다. 이례적인 수준의 다양성을 가진 캐릭터들, 특히 한국 출신 프로게이머라는 설정의 D.Va가 큰 주목을 받았다.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618, 인벤 주관 넥서스 컵 8강전 오버워치 팀 아티즌과 디지니스의 경기가 있었다. 경기가 끝난 후 팀 디지니스 측은 팀 아티즌의 게구리선수에게 핵 사용 의혹을 제기했다. 게구리 선수가 여성임을 의식한 명백히 여성혐오적인 의혹 제기였다.[각주:1] 게구리 선수는 개인 플레이 화면을 공개하여 핵 의혹을 벗었지만, 상황을 지켜보던 여성 게이머들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던 여성 게이머들의 분노가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집단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는 11, 미래의 D.Va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조직된 페미니스트 게이머 모임 전국디바협회’(이하 전디협)가 그 시초였다고 본다. 전디협은 223, 오버워치의 메인 디렉터 제프 카플란의 찬사를 받기도 한다.

 

사실 오버워치도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많은 비판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캐릭터 설정의 경우, 타 게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뛰어난 것이지 절대적으로 훌륭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남성 캐릭터의 경우 왜소증 캐릭터도 있고(토르비욘), 뒤뚱대며 걸어야 할 정도로 과체중인 캐릭터도 있고(로드호그), 심지어 고릴라인 캐릭터(윈스턴)도 있다. 반면 여성 캐릭터들은 어떠한가? 아나는 프로필상 60세지만 주름을 제외하면 20대의 얼굴에 가깝다. 메이는 여성에게 비만이라는 특징을 부여한 전무후무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매우 훌륭하지만, 비현실적으로 잘록한 허리에 갸름한 얼굴형을 갖고 있다. 쫄쫄이의 저주에 걸린 트레이서, D.Va, 위도우 메이커는 말할 것도 없다. (모든 게임이 그렇겠지만) ‘일부 남성유저들의 성차별적 태도도 심각하다. ‘송희롱을 아는가? D.Va (송하나) 캐릭터를 일부러 늦게 죽여 리스폰을 꼬는 게임 방식을 말한다. 성희롱이라는 단어에 송하나의 성씨인 송을 붙여 송희롱이라고 부른다. ‘일부 남성유저들은 D.Va의 쓰러진 모습을 두고 강간을 암시하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유머로 소비하고 있다. 오버워치 내 성차별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이런 분위기에 저항하기 위해 유저들이 끊임없이 제재를 요구해왔지만, 제작진의 우유부단한 태도 탓에 별 소득은 없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지지 않나? 왜 오버워치가 여러 페미니즘 담론들 사이에서 한 자리 차지하는 묵직한 존재감을 갖게 됐을까? 왜 오버워치를 중심으로 여성 게이머들의 가시화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걸까? 왜 오버워치를 중심으로 여성 게이머들의 분노가 집단화되었을까? 페미니스트들은 왜 오버워치를 할까?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 게임할까? 대학생 여자들은 어떻게 게임하고 있을까? 그래서 모셨다. 여자 대학생 페미니스트 게이머들과 얘기해보자. 게임, 여성, 그리고 오버워치에 대해.


제7차 여대회담:

안녕 친구들? 옵치하는 여대생이 왔어!

회담 진행: 암탉

 

1.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감나무 : 전디협 회장 감나무다. 어른들이 넌 뭐 하고 있니하시면 취준생이라고 둘러대며 여러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중이다. 주변 친구들이 다 게임을 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게임을) 시작하게 됐다. 마비노기 처음 나왔을 때쯤, 게임계의 얼리어답터 같은 친구가 권해 마비노기를 시작으로 새 게임이 나오면 친구들과 하나하나 장르를 갈아타면서 계속 해왔다. 작년부터 스팀 게임에 입문했고 요즘은 시간이 없어서 폰 게임으로 욕구를 채우고 있다.

 

겜송이 : 숙명여대 교육학부에 다니고 있는 겜송이다. 유치원생 때부터 꾸준히 게임을 좋아해 왔다.

 

리리 : 단국대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어릴 땐 오프라인 게임을 했고 바람의 나라로 시작해 꾸준히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있다.

 

2. 게임 내에서 여성임을 밝히는 편인가?

 

감나무 : 절대 밝히지 않는다. 밝히지 않는다기보다 일부러 여자라고 먼저 말하지 않는 편이다. 게임을 하다가 여성으로 추정되면 그래서 어쩔 건데?’ 식으로 나가긴 하는데, 자진해서 여성임을 밝히지는 않는다. 일부러 닉네임도 남성스럽거나 무성적인 것으로 바꾸는 마당에 여성이라고 먼저 밝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겜송이 : 나는 말만 해도 다 여자인 걸 알더라. 그래서 욕을 먹으면 고소하기 쉽게 하려고 아예 실명과 학교를 닉네임에 밝히고 시작한다.

 

리리 : (여자라서 당하는 성희롱과 폭력적 언행이) 너무 괴로워서 아예 남자처럼 하고 다닌 적도 있다. 사이퍼즈를 할 때는 나를 남자로 아는 사람도 있었다. 오버워치에서는 보이스톡을 켜면 바로 아니까 혼자 게임할 때는 보이스톡을 잘 켜지 않는다. 이 회담을 위해 3일 정도 오버워치 하면서 보이스톡을 켜봤는데 게임에서 나갈 때 맥락 없이 메갈년소리를 들었다.

 


게임 내에서 여성임이 밝혀지면 듣게 되는 말들. 여성 게이머들에겐 이미 일상이 된 듯하다.

제발 게임 좀 하게 내버려 둬!

 

3. 대학 내에서 게임하는 여자임을 밝히는 편인가? 동기나 선후배의 반응은 어떠했나?

 

감나무: 주변에 친한 남자가 없어서 남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 친구들 같은 경우 감나무는 게임 좋아하잖아’, ‘너 게임하고 있었어?’, ‘게임 재미있게 해하고 넘어갔다.

 

겜송이: 게임 동아리 소속이라 주위에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게임한다고 하면 다들 무슨 게임하냐?’ 이런 반응이다. 동기나 선후배한테 말한 적은 없는데, 교수님께 동아리 지도 교수를 부탁드렸을 때, ‘무슨 여대생이 게임을 하냐는 반응을 보이셨다.

 

암탉: 어떤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계신지?

 

겜송이: E 스포츠 동아리로 롤, 하스스톤, 오버워치 세 게임을 중점으로 두고 여성 대회 혹은 기타 교류전을 진행하고 싶어서 만든 동아리이다.

 

암탉: 동아리 창설 계기가 궁금하다.

 

겜송이: 20153월쯤, 에브리타임이라는 학교 커뮤니티에서 우리 학교 게임하는 여자들끼리 뭉치면 좋겠다는 말이 나와서 구심점을 만들고자 창설하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동아리 운영이 쉽지는 않다. 대회에 나가자고 하면 남자들한테 질 텐데, 웃음거리가 되는 거 아닌가?’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더라.

 

리리: 나는 게임하는 여자임을 말하고 다녔는데, 신기하다는 듯이 보는 시선은 있었다. 여자애들은 관심이 없으니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남자애들은 랭크를 물어보곤 했다. 왜 물어보는지 알 것 같았다.

 

암탉: 여자 동기들은 게임에 관심이 없나? 접근도가 낮은 것인가?

 

리리: 동아리 내에는 게임하는 여자애들이 조금 있었는데, 파이널 판타지, MMO, AOS 장르를 주로 하고 FPS 장르는 잘 하지 않았다. 그래서 FPS 게임 한다고 하면 신기하게 보는 시선이 있었다.

 

3-1. 함께 게임을 한 적이 있는지?

 

감나무: 여중, 여고를 나왔는데 같이 지내던 친구들이 다 게임을 좋아해서 그 친구들과 지금까지 같이 게임하고 있다. 동기를 끌어들이려고 했었는데 나 그런 거 잘 못 한다고 지레 겁먹는 경우가 많아 설득하기 어려웠다.

 

겜송이: 게임 동아리에서 함께 게임을 하는데, 롤을 할 때 클랜으로 동아리, 학교명을 닉네임 옆에 달고 한다. 닉네임 옆에 숙명여대라고 뜨니까, ‘거기 보지팟이냐?’, ‘남자애들이 다 올려줬지?’, ’미팅할래?’, ‘나랑 소개팅할래?’, ‘전화번호 알려줄래?’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래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클랜을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리리: 주위 여자애들이 게임을 잘 안 해서 남자애들이랑 어쩔 수 없이 게임을 같이 했었다. 여자라고 시비 걸리면 당시에는 같이 욕을 해준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여성 유저를 보면 내가 들었던 성희롱 발언, 비하 발언을 똑같이 하더라.

 

3-2. 동기 및 선후배들과 게임 세계에서 벌어지는 여성주의 이슈에 대해 이야기해 본 경험이 있는가?

 

감나무: 마비노기를 할 때, 남자 유저가 껄떡대곤 했는데 그때는 페미니즘에 결부시켜서 생각하지 못했다. ‘저 사람 이상한 사람이다. 왜 그러지?’ 하면서 넘겨왔다.

 

암탉: 그런 경험들이 파편적으로 벌어지던 것인가?

 

감나무: 그렇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일을 겪는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냥 이상한 사람한테 걸렸다고 생각했다.

 

겜송이: 불편하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게임 동아리 내에서는 이런 얘기를 잘 하지 않지만, 오버워치 여성 클랜에서는 대화의 98%가 게임 속 성차별적 발언, 성희롱 발언에 관해 토로하는 것이다. (넥슨) 보이콧 사건에 관해서도 얘기했었다. 클랜 가입 동기를 보면, 대부분 남자들한테 지쳐서 들어왔다고 한다. 남자들이랑 게임하면 여왕벌이라는 소리를 듣고, 혼자 게임하면 남자들한테 성희롱, 비하발언을 들으니까 다들 지쳐있다. 클랜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암탉: 그런 피해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긴 하는데, 그걸 여성주의로 연결시키지는 않는 분위기인가? ‘페미니즘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 분위기인가?

 

겜송이: 페미니스트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다. 그분들이 성차별적 발언을 들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이야기해주신다. 알려주신 대로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막상 욕을 먹으면 울 것 같고 떨려서 대처를 잘 못 하겠더라.

 

리리: 학교 애들이랑 만든 단톡방에서 게임 얘기가 많이 나온다. 항상 여성주의 이슈는 일명 메갈 사건이라고 퉁쳐진다. 김자연 성우님 메갈리아 티셔츠 사건 같은 경우, 여자들이 먼저 나서서 메갈은 정신병자 집단이라고 말하더라. 남자애들은 여자애들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눈치 볼 것 없이 신나게 욕하고, ‘남혐 여혐 다 나쁘다고 한 마디씩 거들었다. 중립충, 여혐충들이 잘 버무려져 있는 상황이다. 끼어 들어볼까 생각도 해봤었는데, 지금은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 대학별 게임 대항전에 참여해 본 경험이 있는가?

 

겜송이 : 에카(ECCA)[각주:2]라는 대학교 게임 동아리 연합회에서 대항전을 연다. 그때 여성팀으로 많이 참여했다.

 

암탉 : 여대 대항전은 어땠나?

 

겜송이: 숙명여대, 이화여대, 성신여대, 서울여대 4팀으로 진행했다. ‘왜 이분들이 대학 대항전에 안 나왔지?’ 싶을 정도로 모두 게임을 잘했다. (나는) 오버워치 대항전에서 우승했다. 여대 대항전이 아닌 전체 대학별 게임 대항전은 주로 남자들이 활약한다. 여성 게임 대항전은 작은 이벤트 수준으로 취급한다. (대항전이) 아프리카TV에 중계됐었는데 채팅창엔 게임 실력이 아닌 얼굴 평가만 계속됐고 사회자는 이것만 보고 싶네요. 꽃처럼 아름다운 여성분들이 나와서~ 칙칙한 남자들은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너무 기분 나빴다.

 

암탉 : 혼성팀은 없나?

 

겜송이: 혼성팀은 (본 적) 없다. 점수가 객관적으로 높은데도 남자가 대신해줄 수도 있으니까 검증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배제된 경우도 있다. (그래서 혼성팀이 없는 것 같다.)

 

리리 : 게임 대항전은 참여해본 적 없지만, 액션 토너먼트[각주:3] 방청을 가본 적 있다. 거기서 여자 방청객이 카메라에 잡히면 외모 평가를 당한다.

 

감나무 : 대학은 아니고 오프라인 PC방 오버워치 대회에 참가했었다. 인상 깊었던 게 당시 우리 팀만 팀원 중 여자가 두 명 있었고 나머지는 다 남자였다. 팀장이 대전 상대를 제비뽑기로 뽑고, 부전승을 뽑은 팀은 자기가 상대할 팀을 직접 정할 수 있었는데 단번에 우리 팀을 골랐다. 왜 우리를 골랐는지 보이지 않는가? 오버워치 정식 오픈 전이라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여자가 있는 팀을 고른 건 속이 뻔한 선택이었다. 같은 팀이었던 남자가 내가 그럴 줄 알았다고 소리쳤다. (방송) 카메라도 우리 팀 남자들도 부담스럽다고 할 정도로 계속 나와 친구만 찍었다.

 

5. 많은 FPS 게임 중 오버워치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감나무 : 앞서 말했던 오프라인 오버워치 대회에서 팀장을 맡았던 친구가 오버워치를 개발 단계부터 기다려왔다. 일이 년 전부터 개발 영상을 보여주며 영업했었다. 그러다 그 친구가 메르시를 보여줬다. 나는 새를 좋아해서 날개만 붙어있으면 환장을 한다. 메르시가 날개 펼치고 날아다니는 걸 보니 너무 멋있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겜송이 : 원래 AOS 게임을 좋아해서 롤을 3년 했다. 오픈베타 쯤 남자친구가 ‘AOS인데 FPS인 게임이 거의 없는데 오버워치는 특이하다며 한 번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더라.

 

리리 : 처음에는 디바라는 한국인 캐릭터가 있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다. 디바 원챔으로 오래 했다.

 

암탉 : 오버워치를 계속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감나무 : 친구에게 영업당하고 나서 내가 영업을 하게 됐다. (예전부터) 같이 게임하는 중고등학교 친구들도 다 오버워치를 시작했다. 게임을 할 생각이 없더라도 연락이 오면 하게 된다.

 

겜송이 : 나는 무슨 게임을 하든 즐겁게 하기보다는 빡세게 해서 무언가를 남기자는 주의다. 롤을 할 때도 여성 대회를 나가려고 했는데 (팀원을) 못 구했다. 오버워치는 팀원을 구해서 꾸렸다. 그것 때문에 하는 것 같다. 이기고 싶다.

 

암탉 : 롤 대회에 나가고 싶었는데 사람을 못 구했나?

 

겜송이 : 대회에 나가려면 어느 정도의 실력이 되어야 하는데 롤은 안 되는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오버워치는 롤보다 잘하는 여성분들이 많다.

 

암탉 : 왜 그럴까?

 

겜송이 : 롤은 챔프가 너무 많아서 하다가 질려 하는 사람이 많다. 오버워치의 경우 롤보다 플레이 시간도 짧고 덜 질린다. FPS 게임 중에서 에임이 쉽기도 하다.

 

암탉 : 여자들은 챔프가 많거나, 플레이 시간이 길거나, 에임이 어려운 게임은 잘 못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겜송이 : 남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FPS 게임을 한다. 여자들은 보통 MMORPG 게임을 많이 한다. 어릴 때부터 FPS 게임을 해왔던 사람들은 남자보다 훨씬 잘한다. 플레이 시간이나 선호하는 게임 성향 차이인 것 같다.

 

감나무 : ‘여자는 이런 게임 못 해라는 사회적 편견이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 친구가 오버워치를 영업했을 때 (지금 내 실력은 보통인데도 불구하고) ‘FPS? 나 그런 거 못 해'라고 했었다. 막연하게 그건 남자애들이 많이 하는 거고 나(여자)는 왠지 못 할 것 같다라는 편견이 있다. 그것 때문에 남자들이 FPS 게임을 시작하는 것보다 (여자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더 높다. 롤은 앞서 말한 대로 (어려워서) 진입장벽이 높은데, 남자들은 못해도 남자라는 이유로 욕먹지는 않는다. 여자는 여자라는 이유로 욕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욕을 들으면서까지 게임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단 마음이 있는 거다.

 

리리 : 여자는 왜 게임을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생각해본 적 있다. 남자들은 친구 관계를 맺으려면 게임을 해야 한다. 좋든 싫든 어릴 때부터 게임을 시작하니 익숙한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반면 여자들은 사교활동에 (게임이) 필요하지 않다.

 

암탉 : 오버워치 캐릭터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계속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게임과 어떤 차이를 갖는다고 생각하는가?

 

오버워치의 영웅들. 다양성 측면에서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리리 : 사이퍼즈에는 늙은 여자가 없다. 프로필은 늙었으나 얼굴은 10대다. 오버워치에는 늙은 여자 캐릭터 아나가 있다. 아쉬운 건 늙은 할아버지 캐릭터 토르비욘은 배도 나오고 키도 작은 것에 비해 (아나는) 객관적으로 예쁘다는 점이다.

 

감나무 : 오버워치는 잘했다 싶은데 좀 아쉽고 아쉬운데 좀 잘 했다 싶은 느낌이라면, 다른 게임은 그냥 아쉽다. ‘잘했다가 없다. (메이는) 나름 뚱뚱하다고 만들었는데 진짜 뚱뚱하지는 않다. 동양인은 살이 찌면 얼굴부터 찌는데 메이는 얼굴이 너무 갸름하다. ‘우리 뚱뚱한 동양인 여성 캐릭터 만들었어라고 생색낼 수 있는 캐릭터다.

 

리리 : 그 뚱뚱함도 성적 대상화를 노린 뚱뚱함이다. 이번 신년 스킨에서도 허리가 과도하게 강조됐더라. 보고 놀랐다. 일반 스킨을 착용했을 때보다 허리도 가늘고 엉덩이도 크다. 모델링이 잘못된 거 아니냐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

 

암탉 : 보통 오버워치 캐릭터는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서든어택2’의 캐릭터와 비교된다.

 


서든어택2의 캐릭터 원화. 남성 캐릭터들은 온몸을 감싸는 전투복을 착용하고 있지만

여성 캐릭터들은 방탄복도 없이 맨살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다.

 

겜송이 : 서든어택은 아이돌과 콜라보해 모델링 하는 경우가 많은데 탱크탑, 숏팬츠, 비키니 등 전투에 부적합한 옷을 입힌다. ‘이 천 쪼가리로 어떻게 총을 막지?’ 싶을 정도다. 나는 오버워치에 감동했던 게, 지금까지 다양한 게임을 해봤는데 모든 여성 캐릭터들의 가슴이 엄청 부각되어 있다. (여자면) 아무튼 날씬하고 가슴이 크다. 스킨 자체도 야하고 선정적이다. 남자 캐릭터는 안 그렇다. 남자 캐릭터는 못생기거나 키가 작거나 다양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 여자 캐릭터들은 다 예쁘고 몸매가 좋다. 오버워치는 부담스럽지 않다.

 

리리 : 남성유저들을 신경 쓴 온라인 게임을 하다 보면 (여성 성적 대상화에) 무감각해진다. 나는 처음 오버워치를 할 때 메이를 보고 얘는 왜 이렇게 크지?’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했던 나 스스로에게 놀랄 만큼 무감각해진 거다. 오버워치는 여성 캐릭터에게 전신 수트를 입히기는 해도 대놓고 노출을 하지는 않는다. 전신 수트 집착은 그만했으면 좋겠지만.

 

6. 블리자드의 메인 게임 디렉터 제프 카플란이 IGN D.I.C.E 행사에서 전디협을 언급한 사실이 화제였다. 제프 카플란의 언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버워치의 메인 디렉터인 제프 카플란은 IGN D.I.C.E 행사에서 플레이어들이 오버워치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고 장려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던 중 "정말 특별한 일을 목격했다(we saw something very special happen)"며 전국디바협회를 언급하였다.[각주:4]

(영상 3645초경부터)

 

감나무: 당시에는 물론 좋았는데, ‘성차별 신고 항목을 만들어 달라’, ‘제재를 강화해달라는 유저들의 계속된 요구에 대한 피드백은 전혀 없는 와중에 (전디협을) 이렇게 언급했다는 건그냥 자기에게 이득이 되니까 날름 주워 먹은 거 아닌가? 싶더라. 본인이 보기에 옳은 가치라고 생각해서 전디협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게이머들의 건의 사항을 처리하지 않는 건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리리: 처음엔 번역으로 접했는데, 나중에 원문을 읽어보고 매우 돌려 말한다고 생각했다. 전디협 언급을 안 할 수도 있지만 만약에 꼭 해야 한다면 자신에게 가장 피해가 안 오는 방식으로, 피해는 없지만 체면은 차릴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이다. ‘우린 정치적인 게임은 아니지만, 좋은 말, 좋은 말, 좋은 말그래도 그게 최소한 그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안 하는 것보단 낫다.

 

감나무: 그래도 언급된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언급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상황 아니었나. 이미지 메이킹의 일환으로 얘기한 거라고 생각한다. 전디협말고 다른 단체가 있었다면 다른 단체를 언급했겠지만, 전디협 밖에 없었으니까 언급한 것 같다.

 

암탉: 전디협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전디협이 나왔을 때, 겜송이씨와 리리씨는 어떻게 생각하셨나?

 

리리: 처음에 되게 놀랐다. 하야 시위로 처음 접하고 나서 팔로우를 하고 지켜보는데, 갈수록 비난 여론이 거세지더라. 깃발 아래 서 있으면 공격받을 수도 있는데 너무 걱정되기도 하고조심하길 바랐다. 너무 마음이 안 좋았다.

 

감나무: 조심하라는 얘기들도 참 많았는데, (인터넷상의 비난을) 실제로 행동에 옮길 만한 사람은 생각보다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작년 12월쯤에 미트쉐어 컨퍼런스 페미니즘 섹션에서 동국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오프너 제작진을 만났다. 신분이 노출돼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는데, 혹시 공격당할까봐 두렵진 않으시냐고 물었다. 그런데 실제로 공격당한 적도 없고, 인터넷에서만 말하지 자기 앞에서 직접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이야기하셨다. 거기서 많이 용기를 얻었다. 실제로 계속 활동해보니까 없더라. 정말 졸렬하다고 생각했다. 전디협 시즌1을 마치고 페미니즘 카페에서 쫑파티를 했었는데, 장소를 밝히고 진행하면 위험하지 않겠냐고 우려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실제로는 페미니즘 카페가 너무 무서웠는지 어쨌는지, 우려하던 일은 딱히 일어나지 않았다.

 

겜송이: 나도 박근혜 하야 시위 때 처음 전디협 깃발을 봤다. 전디협이 페미니즘 성향을 띠는지는 몰랐고 제프 카플란이 언급했을 때 (페미니즘 성향의 단체임을) 알게 됐다. 한 번 전디협 인식이 안 좋다고 느낀 게, 오버워치 페이스북 그룹에 전디협 대회 나가실 팀원 구합니다.’라고 글을 올렸는데 메갈이냐면서 비난 댓글이 쏟아졌다. 전디협이 했던 일 중에서 잘못된 행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런 인식에 갇히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나무: 사실 하는 활동은 여타 페미니스트 단체들과 똑같은데 자기 마음에 안 드니까 디바를 이용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냥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여자를 메갈이라고 부른다. ‘메갈과 상관없다. 왜냐면 실제로 상관이 없고, 메갈과는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거기엔 이러이러한 이유가 있다.’라고 설명을 해도, 제프 카플란이 전디협을 긍정적으로 언급해도 똑같다. ‘제프 카플란이 잘 모르고 있네’, ‘Do you know feminazi?’, ‘페미나치라는 걸 빨리 메일을 보내서 알려줘야 한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 한다.’, ‘제프가 뭘 모르고 있다.’고 한다. 제프 카플란의 언급 덕분에 많이 알려졌지만,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는 정도의 차이뿐이다.

 

7. 최근 페미니즘 이슈가 큰 물결을 타면서 여성 게이머 커뮤니티가 늘어나고 있다.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있는가? 소속되어 있지 않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소속되어 있다면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감나무 : 나는 전디협을 커뮤니티로 생각하고 활동하고 있다. 전디협을 만들게 된 데에는 페미니즘 영향이 크다. 기존 여성 게이머 커뮤니티 중 페미니즘 가치를 가져가는 곳이 없었다고 알고 있다. 성차별주의자인 여성과 게임하는 것과 성차별주의자 남성과 게임하는 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별보다 성차별적 발언을 하는 게 문제다. 그래서 전디협은 여성 게이머 커뮤니티라기보다 페미니스트 게이머 커뮤니티다. 페미니스트 게이머 모임의 장점은 편하다는 거다. 비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있다면 페미니즘적인 이슈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을 것 같다. 페미니스트 게이머 모임에서는 상대가 한 (성차별적) 말이 왜 잘못됐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여성주의 이슈뿐 아니라 장애인 비하 발언 등 다양한 소수자 차별 발언을 하지 말자고 합의된 사람들과 같이 게임을 하고 있기에 편하다. 단점은 없다. (웃음) 너무 좋다.

 

겜송이 : 나는 여성 클랜에 소속되어 있다. 여성 클랜이 좋은 건 남자들과 게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여성 클랜에 들면 클린하게 게임할 수 있다. 반면 남자들에게 욕먹기 싫어서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게 단점인 것 같다. 여성 클랜이 몇 개 있었는데 많이 사라졌다. 클랜 내에서 메갈리아나 워마드 단어를 쓰지 말라’, ‘남자 욕을 하지 말라는 식의 의견과 왜 그런 것까지 검열해야 하냐는 의견이 충돌해 없어지고 다시 만들어지길 반복한다. 우리 클랜장도 검열을 해야 하나 고민하더라. 우리끼리는 검열하지 말자고 결론이 났지만, 주변에선 아직도 검열 문제로 많이 힘들어한다.

 

리리 : 오버워치 시스템 내에는 클랜이 없다. 페이스북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 커뮤니티에 가입할 수는 있겠지만 가입하지 않았다. (여자라도) 페미니스트가 아니면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쉬운 일도 아니다. 페미니즘을 표방하지 않는 여성 게이머 커뮤니티는 검열이 심하고 메갈리아, 워마드나 여성혐오 관련 언급이 아예 금지되어 있다. 그런 분위기가 싫어서 소속하지 않았다.

 

8. 다른 여성 대학생 게이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감나무: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친구 중 한 명이 오버워치를 하다가 성희롱 때문에 그만둬버렸다. 과거에는 성희롱, 비난당하면 그냥 참고하던가 아이디를 바꿔서 남자처럼 가장해버리던가 접던가 하는 부정적인 대응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전디협을 비롯한 여러 페미니즘 단체들의 활동도 확대되고 있고, 연대해서 목소리 낼 수 있고, 여성끼리 즐겁게 게임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고 있다. 물론 도망칠 수 있고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그래도 그런 선택 말고 다른 선택지들도 생기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겜송이: 앞서 언급했던 오버워치 페이스북 그룹에 한 여성분이 어제 팀을 보러 들어갔는데 어떤 남자가 내가 있어서 힘이 난다는 말을 했다. 이거 성차별적 발언 아니냐는 글을 올리셨다. 댓글에 남자들이 프로 불편러네’, ‘일상생활 가능하냐?’, ‘메갈이냐?’는 말을 하더라. 화가 나서 성차별 발언 맞는데 왜 사람을 프로불편러로 만드냐고 했더니, 어떤 여성 유저분이 내 페북을 털어서 과거 발언들을 박제하셨다. (일명 메갈스러운글을 올리면) 여자들조차 비난하며 몰아가지 않나. 남자들은 당연하고. 당당해지기 어렵다는 건 안다. 나도 욕 들으면 눈물이 나려고 하고 주눅 드는 편이다. 그래도 같이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여자들이 위축되고 주눅 드는 게 싫다. 실력 면에서도 다들 게임 충분히 잘 하고 남자들보다 훨씬 잘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자기 실력에 대해 검열하는 분들이 많다. 남자들은 안 그런다. 남자들은 못해도 남 탓을 하고, 힐러는 절대 안 한다. 모두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리리: 자신이 겪은 일이 개인적인 일인지, 아니면 모두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일인지 스스로 충분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자기가 겪는 일에 대해서 한 단어로 일축할 수 있는지도. 그건 전혀 개인적인 일이 아니니까. 그게 중요한 것 같다. 여혐이라는 단어를 몰랐으니까 힘들었던 것 같다. 어떤 일을 당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설명을 해야 하니까 힘들고, 개인적인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여혐을 겪었다이렇게 말하면 문제가 좀 더 확실히 보인다. 공부하셨으면 좋겠다. 물론 자유지만.

 

감나무: 페미니즘을 해라. 답은 그것뿐이다.

 

9. 후기

 

리리: 이렇게 말로 내 생각을 정리해보는 건 처음이어서 의미가 깊었다. 계속 덮어두고 있다가 하나씩 이야기하니까 힘들기도 하다. 그래도 힘들어도 얘기를 해야 더 나아지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도 인터뷰 자리가 아니더라도 친구들끼리 이런 말을 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나무: 여대회담이라고 해서 요즘 대학생들이나 대학생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참여하였는데, 겜송이님의 (대학 게임 동아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여성들만 모여 있는 곳은 좀 다른지 아니면 아직도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지 궁금했었는데, 아직은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걸 배우고 간다.

 

겜송이: 학내 커뮤니티만 봐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에 부정적인 사람들이 많다. 글을 올리면 또 시작한다’, ‘너네 남혐 좀 그만해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식 자체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나도 잘 모르니까 배워야겠다.

  1. 참고: 페미위키-오버워치 여성게이머 핵몰이 사건 (https://femiwiki.com/w/%EC%98%A4%EB%B2%84%EC%9B%8C%EC%B9%98_%EC%97%AC%EC%84%B1%EA%B2%8C%EC%9D%B4%EB%A8%B8_%ED%95%B5%EB%AA%B0%EC%9D%B4_%EC%82%AC%EA%B1%B4) [본문으로]
  2. 대학 E 스포츠 동아리 연합회 (http://e-cca.kr/) [본문으로]
  3. 넥슨이 배급 중인 온라인 게임인 던전 앤 파이터와 사이퍼즈의 e스포츠 대회. 두 게임의 제작사인 네오플이 메인 스폰서로 참여한다. [본문으로]
  4. 참고: 페미위키-전국디바협회 항목 (https://femiwiki.com/w/%EC%A0%84%EA%B5%AD%EB%94%94%EB%B0%94%ED%98%91%ED%9A%8C)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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