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빻덕에게-이 목소리가 너에게 닿기를!

By.광개토女


 


빻았다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물론 여기서 말할 빻았다가 사전적 의미의 물기가 없는 것을 짓찧어서 가루로 만들다는 아니라는 걸, 꼭 헤비 인터넷 유저가 아니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외모를 비하하는 의미의 은어로 빻았다를 사용하고 있다.

빻았다가 인터넷 대중들 사이에 확산된 건 프로듀스 101가 방영된 이후다. 일부 사이트에서 출연진이자 프로듀스 101의 센터 멤버였던 최유정의 외모를 보고 빻유정이라는 별명으로 부른 것이 확산되어 일종의 밈이 되었고, 이후 여자 아이돌들의 이름이나 그룹명 앞에 외모를 조롱하는 의미의 을 붙이는 데 서슴없어졌다. 현재도 포털 사이트에 빻았다라는 동사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여자 아이돌의 이름이나 그룹명이 따라 붙는다.

걸그룹에 대한 공개적인 외모 조롱은 최근 있었던 걸그룹 우주소녀의 남자팬들, 소위 말하는 우남빻덕의 무례한 행동에서 정점을 찍었다. 스타쉽의 13인조 걸그룹 우주소녀는 지난 14일 세 번째 미니 앨범인 From. 우주소녀를 발표하고 타이틀 곡 너에게 닿기를로 활동했다. 몽환적인 이미지와 색감의 향연인 뮤비와 발랄한 멜로디의 타이틀 곡은 대중들에게 여러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219일에 있었던 대구 팬사인회에서 멤버 은서가 눈물을 터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사인을 받던 남자 팬이 외모를 비하할 목적으로 ‘(너와 닮은) 축구선수 즐라탄을 아냐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16년 8월 부산에서 있었던 우주소녀의 팬사인회 영상.

한 남성 팬이 멤버 은서에게 '즐라탄'을 아냐고 묻고 있다.

(출처 : https://youtu.be/O_r3ANMhmoY )




 

이는 우발적으로 행해진 장난이 아니었다. 28일에 업로드 된 이 영상에는 168월 부산에서 진행된 팬사인회에서 한 남성 팬이 축구선수 즐라탄을 아냐고 묻고, 은서가 누구냐고 되묻는 끝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담겨있다. 질문을 하자마자 행사장 곳곳에서 터지는 남자 팬들의 웃음소리는 팬덤 내에서 은서가 오랫동안 외모를 비하당해 왔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우주소녀 팬덤은 놀랍게도 두 의견으로 갈라졌다. 팬들을 만나는 장소인 팬사인회에서 운 은서가 프로답지 못하다는 비판이 인 것이다. ‘일부팬들은 본인들이 누리던 여성의 외모를 조롱하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한 채 은서가 예민하다’, ‘장난을 받아줄 줄 모른다등 엇나간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급기야는 그날인가보다라는, 여성의 의견을 묵살하기 위해 곧잘 사용되는 혐오성 짙은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우주소녀의 일부팬들의 발언을 지켜보던 다른 아이돌 팬들과 우주소녀 팬들은 이들에게 우주소녀 남자 팬들 빻았다라는 의미로 우남빻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걸그룹의 외모를 비하하기 위해 사용되던 빻았다가 남자 팬들의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짧은 생각, 가꾸지 않는 외관을 비하하기 위해 역으로 사용된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16년 3월 26일 대구 동성로 게릴라 콘서트에서

'심쿵빻파워'를 해달라는 팬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최유정의 모습.

연예인이라고 해서 외모비하적인 농담을 웃으며 받아주고 수용해야할까?

(출처 : https://youtu.be/fSKflH0m350 )


 



-’은 남자 아이돌의 이름 앞에는 붙지 않는다. 남자 아이돌 팬덤 대부분을 형성하는 여성 팬들은 빻았다라는 말이 외모를 조롱하는 의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난으로라도 외모를 조롱하는 일이 바람직하지 못하단 합의가 팬덤 내에 자리 잡고 있다. 남자 아이돌을 향한 빻았다는 음성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팬덤은 누군가 남자 아이돌에게 빻았다고 발언하면 교정을 넘어서 사이버 불링에 해당하는 린치를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여자 아이돌과 은 친하다. 앞서 언급한 최유정은 오프라인 행사에서 직접적으로 팬에게 빻았다에서 파생된 심쿵빻파워를 보여달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는 당시 최유정의 팬덤이 빻유정에 대항하려 선택한 방식이 빻음을 인정하고 귀여움이라는 의미로 단어를 희석시키는 정도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유정이 이후 본인의 외모에 낮은 자신감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장난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팬들은 계속 존재한다.







나무위키 '최유정' 항목 외모 파트

여전히 '못생겼다'는 외모비하가 장난이라고 주장한다.

(출처 : https://namu.wiki/w/%EC%B5%9C%EC%9C%A0%EC%A0%95 )

 





여자 아이돌이란 직접적으로 외모를 지적하고 네가 귀여워서 그런다고 얼버무릴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마치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를 괴롭히면 너를 좋아해서그러는 것이라고 여자아이를 되려 가르치려 드는 행태와 유사하다. 이런 젠더에 따른 차별을 인지한 몇몇 팬들은 운동적 차원에서 남자 아이돌을 향해 일부러 빻았다는 단어를 쓰길 고집하기도 한다.

아이돌 그룹과 팬 사이에는 항상 엎치락뒤치락하는 미묘한 권력구도가 존재한다. 팬들은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곤 하면서, 동시에 아이돌에게 무섭게 상품일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성 비율이 높은 팬덤을 가진 걸그룹과 팬덤 사이에서는 오직 팬덤이 우위인 구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프로듀스 101출연 당시 김세정의 남자 팬이 세정의 서포트 돈을 모금 받으면서 아이패드는 사주지 말자, 버릇이 나빠진다라고 발언했던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그가 진행한 서포트 물품 가격이 입금됐을 거라 예상하는 금액에 한참 못 미치자 서포트에 참여 했던 사람들이 해명을 요구했고, 일부 물품과 비용을 서포트 진행자가 횡령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이후 사과문에 나이도 자신과 비슷한 세정에게 많은 돈이 서포트 비용으로 입금 되는 것이 배가 아팠다고 전했다








당시 DC 김세정 갤러리에 올라왔던 글들

(위) 서포트 총대 (아래) 서포트 참여자이자 김세정의 팬




당시 모든 팬들을 분노케했던 총 350만원 어치의 서포트 물품 사진

(출처 : 구글 )





남자 아이돌 팬덤이 서로 어떤 비싸고 귀한 물건을 선물하는 지 경쟁하는 것과 달리, 여자 아이돌 팬덤은 아이돌의 필요와 기쁨보다 팬인 자신이 잘난 여성을 해체하는 기쁨을 더 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판매자와 소비자의 구도보다 젠더권력이 더 강력하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남성젠더에 더불어 소비자 권력까지 얻은 남성 팬들은 걸그룹에게 팬사인회나 공개방송 등에서 네가 나에게 잘 해주지 않으면 팬을 그만 두겠다는 협박을 수시로 가하고, 언어폭력이나 다름없는 모욕적 언사를 하고도 자신을 향해 웃어주길 요구한다. 자신이 가한 폭력은 그저 장난으로 얼버무리고 피해자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책임의 화살을 돌린다.

이런 젠더 폭력적 만족감을 구하는 남성의 모습은 아내를 폭행하는 남편의 모습과 유사하다. 경제력을 끊어버리겠다는 협박으로 아내를 구속하고, 아내에게서 성적 만족감을 얻는 동시에 폭력이 주는 우월감을 얻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자 아이돌은 자신의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재능을 판매하고 있을 뿐인데, 가정폭력과 유사한 폭력에 실제로 노출되고 있다.


 


걸그룹을 좋아하는 여성 팬들과 멤버들 사이에는 독특한 유대관계가 있다. 이 유대관계는 여덕(여자 팬)이 더 늘어야 한다는 소망에서 기인한다. 걸그룹 여성 팬들은 팬질을 위해 남성 팬들에게 번호를 달라거나 함께 식사를 하자는 추근거림부터 성희롱과 폭력을 감수하기도 한다. 많은 걸그룹 여성 팬들이 남성 팬들의 폭력에 질려 탈덕하기도 한다. 각종 행사에서 신체 및 외모비하, 행동교정, 조롱을 당하는 걸그룹 멤버들을 생각해보면 멤버들과 여성 팬 사이의 유대관계는 당연함을 넘어서 필수적인 여성연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남자들은 아이돌 팬질을 할 기쁨조차 누릴 수 없다는 말이냐!’는 볼멘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우남빻덕이 도래한 지금, 남성 팬들은 본인의 덕질 원동력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기쁨에서 오는지, ‘어리고 예쁜 여성을 비하하는 즐거움에서 오는지 돌이켜 볼 때이다. 물론, ‘일부빻은 남성 팬들에 한해서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세일러문 크리스탈과 오마이걸입니다.

 

+ 최근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