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여남 모두 군 복무를 하면 성평등한 사회가 올까?

by.한의 민족



남자들은 군대를 그렇게 좋아하는 모양이다. 무슨 말만 하면 군대다. 이는 여성주의 이슈에 관한 토론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에 여성차별이 존재한다는 말이 나오면 남자만 군대에 의무적으로 가는 상황을 억울하다는 듯 토로한다. ,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 남자는 국방의 의무를 다해 권리를 요구할 수 있지만, 여자는 그런 의무를 다하지 않는 주제에 권리만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 논쟁에서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여자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 기가 막힌 방어전이다. 실제로 한 남성은 남성만 군대에 가는 상황이 차별적이라는 내용의 헌법소송을 냈으나 헌재는 국가의 안보 상황, 재정 능력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결정한 사항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여성을 차별하거나, 또는 남성을 차별하는 것이 아님을 밝히며 기각했다. (헌법재판소 2006 헌마 328) 그러나 이 소모적인 논쟁을 떠나서 왜 남자만 군대에 가는지, 정말 여남 모두 군대에 가면 진정한 성평등 사회가 될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권리는 시민의 의무를 다해야 따라오는 거 아냐?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여자는 사회적으로 차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a) 군 복무를 한 여자도 여자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아.

b) 국방의 의무를 군 복무에만 한정시키는 것처럼 보이네.

c) '시민'이란 건 '시스젠더·헤테로·비장애인·남성'만을 칭하는 게 아냐? 다른 소수자를 배제하는 사고방식은 옳지 않아.

 


여남 모두 군 복무를 하면 성평등한 사회가 올까?

 

믿기지 않겠지만,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들고나오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 여성들은 국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등 시민이 되어 사회적 불이익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3가지 측면에서 파훼 되는데, 인권은 천부적인 것으로 어떤 조건 하에서 차별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국방의 의무를 군복무에만 한정하고 있다는 점, 심지어 군 복무를 한 모든 사람이 시민으로 패싱되지 않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1) 인간으로서 누릴 권리, 즉 인권은 특정한 조건을 충족할 때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로 초국가적이고 전법률적이다. 의무를 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정당화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또한, 만일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군 복무를 하는 것만이 일등시민권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면, 시스젠더·헤테로·비장애인·남성만이 일등시민이 되는데, 이는 지나치게 지엽적이고 협소한 집단만을 포함하므로 특권적이고 배제적이며 구시대적이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천부의 권리로 초국가적·전법률적 불가침의 권리이므로 

국가권력이라 할지라도 침해할 수 없으며

국가가 이를 침해한 경우 침해자인 권력자에 대한 저항권이 생긴다.”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천부인권)

 


(2) 국방의 의무는 단순히 군 복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방의 의무에는 병역법, 향토예비군 설치법, 민방위 기본법, 비상대비자원 관리법 등에 의한 '간접적인 병력형성의무' 및 병력형성 이후 군 작전명령에 복종하고 협력하여야 할 의무도 포함된다. (헌법재판소 1995. 12.28 헌마80, 1999. 2.25. 97헌바3.) 즉 일부 남성들이 걱정하던 바와 달리 여남 구별 없이 모든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지고 있다는 것이다.

(3) 군 복무는 '시민'이 될 수 있는 통과의례로써 작용한다. 군대에 가지 않은 어린 남성, 혹은 군 복무에서 면제받은 남성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시민'으로 수용되지 않는다. 남성들은 군 복무를 통해 자신이 속한 나라를 지킨다는 점에서, 또 군대라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으로 주권주체가 되어 유대를 형성한다. 여성은 함정에 빠진다. 많은 페미니스트가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도 군대에 들어갔고 전쟁에 참전했다. 그러나 전시 '전방''후방'의 분할은 여성과 남성의 영역을 분할했고 전쟁에서 '후방-여성'의 역할은 지워지고 '전방-남성'의 역할만 부각되어 기록되었다. 군대에 참여하면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군에 복무하는 여성은 시민권을 얻지 못하며 '명예남성'에게 남성이 그러했듯 시혜적인 인정-혹은 남성만의 성역이었던 군대조차 여성에게 잠식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줄 뿐이다. '시민'의 권리는 군 복무와 아주 부분적으로 상응한다. 이 말은 즉 모든 군복무자가 호모소셜에 패싱되진 않는다는 뜻이다.

 

여자가 군대에 가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는다는 말은 여자도 남자처럼 군대에 가야 평등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여자도 단순히 남자처럼 군대에 가면 성평등이 이루어질까? 단호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여남 사이에 존재하는 생물학적 차이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법적, 제도적 불평등한 요소를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남 모두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거나,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던(또는 않았던) 것에 대하여 불이익을 감수하게 함으로써 성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여성의 실질적인 기회의 평등을 제한한다.

 



노르웨이는 여자도 군대 간다고 하던데? 그거야말로 진정한 성평등 사회 아닐까?

a) 이스라엘도 여성 징병제인데 그 여성들이 남성과 같은 권리를 누리며 살고 있니?

b) 맞아. 노르웨이 진정한 성평등 사회지! 노르웨이는 여성 임원이 40% 이상이거든. 그리고 드디어 병역 문제에서도성평등을 이루겠다는 취지래. 너무 멋지지?

c) 한국 성평등지수나 노르웨이 수준으로 끌어올린 후에 말해라.

 


군대, 너 마저……!

 

20167월부터 성별을 떠나 모든 시민에게 징병 의무를 부과한 노르웨이의 사례는 당시 큰 이목을 끌었으며 지금까지도 군대 이야기를 할 때 자주 회자되곤 한다. 여성의 병역 의무에 대한 결의안이 채택된 당시 노르웨이 가족·평등국 국장은 여성의 병역 의무화는 결국 권리와 의무는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는 양성평등 정책의 기본 전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남성만 징병하는 제도가 남성의 희생과 보상의식, 여성차별의 정당화 의식, 가장의식, 성차별적 분업의식을 작동하여 여성을 차별·배제하는 강력한 기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여남 모두에게 평등하게 징병 의무가 부과될 경우 성차별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징병제가 성평등을 위한 제도라는 주장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종종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노르웨이에서 성별에 제한을 두지 않는 징병제가 시행되었다는 결과만을 보아선 안 된다.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왜 노르웨이에서 금녀의 구역으로 인식됐던 군대가 성평등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거점이 되었는지, 노르웨이와 한국의 차이는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멀어 보이는 이 유럽 국가가 여성 징병을 시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평등 확산 요구를 수용하기 위한 시도로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이전까지 금녀의 구역이라고 인식되던 군대에서도 성평등을 이룩하여 기존의 여성 차별·배제적 기제를 타파하기 위한 시도라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의 ‘2015 세계 성격차지수’(GGI)에서 노르웨이는 전체 144개국 중 3위에 올랐다. 한국은 116위였다. 남녀임금 격차, 여성의 노동 참여율, 정규직 근로자 여성 비율 등 5가지 기준을 토대로 산출하는 여성 경제 활동 지수도 노르웨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3개국 중 3위였다. 한국은 32위였다. 노르웨이의 여성 임원 비율은 40%이다. 참고로 한국의 여성 임원 비율은 2%이다.

이처럼 노르웨이는 성평등한 사회적 토대 아래서 남성이 대다수인 군대에 여성 비율을 늘려 성평등 문화 확산을 도모하고 성 중립적(gender neutral)’ 군대를 목표로 한다. 또한, 군 내부의 변화를 위해군대 내 젠더 : 이론에서 실전까지라는 교육용 교과서도 보급했다. 군 상부에 여성을 늘리기 위한 여러 방안도 검토·시행 중이다. 군의 양성평등정책의 보편화(gender mainstreaming)를 돕고, 군사 훈련·작전 수행 시 젠더 이슈를 점검하는 전문가도 상주한다.

 

이쯤에서 또 다른 여성 징병제 실시국인 이스라엘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 이 문제를 심도 깊이 다루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스라엘 역시 여성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여성이 군대에 가는 것이 갖는 가장 큰 기대효과는 평등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성은 군대 내에서도 남성의 보조적 역할이나 비전투적인 역할만을 했다. 이는 이스라엘의 헤게모니적 남성성-유대인 전투 병사-이 시민권의 상징이 되는 것과 연결되어 여성의 주변화와 배제로 이어졌다. 비록 여성이 남성과 같이 군 복무를 하더라도 구체적인 복무 내용의 차이로 인해 그들은 남성과 같은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군대 내에서도 여성적인임무에 배치됨으로써 이중의 차별이 발생한다. 군대 내의 성희롱 역시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 페미니스트는 여성 징병은 여성들이 평등보다는 성별 위계를 더 쉽게 받아들이고 성별 역할분담을 자연스럽게 인지하게 한다.”고 비판한다.


<노르웨이와 한국의 ‘2015 세계 성격차지수’(GGI) 비교>

 

▲노르웨이의 ‘2015 세계 성격차지수’(GGI)

한국의 ‘2015 세계 성격차지수’(GGI)




육군사관학교의 수석과 차석이 모두 여성이었을 때, 관련 기사에 달린 여자냐 남자냐’, ‘쟤들은 저래도 능력이 없다.’며 여성을 인정하지 않는 댓글, 여대 최초로 ROTC를 창설 숙명여대의 후보생들은 곧잘 학군단 수석임관을 받지만 늘 따라오는 여성이라 기준이 낮아서 쉽게 수석을 한다.’는 편견이 의미하는 바는 뻔하다.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성평등을 위해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실력 있는 여군을 두려워한다. 남자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성평등한 사회라거나 군대의 실력 향상이 아니다. 그들은 단순히 그들도 여성 못지않게 힘들다 징징거리고 싶을 뿐 실제로 여성이 군대에 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군대에서조차 여성에게 자리를 빼앗길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과연 한국에서 여자가 군대에 가는 것을 막는 건 누구일까? 남성만 지는 병역의무에 대한 헌법소송에 헌법재판소는 기각 판결했다. 그러나 헌재의 판결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여성이 처한 역사적·사회적·문화적·경제적·인식적 차별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여성 징병은 불가능하다. 진정으로 여성 징병제를 막는 것은 한국의 남성들이다.


+ 최근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