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남성 가장' 신화 

by.한의 민족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가부장인 남성이 여성과 어린 남성을 지배하는 구조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가부장제는 우리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경험하는 억압이자,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 지속된 억압이며, 역사, 사회, 문화, 종교를 막론한 모든 곳에 산재되어 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너무 오래 되어서 자연스럽게 우리 주위에 둘러있고, 스스로의 억압 구조를 은폐하고 있어 구성원들이 인지하기조차 어렵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부장제는 그 권위에 대한 정당성을 자본에 두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남성집단은 자본으로부터 여성을 배제하고 독점 운용하기 위해 남성 가장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자본의 직접적인 지배에서 벗어난 가정으로 그 영역이 한정되어 있어 그 영역을 벗어나기 어렵다. 여성이 취직을 한 이후에도 사회는 여성의 자리는 가정임을 꾸준히 상기시키며, 가정으로 돌아가도록 끊임없이 압박한다. 취업여성이 마주하는 유리천장과 저임금은 여성을 가정으로 내쫓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이자 자본의 남성 편향의 결과물이다.

물론 가정 내 권력을 획득하는데 작동하는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가부장의 권력과 자본의 관계에 집중하여 다뤄볼 예정이다. 취업여성이 경험하는 성차별적인 발언들을 따라가며, 사회가 어떻게 여성을 자본으로부터 배제시키고 가부장제에 순응하도록 종용하는지 살펴보자.

 

 

 


 

여자가 차별받는다는 거 다 옛날 이야기지. 이번에 우리 회사 신입사원도 여자가 반인데?

a) 회사 임원 중 여성의 비율은 어떻게 되는데? 그들도 신입사원처럼 반이 여성이야?

b) 여성은 취업을 한 이후에도 안심할 수 없어. 여성은 가장이 될 남성을 위해 승진에서 영원히 밀리는데 이게 차별이 아니고 뭐야?

c) 취업한 여성은 남성과 달리 유리천장을 경험해. 이 유리천장은 결국 여성을 직장에서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하지.

 

 


많던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대한민국의 30대 그룹의 여성 임원 승진인사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2.4%에 불과하다전무급 이상 여성 승진자는 3명이 전부였고이마저도 오너일가를 빼면 단 1명뿐이다기자협회보가 언론사 19곳을 조사한 결과, 11월 현재 여기자 비율은 25% 2년 전에 비해 2배 늘었다그러나 보직간부를 맡고 있는 여기자는 총 4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언론사 1곳 당 평균 2.3명 수준으로여성 보직간부가 없는 언론사도 5곳에 달했다. 19곳 중 12개 언론사에서는 여성 논설위원이 한 명도 없었다전체 316개 공공기관의 여성 임원 비율은 11% 정도(기획재정부 공공기관 인력현황 및 여성비율’)이 가운데 133개 공공기관은 여성 임원이 단 1명도 없다신규 채용에 여성 지원자 비율은 절반에 육박(2011 45.4%)하지만여성 관리자 비율은 15.94%로 민간기업(20.01%)에 못 미친다행정자치부의 여성 관리자 비율은 17 3월까지도 10% 언저리에서 지지부진하고 있었다특히 국장급 이상 고위직은 단 4명으로 행자부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했다.

 

살펴본 자료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여성 직원 채용 비율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위 임원직에 여성이 진출하는 비율이 지나치게 적은 현상이야말로 한국의 유리천장이 공고하다는 것을 시사한다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이전보다 용인됨에 따라 사회에서 여성의 활약은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고시와 교직 임용 등은 시험을 통해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차별에서 벗어난 영역이라는 인식은 2010년 여성 합격자 비율 행정고시 47.7%, 사법고시 41.52%, 외무고시 60%라는 수치로 이어졌다여기서 여성의 합격 비율보다 더 놀라운 것은그 많던 여자들이 고위직으로 갈수록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 기사에서 중견기자 중 여성의 비율이 적은 현상의 원인을 고찰한 바에 의하면기자는 업무량이 많고 야근이 잦으며 예측 불가능한 업무 특성 때문에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힘들다는 점특히 여기자들은 결혼출산육아 때문에 직장 이탈이 잦아 결국 중견기자 이상으로 생존하는 비율이 여전히 낮다는 현실은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것이 가정이라는 점을 시사한다남성이 고위직으로 진출하고 높은 연봉을 받도록 하는 가정이 여성을 고위직으로 진출하지 못 하도록 막는 것은 아이러니하다남자는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며여성은 집안일을 돌봐야 한다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정상가족 규범은 여성의 활동 범위를 가정 내부로 한정시키며공적 영역에서 여성에 비해 남성에게 우선순위를 주는 것을 정당화시킨다여성의 승진에 있어서도 가장인 남성에게 우선순위가 빼앗기는 일은 허다하다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60%정도에 불과한 것에도 가장이라는 이유를 가져다 붙이며 정당화시킨다이 사회는 가부장의 권력을 보장해주기위해 안달이다자본을 남성에게 몰아줌으로써 가정 내에서 남성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그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직장 여성이 맞닥뜨리는 유리천장은 남성 가장 이데올로기와 남성편향적인 자본 구조의 성공적인 결과물이자 수단이다.

 

 



 

남편자기야나도 돈 벌어오잖아자기 일하면서 애기 돌보기 힘드니까 일 쉬면서 애기 보고 그러자.^^

a) 지금 그 말은 아기를 나 혼자 돌보라는 것처럼 들리네. 아이 양육은 부모가 함께 하는 거야.

b) 나도 내 직장을 갖고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아이를 키우기 위해 나한테만 일을 그만두라는 것은 나의 희생을 강요하는 무례한 요구야.

c) 나도 돈 벌어오는데? 그럼 자기가 일 관두고 애 돌보면 되겠다.^^

 

 


가부장은 맞벌이를 원하지 않는다.

 

한 기혼여성의 고민상담글이 sns에 소개되었다그 부부는 맞벌이를 하고 있었는데남편이 그녀에게 일을 그만두고 둘째를 낳아 기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아내의 임금이 남편보다 더 많은 상황에서 과연 그녀가 일을 그만두면 가족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이 그녀의 고민이었다이왕 한 명이 일을 그만둬야 한다면 임금이 더 적은 남편 쪽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그런데 남편은 아내에게 일을 그만두라는 주문을 했다.

 

해당 글의 덧글에는 일을 그만두지 말라는 사람들의 충고가 잇달았다아내에게 직장을 그만두라는 남편의 배려속엔 가정의 주도권을 독점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것이다만약 남편의 말대로 일을 그만둔다면집안에서의 발언권을 완전히 빼앗기고 남편에게 예속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이 논리에 따르면 가정 내의 주도권(권력)에 직장과 수입이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가정이라는 공동체 내의 권력은 개인의 자본력에 따라 주어진다가정의 수입을 담당하는 사람이 가정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암묵적인 시스템은 특히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과 맞닿아있다.

 

남성은 가부장제 사회 질서 속에서 (비록 그가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에 놓여있든 상관없이가정 안에서 지배자로 군림할 권한을 승인받았다이것은 너무나도 유구해서 자연화된 권력이자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성으로 태어난 이들에게 주어지는 생득권이며가정이라는 왕국의 지배자가 될 수 있도록 사회가 승인한 권력이다가부장의 권력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자본을 통해 정당화된다따라서 남성은 가정 내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을 독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맞벌이 부부의 경우가부장의 권위를 지탱해주는 소득이라는 수단을 부부가 나눠 갖게 된다는 것은 곧 가정 내의 권력이 분산됨을 의미한다그러나 권력의 배타적인 특성상 그것은 나뉠 수 없다남성은 그의 손윗남성들이 그래왔듯이 가정 내의 권력을 독점하길 원한다따라서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수단인 수입을 배우자로부터 박탈시키고 독점하려 한다그들은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의 무게를 아내와 함께 분담하길 원치 않는다그 무게가 곧 권력의 원천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남성들은 맞벌이를 할 경우 권력이 양분되며심지어 배우자의 소득에 따라 상대에게 더 큰 권력이 부여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지한다맞벌이를 통한 수익의 증대와 그로인한 삶의 질 향상보다 가부장의 권위에 집착하는 이에게서 합리적인 이성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가장은 실체가 없다가부장은 가정 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력을 갖는다그러나 그가 가정 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그 권력은 사라진다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남성이 그의 가정으로 돌아가면 지배자로 만들어주는 권력은 그들이 결코 소시민적 삶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사회의 계층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갖는 불만을 중화시키고 현실에 안주하도록 만든다또한 가장의 권력은 여성이 팔루스에 대한 환상(fantasy)을 욕망하게 만듦과 동시에이것이 허상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것을 추구하도록 하거나 현실에 순응하고 포기하게 함으로써 남성의 권력을 유지한다여남 각자가 가장이라는 허상을 좇아 현실에 순응함으로써 사회는 유지된다.

 

 

 



그런데 일과 가정 모두 잘 캐어하는 알파걸도 있잖아?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a) 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가정의 책임을 당연하게 부담시키는 거야? 여자는 일만 잘 하면 안 돼?

b) 일과 가정 모두 잘 캐어하는 남자들도 있을 텐데 왜 남자에겐 그런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거야?

c) 그래, 하지만 일부의 특별한 사람들의 사례가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져선 안 돼. 그건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 차별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재 문제로 축소시킬 수 있어.

 




남성과 달리 여성은 일과 가정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만일 여성이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간 이중부담의 함정에 빠질 것이다여성에게 집안일의 책임을 지우는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여성은 일과 가정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거나일과 가정 모두 완벽하게 해내는 알파걸이 되어야 한다그들이 일과 가정 모두를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 할 경우 비난받으며주로 직장을 포기하고 가정에 집중하기를 강요받는다.

 

여성의 정치 진출과 고소득 전문직 증가여성 사회 진출의 점진적인 증가 등 고무적인 현상 이면엔 이 특별한 여성들이 여성 발전을 상징하는 하나의 토큰(token)’으로 사용되지는 않는지 따져야 한다이들은 극히 일부 소수 여성일 뿐이며 대다수 일반 여성들이 여전히 피라미드 사회 구조의 맨 밑바닥에 머물러있다는 것이다여성의 사회 진출과 관련된 이 희망적 수치에 반비례하는 대다수 여성의 암울한 현실은 주목받지 못한다알파걸 콤플렉스가 사회·구조적 문제인 유리천장을 개인의 노오력’ 문제로 전환시킬 우려 또한 존재한다알파걸 역시 남성 경쟁자와 비교했을 때지위나 직급보다 성별이 우선적인 평가요소가 된다는 사실은 유리천장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심상정 대표의 슈퍼우먼 방지법 발의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발로했다그는 맞벌이 시대는 왔지만 맞돌봄 시대는 따라오지 않았다대한민국 국민은 가족 없는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고 여성들은 슈퍼우먼이 될 것을 강요받고 있다고 입법배경을 밝혔다슈퍼우먼 방지법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Δ배우자의 출산에 대한 남편의 출산 휴가를 현행 유급 3일에서 유급 30일로 늘리며 Δ육아휴직 기간을 현행 12개월에서 16개월로 늘리고 Δ육아휴직 급여액을 월 통상임금 100분의 60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인상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있다여성에게만 부과되었던 육아/가정의 책임을 분산하여 남성에게 공동으로 부과하는 것은 유리천장을 깨뜨리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가정의 수입을 담당하는 사람이 가정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암묵적인 시스템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과 맞닿아있다문제는 그것이 주로 남성에게 할당되는 자리라는 것과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상품의 생산과 자본의 유통만이 중요해지고 자본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는 생산 과정이 무시된다는 것이다페미니스트들은 상품가치뿐만 아니라 노동력 생산을 담당하는 가정의 역할을 주목했다그동안 가사 노동이 지나치게 평가 절하되어 온 사실을 고발하고 이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했다가정은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자원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자본의 핵심이자 기반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 노동은 그동안 자본의 지배에서 벗어난 전근대적이고 전자본적인 부차적인 문제로 다루어져왔고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여성에게 떠넘겨졌다그동안 저평가되어온 가사노동의 중요성과 필요를 인정하고그 책임을 한 집단에게 전부 부과하는 것을 그만둘 때가 되었다국가는 여성의 희생 위에 건설되었다이제 그들을 가정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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