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한국의 페미니즘, 기록하고 기념하라

페미타쿠

 

3년간 한국은 페미니즘 이슈로 시끄러웠다. 페미니즘이 싫어 IS로 가고 싶다는 김군이 등장했고, 메갈리아가 탄생했으며, 강남역 10번출구 사건을 구심점으로 많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최근에 박근혜 탄핵을 위해 사람들이 모인 시위에서 페미니스트들이 페미존을 만든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들의 관심과 맞물려 페미니즘 도서도 쏟아져 나왔다. 사실 이전에도 여성주의 이슈는 많았지만, 이번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페미니즘 도서가 출간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사건을 가시화하고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사건을 제대로 기록하고, 이 화력을 계속 가지고 가려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이번에 나온 단행본들의 수가 그러한 관심의 정도를 말해준다.

  연말이니 한 해를 정리하는 느낌으로 좋은 페미니즘 도서들을 뽑아보았다. 특히 이론서뿐만 아니라, 20대 페미니스트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책이 출간된 것이 특징이다. 이번호에서는 페미니즘 뽕을 맞아 유행하고 있는 책들을 리뷰해 보겠다.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표지, ©알라딘)

 

여성에게도 역사가 존재한다,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역사적 상상력을 가지고 접근하라. 여성에게도 계보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의 저자가 펴낸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는 지금 어느 때보다 필요한 말을 우리에게 전한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나와 비슷한 나이의 페미니스트들이 겪는 고민을 잘 이야기하면서도, 한 발 앞서나갔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나는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2015년과 2016년은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 논의가 활발했다고 썼다가는 지웠다. 1990년대 한창 페미니즘이 흥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으니, 그저 언제나 지금이 전성기처럼 보이는 착시 탓은 아닌가 생각한 때문이다.(9) 


 

  우리는 여성에 대한 기록이 있어도 알지 못 한다. 여성의 기록은 금세 지워지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분류되어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매우 공감하고 있었던 나는 본문을 읽는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페미니즘 책을 많이 읽어보았다고 생각했는데, 독립운동을 한 여성은 누구인지, 여성이 발명한 것은 무엇인지, 여성들이 나서서 해결한 사건이 얼마나 많은지, 언제였는지 묻는 연습문제에 하나도 대답하지 못 했다. 부끄러웠다. 앞으로 어떤 지식을 발굴하고 기억해야 하는지 동기부여를 주었다.

 

 


오늘날까지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면? 어떤 억압도 깨어지지 않은 가운데 맞이했을 당신의 오늘을 상상하여 써보자.(58)


 

  이 책은 페미니즘 문제를 가지고 참신하고 재미있게 독자에게 다가가면서 보다 실질적인 정보들을 전달한다. 그리고 상상하는 문제는 우리에게 페미니즘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것이며 더 나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한다.

 

 

 


여성의 성취가 운 좋게 기록으로 남는 데까지 성공했다 해도, 그 기록은 빛이 들지 않는 구석자리, 혹은 책장 맨 위칸처럼 손 닿기 어려운 데 놓인다.(88)

그런데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된다. 기록이 있는데 왜 진작 알아보고자 하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은 넣어두고, 앞선 여성의 성취가 놓여야 할 마땅한 자리를 요구해야 한다. (90)


 

  기록물은 기록하고 끝나지 않아야 한다. 잊히지 않고 전해지려면 과거의 성취를 잊지 않고 끊임없이 기념해야 한다. 저자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여성의 삶을 대하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계보는 기록과 기념으로 남는다.

 

 

 

(▲'페미니즘 선언' 표지, ©알라딘)

 

급진주의 페미니즘 정신의 흐름, <페미니즘 선언>

 

1210일에 첫 쇄를 찍어 서문에서 한국의 낙태시위가 기록되어있다. 이 따끈따끈한 책을 바로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었다! 꽤 감흥이 크다, 누군가가 바로 신청해두었다는 이야기인데,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이 책은 선언문만 모여 있는 독특한 책이다. 앞에 30페이지가량에는 미국에서 성폭력, 낙태, 시민권, 퀴어 운동의 사진이 실려 있고 그 다음부터 유명한 선언문들을 확인할 수 있다. 선언문만 담겨있어 별 내용 없을 것 같다고 느낄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페미니스트들의 생생한 경험에 기반한 호소력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독자에게 선언문을 직접 듣는 것처럼 감동을 주며 유머와 풍자도 가미되어 읽는 것이 즐겁다.

  이번 전국민시위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선언문을 쓰고 독자적인 구호를 외쳤듯, 미국 역사에서도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선언문을 쓰고 절박하게 구호를 외쳤다. 이 페미니즘 운동의 기록은 비단 한국에서만 운동하고 있는(었던) 게 아니라, 우리는 모두 운동하고 있으며 모두 연결되어있다는 말을 실감케한다레드 스타킹의 선언문에서 낙태 공개발언은 한국의 검은 시위를 떠오르게 한다. 1969년 뉴욕에서는 당시 저명한 여성학자들과 많은 여성들이 낙태 경험이 있다고 입을 모았고, 낙태 불법에 항의했다.

 

 


드센 소녀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이 남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점차 깨닫는다. 직장에 다닐 때나 어떤 단체에 속했을 때나 드센 년은 조용히 앉아 지시받은 일을 처리하는 데 만족하지 못한다. 드센 년은 자기만의 사고방식을 지녔고, 그걸 쓰길 원한다. 자신이 더 높이 올라가기를, 창조적이기를, 책임을 맡길 원한다. 그녀는 자기가 가진 능력을 잘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또 활용하기를 원한다는 것도 안다. 물론 그것은 그녀의 남자 상사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드센 년에게 남자 상사의 기쁨조 되기는 안중에도 없는 문제다.(62)


 

  드센 년 선언문은 당신이 페미니스트라면 공감할만한 이야기다. 드센 년 묘사는 웃기면서도 슬프다. 삶의 주체, 진취성, 능력, 남자였다면 모두 긍정적일 속성들이다. 이것들을 여성이어서 가지지 못 하는 '드센 년'들은 바로 우리, 페미니스트들이다.

 

 


레즈비언이란 무엇인가? 레즈비언은 모든 여성이 폭발 직전까지 응축해놓은 분노다. -<레즈비언 페미니즘 선언문>(113쪽)

 

나는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 무슨 혁명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들은 반동분자-기득권-이익-권력의 체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로빈 모건, <자매애는 강하다(sisterhood is powerful)>의 서문(166쪽)

 

요컨대 아버지들은 남성성으로 세상을 부패시켜왔다. 남자는 부정적인 미다스의 손을 가졌다. 뭐든지 그가 만지기만 하면 전부 똥으로 변한다. -밸러리 솔래너스, <남성거세결사단 선언문>(185쪽)

 

수동적이고, 적응을 잘하며, 남자들을 향한 존경심과 경외심이 넘치는 아빠딸은 자신과 만난 남자가 역겹고 무딘 주절거림을 계속하게 둔다. 이는 그녀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밸러리 솔래너스, <남성거세결사단 선언문>(198쪽)


 

  공감되는 문장들이 많아 몇 문장을 인용해보았다. 수록된 선언문 중 남성 기득권에 대한 풍자를 하지 않은 선언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밸러리 솔래너스의 남성거세결사단 선언문은 강한 풍자와 유머를 가지고 남성들을 희화화하며 통쾌함을 준다. 메갈리아에서 했던 미러링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머감각이 어떤 웃음을 가져오는지, 어떤 비판적 원동력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보고 많은 사람들이 웃고 해소했으면 한다. 

 

 

 

마치며

위 두 권은 가장 최근에 나온 책으로 지금 읽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면 당장 읽어보라고 재촉하고 싶다.

  두 권 만을 소개해서 아쉽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에게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근래에 얼마나 많은 책이 나왔는지 훑어보는 것을 권한다. 도서관에서 페미니즘을 치면 검색어에 걸리는 단행본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어 기쁘다책과 기록물들이 나온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내년에는 페미니즘 책을 찾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늘어났으면 한다

  연말을 뜨겁게 만드는 책! 페미니즘 도서와 한 해를 마무리해보자.

 

 

-참고도서-

이민경,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봄알람, 2016

한우리, 페미니즘 선언, 현실문화,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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