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이 허락한 페미니즘 ;진정한 페미니스트를 찾아서

By.광개토

 

 


 16124, 샤이니 멤버 종현의 솔로 콘서트를 다녀온 한 팬이 종현이 콘서트장에서 보여준 제노포빅, 호모포빅한 발언에 대해 트위터를 통해 피드백을 요구했다. 종현은 콘서트에서 인도 문화를 희화하는 vcr을 내보내고, 토크 중 남성 팬에게 성향은 존중하지만 자신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종현은 팬들의 지적에 발빠르게 대처했다. 논란이 된 당일,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다음 공연에서는 vcr을 삭제하는 등 조치를 취한다. 이에 몇몇 팬들은 종현의 사과에 감사를 보내기도 했다.

 

 


샤이니 종현이 12월 3일 본인의 트위터에 게재한 글 


 


 그러나 본격적인 사건은 이제부터였다. 트위터에서 종현에게 피드백을 요구했던 일군의 팬들에 대한 사이버 불링이 시작된 것이다. 가해를 시작한 팬들은 종현에게 피드백을 요구한 팬들을 일명 트위터 페미니스트, 줄여서 트페미로 명명하고, ‘지인이 얼굴을 알고 있다는데 만나면 논리적으로 얘기해볼 것이라는 신상 정보를 알고 있다는 협박부터 인신매매 당해라’, ‘강간당했으면 좋겠다등 원색적인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사이버 불링에 비판이 일자 팬들은 트페미들이 그동안 샤이니를 성희롱했다고 주장하며 정당화했다. 이들은 트페미들이 샤이니를 성적으로 소비해온 트위터 멘션을 캡쳐해 증거 자료로 올리면서 팬인 척 하면서 샤이니를 성희롱했으며, 진정한 페미니스트도 팬도 아니라고 비판했다.

 일은 점점 커져 종현에게 피드백을 요구했던 트페미 중 한 명은 콘서트 장에서 얼굴을 알아본 팬들에게 무슨 낯짝으로 콘서트를 보러 왔냐는 등 직접적인 언어폭력을 당했다. 피해자는 이를 트위터에 올렸고 사건은 일파만파 퍼졌다.

그러나 팬들은 피해자가 거짓말을 한다고 가정하고 콘서트 티켓을 인증하라 압박했다. 피해자에게 당신이 피해자가 맞는지, 피해 사실을 증명하라는 요구였다. 급기야는 피해자가 있었던 자리를 소거법으로 찾아보자며 해당 날짜에 콘서트에 다녀온 팬들을 대상으로 콘서트 티켓 인증을 받기도 했다. 이 계정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찍어 올린 콘서트 티켓 사진들이 몰려왔고 계정주는 좌석을 색칠해가며 피해자를 압박했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피해자의 또 다른 SNS 계정을 알아냈다고 밝혀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심각한 수준의 사이버불링에 사람들은 팬덤내 사이버 불링을 알리는 #팬덤내_사이버불링_아웃 해시태그를 만든다. 이에 팬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사이버 불링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팬코_악질성희롱_아웃(팬코; 팬 코스프레의 준말로 진정한 한 그룹의 팬이 아니라 팬 흉내를 내는 사람), #트위터내_아이돌_성희롱 등의 해시태그를 만들어 맞불을 놓았다. 팬들은 계속해서 종현은 제노/호모포빅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부터 트페미들이 종현에게 혐오행동을 교정하길 요구했으면서, 페미니스트답지 않게 그간 아이돌을 성희롱해왔다라거나, ‘종현을 비판한 것과 별개로 트페미들이 샤이니를 성희롱해온 것을 이제 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돌에 대한 팬들의 지나친 성적 대상화 문제는 아이돌 산업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한 번 쯤 고민해본 주제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토론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성적 대상화를 실시한 페미니스트를 비판한다는 점이 팬들의 자성적 움직임이라고 보기 어렵게 한다. 이들은 트위터가 아닌 타 커뮤니티에서 벌어진 성적 대상화를 지적하거나, 대상화의 끝인 RPS를 지적하지는 않는다. 팬덤 내 아이돌 성희롱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특별히 가해자가 페미니스트임을 지적하거나, 트페미들 중에서 가해자를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이들이 공격하고자 하는 사람은 사실상 가해자인 누군가가 아닌, 페미니스트인 누군가, 더 좁히면 트페미이다.

 이들은 왜 트페미를 공격하는 것일까? 사이버 불링과 성희롱 의혹 제기가 종현에 대한 피드백 요구 이후로 이어진 정황을 살펴보면, 내 아이돌에게 어떤 비판도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팬덤 내 불문율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감히 내 아이돌에게 호모/제노포빅하다고 지적한 팬-페미니스트를 심판하겠다는 목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샤이니 팬덤 이전에 트페미로 고통 받은(?) 아이돌 팬덤이 있다. 바로 방탄소년단이다. 방탄소년단의 팬 중 여성혐오를 공론화하고자 마음먹은 사람들이 모여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을 만들었다. 이들은 방탄소년단과 소속사에게 여성혐오에 대한 피드백을 요구했다. 이에 방탄소년단과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시정해 나가겠다는 글을 공식적으로 올렸지만, 공론화 계정 계정주들은 팬들에게 신상 정보를 캐내겠다는 협박과 온갖 욕설 등 심각한 수준의 사이버 불링에 시달려야 했다.

팬들은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공격했다. 여성혐오를 지적하는 팬들을 진정한 팬이 아니라고 배제하는 한편, 팬덤 내 트위터 페미니스트들이 스스로의 언피씨(unpolitical current;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음)함은 돌아보지 못하는 가짜 페미니스트라고 비난했다. 아이돌에 대한 무비판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팬덤 분위기에 안 그래도 어려웠던 여성혐오 지적은 더욱 힘들어졌다.

 이런 현상은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이 방탄소년단이 여성혐오에 대해 피드백한 후 발표한 정규 2집 앨범 'WINGS'의 수록곡 <21세기 소녀>를 비판했을 때 더 거세졌다. 계속해서 여성혐오적 콘텐츠를 만드는 방탄소년단과 소속사를 소비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팬들은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을 통해 릴레이 탈덕 선언을 했다.

 

 


(위) 7월 6일,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공식 팬카페에 게재한 입장문

(출처 : http://cafe.daum.net/BANGTAN/jbaj/326 )

(아래)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이 올린 릴레이탈덕선언



 

 팬덤은 이전부터 정치세력화의 한 방식으로 오빠에 대한 사랑의 진정성을 수배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했다. 진정성의 기준은 사람들이 믿는 것과 달리 주관적이다. 팬덤은 아이돌의 여성혐오를 지적하지 않는 팬들을 진정성 없는 팬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누가 먼저 진정성의 기준을 세우냐에 따라 손쉽게 공격대상을 진정성 없음의 늪으로 빠뜨릴 수 있다. ‘진정성이 없는 팬의 의견은 묵살해도 되고, 어떤 공격을 받아도 싸다’.

 팬덤이 진정성을 무기로 사이버 불링을 정당화하고 개인의 목소리를 지우는 행위는 페미니스트의 입을 막는 오래된 방식과 유사하다. 페미니스트가 어떤 주장을 내놓으면 사람들은 말투나 성적 취향, 평소의 생각 등을 전시하고,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페미니스트로서의 진정성을 평가한다. 사람들은 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람은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샤이니 팬들이 트페미들을 공격할 수단으로 본인들조차 자유롭지 못한 성적 대상화(성범죄)’를 선택한 이유를 이제 쉽게 알 수 있다. 팬덤은 페미니스트에게 요구되는 결벽성이 존재한다고 믿고, 치명적 결함 중 하나가 성범죄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는 완전무결한 인간임을 증명하는 딱지가 아니다. 완전무결한 인간만이 페미니스트가 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백보 양보해 설사 그 사람이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하더라도, 진정한 페미니스트만이 혐오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여성학자 정희진이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정의한 바에 따르면 페미니스트는 여성혐오를 깨달은 사람이다. 페미니스트는 누군가에게 진정성을 평가받아 자격이 주어지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 정체화한 존재다. 때문에 계속해서 스스로 배운다. 그러지 않은 페미니스트는 그저 역사의 뒤에 남는 페미니스트일 뿐이다.

 



 종현의 일이 불거지자 또다시 소환된 꽃길만 걷자는 말은 꽤 의미심장하다. 내 아이돌이 오로지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봤으면 좋겠다는 팬들의 소망은 아이돌에게 어떤 비판(나쁜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팬덤 내 암묵적 규율을 낳았다. 이 불문율과 결탁한 진정성이 팬덤으로 하여금 내 아이돌의 혐오발언에는 눈 감는 페미니스트를 원하게 만든다. 팬덤은 마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찾는 남성처럼 팬덤이 허락한 페미니즘만을 수용하려 든다.

 지금도 팬들은 트페미 블락 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해 트페미들을 팬덤 내에서 고립시키고 사이버 불링을 가하고 있다. 아이돌 팬인 페미니스트들은 팬과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의심받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사이버 불링을 당하는 페미니스트-팬을 지켜보면서 팬들은 점점 더 목소리를 내길 두려워한다. 자성의 목소리를 잃은 문화는 고립되어 상하기 마련이다. 아이돌 문화의 지속가능성에 진정한 빨간불이 울리고 있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세일러문 크리스탈과 오마이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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