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뉴시스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821_0014338235&cID=10201&pID=10200)



지난 728, 이화여대 학생들은 미래라이프 대학 신설을 반대하며 총장실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대학이라면 돈을 주고 학위를 사고팔아선 안 된다는 것이 이화여대 학생들의 주장이었다. 결국 83, 총장 측은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을 철회했고 11월에는 총장 자리에서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화여대에 재학 중이던 정유라의 학점 특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비선실세 최순실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숨겨진 마지막 퍼즐을 찾은 것처럼 박근혜 정권의 석연찮음은 최순실과 8선녀, 그리고 재벌들의 등장으로 서서히 맞춰지기 시작했다.

 분노에 찬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혔다. 그러나 시위의 양상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고 외치는 이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페미존을 만들어 여성혐오를 비롯한 약자 혐오 발언을 막고, 집회 주최자들에게 혐오 방지 매뉴얼 사용을 권고했다. 시위는 과거 성추행과 각종 혐오발언으로 물들었던 모습에서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모습으로 변하면서 마침내 100만 명이란 사람들을 광장으로 이끌어 낸다.

 그리고 129일 금요일. 42일 간의 퇴진 시위 끝에 국회에서는 234표의 압도적인 찬성표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탄핵안을 발의하고 가결시키기까지의 과정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당대표의 행보는 특히 눈에 띄었다. 탄핵안이 헌재로 넘어간 지금도 많은 여성 의원들이 각자의 정치 필드 내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던데, 현대 대한민국은 나라를 망치는 빌런도 여자, 나라를 구하는 영웅도 여자다.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더없이 와 닿는 요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정치권에서 활발히 움직이는 페미니스트 여자 대학생들을 회담에 모셨다. 정치권의 여성혐오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의 성정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출처 : 페미당당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femidangdang/)

 

5차 여대회담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 정치권 내 여성혐오

회담 진행 : 광개토





 

Q.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지안: 페미당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울대 노어노문 전공 학생이다.

-소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학생이다. 녹색당 당원 활동하고 있다.

-은지: 가톨릭대 국사학과 수료생이다. 학교 교지를 만들고 과 학생회 생활을 했다. 에코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고 있다.

-현수: 서울권 대학 경영대에서 학생회를 했었고 지금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이는 연합동아리 평화나비에서 활동 중이다.

 


Q.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사회 곳곳에서 여성혐오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회담자들이 보고 느낀 여성혐오를 나눠보자. (친구, 부모님, 몸담고 있는 단체, 퇴진 집회 등)

 

-소라: 자유발언대에 나와서 발언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때 재밌었다. 4-50대 남성인 사람이 올라가자마자 미쓰박!!!!’이라 외치자 앞의 사람들이 환호했다. 녹색당 사람들 얼굴은 싹 굳어가고 있었다. 그 남성은 미쓰박이라고 해도 싸!’라며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인상 깊었던 건, 자유발언을 진행하던 사회자가 방금 말했던 미쓰박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한 표현이었으며 자유발언대에서 모든 혐오적 발언을 지양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것이었다.


-은지: 처음에 집회 갔을 때 김제동이 이런 발언을 했다. 본인이 꿈꾸는 미래는 결혼해서 아들딸을 낳는 것인데, 아들이라면 독립시키고 딸이라면 내가 계속 지원하고 끼고 살겠다고. 미안하다는 이유였다. 딸이 자기를 닮으면 외모가 좋지 않을 거란 (자기 비하적) 유머를 하려고 했던 거다. 그게 다른 사람들이 웃고 즐기는 멘트가 된 게 불쾌했다.

또 본부의 자유발언대 말고 조그만 트럭의 자유발언대에서 우리 또래의 남학생들이 하던 발언도 생각난다. ‘우리가 왜 여성을 대통령으로 뽑았나, 어머니처럼 잘 감싸주는 포용력 있는 자세를 기대해서 뽑은 거 아니냐더라. 내 주위의 사람들은 동의를 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이 그 발언을 정치적 비판으로 여겨 환호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들었다. 사회자가 없었기 때문에 거르지 못 하는 말이 많았다. 집회에서 나오고 싶었다. 이런 말을 들으려고 나왔나? 다음 집회에 가고 싶지 않았다.


-현수: 첫 번째 전국민 시위를 하고 나서 성추행 후기가 많이 올라왔다. 사람들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은 그렇게 놀랍지 않았다. 그 수가 모이면 분명히 그런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놀란 점은 성추행을 지적하면 공격한다고 느낀다는 점이었다. ‘시위 참여자들도 다 좋은 마음으로 나온 것이다’, ‘성추행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엄청 소수인데 다수의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만드냐’, ‘일반화 하지 말라고 하는 거 있잖나. 그럼에도 진보하고 있다고는 생각한다. (예전에는) ‘미쓰박이 부적절한 발언이니까 삼가달라는 정리 멘트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여성혐오적 발언들에 언짢아하면서도 그게 시정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안: 자유발언대에서 미쓰박’, ‘박양발언이 있었고, 사회자가 정정을 한 사건에 대해 뿌듯함을 느낀다. 열 개 넘는 여성주의자 단체들을 모아서 페미존을 모아서 나갔었는데 그 때가 2차 페미존 때였다. 자유발언자가 미쓰박’, ‘박양발언을 해서 여성혐오 발언하지 말라고 구호를 다 같이 외쳤다. 공동행동 페이스북 주최 측에 정정과 사과발언을 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공감한다는 답변이 오고, 바로 사회자가 (현장에서) 정정발언을 했다. 은혜가 말했듯 시위 내 여성혐오가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 못 했는데, 바로 피드백이 오고 바뀌어 나간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자는 대응방안을 마련한 건 1차 페미존으로 집회에 참여했을 때 김제동의 발언을 듣고 나서였다. 김제동은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어머니와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모자보건법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모자보건법을 모성보호법이라고 말하면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어머니와 그 옆에 있는 아버지를 봐라, 국가는 어머니와 같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는 우왕좌왕하다가 말았는데, 다음번 집회에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생각했다. 이후에 대응방안과 매뉴얼을 만들어서 구호를 외치고, 투쟁 본부 페이스북에 메시지를 보낼 생각도 하게 됐다. 작은 변화지만 바뀌니까 뿌듯했다.


 



지난 1111, 민중총궐기투쟁본부와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게시한 여성혐오적 발언에 대한 사과문

출처 :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페이스북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33387693620284&id=1629891637303223)

 


-지안: 집회 참여자들의 혐오발언도 들었다. 남성들이 시발년아, 나쁜년아를 우리 바로 옆에서 단체로 외쳤다. 우리가 혐오발언하지 말라고 맞받아서 외치니까 옆에서 젊은 남자들이 막 소리를 질렀다. 우리 측 자경단이 왜 소리를 지르냐, 혐오발언을 멈춰 달라 요구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하길래 우리와 생각이 다른 거 같으니 자리를 옮겨 달라고 요청했다. 그 무리 중 한 남성은 나라 바꾸는 계집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이런 스티커를 붙이고 혐오발언 하면 안 되지 않느냐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스티커를 팍 떼어 구겨서 버렸다. 그 사람은 그 문구를 나라 바꿔버린 계집년들이라고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다. 집회에서 개저씨들을 상대하는 건 힘들긴 해도 익숙해서 놀랍지는 않다. 그런데 여성을 혐오하는 젊은 남자들과 눈앞에서 대면하고 싸우는 경험은 생소했다. 우리를 비웃는 20대 초반의 남자들을 바로 보니까 그건 많이 스트레스가 되었다.


-광개토: DJ DOC가 무대에 서는 것을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페미당당에서 처음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지안: 우리 혼자 반대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는 페미존 텔레그램 방이 있다. 처음 거기서 뉴스를 접하고 신곡 발표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했다. 페이스북 메시지로 주최 측에 문제제기를 하자는 쪽으로 입이 모아졌다. ‘페미존에는 강남역 10번출구불꽃페미액션등 여러 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그중 페미당당이 표적이 돼서 공격을 받고 있는 거 같다.

-은지: DJ DOC 전에 산이가 더 먼저 곡을 내지 않았나? 게다가 산이의 곡은 음원사이트에서 인기가 높았다. (광개토: 멜론에서 1위를 했다.) 그런데 DJ DOC는 아예 올라와서 무대를 한다고 하니까. (충격적이었다) 한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든 욕하면 되는 분위기와 시위의 몰목적성에 환멸이 느껴졌다.

 

 


숙명여대에 붙은 '내가 시위에 가지 않은 이유1, 2' 대자보는 많은 공감과 함께 회자되었다.


 


Q.최근 대학가에 붙은 내가 시위에 가지 않은 이유라는 제목의 대자보에서는 진보 성향을 띠고 있는 집회나 모임에서의 여성혐오를 꼬집었다. 진보 정당/단체/학생회의 여성 인권감수성은 어느 정도인가? 각 단체에서 여자 대학생으로서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는가?

 

-현수: 내가 있던 경영대 학생회는 진보적인 학생회는 아니었다. 그냥 보편적인 수준의 술 마시기 좋아하는 애들이 모인 학생회였다. 당시엔 동기들이 너무 좋아서 들어가게 됐는데 (성차별적인 분위기가) 매우 심각했다. 2012, 2013년 연이어 학생회를 2년 동안 하면서 성폭력 예방 교육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회담 요청을 받고 지옥 같았던 지난 2년을 되돌아보니 너무 많은 사건이 있었다. 예를 들어 신입생 환영회 준비를 위한 단운위(단과대 운영 위원회, 이후 단운위’) 회의 시간에 경영대 학생회장이 프로젝터로 신입생 명단을 띄워 놓고 페이스북에 이름을 검색해 외모를 품평한 일이 있었다. 우리 과 전체 성비는 5.5:4.5 정도로 남녀가 비슷한 수준인데 학생회 성비는 거의 9:1 정도 된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한 번은 어떤 여자 연예인 섹스 비디오가 유출됐었는데, 단운위 단체 카톡방에서 한 사람이 그 파일을 구했다고 하니까 다른 남자 임원들이 파일을 보내달라고 이메일 주소를 올리는 일도 있었다. 2년 동안 이런 일들의 연속이어서 매우 힘들었다. 결국, 그 안에서 폭력 문제가 발생해서 내부 고발하고 나왔다. 나오고 나서도 신입생 환영회에서 성추행으로 문제가 됐던 걸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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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5일,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12.28. 한일 합의 규탄 기자회견 중인 평화나비 네트워크

출처 : 뉴스천지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368857)




-현수 : 그 이후로 평화나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평화나비는 매우 특수하다. 들어오는 학생들의 젠더감수성 범위가 굉장히 넓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여성에 대한 제노사이드로 볼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가끔 일베마인드를 가지고 나는 애국 보수야, 꽃 같은 순결을 빼앗겨버린 할머니들을 지킬 거야!”라면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굉장히 극단적이다. 들어오는 사람을 보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개념화됐는지 투명하게 보인다. 딱 영화 귀향느낌이다. 할머니들은 고령의 연세이신데도 외교관이 오면 소리치는 투사이시다. 우리끼리 농담으로 할머니들이 몸이 안 좋으셔서 앉아 계시는 거지 지금 태어나셨으면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였을 것이다, 다 불사지르고 다니셨을 거다.”라고 한다. 동아리 내부에서는 싸우는 여성에 대한 존중이 있는데 종종 시혜적인 생각을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커리큘럼을 보고 견디지 못해 금방 나가버리지만.

 

-광개토: 수요 집회 같은 동아리 외부 활동을 할 때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현수: 여성 구성원이 많다보니 활동할 때 여자들만 있는 경우가 많다. 동아리 특성상 길거리에서 캠페인이나 집회를 진행할 때가 많은데 우리 사회가 어린 여성들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 알 수 있다. 캠페인을 하면 수많은 개저씨와 할아버지들이 오신다. 저희는 반공 할아버지라고 부르는데 (모두 웃음) 빨간 별 박힌 모자 쓰고 해병대 군복 입은 분들이 오셔서 빨갱이라고 소리치고 가신다. (캠페인이나 집회에서) 남자들이 많을 때랑 없을 때 (분위기가) 아예 다르다. 하다못해 집회 신고를 하러 갈 때도 똑같이 준비해서 가도 여자가 가면 안 해준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아는 오빠를 부르는데 그 오빠가 오면 일이 바로 처리된다. 나이 있는 남자가 한 명 왔을 뿐인데 두 시간 고생하던 일이 30분 만에 끝난다. 그 사람들에겐 어떤 일을 하냐도 중요하지만 누가 하느냐가 정말 중요한 거다.

 

-광개토: 젠더 권력이 확실히 느껴진다.

 

-지안: 은혜 얘기를 들으면서 너무 많은 일이 생각났다. 검은 시위할 때도 2~300명이 모였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두 명뿐이었다. 우리가 평화적으로 시위를 진행할 거라고 짐작하고 우리를 안 무서워하는 거다. 그때 강남역 10번 출구’, ‘불꽃페미액션’, ‘페미당당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우리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거 아니냐?”, “너희 지금 우리를 물대포로 쏘지 않은 걸 후회할거다. 우리가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인 줄도 모르고라고 얘기했었다. (모두 웃음) 아까 은혜 씨가 반공 할아버지얘기를 하셨는데, ‘페미당당페미존을 운영하면서 혐오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 페미존의 '혐오 대응 매뉴얼' 

출처 : 지안 제공



 

-지안: 매뉴얼을 만들면서 혐오 형태에 따른 분류를 했는데 첫 번째로 사진형이 있다. “미스코리아보다 예쁘네~” 하면서 얼굴 찍어가는 유형이다. 항상 술 냄새가 나고, “사진 찍지 마세요. 다른 곳으로 가세요.” 하면 엥 내가 뭘 잘못했다구 미안합니다~”이러고 간다. 두 번째는 방해형, 위협형이 있는데 말 그대로 와서 위협하는 유형이다. 대부분 관심종자라서 사과하라고 하면 사과도 오래 한다. 그냥 가라고 해도 계속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끊임없이 사과한다. 그다음으로는 조언형이 있다. 와서는 시위를 이렇게 하면 안 되지! 더 강렬하게 해야지!” 참견한다. 칭찬형도 있다. “어린 여학생들이 기특하네~” 자기 딴에는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하려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여기 나와서 이러고 있어?” 이런 식으로 참견한다. 마지막으로는 질문형이 있다. “페미니스트가 뭐야?” 계속 물어본다. 그러면 저희는 여자도 사람이랍니다~”라고 대답한다. (모두 웃음)

-현수: 어린 여자를 보면 정말 가르치려고 든다. 우리 동아리는 한 학기에 일본군 위안부와 평화에 관련된 책을 몇 십 권씩 읽는데 와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훈계한다. 내가 더 잘 아는데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어린 여자를) 가르침의 대상으로 보는 게 너무 투명하게 보여서 안타깝다.

-지안: 다가와서 쉽게 만지는 것도 싫다. 저번 시위 때 자경단 활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사람들이 안전하게 집회에 나오게 하려고 (자경단 활동을) 하는 건데 최전선에 서다 보니 우리가 위험에 노출됐다. 지난 집회에서 방해형에게 집회 진행 중이니 비켜달라고 요청했더니 내 몸을 쓱 만졌다. 너무 당황해서 왜 남의 몸을 동의 없이 만지세요? 사과하세요.” 하니까 웃으며 미안하다고 했는데 너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백번 말하는 것보다 더 무력해졌다. ‘내가 어떻게 해야 저 사람들에게 우습게 보이지 않을까?’ 고민스러웠다. 내가 아무리 스터드 천 개 박힌 옷을 입고 무기를 들어도 웃길 것 같았다. 그럼 자경단을 남자로 해야 하나? 그럼 나는 정말 약한 건가? 더 무력해지는 것이다. 그러던 와중, 다음 시위의 페미존에서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페미존 사람들이 다 같이 사과하세요.”, “비켜주세요.” 외쳐주었다. 무척 힘이 됐다.

페미니스트들이 전체 운동 약화시키는 거 아니냐, 페미니스트들 프락치다, 페미니스트들 어둠의 친박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의 반복과 변주인 것 같다. DJ DOC 무대가 취소됐을 때도 (시위에서)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는 게 박근혜 퇴진이라는 대의를 위한 동력을 약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항의가 많았다. 페미니스트 시국선언에도 썼듯, 어떤 사람한테는 페미니즘이 조개 줍는 일로 보이겠지만, 그 사람들한테는 조개로 보이는 게 우리한테는 상처 입은 사람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부패 정권만을 해일로 생각하겠지만 여성에게는 일상적으로 겪는 여혐이 해일 그 자체다.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전체 동력을 약화시킨다고 하지만 그 사람들이 말하는 우리속에 여성은 배제되어 있다. 그래서 (페미당당은) 비가시화되는 사람들을 우리속으로 끌어오고 공론장에서 우리 자리를 되찾기 위한 싸움을 하는 거다. 그런데 진보진영 내에서도 전체 동력을 약화시킨다는 공격이 들어오니 생각이 많아졌다. 난 누구랑 싸우는 건가?




11월 26일, 제 5차 촛불집회에서 있었던 페미당당 시국선언

출처 : 페미당당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pg/femidangdang/videos/?ref=page_internal)

 



광개토: 진보성향을 가지고 있는 단체 내에서도 낙차가 많이 느껴진다. 소라 씨 같은 경우에는 녹색당 당원이신데, 녹색당은 진보성향이고 당 특성상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인데도 그 안에서도 많은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소라: 녹색당은 정당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정당은 하나의 가치만을 이야기할 수 없다. 녹색당은 특히 차별에 반대하고 혐오에 반대하며 모두가 함께하는 세상을 꿈꾸는 정당이라 단 한가지만을 중요하게 여길 수 없다. 먹거리, 동물권 보호 등 (주제가 다양하다.) 동물권 보호를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부딪히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개 같다라는 말이나 박근혜에게 이라고 얘기하는 건 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느낄만한 단어들이다. 여성도 이라는 단어 들으면 스트레스를 받듯 말이다. 그래서 모두 평등을 이야기를 하자고 합의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전제하에 만든 매뉴얼이 평등문화약속문이다당 공식 행사를 할 때는 반드시 평등문화약속을 읽고 시작한다조항 1번은 성별·성적 지향·성 정체성·장애 여부·국적·나이·지역·출신 등에 관한 모든 차별을 지양하자는 내용이다어떤 한 사람이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발언을 했다면 다 같이 항의하고 저항할 준비를 해야 한단 내용도 평등문화약속문에 포함 돼 있다.

 




녹색당의 평등문화 약속문

출처 : 녹색당 공식 트위터 

(https://twitter.com/greenpartyk/status/754929658332782596)

 



-소라나는 **지역운영위원장을 하고 있는데, 올해 처음 총회가 성립돼 지역을 이끌어 나가게 됐다. 회의를 하기 전에 약속을 만들고 이끌어 나가야 할 거 같아서 첫 회의 때 평등문화약속문으로 회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50대 당원 한 명이 그것은 국민학교 다닐 때 나라에 충성하는 선언문을 떠오르게 한다며 이건 폭력적이라고 문제제기를 했고, 나는 거기에 설득 당했다. 평등문화약속문을 이야기하자고 강요를 했는지 긴가민가했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아니었다. (현수: 인권선언문도 폭력인가?) 평등문화약속문의 내용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폭력이라는 거다. 그 뒤로 무조건 평등문화약속문을 프린트해놓고 회의를 했다.

정당의 딜레마가 있다. 녹색당에서는 지적질을 환영한다고 해놓고 내부가 끈끈해야 한다는 명목아래에서 지적질을 참게 한다. 당원에게 잘못된 발언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된다고 하면 먼저 사과를 하고 인정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왔고 자신은 앞으로도 조심할 거기 때문에 이해해 달라.’라는 말이 따라온다.

메갈리아 티셔츠 사건이 일어났을 때 청년 녹색당에서 관련 논평을 냈다. 우리는 성우를 지지하고 넥슨을 규탄한다고. 그런데 당원 게시판에 어떤 사람이 청년 녹색당 논평 철회하라는 글을 올렸다. 요지는 당원 모두의 의견도 아닌데 어떻게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논평을 낼 수 있는가였다. 게시판에 불이 붙었다. 원래는 이용이 활발하지는 않은 편인 게시판인데. (모두 웃음)

최근에는 당내에서 성폭력 사건도 있었다. 성폭력 가해자가 청년녹색당 운영위원장이었기 때문에 입장 정리를 빨리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 사람들은 가해자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면서, 생존자가 계속 말을 바꾸고 있다고 비난했다.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자기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잘 파악을 할 수 없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당원들도 (이 사태를 어떻게 대처할지) 잘 몰랐던 거다.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녹색당 안에서 사람들이 이제 뭘 공부해야하는지는 깨닫고 있는 거 같다. 그래서 희망이 있는 거 같다.


-은지: 나는 2학년 때 국사학과 학생회를 했었다. 그 때는 (여성주의적인 문제와 관련해) 별다른 걸 느끼지 못 했다. 그런데 지켜본 바로는 과대가 항상 군필 남성이더라. 내가 수료를 마친 지금까지도 과대는 군필 남성이 도맡아 했다. 학교 기구로는 반성폭력위원회가 총학생회 산하에 있었지만 불과 2년여 만에 인준이 부결되었다.

 



전학대회에서 반성폭력위원회 인준이 부결되자 이에 항의하는 가톨릭대 학생들의 대자보가 학교 곳곳에 붙었다.

출처 : 은지 제공

 



-은지: 학내 자치활동이 미비하고, 학교 분위기도 트러블을 만들지 않는 조용조용한 편이라 전학대회에서 웬만하면 (안건이나 인준이) 가결되기 마련인 곳이다. 그런데 반성폭력위원회가 페미니즘적이라는 말이 퍼지면서 부결처리가 된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올해 성평등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인준 준비를 했는데 역시나 부결되었다. 교내에서 화장실 몰카 사건 등 (성폭력에) 관련한 사건이 다수 발생한 학교인데도 말이다. 학내 상설 기구가 있어야 대처가 가능하고, 예방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광개토: 학내 자치기구 임원 중 여학생 비중은 어떻게 되는가? 여학생들이 임원을 할 수 있는 분위기인가?


-은지: 전과생들이 말하길 남학생들이 여학생들 옷 입는 거 품평 안 해서 좋다(여성혐오적인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낫다)고는 한다. 그렇지만 과내에 남자가 많고 무의식적으로 스며들어있는 여성혐오적 심리는 무시 못 하는 것 같다. ‘야 그래도 (임원엔) 군필 남자가 낫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현수: 나는 경영대에서 부학생회장을 했었다. 후보 중 제일 표를 많이 받은 1등이 정, 2등이 부를 맡는다. 1년이 지나고서야(임기가 끝날 때) 내가 정보다 표를 더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직속선배가 군대 가고 나서 이야기해줬는데, 선배들이 여자가 정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던 거다. 여자는 그래도 부를 해야 하고 남자는 정을 하는 게 맞다고. 게다가 정은 3월부터 잠수를 타서 1년 동안 혼자 일을 해야 했었는데. 놀랍게도 2012년의 이야기다.


-광개토: 이런 분위기면 여학우에 대한 공약이 안 나올 것 같다.


-현수: 리더십 있고 목소리 크고 술 잘 먹는 건 남자가 더 잘한다고, 남성 임원을 뽑는 거다. 여성의 목소리를 지우는 거다.


-지안: 1학년 때 새터(새내기 배움터)에 갔을 때 반성폭력 교육을 맡은 선배들이 생리대 여기 있으니까 부끄러워 하지 마세요. 아 부끄러워~”, “그런 일이 생기면 외치세요. 반성폭력!” 이런 식으로 장난처럼 교육을 진행했다. 그런데 그 날 밤, 같이 술을 마시던 남자 동기한테 강제로 키스를 당했다. 그때 떠오른 말이 반성폭력!’ 밖에 없어서 반성폭력!” 외치면서 도망쳤다. (반성폭력교육에서)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식으로 교육받았고 당시에 성추행이라고 인식도 못 했기 때문에 2년 동안 말을 못했다. 내가 먼저 꼬리 쳤다는 둥, 행실이 안 좋았다는 둥 나쁜 소문이 날까봐 두려웠다.

14년도에 '반성폭력''어울림'으로 이름이 바뀌고, 15년도에 인문대 새터 어울림 전체 공동팀장을 맡았다인권 단체에 자문도 구하고 역할극도 하고 매우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교육을 받은 일학년 반 중 한 반에서 카톡방 사건이 터졌다. 무력감이 들었다.

 



지난 711일 서울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는 서울대남들의 카톡방 성폭력 고발했다.

출처 : 2차 중앙일보 <'서울대 단톡방 성희롱' 논란 이는데 학생들은 "카톡 공개는 인권유린" 반응?>

(http://news.joins.com/article/20290706)

 



-지안: 당시 나와 공동으로 어울림 팀장을 맡았던 사람이자 올해 인문대 회장이었던 남자가 있는데, 새터에서 성폭력 가해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지금 진조위(진상 조사 위원회)가 꾸려졌다. 작년에 어울림 팀장을 했던 사람이 가해 지목인이 된 것이 충격적이었다. 이후 진조위(진상 조사 위원회)를 꾸리자는 안건으로 임시 전인대회(전체 인문대 학생 대표자 회의)가 열렸었다. 그런데 한 참관자가 손을 들고 피해자와 가해자 개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왜 전인대회까지 끌고 오냐고 하더라.

이러한 학내 성폭력 사건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계속 피해자에게 대한 정보를 밝히길 요구한다고 한다. 피해자는 피해 사실만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자세하게 정보 공개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부담감에 시달린다. , 인문대 내에 반성폭력 내규가 없었다. 매뉴얼이 없어서 실수를 하게 되는데 실수에 대한 책임을 모조리 피해자가 떠안게 되고 매뉴얼을 찾아보는 것도 피해자 책임이 되어버린다.

학교 커뮤니티 내의 여성 혐오적인 분위기도 심각하다. ‘애초에 진짜 성폭력이었으면 사법 신고를 해야 했던 거 아니냐고 한다. 피해자들은 좁은 인간관계 내에서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나 때문에 분위기가 껄끄러워질까봐,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을 와해시킬까봐 신고하길 꺼린다. 신고한다고 해도 신체적인 손상이 일어난 것이 아니므로 경찰 측에서 합의하길 종용한다. 이런 점들에 대해 전혀 고민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떳떳하면 왜 신고를 안 하냐고 하니 답답하다.

앞서 말한 성폭력 가해지목인은 지금은 인문대 회장 자리에서 사퇴한 상태이다. 새로운 인문대 회장이 당선됐는데 그 사람이 총운영위원회 및 전임 신임 학생회장 대면식 겸 뒤풀이에서 또 성폭력 가해를 했다고 한다. (모두 탄식)

 

-광개토: 이쯤 되면 남자를 왜 뽑는지 알 수 없다.

 

-지안: 여자가 큰일을 해야 한다. 정의당 여성주의자 모임, 정의당 여성주의 위원회, 정의당 이대 특위 분들이 페미존에 오셨는데 다른 당 창당 모임에 너희가 왜 가냐부터 시작해서 아예 정의당 당게(정당 게시판)가 테러 당했다. 정의당 여성위원회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너희 프락치 같은데 이럴 거면 정의당에서 나가라고 한다. 정의당 이대 학위의 경우는 정의당 구성원 중 일부에게 페미존 가지 마라, 갈 거면 이대 학생 위원회 이름 떼고 나가’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임시 명칭을 만들었다. 위원회가 아니다. one회다. (모두 웃음) 그런 식으로 정당 내에서 공격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은지: 진보 남성들의 수준이 처참하다.


-소라: 노란색 당 남자 당원들이 1년에 한 번씩 교육하는 걸 갖고 교육 열심히 한다고 그렇게 자랑을 한다.


-현수: 강간 안 한다고 성추행 안 하는 게 아니다. (웃음)


-지안: 너무 시혜적으로 나 공부하고 있으니까 봐달라고 한다. 어쩌라고.


 

Q.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는 페미존이 나타나고 소수자 혐오 방지 매뉴얼이 등장하는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 한편, 여전히 길라임ㅋㅋㅋㅋㅅㅂㅋㅋ미친년ㅋㅋㅋㅋㅋ이라고 쓴 플랭카드가 풍자로 소비되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앞서 언급한 대자보는 여성혐오적인 시위에 보이콧을 주장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안: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 못 나오는지, 왜 나가기가 두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혐오에) 익숙해진다고 무섭지 않은 것도 아니고, 너무 자주 일어나서 지겨워진다고 괴롭지 않은 게 아닌 걸 안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 텔레그램 방에서도 여러 가지 대응 방안 얘기가 나왔었다. “DJ DOC 노래를 공론장에서 튼다면 보이콧을 하자고 주장하시는 분도 계셨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혐오적인 분위기 때문에 못 나오는 여성, 청소년, 장애인, 퀴어들에게 혐오 프리존을 제공해 (시위 참여가) 쉬워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페미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DJ DOC의 노래 수취인 불명에서 수취인이 박근혜라고는 하지만, 유명한 페이스북 글처럼 광장에서 수취인 불명이 울려 퍼지게 되면 그 노래를 듣게 되는 수취인은 누군가? 바로 옆에서 같이 싸우자고 나온 여성들이다. 그 순간 그 여성들의 존재가 비가시화되고 목소리는 지워질 것이다. 그 고통을 감내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여러 사람이 보이콧하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페미당당이나 나의 역할은 페미존을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위) 11월 12일 열린 촛불집회 페미존에 모인 사람들.

(아래) 페미존에 모인 깃발들.

출처 : 페미당당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femidangdang/)




-소라: 나는 (시위에) 나가기로 했다. ‘범국민대회’, ‘민중총궐기아닌가? 지금 이 사회에서 누가 궐기를 하느냐를 보여주는 것이 집회다. 페미존을 통해 페미니스트, 소수자들이 나와서 우리가 있다고 보여주는 게 집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같이 나왔으면 좋겠고, 나도 참여하는 거다.

녹색당의 경우 이번 집회 때 탈핵을 키워드로 들고 나갔다. ‘박정희가 시작한 핵발전소 박근혜 때 끝장내자란 슬로건이었는데, 이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왜 하냐고 욕을 많이 먹었다. 그런 지적이 들어왔을 때 여기는 범국민대회고 같이 얘기해야할 다양한 주제가 있으며 당신이 알아가야 된다는 것을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보이콧을 주장하지 않는다.

 

-현수: 보이콧을 함으로써 집회에서 페미니스트들이 다 빠지면 집회는 결국 바뀌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정의당에서 못하겠다고 나가면 정의당이 바뀔까? 녹색당에서 못 버티고 나가면 녹색당이 바뀔까? 내가 학생회를 할 때 못 버티고 나갔는데 안 바뀌었다. 지금도 쓰레기다. 물론 나간 사람은 피해자이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없지만 행동하지 않으면 결국 바뀌지 않으니까 설득해서 같이 가고 싶다.


-은지: 보이콧에는 대안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집회에서 페미존을 만들고 움직이는 것처럼 대안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사실 집회는 쪽수다. 어쨌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페미존에 있고, 그게 여성운동으로 가시화된다면 그 자체가 보이콧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지안: 처음 페미존 시작했을 때 집회에 참석한 아저씨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나와 있냐?”고 핀잔을 줬다. 순간 공부는 아저씨나 하세요.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라고 선창을 했더니 사람들이 다 따라 하더라. ‘우리가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통해 어쨌든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꿀 거고,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궁극적으로는 페미존이 생길 필요가 없어지고 집회 전체가 페미존이 됐으면 좋겠다.

 


Q.임신 중단의 자유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검은 시위가 1015일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검은 시위의 존재를 모른다. 여성 운동, 여성 정치를 가시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


-광개토: 개인적으로 유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메갈리아나 워마드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미러링에서 해방감과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메갈리아나 워마드의 유머는 마이너스 유머였고, 이제 플러스 유머가 필요하지 않을까.


-지안: 검은 시위 주최를 했던 사람으로서, 질문지를 받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홍보를 더 해야 할까? 아니면 이제 남은 길은 죽이는 길밖에 없나? (모두 웃음) 주변에서 유럽 페미니즘, 선진 페미니즘 하라고 하는데, 그럼 이제 죽이는 수밖에 없다.(웃음) 나는 정말 모르겠다. 방금 광개토가 유머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는데 공감이 간다. (그 일환으로) 시위에서 찬송가를 개사해서 불렀고, 모임도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한다.

시위 이후 낙태죄 관련 오픈세미나를 했는데 국제연대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검은 시위에서 폴란드나 아일랜드나 아르헨티나 등 서구 페미니스트들과 연대를 했었는데, 세미나를 하다 보니 서구의 낙태죄와 한국의 낙태죄의 맥락이 전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인도나 필리핀,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시기에 서구에서 낙태, 산아제한 정책이 정부 주도 하에 한국에 수입되었다. 서구 국가들뿐 만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과의 연대가 필요할 것 같다.


-광개토: 국내 개인과 개인 연대 필요성도 커 보이는데.


-지안: 20대 여성 액션 그룹에 있는 여성으로서 고민이 많다. 메갈리아 활동을 하다가 소송을 당한 개인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 사이에 남아버렸다. 나는 우리 시대의 페미니즘이 망한다면, 원인이 연대할 방법을 찾지 못 해서라고 생각한다. 연대체를 꾸리고 있는데 난제가 많다. 인터넷에서만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은 파편화되어있고, ‘꿘충혐오와 같은 결벽이 있다. 단체가 아닌 개인이어야만 하고, 친목하면 안 되고, 그런 것들이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페미니스트들이 소송을 당했을 때 어디에 도움 요청하기가 훨씬 어렵고, (여성혐오적인 바깥 분위기에) 쉽게 입막음을 당한다.


-현수: 주변에 페미니즘에 공감하는 사람을 굉장히 많이 봤다. 여자인 친구들은 낙태 등의 이슈에 쉽게 공감한다. 그런데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오해한다. 사람들이 보는 페미니스트는 항상 화나있고, 합리적이지 않고, 공격적이고, 여성우월주의자들이고, 남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존재다. 성폭력 사건이 다 없어져야 된다는 내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내가 페미니스트 같지 않다고 말한다.


-광개토: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빼앗겼다는 느낌이다.


-현수: 마치 새누리당한테 평화통일 뺏긴 것처럼. 대학원 진학 준비를 하면서 면접 스터디를 하는데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다. 내 말에 동의를 다 하면서도 본인이 페미니스트는 아니라고 여긴다. 이게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프레이밍 싸움을 해야 하지 않나. 지금 시위가 평화시위의 프레이밍에 갇힌 것처럼, 당한 거다.


-지안: 우리는 페미니스트의 역사를 모르고 계보를 모른다. 우리 이전엔 호주제폐지 세대, 1.5세대, 90년대 영페미니스트가 있는데 90년대 영페미니스트는 위 세대를 부정해서 윗 세대와 사이가 안 좋다고 한다. 1.5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우리는 모이면 선배들 욕을 하는데 너희도 그러지 않냐고 했다. 우리는 모르니까 욕을 하고 말 것도 없다. 아무도,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민경의 페미니즘 실용서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은 

역사 속에서 쉽게 지워진 여성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한 책이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이후, 페미니스트 여성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출처 : 텀블벅 봄알람 출판프로젝트 페이지

(https://tumblbug.com/baumealame1)

 



-지안: 90년대 영페미니스트들에게 행사에 나와 달라고 연락하면,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모두가 그래서 이름이 남아있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이름을 박아야겠다고 느꼈다. 우리가 역사가 되자.


-광개토: 기록이 필요하다는 말로 들린다.


-지안: 남자들은 업무에 조금만 발을 담갔어도 그걸 내가 했다고 강력히 주장하는데, 여자들은 했어도 나는 별거 안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우리가 했다고 생색내고 싶다. 우리가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봊풍당당한 자세를 견지하자. 여자가 큰 일하는데 실수 좀 할 수 있지, 여자애가 뭐 다치고 좀 깨지고 그럴 수 있는 거지 이런 말을 듣고 자랐으면 얼마나 자유로웠을까.


-광개토: 이번에 좋은 말이 많이 나왔다. 기록을 하자, 연대를 해자, 배포를 크게 가지자. 다 좋은 방안이다.


-은지: 뚜렷한 성과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시니어 페미니스트들이 호주제 성과를 얘기하듯이, 성매매 특별법은 논란이 있지만 이를 성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낙태죄 폐지를 우리의 성과로 여기면 어떨까.


-지안: 작지만 낙태죄 폐지를 전리품으로 남기고 싶다.


-현수: 승리의 경험이 중요하다. 어떤 세대는 독립을 했고 어떤 세대는 민주화를 만들었는데, 2-30대는 뭘 했냐는 소리만 듣는다. 해봤자 안 되니까 정치에 무관심해지고, 냉소하게 된다. 페미니스트들도 마찬가지다. 작은 범위에서든 큰 범위에서든,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하나 승리하는 행보라고 생각한다. 여러 매뉴얼도 나오고, 논란이 있든 없든 DJ DOC 공연도 취소 됐다. ‘그래, 우리 이 때도 이겼어!’라는 생각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Q.내가 뽑는 2018 대통령. 내 맘대로 후보!


-광개토: 6번 질문은 약간의 유머와 함께 만들어 봤다. 개인적으로 나는 키우는 햄스터를 밀고 있다. 이 친구가 임기를 채울 수 없다는 게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일 정도로 정말 괜찮은 후보다. 내 친구들은 모두 밀고 있다. (모두 웃음) 여러분이 생각하는 후보로는 누가 있는가?

 

-현수: 현실성 측면에서 햄스터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진선미 의원이 했으면 좋겠다. 그분은 대표적인 꿘 페미니스트로서 계속 시민운동 하시다가 정치권으로 가신 건데, 그런 분이 성공하면 그게 또 하나의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희 동아리는 우리 나중에 꼭 성공하자고 한다.


-지안: 스타 만들기 정말 중요하다.


-현수: 맞다. 우리는 다 전문직 되기로 약속 했다. 평화나비하면 다 약사 되고, 변호사 되고, 정치인 되는 걸 이렇게 보여줘야 다들 도전할 것 아닌가? 지금 여성 운동하시는 분들 다 내려놓고 하시는 건데 (도전하는 것에 대해서) 당연히 성공할 거라고 말은 못해주지만 그런 사람도 있다고 보여주는 게 엄청 유의미하지 않을까 한다.


-지안: 성공한 롤모델의 존재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이번 해에 나는 불행한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왜냐하면, 미쳐서 자살해버린, 정신병원에서 죽은 불행한 페미니스트의 서사는 이미 많기 때문이다. 행복한 페미니스트의 형상을 계속 그리고, 보여주는 게 매우 중요한 것 같다. 힐러리도 하나의 롤모델이 될 수 있었는데 트럼프한테 져서 너무 슬프다. (모두 눈물)


-현수: (트럼프 당선이) 미국 청년들한테 엄청난 영향을 끼칠 거라고 본다.


-지안: 힐러리 연설 중에 정말 큰 패배지만 내가 깨지 못한 유리천장을 깰 사람이 생각보다 더 빨리 나올 것이다.”라는 말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내가 미는 후보는 페미당당의 수령인 심미섭이다. 인도 불교 철학을 전공하고 있다. 페미당당 사람들이 계속 정치하라고, 대통령 하라고 꼬시고 있다. (광개토: 후보로 추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무척 똑똑하고 말을 우아하게 잘한다. 인권 감수성도 뛰어나고 루키즘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름답다. (모두 웃음) 스타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

 


Q.후기

 

-은지: 열심히 하시는 분들을 보고 배우기도 많이 배웠고 지금 딱히 단체나 정당을 하고 있지 않아서 나도 뭘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지쳐서 쉬고 있었는데 역시 싸워야 되는 구나, 가만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 이런 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강남역 10번 출구 이후에 페미니즘이 이런 물살을 타기 시작한 게 사실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말을 못하고 있다가, 누가 말을 꺼내니까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고민하고 우리는 돌아가더라도 바른길을 갈 거라고 서로 확신을 주는 게 좋은 것 같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지안: 사실 이야기를 한 번 더 반복해야 하다 보니 인터뷰를 준비하는 것 자체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막상 와서 이야기해 보니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측면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대회담에서 이야기해봤으면 좋겠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소라: 오늘 (인터뷰) 오기 전에 누군가를 설득할 일이 있었다. 진이 다 빠져 말을 많이 못 한 게 너무 아쉽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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