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특집>[인터뷰]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페미니스트, 신지윤을 만나다.

-페이스북 대나무숲들여다보기.

by.광개토

 


 

대검찰청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4년 검거 기준 폭력 범죄 중 가해자 남성의 비율은 50퍼센트를 넘는다.[각주:1] 우리가 뉴스를 통해 접하는 폭력범죄 가해자들 역시 대부분 남성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아니, 어쩌면 지구상에 태어나 숨 쉬는 인간 종이라면) 폭행범을 그리라고 할 때 남성체를 그릴 것이다. 폭행범하면 남성을 떠올리도록 정형화되어있다니! 대한민국은 이토록 심각한 남성혐오 사회인 것이다.

8월의 어느 날. 한 대학교의 페이스북 대나무숲 페이지에서도 남성 혐오는 일어나고 있었다. ‘술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배를 폭행한 선배가 있다는데 정말인가요?’라는 글이 올라왔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폭행범의 성별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한국처럼 남혐이 심한 나라에서, 폭행범은 물어볼 필요도 없이 남성이기 때문이다.

이때, 한 비-남성혐오-페미니스트가 의연하게 일어난다. 그 이름은 신지윤. 그는 페미니스트답게 편견에서 벗어나 남성이 폭행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폭행범의 성별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나 지독한 남혐주의자들은 신지윤 씨의 이러한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남성 가해자인 게 분명한데) 성별을 묻는 진의가 의심 된다고 댓글을 달며 모욕할 뿐이었다.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당신은 폭행범이 남선배라고 생각했나, 여선배라고 생각했나? 신지윤 씨의 행동은 누군가 분란을 조장하지만 않았다면 굉장히 성평등한시선이었다. 대체 누가 성별 분란을 조장하고, 불평등을 만들어 내는가?


9월에 나올 <월간 여기> 3호 회의 중, 필진들은 이 질문에 답을 제시하지는 못하더라도 단서가 될 만 한 사건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다. 모두의 적극적인 동의 아래에 케이트 맥키넌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신지윤 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우리에게, 당신이 본 페이스북 대나무숲 속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물론, 그에 대한 대답은 이 뒤로 이어진다.

 


 

1.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여성억압공기가 심각한 대한민국 사회의 한 여성으로서 여성 권리를 적극적으로 외치고 있는 페미니스트 신지윤이다.

 


2.현재 경희대 대나무숲을 비롯한 경희대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부탁한다.

 

817일 수요일 페이스북 경희대 대나무숲에 익명 제보가 올라왔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이유로 후배를 폭행한 선배가 있는 게 맞냐는 익명제보에 충격적이네요. 폭행범 성별이 어떻게 되나요?’라고 묻는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남학우들 3-4명 정도가 역시 페미니스트라 성별이 궁금한가 보네요.’, ‘왜 성별을 물어보나 했더니 타임라인 들어가 보니 끄덕, 납득’, ‘페미니스트라서 그런 질문 하는구만?’ 등의 답글을 달았다. 가해자의 성별이 남성일 것이라는 가치개입 없이 성별을 물었을 뿐인데 왜 남학우들이 이런 반응를 보이냐고 반박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질문에 의도가 있을 거라는 몰아붙임과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조롱과 욕설이었다.



 


경희대 대나무숲 페이지 관리자는 해당 덧글 작성 후 신지윤 씨를 차단했다.

 



대나무숲 관리자는 내 댓글에 답글이 200개 정도 달릴 때 까지 기다리다가 내 댓글만 삭제하고 나를 차단했다. 분란을 조장한다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나에게 진짜 페미니스트운운하던 남학우들 역시 차단을 해야 옳다. 차단된 사람은 나뿐이었다.

남은 것은 나에 대한 조롱뿐이었다. 나의 목소리를 흔적도 없이 지운 것은 물론, 뒤늦게 본 학우들이 당시 상황을 모르도록 맥락을 아예 잘라버린 것이다. 대나무숲 관리자는 학우들이 이 상황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만한 기회 자체를 없앴다.

 


3.페이스북 페이지인 대나무숲 여성혐오를 정면으로 맞았다.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4가 삭제와 재생성을 반복했던 일과, 최근 대두된 각 대학 커뮤니티의 여성혐오가 교차한 지점이 각 대학 대나무숲 페이지다.

각 대학, 특히 경희대 대나무숲에서의 여성혐오는 어떤 양상인가? 에브리타임과 그 외 경희대 대학 커뮤니티 내에서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던가?

 

초반 나는 오빠가 허용하는 온건조신한 텍스트, 페미니즘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텍스트를 경희대 대나무숲에 여러 번 제보했다. 이 글은 내가 페이스북 개인 계정에서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며 썼던 글 중 하나이기도 하고, 꽤 많은 좋아요를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내 글은 단 한 건도 대나무숲에 업로드 되지 않았다.


 



신지윤 씨는 위 글을 경희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제보했지만 페미니즘 글이라는 이유로 필터링 당했다.


 


여성혐오적인 글은 잘 실어주면서 내 글은 필터링 했다. 적어도 페이스북의 대나무숲 관리자는 여성의 계몽을 두려워하는 분위기라는 걸 확신했다.

내 제보가 필터링당한 이후, 페이스북 페이지에 성별을 묻는 댓글을 달았다. 그랬더니 필터링당한 내 글을 보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남자 선배들이 폭행범의 성별을 물었다는 것만으로 모두 떠났다. 남자 선배들 뿐 아니라 여자 선배,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에브리타임에서는 나를 매장시키겠다거나, 일베에 올려 신상을 털어보겠다는 둥의 이야기가 오갔다. 일베가 사회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성별 분란 조장을 일으킨 나를 처단하기 위해서는 일베의 손을 빌리길 원한다. 성별 분란이 (일베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에브리타임 경희대 게시판에 올라온 글. 이후 지속적인 모욕이 계속됐다.

(이미지=©신지윤)

 



그러다 서울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내 이야기가 올라왔다. 내가 매장당한 일련의 사건을 봤는데 내가 분란조장자가 맞다는 내용이었다. 알던 친구들, 선배들도 모두 쫓아가서 동조하고 그러니까 왜 성별을 물어봐?’라는 댓글을 달았다.

 

Q.페이스북 대학 대나무숲 페이지 관리자들이 학우들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검열, 차단하고 있다는 말이 심각하게 들린다.

 

페이스북 대나무숲 페이지 관리자들은 관리자들만 모이는 전국적인 규모의 단톡방이 존재한다. 트위터에서 나의 일을 공론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톡방의 존재를 알려온 분이 계셨다. 이분이 보내주신 자료를 보자마자 왜 내 제보가 필터링 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 관리자들끼리 모여 페미니즘에 대한 제보는 올리지 말자는 이야기를 나눈다. 페미니즘은 누군가에게 규제, 검열당하는 중이다. 여기에 서울의 모 여대 대나무숲 관리자 역시 동조하고 있었다.

 




페이스북 대학 별 대나무숲 페이지 관리자 단톡방에서 페미니즘에 관련된 제보를 거르자는 의견이 논의되고 있다.

(이미지=©신지윤)



 

여성혐오적인 제보글은 필터링 없이 올린다. 거기에 페미니스트들이 항의하면 좌표 찍고 쿵쾅대면서 온다’, ‘그 분들이 오셨다고 조롱한다. 사실상 대나무숲 관리자들은 보다 조직적으로 단톡방을 꾸려서 우리 대숲이 난리 났으니 지원을 와 달라고 여론을 조작한다. 일반 학우인 양 와서 여론을 조작 중인 대숲 관리자들도 있다.

 


4.사건에 대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얼마 전까지도 친했던 사람들이 괴롭히겠다는 목적으로 가계정을 만들어서 페이스북으로 모욕적인 말을 보낸다. 동기들, 선배들이 공개 모욕에도 가담하고 있다. 모르는 번호로 협박전화를 받기도 했다. 집주소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쫓아와 해코지를 할까봐 현재는 집에서 지내지 못하고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내가 당한 피해를 캡쳐해서 올리면 얼마 전까지 친했던 사람들이 ‘(자기 신상은 중요하면서) 같은 학우들의 신상 터는 것에는 아무 생각 없는 경희대 페미니스트님~’이라고 조롱한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과, 나의 반격을 같은 취급 하는 것이다.

 


5.사건에 관련해서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가 있나? 국제캠 총여학생회라던지.

 

없다. 오히려 서울캠 총여학생회 회장의 연락은 받았다. 교내의 여성주의 단위가 도움을 준 적 역시 없다. 성평등 센터가 있고, 후마니타스 정신을 강조하는 만큼 진보적인 줄 알았지만 대나무숲 페이지에 댓글을 단 이후 교직원이나 교수들 중 누구도 도움을 주고자 연락해온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 교육부에 민원을 넣자 그제야 긴급회의가 소집됐다고 한다. 91일 즈음 성평등 센터 상담가에게 전화가 왔다. 어떤 대처를 원하냐기에, 페이스북 가계정을 파서 성희롱, 강간 위협을 한 학우들에게 강력한 조치를 취하길 부탁했다. 회의를 해보고 연락해주겠다고 하지만 늦은 대처다.

내가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온라인 페미니스트 개개인들이다. 민우회나 한국 여성의전화에 도움을 요청해보라고 권하거나, 개인 블로그에 글을 써 사건을 알려주신다. 트위터 RT를 통해 공론화를 도와주고, #신지윤님을_응원합니다 해시태그 운동도 진행해주셨다. 종종 힘을 내라며 기프티콘을 선물해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모두 감사드린다.

 


6.곁에서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어떻게 공포를 견디고 있나?

 

응원해주시는 분들의 따뜻함을 보고 힘을 얻기도 하지만, 사람보다는 신념에서 힘을 얻고 있다. 나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모든 것을 내놓고 행동하는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예전엔 가족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지윤이 사진이 익명 사이트에 올라왔는데 괜찮아?’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일베에 내 얼굴이 올라와도 무섭지 않다. 나의 준거는 젠더 이퀄리즘, 원동력은 성평등에 대한 간절한 염원에서 온다.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게 한다.

 


7.꽤나 적극적으로 활동 중인 페미니스트 중 하나이다. 한국의 젊은 페미니스트 활동가 중에서는 이름과 얼굴이 이렇게까지 알려진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하다.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태생부터가 페미니스트였다. 몰랐을 뿐이지. 초등학생 시절 같은 학생인데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의 가슴을 보고 아스팔트 껌딱지등 성적인 모욕을 하는 모습을 보고 너희 고추는 어떠냐고 반박했었다. 그때부터 분노했다.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억압성 발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런 현장을 목격할 때마다 투쟁해왔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이후 내가 페미니스트임을 깨달았다. 621일 즈음 sns에 페밍아웃을 했다. 그러면서도 메갈과는 거리를 뒀다. 그때는 메갈년이라는 낙인이 매우 무서웠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메갈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치환해 억압하려 드는 것이 두려웠다. 내 사진과 신상 정보 등을 가져가 악의적으로 공격할 것 같았다. 스스로 메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주변에 남자 인맥이 없어지는 걸 본인이 원하는 건가? 저 사람들 자폭하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혐오용어가 또 다른 혐오를 양산하는 것 같아 메갈의 워딩도 싫었다. 나는 메갈이 아닌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다.





1930년 1월 12일 조선일보 만평 '여성선전시대가 오면(2) (조선일보)'이 보여주는 여성혐오.

한국에서 페미니스트인 여성은 시대에 따라 

모던걸, 꼴페미, 김치녀 그리고 이제는 메갈로 뭉뚱그려 낙인찍힌다.




당당하고 떳떳했지만 왜인지 인간관계의 단절이 시작됐다. 그러다 페이스북 친구였던 여자 선배가 보이지 않았다. 나를 차단한 것이었다. 그 사람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여성혐오가 짙었다. 제대로 개념녀인 사람이었다. 선배에게 닿기를 바라며, 개념녀와 페이스북 페이지 유머저장소의 여성혐오에 대한 글을 써서 개인 계정에 올렸다. 그랬더니 85일 내가 쓴 글이 유머저장소에 박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내 글을 보고 뭐만 하면 여혐이라며 비아냥댔다. 글을 확인한 여자 선배는 학교 망신을 다 시킨다며 내 신상을 뿌리고, 페밍아웃 이후 마음껏 메갈짓을 하고 다닌다고 욕했다.

충격적이었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했을 뿐, 메갈을 한 적도 없는데 메갈이 됐다. 나는 무결한 줄 알았지만 메갈짓을 한다고 공개모욕을 당했다.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무슨 행동을 하든 세상은 나를 메갈년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를 메갈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메갈을 안 하는 개념 있는 페미니스트라는 코르셋을 이렇게 벗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진중권의 내가 메갈이다라는 내용의 논설이나 해시태그 운동 ‘#나는_메갈이다가 무척 통쾌했다. 이제는 나 스스로를 멧돼지윤이라고 부른다.

 






8.신지윤의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은 젠더에 초점을 맞춘 인류애라는 걸 알게 됐다. (공부할수록) 젠더를 넘어서 인종, 지역, 성별 등 태생적인 요소로 차별을 받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상식 외치기 운동 같다. 결국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표는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하면 행복해진다. 여성체에 대한 불결하고 야릇한 시선 자체가 문제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노브라로 다닐 수 있게 되면서 더 편안해진다. 사치를 부리지 않는 개념녀라고 인정해주는 이가 누구인지 깨닫고 나면 사치하는 데에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살고 싶은 대로 살게 된다. 남성들이 인정해주는 마이 웨이(my way)가 아닌, 배드비치(bad bitch) 소리를 듣는 마이웨이가 진짜 마이웨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나의 길을 찾아가는 행복한 길. 페미니즘은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사실, 페미니즘을 시작하면 괴롭다. 스스로를 책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내게 벌어진 일을 외신에 공론화 하자는 의견에 자연스레 백인 페미니스트인 엠마 왓슨을 찾았다. 그러자 누군가 왜 흑인 페미니스트는 찾지 않느냐?’라는 반론을 제기했다. 머리가 띵 했다. 레이시스트인 나를 발견한 것이다. 페미니즘을 하면 할수록 벗어야 할 코르셋이 많다고 느낀다. 자신이 얼마나 성차별적이었는지 매일 자아검열하고 반성하고 체크하며, 스스로를 책하면서도 미워하지는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가장 말하고 싶은 건 페미니스트는 주체적으로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가는 멋진 사람이란 점이다. 페미니즘은 궁극적인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다.

 

 

 

*신지윤 씨에게 일어난 사건은 한국과 일본 여성들의 국제적 연대를 돕는 모임, Stronger Together (http://strongertogether20160817.tistory.com/9)에서 보다 정확하게 확인이 가능하다.





필자 광개토.

광개토대왕님 만큼이나 넓은 (덕질영역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 덕후

최근의 즐거움은 세일러문 크리스탈과 오마이걸입니다.

  1. 검찰청 홈페이지, 2016.09.08., http://www.spo.go.kr/spo/info/stats/stats02.jsp.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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