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차게 실패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 <할머니의 수요일> 上

by. 연필


들어가며

:아무리 요즘 초등학생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해도

 

20177월과 8월 우리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더운 여름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우리 학교 페미니즘 학회 사람들과 함께 두 달간의 여름방학을 각종 세미나로 불태웠다. 그 중에는 내가 제안한 <아동문학에 드러난 여성혐오 분석과 비판> 세미나 역시 포함되어 있었는데, 세미나를 진행하면 할수록 회원들은 우리의 활동이 그저 우리들만의 공부로 끝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부딪혔다. 아무리 요즘 초등학생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해도, 이런 걸 보게 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초등교과서에 수록된 아동문학 작품들을 골고루 읽고 비판하자는 기존의 계획을 수정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유명한 작가들 중 한 명을 선정하여 그 작가의 책들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작가에게 비판의 메일을 보내는 것을 세미나의 목표로 설정하였다. 우리는 나는 이제부터 남자다’(2002), ‘할머니의 수요일’(2004, 2017개정) 등을 쓴 이규희 작가의 작품을 비판하기로 하였고, 글을 완성한 뒤 이규희 작가의 작품을 출판한 출판사에 문의하여 우리의 글을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며, 출판사는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다.

 

그러나 우리가 보낸 메일에 수신확인이 떴음에도 불구하고, 이규희 작가에게 우리의 글이 닿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글이 언젠가 그분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에 우리의 글을 월간여기에 투고하는 바이며, 그 시작을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소설 <할머니의 수요일> 비평과 함께하고자 한다. <할머니의 수요일>은 총 16장의 목차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앞으로 이 책의 6, 7, 8, 9, 12, 13, 16장을 자세히 뜯어보도록 하겠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아이캔스피크>를 본 당신이라면, 그 동안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를 바라보던 시각이 어땠는지 떠올리며 몸서리 칠 것이다. 당신 주위의 몇몇 아동들을 떠올리고 있다면, 이 글과 끝까지 함께하며 입을 다물 수 없을 것이다.



책 소개


▲<할머니의 수요일> 표지.

출처: 네이버 책


 <할머니의 수요일>은 2004년에 출간된 이규희 작가의 소설이다초등학교 5학년, 6학년 과정에 교과연계 된 작품이기도 하며 2017년에 개정판이 나왔다작가를 대변하는 다영이라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방학 숙제를 위해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실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인 김순덕씨의 경험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다양한 허구의 인물들 또한 등장한다. <할머니의 수요일>에 등장하시는 김순덕씨의 증언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1, (1993, 한울)의 김덕진(가명)씨의 증언과 일치한다.


 

 

**이 글은 <아동문학에서 드러나는 여성혐오 분석과 비판> 세미나에 참여한 김지우 회원의 발제문을 바탕으로 쓰였으며, 필자를 로 지칭한다는 것을 알립니다.

 

 

 

할머니의 수요일 6<짓밟힌 꽃잎>

무엇을 위한 강간장면인가.

 

김순덕씨는 조선 ㅇㅇ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일본에서 다시 배를 타고 상하이에 내리게 된다. 상하이에 내린 피해여성들은 군인들의 트럭에 실려 가즈오 부부의 벽돌집에 도착하여 일본식 이름을 받고 각자 방을 배정받는다. 피해여성들은 방을 배정받은 바로 다음날부터 성폭행을 당하기 시작한다. 다음은 김순덕씨가 일본군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아래 인용에서 는 김순덕씨다.


**성폭행 트리거 워닝**강간 장면이 비교적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도대체 이 낯선 곳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며 군인이 들어왔다.

, 누구세요?”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도사렸다. 하지만 군인은 뭐가 그리 좋은지 누런 이를 내보이며 히쭉히쭉 웃었다.

히얏, 예쁜 조센징이 왔구나! 우리를 기쁘게 해 주려고 왔어! 자아, 이리 오너라.”

군인은 잔뜩 몸을 도사리고 있는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 왜 이러는 거예요?”

나는 잔뜩 겁에 질린 채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군인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어서 이리 오라니까! 시간이 없어, 어서!”
군인은 우악스럽게 나를 잡아끌어다가 나무 침대에 휙 쓰러뜨렸다. 그때야 나는 알았다. 그 군인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를.

으악! 안 돼요, 안 돼!”

나는 몸을 도사린 채 비명을 질렀다. 그럴 수는 없었다. 나의 고귀한 순결을 이렇게 왜놈에게 빼앗길 순 없었다. 연지곤지 찍고 족두리 쓰고 꽃단장한 새색시가 되어 시집가고 싶었다. 그래서 횃댓보를 친 아름다운 신방에서, 연꽃 봉오리 같은 쪽진 머리를 풀고, 원앙금침에 누워 나의 첫날밤을 고스란히 새신랑에게 바치고 싶었다. 그런데 이 낯선 중국 땅에서 짐승 같은 일본 군인에게 빼앗기다니!

안 돼애! 저리 비켜!”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군인은 먹이를 본 맹수처럼 무섭게 나에게 달려들었다. 겁이 난 나는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군인의 팔뚝을 힘껏 깨물었다.

으아악!”

군인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어찌나 세게 물었는지 군인의 팔뚝에는 금방 빨갛게 잇자국이 났다. 그러자 군인은 고양이에서 호랑이로 변하고 말았다.

이런, 못된 년!”

군인은 길길이 날뛰며 내 양쪽 뺨을 철썩철썩 때렸다. 눈앞에서 불이 번쩍번쩍 났다. 그래도 내가 계속 발버둥을 치자 군인은 이제 군홧발로 나를 걷어찼다.

아아, 이러지 말아요. 제발 이러지 말아요!”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이렇게 허물어질 수는 없었다. 나의 순결을 이렇게 무참하게 빼앗길 순 없었다.

바보! 이 조센징 바보 천치야! 지금 날 피한다고 네가 무사할 것 같으냐? 넌 이제 나 같은 군인들을 하루에도 수십 명씩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얌전히 구는 게 좋아!”

군인은 찌든 무명 수건으로 내 입을 꼭곡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다급하게 내 옷을 잡아챘다. 내가 더욱더 발버둥을 치자 군인은 총대로 내 머리를 후려쳤다.

나는 가물가물 정신을 잃으면서도 군인의 손이 거머리처럼 스멀스멀 내 몸으로 기어 올라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악!”

나는 갑자기 몸 아래쪽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큰 충격을 받고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만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순덕아, 이리 오렴, 어서!”

꿈속에서 민우 오빠가 들국화 꽃다발을 들고 나를 불렀다. 하지만 나는 웬일인지 자꾸만 뒷걸음질 쳤다.

순덕아, 조심해. 거긴 낭떠러지야!”

민우 오빠가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뒷걸음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절벽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으악!”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방 저 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싫어, 싫어! 집에 갈래! , 집에 갈래!”

옆방에서 이쁜이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간호사가 되고 싶다던 이쁜이, 이제 겨우 열세 살밖에 안 된 이쁜이도 나처럼 어떤 군인에게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아!”

나는 머리를 벽에 찧으며 울고 또 울었다.

그날, 나는 그렇게 나의 꽃다운 처녀를 잃었다.

바로 뒷장에 젊은 김순덕씨가 쭈그려 앉아 울고 있는 삽화. (70-71p)

 

-피해자 전시는 이제 그만

<할머니의 수요일> 9페이지를 차지하는 <짓밟힌 꽃잎>에서 일본군 '위안부' 여성에 대한 일본군의 강간장면은 중간 삽화 포함 5페이지의 분량을 차지한다. 이 장면의 강간묘사는 피해자의 시점에서 서술되어 있다. 이러한 묘사를 읽을 때 독자는 가해자가 무슨 일을 했는지보다는 피해자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또한 성범죄 장면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가해자가 강제로 성기를 침입시켰다는 표현을 나는 갑자기 몸 아래쪽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큰 충격을 받고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라는 식으로심지어 이 장면도 피해자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뭉뚱그려 묘사하였다. 그러나 이런 묘사 방식은 일본군들의 만행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도 없고, 가해자가 저지른 폭력을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성폭력 피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강간 스너프 필름을 찍는 것과 같다.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1(1993,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신대연구회)에서 김덕진이라는 가명을 쓰신 피해여성분의 증언이 할머니의 수요일의 김순덕씨의 경험과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증언집에서는 성폭력 장면에 대한 묘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작가가 굳이 할머니의 수요일에서 김순덕씨가 강간당하는 장면을 상상하여 묘사한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 이는 명백하게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며, 할머니의 수요일개정판에서도 이것이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유감이다.

 

-저항했냐고 묻지 마라

작가는 성폭력 장면을 묘사할 때, 성폭력 피해자가 이해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매우 노력하고 있다. 첫째로 피해자가 얼마나 격렬하게 저항하였는지 강조했고, 둘째로 피해자가 성관계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으며, 마지막으로 피해자가 얼마나 큰 폭력성적인 폭력, 물리적 폭력에 노출되었는지를 강조했다. 이쁜이를 언급하며 피해자가 얼마나 어린 나이인지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는 저항하지 않아도/못해도, 성경험이 있어도, 피해를 입은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판단되어도, 나이가 적어도/많아도 피해자다. 가해자의 대부분이 남성을 비롯한 사회적/물리적 강자이고,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물리적 약자라는 것이 성범죄의 특징이다.[각주:1]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가해자에게 저항했다가 폭행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것을 원치 않아 저항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들의 증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각주:2] 작가의 묘사는 실제 성폭력 피해자의 족쇄가 되는 진짜 피해자이미지를 재생산한다.

 

-‘순결이 웬 말이냐

이뿐만이 아니다.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고, 순결을 바친다.’, ‘빼앗긴다.’ 등의 표현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페미니즘 웹진에서는 너무 낡은 이야기일지 몰라도) 순결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소위 처녀막이라고 불리는 질막이 존재하는 것이 순결인가? 태어날 때부터 질막이 없는 사람은 순결하지 않은가? 성관계 경험이 없는 것이 순결인가? 그렇다면 성적인 행위라고 여겨지는 모든 행위를 했지만 성기결합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순결은 지켜진것인가? 클리토리스 자위만 해본 적이 있는 여성은 순결을 잃지 않은 것이고, 손가락을 질에 삽입하여 자위한 여성은 순결을 잃은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손가락에 의해 순결을 잃을 수 있는가? 순결이란 가부장제가 여성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분들은 인권을 침해당한 것이지 그 개념조차 모호한 순결을 잃은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이 책이 출판된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독자들에게 순결은 그렇게 큰 가치를 가지지도 않는다. ‘순결을 잃었다는 표현의 반복은 순결을 여성의 최우선가치로 여기는 사회에 살았던 피해 여성들에게 지속적으로 피해사실을 상기시키는 명백한 2차 가해다. 또한 이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순결이데올로기라는 허상을 너무나도 중요하여 잃어버리면 큰일 나는 것이라며 독자들을, 특히 어린 여성들을 겁주려는 시도로 보이기도 한다.

 

To be continued...

아무리 2004년도에 출간된 책이라고 해도 그렇지, 2017년에 개정판이 나왔는데 너무하다 싶은가? 놀라지 마시라, 오늘 살펴본 부분은 6장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겐 아직 5개의 장이 남아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았습니다...) 남은 연재를 마치기 전까지 여러분의 분노가 여러분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 소개 :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내가 배운 모든 새로운 것들은 나를 낡은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나는 내가 낡은 사람이 될 날을 위해 배운다.


코너 소개 : 숙명여자대학교 중앙여성학 동아리 SFA 회원들이 2017년 여름방학을 불태우며 진행한 <아동문학에 드러난 여성혐오 분석과 비판> 세미나의 내용을 바탕으로 연재하는 코너입니다. 날씨가 많이 선선해진 9월이지만, 이 코너가 여러분께 또 한 번의 뜨거운 여름을 선사할지도...?


  1. 국가통계포털, 수록기간 1993~2015, 「범죄자 성별(1993~)」에 따르면 성범죄자 27,199명 중 26,651명, 즉 98%가 남성이었다. [본문으로]
  2.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한국정신대연구회, 1997,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2』, 한울, 22. 진경팽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군인들이 폭행을 하지만, 보통은 여자들이 맞지 않으려고 미리 주의를 하면서 한 번 더 하자는 식의 군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라고 한다. [본문으로]
5편. 학교는 여성학을 의무교육하라!
by. 한의 민족


어느덧 대학은 새로운 학기를 맞이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안고 강의시간표를 조회한다. 여전히 여성학은 보이지 않고 나는 좌절한다. 페미니즘이 공론의 중심이 되면서 많은 수의 학생들이 여성학 수업을 교양 필수로 배워야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학은 교양 필수가 되기는커녕, 강의 수가 터무니없이 적어 선택의 자유가 없거나, 아예 여성학이라는 글자 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여성'이 들어간 강의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담당 교수의 지난 여혐 발언이나 행실이 캥겨 수강과 포기의 갈림길에서 갈등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까지 한국의 대학에서 여성학 강의를 풍부하게 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듯하다. 1990년대에는 약 69개 대학 내에 여성학이 개설되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대학내 여성학 관련 강의, 프로그램과 석사과정들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급격히 축소되거나 폐지되었다는 사실은 여대생으로서 뼈아프다. 지성의 최전선인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외면한 것은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하는 교육 기관'이라는 기능을 져버리고 단순한 학원으로 전락하겠다는 선언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성차별으로 인한 병폐가 극에 달한 사회는 다시금 페미니즘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은 시대의 요구인 페미니즘에 기민한 반응을 보여야 할 것이다. 또 대학은 한국에 만연한 성차별 정서를 환기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방법을 논함과 동시에 다가오는 글로벌사회를 대비하여 세계시민윤리이자 민주시민의 기본 소양인 여성학을 필수 교양으로 지정해 수학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90년대의 실패를 딛고 여성학을 대학에 유치시키기 위한 새로운 발상이 필요한 시기이다. 대학은, 학교는 페미니즘을 의무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도대체 여성학이 뭔데 그래? 바느질하고 다림질하는 거 배우는 거 아냐?
 
a) 여성학은 남성중심적인 학문 세계에서 규정된 여성의 역할을 거부하고, 비판하고, 여성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학문이야.
b) 여성학은 새로운 성별질서를 구성하기 위한 학문이자 실천이야.
c) 바느질과 다림질과 같은 '여성이 하지 않으면 비난받는 일들'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켜주는 학문이야.

 (*여성학이 무엇인가라는 방대한 질문에 대해 필자 혼자만의 견해로 그 대답을 적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여성학 개론서의 도움을 받았다. 여성학의 정의, 특징, 다루는 영역과 연구 영역, 학문적 목표에 관한 설명은 한국여성연구소에서 나온 『새 여성학 강의(2005)』의 1장 「여성학이란 무엇인가」 꼭지에서 많은 부분을 발췌하고 정리했음을 밝힌다. 아울러 이 글을 넘어 여성학에 대한 전체적인 개괄을 알고 싶다면 본 책을 일독할 것을 권하며 글을 시작한다.)
 


여성학은 남성중심적이고 성차별적인 기존의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이다.

당신은 일반 시민에게 참정권이 보장된 때를 아는가? 18세기~19세기 프랑스와 미국의 인권선언을 통해 일부 계층의 특권이었던 참정권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평등하게 부여되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 당신은 '여성'이 최초로 참정권을 얻게 된 때가 언제인 줄 아는가? 

2015년 개봉하여 2016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던 영화 <서프러제트>는 20세기 초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을 다루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여공 '모드 와츠'를 비롯한 여성들은 열악한 노동 조건이 야기한 짧은 수명, 성적 착취,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으며 남성 가장에게 귀속되는 삶과 가난의 대물림과 같은 차별과 억압이 있었음에도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었기 때문에, 남성 정치인들에게 대변되고 규정될 뿐이었다. 그 결과 여성의 문제는 항상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여성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여성참정권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영화에서도 그려지고 있듯, 여성참정권 운동을 한다는 것은 경찰에게 체포당하고, 남편에게 쫓겨나고, 주위에서 '과격한 여자'라는 시선을 받는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었다. 서프러제트의 배경이 되는 영국에서는 왕이 참가하는 경마대회에 한 여성이 “여성들에게 투표권을!”이라고 적힌 플랜카드를 두르고 몸을 던진 후에야 비로소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그것이 불과 1918년. 지금으로부터 겨우 100년 전이다.

만민의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은 프랑스 대혁명이 성공한 이후에도 여전히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동시에 "만민"에 여성은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낀다. 당시 남성들은 여성의 참정권을 외치는 여성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여성은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고 균형 감각이 없어서 정치적인 일을 잘 판단하지 못한다.’, ‘여성이 투표할 경우 사회 근간이 흔들린다. 아버지, 남자 형제, 남편 놔두고 왜 자기들이 나서는가.’, ‘일단 여성이 투표권을 가지면 이를 멈추는 건 가능하지 않다. 여성은 국회의원, 정부 관료, 판사가 될 권리를 또 요구할 것이다.’ 이 주장들로 비롯하여 알 수 있는 사실은 남성은 여성을 동등한 시민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성학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여성학은 기존의 차별적 편견에 도전하고 비판하는 의식에서 출발한다. 즉 여성학은 남성 중심적인 학문세계에서 규정된 여성의 역할을 거부하며, 여성의 삶을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인 것이다. 따라서 여성학은 여성연구 또는 여성에 관한 강좌를 통칭하며, 일차적으로 사회 속에서 여성의 역할, 경험, 지위를 새롭게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학은 다학제적 학문임과 동시에 실천적인 학문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여성학은 처음부터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려는 구체적인 사회적, 정치적 쟁점을 둘러싼 여성들의 운동을 기초로 출발하였다. 1960~1970년대 서구사회 여성운동의 활성화에 기반을 두고 여성해방운동을 목표로 하는 실천학문으로서 출발한 것이다. 따라서 여성학은 여성운동의 전개와 함께, 기존 학계에서의 지식이 가정하던 객관성을 의문시하고 그것이 전제하던 가정들을 해체하며, 여성의 역사와 체험을 무시하는 전통 학문을 비판하고 도전하면서 성장하였다.

여성학이 다루는 영역은 아주 다양하다. 여남의 인격 형성과 사회화의 문제, 가족의 문제, 성과 몸에 관련된 문제, 취업과 경제생활, 여성과 복지에 관련된 모든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여성학의 특성은 이 모든 다양한 주제를 포괄하는 점이 아니라 이 영역들을 여성의 시각과 입장에서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다양한 사회문제와 여성 혹은 남성의 관련 방식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성별 관계와 차이에 주목하기도 한다.

여성학의 연구 영역은, 현대사회에서 성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는 인식 위에서 여성들이 현재 당하는 사회적 모순과 여성 자신의 갈등(여성문제의 영역)에 초점을 두며, 미래에 대해서는 여성해방과 그 방법을 전망하고(여성해방론의 영역), 과거에 대해서는 여성에 대한 정당한 위치 부여와 평가(여성사나 여성예술가, 여성사상가의 재평가 영역)을 포함하는 논의를 모두 담고 있다.

여성학의 학문적 목표는 기존 지식에 담긴 남성 중심성을 바꾸고, 여성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여성적 관점에서 인간의 경험을 분석하는 것, 나아가 여성이 ‘여자’가 아닌 한 명의 시민으로서 존립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내 학점 낭비해 가면서 여성학 배우기 싫은데, 굳이 필수화를 해야 해? 교육의 자유를 보장해야지.

a) 실질적인 성평등을 이룩하기 위하여 여성학 수업은 필수적이다.
b) 일단 츄라이츄라이~!
c) 다른 교양필수 과목은 너무너무 듣고 싶어서 들었니?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시몬 드 보부아르

여성운동은 투쟁을 통해 여성의 참정권을 쟁취했고, 교육권을 확보했으며, 호주제를 폐지하는 등 여성과 남성간 제도적 차별을 철폐해갔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여자"이다. 여성은 남성과 같은 일을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성에 비해 60%에 불과한 돈을 받는다. 집안 대소사를 결정할 때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남성들이고 여성들은 그 옆에서 조신하게 과일을 깎고 있는 풍경이 익숙하다. 같은 성적을 냈을 때 남성 동기는 '가장'이 되어야 하므로 승진에 우선권을 받는다. 여성 태아만을 선별적으로 낙태하는 데 일조했던 국가가 이젠 그들에게 출산절벽시대이니 아이를 낳으라 독촉한다. 심지어 '몰카'는 남성이 여성이 화장실에 가는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조차 포르노로 소비한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처럼 사회는 여전히 남성중심적이다. 실제로 역사는, 사회는, 문화는, 그리고 국가는-사실상 모든 것들이- 남성을 중심으로 구축되고 그들의 시선으로 구성된다. 남성은 여성을 같은 사람으로, 동료로 보지 않는다. 남성의 시선 속에서 여성은 단순한 대상, 부차적인 존재로써 존재할 뿐이다. 문화적으로 성별 불평등이 잔류한 상태에서 ‘인간’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기계적 평등에 불과하며 실효성이 없다. 결국 제도적 평등을 넘어 우리 사회에 안개처럼 산재한 여성혐오를 걷어내야 할 필요성이 재기되는 것이다. '여성은 연약하고 섬세한 존재'나 '여성은 모성본능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자녀 양육을 맡기에 가장 적합한 존재'라거나 '여성은 감성적이고 남성은 이성적'이라는 미신은 결국 여성을 부차적 존재, 아류, 이등시민에 묶어두는 역할을 한다. 남성들이 구성해 둔 미소지니 속에서 여성은 영원히 이등시민으로써 존재한다.

우리는 다시, 이것을 타파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페미니즘이라는 도구가 있다. 페미니즘은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과 혐오를 인지하게 해주고 나아가 차별을 철폐하고 진정한 평등을 이룩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여성학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시야와 사고방식을 제공한다.
 
이처럼 여성학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민주시민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교양 과목이 된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여성학 교양 수업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인가. 여성학의 필수교양화를 촉구하기에 앞서 우리는 대학 내 여성학의 위치에 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성학은 다학제적 학문이라는 특징에 따라 주로 협동과정이라는 형식으로 대학에 도입되었는데, 그 결과 실질적으로 전임교수나 ‘공식적 학과’ 구조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체계적인 교과과정 조정이 어려웠으며, 학과의 물리적 지원이 거의 부재하기 때문에 운영과 관련된 재정확보의 어려움, 학생정원 자체의 불투명함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여성학과의 행정적 부실은 1995년 5.31개혁 정책 이후 대학정책이 시장친화적 효율성을 우선하는 ‘아카데믹 캐피탈리즘(academic capitalism)’과 맞물리며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1990년대 까지만 해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여성학 프로그램과 학과는 축소되고 현재 별도 학과로 운영되는 여성학과는 없다. 이처럼 대학 내 여성학과 자체가 부재한 상황에서 당장 여성학이 교양 필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인 전망은 담보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여성학 교양”이 단순히 이론전달 수업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한다. 여성들이 실제로 겪는  차별과 억압에 대한 감수성은 여성학을 단순한 학문으로 대해서는 배울 수 없다는 큰 맹점을 갖는다. 또한 성적 평가가 병행하는 교과목의 형태로 진행되어서 학생이 강당 내에서 교수가 갖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여성학은 또다시 학점 경쟁의 콜로세움이 될 것이다. 여타의 교양과목과 마찬가지로 여성학이 대형강의로 진행될 경우, 개인의 경험을 발화하고 교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여성학의 실천적 특성을 간과한 채, 권위주의적이고 일방향적인 이론 수업으로 경직될 것이다.

여성학 교양 필수화 담론은 대학 내 여성학 정착 실패와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여성학은 반드시 배워야 할 과목이지만 여성학을 대학에 유치시키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지 않은 채 단순히 교양필수화 시킨다면 여성학은 2000년대의 고배를 다시 한 번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실패의 기억은 역설적으로 여성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다시 떠오르는 페미니즘 붐에 발맞추어 대학의 현실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여성학 교양 강의를 장기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시기이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의 이권만을 챙기는 이익집단이므로 교사자격이 없다. 남혐교사, 동성애 옹호 교사를 퇴출하라!

a) 남혐은 없어! 같은 시민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우자는 게 왜 남혐이니? 
b)니가 아무리 난리쳐봐도 네 옆에 동성애자는 사라지지 않아. 같은 시민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편이 빠르겠다!
c)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면 성차별주의자라는 말인데, 성차별주의자는 더더욱 교사 자격이 없다!  


우리에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7월 말 인터넷 매체 닷페이스에 "학교에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한 이유 세가지!"라는 인터뷰 동영상이 게시되었다. '여성에 대한 혐오의 언어가 무차별적으로 사용되고 성차별과 성폭력이 끊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차별적인 언행을 돌아보고 인권이 존중되는 성평등한 학교를 만들자는 제안'이 페미니즘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혐오세력은 인터뷰를 한 해당 교사를 '"남혐"교사'나 '동성애 옹호 교사'라는 타이틀을 붙이며 한 달 가까이 괴롭히고 있었다. 이에 초등성평등연구회 교사들은 지난 8월 26일 밤 11시 정각부터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왜 학내에서 성평등 교육이 필요한지를 적은 글과 함께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해시태그가 붙은 손글씨 인증 사진을 올리는 ‘8·26 공동행동’으로 맞섰다.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이를 실천한 교사를 마치 학교와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문제적인 인물로 규정하고 혐오세력이 집중포화를 쏟은 이 일련의 사건은 현 시점 한국의 페미니즘 지형도를 보여줘 착잡한 심정을 달랠 수 없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페미니즘에 대해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잘못되고 편파적인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학습하고 재생산하는 혐오세력에 의해 오염되었다. 교육현장의 성평등 교육에 대한 무지도 심각한 상태이다. 그러나 교사가 왜 페미니즘을 교실로 가져왔는지,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비방은 할 수 없을 것이다. 

해당 교사가 페미니즘을 교실로 가져온 가장 큰 원동력은 "미안함"이라고 밝혔다. 학교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성차별적이다. 신체적인 활동의 장인 운동장을 전유하는 남자아이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여자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남자아이들이 활발하니까 그것이 당연한 풍경이라는 것은 성차별적인 편견이다. 이 뿐인가? 학생들은 "여자를 도구화시키고 트로피로 여기는" 글을 교과서에서 보고 듣고 읽으며 성차별적 편견을 내면화시킨다. 가해 학생의 괴롭힘을 참다 못해 울음을 터트리는 피해 학생에게 '걔가 널 좋아해서 그러나보다'라는 말을 하기도한다. 일본의 성인 비디오에서 나오는 여성의 신음을 밈화 시킨 '앙 기모띠'가 아무렇지도 않게 초등학교 교실에서 사용된다. 이 모든 것들은 남자 아동에게 성적 권력을 부여함과 동시에 여자 아동에게는 이의를 제기할 기회조차 박탈시킨다. 

페미니즘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왜?"라고 물어본다. 왜 운동장은 항상 남자아이들이 사용하고 있지? 왜 여자아이들은 조신해야 하지? 왜 전래동화에서 항상 여성은 남성의 어머니이거나 아내로만 나오지? 왜? 왜? 왜? 이 질문들은 한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인지하게 할 것이다. 또한 그것을 비판할 능력을 키울 것이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앙 기모띠~'라는 유행어를 더이상 재미삼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에 대한 비판이 오고 갈 것이다. 더이상 괴롭히는 남자아이에 대하여 '걔가 널 좋아해서 그러나보다'라는 말을 통해 가해 사실을 옹호하고 여자아이에게 참으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 받을 것이며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서 대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혹자가 걱정하는 것처럼 페미니스트 교사가 존재한다는 것이 여자아이에게만 유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페미니스트 교사의 존재는 교육현장 내부에 산재해 있는 성차별과 불평등을 지적하고 함께 수정해 성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은 억압과 차별에 대한 날카로운 감수성이자 그것을 철폐하고 성평등을 지향하는 정의에 대한 요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인권의 문제이자 민주시민사회의 기본 소양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페미니즘 교육과 그것을 알려줄 수 있는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하다. 적어도 교육자의 입에서 나온 성차별적인 발언때문에 상처입는 사람들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성평등 교육은 성평등 사회의 시작이며 성평등 교육은 페미니스트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된다. 학교가 가정 다음으로 사회화 훈련장이라면, 그들을 지도하는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아니어서는 안 된다. 

(출처: 페미니스트 교사 공동행동 트위터 계정 @teachersforfemi )


페미니스트 교사에 대한 혐오세력의 비방과 그에 맞선 지지성명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9월 7일 페미니스트 교사들에 대한 공격을 중단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으며, 페미니스트 교사 공동행동은 9월 26일 저녁 8시에 #학교에_페미니즘을 공동행동을 기획해 다시 한 번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페미니스트 교사행동은 학교에 페미니즘을 가져오기 위한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교실에 성평등이 도래할 때까지 이 술렁임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인 자신을 미워하게 만드는 것이 여혐 사회이며 호모소셜이 유지되는 방식이다. 남성사회가 여성혐오를 사용하는 방식을 알게 되면, 마치 내가 서있는 지반이 꺼지는 듯한 불안과 좌절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몸담아 온 사회가 나를 같은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느끼는 배신감을 감당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눈을 감고 사실을 외면하고 자신을 기만한 채 살아가는 편이 편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여성들이 그랬듯이 언젠가 눈을 뜨게 될 것이다.
불평등과 혐오를 마주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 이후에 우리는 맞서 싸울 수 있다. 그것 또한 지난하고 고독한 싸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성학은 그 길을 앞서 밟아간 선구자들의 존재를 알려주고 헤쳐 나갈 방법들을 제시한다. 여성은 여성 자매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고, 투쟁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투쟁할 것이다. 어떤 권력도 스스로 그것을 내려놓지 않지만, 여성들은 투쟁을 통해 다른 여성들의 권리를 쟁취해 왔다. 페미니즘이 걸어온 길이 그러했듯이, 이 길의 앞에는 승리가 약속되어 있다. 우리 모두 페미니즘을 하자!



출처: 
(사) 한국여성연구소. (2005). 『새 여성학 강의』, 동녘.
이나영. (2011). 한국 ‘여성학’의 위치성: 미완의 제도화와 기회구조의 변화. 한국여성학, 27(4), 37-81.

 

 





(사진 출처: 나이키)



 요가를 좋아하는 나는 이번에 NI** 요가복 신상을 보고 눈이 뒤집어져 버렸다. 가볍고 빨리 마르는 재질, 예쁜 디자인은 나 같은 충실한 구매자의 욕구를 끌어오기 딱이었다. 거기에다 다양한 인종과 체구의 모델들을 내세우는 광고와 강한 여성들을 내세우며 성차별에 반대하는 광고들을 통해 페미니즘의 가치를 표방하는 나이키는 페미니스트인 나에게 딱이었다. 


이렇게 나는 NI**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어느 날 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것도 꽤 오래 전 기사인데, NI**가 제3세계 여성과 아동의 저임금 노동을 통해 자신들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인권유린과 노동착취를 통해 제품이 생산되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내가 여태껏 소비했던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든 내러티브는 기만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물건을 살 때, 그 물건이 정말 필요해서 살 때도 있지만 대부분 우리는 그 상품에 둘려싸여진 내러티브에 매혹되어 구매한다.  예를 들어, 커피를 마실 때, 우리는 커피라는 상품 자체가 필요해서 사기도 하지만 커피를 둘러싼 여러 내러티브들을 함께 소비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커피한잔’, ‘친구와의 모임에서 빠질 수 없는 커피’, ‘카페에서 커피한잔 시켜놓고 공부하기’ 등의 내러티브 말이다. 


이렇듯 내가 NI**를 소비하는 데에는 운동복이 필요했던 것 이상의 무언가가 나를 소비하게끔 이끌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I run like a girl’이라고 쓰여있는 옷을 입어줘야 좀 더 전문적인 운동인처럼 보이는 동시에 충실한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페미니즘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이러한 기업들의 상품을 사면서 사실은 페미니스트적인 삶을 ‘소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어두운 제조과정을 보지 않게 하고 기업들은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조금 더 페미니스트적인 방식으로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선진국 여성들 혹은 자본을 가진 여성들에게 소비를 통한 자유와 해방감을 주기 위해 제 3세계 여성들의 값싼 노동력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로 인한 자유로운 자본과 노동, 기술의 이동은 기업들로 하여금 값싼 제 3세계의 노동, 그 중에서도 더 값싼 여성과 아이들의 노동력을 통해 비용절감을 가능케 한다. 정작 이런 기업들의 제품을 만들고 있는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은 소비주의를 누리는 소수의 여성들의 세계에 끼어들 자리가 없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가 시장에서 모든 것을 잠식해버린 결과 페미니스트 정체성은 일종의 소비주의적 정체성이 된다. 이는 실로 꽤 돈이 많이 되는 정체성이다. 이렇게 페미니즘이 기업의 이윤을 내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것을 ‘마켓 페미니즘’이라고 부르는데, 마켓페미니즘의 문제점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마켓페미니즘을 내세워 홍보하고 판매하고 있는 기업들이 제 3세계 여성의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3세계 여성들의 존재를 지워버린다는 점에 있다. 즉, 여성해방을 외치는 페미니즘의 문법으로 또 다른 여성들을 억압하는 것이다.



기업과 소비자가 힘을 모아 좀 더 평등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는 아름다운 환상에 취해있던 나는 이제 각성하고 더 이상 이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사실 이런 현실을 이미 포착한 많은 서구의 인권단체들은 제 3세계 여성과 아이들의 노동착취에 항의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들의 제품들을 사지 말자는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매운동을 한다고 현실은 더 나아지지 않는다. 서구의 의류 불매운동을 통해 일자리를 잃어버린 3세계 여자아이들은 24시간 집안일을 하거나 아니면 창녀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혹은 굶어 죽었을 수도 있다. 이렇듯 서구의 온정주의적인 선의의 제스처가 잔인한 아이러니로 드러나고 있다. 



<사진출처: fhttp://fashion2-013.blogspot.kr/2012/12/hippie-fashion.html>


그렇다면 제 3세계 여성들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다국적 대기업의 이윤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전통의상이나 전통예술품을 제작을 한다면, 이는 대안적 행동이 될 수 있는가?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가야트리 스피박은 그녀의 책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에서 제 3세계 여성들이 수제로 자국의 전통의상이나 전통 예술품을 만드는 행위들이 그녀들에게 예술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을 부여해주고 있지만 그들이 만드는 작품을 누가 입고 누가 소비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제 3세계의 ‘에스닉’ 복장을 서구 여성들이 걸치며 정치적인 올바름과 취향을 소비하는 것이 되어 1세계 부르주아 여성들의 나르시시즘을 만족시킨다며 스피박은 비판한다.  


체제와 체제에 대한 부정의 완벽한 일치

자본주의 체제가 진보하면서 새로운 민족을 식민화하고, 새로운 인종집단을 자본주의 노동시장으로 수입하고, 노동의 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자본주의를 새로운 유권자들에게까지 확장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면서, 자본주의 체제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보편주의적 합리성을 손상시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제는 다양성과 차이까지도 포용하면서 자본주의는 자신의 외연과 내연을 넓혀가며 모든 것을 시장으로 귀결시키도록 한다. 다시 말하자면, 현대사회에서 다양성과 차이라는 것들은 어느 수준에서는 자본주의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페미니즘을 하고 있었나?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로써 여성들이 일한다는 사실 자체에 기뻐하기보다는 여성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어떤 이해관계 속에서 일하는가를 질문해야 함을 깨달았다. 가부장제뿐만 아니라 계급적 이해관계 또한 여성들의 삶을 직조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이 여성들의 삶에 억압의 굴레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구체적인 페미니즘 운동에 염두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애와 평등, 자유라는 아름다운 이미지 뒤에 숨어있는 정치적 책략들에 대해 페미니스트로서 지속적으로 의문을 품어야만 한다. 심지어 그것이 페미니즘의 외연을 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에 대한 대안을 찾기를 위해서는 섣불리 ‘페미니즘을 어떻게 실천할까?’라는 자기만족적인 질문보다는 잠깐만 뒤를 돌아보고 내가 지금 어떤 페미니즘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추구하는 페미니즘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어떤 교차로에 서 있는지를 계속해서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출처>


임옥희, 『타자로서의 서구』, 현암사, 2012

테리 이글턴, 김준환 역,『포스트모더니즘의 환상』, 실천 문학사, 2000

김혜련, 『아름다운 가짜, 대중문화와 센티멘털리즘』, 책세상, 2005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www.anotherworld.kr

마켓페미니즘에 관한 기사: https://newrepublic.com/article/132991/feminism-sal


<사진출처> 

나이키

구글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www.anotherworld.kr

http://fashion2-013.blogspot.kr/2012/12/hippie-fashion.html








필자 소개: 슬이 슬이 마슬이


깨달음에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 



내가 퍼스널 컬러 이론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

암탉



    이 사진, 익숙하지 않은가? ‘퍼스널 컬러를 검색하다 보면 한 번쯤은 꼭 마주치게 되는 사진이다. 일명 퍼스널 컬러 자가진단법이라고 돌아다니는 위 사진에 손등을 댔을 때 왼쪽이 더 화사해 보이면 쿨톤, 오른쪽이 더 화사해 보이면 웜톤이라고 한다. 지난 7월호에서 말했듯 필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화장에 관심이 참 많았다. 이 사진을 처음 본 것도 초등학생 때였다. 당시에는 퍼스널 컬러 이론이 화장품 업계와 완전히 결합하기 전이라서 이미지 개선의 개념이 더 강했고 (실제로 수업이나 강연에서 이미지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퍼스널 컬러 이론을 접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보다 상당히 마이너한 편이었다. 접할 수 있는 정보도 매우 적었고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유일무이했다. 이렇게 마이너했던 퍼스널 컬러 이론이 화장품 업계와 만나면서 퍼스널 컬러 이론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2012년 무렵 모 화장품 브랜드의 톤 마케팅이 그 시작이었다. 해당 브랜드는 간단한 웜톤, 쿨톤 자가진단법을 만들어 배포하면서 (우리 브랜드의 화장품을 이용해) 톤에 맞는 화장을 하라고 마케팅했다. 사실 위 사진도 그렇고, 해당 브랜드에서 배포한 자가진단법도 그렇고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왈가왈부 말이 많다. 혹자는 발암 짤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인 지금까지 이 자가진단법들이 통용되는 걸 보면 사람들은 확실히 퍼스널 컬러에 매혹된 듯하다. 딱히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만 사용하면 더 예뻐 보인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최초로 톤 마케팅을 시도했던 모 화장품 브랜드의 대성공 이후로 각종 화장품, 의류 브랜드에서 퍼스널 컬러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 해봐야 웜톤, 쿨톤 정도에 그쳤던 분류법이 라이트, , 뮤트 등등 더욱 자세히 나뉘어 대중화됐다. 여러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자신의 톤을 추측하거나 톤에 맞는 화장품을 추천해달라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그에 발맞춰 새로운 톤맞 제품이 시장에 출시된다. 처음엔 나도 퍼스널 컬러 이론을 순수하게 즐기고 있었다. 나에게 맞는 색의 화장품을 바르면 정말 혈색이 돌고 피부가 좋아 보였다. ‘톤맞제품을 찾아 톤에 맞춰 화장하는 게 재밌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뷰티업계 동향을 보면서, 최근 퍼스널 컬러 관련 여론을 보면서 엄청난 피로감을 느꼈다. 다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린 같은 흰 피부를 가진 나는 쿨톤?

    어떤 이론이든지 대중화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 또한 함께 대중화되기 마련이다. 퍼스널 컬러도 마찬가지다. 퍼스널 컬러 이론의 대중화로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가장 고통받는 부분이 바로 피부 색(밝기)과 퍼스널 컬러의 관계에 관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모 화장품 브랜드의 톤 자가진단표가 악몽의 시작이었다.

 

(출처: 이니스프리)

 

    해당 브랜드의 홍보 과정에서 희고 분홍빛이 도는 피부는 쿨톤, 까무잡잡하고 노란빛이 도는 피부는 웜톤이라는 낭설이 시작됐다. 후발 브랜드들도 별다른 연구 없이 선발 브랜드의 마케팅을 모방하기만 하다 보니 흰 피부=쿨톤이라는 낭설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버렸다. 문제는 한국이 흰 피부를 극도로 사랑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쿨톤병이라는 단어를 보면 알 수 있다. 퍼스널 컬러 이론이 대중화되고 흰 피부=쿨톤 공식이 퍼지면서 기다렸다는 듯 만들어진 신조어다. ‘쿨톤병은 쿨톤이 아닌데 쿨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에 걸렸다고 표현하는 단어다. 보통 여기서 쿨톤은 흰 피부를 뜻한다. 한 마디로 넌 쿨톤(=흰 피부)이 아닌데 왜 쿨톤(=흰 피부)인 척하냐는 거다. 인터넷에 쿨톤병을 검색해보면 본인의 피부가 하얗다고 말하거나, 본인의 피부보다 밝은 파운데이션으로 화장하는 사람들을 쿨톤병이라며 조롱하는 글들이 쏟아진다. 퍼스널 컬러 이론이 오도되면서 한국의 흰 피부 선망을 제대로 건드렸음을 보여준다. 사회가 강요한 미적 기준을 채우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에 걸렸다고 조롱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쿨톤(=흰 피부)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비추면서 무의식중에 쿨톤(=흰 피부)이 더 우월한 것이고 웜톤(=까무잡잡한 피부)은 열등한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 결국엔 진짜 쿨톤(=화장하지 않아도 원래 흰 피부)’을 치켜세우며 미의 기준을 세분화하고 공고히 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더욱 유해하다.

 

    쿨톤=흰 피부 공식이 유해한 또 다른 이유는 퍼스널 컬러 이론에 구체적인 특정인의 이미지를 끌어오는 데 큰 공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실용적인 면만 강조되어서 그렇지 퍼스널 컬러 이론은 일종의 색채학이다. ,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것도 단순히 색들을 이해하기 쉽게 분리할 목적으로 붙인 이름일 뿐이다. 하지만 쿨톤=흰 피부라는 낭설이 퍼지고 퍼스널 컬러 이론이 뷰티업계와 결합해 대중화되면서 톤에 특정 연예인들의 이미지가 부여됐다. “얘도 피부가 하야니까 쿨톤이야하면서 피부가 흰 온갖 연예인들을 다 소환해낸 것이다. 업계도 이를 놓치지 않는다. 우리는 연예인이 광고하는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해당 연예인의 이미지를 소유하고 소비한다. 요새는 퍼스널 컬러가 그 상품의 자리를 꿰찼다. 퍼스널 컬러에 특정 인물(연예인)의 이미지를 적용하여, 톤의 탈을 쓴 해당 인물의 이미지를 소비한다. 여름 쿨톤 아이린의 흰 피부와 청순한 이미지를 내 것으로 하고자 하는 이들은 아이린이 광고하는 상품에 돈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여성의 신체(흰 피부)를 토막 내고 대상화하고 미적 기준으로 내세워 결국 지출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기존 뷰티 산업의 전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왜 또 여자만

    누군가는 퍼스널 컬러를 알아감으로써 더 다양한 색들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퍼스널 컬러 진단으로 유명한 모 업체에서도 퍼스널 컬러를 통해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라고 설명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대로 퍼스널 컬러 이론이 이롭게 쓰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실상을 보면 퍼스널 컬러라는 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 같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자신의 피부색에 대해 한탄하며 난 이런 피부색을 가졌으니 이 톤이고 이 색깔 밖에 못 쓴다고, 톤에 맞지 않은 색을 바른 날은 너무 못생겼다고 속칭 톤신병자적 면모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연예인이 어울리지 않는 화장을 하고 나오면 이 연예인은 무슨 톤인데 무슨 색을 써서 톤그로다.”, “톤그로를 끌어서 얼굴이 어때 보인다.”고 말하는 댓글들이 자주 보이지 않나? 퍼스널 컬러 이론은 정말 새로운 얼평의 잣대로 자리 잡았다. 화장 자체가 코르셋 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이젠 퍼스널 컬러까지 고려해서 화장하라니. 게다가, ‘톤신병자적으로 퍼스널 컬러에 집착하고 톤맞색만 사용해 예뻐 보이도록 꾸미는 건 결국 또 여성뿐이다. 모든 뷰티 아이템이 그렇다. 왜 항상 여성만 꾸미고, 여성만 강요받는가? 내가 환멸을 느끼는 지점은 여기다.

 

여대생들의 월경, 안녕한가요?

암탉

 

(출처: Gregory Reid)

 

    “이 생리대 써본 적 있어?” 얼마 전, ‘포궁 친구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한 친구가 뉴스 링크를 공유했다. 여성환경연대 조사 결과 국내 시판 중인 생리대 10개 제품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10개 제품 모두 유해 물질이 검출되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유해 물질을 배출한 모 생리대 사용자들의 피해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우연히 단톡방에 있는 친구 4명 모두 그 제품을 사용한 경험이 있었다. 나도 써보았다. 해당 생리대는 지금 내 서랍 속에도 자리 잡고 있는 익숙한 제품이고, 반쯤은 이미 써버린 상태였다. 기사를 본 순간, 불현듯 지난 생리 기간들이 떠올랐다. 많은 피해자들이 호소하듯, 내 친구들도 말하듯, 나도 월경혈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둘째 날부터 눈에 띄게 양이 적어지더니, 적어도 5일은 가야 할 월경이 3일째 저녁에 끝나버린 것이다. 대학에 입학한 후로 불규칙해진 생리 주기 탓인 줄 알았다. 심지어 (나에게 월경이란 언제나 불쾌하고 피곤한 것이었기에) 빨리 끝나서 좋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기사를 보고, 그저 둔하게 반응했던 내가 어찌나 바보 같던지. 왜 진작 의심해보지 못했을까? 포궁 친구들과도 이야기하지 못했을까? 생리대 포장지 속 방긋 웃고 있는 모델처럼 즐겁게 월경할 수 있는 날이 올까?


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단무지: 숙명여대 3학년 재학 중인 단무지입니다.

 

데이지: 이화여대 재학 중인 데이지입니다.

 

부기: 을지대학교 4학년 재학 중인 23살 부기입니다.

 

연꽃: 안양대학교 3학년, 22살 연꽃이라고 합니다.

 

2. 본인의 초경 경험에 대해서

 

암탉: 초경 이전에 성교육 수업, 혹은 책 등으로 월경에 대해 배워본 적 있나?

 

연꽃: 초등학교 보건 시간에 배웠던 것 같다. 초경을 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정도를 배웠다.

 

부기: 초등학교 3학년 즈음에 초경을 했다. 월경을 일찍 시작한 편이라 그 전에 배운 적은 없고 다 엄마로부터 배웠다. 나중에 조금 더 크고 성교육 시간에 (월경에 대해) 배웠는데, 그때 아 그거(월경)구나하고 알았다.

 

데이지: 초등학교 때 유행했던 살아남기 시리즈 중에 성교육 만화가 있었던 게 기억난다. , 유명한 작가님이 소설식으로 월경이나 연애에 대해 짧게 묘사한 책을 본 적 있는데, 거기서 여자 몸에서 피가 난다는 구절을 봤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초경해보니 매칭이 되더라. 학교에서 정식적으로 배운 기억은 없다.

 

단무지: 나도 초등학교 때 월경에 대해 배운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초경을 하면 키가 자라지 않는다.’고 주워들었다.

 

암탉: (정규 수업이 아니라) 인터넷, , 주변인을 통해 알음알음 월경을 배워서 실제로 월경을 겪어보니 당황스러웠던 점이 있었을 것 같다.

 

데이지: 연애 만화에서 피가 나온다고 묘사한 문장을 보았다. 그런데 실제로 (월경을) 해보니까 빨간색도 아니고, 선홍색도 아니고, 갈색 피가 나오더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처음에 이게 뭐지?’, ‘피인가?’, ‘내가 뭔가 잘못됐나?’ 생각했다.

부기: 나도 비슷하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침대에 피가 묻었는데 피가 갈색이어서 초콜릿이 묻은 줄 알았다. 음식을 흘린 줄 알고 엄마 몰래 숨겼다. 엄마가 이틀 후에 월경이 시작된 걸 아시고 이게 월경이라고 알려주셔서 그제서야 내가 초경을 했다는 걸 알게 됐다. 왜 책에서 본 거랑 다를까 궁금했다.

 

연꽃: 생리대를 몇 시간마다 갈아야 하는지 몰랐다. (월경을 시작하고) 첫 한 해 동안은 샐까봐 불안해서 30, 1시간마다 갈기도 했다. , 어릴 때는 월경이 불규칙하지 않나. 2일 째까지는 피가 나왔는데, 3일째는 하루 종일 안 나오다가 4일째는 갑자기 많이 나오고.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었는데 괜히 꺼려지더라. 어쨌든 (월경이) 성적인 부분 중에 하나니까 그때는 엄마랑 터놓고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단무지: 초경을 시작했을 때 엄마가 옆에 계셔서 바로 대처할 수 있었다. 다만, 초등학교 5학년 때 월경을 시작했는데 (주변 친구들은 아직 초경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월경을 시작했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아래에서 피를 쏟는다는 게 기괴하고 민망하게 느껴져서 힘들었다.

 

암탉: 당황스럽고, 생경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본인을 포함해서 주변인, 엄마나 친구들은 어떻게 반응했나?

 

데이지: 나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월경이 시작됐다. 그때는 발육차가 두드러지는 시기라서 월경할 것 같은 애들은 티가 났다. 그래서 (월경)하는 애들끼리 , 나 생리대 좀 빌려줘.” 하면 아 얘도 하는구나.’하고 뭔가 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과는 (월경과 관련된) 이야기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연꽃: 나도 엄마 말고 아빠랑은 생리를 주제로 한 번도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같이 살면 당연히 내가 월경하는 걸 알텐데 그냥 모르는 척하는 건지.

 

부기: 나는 친구들보다는 가족들로부터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내가 처음 초경을 했을 때 엄마가 아빠한테 말씀하셔서 아빠가 목걸이를 사다 주셨다. 밑으로 여동생이 2명 있는데 모두 초경할 때마다 목걸이를 선물해주셨다. 그래서 처음 월경혈을 발견했을 때 당황했던 것 말고는 그렇게 나쁜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 (월경을 일찍 시작해서) 친구들과는 월경에 대한 대화를 전혀 나누지 않았다. 중학교에 진학해서 친구들과 월경 이야기를 나누면서 충격받았다. ‘가족 외의 다른 사람들하고도 이야기할 수 있는 거였구나.’ 하고.

 

단무지: 엄마는 성인이 되었다고 축하한다고 좋게 말씀해주셨는데 나는 매달 아래에서 피를 쏟아내는 것도 싫고 생리통도 싫고 정말 우울했다. (월경이) 빨리 시작한 것도, 키가 자라지 않는 것도 싫었다. 초등학교 때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일이 있는데, 어떤 친구가 생리대를 빌려달라고 크게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애들이 조용히 교실을 나가는 거다.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표현한 거겠지.

 

3. 소설가 김훈이 단편소설 언니의 폐경속 허무맹랑한 묘사로 크게 질타받았다.

 

- , 어떡하지. 갑자기 왜 이러지...

- 왜 그래, 언니?

- 뜨거워. 몸 속에서 밀려나와.

나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다. 나도 생리날이 임박해 있었으므로 핸드백 안에 패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룸 라이트를 켜고 패드를 꺼내 포장지를 뜯었다. 내 옆자리에서 언니는 바지 지퍼를 내리고 엉덩이를 들어올렸다. 나는 언니의 엉덩이 밑으로 바지를 걷어내주었다. 언니의 팬티는 젖어 있었고, 물고기 냄새가 났다. 갑자기 많은 양이 밀려나온 모양이었다. 팬티 옆으로 피가 비어져나와 언니의 허벅지에 묻어 있었다. 나는 손톱깎이에 달린 작은 칼을 펴서 팬티의 가랑이 이음새를 잘라냈다. 팬티의 양쪽 옆구리마저 잘라내자 언니가 두 다리를 들지 않아도 팬티를 벗겨낼 수 있었다. 팬티가 조였는지 언니의 아랫배에 고무줄 자국이 나 있었다. 나는 패드로 언니의 허벅지 안쪽을 닦아냈다. 닦을 때 언니가 다리를 벌려주었다. 나는 벗겨낸 팬티와 쓰고난 패드를 비닐봉지에 담아서 차 뒷자리로 던졌다.

(소설 언니의 폐경발췌)

 

암탉: 이건 김훈 작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곳곳에서 월경에 대한 낭설들이 폭주하고 있다. 들어본 것 중 가장 웃긴, 황당한 낭설이 있다면?

 

부기: (생리가) 오줌인 줄 아는 사람들이 참 많다. , 이번에 생리대 유해 물질 문제가 크게 터지면서 생리컵이 주목받지 않았나? 한 기사 댓글에 생리컵에 커피 담아서 줄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하더라. 정말 컵인 줄 알았나보다. 알지도 못하면서 훈수 두는 게 너무 화가 났다.

 

생리컵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정말 인 줄 알았나보다.

(출처: 오마이뉴스)

 

데이지: ‘너 생리 아직도 해? 일주일 째? 가서 빨리 싸고 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내 전 여자친구는 발레를 해서 생리 참았다가 한 번에 싼다는 글도 본 적 있다.

 

단무지: 중학생 때 친구가 남초 커뮤니티인 아이러브싸커에 글을 올려봤는데, ‘(생리) 힘주고 참으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보고 너무 충격받았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한 남성이 여성인 척하려고 자기는 생리 3분에 한 번씩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봤다.

 

데이지: 모르는 남성들은 몸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생리대 사이즈를 크게 쓴다고 생각한다.

 

부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한 번도 ~ 안 해본 사람들 이미지' 중에 여자가 화장실에서 치마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고 볼일을 보는 만화를 본 적 있다. 집에서 노브라로 티셔츠를 입으면 입지, 브라만 입고 있지는 않은데 브라만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그린다든가. 모르니까 그렇게 그리는 거다. 생리는 더더욱 알려주지 않고 대놓고 말하지 않는 주제다보니 더 (모르는 게) 심한 것 같다.

 

데이지: 우리도 (월경해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일주일 하고 하루 쉬었다가 할 수도 있고, 컨디션에 따라 하루 정도 건너뛸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책에도 상세하게 나와 있지도 않으니까. 마찬가지로 남자들도 겪어보지 않았고 알아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으니까 모르는 것 같다. 같은 맥락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도 오로에 대해 잘 모르지 않나? 오로는 임신하고 애를 낳은 다음에 6개월~3년 동안 자궁 잔여물이 밖으로 나오는 거다. 나도 얼마 전에 킴 카다시안의 인터뷰를 보고 알았다. 오로 때문에 매일 생리대를 차고 있어야 하고 우울증이 왔다고 한다. 아무도 이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서 임신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된 거다. 그것처럼 남자들도 추측해서 비난하고 비방하고 소설 쓰는 건 잘못됐지만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기: 모를 수는 있지만 모르면서 비방하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남자애들 자위하는 건 미디어나 책에 자세하게 나오니까 우리도 알지 않나. 반면, 여자애들의 자위 방법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모르는 것 자체가 몰라도 되는 데서 오는 권력이다. 우리도 잘 알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고 직접 경험해서 알게 되는 건데 왜 저들의 무지까지 이해해줘야 하는지? 모르면 적어도 입이라도 닫고 있어야지. 그게 맘에 안 든다.

 

데이지: (생리 고충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은 같은 생물학적 성별을 가진 사람으로 한정되는 것 같다. 겪은 사람만이 아니까. 최근에도 생리대 유해물질 사태가 터졌을 때 남자친구한테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떻게 하냐?”고 화난 투로 이야기했는데, “. 그렇구나.”하고 끝내버리더라. 남자 입장에서는 자기가 겪을 일이 아니니까 화도 내지 않는 것 같다. 분명히 잘못된 일이지만 자기 일이 아니니까.

 

부기: 나도 남자친구가 있었을 때 비슷한 이유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잘 체하는 편인데, 체해서 신경이 곤두서있을 때 생리통까지 겹치면 너무 힘들지 않나. 내가 배 아프다고,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 이때는 날 건들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것이다.” 하면 이해는 하는데 하지 말라니까 안 하는 수준. 딱 여기까지만. 그 이상은 귀찮아하고 관심 없는 태도를 보이더라.

 

암탉: 이런 무지는 월경에 대해 쉬쉬하는 문화로부터 출발하는듯하다. 월경을 감춰본, 감추도록 강요당한 경험이 있나?

 

연꽃: 다이소에서 팬티라이너를 산 적이 있었는데, 내가 해달라는 말도 안 했는데 자연스럽게 신문지에 그릇 싸듯이 신문지로 포장을 해주시더라. 그게 신문지로까지 쌀 일인가? 당황스러웠다.

 

부기: 편의점에서도 원래는 반투명 봉투에 물건을 담아주는데 생리대를 사면 자연스럽게 굳이 아래쪽에서 까만 봉투를 꺼내 담아준다. 그리고 뿌듯한 눈길로 쳐다본다. 생리대 광고에서도 흰옷을 입고 나와서 나 이렇게 상쾌하다하는 거. 나는 항상 기분 나쁘고 찝찝한데. 나만 이렇게 예민한 건가? 다른 사람들은 감정 기복 관리 잘하고 나만 그런 건가? 생각했다. 생리할 때마다 뽀송뽀송하다~ 기분 좋다~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데이지: 초등학교 때 까만 생머리, 하얀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여성이 벽에 하얀색으로 페인트를 칠하고 어디 어디 대학교 무슨 학과 이름 세자가 나오며 끝나는 광고를 봤었다. 그때는 무슨 광고인지도 몰랐다. 생리를 시작한 후에야 그게 그거구나,’ 하고 매칭이 되더라. 생리대 광고에 왜 여대생을 쓰는지, 왜 이름이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화가 난다.

 

생리대가 나오기 전까지는 무슨 광고인지조차 알 수 없는 모 생리대 브랜드의 광고

(출처: 화이트)

 

단무지: 우리 집 같은 경우는 쓰레기통을 두 개 둔다. 생리대를 (방 밖에 있는) 일반 쓰레기통에 버리면 엄마가 제발 아빠 계시는데, 방에 있는 (생리대 전용) 쓰레기통에 버려라고 하신다. 단순히 아빠가 생리대 쓰레기를 보는 걸 안 좋아하지 않겠냐는 이유만으로.

 

데이지: 자취할 때 삼촌 차를 타고 가족들 다 같이 장을 보러 갔다. 장을 보고 박스에 담을 때 부피가 크면 포장 상자를 버리고 내용물만 싸가지 않나. 그때도 부피를 줄이려고 생리대를 뜯어서 내용물만 가져가려고 하는데, 삼촌이 너는 조카가 삼촌한테 생리대까지 만지게 하냐?”고 하더라. 기분이 나빴다. 생리대를 보고, 언급하는 걸 안 좋아하시는 것 같다. 특히 남자 어른들은.

 

연꽃: 한 번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생리대를 갈고 나오다 월경혈이 묻었는데 그걸 미처 닦지 못하고 나온 적 있었다. 그걸 보고 엄마가 아빠도 같이 쓰는 욕실인데 왜 깔끔하게 처리 못 했냐.”고 엄청 혼내셨다. 뒤처리를 깔끔하게 안 했다고 혼내면 되는데 굳이 아빠 이야기를 붙이면서. 아빠도 변기를 깔끔하게 쓰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아빠한테 크게 뭐라고 하지 않고 조심하라고만 했으면서, 나한테는 그거 한 번 그랬다고 그렇게 혼을 내시더라. 실수할 수도 있는 건데 숨겨야 하는 일처럼.

 

4. 대학과 월경하면 생리 공결제 이야기가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생리 공결제는 학생이 생리통으로 결석할 시 공적인 결석, 즉 출석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도입되었지만, 필수 적용 대상인 중고등학교와 달리 대학교는 권고 대상으로 남아 현재 상당수 대학교에선 인정하지 않는다.

 

암탉: 생리 공결제에 대해 알고 있었나? 재학 중인 학교에서 생리 공결제를 인정하나?

 

부기: 생리 공결제를 학교에서 쓸 수 있다는 걸 지금 처음 알았다. 우리 학교는 입원하는 정도가 아니면 질병 결석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다른 질병들도 안 해주는 걸 보면 (생리 공결제도 아마) 시행하지 않는 것 같다. 질문지를 보고 생리 공결제에 대해 처음 알았다.

 

연꽃: 여중, 여고를 나와서 생리 공결제에 대해 알고는 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이 원활히 사용해서 (생리 공결제가) 있다는 걸 알았는데 대학교는 입원이나 수술을 하지 않으면 인정을 해주지 않고 그냥 결석으로 처리된다.

 

단무지: 숙대의 경우 아마도 안 해주는 걸로 알고 있다. 숙대는 인정을 해주는가...?

 

암탉: 애초에 도입을 안 했다.

 

단무지: 고등학교 때 반에 생리통이 정말 심한 애가 있었는데 빠지지는 않았다. 욕하면서 공부했다. 고등학교 다닐 땐 몰랐는데 대학 와서 뉴스 기사를 보고 생리 공결제에 대해 알게 됐다.

 

데이지: 여중 여고 여대를 다니고 있는데, 생리 공결제라는 것을 여기서 처음 알았다. 이게 우리 학교만 그런 걸 수도 있고, 모든 여대가 해당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만약에 도입을 하더라도 별로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여대가 경쟁이 빡세잖나. 우리 학교는 1교시가 8시에 시작하는 학교인데도 출석률이 100%였다. 멀리 사는 애들은 다섯 시에 일어난다. 결석 한 번으로 큰 차이가 나니까. 음성 녹음 파일도 사고팔지 않나. 그 정도로 빡센데 (생리 공결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사용하지 않을 것 같고, 대학생들이 거의 그렇듯 아프면 자체 결석을 하면 했지 (공결제를 활용하진 않을 것이다) 예전엔 병원을 다녀왔다는 처방전 정도만 제출하면 (병결) 인정이 됐는데 작년의 정유라 사건 이후로 병원장이 쓴 소견서가 아닌 이상 병결 인정이 안 된다. 응급실 간 게 아닌 이상 아예 인정을 안 한다. 그래서 더 힘들 것 같다.

 

암탉: 이 중에 살아남은 학교가 없다.

 

부기: 회사에서도 육아휴직을 쓰면 욕먹고 눈치 보이는 게 있지 않나. (그런 것과 비슷하다) 쓰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냥 이런 게 있다고 전해지는 전설처럼 듣기만 할 뿐. (웃음)

 

연꽃: () 과가 공대라서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생리 공결제가) 있다고 해도 쓰면 남학생들이 욕을 한다. 쟤네는 저걸 이용한다고. 이건 다른 얘긴데, 성적을 매길 때 우리 과가 여자가 없다 보니까, 교수님들이 여학우들을 배려해준다고 남자들이 생각한다. 여자애들 점수를 더 잘 준다는 거다. 시험을 잘 본 건데! 그런 걸 보면, 생리 공결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쟤는 저걸 한 달에 한 번씩 이용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것 같다.

 

데이지: 이런 얘길 들으니까 아파도 더러워서 약 먹고 울면서라도 버틸 것 같다. 그냥 내가 아픈 게 낫지, 뒷말 나오는 게 더 싫고 힘들 것 같다. 이건 개인적 의견인데, 만약 내가 입사해서 생리휴가를 쓸 수 있다고 해도 나는 안 쓸 것 같다.

 

부기: 나는 생리통이 원래 심했었는데 약을 안 먹었다. 엄마가 내성 생긴다고 싫어하셔서 나한테도 먹지 말라고 얘기하신다. “탐폰 쓰지 마라.”, “약 먹지 마라.” 그런데 나도 아프니까 공부를 해봤다. 겨우 이만큼 먹는다고 내성 생기지도 않더라. 옛날에는 일주일 내내 너무 힘들어도 안 먹었다. 그때는 생리휴가 있으면 꼭 써야지, 이렇게 힘든데 하루라도 안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약을 먹으니까 확실히 안 아프더라. 그래서 당장 안 아프니까, 쪼아대면 기분 나쁘니 그냥 생리휴가를 안 쓰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약 먹으면 참을 수 있는데 저렇게 찌질하게 우리한테 뭐라고 하니까.

 

5. 2013년 한양대에서 한 총학생회장 후보가 생리대 자판기 설치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다. 해당 후보는 공약을 지키려 했지만 끝내 자판기 설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학생들이 역차별이라 주장하며 심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암탉: 학교에서 갑자기 월경이 시작됐을 때 학교 내에 월경 용품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있나?

 

부기: 학교 안에 건물마다 편의점이 있는데, 다들 거기서 구매한다. 과방이 없기 때문에 생리대를 비치해 놓을 곳도 없다. 여학생 휴게실에 생리대를 비치하자고 건의는 올라간 상태이다. 만약 나중에 비치된다면 거기에서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연꽃: 학교가 언덕 꼭대기에 있다. 한 번 올라오면 내려가고 싶지 않은 그런 언덕인데, 과에서 쓰는 건물은 한정되어 있고 생리대 자판기는 딱 한 대, 그것도 저 멀리 다른 건물, 여학생 휴게실이 있는 2층 화장실에만 있다. 가다가 다 새겠다. 보건실에서도 안 준다고 들었다. 편의점은 없고 매점만 있는데, 매점도 딱 2개 건물에만 있어서 접근성이 떨어진다.

 

데이지: 각 단대 건물에 생협이 있는데, 라이너까지 구비되어 있고, 생리대를 100, 200원 정도 가격에 낱개로 판다. 편의점에서 사면 묶음으로 사야 해서 남기도 하고 너무 비싸다. 큰 화장실에는 자판기도 있다. 의식하지 않고 이용해와서 다른 학교도 이런 줄 알았다.

 

연꽃: 내가 입학할 땐 여학생 휴게실이 있었는데, “왜 여학생 휴게실만 있냐. 역차별이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어서 남학생 휴게실이 생겼다. 남는 과방이나 동아리방 중 하나를 남학생 휴게실로 만들어 줬다. 공간이 작으니까 침대 하나에 이불을 여러 개 비치해 놨는데, “왜 여학생들은 침대 쓰고 우리는 이불 쓰냐?”고 역차별이라고 하더라. 생리대 자판기도 역차별이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사실상 설치 불가능하다. “그럼 여학우 휴게실에 비치해두면 되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여학생 휴게실이 멀리 있어서 이용하기 어렵다. 그리고 여자가 많은 과라면 과방에 (생리대를) 비치할 수 있겠지만, 남초과는 과방도 거의 다 남자들이 써서 과방에 비치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암탉: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리에 대한 공학과 여대의 분위기 차이가 꽤 극단적일 것 같다.

 

부기: 아예 이야기를 못 한다.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여자들끼리도 쉬쉬하는 느낌이다. 화장실 안에서는 여자애들끼리 월경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화장실 문밖으로 나가는 순간 (월경에 대해) 모두 입을 다문다. 신입생 때부터 남학생 단톡방 사건이 연속으로 터져서 혹시 나도 그 대상이 될까봐 내 몸이나 생리 현상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된다.

 

연꽃: 맞다. 강의실 안에서는 배가 아프다 정도로 이야기하고, 갑자기 월경이 시작됐을 때도 혹시 생리대 있냐고 소곤소곤 묻는다. 옷도 샐까봐 신경 써서 입게 된다. 강의 끝나고 옷에 묻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그냥 어두운색 치마를 입는다거나, 오버해서 생리대를 찬다거나. 하나 찰 거 소형 하나 더 해서 찬다거나. 새는 것보단 이게 낫지 싶은 마음에.

 

데이지: 우리 학교는 에타에도 나 생리해서 짜증 난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길을 가다가도 나 오늘부터 생리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오늘 뭐 먹었어.”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6. 최근, 모 생리대 브랜드를 시작으로 생리대 유해 물질 논란에 불이 붙었다. 여성환경연대 및 식약청에 따르면 조사 대상 10개 제품 모두 발암물질과 총휘발성유기화합물 등 유해 물질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암탉: 이번 논란을 겪으면서 친구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연꽃: 친구가 이미 생리컵을 쓰고 있어서 (나에게) 갈아타라고 권유했다.

 

부기: 모 생리대 브랜드 문제가 처음 터졌을 때, (탐폰을 쓰고 있었는데) 생리컵으로 바로 갈아탔다. 친구들끼리 써보고 후기 알려달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다른 선택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생리대를 쓰게 되더라. , (생리컵이) 초반 진입장벽이 높다 보니 처음 쓰는 사람들은 겁낼 수밖에 없다.

 

데이지: 그렇다고 면 생리대를 쓰기도 곤란하다. 사회 생활하면서 (면 생리대를) 빨고, 삶고, 널어서 말릴 시간 내기가 쉬운 일인가? 생리대 기사에 그럼 여자들 면 생리대 쓰면 되지!”라는 댓글을 봤다. 자기네들이 직접 빨아줄 것도 아니면서 쉽게 말하니까 웃긴다.

 

단무지: 그냥 마저 써야겠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고, 남교수님은 요새 생리대 문제로 말이 많은데, 이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자기 문제가 아니니까 쉽게 말한다.

 

데이지: 학교 언니와 생리대에 대해서 얘기해봤는데, “아 맞다 이거 안 좋지.”하면서도 바쁘니까 넘어가게 되더라. 비슷한 이유로 이번 사태 이후에도 계속 유해물질 생리대를 쓰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연꽃: 우리 어머니도 그럼 뭐 어떡해.”라는 생각으로 그냥 쓰신다.

 

암탉: 생리대 유해물질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살충제 계란 파동도 일어나지 않았나? 둘 다 생필품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된 사건이었는데, 반응은 무척 달랐다.

 

데이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남자들은 별로 신경을 안 쓸 것이다. 딸이 쓰는 생리대가 유해물질 덩어리라고 생리대 회사에 적극적으로 항의하는 아빠가 존재할까?

 

암탉: 기사가 뜨고 나서 대안 제품(해외 생리대, 생리컵, 생리팬티 등) 품절 대란이 났다고 한다. 회담자들은 어떤 대안을 택했나?

 

연꽃: 한 친구는 아기 기저귀 소형사이즈를 쓰겠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생리컵을 썼는데, 잘 안 맞아서 (다음 월경 때는) 생리대를 쓸 거라고 했다. 그래도 생리할 때 보지 털이 뽑힐 것 같고, 내장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고통이 (생리컵을 썼더니) 사라져서 좋았다고 했다.

 

데이지: 학교 앞에서 나트라케어를 판매하긴 하는데 너무 비싸다. 자취하면 생리대값이 꽤 나가서 부담된다. 월경만으로도 짜증 나는데, 생리대도 비싼 돈 주고 사야 돼서 짜증 난다.

 

암탉: 후속 대처에 참여하셨는지 궁금하다.

 

데이지: 항의할 줄 몰라서, 대응할 줄 몰라서 할 수 없었다. 회원가입에 뭐에, 너무 절차가 복잡해서 안 쓰고 말지!’ 혹은 쓰고 죽지!’하는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가 단체 행동을 하면 적극적으로 지지하겠지만 혼자 할 힘은 안 난다.

 

단무지: 나 혼자 하기엔 용기가 부족한 것 같다. 누군가 총대를 매줬으면 좋겠다.

 

부기: 환불해주겠다는 곳도 처음 문제 된 브랜드밖에 없었다.

 

7. 내가 원하는 나의 완경

 

암탉: 우리 모두 언젠가는 완경하게 될 텐데, 내가 원하는 나의 완경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기회가 없는 것 같다. 미디어에서 말하는 편협한 개념의 완경이 아닌 내가 생각하는 완경, 주변에 완경을 맞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연꽃: 사실 완경이라는 단어를 여기서 처음 봤다. 확실히 (미디어에서) ‘완경이라는 소재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드라마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윤유선 배우가 맡은 역할이 완경을 맞았는데, 마치 인생이 끝난 것처럼 묘사하더라. ‘폐경이라는 말도 그렇고, 월경이 끝나면 여자로서 뭔가 끝난 것처럼 표현하는구나 생각했다. 솔직히 나의 완경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동생한테 물어봤다. 동생은 강경하게 비혼을 주장하는 아이인데, 결혼도 안 하고 출산도 하지 않을 거라 완경을 하면 해방감을 느낄 것 같다고 말하더라.

 

부기: 예전에는 ‘(완경이) 언젠간 오긴 오는구나, 이때쯤이면 멈추겠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미디어에서 (완경이 오면) 여자의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더 이상 여자가 아닌 것처럼 말하니까 나도 모르게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더라. 그런데, 몇 년 전 한창 단어 바꾸기 운동이 유행하지 않았나. ‘자궁포궁으로 바꾼다든지, ‘폐경완경으로 바꾼다든지. 그걸 처음 듣고 곧 완경을 하실 엄마한테 말씀드렸더니 굉장히 좋아하시더라. 본인도 폐경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너무 싫었는데 완경이라고 하니까 정말 뭔가를 완성 시킨 것 같고, 기나긴 레이스를 완주해낸 느낌이라고 하셨다. 되게 뭉클했다. 그때부터 나도 완경이라는 단어를 꼭 쓰게 되었고, 나도 미래에 완경이 오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 같다. 나에게 월경을 가르쳐주신 엄마가 그렇게 얘기했으니까.

 

데이지: 주변에 완경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호르몬 치료를 받으라고 말하고 싶다. 완경이 오면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탈모나 우울증 같은 증세가 나타나는데, 그건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고쳐야 하는 증상이다. 병원을 방문해서 치료를 받고 더 나은 삶을 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월경하는 게 그 기간에는 싫지만, 오히려 반갑기도 하다. 임신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몸이 건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단무지: 나는 완경을 하면 월경이 끝나니까 좋을 것 같다. 내일 완경을 한다고 하면 "아싸"할 것 같다.

 

8. 후기

 

부기: 친구들과도 대놓고 이야기하기 민망할 수 있는 주제인데, 터놓고 이야기하고 다른 분들 생각을 들어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연꽃: 알게 된 것도 많고)

 

데이지: 이런 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도 언제 어디서든 참여할 수 있게 포럼 형식으로 자리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단무지: 공학에서는 여성혐오라거나 월경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데에 놀랐고, 탐폰이라거나 생리컵이라거나, 대체 월경 용품에 대해 알게 돼서 좋았다. 이런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연꽃: 여대가 부러워졌다. (부기: 맞다) 사실 (학교 내 여혐에 대해) 무덤덤해졌는데, 우리 학교가 이렇다고 말하면서 새삼 충격받았다.

 

데이지: 여대를 다니는 사람으로서 자각을 못 하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으면서 좀 미안했다. 사회에 나가면 이런 (여대 환경과 같은) 분위기가 아닐 텐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부기: 미안해야 할 건 우리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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