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차게 실패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 <할머니의 수요일> 上

by. 연필


들어가며

:아무리 요즘 초등학생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해도

 

20177월과 8월 우리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더운 여름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우리 학교 페미니즘 학회 사람들과 함께 두 달간의 여름방학을 각종 세미나로 불태웠다. 그 중에는 내가 제안한 <아동문학에 드러난 여성혐오 분석과 비판> 세미나 역시 포함되어 있었는데, 세미나를 진행하면 할수록 회원들은 우리의 활동이 그저 우리들만의 공부로 끝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부딪혔다. 아무리 요즘 초등학생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해도, 이런 걸 보게 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초등교과서에 수록된 아동문학 작품들을 골고루 읽고 비판하자는 기존의 계획을 수정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유명한 작가들 중 한 명을 선정하여 그 작가의 책들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작가에게 비판의 메일을 보내는 것을 세미나의 목표로 설정하였다. 우리는 나는 이제부터 남자다’(2002), ‘할머니의 수요일’(2004, 2017개정) 등을 쓴 이규희 작가의 작품을 비판하기로 하였고, 글을 완성한 뒤 이규희 작가의 작품을 출판한 출판사에 문의하여 우리의 글을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며, 출판사는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다.

 

그러나 우리가 보낸 메일에 수신확인이 떴음에도 불구하고, 이규희 작가에게 우리의 글이 닿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글이 언젠가 그분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에 우리의 글을 월간여기에 투고하는 바이며, 그 시작을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소설 <할머니의 수요일> 비평과 함께하고자 한다. <할머니의 수요일>은 총 16장의 목차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앞으로 이 책의 6, 7, 8, 9, 12, 13, 16장을 자세히 뜯어보도록 하겠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아이캔스피크>를 본 당신이라면, 그 동안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를 바라보던 시각이 어땠는지 떠올리며 몸서리 칠 것이다. 당신 주위의 몇몇 아동들을 떠올리고 있다면, 이 글과 끝까지 함께하며 입을 다물 수 없을 것이다.



책 소개


▲<할머니의 수요일> 표지.

출처: 네이버 책


 <할머니의 수요일>은 2004년에 출간된 이규희 작가의 소설이다초등학교 5학년, 6학년 과정에 교과연계 된 작품이기도 하며 2017년에 개정판이 나왔다작가를 대변하는 다영이라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방학 숙제를 위해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실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인 김순덕씨의 경험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다양한 허구의 인물들 또한 등장한다. <할머니의 수요일>에 등장하시는 김순덕씨의 증언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1, (1993, 한울)의 김덕진(가명)씨의 증언과 일치한다.


 

 

**이 글은 <아동문학에서 드러나는 여성혐오 분석과 비판> 세미나에 참여한 김지우 회원의 발제문을 바탕으로 쓰였으며, 필자를 로 지칭한다는 것을 알립니다.

 

 

 

할머니의 수요일 6<짓밟힌 꽃잎>

무엇을 위한 강간장면인가.

 

김순덕씨는 조선 ㅇㅇ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일본에서 다시 배를 타고 상하이에 내리게 된다. 상하이에 내린 피해여성들은 군인들의 트럭에 실려 가즈오 부부의 벽돌집에 도착하여 일본식 이름을 받고 각자 방을 배정받는다. 피해여성들은 방을 배정받은 바로 다음날부터 성폭행을 당하기 시작한다. 다음은 김순덕씨가 일본군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아래 인용에서 는 김순덕씨다.


**성폭행 트리거 워닝**강간 장면이 비교적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도대체 이 낯선 곳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며 군인이 들어왔다.

, 누구세요?”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도사렸다. 하지만 군인은 뭐가 그리 좋은지 누런 이를 내보이며 히쭉히쭉 웃었다.

히얏, 예쁜 조센징이 왔구나! 우리를 기쁘게 해 주려고 왔어! 자아, 이리 오너라.”

군인은 잔뜩 몸을 도사리고 있는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 왜 이러는 거예요?”

나는 잔뜩 겁에 질린 채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군인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어서 이리 오라니까! 시간이 없어, 어서!”
군인은 우악스럽게 나를 잡아끌어다가 나무 침대에 휙 쓰러뜨렸다. 그때야 나는 알았다. 그 군인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를.

으악! 안 돼요, 안 돼!”

나는 몸을 도사린 채 비명을 질렀다. 그럴 수는 없었다. 나의 고귀한 순결을 이렇게 왜놈에게 빼앗길 순 없었다. 연지곤지 찍고 족두리 쓰고 꽃단장한 새색시가 되어 시집가고 싶었다. 그래서 횃댓보를 친 아름다운 신방에서, 연꽃 봉오리 같은 쪽진 머리를 풀고, 원앙금침에 누워 나의 첫날밤을 고스란히 새신랑에게 바치고 싶었다. 그런데 이 낯선 중국 땅에서 짐승 같은 일본 군인에게 빼앗기다니!

안 돼애! 저리 비켜!”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군인은 먹이를 본 맹수처럼 무섭게 나에게 달려들었다. 겁이 난 나는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군인의 팔뚝을 힘껏 깨물었다.

으아악!”

군인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어찌나 세게 물었는지 군인의 팔뚝에는 금방 빨갛게 잇자국이 났다. 그러자 군인은 고양이에서 호랑이로 변하고 말았다.

이런, 못된 년!”

군인은 길길이 날뛰며 내 양쪽 뺨을 철썩철썩 때렸다. 눈앞에서 불이 번쩍번쩍 났다. 그래도 내가 계속 발버둥을 치자 군인은 이제 군홧발로 나를 걷어찼다.

아아, 이러지 말아요. 제발 이러지 말아요!”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이렇게 허물어질 수는 없었다. 나의 순결을 이렇게 무참하게 빼앗길 순 없었다.

바보! 이 조센징 바보 천치야! 지금 날 피한다고 네가 무사할 것 같으냐? 넌 이제 나 같은 군인들을 하루에도 수십 명씩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얌전히 구는 게 좋아!”

군인은 찌든 무명 수건으로 내 입을 꼭곡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다급하게 내 옷을 잡아챘다. 내가 더욱더 발버둥을 치자 군인은 총대로 내 머리를 후려쳤다.

나는 가물가물 정신을 잃으면서도 군인의 손이 거머리처럼 스멀스멀 내 몸으로 기어 올라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악!”

나는 갑자기 몸 아래쪽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큰 충격을 받고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만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순덕아, 이리 오렴, 어서!”

꿈속에서 민우 오빠가 들국화 꽃다발을 들고 나를 불렀다. 하지만 나는 웬일인지 자꾸만 뒷걸음질 쳤다.

순덕아, 조심해. 거긴 낭떠러지야!”

민우 오빠가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뒷걸음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절벽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으악!”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방 저 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싫어, 싫어! 집에 갈래! , 집에 갈래!”

옆방에서 이쁜이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간호사가 되고 싶다던 이쁜이, 이제 겨우 열세 살밖에 안 된 이쁜이도 나처럼 어떤 군인에게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아!”

나는 머리를 벽에 찧으며 울고 또 울었다.

그날, 나는 그렇게 나의 꽃다운 처녀를 잃었다.

바로 뒷장에 젊은 김순덕씨가 쭈그려 앉아 울고 있는 삽화. (70-71p)

 

-피해자 전시는 이제 그만

<할머니의 수요일> 9페이지를 차지하는 <짓밟힌 꽃잎>에서 일본군 '위안부' 여성에 대한 일본군의 강간장면은 중간 삽화 포함 5페이지의 분량을 차지한다. 이 장면의 강간묘사는 피해자의 시점에서 서술되어 있다. 이러한 묘사를 읽을 때 독자는 가해자가 무슨 일을 했는지보다는 피해자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또한 성범죄 장면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가해자가 강제로 성기를 침입시켰다는 표현을 나는 갑자기 몸 아래쪽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큰 충격을 받고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라는 식으로심지어 이 장면도 피해자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뭉뚱그려 묘사하였다. 그러나 이런 묘사 방식은 일본군들의 만행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도 없고, 가해자가 저지른 폭력을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성폭력 피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강간 스너프 필름을 찍는 것과 같다.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1(1993,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신대연구회)에서 김덕진이라는 가명을 쓰신 피해여성분의 증언이 할머니의 수요일의 김순덕씨의 경험과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증언집에서는 성폭력 장면에 대한 묘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작가가 굳이 할머니의 수요일에서 김순덕씨가 강간당하는 장면을 상상하여 묘사한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 이는 명백하게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며, 할머니의 수요일개정판에서도 이것이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유감이다.

 

-저항했냐고 묻지 마라

작가는 성폭력 장면을 묘사할 때, 성폭력 피해자가 이해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매우 노력하고 있다. 첫째로 피해자가 얼마나 격렬하게 저항하였는지 강조했고, 둘째로 피해자가 성관계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으며, 마지막으로 피해자가 얼마나 큰 폭력성적인 폭력, 물리적 폭력에 노출되었는지를 강조했다. 이쁜이를 언급하며 피해자가 얼마나 어린 나이인지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는 저항하지 않아도/못해도, 성경험이 있어도, 피해를 입은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판단되어도, 나이가 적어도/많아도 피해자다. 가해자의 대부분이 남성을 비롯한 사회적/물리적 강자이고,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물리적 약자라는 것이 성범죄의 특징이다.[각주:1]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가해자에게 저항했다가 폭행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것을 원치 않아 저항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들의 증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각주:2] 작가의 묘사는 실제 성폭력 피해자의 족쇄가 되는 진짜 피해자이미지를 재생산한다.

 

-‘순결이 웬 말이냐

이뿐만이 아니다.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고, 순결을 바친다.’, ‘빼앗긴다.’ 등의 표현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페미니즘 웹진에서는 너무 낡은 이야기일지 몰라도) 순결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소위 처녀막이라고 불리는 질막이 존재하는 것이 순결인가? 태어날 때부터 질막이 없는 사람은 순결하지 않은가? 성관계 경험이 없는 것이 순결인가? 그렇다면 성적인 행위라고 여겨지는 모든 행위를 했지만 성기결합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순결은 지켜진것인가? 클리토리스 자위만 해본 적이 있는 여성은 순결을 잃지 않은 것이고, 손가락을 질에 삽입하여 자위한 여성은 순결을 잃은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손가락에 의해 순결을 잃을 수 있는가? 순결이란 가부장제가 여성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분들은 인권을 침해당한 것이지 그 개념조차 모호한 순결을 잃은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이 책이 출판된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독자들에게 순결은 그렇게 큰 가치를 가지지도 않는다. ‘순결을 잃었다는 표현의 반복은 순결을 여성의 최우선가치로 여기는 사회에 살았던 피해 여성들에게 지속적으로 피해사실을 상기시키는 명백한 2차 가해다. 또한 이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순결이데올로기라는 허상을 너무나도 중요하여 잃어버리면 큰일 나는 것이라며 독자들을, 특히 어린 여성들을 겁주려는 시도로 보이기도 한다.

 

To be continued...

아무리 2004년도에 출간된 책이라고 해도 그렇지, 2017년에 개정판이 나왔는데 너무하다 싶은가? 놀라지 마시라, 오늘 살펴본 부분은 6장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겐 아직 5개의 장이 남아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았습니다...) 남은 연재를 마치기 전까지 여러분의 분노가 여러분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 소개 :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내가 배운 모든 새로운 것들은 나를 낡은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나는 내가 낡은 사람이 될 날을 위해 배운다.


코너 소개 : 숙명여자대학교 중앙여성학 동아리 SFA 회원들이 2017년 여름방학을 불태우며 진행한 <아동문학에 드러난 여성혐오 분석과 비판> 세미나의 내용을 바탕으로 연재하는 코너입니다. 날씨가 많이 선선해진 9월이지만, 이 코너가 여러분께 또 한 번의 뜨거운 여름을 선사할지도...?


  1. 국가통계포털, 수록기간 1993~2015, 「범죄자 성별(1993~)」에 따르면 성범죄자 27,199명 중 26,651명, 즉 98%가 남성이었다. [본문으로]
  2.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한국정신대연구회, 1997,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2』, 한울, 22. 진경팽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군인들이 폭행을 하지만, 보통은 여자들이 맞지 않으려고 미리 주의를 하면서 한 번 더 하자는 식의 군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라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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